고전을 읽을 때 내가 자주 고민에 빠지는 이유가 하나 있다. 책이 써진 시대의 특성만을 고려해 읽을 것인가, 아니면 현대적 관점을 조금이라도 들이밀 것인가이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은 그것이 어느 시대의 것이든 그 의미가 보편적으로 이해되는 것이지만, 어쨌든 매번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셰익스피어 5대 희극에 들어가는, 1592년경 초연된 말괄량이 길들이기(The Taming of the Shrew)같은 작품이 내게 고민을 던져주는 대표적인 것이다. 번역가와 평론가는 이 작품이 역설적이며 극적인 반전과 풍자가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그러한 해석이 잘 납득되지 않는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본극 안에서 공연되는 극중극이다. 본극은 극중극보다 더 짧아 서극으로도 불린다. 영주는 술주정뱅이인 땜장이 크리스토퍼 슬라이를 가짜 영주로 만들어 슬라이를 골탕 먹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하인들을 내세워 그를 혼란에 빠뜨린다. 처음에 슬라이는 자신이 영주가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지만, 모두가 슬라이를 영주라고 하며 받들어 모시기에 점점 자신이 영주라고 믿어버린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슬라이 앞에서 희극배우들이 공연하는 극이다.

 

파도바의 갑부인 뱁티스타에게는 두 딸이 있다. 맏딸인 말괄량이인 캐서리나와 얌전하고 여성스러운 둘째딸인 비앵카이다. 캐서리나가 왜 말괄량이가 되었는지는 독자들이 추측해야만 한다. 하여튼 말괄량이로 소문난 캐서리나에게는 구혼자가 없고, 둘째딸인 비앵카에만 구혼자가 몰린다. 뱁티스타는 둘째딸의 구혼자들에게 큰딸의 구혼자를 데려오지 않으면 절대 비앵카도 결혼시키지 않겠노라고 선언한다.

 

캐서리나는 불합리한 사회적 관습과 가부장제를 거부하는 여성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여성은 당연히 이해받지 못하고 고립된다. 그녀는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독자적인 방식으로는 결코 살아가지 못한다. 그녀에게 자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캐서리나는 결혼을 한 몫 챙기는 것으로만 여기는 무례한 남자인 페트루키오를 거부하지 못한다. 아버지와 신랑간의 계약으로만 성립되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페트루키오가 캐서리나를 길들이는 방식은 유치하고 웃기게 보이지만 거기에는 끔찍하게 계산된 폭력이 있다. 캐서리나는 결혼을 거부하지만, 페트루키오는 강제적으로 밀어붙이며, 이상한 복장으로 결혼식에 늦게 와서 행패를 부린다. 잠을 재우지 않고,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며 마치 짐승을 길들이듯 변덕스럽게 캐서리나를 대한다. 사육사가 되어 아내를 잡는다. 캐서리나는 자신이 편안해지기 위해 페트루키오의 말을 듣는 척 한다. 페트루키오가 해를 달이라고 우기면 그냥 달이라고 인정해버린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듣는 척 하는 것일까? 길들여지고 가스라이팅 당하는 사람은 그런 척하기 쉽지 않다.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셰익스피어는 52장의 캐서리나의 말을 통해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의 역설과 가부장제를 조롱하고 비판(옮긴이 해설)’할지 모르지만, 이 연극을 통해 아무생각 없이 웃어넘기는 그 당시의 관객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그저 페트루키오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았을지? 대다수는 캐서리나가 그에게 길들여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난생처음 도전하는 셰익스피어 5대 희극5편의 셰익스피어 희극을 잘 설명해놓은 책이다. 각 작품마다 내용의 중요구절을 원문과 함께 인용해 극의 흐름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작품에 대한 평가와 거기에 담긴 의미, 인문학적 해석이 들어있다. 박용남 저자는 말괄량이 길들이기셰익스피어시대의 가부장주의 문화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비판이 들어 있다(p.178)’고 말한다. 이 극은 눈에 보이는 대로 해석해서는 안 되며, 캐서리나의 행동은 약자인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지혜로운 현실적 대안일지도 모른다고 서술한다. 과연 그럴까? 여전히 난 이 작품에 대한 해석에 만족할 수 없다.

 

[그렇다면 카타리나는 정말로 말괄량이인가? 말괄량이란 일반적으로 말과 행동이 거칠고 여자답지 않은 여자를 의미한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당시 영국에서는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고 잔소리가 심한 아내를 가리키는 말로 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말괄량이(shrew)’라는 단어는 꾸짖다(scold)’와 동의어로 인식되었다. 한마디로 여성의 언어(잔소리)는 통제되고 교정되어야 할 죄악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여성은 남성의 말에 복종하고 잠잠하라는 의미다. 여성의 말 없는 조용함이 미덕으로 간주된 것도 그 이유다.카타리나같이 가부장적인 사회규범에서 어긋나는 여성들은 말괄량이로 낙인직혔다. -p192~193’]

 

희극과 비극의 차이는 마지막에 죽음이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될 뿐이다. 희극 역시 극의 내용은 폭력적이며 사람을 기만하는 경우가 많다. 차라리 개인적 결함과 욕망, 운명으로 인해 죽음으로 귀결되는 비극이 훨씬 더 설득적일 수 있다. 풍자와 해학, 웃음으로 이루어진 희극적 내용에 더 지독한 인간의 애환과 씁쓸함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과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보텀은 희극적 해피엔딩 속에서도 지극히 비극적인 쓸쓸함으로 남아있는 인물이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슬라이 역시 마찬가지다. 신이나 기득권자에 의한 한 순간의 장난과 속임수에 불행해 질, 모두가 폭소를 터트릴 찰나에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질 인간의 단면을 희극은 여지없이 보여준다. 어쩌면 그것이 평범한 인간들의 삶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 허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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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11-10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분홍책이다! ㅋㅋ 저도 오늘 분홍책 리뷰 썼는데 괜히 반갑 ㅋㅋㅋㅋㅋ
으아 저 <말골량이 길들이기> 진짜 싫어해요. 이 작품 말고도 말씀하신 부분 등 시대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지점이 있어서 저는 그토록 다들 찬양하는 셰익스피어…. 그냥 그렇더라고요. 흠..

페넬로페 2025-11-10 20:48   좋아요 0 | URL
저는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그냥 코믹극 정도일 줄 알았는데 이런 내용일지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정말 황당하더라고요.
셰익스피어가 영어를 잘 사용해서 칭송받는 것 같은데
원문으로 읽을 능력이 안되니 그저 번역문으로 열 받았습니다.
지만지의 이 책 번역은 더 억센 느낌이 들었어요 ㅠㅠ

독서괭 2025-11-10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도 지만지책 읽으셨군요!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원작으로 안 읽어보고 대충 줄거리만 알았는데 극중극인 줄은 몰랐네요;; 셰익스피어 작품 중 제일 별로일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5-11-10 21:18   좋아요 1 | URL
내용이 정말 황당했는데, 여기에 들어 있는 풍자나 가부장제에 대한 고발을 잘 이해할 수가 없어요 ㅠㅠ
그 당시 남자들이 엄청 좋아했을 희극 같아요.

책읽는나무 2025-11-10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병모 작가의 <절창>소설에도 셰익스피어 희극 몇 작품 잠깐씩 언급되어 요즘 관심이 좀 가고 있어요.
주로 <한여름 밤의 꿈>작품 언급이 많긴 했었는데 어떤 대목들의 비판은 아마도 <말괄량이 길들이기>였었나, 싶기도 하네요.
인어 공주 동화 내용도 있기도 했었구요.
저는 아직 셰익스피어 작품을 자세하게 읽어보진 못했네요.
읽게 된다면 답답하겠단 생각이 듭니다.

페넬로페 2025-11-11 00:07   좋아요 1 | URL
구병모 작가는 셰익스피어 희극을 어떻게 소설에 인용했는지 엄청 궁금해요.
저는 희극보다는 셰익스피어 비극이 훨씬 더 좋더라고요. 절절하고도 왜 그렇게 사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고요.
셰익스피어 읽으시려면 비극부터 시작하시길요^^

페크pek0501 2025-11-11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읽었는데 명언 같은 멘트가 좋아 셰익스피어 명언집, 이라는 책까지 샀더랬죠.ㅋ
저는 난생처음 도전하는 ~~4대 비극을 샀는데 재밌어요.

페넬로페 2025-11-11 13:31   좋아요 1 | URL
네, 저도 희극보다는 비극을 더 좋아합니다.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박용남 저자의 강의를 들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희극은 비극보다는 생소했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꼬마요정 2025-11-11 2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말괄량이 길들이기> 싫어요!! 토마스 하디의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도 뭔가 결말이 비슷한 느낌이거든요. 시대상이라는 게 참 그렇습니다… 저는 <템페스트>랑 <십이야>가 좋아요… ㅎㅎㅎ

페넬로페 2025-11-12 00:19   좋아요 1 | URL
셰익스피어의 대다수 희극 작품의 과정과 결말에 뭔가 약간씩 기분 나쁜 요소가 들어 있더라고요. 거기에 다양한 의미와 풍자가 들어 있더라도 읽기 불편한 점이 많았어요.
특히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제일 그랬어요.토마스 하디의 작품의 내용도 궁금합니다. <템페스트>는 작가의 말년 작품이라 그런지 저도 좋았습니다^^
댓글저장
 













미술관에 가서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 그림을 낱낱이 분석한 평론가의 글엔 별로 집중하지 못한다. 어렵기도 하고 재미도 없다. 굳이 그런 것까지 알 필요성을 못 느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그 앎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저 여러 화가의 그림 앞에 서서 열심히 볼 뿐이다. 그림을 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다. 눈이 열리고 감정과 생각이 교차되고 움직여진다. 작품마다 들어있는 개성과 창의성에 작가의 천재적인 면이 보이지만, 그 이면의 좌절과 성실에 더 감동받는다.

 

그림 안에는 화가의 의도와 작법이 있지만, 그 속에 작가 자신도 있는 것 같아 작가의 삶도 궁금하다. 그래서 미술관에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사람자체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 마로니에북스의 베이직 아트 시리즈는 그런 면에서 도움이 많이 된다. 연대기적으로 화가의 인생을 서술했고, 그림의 전반적인 특징과 시기에 따른 변화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놓았다. 책의 분량이 많지 않지만 그 속에 개괄적 내용이 들어있어 한 작가를 이해하는데 좋고, 길지 않아 오히려 효율적으로 읽을 수 있다.

 

폴 세잔(1839~1906)은 오직 그림만을 위해 살았고, 그것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거의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고, 사람들에 의한 좋은 평가도 비교적 늦게 받았지만 자신의 신념을 고집스럽게 지켜나간 예술가다. 은행가로 성공한 부르주아 아버지를 둔 세잔은 법학과에 입학했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 때문에 파리로 간다. 세잔은 오랫동안 아버지로부터 생활비를 받았고,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아 안정적으로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그는 파리에 있는 유명한 그림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 두 번이나 낙방했고, 살롱전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세잔은 자신이 일드 프랑스(파리와 파리근교)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고향인 엑상 프로방스로 돌아가 작업한다. 세잔은 잠시 인상주의의 기법을 사용했지만, 순간적으로 빛에 의해 변화되는 것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자연에 더 관심을 갖는다. ‘인상주의 그림이 지나치게 일시적이며 순간적이라(p.45)’고 느낀다. 세잔은 변하지 않는 자연 내부의 영원한 것을 묘사하기를 원했다. ‘영속성과 안정성(p.68)’ 으로 집중한다.

 

엑상 프로방스 인근의 1011m 높이의 생트 빅투아르 산은 거대한 석회암 산등성이로 이루어져 있다. 세잔은 이 산을 배경으로 한 그림을 거의 80여점 남겼다. 세잔은 색채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빛을 표현하기 위해 푸른색을 많이 사용했다.

 

나는 사과 한 개로 파리를 놀라게 하고 싶다는 세잔의 포부는 그의 정물화에서 분명하게 이루었다. 이차원의 특성을 기본으로 신중하고 느리게 작업했다. 작업실 안의 모든 사물을 그림의 대상으로 삼았고 한 작품을 몇 달 또는 몇 년간 그리기도 했다. 말년의 세잔은 수욕도를 많이 그렸다. 고전주의 화가에 대한 존경으로 자연과 인간의 어우러짐을 큰 캔버스에 그리고자 하는 소망이 있었다.

 

[나는 캔버스의 모든 요소를 동시에 나의 통제하에 둔다. 사물이 흐트러지기 시작하면 그것을 다시 모으기 위해 나는 내 본능과 신념을 동원한다.예술은 자연을 영속적으로 묶어두어야 한다. 모든 구성 요소와 변화의 모습까지도 고정시켜야 한다. 자연을 우리의 상상력을 통해 영원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다. -p.67]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의 그림은 그저 보고만 있어도 기쁨과 위안을 준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웃고 행복할 수 있다. 한순간 포착된 삶의 환희와 붉은 빛 낭만을 르누아르만큼 잘 표현한 사람이 있을까? 설사 이것이 그의 한계를 나타내는 것일지라도 그의 그림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계가 어려워도 르누아르는 걱정이나 비관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그림보다 밝은 색의 그림을 그렸다.

 

세잔과 달리 가난한 중산계급인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난 르누아르는 가난과 싸우며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도자기 공장에서 도제로 일하며 회화와 드로잉에 재능을 보인 그는 13세에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화공이 되었다. 돈을 모은 르누아르는 21세에 파리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다. 샤를 글레르의 개인 화실에도 다니며 그림을 배웠다. 그곳에서 클로드 모네, 알프레드 시슬레, 프레데리크 바지유를 만났다.

 

르누아르와 모네는 야외로 나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연의 인상은 그들을 사로잡았으며 나중에 인상주의라는 이름을 얻는다. 르누아르는 파리의 중산계급 사람들의 일상을 주로 그렸다. 로코코 거장들의 작품과 현대 프랑스 시각예술 전통에 뿌리를 둔 다양한 소재의 그의 그림은 당시 프랑스인의 일상과 여가를 잘 나타내주었다.

 

1883년경 르누아르는 인상주의 양식을 버리기 시작한다. 2,3년 정도 불모의 시기를 거친 그는 더 이상 파리의 일상을 그리지 않는다. 르누아르는 친구 세잔처럼 사물의 형태를 견고하고 명확하게 묘사하려(p.62)’했다. 그 후 부드러운 양식으로 다시 복귀한다. 그는 예술에 대한 관점을 끊임없이 변화시킨다. 르누아르의 색채는 훨씬 더 화려하고 강렬해졌다. 눈부신 색채와 경쾌한 붓놀림으로 넓은 곡선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선천적으로 선량하고 소박한 사람이었으며, 그림을 통해 순수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펼쳐 보여주었다. 따라서 감각적인 아름다움보다 견고하고 이성적인 토대에서 세상을 보려는 사람들과는 어울릴 수가 없었다.르누아르는 혁명적이기를 원치 않았다. 언제나 새롭고 항구적인 미를 표현하고자 했던 그는 진실의 한 부분을 보고 그대로 그렸을 뿐이다. 그는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았으며, 자신만의 시각에 치우쳐 실제의 비례를 왜곡하지도 않았다. 그의 예술은 사람들에게 모욕을 주거나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과 빛, 영원한 자연을 사랑했다. 실존적 두려움과 중산계급의 불안과 절망이 커져갈 때, 르누아르는 행복하고 조화로운 삶의 가능성을 그림으로 끊임없이 보여주었다.

-p.91]


-오베르 인근에서 그림을 그리는 폴 세잔, 1847년경, 사진, 헤이그 시립 미술관(p2)

-작업실의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1912, 사진, AFG 베를린, 뒤표지

(사진에서도 르누아르의 손가락은 많이 변형되어 있다.)

 

세잔과 르누아르의 말년은 병마와 싸우는 시기였다. 세잔은 당뇨병과 우울증을 앓고 있어 예민해져 친구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르누아르는 심한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었다. 뼈가 변형되었고 몸무게가 47kg밖에 나가지 않았다. 르누아르의 손은 심하게 비틀려 휘어져 손과 붓을 묶어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누군가와 얘기할 때 통증이 밀려오면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얘기를 멈추어야 할 정도로 그는 고통스러웠다.

 

그런 힘듦에도 세잔과 르누아르는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르누아르는 그 시기에 조각을 그리기 시작했고 세잔은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리기 위해 매일 그곳에 올랐다. 1906년 가을, 세잔을 큰 폭풍이 왔음에도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몇 시간동안 비에 젖은 몸이 쇠약해졌지만, 다음날 그림을 그리기 위해 정원으로 나가서 다시 악화되어 폐렴으로 사망했다.



 

 

 









엑상프로방스의 부르봉 학교에서 만난 세잔, 에밀 졸라, 장 바티스트 바유는 단짝 친구들이었다. 이 세 친구는 주변 지역을 여행하며 사냥을 했고, 수영을 즐겼다. 그들은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를 읽고 빅토르 위고와 알프레드 드 뮈세를 좋아했다. 그들은 시작(時作)을 했고, 세잔은 라틴어로 시를 쓰기도 했다. 세잔을 파리로 불러들인 사람은 친구인 에밀 졸라였다. 세잔이 평론가와 대중에게 비판받던 시기에도 에밀 졸라는 그를 옹호했다.

 

루공 마카르 총서를 쓰던 졸라는 성공해 세잔보다 훨씬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두 사람의 우정은 이미 예전 같지가 않았다. 18863, 에밀 졸라의 소설 작품출간은 두 사람이 완전 결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클로드 랑티에는 누가 봐도 세잔을 모델로 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책을 보내준 친구에게 세잔은 형식적인 편지를 보내고 관계를 끊는다. 세잔은 졸라의 장례식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세잔이 에밀 졸라가 이 소설에서 표현하고자 한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거나, 내용을 지나치게 왜곡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들의 우정은 되돌릴 수 없었다. 편지의 내용에서 세잔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친애하는 에밀에게.

작품을 막 받았네. 친히 한 권을 보내주다니 정말 친절하군. 루공 마카르총서의 저자 분께 추억의 증표로 감사하다고 전해주게나. 또한 과거를 생각해서 그에게 그의 손을 꼭 붙잡아봐도 좋은지 여쭤봐 주게나.

과거 속에 살고 있는 당신의 폴 세잔. -p.62]



한가람 미술관의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세잔 르누아르>는 파리의 오랑주리와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세잔과 르누아르 작품의 일부를 가져와 전시하는 기획전이다. 몇 년 전에 열렸던 <오르세 미술관>전에 비해 작품의 수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전시가 세잔과 르누아르의 작품을 서로 교차하며 보여주어 두 예술가의 세계를 비교할 수 있어 좋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의 사진 찍기가 전혀 허용되지 않았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과 오랑주리 미술관에서는 사진 찍기가 허용되는데 왜 한국에서 그것을 금지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작품 보호 차원에서라면 오르세와 오랑주리에서도 금지되어야 하는데 그곳에서는 분명 허용된다. 관람객이 많으므로 빠른 회전율을 원한 주최측의 꼼수가 아닌지 의심되기도 했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사진을 찍지 않으니 좋은 점은 있었다. 작품 자체에 완전 집중할 수 있었다. 사진에 담을 수 없고, 내가 파리에 다시 갈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을 것 같아 그림 앞에 오래 서 있기도 하고, 그림을 보고 다시 되돌아오기도 하면서 내 눈에 최대한 그림을 많이 담으려고 했다.


-수프 그릇이 있는 정물

-푸른색 꽃병

-밀집 장식 꽃병, 설탕 그릇과 사과(사진출처; 전시회홈페이지제공)

-폴 세잔


-튤립 꽃다발

-꽃병에 꽂힌 꽃

-복숭아가 있는 정물(사진출처;전시회홈페이지제공)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세잔과 르누아르의 그림은 나름 다 좋았다. 그런데 정물화에서만큼은 세잔이 완벽하게 승리한 것 같았다. 작품 자체를 놓고 볼 때 르누아르의 꽃을 그린 정물도 좋았지만, 세잔의 작품과 비교해서 보니 왜 세잔의 정물화가 그렇게나 유명한지 알 것 같았다.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들', '피아노를 치는 이본과 크리스틴'-오랑주리 미술관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들', -오르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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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10-29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시 작품 수는 그리 많지는 않군요..🧐

페넬로페 2025-10-29 09:05   좋아요 1 | URL
네, 제 느낌상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세잔의 생트빅투아르산 그림이나 르누아르의 대형화를 보고 싶었는데, 그 부분에서 많이 아쉬웠어요^^

yamoo 2025-10-29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술 평론가 글은 원래 집중해서 읽을 수가 없습니다. 미술 평론가 중에서도 자기가 무슨말을 쓰고 있는지 모르는 평론가가 다수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 평론 따위 읽는 건 작품 감상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 해롭습니다..^^

어쨌든 세잔은 사과로 전 세계 미술인들과 평론가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건 변함이 없고 그의 형태와 구성에 대한 집착은 추상미술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죠. 많은 작가 중에서 세잔만큼 높은 재평가를 받는 이는 없는 듯합니다...르누아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평론가들과 화가들의 추종을 받고 있죠..^^

페넬로페 2025-10-29 12:24   좋아요 1 | URL
세잔을 소개한 유튜브에 이런 글이 있더라고요.
˝모든 근대가 세잔에 모여 현대가 탄생했다˝
세잔의 정물화를 보면서 그 말에 공감했습니다.
세잔의 정물화도 좋았고
르누아르의 오렌지빛 인물화도 멋졌어요.
오랑주리미술관과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호시우행 2025-10-29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르누아르 화폭엔 대부분 여성들이 주인공이죠. 전시회 그임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5-10-29 14:57   좋아요 1 | URL
르누아르 그림 속 여성들은 넘 아름다워요. 그 속에 화양연화가 있는 것 같아요.

서곡 2025-11-08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전시 예약해뒀는데 얼른 가봐야겠어요 이 달의 당선작 선정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5-11-08 17:14   좋아요 1 | URL
아, 아직 안 다녀오셨군요.
즐거운 감상 되시길 바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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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액스(AX)를 원작으로 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No Other Choice)’가 개봉된다는 소식을 듣고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었다. 박찬욱 감독이 왜 이 소설의 영화화를 필생의 프로젝트로 열망했고 17년 만에 기어코 스크린에 올려야만 했는지 궁금했다.

 

1997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소재와 내용의 전개가 굉장히 특이하면서 쇼킹한 면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상상만 하고 실행하지 못하는 것을 주인공 버크 데보레는 치밀하게 설계해,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긴다.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는사회적 현상과 구조적 모순 때문에 자신도 어쩔 수가 없이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어쩔 수가 없다는 책에 여러 번 나오는 문장이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액스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와 상관없이 일단 그 자체로 봐야한다. 이 책은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다. 여기에서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면은 중요하지 않다. 작가는 이것들을 과감히 배제한 채, 오직 한가지만을 명백히 말하고 있다. 전 세계를 움직이는 조직적이고 악랄한 경제적 흐름에 한 순간 희생되는 개인과 그 가족들 각자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여기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저 작가가 의도한 것만을 볼 필요가 있다.

 

23년간 중간관리자로 한 제지회사에서 계속 근무해온 버크 데보레는 정리해고를 당한다.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2년 동안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재취업을 못하고 있다. 한창 아이들에게 들어갈 돈이 필요하고 집 대출금도 남아있는 상태다. 아내는 두 군데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최대한 긴축재정을 했지만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 ‘돈이 바닥났다.(p.33)’ 그는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다시 직장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자신과 비슷하거나 자신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난 구직자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버크 데보레는 우체국 사서함의 주소를 빌려 주로 제지업을 다루는 잡지에 구인 광고를 낸다. 전해 축전지 제지 기계로 가동되는 가상의 제지공장의 새 생산 라인을 맡아 관리해줄 특수 용지 전문가를 찾는다는, 한마디로 가짜 내용으로 조작된 것이었다. 그 주소로 200명이 넘는 사람이 이력서를 보내왔고, 그는 자신과 비슷한 경력의 경쟁자를 추려 그들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거침없이 실행한다. 그들과 자신이 원하는 삶은 비슷했고, 냉혹한 자본주의는 모두에게 필요할 것을 다주지 않는다. 누군가는 포기하거나 아님 둘 다 싸워 끝장을 봐야만 한다.

 

그에게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버지가 독일군에게 빼앗아 온, 50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던 총 루거가 있었다. 버크는 자신이 지원할 직종에 취업할 가능성이 있는 경쟁자를 찾아가 루거를 쏴 죽여 버린다. 그는 이력서를 제출한 경쟁자 4명을 죽인다. 일이 꼬여 릭스를 죽일 때 그의 아내도 죽인다. 마지막으로 버크가 취업을 원하는 회사의, 그 직책에 딱 버티고 있는 장애물인 업튼 팰런을 죽이고 그는 그 자리에 재취업하는데 성공한다. 6명을 죽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은 셈이다.

 

운 좋게 버크 데보레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자신이 계획한 일을 착착 진행해 성공한다. 그 사이 아내의 외도도 정리되고, 상담을 통해 아내와의 관계도 개선된다. 말썽피웠던 사춘기 아들의 사고도 말끔하게 해결해줬다. 돈이 만사형통이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실직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야기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실직당한 이유가 자본주의 원리와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자신과 그의 가족이 중산층의 삶을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버크의 회사는 적자가 아닌 상당히 좋은 영업실적을 올리고 있었음에도 직원의 4분의 1을 한꺼번에 해고시켰다. 해고는 거의 모든 산업에서 광범위하게, 일률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언제나 실직자가 구직자보다 많은 것이 문제다. 사람을 기계로 대처하고 필요 없어진 그 제품 라인을 다른 회사에 매각해 막대한 수익을 남긴다. 끊임없이 개발되는 신기술은 새로운 인력을 필요로 하고 쓸모없어진 직원은 해고당한다. ‘변화에 뒤처지면 끝장이지만(P.26)’ 그것을 좇아가기는 쉽지 않다. 버크는 종이라는 복잡한 주제의 전문가였지만, ‘종이라는 더 복잡한 주제가 난데없이 들어오며 수 십 년간 일해 온 회사에서 순식간에 도끼질당해야 했다. 투자 수익에만 관심이 있는 주주와 회사의 흑자를 위해 임원들은 수천 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자신의 자리를 보장받는다. 해고자 개인의 삶은 안중에도 없다.

 

오래 전 TV에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독일의 한 가공육 공장을 취재한 것이었다. 공장 노동자들은 모든 생산라인 중 각 한 곳에만 배치된다. 먼저 소가 줄지어 들어오면 한 노동자는 소의 머리에 전기 충격기를 들이댄다. 기절한 소는 거꾸로 매달려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어떤 노동자는 소의 배를 가른다. 내장을 쏟아낸 소는 또 움직여 가죽이 벗겨진다. 다른 노동자가 작두를 쥐고 소의 앞발을 자른다.....이렇게 노동자는 생산 라인의 한 곳에서 하루 종일 한 가지 일만 반복적으로 한다. 점심시간에는 자신이 살생한 그곳에서 도시락으로 싸온 샌드위치를 먹는다. 아마 지금은 그마저도 거의 대부분 기계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한 가지 일만을 반복적으로 한 노동자가 해고되었을 때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작가 웨스트레이크는 이 책에서 거대하게 조직된 자본주의의 논리와 그에 따른 냉혹한 현실을 고발한다.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해고된 사람이 다시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이 잔혹한 사회가 한 사람을 총으로 무장시킨 채 밖으로 내몰고 있으며, 그는 총질을 하면 할수록 더 편하게 잘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다 그렇게 변한다.

 

[나는 킬러가 아니다. 살인자가 아니다. 그랬던 적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무정하고, 냉혹하고, 영혼이 없는 킬러. 그건 내가 아니다. 지금 내가 벌이고 다니는 짓은 사건의 논리에 의해 강요된 것일 뿐이다. 주주들의 논리, 임원들의 논리, 시장의 논리, 노동력의 원리, 밀레니엄의 논리, 그리고 나 자신의 논리. 대안을 알려주면 살인을 멈출 수도 있다. 지금 내가 벌이는 짓은 끔찍하고, 까다롭고, 섬뜩하다. 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p.162]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의 영화답게 미장센과 대사 특유의 유머와 디테일이 살아있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났다. 소설의 진지한 블랙코미디를 가볍게 비틀었지만 거기에 소설보다 더 끔찍한 비극이 들어있어 좋았다. 다만 사회적이고 거시적인 것을 배제한 채 영화를 가족 판타지로 축소시킨 것이 아쉬웠다.

 

실업자가 되면 본인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도 힘들다. 똑같은 처지지만 만수(이병헌)와 범모(이성민)의 대처는 다르다. 만수는 총을 쏴서라도 가족을 지키려 하지만 범모는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누가 더 맞다, 누가 더 잘한다는 있을 수 없다. 만수의 행동이 그 어떤 이유라도 정당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두 사람의 차이나는 행동으로 만수의 아내인 미리(손예진)는 그의 동조자가 되고 범모의 아내 아라(염혜란)는 적이 된다. 아라는 범모의 태도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그녀는 남편에게 실직당한게 문제가 아니라 실직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문제야라고 말한다.

 

어느 누가 실직에 대처하지 않겠는가? 대처해도 잘 안 되니 문제가 된다. 실망하고, 자포자기하고.끝내는 어쩔수가없이극단적 행동을 하게 된다. 소설에서 버크는 어떻게 해서든 내가 벌인 짓들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할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절대 자살을 하지 못한다.(p.114)고 했다. 만수와 소설과 다르게 그의 살인을 알게 된 미리역시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불안과 상처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내가 느낀 이 영화의 압권은 마지막 장면이다. 재취업한 만수는 거대한 기계실의 관리를 맡고 있다. 그는 그저 그 기계들이 잘 돌아가는지 체크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기계가 다 알아서 종이를 생산해준다. 만수는 귀에 귀마개(기계가 돌아가며 내는 소리가 엄청나다)를 하고 손에 패드를 들고 기계 사이를 걷는다. 그의 얼굴엔 안도의 미소가 있다. 하지만 그 미소가 영원하지는 않을 거라고 암시한다. 총질로 가까스로 거기에 갔지만, 멀지 않아 그의 길은 또다시 험난해질 것 같다. 지독한 박찬욱 표 블랙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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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10-23 17: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엑스를 오래 전 읽었는데, 그리 재밌지 않았다는 기억만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원작이 엑스였군요~
저는 박찬욱 감독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관심이 없었는데...엑스가 원작이었다니..ㅎㅎ

페넬로페 2025-10-23 21:41   좋아요 1 | URL
네, 그리 재밌지는 않은데 스토리 전개가 특이했어요.
저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을 좋아하는데,
<어쩔수가없다>도 무난했다고 생각합니다^^

새파랑 2025-10-24 08: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는 페넬로페님은 책쟁이가 맞습니다~!
박찬욱 감독님도 책쟁이인거 같아요. 이런 책을 어떻게 아셨는지 ㅋ

페넬로페 2025-10-24 10:29   좋아요 1 | URL
박찬욱감독님이 독서를 엄청 많이 한다고 들었어요.
책에서 소재를 많이 찾을 것 같아요. 오래전에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독서괭 2025-10-26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영화 제목은 많이 들었는데 이런 내용이었군요?! 놀랍습니다. 원작 읽고 보면 더 많은 게 보일 것 같은 영화로군요.

페넬로페 2025-10-26 16:37   좋아요 1 | URL
저도 영화가 상영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 책을 알게 되었어요.
책과 영화 내용은 비슷한데
각각 나름의 개성이 있더라고요^^
댓글저장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출연한 영화를 처음으로 본 건, 어릴 때 TV에서 방영한 주말 영화프로그램이었다. ‘내일을 향해 쏴라였다. 그 영화에는 지금도 레전드로 꼽히는 유명한 사운드 트랙과 장면이 있다.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가 흘러나오며 폴 뉴먼과 캐서린 로스가 자전거를 타는 씬이다. 나 역시 그 장면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그 음악과 영상이 너무 좋았지만, 그때부터 난 폴 뉴먼이 아닌 로버트 레드포드의 팬이 되어버렸다. 보는 순간 그냥 처음부터 이 배우에 홀딱 빠져버렸다. 느끼하지 않게 잘 생긴 것이 매력 있었고, 그리 정열적이지도, 과하지 않은 담백한 연기도 좋았다.

 

그 뒤 로버트 레드포드가 나온 영화는 거의 본 것 같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함께 출연한 추억과 메릴 스트립과 함께 출연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사랑하는 연인을 대하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역할이 너무 차갑고 이기적인 것 같아 마음에 조금 들지 않았지만, 이 배우를 탓할 수는 없었다. ‘추억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사운드 트랙과 영상 역시 내 인생영화이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더 좋았던 점은 그가 배우로만 머물지 않고 감독과 영화 제작자, 그리고 저예산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선댄스 영화제를 설립했다는 사실이다.


영화를 전공한 딸아이는 올 초 미국 유타주의 파크시티에서 열린 ‘2025 선댄스 영화제에 자원봉사자로 다녀왔다. 혼자 짐을 꾸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그곳으로 떠난다고 했을 때 걱정되어 반대하기도 했지만, 내 말을 들을 아이가 아니었다. 비록 자비로 비행기 티켓을 끊어 갔지만, 무료로 제공되는 훌륭한 숙소와 여러 인종과 나이가 섞여있는 다양하고 친절한 사람들 사이에서 딸아이는 좋은 영화도 많이 보고 우정도 쌓고 왔다. 그 경험이 플러스가 되었는지 딸아이는 올해 계속해서 한국의 여러 영화제에서 일하고 있다. 오늘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한다.

 

너무나 더웠던 올 여름의 무더위도 어느새 물러나고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늘 세월은 흐르고 세상이 변하지만 아직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것 같다. 한 번씩 적잖은 우울과 마음의 허전함을 겪는다. 누군가를 보낼 땐 매번 힘들다.


주말에 자주 같이 영화를 봤던 아버지가 생각나는 날이다.


-사진출처:네이버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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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9-17 1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흐르는 강물처럼>에 그가 나왔나 싶어 찾아보니 감독이었군요.

페넬로페 2025-09-17 20:27   좋아요 0 | URL
감독으로도 성공을 거둔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카데미 감독상도 수상했고요^^

다락방 2025-09-17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쩐지 흐르는 강물처럼이 제일 먼저 생각났어요.

페넬로페 2025-09-17 20:28   좋아요 0 | URL
<흐르는 강물처럼>도 정말 레전드죠^^

바람돌이 2025-09-18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내일을 향해 쏴라하고 스팅
여기서도 연식이 드러나는군요. ㅎㅎ 제게는 나이 들수록 더 멋있어졌던 배우입니다. 부디 편히 영면하시기를.....

페넬로페 2025-09-18 23:07   좋아요 1 | URL
저도 연식이 많이 된 사람임이 확실해요 ㅎㅎ 할리우드 키드로서 미국 영화를 엄청 본 것 같습니다. 로버트 레드포드 배우는 정말 나이 들수록 멋있었어요. 자기 목소리도 확실히 내었고요^^
댓글저장
 













샬럿 브론테의 소설 빌레뜨는 비극에 가깝다. 고대 그리스나 셰익스피어의 비극처럼 장중하거나 극적이지는 않지만,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여성이 겪는 은근하고도 끈질긴 힘듦과 쓸쓸함으로 가득 차 있다.

 

노동계급보다 아래인 이급 시민으로 취급받은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으로서, 특히 부모님은 물론 후견인 한 명 없이 홀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야하는 여성의 여정은 당연히 위태롭고 벅찰 것이다. 작가 샬럿 브론테는 별 다른 설명 없이도 조실부모하고 가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이 소설의 주인공 루시 스노우를 통해 그런 환경에 처해진 여성의 삶을 자세하고도 절절히 묘사한다.

 

작가는 지나치게 세밀하고 자세한 문장을 통해, ‘루시 스노우의 생각이나 행동을 말해준다. 제인 에어에서와 마찬가지로 샬롯 브론테는 여성도 자기 삶의 주체가 될 수 있고, 독립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시대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스스로 이루기 위해 매번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안쓰럽기도 하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사랑일지라도 자신이 넘볼 수 없는 곳은 절대 시선조차 주지 않고, 언제나 감정보다는 이성을 통해 자신을 지키려는 인내심은 보통 사람이면 갖기 힘든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힘들지 분명히 알 수 있다.

 

[하층계급이 아닌 여성이 생계수단을 획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 가정교사나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심리적인 면에서는 일의 성격이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채 유모나 하녀의 일까지 겸해서 해야 했으며, 또한 고용주의 다른 피고용인들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애매한 위치 때문에 고립만이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작품 해설 중에서]

 

이 힘든 것을 묵묵히 견디는 루시 스노우지만 한 번씩 그녀에게 엄습하는 우울과 외로움은 인간이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정신적 고통이다.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은 주저앉거나 광기의 행동을 보이기도 하지만 샬럿 브론테는 역시나 이 소설에서도 그것을 극복해내는 또 한 명의 강인한 영국 여성을 만들어낸다. 소설 빌레뜨는 루시 스노우가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것은 결국 뽈 에마뉘엘이라는 남자가 만들어 준 것이며, 뒤늦게 찾아 온 유산을 받아서이다. 아무리 의지와 행동이 이성적이고 단단할지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다면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한계도 보여준다.

 

작가 샬럿 브론테는 동생 에밀리와 함께 1842년 벨기에의 브뤼셀에 위치한 에제 부인의 기숙학교에서 학생이자 영어 교사로 생활한다. 그곳에서 프랑스어를 배워 하워스에 학교를 차릴 목적이었다. 소설 빌레뜨는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그들은 이곳에서 여러 면에 걸쳐 상상도 하지 못할 문화적 충격을 받는다. 샬럿은 또한 에제 교수에게 연정을 느낀다. 뽈 에마뉘엘은 에제 교수가 모델이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느낀, 작가가 이해 못한 것들은 이 소설에 그대로 서술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여러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이유로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지나치게 장황하고 세세한 묘사로 많이 지루했다. 다만 문장의 표현만큼은 기막혔다. 적절한 상징과 비유가 뛰어났고, ‘루시 스노우로 빙의한 샬럿 브론테의 지혜와 위트, 귀여움이 너무 좋았다.

 

[‘이성에 따르면, 나는 빵조각이나 벌려고 일하며 죽음의 고통을 기다리면서 평생 낙담한 채 살아야 할 운명이었다. ‘이성이 옳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끔씩 우리는 이성을 무시하고 이성의 채찍을 벗어나 상상에게 달려가서 빈둥대지 않는가. 밝고 부드러운, 이성의 적이자 우리의 상냥한 구원자이며, 신성한 희망상상에게 말이다. 끔찍한 복수가 되돌아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이따금 한계를 넘어서기도 하며, 또 그래야 한다. ‘이성은 악마처럼 복수한다. ‘이성은 늘 계모처럼 내게 독기를 품고 대했다. 내가 이성을 따르는 것은 애정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었다.이성은 겨울밤 차가운 눈 위로 자주 나를 내쫒으면서 개들이 갉아먹다 버린 뼈다귀나 먹으라며 던져주었다. 자기 창고에는 내가 먹을 게 없다고 딱 잘라 말하면서, 더 나은 음식을 요구할 권리가 내겐 없다고 모질게 굴면서

-빌레뜨 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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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5-09-17 0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교수>에도 벨기에 사람들을 폄하하는 이야기들이 꽤 나왔던 걸로 기억해요. <빌레뜨>는 그 뒤에 읽었는데 인식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것 같네요.. ^^;

페넬로페 2025-09-17 00:55   좋아요 1 | URL
<빌레뜨>에 엄청 그런 내용이 많았어요. 물론 작가가 경험한 것들을 서술했겠지만, 영국인의 우월주의가 많이 들어 있더라고요.
<교수>는 괜찮나요?
<셜리>는 빌레뜨보다는 제 취향인 것 같더라고요^^

건수하 2025-09-17 10:23   좋아요 1 | URL
<교수>는 초기작이라 좀 거칠고 여성도 별로 진취적이지 않아요.
그렇다고 딱히 재미있지도 않았어요.. ^^
저는 <셜리>를 아직 안 읽었는데, 조금 기대해봐야겠습니다.

바람돌이 2025-09-17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빌레뜨는 장황하죠. 그래서 사실 저도 좀 읽기 힘들었어요. 뭔가 딱 이거다 하는 임팩트가 없었던.... 하지만 제인 에어가 이래서 나올수 있었구나 하는 마음을 줬어요. 그것만으로도 제인 에어의 팬으로서 감사하답니다. ^^

페넬로페 2025-09-17 15:13   좋아요 1 | URL
네, 끝까지 맥락과 임팩트가 부족해서 읽기가 지루했어요. 제인 에어에 못 미친다고 생각했어요.

책읽는나무 2025-09-17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책표지가 다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책표지가 넘 예뻐서 기대하고 읽었는데 좀 어려웠어요. 그래서 좀 대충 읽고 넘어갔었는데…문체가 몇 군데 끌던 곳이 있었어서…꼭 다시 한 번 더 읽어봐야지. 찜해두긴 했는데 언제 읽을지?….

페넬로페 2025-09-18 08:38   좋아요 1 | URL
책표지가 예쁜데 뭔가 내용과 잘 맞지 않는 느낌도 들었어요. 소설이 너무 장황해 읽기가 지루하기도 ㅎㅎ
책나무님, 굳이 재독까지는~~

새파랑 2025-09-18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브론테 전문가 페넬로페님~! 제인에어에 이은 읽기군요. 이 책은 잘 안읽히나 봅니다. 저는 표지가 예뻐서 구매후 초반부만 조금 읽다가 포기했었습니다 ㅎㅎ

페넬로페 2025-09-18 19:02   좋아요 1 | URL
너무 안 읽혀 조금 힘들었어요. 샬럿 브론테 작품의 주제가 거의 비슷한 것 같아요.
표지는 넘 예쁩니다 ㅎㅎ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