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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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부기.

하루키 월드와 반 고흐 월드

 

김연수는 “하루키 월드”에서 깊이 사랑하는 것은 규칙위반이라고 했다. 깊이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을 떠나게 만들고 그래서 이제 홀로 남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도 깊은 상처를 남긴다. 이번에 고흐의 편지글을 읽으면서 발견한 것은 하루키와 달리 “반 고흐의 월드”에서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죄라는 것이다. 고흐도 하루키만큼이나 깊은 사랑이 깊은 상처를 남기는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여동생인 윌에게 남긴 편지에서 동생에게 사랑을 권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래, 차라리 바보짓을 몇 번이든 하렴”. 이뿐 만이 아니다. 고흐는 공부를 하거나 종교나 이념에 빠지게 된 것은 자신이 “말도 안되는 연애사건”, 즉 “사랑에 빠지지 못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반고흐 월드”에서 그것은 많은 공부를 하거나 사회주의에 심취하는 것보다 올 바른 일이다. “대개는 그런 사건으로 창피와 망신만 당할 뿐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한 것이 전적으로 옳았다고 생각한다”.

 

고흐가 극렬주의자였다면 바로 이런 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사랑에 있어서 절제가 필요하더거나 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하루키의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남자들처럼 ‘세련된’ 사랑은 없다. 고흐는 주변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 정도로 사랑한다. 그건 사촌인 케이에 대한 사랑에서나 시엔에 대한 사랑에서도 마찬가지고, 테오에 대한 사랑에서도 그렇다.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고흐가 목숨을 스스로 끊은 것은 테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흐의 평소 태도 상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동생 테오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편지 곳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정신 착란으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어 동생에게 진 빚을 갚을 길이 없게 된 고흐가 동생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죽음 외에는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정신 착란 증세도 깊은 사랑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고흐는 동생에게 신세를 갚기 위해서 ‘예술’로 끝까지 자기를 내몰았기 때문이다. 테오가 정신 착란 증세가 심각해져 생레미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고흐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그 그림들은 형이 자연과 살아 있는 생명체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거야. 형이 생명체 안에 본래부터 내재한다고 강렬하게 느끼는 것들. 이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형은 모든 것을 극한까지 몰고가는 모험을 감수했을 테니 머리가 얼마나 힘들었겠어. 혼란을 겪은 것도 무리가 아니야”. 고흐는 동생도, 예술도, 연인도, 자연도 극한까지 사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도, 건강도, 돈도, 심지어는 동생까지 모든 것을 잃었다. 오로지 작품만 남았다.

 

아마도 하루키 월드에서 보자면 대단히 어리석은 짓임이 틀림 없다. 하루키는 새벽에 일어나 써야 할 원고를 쓰고, 오후에는 취미로 번역을 하고, 마라톤을 완주하고, 작품도 수백만부 씩 팔리고, 이 나라에서는 선인세도 수억원씩 받으며, 깊이 사랑할 가능성이 있는 자녀도 애초부터 낳지 않아 부유하고, 건강하고, 고흐에 비하자면 이렇게까지나 오래 살고 있다. 고흐에 비교해서 그것을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차이는 내가 보기에 ‘깊은 사랑’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어느 글에서 나는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고, 또 내게 일어난 어떤 소동으로 인해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무 깊이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썼다. 그런데 고흐의 서간집을 읽으면서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세상에 대한 경험도 부족한 주제에 사랑까지 깊이 하지 않겠다는 것은 사실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랑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것, 소동을 일으키고, 창피를 주고 망신을 당하게 만들고, 사람을 긴장하게 했다가 의기 소침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온갖 것의 '부정성‘을 생각해보면서도 정작 사랑도 항상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하루키 월드도 깊은 사랑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하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를 너무 사랑하고, 사랑했던 여자가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고흐와 하루키의 차이는 ’깊은 사랑‘을 하느냐에 비해 어쩌면 깊은 사랑의 대상이 늘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는가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여자가 사라지고 나면 더 이상 사랑할 것을 찾지 못하는 하루키 월드에서와는 달리 반고흐 월드에서는 모든 순간, 그것이 무엇이든지 늘 강렬하게 사랑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규칙 위반이다.

    

“내가 가장 불안하게 생각하는 점은, 글을 쓰려면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네 믿음이다. 제발 그러지 말아라, 내 소중한 동생아. 차라리 춤을 배우든지 장교나 서기 혹은 누구든 네 가까이 있는 사람과 사랑을 하렴”

 

“종교나 정의나 예술이 그렇게 신성할까? 자신의 사랑과 감정을 어떤 이념을 위해 희생시키는 사람보다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더 거룩하다. 그건 그렇다 치고, 글을 쓰고 싶다면 행동을 해라. 인생에 대해 무언가를 담고 있는 그림을 그리든지.”

    

아무 것도 아닌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이유는 쉽게 사랑을 포기해버리는 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고흐가 가난했지만 가난하지만은 않았던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 빈센트 반 고흐

 

1.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예담에서 만들고 빈센트 반 고흐가 쓴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여러 분이 다 아시는 바로 그 화가, 고흐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바로 고흐가 쓴 책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이 책은 고흐의 편지글을 모은 건데요, 고흐는 동생 테오와 대략 9년간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요 이 책에는 그 편지들이 엮여져 있습니다.

 

2. 그렇군요. 사실 고흐와 동생 테오가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이기도 하지요.

 

그렇습니다. 고흐는 1872년 8월부터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해서 1890년 7월의 마지막 편지까지 651통의 편지를 보냈구요, 고갱을 포함해 주변의 동료 화가에게 보낸 것까지 포함하면 모두 819통이나 됩니다. 고흐가 받은 편지도 83통이나 된다고 하니까 분량이 어마어마하죠. 분량이 많다 보니 고흐의 고향인 네델란드에서도 고흐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1953년에야 네 권짜리 전집이 출판되었구요, 일본에서도 1963년에 두꺼운 책 3권으로 편집되어 간행되었는데요,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고흐의 서간문을 완역한 책이 아직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소개해드리는 이 책 역시 고흐 서간문 전체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고흐의 서간문 중 그의 삶과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편지를 역자가 임의로 뽑아서 편집한 것인데요,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 반 고흐의 편지를 비슷한 방식으로 엮어서 만든 책들이 몇 종류가 있는데요, 오늘 소개해드리는 <영혼의 편지> 말고도 펭귄 문고판으로 나온 <고흐의 편지>라는 책도 있습니다. <영혼의 편지>와 달리 이 책은 네델란드의 반고흐 미술관장인 로날트 데 레이우가 편집한 것이고 번역도 사실 훨씬 좋은데요, 안타깝게도 고흐 작품이 하나도 실려 있지 않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 드리는 <반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은 번역과 편집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고흐가 남긴 작품들과 관련된 편지글이 함께 있어서 훨씬 더 좋습니다.

 

3. 정말 많은 양의 편지를 썼네요. 편지를 대략 나흘에 한 통씩 썼다는 말이 되네요.

 

사실 양도 양이지만, 고흐의 서간집은 고백문화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도 고흐의 그림을 실제로 볼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림도 좋았지만 저는 고흐의 서간집을 읽고 난 후부터 고흐를 정말로 ‘위대한 화가’로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위대한 화가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고흐가 살아 있는 동안 몇 점의 그림을 판매했는지 아시나요? (대답) 네, <붉은 포도밭>이라는 그림 단 한 점만을 팔았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사실 유화로 그린 작품 중 판매된 것이 한 점 뿐이라는 것이지 스케치나 데생은 여러 점이 팔린 적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한 개인의 삶으로만 보자면 마치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불행하고 실패한 삶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어 가다보면 고흐의 고통이 150년의 세월을 관통해 읽는 우리의 마음에도 전달되는데요, 바로 그 점 때문에 고흐의 서간집을 위대한 문학이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4. 고흐는 대단히 가난했다고 알고 있어요.

 

네, 그래서 이 편지는 어쩌면 고흐가 가난과 싸운 투쟁기라고 소개드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책 전체에 그런 내용이 두드러지는데요, 사실 고흐는 20대 초반에 그림 판매를 하다가 그만 둔 이후로 단 한번도 직접적으로 생계와 관련된 일을 한 적은 없습니다. 고흐가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지원해준 것은 동생 테오인데요, 테오는 고흐와 함께 화랑에서 그림 판매를 했었는데 형은 그만뒀지만 끝까지 남아서 그림판매상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고흐는 27살이나 되어서야 전업화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는데 테오가 10년 후 고흐가 죽기 전까지 돈을 보내주는 거지요.

그래서 책을 보면 동생에게 돈을 받아써야 하는 형의 미안한 마음이 전반에서 묻어납니다. 고흐가 그림을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아 유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동생에게 보낸 편지 중 한 부분을 읽어 보겠습니다.

 

유화가 팔리지 않을 것 같다면 목탄이나 다른 것으로 데생을 하는 게 낫겠지. 그러나 혹시라도 유화를 그리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면 유화를 계속하고 싶다. 특히 요즘은 유화가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까, 예상하지 않았던 기회가 올지도 모르니까. 단지 팔릴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다른 식으로 배울 수 있는 일에 물감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고흐는 값이 비싼 유화물감로 연습을 계속 해보고 싶은 건데요, 돈을 많이 써야 하니까 동생에게 미안하니까 나는 연필이나 목탄으로 해도 된다고 둘러 말하는 거죠. 그래서 동생에게 내가 그린 유화 작품이 팔릴 가능성을 있는지도 물어보는 겁니다. 고흐는 자신의 그림이 언젠가는 팔릴 수 있다고 믿고 정말로 필사적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그린 그림을 팔 수 있어야만 동생에게 신세진 것을 다 갚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동생에게 받은 돈을 갚기 위해서라도 더 좋은 작품을 그려야 하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열심히 해야 하니까 정말 열심히 작업을 합니다. 그런데 이게 악순환인거지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돈이 들어가고,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그림을 많이 그려야 하는데 정작 그림을 팔리지 않고, 그림이 안팔리다 보니까 그림을 더 많이 그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그러면 또 돈이 들어가 빚이 생기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는 거죠.

 

5. 그렇네요, 정말 악순환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데요, 테오도 결국 지치지 않았을까요?

 

고흐도 대단하지만 테오도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테오는 고흐가 작품을 할 수 있도록 끝까지 지지해주고,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경제적 지원도 계속해서 해줍니다. 고흐는 말년에 몸이 아주 쇠약해지고, 심각한 정신 착란 증세가 오게 되는데요, 그 때문에 이웃들이 고흐를 불안하게 여겨서 정신병원에 가두려는 진정서를 쓰게 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정신병원도 공짜는 아니잖아요? 고흐는 정신병원에 들어가면 그림을 그릴 수 없어서 동생에게 받은 돈을 갚을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아프리카의 외인부대에게 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동생 테오가 이 소식을 듣고 고흐에게 쓴 편지의 한 부분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외인부대에 간다는 생각, 그건 절망에 빠져서 내린 결정이야. 그렇지? 난 형이 그런 직업을 진심으로 좋아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 지금 형은 그림을 전혀 그릴 수 없고, 조금씩 건강을 회복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어. 그런 상황이 형에게 다시는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심어줬을 것 같아. 그러니 석달동안 일도 할 수 없으면서 비용만 드는 곳에 가서 보살핌을 받고도 벌어들이는 건 전혀 없을 거라고 고민했겠지. (중략) 결국 형은 불필요하게 머리를 괴롭히고 있어. 작년은 내게 경제적으로 괜찮은 한 해였어. 그러니 내게 부담을 줄까 두려워 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내가 보내는 것을 받아 써도 괜찮아.

 

6. 형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테오도 깊이 생각하고 있네요.

 

이런 편지 내용을 보면 테오는 고흐를 정말 진심으로 아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테오는 형에 대한 존경심으로 가득했어요. 자신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가중시키고, 정작 형의 그림은 팔기도 어렵고, 또 고흐가 가끔 테오에 대해서 가혹한 비판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들에게 고흐와 똑같은 ‘빈센트’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형을 사랑했습니다.

 

고흐가 말년에 목숨을 끊기로 결심한 것에는 아마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더 이상 동생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테오가 결혼을 해서 아들 빈센트를 낳은 것이 1890년 1월인데요, 고흐가 같은 해 7월에 권총자살합니다. 그해 5월에 동생 집에 방문을 하고 약간의 다툼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자신이 가족을 돌봐야 하는 동생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깊이 했던 것 같습니다. 10년 가까이 동생으로 많은 돈을 받아 썼는데, 자신은 정신 착란이 와서 제대로 된 생활도 되지 않고, 그림도 못 그리게 되니까 지금부터라도 더 이상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죠.

 

그런데요, 고흐와 테오 사이의 관계는 단지 형제애라는 말 정도로는 드러낼 수 없는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이 두 사람은 한 쪽이 없었다면 다른 쪽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관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890년 7월에 고흐가 죽고, 그로부터 6개월 후인 1891년에 테오가 서른 세 살의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7. 삶이라는 것이 참 기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고흐는 동생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형이 없으니 동생도 더 이상 살 수가 없었던 거군요.

네, 두 형제의 이야기를 보는 것으로도 이 서간집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글을 읽다보면 고흐가 위대한 사상가였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고흐는 극렬주의자이고 행동주의자입니다. 옳다고 믿는 일은 그냥 끝까지 해버리는 사람인데요, 세상을 바꾸는 생각은 어쩌면 그런 극단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도 그런 대목이 자주 나오는데요, 고흐는 한 때 임신한 매춘부를 사랑하게 되는데요 그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고흐를 떠나게 됩니다. 그래도 고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한 여자를 저버리는 일과 버림 받은 여자를 돌보는 일 중 어떤 쪽이 더 교양있고, 남자다운 자세냐고 되묻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겠다는 여동생 윌에게는 가까이 있는 사람과 사랑을 하라고 권합니다. 공부는 독창성을 죽이니까 기를 쓰고 공부하지는 말고 차라리 사랑에 제대로 한번 빠져보라는 것이죠.

 

8. 공부를 하지 말고 사랑에 빠져라는 말이 아주 인상적이네요.

 

네 저도 그 말이 오랫동안 남았습니다. 고흐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는데요, 고흐야 말로 학교도 다니지 않고 스스로 공부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고흐는 그림을 시작하기 전에 신학 공부를 했지만 잠깐 다니다 중도에 그만뒀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나서도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고, 프랑스 화가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살롱전에서 입상한 적도 없습니다. 잠깐 모베라는 화가에게 배운 적이 있지만 그것도 짧은 기간 일시적일 뿐입니다. 고흐는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4명이 있었는데요, 주변의 반대와 당사자들의 거부로 단 하나의 사랑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4살 짜리 아들이 있는 미망인 연상의 사촌을 사랑하기도 하고, 임신한 매춘부를 사랑하기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합니다. 고흐의 세계에서 배움은 학위와 같은 자격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테오와 고흐의 관계도 이렇게 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고흐는 자연도, 사람도, 동생도, 무엇보다 예술도 정말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죠.

 

9. 마지막으로 청취자분들에게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죠.

 

제 개인적으로 이번 방송을 준비하며 다시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제게 위로가 되는 부분이 정말 많았어요. 고흐는 테오에게 글을 쓰고 있지만 마치 나에게 ‘네가 글을 쓰는 이유, 살아가는 이유가 뭔지’ 묻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고흐는 자신에 대해서도, 테오에 대해서도 진짜 삶이 무엇인지 끊임 없이 묻고 행여나 다른 길로 갈 것 같으면 ‘가차 없이’ 비판합니다. 고흐 작품을 보면 정말 자연을 사랑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작품들이지요? 누군가의 인정이나 동의에 기대지 않고 온갖 가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헌신하는 모습에 제 자신이 참 부끄러워졌습니다.

 

고흐의 일평생 과제가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인간, 어떤 식으로라도 쓸모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임신한 매춘부를 도울 수 있었을 때 그녀와 사랑하게 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흐 일생은 그림이 팔리지 않았고, 동생에게 폐를 끼쳤고, 병도 얻었습니다. ‘생활’이 너무 무거웠던 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흐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립니다.

 

 저는 고흐의 삶을 보면서 결혼, 취업,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라는 우리 젊은 세대가 떠올랐습니다. 직장에 들어가서 세상에 기여해보고 싶고, 부모님께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데 등록금과 학원비, 월세 내기도 빠듯한 청년들의 삶은 사실 가난 때문에 두려움에 떨며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고흐의 삶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와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계속되는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이 읽으신다면 큰 위로와 함께 통찰을 얻으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살아서 고흐는 가난했지만, 죽어서 고흐는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가 되었다는 사실이 여러분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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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 - 그 집이 내게 들려준 희로애락 건축 이야기
구본준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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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경주에서 열린 큰 여성 대회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의 패널로 참여했던 적이 있다. 거기에는 나 말고 부산의 어느 라디오 방송의 피디도 패널로 오셨는데, 말빨 중의 말빨, 내가 여태 본 사람 중 최고의 말빨이었다. 관객이 어디에서 감동을 받고, 어디에서 웃고, 어디에서 진지하게 듣는지를 정확히 알고 거침 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주가 정말로 뛰어난 분이었다. 피디가 말만 하면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존경스러웠다. 직장을 가진 엄마의 자격으로 오신 50대의 라디오 피디 다음으로 내가 발언해야 하는 것은 무척 부담스러웠다. 나는 그 빛에 가려서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한 탓인지, 관객들의 호응을 거의 얻지 못했다. 끝나고 나서 알게 되었는데, 라디오 피디 그 분은 이문세가 별밤에 출연하는 거의 전 기간동안 연출을 한 분이었다. 본인도 그 때의 경험이 자신을 ‘말빨’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스스로를 '말빨'로 불렀다)

 

피디의 발언은 하나같이 재밌는 이야기였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의미있는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대중의 기호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당시의 토크 콘서트는 각자의 육아 경험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는데 피디는 “절대로 직장 그만 두지 마라”, “이렇게 아이 키워도 나처럼 아이들 좋은 대학 보낼 수 있다”처럼 토크콘서트의 관객 중 대부분에 해당하는 여성들이 선호하는 말이 무엇인지 꽤뚫고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빠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오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아버지상이 필요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실 내가 한 말 대부분은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 내야 하는 '콘서트'라는 자리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오히려 토론회 자리에서나 어울릴 법한 것들이었다. 내 위치는 논문발표장이나 토론장이 아니라 콘서트장인데도, 나는 내가 콘서트의 패널로 나가서 논문발표장에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아마 내가 아직 나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서라기 보다 나의 위치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콘서트 패널로서의 나를 수용하지 못하고, 쉬운 책을 소개해달라는 라디오 방송에 나가는 나를 수용하지 못하고, 철학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육아를 동원해야만 하는 나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육아 이야기를 해야 하는 지면에 어려운 철학적 이야기를 끌어내고, 라디오 방송에 나가서 어려운 철학책을 소개하고 싶어하고, 콘서트 패널로 가서 철학적 토론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가히 몰맥락적인 존재라 할만하다. 미스플레이스드맨인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라디오 피디의 ‘말빨’, 너무 상황에 잘 맞는 말,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능력은 지나치게 노련해서 불편하다.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내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화된 이야기를 재밌게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피디의 발언에 자신의 경험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실 구본준 기자의 <마음을 품은 집>을 읽으면서 그 콘서트에서 만난 라디오 피디가 생각났다. 구본준 기자의 글은 결코 날카롭거나 날렵하다고 할 수는 없다. 대신 ‘포인트’를 안다. 독자들이 어디서 반응하고, 어디서 느끼고, 어떻게 해야 이야기에 빠져드는지, 그 플레이스를 잘 파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땅콩집 소개자로서의 구본준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땅콩집’이라는 작명에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글자수가 적은 신조어를 만들어야 전파가 쉽다. 듀플렉스란 말은 너무 어렵다”. 나 같은 미스플레이스드맨이라는 말 정도밖에 못만들어내는 사람은 듀플렉스를 땅콩집으로 부를 생각은 거의 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음을 품은 집>은 글빨이 살아 있어 잘 읽히고, 새로운 정보도 많고, 감동도 있다. 희-로-애-락, 감정을 단 네 개로만 정리해서 건축물을 소개하겠다는 기획, 그것이 경탄할만하다. 감정을 단지 네 개로만 풀겠다는 생각은 수십가지의 감정으로 하루에도 기분이 몇 번 바뀌는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구본준의 이 책이 나는 지나치게 노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것은 하나의 능력이겠지만, 그래서 이 책에 구본준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것이다. 구본준에 대한 이야기로는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 구본준이 그 건물에 대해 일반적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면 독자들은 글을 쉽다고 느끼고, 이해했다고 생각하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느낀다. 미스플레이스드맨은 이 점이 부럽기도 하고, 그래서 재미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격에 맞는 이야기, 장소에 맞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내 이야기를 하는 것과 적절히 잘 조화될 수 있는 경지는, 모두에게 연주되지만 마치 한 사람에게만 속삭이는 것 같은 연주를 하는 수준일 것이다. 너무 노련하면 기술적으로만 보여 한 사람에게 속삭이는 것 같지가 않다. 노련한 상담가와 대화하는 것이 항상 나쁜 기분으로 마무리되는 것도, 불일치와 맥락의 단절이 존재하지 않는 대화의 미끄러움 때문일 것이다. 잘 읽히지 않는 책이 내게 재밌는 이유는 아마 그 단절, 불일치를 끊임 없이 경험하게 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다음 주에도 나는 노련하게 쓰여진 책을 소개할 것이다. 나는 미스프레이스드맨에서 좀 벗어나야 할 것 같으니까 말이다.

 

 

 

 

 

 

 

 

마음을 품은 집

- 그 집이 내게 들려준 희로애락 건축 이야기

    

1.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안녕하세요?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서해문집이 만들고, 구본준 작가가 쓴 <마음을 품은 집>이라는 책입니다. 제목에는 ‘집’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 오늘 소개해드릴 <마음을 품은 집>입니다. 오늘은 제가 먼저 진행자분께 질문을 드리면서 시작해보고 싶은데요, 혹시 서울 어린이대공원이 원래 어떤 곳이었는지 아시나요? (대답) 네, 저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서울 어린이대공원 터는 원래 골프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조선 왕실의 묘였는데, 정확히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의 부인인 순명황후의 능이 있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황후의 능이 어처구니 없게도 일제 강점기 때 경성 골프장으로 바뀌었고, 해방 이후 이름이 서울컨트리클럽으로 바뀌고 한국에서 가장 좋은 골프장으로 인기가 대단했다고 해요. 서울 시내에 있으니까 가까웠으니 당연한 일이겠죠.

 

2. 그런데, 골프장이 어째서 어린이공원으로 바뀌게 된 걸까요?

 

정확한 문서는 없지만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의 한마디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종종 워커힐 호텔에 가서 쉬곤 했는데, 청와대에서 워커힐로 가기 위해서는 이 골프장을 지나야 했는데 1970년 12월에 이 골프장을 보고 크게 화가 났다고 해요. 조국 재건에 바쁜 이때에 평일 대낮에 한가하게 골프를 치는 작자들은 누구냐고 호통을 치면서 당장 골프장을 없애고 어린이들을 위한 공원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고, 지시한지 2년만에 골프장이 이전되고, 서울시가 100일 작전 끝에 만든 공원이 바로 어린이대공원이었던 거죠.

 

3. 놀라운 이야기네요.

 

그렇죠? 이 책은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구본준 작가가 서울을 비롯해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감응한 건축물을 둘러싼 재밌는 이야기들을 정말 많이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건축물 하나가 만들어지게 된 뒷 이야기, 만들어지는 과정, 만들고 난 후 일어났던 일들, 그 과정에서 있었던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정리하고 있는데요, 이 책의 부제가 ‘그 집이 내게 들려준 희로애락 건축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이 책을 크게 4부로 각각 희, 로, 애, 락으로 제목을 붙이고 각 건축물에 담겨진 기쁨의 이야기, 분노의 이야기, 슬픔의 이야기, 즐거움의 이야기를 풀어 냅니다. 건축이라고 하면 설계도면이나 엔지니어링을 생각하기 쉬울텐데요, 이 책은 그런 이야기는 거의 없습니다. 대신 건축물 하나 하나에 담긴 인간의 드라마를 소개하는데 구본준 작가는 집중하는데요, 여기에는 저자가 건축물을 바라보는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책의 한 부분을 짧게 읽어드리겠습니다.

 

처음에는 디자인이 멋지고 근사한 건축이 좋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집에 담긴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건축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들은 인생 그 자체였다. 너무나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었고, 슬프기 짝이 없는 사연도 있었다. 오욕칠정이 스며든 건축은 희로애락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극장과도 같았다. (중략) 건축은 미술도 디자인도 아닌 인간의 모든 것을 담는 그릇이다. 우리 마음이, 우리 과거가, 우리 꿈이 건축을 통해 만들어지고 남겨지고 이어진다. 건축과 친해지면서 나는 집을 통해 인생과 역사, 문화와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4. 건축물은 인간의 모든 것을 담는 그릇으로 보는 저자의 시선이 이 책을 희로애락으로 구성하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린이대공원의 경우는 희로애락 중 어디에 포함되어 있을까요?

 

네, 사실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은 어린이대공원은 아니고, 어린이대공원 관리사무소 건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어린이대공원 관리사무소 건물은 40년이나 된 데다 근무직원수에 비해 너무 규모가 커서 서울시에서 헐고 새 사무실 건물을 지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규모가 컸던 이유는 어린이대공원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 부지에 있던 골프자의 클럽하우스였기 때문인데요, 골프장이 사라지면서 관리사무소가 된 겁니다. 그런데 이걸 헐어버릴 계획을 갖고 있던 당시 서울시 최광빈 국장이 건물의 도면을 보고 이상한 점이 있어 조성룡 건축가에게 전화를 해서 한번 도면을 봐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조성룡 건축가가 도면을 보고 깜짝 놀란거에요. 1970년대까지 한국 건축가를 대표했던 고 나상진의 작품이었고, 너무 훌륭했던 거죠. 그런데, 관리사무소로 오래동안 쓰면서 건물 내부를 이곳 저곳에 외피를 덧붙여서 진가가 숨겨져 있어서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소식을 듣고 서울시도 신축 계획을 폐기하는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되고 건물의 원형을 되살려 복원하게 된 거죠. 조성룡 건축가는 40년 동안 이 건물에 붙어있던 온갖 외피들을 다 걷어내고, 큰 공간 안에 작은 공간을 만드는 등 다양한 접근으로 완벽하게 복원해 냅니다. 그래서 2011년 5월에 다시 이 건물은 ‘꿈마루’라는 이름으로 어린이 대공원의 랜드마크로 다시 부활하게 된거죠.

그래서 이 건물은 ‘희’, 그러니까 기쁨의 이야기가 있는 건축물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뻔 했는데, 사소한 것을 놓치지 않은 공무원의 눈썰미가, 자료를 뒤져 가치를 찾아낸 건축가가의 관심이, 발견된 가치를 소중히 받아들인 한 공무원의 고민이, 또 건물을 살리는 건축가의 열정이 합해져서 아이들에게 꿈의 마루를 선사한 것이니까요. 기쁨의 건축물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거죠. 특히 저는 이 과정을 진두지휘한 서울시 최광빈 국장의 안목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5. 재미있는 사연을 듣고 나니 어린이대공원에 가면 꼭 한번 ‘꿈마루’라는 건물을 찾아서 직접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부수고 새로 만드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풍조 속에서는 다시살려낸 것도 가치가 있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혹시 재건축을 하게 되는 아파트 앞에 붙은 “경축 안전 진단 통과, 재건축 승인”이라는 현수막을 혹시 본 적이 있으세요? (대답) 그럼 여기 적힌 ‘안전 진단 통과’라는 말의 의미를 아시나요? (대답 : 안전 진단을 했는데 안전하다는 뜻이 아닌가요?) 만약 안전하다면 재건축 승인을 못 받겠죠? 안전 진단을 받았는데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 받았다는 것이 바로 안전진단통과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사실 안전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 경축한다는 뜻으로 읽히면 의미가 이상하게 되어 버리죠. 부수고 다시 짓기 보다 되도록 고쳐서 다시 사는 것이 ‘문화적’으로는 훨씬 더 가치있는 일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사실 ‘안전 진단 통과’와 관련해 제가 드린 말씀은 제 이야기는 아니구요,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정기용 건축가가 하는 말입니다. 정기용 건축가는 예전에 어느 방송국에서 주도했던 ‘기적의 도서관’을 만드는 과정에서 건축가로 참여한 분이죠. 이제 고인이 되셨지만 한국의 대표 건축가라 할 만한 분인데요, 누구보다 실험적이고, 폭넓은 지지를 받은 분이었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도서관의 형태는 ‘기적의 도서관’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기용 건축가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원래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중간고사, 기말고사 공부하러 다니는 곳이었어요. 그리고 주로 사서나 도서관 직원들이 열람객들을 관리 감독하기 좋은 식으로 책을 읽는 공간이 배치가 되어 있었던 거죠. 그런데 정기용 건축가는 기적의 도서관 작업에서 열람실에 마루를 깔고 온돌을 설치해서 아이들이 누워서, 구석에 틀어박혀서, 숨기 좋은 공간을 만들어 마음껏 책을 읽도록 공간을 완전히 새롭게 배치를 합니다. 지금 우리 주변의 도서관들의 형태는 기적의 도서관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거죠.

 

6. 기적의 도서관 운동이 2002년에 있었으니 이제 15년이 된거네요.

 

그렇습니다. 구본준 작가도 정기용 건축가를 많이 존경했던 것 같아요. 아까 재건축에 대한 말씀을 드리다 말았습니다만, 정기용 작가는 대통령 사저를 설계할 정도로 유명했음에도 많은 돈을 벌기는커녕 자기 집 한 채 없이 살았다고 해요. 정기용 건축가가 시간을 쏟아 부은 작업은 대부분 예산은 적고 품은 많이 드는 작고 소박한 지역 공동체의 공공건축물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요, 정기용 건축가가 2011년에 세상을 떠나는데요, 오늘 소개해드리는 이 책의 저자인 구본준 작가도 사실 이미 고인이 되었습니다. 2014년 이탈리아 출장 중에 급작스러운 심정지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이 책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발간한 마지막 책인데요, 구본준 작가는 사실 건축학 전공자가 아닙니다. 신문사 문화부 기자였는데요, 건축에 대한 개인적 관심에서 출발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건축 공부를 하며 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무엇보다 오늘 책으로 구본준 기자를 소개해드리지만 구본준 작가는 우리 주택 문화의 변화에도 큰 기여를 한 분이기도 합니다. 땅콩집을 국내에 처음 만들고, 땅콩집이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이 바로 구본준 기자입니다. 정기용 건축가가 우리에게 새로운 도서관을 남겨주고 떠났다면 구본준 작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주택을 남겨주고 떠난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7. 정말 그렇네요. 책을 잠깐 보니까 이 책이 모두 12개의 건축물을 소개하는데 그 면면이 정말 다양하네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인도의 타지마할, 우리 지역의 도동서원도 있구요.

 

네, 각 건물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건축물 하나 하나가 마치 인격을 가진 존재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서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는 이진아 기념도서관은 스물 세 살에 교통사고로 죽은 이진아 양을 기념하기 위해 진아씨 아버지 이상철씨가 기부를 해서 건립한 것이라고 해요. 그래서 이진아 기념도서관 주변에 가면 둥글레꽃이 많다고 합니다. 6월에 피는 꽃인데 건축가가 이진아씨가 6월에 기일이 있어 심었다고 합니다. 달성의 도동서원은 동서남북 배치의 방향이 일반서원과 정반대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강의실은 남쪽이 아니라 북쪽을 바라보고, 동재는 서쪽에, 서재는 서쪽이 아니라 동쪽에 있습니다. 이 서원 자체가 남향이 아니라 북향인데요, 이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이 서원이 모시는 김굉필이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자세로 인해 결국 죽음에 까지 이르렀는데요, 이 서원의 배치도 김굉필이 평생 자신의 소신과 성리학의 도를 따랐듯이 도동서원의 배치도 그런 김굉필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물 하나 하나를 인격으로 대하게 된다는 말씀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8. 끝으로 이 책을 독자들에게 추천해주시는 이유를 정리해주시죠.

 

일단 책이 재밌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저는 이 책의 미덕은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축물 하나 하나를 대하는 태도가 따뜻합니다. 그래서 집을 깊이를 가진 것으로 바라봅니다. 사실 인간이 공간을 만들지만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공간에 있느냐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하는 면이 분명히 있거든요.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지금 이 공간이 나의 삶과 생각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시면서 읽으시면 새로운 시각을 얻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에는 없는 내용입니다만, 혹시 진행자님께서는 대구의 계산성당이 원래 이름이 뭐였는지 아시나요?(대답) 성모성당입니다. 그러다가 천주교가 천주를 모시지 않고 성모를 모신다는 오해를 받고 이름을 계산성당으로 바꾼 거라고 해요. 이처럼 대구의 건축물들에도 온갖 사연과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우리 주변의 건축물, 대구의 건축물에 대해서도 이런 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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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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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 

이번 명절에 작은 소동이 있었다. 사촌동생에게 했던 조언이랍시고 했던 말을 삼촌, 사촌동생의 아버지가 기뻐하지 않으셨다. 삼촌은 내게 "네가 무슨 권리로" 그런 조언을 하는지 물었다. 물론 내게는 아무 권리가 없다. 사실 나는 조언을 해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만 느끼고 있었을 뿐이다. 동생이 중학생일 때부터 가까이 지내왔던 동생은 이제 군 복무도 마친 성인이 되었는데, 내 시선은 어디까지나 '15살' 소년을 향하고 있었다. 동생을 향한 관심은 사실 삼촌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삼촌은 내게 다른 삼촌과 다른 분이었다. 삼촌은 내게 명절 때만 아니라 언제나 만나면 다른 삼촌들보다 몇 만원을 더 쥐어주셨다. 그건 단지 돈 몇 만원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부도로 인해 우리 집 만큼이나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은 삼촌이 내게 '보호자'라는 것을 보증해주는 것이었다. 동생과 어린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밤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두분이 죽은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곤 했다. 그 때마다 우리는 '삼촌의 존재'에 기대어 안심하기도 했다.

명절을 지나면서 나는 '삼촌 없는 조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삼촌도 자녀들이 자라 성장했고, 이제 삼촌에게도 의지할 대상은 내가 아니라 삼촌의 자녀들이고, 나도 삼촌보다는 내 부모를 섬겨야 한다. 삼촌과 나는 정말 서로를 사랑했고, 삼촌은 내 유년기의 나의 세계를 호의적으로 만들어준 거의 유일한 존재였다. 너무 깊이 사랑했기 때문에 삼촌과 나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에서 너무 깊이 사랑하는 것은 '규칙 위반'이라고 김연수는 썼다. 이 단편소설집에서도 깊이 사랑하는 것은 눈을 멀게 하고, 사는 곳을 떠나게 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너무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서로의 자존심이 자라는 마음 속 비밀의 장소'에는 결코 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사촌동생의 비밀 장소로 가려고 했고, 삼촌의 비밀 장소를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었다. 그것이 나의 죄다. 그리고 삼촌은 갑자기 내게서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그건 여자 없는 남자들이 아니고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근사한 서풍을 잃는 것. 열네 살을 영원히 빼앗겨 버리는 것. 저 멀리 선원들의 쓸쓸하고도 서글픈 노랫소리를 듣는 것.."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무 깊이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1.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만들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단편소설집입니다. 이 책은 마치 어떤 가수의 앨범처럼 한 권의 책에 7개의 소설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루키는 CD나 MP3파일보다는 카셋트테이프나 LP 판으로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이 책도 곡 순서를 마음대로 할 수 없는 LP 판처럼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보시다면 좋으시리라 생각합니다.


2.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국내에도 많이 번역되어 있고 우리 청취자들도 많이 아는 작가일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작가를 처음 소개받는 분들을 위해 한번 소개해주시지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대단히 유명한 작가라서 사실 소개하기가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가 유명한 만큼이나 하루키에 대해서 우리가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하는 쪽입니다. 사실 유명세가 있는 작가들의 이름을 안다는 것과 작가들의 생각을 안다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니까요. 저도 하루키에 대해서 잘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하루키의 어떤 한 부분만 받아들여지고 소비되고 있다고 저는 느낍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인 <노르웨이의 숲>, 우리에게는 <상실의 시대>로 알려진 이 작품은 하루키의 문학 세계 전반에서 보자면 ‘범작’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사실 하루키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태엽 감는 새>나 <언더그라운드> 같은 경우는 국내에서 잘 읽히지 않았고, 하루키 작품 중에서도 그다지 많이 팔렸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하루키는 어릴 적 아버지와 관계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고 해요. 일찍 결혼한 이유도 그 때문인데요, 유년기에 부모의 사랑이나 관심을 적게 받으면 누구나 “내가 왜 존재하는가”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존재의 이유를 끊임 없이 묻게 되는 것인데, <태엽 감는 새> 같은 작품이 하루키의 이런 문제의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비롯해서, 일본 문학계와도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하루키는 90년대 초반만 해도 B급 정서라 할까요, 주류에서 벗어나 있다는 느낌에서 작품을 했는데요, 그래서 늘 지하 세계에 대한 관심이 컸던 작가입니다. 그런데 95년 1월에 일본 고베에서 대지진이 있었고,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3월에 옴진리교 독가스 테러 사건이 있었지요? 하루키가 보기에는 소설에서나 있을법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이 때부터 현실문제에 좀 더 천착하기 시작합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인터뷰를 통해서 쓴 작품이 바로 지하를 의미하는 <언더그라운드>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여자 없는 남자들>은 <태엽 감는 새>나 <언더그라운드>처럼 작가가 힘을 많이 주고 쓴 작품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힘을 빼고 쓴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래도 하루키 작품의 특성들이 잘 나타나는 소설집입니다. 아버지와의 불화로 끊임 없이 존재의 이유를 묻고, 지하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바로 하루키라는 것을 알고 읽으신다면 그런 점을 찾아가는 재미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3.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한데요, 제목처럼 ‘여자 없는 남자들’이 등장하나요?


 7편의 단편에서 모두 ‘여자 없는 남자들’이 등장합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는 남자의 아내가 암으로 죽습니다. ‘예스터데이’에서 남자의 여자친구는 다른 선배와 잡니다. ‘독립기관’의 주인공인 의사 도카이를 사랑에 빠지게 한 유부녀였던 그녀는 도카이도, 남편도 아닌 다른 어떤 남자와 도망을 칩니다. ‘세에라자드’에서 이름도 모르는 여자는 언제 떠날지 모릅니다. ‘기노’에서 남자의 아내는 불륜을 저지르고 남자는 그것을 목격한 후 카페에 숨어듭니다. 모든 이야기에서 남자의 ‘여자’는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지고, 다른 곳으로 떠나버립니다. 그리고 ‘여자’가 사라져버리고 남은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책의 모티프인데요, 사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하루키가 즐겨 사용하는 이야기가 여러 방식으로 변형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연수 작가가 어느 글에서 정리한 것인데요,


 1) 여자에게는 병이 있다. 2) 남자는 (성관계보다도) 그녀와 친밀한 시간을 공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3) 그런 그녀가 남자와 잠을 잔다. 4) 그 직후 그녀는 사라진다. 5) 남자는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이런 식인데요, <노르웨이의 숲>, 그러니까 상실의 시대를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와타나베와의 잠자리 후에 나오코가 갑자기 사라집니다. 이 책의 이야기도 이런 이야기 구조가 반복되어서 나옵니다.


4. 이 책의 한 작품에서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되는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은데요, 권영민씨께서 재미있게 읽으신 작품을 이야기해주세요.


 스포일러가 될까봐 조심스럽긴 한데요, 사실 줄거리를 듣는 것과 책을 직접 읽어보는 것은 전혀 다르니까 말씀드려도 상관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드라이브 마이 카>를 빠져들 듯이 단숨에 읽었는데요, 이 소설에서 가후쿠는 40대 후반 정도되는 배우입니다. 가후쿠는 눈에 녹내장이 오기 시작해서 운전을 하기 어려워 지게 되자 자신의 자동차, 사브 컨버터블을 정비해주는 카센터 주인으로부터 운전기사 하나를 소개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 운전기사가 20대 초반의 여자운전사에요. 평소에 가후쿠는 여자들의 운전이 ‘지나치다 싶을만큼 난폭하거나 지나치다 싶을만큼 신중하거나’ 해서 신뢰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카센터 주인이 강하게 추천했고, 실제로도 수동 기어가 장착된 자동차를 변속한다는 느낌이 거의 없을 정도로 해내는 것을 보고 결국 기사로 고용하게 됩니다. 

 소설은 거의 말이 없는 여자 기사인 미사키에게 가후쿠가 자신의 죽은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진행이 됩니다. 가후쿠의 아내는 가후쿠와 마찬가지로 배우였는데요, 가후쿠와도 ‘파트너로서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고’, ‘시간이 나면 다양한 문제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열성적으로’ 나누었을만큼 사이도 좋았다고 해요. 그런데, 아내가 이따금 다른 남자와 잠을 잔거죠. 


5. 서로 사이가 좋았는데, 왜 그랬던 것일까요?


 아내의 잠자리 상대는 주로 함께 영화를 찍는 남자배우였는데, 가후쿠는 왜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함께 했는지, 왜 자야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 물어보기도 전에 아내가 암 투병을 하기 시작하게 된거죠. 아내에게 물을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아내는 “어느 것 하나 설명해 주지 않은 채 가후쿠가 사는 세계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가후쿠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자고 있다는 것을 아는데도 모르는 척하고 연기를 합니다. 가후쿠는 배우였으니까요. 가후쿠는 아내의 마지막 잠자리 상대였던 남자에게 찾아가서 그와 일부러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아내가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그 남자와 잤는지 알아보고 싶었던 거죠. 자신에게 없는 무엇이 그 남자에게 있었길래 아내는 그 남자와 잤던 것일까? 하지만 가후쿠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합니다. 그 남자는 대단한 연기자라 할 수도 없고, 깊이도 없는 그냥 예쁜 남자였던 거죠. 도무지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미사키도, 아내의 잠자리 상대였던 그 남자도 가후쿠에게 말합니다.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별거” 안나온다고, “아무리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이죠. 

 저는 소설을 읽으면서 노란색 사브 컨버터블 자동차가 가후쿠의 아내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봤습니다. 한 때 이 자동차는 가후쿠가 운전했지만, 지금은 자신이 무시했던 여자 운전수인 미사키가 운전하고 있죠. 이 작품의 마지막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가후쿠는 가죽시트 깊숙이 몸을 묻고, 눈을 감고서 신경을 한 곳에 집중해 그녀가 기어를 변속하는 순간을 감지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역시 불가능했다. 모든 게 너무도 매끄럽고 비밀스러웠다. 귀에 와 닿는 엔진 회전음이 아주 조금 달라질 뿐이다. 오가는 벌레의 날갯짓처럼. 가까이 다가오고, 그리고 멀어진다.”


6. 자동차의 기어 변속 순간 조차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든데,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더 어려운 것이겠지요.


 그래도 이 차의 가죽시트에 깊숙이 몸을 묻고 잘 수 있는 사람은 가후쿠 뿐입니다. 운전하는 미사키가 아니죠. 소설을 읽어보면 가후쿠의 아내가 가후쿠를 깊이 사랑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도 이유는 알 수 없는거죠. 

 이 소설은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소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이해할 수 없지만 묻지 않고, 묻고 싶어도 참고, 모른 척 하고 연기하면서 살아가는 엇갈림이라할까요, 그런 불일치가 사랑의 본질은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해봤습니다. 하루키 소설에서 여자가 다른 남자와 잠을 자면 갑자기 사라진다고 말씀드렸죠? 하지만 여자만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남자도 사라집니다. 가후쿠의 경우는 눈이 멀고 있고, ‘예스터데이’에서는 여자가 자신을 떠나자 주인공은 미국으로 떠납니다. ‘독립기관’에서 의사 도카이도 여자가 다른 남자와 도망가자 곡기를 끊고 굶어 죽어버리죠. 하루키는 책 어딘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러고는 그녀가 어딘가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잃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7. 방금 정리해주신 ‘드라이브 마이 카’라는 소설에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하루키를 찾아 볼 수 있을까요?

 

 아, 물론입니다. 하루키가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단편을 보면 가후쿠는 아내 사이에 딸이 있었는데 일찍 죽고 자식이 없습니다. 만약 살아 있다면 운전기사인 미사키와 나이가 동갑이죠. 그런데 미사키의 경우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미사키 어머니의 말로는 미사키가 못생겨서 아버지가 버리고 떠났다고 해요. 자식에게는 아버지가 없고, 아버지에게는 자식이 없는 거죠. 이 단편에서 가후쿠는 아내가 왜 그 남자와 자야만 했는지 끈질기게 묻고 있는데, 그것은 가후쿠 자신이 아내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하는 아내에게 있어 자신의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루키의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도 있는 대목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8. 하루키 소설은 많이 소개된 편이라 사실 무엇부터 읽으면 좋을지 판단하기 어려웠는데, 이 책으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가수 윤종신이 한 달에 한 번 월간 윤종신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곡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2014년 8월 28일에 국내에 출간되었는데요, 같은 날짜에 윤종신이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같은 제목의 곡을 발표했습니다. 윤종신이 이 책에서 영감을 얻은 곡이라고 합니다.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을 보시면, 영화배우 정우성이 수화기를 들고 ‘여보세요’라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아마 이 책을 읽어보시면 정우성이 누구를 연기하고 있는 것인지, 왜 ‘여보세요’라고 하고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는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이 노래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생각하구요, 책과 노래를 한번 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의 제목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지만 저는 하루키 소설 속의 ‘여자’를 나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습니다. 하루키는 뭐든지 숫자로 세길 좋아하고 수치화하기를 좋아합니다. 존재감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특징이죠. 하루키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루키도 슬픔은 잴 수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슬픔을 간단하고 정확하게 계측할 수 있는 기계가 이 세상에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렇다면 수치로 산출해 남겨둘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기계가 손바닥에 들어올 정도의 크기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나는 타이어 공기압을 잴 때마다 그런 생각에 잠기고 만다”.


교통방송을 들으시면서, 타이어 공기압을 재시면서, 속도계를 보시면서, 엔진회전수를 살펴보시면서, 슬픔을 측량하고 계신 분들께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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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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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


나는 한 주에 한 번 교통방송에 나가 책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올리는 인터뷰 형식의 리뷰는 모두 그 방송에서 10~12분 정도 책을 소개한 내용의 전문이다. 교통방송을 집에서 듣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라디오가 결국 자동차용 매체가 되긴 했지만 교통방송은 특히나 운전을 많이 하는 분들이 즐겨 청취하는 채널이다. 그래서 작가는 항상 내게 보다 쉬운 책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한다. 소개도 쉬워야 한다. 나도 쉽게 써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내가 처음으로 방송에서 소개했던 책이 서경식 선생의 <내 서재 속 고전>이었는데 방송도 나가기 전에 청취자 수준에 비해 어려울 것 같다는 피드백이 돌아왔다. 책은 어렵지만 소개는 쉽게 해줬다는 평을 들었지만, 작가와 PD가 소개해 줬으면 하고 예를 든 책은 '라면을 끓이며'나 '미움 받을 용기' 같은 책이었다. 제목에서 이미 후크가 있는 베스트셀러라야 청취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책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항상 쉬운 글을 써달라고 나는 부탁을 받는다. 쉽게 쓰더라도 어려운 책이면 안된다.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라디오의 청취자들이 '투명사회' 정도 수준의 독서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제하는 것 같다. 지난 번에 소개한 '사랑하는 안드레아'나 '이노베이터의 탄생'도 어려운 책이라 청취자들이 관심을 갖기 어려울 것이라 단정해 버린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남들이 다 아는 유명한 책과 소개 없이도 읽을 수 있는 쉬운 책들을 별로 소개하고 싶지 않다. 


신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칼럼을 쓰면 항상 '지나치게 철학적이다'라는 평이 돌아온다. 돌려말했지만 어렵다는 것을 내가 철학전공자라는 것을 보고 철학하는 사람은 글을 어렵게 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어느 신문에 썼던 글에 대해서도 기자는 '쉽게 써달라'고 했다. 사실 내가 그 신문에 소재로 쓴 그 책은 내가 쓴 글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리고 책의 모든 글은 어느 신문사에 1년 이상 신문 한면 전체에 한 주에 한번씩 연재되었던 글이다. 


그러니까 글이 독자에게 어렵게 느껴질지 어떨지를 생각하지 않고 글을 쓰기 위해서도 어떤 자격이 필요하다. 글을 어렵게 쓰더라도 이미 독자층이 확보되어 있는 경우나 이미 직업적으로 어려운 말을 해도 좋다고 암묵적인 허락을 받은 경우, 그러니까 교수들이나 변호사들, 평론가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일부러 어렵게 쓰지 않는다. 내 위치에서 보이는 사실과 어려움을 글로 드러내기 위한 과정에서 최대한 쉽게 쓰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런 의도가 실패하거나 주제가 일반적이지 않아서 어렵게 읽혀지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공적 발언권을 얻지 못하고 좁은 나만의 공간에서 독백에 가까운 이야기와 글을 쓰며 살았다. 그리고 가끔씩 신문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게 허락한 최소한의 발언권을 얻기 위해 신문사나 언론의 요구에 맞춰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쉽게 쓰라'는 요구는 내가 내 목소리를 내기 위해 얻고자 했던 발언권의 의미를 훼손시킨다. 신문에 글을 쓰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그 때문에 정작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못쓰게 된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읽고 싶은 책을 소개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쓰면 다시 나는 독백의 방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청취자와 독자에게 나는 소통불가능한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고, 사실상의 독백에 불과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나 역시도 어려운 글을 쓸 권리가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을 구분하며 책을 읽어왔고, 어려운 글을 마음을 쓰고 시간을 내어 읽어주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어쩌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쉽게 쓰고 싶다. 아직 내게  2000자로 생각을 담아 낼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변명을 할 뿐이다. 쉬운 글은 아니지만 쉽게 쓰려고 노력했기에 쉽게 쓰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것만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투명사회



1.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네, 이번 주에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문학과 지성사에서 만들고, 한병철이 쓴 <투명사회>라는 책입니다. 제 전공이 철학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대한 철학적 진단이 담겨 있는 책입니다. 한병철 선생님은 <피로사회>, <시간의 향기>라는 책에서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날카롭게 진단하기도 하셨는데요, 특히 <피로사회>의 경우는 인문학 분야에서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인기를 얻은 책입니다. 현재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있고요, 오늘 소개할 <투명사회>도 독일어를 쓰여진 것을 서울대 김태환 교수가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도 좋아 잘 읽힙니다. 


2. 잘 읽힌다고는 하셨지만, 사실 철학이라고 하면 어렵게 느껴지거든요. 철학적 진단을 담고 있는 책이라니 일반 독자들에게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데요.


 철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글이 어렵다는 말을 돌려 말할 때 ‘글이 너무 철학적이다’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사실 저도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쓰면 그런 평을 받기도 하는데요, 오늘은 책에 대해서 말씀 드리기 전에 ‘철학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려보고 싶습니다.

 사실 제가 알려 드리는 방법이 철학책 읽기를 쉽게 해주지는 않을 거에요. 그래도 철학책을 읽는 것이 대단히 재밌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도움이 되실 겁니다. 철학책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철학자들이 개념을 아무 설명 없이 그냥 사용하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사실 철학자들은 글을 쓸 때 항상 어떤 상황이나 현상을 염두에 두고 씁니다.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이 나온다면 이 사람이 어떤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시면 글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이 책 <투명사회>도 언뜻 보면 추상적인 내용처럼 보이지만 요즘 자동차마다 설치된 ‘블랙박스’를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전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블랙박스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철학자의 글이 정말 맞는 말인지 따지고 물어가면서 읽어보면, 철학책만큼 재밌는 책이 또 없거든요. 이 책의 내용이 어떤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인지 생각하면서 읽으면 어려운 철학책이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요. 그리고 사실 <투명사회>는 본격적인 철학책이기 보다는 철학에세이라 보시는 편이 맞습니다. 

 예전에 제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는 책을 소개해드렸던 적이 있죠? 그 책도 소설 읽듯이 읽으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만, 실제로 우리가 책을 읽는 방식과 책의 내용을 비교하면서 읽는다면 재미있는 독서가 되는 거죠.


3. 말씀을 들어보니 소설이나 시 읽기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경험을 비춰보게 되잖아요? 


 네, 그렇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공감이 되는 때는 소설 속 내용이 우리 삶의 경험과 일치한다고 느낄 때이니까요. 지어낸 이야기인 소설이 진실이 되는 것이 바로 그럴 때죠. 그런데 문학은 이야기가 있다보니 몰입이 쉬운 편인데 철학책은 그렇지 않다보니 읽기가 상대적으로 어렵게 느껴지는 거지요. 

 오늘 소개해드릴 <투명사회>라는 책도 우리가 매일 만나는 현실의 경험에 비춰서 읽어나가면 정말 재미있는 책입니다. 금방 블랙박스 말씀을 드렸는데요, 블랙박스 제품 중에 ‘다본다’라는 것이 있거든요. 아시나요? 그런데 벤담이 생각한 원형감옥의 이름이 판옵티콘인데요, 판옵티콘에서 pan이 ‘전부’라는 뜻이고, optic이 ‘본다’는 뜻입니다. 원형감옥은 한 사람이 중앙에서 죄수 전부를 감시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는데요, 블랙박스 ‘다본다’는 우리 사회가 일종의 감시 체계인 원형감옥 판옵티콘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거죠. 


4. 아, 그러니까 투명사회를 ‘원형감옥’과 같은 사회로 생각하면서 서로 서로를 감시하는 사회라고 생각하는 것이군요. 그런데 블랙박스만 하더라도 저자의 말처럼 꼭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가 있을까요? 블랙박스 덕분에 생긴 장점도 많은데요.


 네, 우리 경험에 비춰보면 꼭 블랙박스의 장점이 있어서 좋은 점이 참 많지요. 블랙박스 덕분에 교통사고가 났을 때 과실을 더 정확히 따질 수 있게 되어서 억울한 일이 줄어들고, 범죄 예방이나 범인 검거도 더 용이하게 된 것은 분명히 좋은 점이라 할 수 있을 거에요. 그런데 한병철 선생님은 그것을 “좋게만”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즉 투명한 사회가 항상 좋기만 한 것인지, 정말 개인과 사회에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건데요, 이 책에는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이유가 무수하게 나오고 있어요. 


 한 예로 ‘투명한 정치를 만들자’라는 구호는 언뜻 보면 바람직한 요구지만, 정보를 즉각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만은 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정치인들이 장기적 계획을 세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지게 됩니다. 즉흥적이 되는 거죠. 투명해져야 한다는 것은 ‘정직해져야 한다’는 말이기도 한데요, ‘정직’은 신뢰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덕목이지만, 정치적 통치술이기도 해요. 주인이 노예와 같이 일하지 않는 한 노예에게 정직해야 한다고,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쳐야 ‘관리와 통제’가 가능하니까요. 영화 <노예 12년>을 보면 흑인노예를 일요일 아침에 불러 모아놓고 백인 주인이 정직해야 한다고 설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투명해야 한다는 요구도 맥락에 따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하고 있는 겁니다.


5. 조금 이해가 되는데요, 긍정적으로 보이는 것도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런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겠네요.


 방금 말씀하신 그런 면 때문에 한병철 선생은 ‘부정성’의 철학자라고 불립니다. 부정성이라는 말도 말은 어려운데 의미는 단순합니다. 우리가 소위 부정적이라 여기는 것들의 가치를 생각해보자는 말인데요, 우리는 나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 나의 의지와 통제에 따르지 않는 것, 나에게 거역하는 것, 내가 원하지 않는 것,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 혐오스러운 것, 이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여기는데요, 금방 말씀드렸던 것처럼 부정적인 것이 꼭 나쁜 것만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투명하지 않는 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겁니다. 사실 ‘자유롭다’는 기분이 언제 가장 크게 생겨나는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나 외에는 아무도 없는 집, 비밀스러운 시간, 나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고 나를 아는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곳, 그러니까 내가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은 자유롭다고 느끼고, 새로운 생각과 꿈을 꾸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페이스북에는 이런 부정성이 없죠? 오직 마음에 드는 글에 반응할 수 있는  ‘좋아요’ 버튼만 있고, ‘싫어요’ 버튼은 없습니다.


6. 정말 그런 면이 있네요. 우리 사회는 그런 부정적인 것들이 없는 상황을 오히려 자유로 느끼는 때가 많지만, 모든 것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것도 자유롭지 않을 것 같아요.


 역사와 문명이 진보하는 과정이라는 것이 나의 의지대로 되지 않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을 축소시키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스마트폰은 궁금한 것을 더 이상 참지 않아도 되도록, 필요한 정보를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도록 해서 불편을 엄청나게 줄여줬다고 할 수 있을텐데요, 다른 한편 우리는 스마트폰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나요? 끊임 없이 SNS에 접속을 하고, 강박적으로 검색을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게 된거죠. 그런데요, 이것이 단지 중독을 초래한다는 것은 정말 사소한 문제에 불과합니다. 한병철은 우리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사적인 사진과 글을 마치 노출증 환자처럼 끊임 없이 올리고 자신의 정보를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공개하는 것이 모두 자본주의 기업들의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페이스북을 보면요, 거기 자신의 이름이나 얼굴만 올리는 것이 아니에요. 출신학교, 좋아하는 책, 연예인, 영화, 온갖 취향까지도 공개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좋은 마케팅 재료인거죠. 

 

 검색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구글이나 네이버 등 검색 사이트에서는 개개인들이 무엇을, 어디서, 언제 검색했는지 모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게 범인들 검거에는 확실히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사실은 기업과 국가가 마음만 먹으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관리하고 지켜볼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 책은 <투명사회>는 사회는 사실상 통제 사회와 다를 바 없다고 진단하는 겁니다.


7. 애플이 아이폰 사용자의 위치를 추적해서 기록해서 몇 년 전에 문제가 되었던 적도 있었죠? 인터넷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하면서 무심코 하게 되는 ‘정보제공동의’에 그런 의미가 있었던 거네요.


 카카오톡의 경우도 그렇죠? 카카오톡에서 오고 간 이야기가 모두 저장되어 있어서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기업에 정보를 요구했던 적이 있다고 하는데요, 이 책에 따르면 바로 감시 사회가 디지털에서 완성되었다고 보는 겁니다. 이 책에 따르면 투명사회는 감시사회, 통제사회인데요, 결국 이것은 인간 관계의 타락으로까지 이어진다고 합니다. 


8. 관계가 투명하면, 관계면에서는 더 좋을 것 같은데 그건 왜 그런 걸까요?


 아까 한병철 선생을 ‘부정성의 철학자’라고 소개해드렸는데요, 이 책에서는 ‘오직 투명한 것은 기계 뿐’이라고 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본래 불투명하고, 그래서 그 불투명함 때문에 ‘신뢰’라는 것이 중요해지고 깊은 인간 관계도 생겨난다는 거죠. 투명하기만 하면 다른 사람을 신뢰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모든 것이 투명할 때 ‘믿음’이라는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 되는거죠. 상대가 다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다 드러나지 않는 그런 비밀스럽고 은밀한 부분에 대해서까지도 믿는다는 것이 믿음의 가치이지, 투명하게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것을 믿는다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인 거니까요. 깊은 인간 관계라는 것이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면, 더 이상 누군가를 믿을 필요 조차 없이 투명한 사회에서는 인간관계가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이 책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기계는 우리를 속이지 않지만 기계와의 관계가 깊은 관계일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죠.


 이런 가정을 한번 해볼까요? 만약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내게 말했다거나, 친구가 가장 숨기고 싶은 과거를 내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고 가정을 한번 해봐요. 이 경우 두 사람 간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가장 친밀한 사이에서 가장 은밀한 이야기를 했으니 관계가 더 깊어질까요? 아마 이런 경험을 해보신 분은 공감하실텐데요, 이런 경우 서로의 비밀이 서로에게 알려지는 순간 그 관계는 얼마가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그 비밀을 말해 준 친구가 그 사실을 숨기고 싶었을 때 내가 그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불편하게 느낄 것이 분명하거든요. 비밀은 비밀로 남아 있는 것이 관계를 오래동안 유지하기는 훨씬 좋지요. 


9. 아 그런 면이 있겠군요. 우리 청취자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 정리해주시죠.


  이 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좋은 것이라 인식하는 것들의 다른 측면을 보도록 도와줍니다.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지배자의 통치술일 수 있고, 감시와 통제를 가능하게 한다는 거죠. 친밀함이라는 것도 무조건 긍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적인 삶이 무너진 자리에 사적 관계가 자리잡게 되니까요. 우리 사회의 지역주의 문화나 학벌 문화나 이런 것이 모두 법과 공공성 대신에 사적인 친밀함이 중시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일 수 있는거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도 우리에게 더 넓은 관계를 맺도록 도와주지만 우리가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과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으로 진짜 관계를 맺지 못하고, 편리한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우리를 오히려 가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이 책은 말합니다.


 이 책은 얇고 작은 책이지만 결코 쉬운 책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차마다 붙여진 블랙박스를 생각하면서, 인터넷과 SNS, 디지털 카메라를 생각하면서 읽어보신다면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독서 경험이 되실 겁니다.


 이 책에는 한계점도 적지 않습니다. 책의 전체 내용이 투명사회라는 현실에 대한 스케치에 치중되어 있어서 대안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또 책을 다 읽고 나면 출구가 없다고 느껴지는 점, 그리고 내용이 지나치다 할만큼 관념적인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즉 페이스북의 시대, 블랙박스의 시대의 어두운 측면을 직시하는 힘을 갖길 원하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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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안드레아 - 열여덟 살 사람 아들과 편지를 주고받다
룽잉타이.안드레아 지음, 강영희 옮김 / 양철북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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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안드레아

열여덟 살 사람-아들과 편지를 주고 받다



1.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양철북 출판사에서 만들고, 룽잉타이와 안드레아가 쓴 <사랑하는 안드레아>입니다. 룽잉타이는 엄마이고, 안드레아는 룽잉타이의 아들인데요 제목에서 눈치셨겠지만 이 책은 룽잉타이와 안드레아, 그러니까 엄마와 아들이 주고 받은 편지 서른 통을 엮어서 만든 책입니다. 일종의 서간 문학이지요. 


2. 엄마와 아들이 주고 받은 편지로 엮은 책이라니 독특한 기획이라 호기심이 생기는데요, 청취자분들을 위해서 이 책의 작가에 대해서 좀 더 소개해 주세요.


 네, 룽잉타이는 대만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중화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5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한 사람입니다. 타이베이 시 문화국 국장을 지내기도 했고, 독일, 스위스, 홍콩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교수이기도 합니다. 룽잉타이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요, 큰 아들이 안드레아, 작은 아들이 필립입니다. 이름이 중화권의 이름이 아니지요?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데요, 룽잉타이가 독일인 남편과 결혼을 해서 낳은 아들이라 두 아들 모두 소위 ‘혼혈아’들입니다. 따지고 보면 순혈은 없기 때문에 혼혈아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은 말이기는 한데, 룽잉타이의 아들들은 어머니는 대만사람, 아버지는 독일사람이니까 평범한 가정이라 하기는 어렵겠지요. 그런데요, 룽잉타이도 난민의 딸로 태어난 ‘실향민’이에요. 우리로 치자면 다문화가정이라 할 수 있지요. 이 책에서 안드레아는 독일의 고등학교라 할 수 있는 김나지움에서의 마지막 학년(2004년)을 보내고, 홍콩에 있는 대학에서 생활하고 있는 21살(2007년) 때까지 3년 동안 엄마와 편지를 주고 받습니다. 독일, 홍콩에서 지내는 안드레아와 타이완에서 지내는 엄마가 서로 공개편지를 주고 받은 거지요.


3. 아 그러니까, 개인적인 편지가 아니라 공개적인 편지였군요. 열 여덟 살의 아들과 엄마가  편지를 주고 받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인데, 공개적으로 썼다니 저로서는 놀랍네요. 한창 예민할 나이잖아요?


 네, 맞습니다. 안드레아도 평범한 열여덟 살이고 정말 예민하고 까칠한 성격이에요. 엄마 룽잉타이는 그런 열여덟 살 아들과 대화하기가 아주 힘들었다고 해요. 대만의 최고 지성인 룽잉타이도 아들은 어려웠던 거죠. 룽잉타이가 아들과 편지를 주고 받게 된 이유를 쓰고 있는 한 부분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방학 때 만나서도, 안드레아는 거의 모든 시간을 친구와 보내고 싶어했다. 나와 저녁 식탁에 마주 앉아서도 아이는 침묵만 지켰다. 눈은 휴대폰에 가 있었고 손가락은 문자를 보내느라 바빴다. 나는 그 애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과도, 그냥 아는 것과도 다르다. 사랑은 때로 좋아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할 때 핑계거리가 되곤 한다. 사랑이 있으면 제대로 된 소통은 없어도 되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아니, 나는 이 함정에 빠져들지 않으려 한다. 남자아이 안안을 잃어버린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성장한 안드레아를 알아갈 수는 있는다. 나는 이 사람을 알아야 한다. 나는 열여덟 살의 이 사람을 알아야 한다.


  룽잉타이는 안드레아가 어린 시절에 ‘안안’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고 해요.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사랑스러운 안안은 없어져 버린 거지요. 엄마 손을 잡고, 눈을 떼지 못하게 하고, 안기고, 같이 놀자고 졸라대던 아이는 더 이상 없고 안드레아만 남은 거에요. 안드레아는 엄마가 다가가면 물러가고, 엄마가 대화하자고 하면 “저는 더 이상 엄마의 사랑스러운 안안이 아니에요. 저는 저라고요”라고 대답합니다. 엄마 입장에서는 섭섭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룽잉타이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안안은 사라졌으니까 이제 열여덟살의 안드레아를 이해하기로 마음을 먹고, 아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된 칼럼을 신문에 연재하자고 제의를 합니다. 안드레아도 엄마가 쥐어준 마이크를 들고 자기 생각을 크게 한번 말해보자는 생각을 제의를 수락하게 되죠. 원고료도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됐구요, 그렇게 이 편지가 시작되게 됩니다.


4. 아들을 이해하려는 엄마와 엄마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이 되고 싶은 아들 사이에서 주고 받은 편지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맞습니다. 이 책에 부제가 있는데요, “열여덟 살 사람-아들과 편지를 주고 받다”입니다. 그냥 열여덟살 아들이라고 쓰지 않고, 열여덟 살 사람-아들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여기에는 아들이 그저 내 아들이기 전에 어떤 ‘사람’이라는 사실이 강조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부모에게 종속된 존재이기 이전에 독자성을 가진 독립적인 주체이고, 또 그래서 엄마에게는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열여덟 살 사람-아들’이라는 말이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편지를 읽어보면요, 두 사람의 편지를 읽는 것이 예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다정다감하다할까요, 달달하다고 할까요, 그런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편지와 편지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처럼 이어집니다. 가끔씩 안드레아가 엄마의 말에 동의를 하기도 하고, 고분고분하다가도 이내 대만 최고의 지성인 엄마를 공격하고 비꼬고 조롱합니다. 그런데 엄마도 그냥 져주지 않습니다. 화를 내고 따지고, 아들이 모르면 독자들이 불편하게 느낄 정도로 아들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이런 긴장 관계는 책의 첫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져서 마지막 편지에서는 이런 긴장이 해소되기는 커녕 오히려 그 긴장감이 더 고조되기도 합니다.


 한 예로요, 두 아들이 여름 학기 인턴을 상하이로 가기로 결정을 하니까, 엄마도 뛸뜻이 기뻐 연구여행을 상하이로 가기로 결정을 하게 되요. 가족들이 홍콩, 독일, 대만 등에 흩어져 지내다 보니 모처럼 모자 셋이서 한 달을 보내는 것에 대한 기대로 즐거운 상상에 빠진 거죠. 그리고 엄마가 직접 독일에서 자란 유럽 아이들에게 직접 중국을 알려줄 수 있어 신이 났다고 해요. 그런데 그런 엄마를 향해 안드레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겨우 저만의 독립적인 공간을 가지게 됐는데 왜 또 엄마랑 같이 지내야 하죠? 나중에 제가 일하러 가는 도시까지 따라올 생각은 아니죠? 엄마 손에 이끌려 중국을 이해하러 다니는 것만은 사양할게요. 엄마는 뭐든 다 알아서 척척 계획해 놓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요? 저 혼자 중국을 알아볼께요”.


5. 음.. 상당히 냉정하네요. 그게 유럽과 아시아의 가치관 차이일까요?


 엄마는 아들의 유럽식 가치관에 지치고, 아들은 엄마의 아시아식 가치관에 지친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 책 전체가 방금 말씀 드린 것 같은 엄마와 아들이라는 두 사람, 두 문화, 두 세대 간의 긴장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엄마와 아들은 흡연에 대한 생각도 다르구요, 취향도 다르고,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릅니다. 이를테면 아들은 흡연이 자신의 자유와 관련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엄마는 아들의 자유는 존중하고 싶지만 담배 필 때마다 아들을 때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안드레아는 룽잉타이가 좋아하는 ‘사운드오브뮤직’을 키취라고 거부하구요, 심지어 자신이 생각하는 키취 탑10에 ‘엄마의 사랑-모성애는 절대적인 키취’라고까지 씁니다. 


 안드레아는 엄마가 18살 아들을 이해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태도, 즉 자신이 가진 가치관을 설명하려는 태도에 대해서도 모조리 조소합니다. 안드레아가 개방적이고 개인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 이유를 유럽에서 1968년에 있었던 문화운동이었던 68혁명으로 엄마가 설명하면, 안드레아는 자신을 그런 식의 설명으로 재단하지 말라고,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자신은 훨씬 더 복잡하다고 딱 잘라서 말해버립니다. 


 저는 이 책을 보면서 어쩌면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부모는 자신의 기준과 경험으로 자식을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애쓰고, 자식은 부모가 자신을 신비와 복잡함을 가진 한 사람의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 애쓰고... 그런 점에서 안드레아와 룽잉타이 사이의 편지는 부모님과 나와의 관계, 또 나와 내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6.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쉬운 것 같으면서도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많은 경우는 작가의 말대로 사랑을 핑계삼아서 정말로 소통하지 않기 때문에 쉽다고 느끼는 것 같거든요.


 사랑하니까 이해해주겠지라고 생각해 버리는 경우가 정말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랑하니까 떨어져 있어도 되고, 사랑하니까 말하지 않아도 되고, 사랑하니까 상대에게 희생을 강요하기도 하는 것일 수 있으니까요. 제가 몇 해 전에 <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라는 책을 쓴 적이 있는데요, 그 책을 쓴 이유도 어쩌면 거기에 있습니다. 아이 엄마가 미국으로 떠나고 나서, 세 살 아들을 키우는데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몰랐던 거지요. 그냥 사랑하면 만사가 다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랑말고도 끊임 없이 대화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던 거죠. 저는 세 살 아이를 아빠로 혼자 이해해보려고 일기의 형식으로 글을 쓴 것이라면 <사랑하는 안드레아>에는 엄마 룽잉타이와 아들 안드레아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담겨져 있습니다. 저도 이 책을 보면서 제 아들이 저와 뽀뽀를 하지 않을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섭섭하기도 하고, 그 때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7. 책을 살펴보니, 그냥 일상적인 편지라고만은 여겨지지 않았어요. 작가가 유명한 지성인이기 때문인지 상당히 인문학적이라는 인상도 받게 되는데요.


 네, 맞습니다. <사랑하는 안드레아>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깊이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어쩌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는 주제는 책의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룽잉타이의 경력 답게 정치, 윤리, 문화, 예술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주는 책이기도 하기 때문인데요. 사회 문제에 적극 참여하는 엄마는 열여덟의 아들에게 “너희 세대의 도덕은 무엇인지” 묻습니다. 그러자 안드레아는 중국여성들이 비인도적인 작업환경에서 나이키를 생산하지만 자신은 나이키를 신을 거고, 맥도날드가 소고기 생산을 위해 남미의 원시림을 파괴하고 있어도 맥도날드에 안가지는 않을 거라고 하면서 자신을 100% 나쁜 놈이라고 해요. 윤리적인 딜레마에 빠진거죠. 그런 아들에게 룽잉타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는 성인이 아니야. 엄마는 엄마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야. 도덕의 취사선택은 개인의 일이야. 논리가 끼어들 필요가 없어”라고 하며 도덕적 순결주의에 빠져 자책하고 있는 아들을 구해냅니다. 그리고는 도덕적으로 불안을 느낀 아들을 격려하면서 거짓말하는 정부를 비판하고, 멍청한 정책 결정에는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또, 홍콩의 대학에 간 아들이 독일에 비해 문화 수준이 낮은 것을 두고 불평을 합니다. 거기에 엄마는 문화가 있기 위해서는 프랑스와 영국의 예술가들이 카페에 죽치고 앉아 있었던 것 같은 여유가 필요한데 홍콩처럼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에서 그것이 가능하냐고 묻습니다. 안드레아는 엄마의 편지 때문인지 수업을 빼고 홍콩에서 있었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에도 나가기도 합니다.


 문화나 정치, 예술 여러 분야에 대해 최고 지성을 지닌 엄마가 사랑하는 아들을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원포인트 레슨을 하는거죠. 그런 가르침을 이 책을 통해 공유할 수 있는 점도 이 책의 큰 장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8. 이제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요, 마지막으로 이 책을 우리 청취자들이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정리해주시죠.


 이 책에서 룽잉타이는 “부모는 말이야, 끊임 없이 자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기쁘면서도 슬프고, 달려가 안고 싶으면서도 불러세우지 못하는 그런 존재”라고 합니다. 안드레아는 3년간의 편지쓰기를 통해서 엄마와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엄마를 알아가야 한다는 ‘소임’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제가 여기서 책을 소개하지만 저는 세상에 꼭 읽어야 할 책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좀 다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자식이고, 또 누군가의 부모이거나 부모가 될 사람이기 때문이죠. 저는 육아책을 쓴 작가이고, 여러 곳에 글을 쓰기도 하고 강의도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 이전에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룽잉타이와 안드레아의 각 편지 뒤에는 두 작가가 받은 메일과 댓글, 또 두 사람의 채팅 대화 등이 수록되어 있어서 각 편지가 어떻게 쓰여졌는지, 또 어떤 반응이 있었는지 뒷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편지 형식의 글이 가진 장점일텐데요, 두 사람의 대화에 함께 할 수 있고, 또 다른 많은 독자들은 이 글에서 어떤 것을 느꼈는지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모자의 대화도 엿보시고, 책을 읽어보신 후 부모님께 혹은 자녀에게 편지를 한번 써보시는 것은 어떠실까요? 이 책을 통해 사랑한다는 핑계로 미뤄뒀던 속마음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편지에 담아 보시게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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