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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벌 -권영민


지난 1월 런던에서 돌아오는 길에 썼다. 실화에 기반했다고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 소설로, B-소설로라도 읽힐 수 있다면 좋겠다.



택시에서 내렸다. 짧은 포옹과 함께 간단한 인사를 주고 받았다. 

아참, 둘이서 사진도 찍었다. 엄마에게 잘 지내다가 들어간다는 보고를 해야 하니까. 그리곤 녀석은 여느 때처럼 뒤꿈치를 들고 걷는 그 특유의 걸음으로 성큼성큼 기숙사로 걸어갔다.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지난 해 5월에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이상할 정도로 서운한 감정이 든다. 그래도 택시에서 그간의 오해도 풀고, 손도 잡고 올 수 있었다. 



지난 번에 내가 왔을 때는 엑시앗(기숙학교에서 2박 3일의 짧은 외박)을 마치고 녀석을 지하철로 데려다줬었다. 지하철로 학교까지 오는 길이 조금 서글펐다. 물론 굳이 그런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고, 느껴서도 안된다는 걸 안다. 나는 외국인이고, 잠깐 아들을 보러 온거니까. 그래도 다른 학생들이 고급 차량을 타고 하나 둘 씩 기숙사로 돌아오고 있을 때, 나와 녀석은 지하철을 타고 비를 맞으며 걷고 있자니 저절로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녀석은 아무렇지 않은 눈치였다. ‘아빠는 여기 안 사니까 당연한거지..’.  그 때 느낀 기분 탓일까, 이번에는 택시를 탔다. 35파운드를 냈다. 녀석과 마주보고 1시간동안 대화를 나눈 데 쓴 비용치고는 적당하다. 


녀석의 뒷모습을 보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기숙사 앞에서 다른 학생들이 들어가는 것을 지켜 보았다. 그런데 저기서 녀석이 달려왔다. 


“어.. 왜 다시 나왔어?”

그렇게 묻고 보니, 녀석에게 이번에 주기로 한 요시다 포터 탱크백이 내 어깨에 둘러져 있었다.

“아, 가방 가지러 왔구나. 잘했어“


”아빠, 그게 아니고.. 아이폰을 택시에 두고 내렸어“



순간 머리가 하애졌다.

그리고 곧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얼른 택시 호출앱을 열어 기사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다른 연락처를 찾다가 겨우 연락이 닿은 곳은 우리를 태워 온 기사가 아닌 택시회사였다. 그러는 사이 택시에서 내리고 15분은 흘러 있었다. 15분이면 택시 기사는 제법 멀리 갔을 가능성이 컸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코벤트 가든에서 해로우까지 오는동안 기사는 나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상대 운전자에게 욕을 했다. 브레이크를 과격하게 밟았고, 그렇게 길들여진 오래된 토요타 프리우스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굉음이 났다. 그런 운전자라면 아마도 센트럴 런던까지 이미 가버렸을지도 모른다. 


녀석은 한 눈에 봐도 긴장한 모습이었다. 아빠에게 혼날 걱정, 행여나 아이폰을 되돌려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내 전화로 다시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차에서 내린지 거의 30분이 지나서야 기사와 통화가 되었다. 영국 학교에 10년동안 아들 녀석을 보내면서 내 앞에서 영어로 누군가와 대화를 이토록 길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빠가 늘 평가의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본다고 생각해서였겠지만... 그래도 급하니까 하는구나. 그 정도로 녀석은 다급해 보였다. 중동에서 온 이민자 택시 기사와는 대화가 어긋나는 듯 보였다.


”뭐래?“

”지금은 다른 승객을 태우고 있어서 바로는 못 온대..  한 시간 후에 다시 전화해보라는데.. 어쩌지? 난 지금 전화가 없잖아..“


어느 새 9시가 되었다. 기숙사 입실 마감시간이다.

“아빠가 여기서 기다릴께. 한 시간 후에 나와서 아빠 전화로 전화하면 되지 않을까?”

“아빠가 한 시간 후에 전화해주면 안돼?”

물론 전화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는 한국이 아니다.



“그 사람과 아빠가 대화가 가능할까? 내가 여기서 그냥 기다릴께“

”여기 너무 춥잖아. 비도 오고.. 아빠 그냥 호텔로 가. 내가 Mr Marchant에게 전화 빌려볼께“

”그게 돼?“

”안되면 키런한테라도 부탁해볼께. 키런이 빌려줄거야“.



녀석이 다시 돌아갔다. 아빠 한번 더 보러 나온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반대로 전화기를 두고 왔다는 나쁜 소식이었다.



 버스로 갔다가 다시 택시로



내가 내 아이를 못 견뎌하는 부분 중에 하나가 이런 거다. 물건 잃어버리는 것. 

물건을 좀처럼 잃어버리지 않는 나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착각일 수 있다- 와 달리 녀석은 물건을 자주 잃어버린다. 지난 해 6월 학교에서 간 그리스 여행에선 애플워치를 호텔에 두고 왔다. 다행이 그리스의 호텔에서 애플워치를 영국의 학교까지 소포로 보내줬다. 덕분에 여름방학은 스마트 워치 없이 지내야 했다. 애플워치를 잃어버렸 보던 그 여름에는 또 에어팟도 잃어버렸다. 사촌 집에서 놀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결국 그건 찾지 못했다. 물건은 잃어버린 건 때로는 새 물건으로 갈아탈 기회이기도 하다. 녀석은 두꺼비도 아니면서 헌 에어팟 프로를 잃어버리고, 신형 에어팟 프로를 다시 샀다. 이번에 한국에서 영국으로 들어가는 날도 에어팟이 없다고 소동을 피웠다. 이번에는 겨우 찾긴 했다.


물건을 잃어버리고 찾고, 찾고 잃어버리고... 한 두 번이 아니다. 지난 해는 이런 일도 있었다. 녀석과 둘째, 은희 셋이서 런던에 지낼 때의 일이다. 평소 쇼핑을 거의 하지 않는 은희가 모처럼 영국산 신발을 하나 샀다. 그리고 녀석이 쇼핑백을 들었다. 엄마 대신 들어주겠다는 기특한 말과 함께. 쇼핑을 마친 세 사람은 이층버스 제일 앞자리에 앉아 런던 시내를 구경하며, 빅밴을 보러갔다. 버스에서 내려 빅벤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은희는 녀석의 손에 새로 산 신발이 든 쇼핑백이 없다는 걸 알아챘다. ”야! 쇼핑백은?“ 아마도 은희가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묻지는 않았을 거다. 은희는 다급하게 타고 온 버스와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타고, 그 버스의 종점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다행이 그 버스가 있었고, 쇼핑백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모처럼의 런던 시내 여행은 그렇게 끝났다. 


녀석과 있으면 이런 일이 제법 된다. 잘 지내고 있다가도 물건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찾으러 다니고, 그러는 사이 일정도 끝나 버린다. 돈도 아깝지만 정신적 소모도 어지간히 된다.


이제야 생각이 났는데, 지난 해 5월, 런던에 온 것도 녀석이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BRP 카드라는 일종의 영국 비자를 또 어디선가 잃어버렸다고 했다. 영국에서 거주하는 외국인은 해외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려면 BRP 카드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녀석은 7월에 학교에서 그리스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전에 카드를 재발급 받아야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재발급은 일정상 가능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런던에 가서 재발급 절차를 밟아야 했다.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담 슬롯을 최소 몇 주 전에 예약해야 했다. 분실 경위를 작성하고 영국 경찰에 신고를 해야 했다. 영국은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비용이 들었다. 카드 재발급 비용만 거의 50만원이 들었다. 아까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만원이면 해결될 일인데, 영국은 정말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외국인들의 돈을 뜯어간다는 느낌이었다. 


재발급 신청을 하러 가는 당일도 잊을 수 없다. 오전 일찍 서류를 제출하고 오후에는 녀석과 런던 시내를 느긋하게 구경할 예정으로 첫번째 슬롯인 9시로 예약을 했다. 드문 런던의 맑은 날 아침이었다. 녀석과 버스를 타고 런던의 출근길 풍경을 구경했다.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세인트 폴 대성당을 거쳐 마천루가 즐비한 시티오브런던에 있는 비자센터에 도착했다. 서류 제출 중에 녀석이 이번에는 여권을 호텔에 두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 기분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정말로 폭발할 것 같았다. 


“도대체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거야?” 

사실을 말하자면 폭발했다. 9시에 맞춰 도착했는데, 호텔에 다시 돌아오면 내가 예약해 둔 슬롯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다시 또 몇 주를 기다려야 하는 게 아닐까? 런던에 또 와야 하나? 비자 때문에 비행기값, 호텔값으로 몇 백만원을 지출했는데, 이걸 한번 더 해야 한다고? 다시 택시를 잡았다. 버스를 타고 돈을 아꼈다는 만족감은 사라졌다. 비자 센터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30분만에 돌아오겠다고 하고 다시 호텔로 향했다. 비자센터는 영국 정부가 사기업에게 위탁을 주어 운영하는 곳이라 그래도 융통성이 있었다. 몇 분 늦었지만 다행이 신청을 마무리했다. 


녀석의 물건 잃어버리기 역사에 대해서 길게 썼는데, 이런 일이 꽤 자주 있다는 것이 문제다. 녀석을 보면 가끔은 나와 지금 여기 있지만 정신은 여기에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또 아무 곳에나 물건을 두고, 제대로 챙기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랬을 거다. 아이폰을 보고 난 후 다리 밑과 차량 시트 사이에 끼워뒀을 것이다. 그리고 그냥 내렸고, 내리고 나서도 확인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도 어쩌면 병이 아닐까. 병이라면 무슨 병일까? 

병이 아니라면 보리스 존슨이나 윈스턴 처칠 같은 걸까, 그런 생각도 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영국의 엘리트 계층들은 엘리트로서의 자기의식이 있어서 헤어스타일이나 물건 정리 따위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보리스 존슨의 머리가 자다 일어난 것 같은 상황인 것도 이튼칼리지 출신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고. 녀석도 비슷한 종류의 학교에 다녀서 이러는 걸까?  ‘나는 머리스타일이나 소지품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야’라는 그런 의식.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히 물건에 집중하지 못하는 성격인 걸까. 어릴 때부터 자주 물건을 잃어버렸으니 환경 탓은 아닐 것이다.  뭔가에 집중하지 않고, 정신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일까. 아니 그 반대로 다른 뭔가에 집중하느라 아이폰 따위에는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일까.



택시에 녀석이 전화를 두고 내렸다고 은희에게 알렸더니 지혜로운 답이 왔다. 

”녀석이 해결해야 해. 매트론과 알아서 해결하게 하고 여보는 얼른 들어가서 쉬고 내일 귀국 준비나 잘 하자“


내일 오전 11시가 출국이니까 8시에는 호텔을 나서야 한다. 아직 짐도 안쌌고... 얼른 가야 하는게 맞다.


그러던 중에 어느 덧 한 시간이 지났다. 

비가 많이 와 제법 추웠다. 녀석은 내가 떠난 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빠, 내가 택시 기사와 통화를 했어. 그런데 여기로는 못 가져다 준대.“

”아 왜? 아빠가 그 택시 타고 갈테니까 오라고 해“

”그래도 안된대. 여기 오는 거보다 그냥 일하는 게 더 돈이 되기 때문에 못온대“

”그럼 어떻게 해? 택배로 보내달라고 해“

”그것도 안해준대. 자기는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없대. 이 아저씨 뭔가 말이 너무 안 통해. 그냥 벽 같아“

”아, 우리가 페이를 한다는 데도 왜 안 해준다는거지?  이해가 안되네.. 그럼 안 주려는건가?“

”자기 집으로 오래.. 내일 오전에 오라는데, 아빠가 좀 가주라..“

”야, 아빠가 내일 오전 11시 출국인데 거길 어떻게 가? 못 가지..“

”그럼 어떻게 해? 아.. 어쩌지...“

”매트론하고도 이야기해보고, 안되면 가디언에게 부탁해볼께“


택시 기사가 결국 오지 않게 됐단 걸 알고, 지하철을 타러 갔다. 이때만 하더라도 가디언에게 부탁해볼 심산이었다.

그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빠, 이거 매트론 전화야.“ 녀석이었다.

”매트론이 통화했는데 그 기사가 무조건 집에 와서 가져가래. 내일 오래.. 내일 10시까지“

”가디언에게 부탁해도 내일 10시까지는 못 가. 가디언은 9시 출근이라, 9시에 바로 간다고 해도 10시까지는 무리지. 지금 일요일이라 연락이 닿지 않고“ 

”아 그렇네... 그럼 어쩌지?“

”아빠가 가디언에게 부탁해볼텐데 화요일에 가지러간다고 해줘. 가디언에게 아빠가 부탁해볼께“

”화요일은 안된다고 하던데.. 내일 무조건 오래“


”거기가 어딘데?“

”받아 적을 수 있어.. E13 8AN, Liddon street, No.9이래. 가디언이 내일 아침에 출근하실 때 가면 안되려나?“

”화요일에 가도 돼. 핸드폰 하루 없다고 별 일 안 생겨. 걱정마. 찾게 된다“

”Mr 마천트가 다른 옵션도 이야기해줬는데, 우버는 픽업 옵션을 선택할 수도 있대. 우버 기사가 물건을 받아서 찾아주기도 한데“

”그래? 그거 해도 좋게 아빠가 한번 알아볼께“

”이제 나 컴퓨터도 내야 해서 정말로 연락이 지금부턴 안돼... “

”그래. 아빠가 뭔가 정해지는 게 있으면 밤 중에 메일할께“

주소를 검색해보니 런던의 zone 3에 해당하는 외곽지역이다. 해로우가 런던 서부, 기사의 집은 웨스트햄 근방으로 런던 동부다. 

말 그대로 극과 극이다.


지하철과 237번 버스, 웨스트햄 가는 길


플랫폼에 지하철이 들어왔다. 런던의 지하철은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다. 우버 픽업 서비스에 관한 정보는 찾아보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다.

Sudbury에서 탄 지하철이 그린파크를 지나자 이걸 타고 한 시간 반을 더 가면 웨스트햄에 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거기까지 갔는데 못 만나면 어떻게 하지? 비가 많이 오는데  가서 기다릴만한 곳이 있을까? 민약 기사가 오늘 새벽 늦게까지 일하면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하는데 이 추위에 괜한 짓을 하는 걸까? 


오만 생각이 오가던 중에 돈으로 생각이 옮아갔다. 아마도 가디언에게 부탁하면 도와야주겠지만 이 거리라면 비용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우버로 가능하다고 해도 족히 60파운드는 내야 가능할테고. 반면 내가 오늘 간다면 그보다 저렴하게 처리할 수 있다. 좀 피곤하겠지만 내일 11시간이나 비행해야 하는데, 거기서 자면 된다. 


기사는 무조건 집에 들어올거야.. 설마 안들어오겠나? 기사가 내일 10시 전에 오라고 했으니까, 기사 본인도 최소 6시간은 자야 할테니 새벽 3시에는 아마 들어올거고. 그럼 내가 가서 기다렸다가 아이폰을 돌려받자. 그리고 공항에 가기 전에 해로우에 들르자. 빠듯하지만 가능은 할 것 같다. 그렇게 웨스트햄까지 가보기로 했다.


내 아이폰 배터리는 11%, 시간은 이미 자정을 지나고 있었다.

아이폰이 꺼지면 여러가지 난처했다. 길도 못찾고, 애플페이가 안되니 지하철, 버스도 못탄다. 택시앱도 켤 수 없다. 그 때부터는 제발 전화기야 꺼지지만 마라... 아이폰에 아니, 배터리에 대고 기도했다. 그래도 혹시 꺼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구글맵을 켜서 기사의 집 위치를 숙지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N237을 타고, Plaistow police station에 내린 후 북쪽으로 걸어 좌측 코너로 돌아 두 블럭을 걷는다. 지도를 보고 정리했지만 처음 가보는 낯선 길이라 자신은 없었다. 너무 늦은 시간인데다 비도 많이 와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행여나 전화가 꺼질까 꼼짝 앉고 내릴 역을 놓치지 않으려 지하철 안내방송에만 귀를 기울였다. 



그러고 있다 보니 어쩌다 이렇게 됐나.. 후회가 밀려왔다. 호텔에서 녀석의 기숙사로 갈 때 지난 번처럼 지하철로 갔다면 이런 일이 생겼을까? 괜한 자격지심과 조금 편하게 가보겠다는 생각으로 택시를 탄 것 때문에 벌을 받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니, 남들은 다 자기 차를 타고 가는데, 우리는 택시 타고 가는 게 큰 잘못은 아니지 않아? 



후회란 건 이런 거다. 우연한 실수도 벌로 여기게 만든다. 그리고 그 벌에 억울함을 느끼게 한다. 조금 빨리, 조금 편하게 가려 했다가 나는 지금 편하지도 않고 아직 호텔에도 못들어가고 있다. 만약 지하철을 타고 갔다면 녀석이 스마트폰을 잃어버리지 않았을테고, 우리는 9시에 헤어지고, 나는 10시면 다시 호텔에 돌아와 짐을 싸고 이때 쯤이면 잠에 들었을 거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짜증이 났다. 돈 쓰고 고생하고.. 뭐하는 짓인가.. 중동 이민자 택시 기사에 대한 원망도 시작됐다. 학생이 학교에 가야 하는데 어떻게 자기 집까지 찾아가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갈 수 있단 말인가? 돈을 지불하겠다는데 좀 와서 가져다 주면 안되나? 한국에서는 당연한 일인데... 불친절한 기사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사의 집 앞에서 그를 만나면 죽을만큼 때려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왜 무조건 자기 집으로 와서 찾아가라고 하는건가... 다시 생각은 런던에, 아니 영국에 대한 환멸로 이어졌다. 퀵서비스도 없는 멍청한 나라.. 물건을 잃어버려도 찾을 수 없는 부도덕한 나라.. 외국인의 돈을 체계적으로 뜯는 양아치 같은 나라.. 




Requiem, CHRIS OFILI



테이트 브리튼에서 본 'Requiem‘이라는 벽화가 생각났다. 켄싱턴구 남부 지역 빈민들이 모여 살던 켄싱턴 구립 운영 아파트 화재로 인한 희생자를 추모한 작품이다. 그렌펠 타워 화재 사건으로도 알려져 있다. 스프링쿨러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수십명을 죽게 만든 정부와 기업이 합작해 대규모 희생자를 냈다. 멍청한 정부와 공공예산 삭감이 불러온 대참사였다. 


이 작품이 떠오른 건 이 화재의 시작이 중동 사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발화지점인 4층은 중동계 이민자가 살고 있었다. 화재 직후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그 중동 이민자에게 비난이 쏟아졌다고 한다. 인종 차별과 함께 이슬람에 대한 테러공격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안되지.. 이슬람과도, 중동과도 상관 없는 일이야.. 그냥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택시 기사 이름이 Mr Ali인 것을 알고 나니 ”역시 중동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었나“... 그런 생각으로 옮아갔다. 중동 사람들은 부도덕하다. 런던이 말도 안될 정도로 불친절하고 멍청하고, 더럽고 치사한 나라가 된 것도 이런 사람들 때문이 아닌가... 웨스트햄에 내릴 때 즈음하여 스스로 자책하던 나는 어느새 인종차별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웨스트햄 역은 생각 이상으로 큰 역이었다. 역 내부에서 화장실을 찾아 헤맸지만 그 큰 역에 화장실이 보이지 않았다.-아마 새벽 시간에 내가 정신이 없어서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런던은 치사할 정도로 화장실에 인색하다. 공중 화장실은 없거나 있어도 더럽다. 그냥 더러운게 아니라 추접다고 할 정도로 엉망으로 더럽다. 아마도 위생감각이 없는 인도와 중동과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아무데나 오줌을 싸서 그럴 거야. 혹은 이민자들과 난민들이 화장실에서 범죄를 일으켜서 화장실이 없는 걸거야.. 


역에서 나오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후드를 뒤집어 쓰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신발은 걸을 때마다 스펀지에서 물이 솟아 오를 정도로 젖었다. 소변이 급했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노상방뇨를 하고, 버스를 기다렸다. 비가 씻어내 주길 기대하며.. 그러다 족히 20분은 기다렸을까.. 두꺼운 파카가 무색할만큼 추운데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정류장에 한 인도사람이 와서 말을 걸었다. 


"캐닝타운행 버스 지나갔나요?“. 발음에 여전히 인도 억양이 남아 있는 키 작은 남자다. 이 사람도 이민자일까?

“아무 버스도 안 지나갔어요”. 그날 밤, 나는 퉁명스러웠다.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버스 한대가 왔다. 그 버스를 타고 아까 본 경찰서 앞 정류장에 내려 북쪽을 향해 걷고, 왼쪽 코너를 따라 두 블럭을 갔다. 이상하다. no. 9이라 적힌 집이 없었다. “뭐지? 속은건가?” no. 23이라고 적힌 집 앞에는 프리우스 한대가 서 있었다. 왠지 내가 탔던 택시 같아 보이기도 했다. no.23은 불이 꺼져 있었고, 아니면 말지라는 생각으로 현관문을 두드렸다. 몇 번 두드렸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여기 아닌가 보네.. 그래도 여기 근처가 맞을 것 같으니까 기다려보자’. 


아 그러던 중에 no. 23 집에 불이 켜졌다. “누구세요?”.  이번에도 한 중동 사람이 나왔다. “여기 Mr Ali 집인가요?, 볼트기사가 사는 곳 맞아요?“. 집 주인은 그런 사람은 없다고 했다.


“no 9이 어딘지 아나요?”

집주인은 자기 스마트폰을 켜서 지도로 아래로 한 블럭을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알려줬다.


길을 따라 내려왔지만 No. 9은 보이지 않았다. 프리우스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로 치면 영세민 아파트 비슷하게 집합건축물이 늘어선 한눈에 봐도 거무죽죽한 위험해 보이는 동네였다. 땅콩주택 같은 다세대 주택들이 늘어선 집들은 전형적인 영국 서민들의 가정으로 보였다. 동네에 가난이 묻어 았었다.


집의 넘버링들이 이상했다. no. 23의 다음 집은 24가 아니라 27이었다. 27 다음 집은 29고, 23의 이전 집은 19였다. 알 수 없는 패턴이었다. 그리고 no.9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몇 집을 두르렸다. 새벽 1시에 세 네 집의 주인을 깨웠다. 하나 같이 이민자였다. 그러던 중 no.8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늦은 밤이라 반응이 없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아주 작은 키의 한 중동 아주머니가 나왔다. 



“여기가 Mr Ali 집이 맞나요?”

“맞아요. 무슨 일이세요?”

“제가 전화기를 Mr Ali의 차에 두고 내렸어요. 그가 여기와서 찾아가라고 했는데 그는 집에 왔나요?”

“아니요. 그는 여기 없어요.”

“알겠어요. 저는 그냥 당신 집 앞에서 그를 기다리겠습니다”


지금도 왜 No.8이 no.9인지 모르겠다. 여러모로 혼란 그 자체의 밤이었다.


그렇게 겨우 집을 찾았다. 잠시 후 그녀가 다시 나왔다. 

"그가 지금 오는 중이래요. 20분 정도 걸린다고 해요“

“아 정말요? 아 감사한 뉴스네요”

“추운데, 잠깐 들어와 계실래요?”

“아니요.. 천만에요. 괜찮습니다.”


20분만 기다리면 된다. 시간을 확인하려고 전화기를 꺼냈다. 배터리가 이미 방전되어 있었다. 그래도 녀석의 전화를 받으면 그 전화로 연락과 버스를 타면 된다. 30분 정도 지나서 낯 익은 프리우스가 모습을 보였다. Mr Ali는 운전석이 아니라 조수석에서 내렸다. 

‘어? 왜 조수석에서 내리지?’

그가 걸어왔다. 택시에서 볼 때보다 좀 더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저는 이 방법 밖에는 다른 옵션이 없었어요. 그래서 무례인줄 알지만 지금 당신 집에 오게 됐어요”

“괜찮아요. 제가 가져다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제 택시가 제 차가 아니라서 제 마음대로 방향을 정하지 못합니다.”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그러니까 그는 회사 택시를 운행하는 기사 신분이라, 아이폰을 가져다 주고 싶어도 가져다 주지 못했던 것이다.

연신 땡큐를 연발하고, 악수도 했다. 다시 내 손에 온 녀석의 아이폰을 보니 헛웃음이 났다. 


N15, 채링크로스로


N15, 나이트버스 15번을 타면 채링크로스까지 간다. 비를 뚫고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이번에는 다시 한 시간만 버스를 타면 된다. 5분 정도 지났을까, 버스가 왔다. 이층에 올라가자 바깥 비로 습기가 가득해 창문 밖이 보이지 않는다. 녀석의 전화로 은희와 대화를 나눴다. 


“인디아나 존스 찍은 것 같아... 너무 춥고 힘들다”

“여보 대단해, 고생했어... 우리 남편 해리슨 포드네”


안도감에 잠이 쏟아졌다. 

습기로 창밖도 보이지 않아 더 그랬다. 바깥이 보이지 않아 버스 내부를 둘러보았다. 모두 인도 사람, 중동 사람... 피부가 하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시안도 나 뿐이다. 그제서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한거지 되묻게 된다. 전화기를 잃어버린 것도 나고, 노상방뇨를 한 것도 나인데... 이민자 때문에 화장실도, 거리도 엉망이라고,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다니... 늦은 밤 2시의 런던 버스에는 청소 노동자들이 이동한다. 내가 싼 소변을 치우는 사람들.. 전화기를 잃어버린 사소한 일조차 의연해지지 못하는 빠듯하게 사는 사람들이 가까운 빠듯하게 사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오해하게 만드는 것, 거기에 삶의 무게가 있다. 


그깟 아이폰, 오래된 12프로맥스인데 중고로 사면 50만원 밖에 안해. 그렇게 생각하고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또 일당 10만원 더 버는 것 그거 아무 것도 아냐라고 생각하고 전화기를 잃어버려 전전긍긍하는 사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는 서로를 의심하고 적대시하고 오해하게 되는 것이다. 녀석이 전화를 잃어버리고 나서 내 마음을 지배하는 건 솔직히 말하자면, 부끄럽지만 ’계산‘이었다. 중고 아이폰 가격 50만원, 가디언에게 부탁하면 최소 30만원, 우버 픽업 요청하면 12만원, 내가 가면 버스타면 갈 때 3파운드, 올 때 3파운드, 녀석에게 가져다주는 비용 30파운드 다 해도 10만원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그런 계산이 지배했던 것이다. 


창 밖이 보이지 않아 어디까지 왔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습기를 손으로 닦아내니 왠 다리가 보였다. 워털루 브릿지다. 한 정거장을 지나쳤다. 아 이거 건너면 안되는데.. 반대 방향인데.. 이번에도 뛰어서 겨우 내렸다. 


내리고 보니 녀석과 오늘 낮에 온 코톨드 갤러리 앞이었다. 

미술관에서 오면 녀석의 정신은 여기 있는 것 같지 않다. 가끔, 아니 자주 아들 녀석과 있다보면 껍데기와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보거나 딴 짓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림을 설명해줘도 어디까지 듣고 있는지 자신이 없다. 그냥 알겠다고 대답만 하는 건지, 정말로 알겠다는 건지... 솔직한 내 느낌은 전자에 더 가깝다. 심지어 그림을 보고는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냥 건성건성 보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하는 것 같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래도 그림 한 점이라도 재밌다고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 미술관 다니는 것도 습관이라 언젠가 좋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미술관에 간다. 여기와 지금, 바로 앞의 사람과 물건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내가 단지 그렇게 느끼는 걸까. 



그래도 내셔날갤러리와 코톨드갤러리를 오늘 돌아보면서 녀석과 재밌게 본 작품이 하나가 있긴 있었다. ’ 엘리야와 까마귀‘(구에르치노)라는 작품이었다. 라파엘로 화풍으로 그려진 초대형 그림에서 엘리야는 신이 까마귀를 통해 보내준 음료와 빵을 두 손을 모은 채 받고 있다. 이방 종교인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와 제사장 7000명과 싸워서 이긴 영웅 엘리야는 고작 여왕 한 사람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러 온다는 소식에 두려움에 몸을 떤다. 그게 그렇게 무서웠을까? 왜 신은 무서워 떨고 있는 엘리야에게 음식을 준 걸까? 


“배고파서 그런게 아닐까“. 녀석의 대답이 정답이다. 

배고프면 모든 것에 부정적이 되는 녀석의 모습은 엘리야와 닮았다. 죽지 않고 승천한 배고픈 엘리야의 이야기를 듣더니 이 그림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참을 들여다 봤다. 신앙의 영웅도 배고프면 부정적이 된다.. 코톨드갤러리에서 호텔까지는 15분을 걸어야 한다. 비가 오는 1월의 밤은 추웠다. 나도 죽여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신은 빵만 준게 아니고 미세한 음성으로 엘리야를 위로했다고 하는데, 빵이든 음성이든 뭐든 주시길 하는 마음에 저절로 ’주여‘ 소리가 나왔다. 그렇게 겨우 도착한 시간은 새벽 3시였다. 로뎀나무 같은 호텔에서 세시간을 잤다.


지하철로 가다가 다시 택시로, 해로우


6시 30분에 일어났다.

밤새 챙겨둔 가방과 캐리어를 들고 호텔을 나섰다. 레스터 스퀘어(Lecester square) 역에서 피카딜리 라인을 타고 Sudbury로 가서, 버스로 갈아타고 녀석에게 아이폰을 전달해줄 생각이다. 8시에 기숙사 앞에서 만나자고 메시지를 남겨뒀는데 녀석은 확인을 못했는지 답이 없다.


지하철을 타고 이번에는 스무정거장을 가야 한다. 꽤 가야 한다. 게다가 큰 문제도 해결됐으니 책이나 한번 읽어볼까 하고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읽기 시작했다. 런던에 와서 다 읽겠다고 시작한 책이었는데 돌아가는 날, 그것도 지하철에서 읽게 되다니... 하루키 책은 껌 씹는 것 같은 맛이 있다. 입 안에 옅은 단맛이 난다. 씹는 듯 읽었다. 


구글맵에서 Sudbury라고 하차하라는 알림이 떴다. 이상하다. 역 이름이 그게 아니다. 뭐지? 놀란 마음에 지하철 노선도를 찾아 보니, 세상에 피카딜리 라인은 Acton town에서 분기해 노선이 나뉘어 지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sudbury행이 아닌 히드로공항 행을 탄 것이다. 아, 왜 또 이런 시련이... 괜히 책을 읽었나.. 집중했어야 하는데... 지도앱을 다시 켜서 녀석의 학교까지 검색해보니 지하철로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러면 녀석과 만나기로 한 8시까지 시간을 지킬 수 없고, 9시반까지 공항에 가서 수속하는 것에도 차질이 생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역에서 나와 택시를 잡았다. 이번에는 30파운드다. 분노가 치민다. 게다가 지금은 출근시간, 런던의 도로는 좁고, 차가 막힌다. 또 돈을 쓰고 시간을 썼다는 생각에 어제를 반복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합리적이지 않은데 다시 녀석에 대한 원망이 시작됐다. 녀석이 스마트폰을 어제 갖고 내리기만 했어도, 나는 어제 잠을 푹자고, 8시에 호텔에서 나와 바로 앞에 있는 지하철역에서 환승 없이 앉아있기만 하면 9시에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물론 그건 아니라는 거 정도는 안다. 내가 지하철에서 책을 볼게 아니라 노선을 봐야 했고, sudbury로 제대로 갔어야 한다. 그렇게 자책에 자책을 거듭하던 중에 해로우에 도착했다. 녀석이 나오고 있었다. 교복을 차려 입은 멀끔한 모습으로..


“아빠, 고마워”

“야, 다음 번부터는 진짜 안 찾아준다. 아빠 부탁해.. 제발 물건 좀 잘 챙겨”

“어, 이제 잘 챙길께. 미안.. 아빠 이제 공항 가?”

“응, 이제 가려고.. 너는 지금 수업가나? 지금 가도 돼?”

”지금 가면 돼. 아빠 고마워.. 진짜로.. 조심해서 가고 곧 만나“


원망하다가다도 녀석을 보니 마음이 풀린다. 볼을 쓰다듬고 한번 더 포옹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두 주 후에 다시 또 만나.

녀석이 이번에도 뒤꿈치를 들고 걷는 특유의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저 멀리서 한번 뒤를 돌아보더니 손을 흔들어 준다. 아 드디어 해결했다.



SL9 익스프레스 버스의 고장, 히드로 공항



해결이 됐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해결되고, 해결되면 또 다시 다른 문제가 온다. 그렇게 인생은 문제의 연속인가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호텔에서 여기까지는 지하철과 버스로 오고, 여기서 공항까지는 택시를 탈 예정이었다. 그런데 내 실수로 택시를 벌써 탔으니 이번에는 버스를 타야겠다고 계획을 바꿨다. 


공항까지 익스프레스로 간다는 SL9 버스를 탔다. 출근시간이라 외곽이지만 차가 어마어마하게 막혔다. 내가 수속을 마쳐야 하는 시간이 10시 25분인데, 절반도 가지 못했는데 이미 10시였다. 중간에 내려 택시를 탈까 생각도 했지만 도로 상황으로는 방법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만 간다면 10시 15분까지 겨우겨우 도착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데 버스 기사가 운행 도중 차량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운행할 수 없다고 모두 내리라고 했다. 어? 왜? 그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왜 이런 일이 자꾸 생기는거지? 영국 너무 싫어...


히드로공항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한 노동자가 버스기사를 향해 달려가 큰 목소리로 욕을 해댔다. 솔직히 속이 좀 시원했다. 영어로 욕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 멋지다고까지 생각했다. 


아 그란데 이제 어떻게 하지.. 버스로는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 다시 택시를 잡았다. 택시앱에서는 도착했다고 나오는데 내게 배정된 택시 시트로엥 피카소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어서 취소 버튼을 눌렀다. 또 6파운드의 캔슬피(cancel fee)가 부과됐다.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아 왜! 타지도 않은 택시에, 보이지도 않는 택시에 6파운드는 너무 많잖아.


30인치 대형 캐리어를 들고 6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하여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한 버스를 탔다. 다행이도 히드로 공항행이었다. 그렇게 나는 10시 28분에 공항에 도착해 항공사 직원의 도움으로 가장 늦게 수속을 마무리했다. 짐을 맡기고, 공항 검색대를 지나 보딩게이트 앞 대기석에 앉으니 눈물이 났다. 벌을 받고 있다는 느낌..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내게 1월은 늘 경제적으로 버거운 달이다. 여유가 없는데 아들 녀석과 보내려고 무리해서 비행기 티켓을 사고, 호텔을 잡고, 매일 밤 아이가 좋아하는 고기를 구워주었다. 그리고 여기왔다는 핑계로 꽤 값 나가는점퍼도 하나 사고.. 그러고 보니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택시를 타야 할 때는 안타고, 택시를 타지 않아도 될 때는 또 탔다. 말하자면 녀석이 기숙사에 들어가고 난 하루동안은 런던이라는 그물에 걸린 것 같은 시간이었다. 런던의 그물, 런던이 주는 벌, 런던의 벌...


점퍼를 사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아이폰을 찾기 위해 지나치게 전전긍긍하고, 런던을 쓸고 닦는 이민자들을 이기적이고 비위생적이라고 혐오하고, 6파운드 취소수수료에 터너와 컨스터블과 베이커과 호크니가 살았고, 테이트브리튼과 내셔널갤러리도 공짜로 가는 이 곳 런던에 환멸이 생겼던 거다. 


자주 잃어버리는 것과 어떤 것도 잃어버리려 하지 않는 것 둘 중 무엇이 덜 불행한 것일까. 벌을 받은 게 아니라 여유가 없었다. 벌조차도 여유있게 받을 여유. 6파운드 때문에, 아니 덕분에. 아니 내가 여유있개 돈을 쓸 상황이 지금은 아니라서....


”이제 비행기 탄다“

”아빠 잘 가“


어떻게 아이폰을 찾았는지 끝까지 묻지 않는 녀석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미안해서 묻기 힘든 걸까? 물어볼 시간이 없었던 걸까? 그래, 그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테니까...글쎄, 어느 쪽인지 모르겠지만 녀석이내게 하루동안 선사해준 하루 밤의 지옥 덕분에, 아이폰을 택시에 두고 내려 걸려버린 런던의 그물, 런던이 준 벌 덕분에 한 편의 글이 나왔다. 


그래 글이란, 지옥에서 쓰여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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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의 지루함 (2016.10.21 한국일보에 쓴 글)

아이 엄마의 출산 휴가가 끝이 났다. 이제 낮 동안 아이를 돌보는 일은 내 몫이 되었다. 아이가 깨어 있는 동안은 책을 읽어 주거나, 잠시 산책을 하고, 목욕을 시킨다. 아이가 자는 동안은 젖병을 씻어 소독하고, 설거지하고, 빨래를 널기 전 널었던 빨래를 가져와 개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담고, 쌓여 있는 쓰레기를 정리하고 밥을 짓고 요리를 한다.

<출처 한국일보>

글로 쓰면 이렇게 매끄러운 일이지만 실제로는 조금도 매끄럽지 않다. 설거지하고 뒤돌아서면 조금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머그컵이 집안 곳곳에 있다. 다시 설거지한다. 뒤늦게 아이 유치원 가방에서 간식통을 발견하면 다시 설거지한다. 그렇게 하기를 여러 번 해야 겨우 설거지가 끝난다. 세탁실도 하루 평균 10번은 넘게 드나들어야 한다. 큰 아이가 유치원 다녀온 후 벗어둔 옷을 세탁실에 가져다 둔다. 욕실 수건에 냄새가 나서 세탁실로 다시 갔다. 백일이 지난 아이가 입은 옷은 따로 세탁하기 위해 세탁실로 다시 간다.

살림살이가 이토록 지루한 반복이었을까. 나는 살림을 시작하고 나서야 아이 엄마가 내 방에 들어와 “컵 없어?” “빨아야 할 것 없어?”라고 물었던 것의 의미를 깨달았다. 아이 엄마처럼 설거지하기 전에 먼저 각 방과 거실을 살피고 빈 그릇과 컵을 먼저 설거지통에 가져다 놓는다면 이렇게 몇 차례나 설거지를 반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빨랫감도 미리 챙겨 둔다면 몇 번만 세탁실에 들어가도 충분할 것이다. 말하자면 내게 그런 요령이 없었던 것인데, 요령이 없기 전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더 솔직한 말일 것이다. 나는 내가 쓴 컵을 설거지통에 가져다 두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그 정도만으로도 칭찬을 들었기 때문에 방마다 들어가 빈 컵을 챙겨올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최소한 집안 살림에 대해서만큼은 나는 나 자신만 생각할 뿐 전체를 보는 시야가 부족했던 것이다. 살림하기 전에는 살림은 그냥 되는대로 하면 되는 것이지 이렇게나 많은 디테일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처럼 여러 번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일의 순서를 지켜야 한다.

얼마 전에는 아이 엄마와 크게 다퉜다. 내가 외출한 사이 집에 들어온 엄마가 내게 전화를 해 대뜸 화부터 냈다. 내가 가스 밸브를 잠그지 않은 채 나갔고, 끓여둔 국을 냉장고에 넣지 않아 모두 상해버렸다는 것이다. 내가 고의로 한 일이 아닌데도 이렇게까지 혼이 나야 하는 일인지 납득이 되지 않아 같이 성을 냈다. ‘신경 좀 써 달라’는 아이 엄마의 말에 화를 내다 얼마 전에 한 잡지와 했던 인터뷰가 떠올랐다. 기자는 육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서 내게 “그러면 집안 살림에는 얼마나 동참하고 계시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육아에 동참하는 것으로 살림에 동참하고 있고, 설거지나 청소에는 별로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집안 살림은 엄마의 몫이고, 아빠는 돈을 벌어다 주고 아이와 놀아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살림은 노동인 반면에 살림을 빼고 아이와 놀기만 하는 일은 내게는 하나의 취미 생활에 불과하다는 것은 최근에나 와서야 깨달은 것이다.

조지 소로우는 ‘월든’에서 ‘살림을 잘하는 사람’은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 잘하는 살림만이 아니라 죽은 것을 되살아나게 하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기르고 만들고 나누면서 스스로 몸과 마음과 영혼을 지켜내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돈을 벌어주는 것으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왔던 것은 아닐까. 죽은 것을 되살리는 것은 오직 지루한 살림살이뿐이라는 것은 그동안 알지 못했다. 오늘은 설거지하기 전에 집안부터 둘러봐야지. 내 빨래를 넣기 전에 아이 빨랫감은 없는지도 봐야겠다. 시장에 가기 전에 이번에는 내가 아이 엄마에게 물어봐야지. “마트 갈 건데 필요한 것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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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오늘 자에 쓴 졸문.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고 생각난 <테러리스트의 아들>과 엮어서 썼는데, 결말이 너무 성긴 글이 되었다. 사실 원고 마감 날짜를 착각해 급히 쓴 탓도 있는데, 하고 싶었던 말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이웃의 공감에 대해서도, 가해자의 가족들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도, 아이가 타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사회 곳곳에 가득한 혐오 표현에 대해서도 모두 쓰고 싶었는데, 그걸 이런 모양으로 밖에 못 써내서 아쉽다. 굳이 다시 정리해보면, 내 아이가 타자인만큼, 이웃도 타자고, 타자에 대해서는 혐오 대신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는데, 그런 논지가 제대로 담기지 못한 듯 아쉽다. 여하간 두 책은 꼭 엄마, 아빠가 아니더라도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육아분투기, 가해자의 엄마, 가해자의 아들 (2016.8.12 한국일보에 쓴 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반비)를 쓴 수 클리볼드는 1999년 4월 미국 콜로라도주 컬럼바인 고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이다. 졸업반 학생이던 딜런은 다른 친구 하나와 함께 별다른 이유 없이 학교에서 총을 난사해 학교 학생과 교사 13명을 죽이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자살했고, 이후 이 사건은 조승희 총기난사 사건을 포함해 미국 내의 총기 사건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수는 사건이 일어난 후 딜런이 왜 이런 짓을 했는지를 한참 동안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딜런은 언제나 수에게 “우리 햇살, 착한 아이, 늘 내가 좋은 엄마라고 느끼게 해주던 아이”였다. 실제로 그랬다. 딜런은 졸업 후 애리조나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평소 행실도 발라 그런 낌새가 없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수 클리볼드도 보통의 엄마들보다 더 잘 준비된 엄마였다. 수는 타고나기를 걱정이 많은 편이라 늘 아이들의 건강을 챙겼고, 좋은 버릇을 가르치려 유난을 떠는 편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석사 학위를 취득할 때는 아동발달과 아동심리를 공부했고, 취직한 뒤에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고 한다. 도대체 딜런은 왜 그런 비참한 사건을 일으킨 것일까. 아들을 잃고 가해자의 엄마가 된 후 17년 동안 수는 어떻게 이 비극의 어둠 속에서 살아왔을까.



이 책을 읽으며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또 다른 책이 생각났다. 이 책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와는 반대로, 가해자 아빠를 둔 아들이 쓴 책이다. 저자인 잭 이브라힘은 1990년 11월 뉴욕 메리어트 호텔에서 일어난 메이르 카하네 암살 사건의 범인이자 세계무역센터 폭발 테러를 공모했다는 이유로 무기징역형을 받은 엘사이드 노사이르의 아들이다. 잭은 사건이 있고 난 후 자신이 살던 집을 떠나 수차례 전학을 거듭했고, 학교에서 다르다는 이유로, 말이 없다는 이유로, 땅딸막하고,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얻어맞고 다녔다. 아버지가 테러리스트라는 이유로 내내 차별을 당해야 했던 아이는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이브라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인 후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아버지가 아닙니다.” 비극의 어둠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그는 편견 속에서 폭력에 시달리고, 끊임없이 증오를 세뇌받으며 살아온 삶과 단절하고 이제는 공감이 증오보다는 힘이 세다고, 공감을 퍼뜨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이런 비교는 무의미하지만, 이브라힘 가족이 겪었던 일에 비해 클리볼드 가족의 사정이 나은 점이 있다면 사려 깊은 이웃들이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잭은 아버지가 체포된 이후로 살고 있던 집을 떠나야 했지만, 클리볼드의 가족은 지금도 딜런이 살던 그 집에 살고 있다. 많은 위협과 협박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을 위로하고 지지해주는, 심지어 몇몇 희생자 가족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의 따뜻한 말, 특히 범죄자 살인자의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공감이 있어 “비극의 여파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한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써서 보냈다. “하느님이 축복하시길”.

며칠 전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마주치는 엄마들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을 하시길래 이렇게 유치원에 자주 오세요, 아이 엄마는 무슨 일 하세요, 집은 어디세요?”. 나는 왜 이런 질문들이 두려웠던 것일까. 부족한 내 사교성 탓일 수도 있지만, 공감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잭은 “나는 아버지가 아니다”고, 수는 “나의 가장 큰 실수는 내 아들은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고 썼다. 공감은 다른 이들은 물론 심지어는 내 아이까지도 나와는 다른 존재임을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엄마들을 “맘충”으로 부르고, 장애인 교육 시설을 혐오시설로 여기는 사회였다면 클리볼드 가족은 동네를 떠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는 내 아버지도, 내 아이도 아니다.


육아분투기,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테러리스트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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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2016-08-13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었습니다!!!
 
공부 중독 - 공부만이 답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엄기호.하지현 지음 / 위고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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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페북에도 몇번 쓴 적이 있는데 지난 명절에 사촌동생의 진로를 두고 작은 아버지와 의견이 충돌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스물 셋인 동생에게 계속 공부를 하라고 권했다. 지금 동생에게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은 모두 모으고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서 생활하고, 모은 돈으로 계속 공부를 하라고 권했다. 작은 아버지는 의견이 달랐다. 직접 생활 전선에서 부닥치며 배우는 것도 많고, 자립심을 키우기 위해서 용돈을 주지 않겠다고 하셨다. 나는 지금 생각해보니 작은 아버지가 느끼시기에 다소 예의 없는 태도로, 하지만 동생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담아, 답답한 마음으로 지금 자립시키면 더 멀리 못나간다고, 용돈 주시고 돈을 모으고 공부를 시켜라고 권했다. 작은 아버지는 내게 화를 내며 이렇게 물으셨다. "네가 내 노후를 책임을 질 것이냐?", "우리 가족이 합의한 이야기를 네가 무슨 권리로 흔드냐?", "네가 공부를 좀 더 했다고 네가 생각하는 공부만 공부로 아느냐? 이렇게 배우는 건 공부가 아니냐?".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작은 아버지 생각은 틀렸고,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해왔다. 공부를 더 많이 하면 확실히 더 멀리까지 가는 것이라 믿어왔기 때문이다. 내 경험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하지현 선생은 노후 자금 털어서 교육시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꼬집는다. 엄기호 선생님은 배움에는 정말 여러 종류가 있다고 강조하신다. 두 선생님이 만약 나와 작은 아버지의 대화를 들었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을 것이다. '당신이야말로 공부중독에 빠져 있다고, 당신의 경험치를 일반화하고 있다고, 개인의 다양한 삶을 존중하지 않고 있다'고 말이다. 어쩌면 나는 공부에 대한 물신화된 믿음으로 사촌동생에게까지 공부라는 마약을 권하고 있었던 것이었던지도 모른다. 내 작은 아버지는 거기에 비하자면 공부라는 마약, 이 책의 표현으로 하자면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존재다. 그 누구의 삶도 아닌 스스로의 삶은 선택하고 계신 것이니까. 

 이 책은 나 자신이 공부중독에 빠진 것은 아닌지 진단할 수 있는 킷처럼 읽을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아이에게도 공부중독을 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면서 공부만 답이라는 도그마적 해결방식에 집착하며 많은 돈을 쓰고 있는 것이었던지도 모른다. 책의 조언대로, 또 내 작은 아버지가 하시듯이 아이에게 많은 돈을 쓰는 것 대신 내 노후자금이나 마련해두는 것이 훨씬 더 아이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마약을 계속 사들일 수 있을만큼 판돈이 많지 않고, 지금은 건강도 좋지 않아 이대로가면 아이에게 얼마가지 않아 짐만 될 것 같다. 비싼 교육 대신 싼 교육, 노후대비를 위한 현실적 대책이 내 계급 수준에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보며 나는 내 계급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착각 속에서 나와 내 아이와 심지어 사촌동생까지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는 자각이 들었다.  


한가지 더, 하지현 선생님은 내 책을 상당히 기대하면서 읽기 시작하셨지만, 이미 다 아는 이야기만 하는 좀 지루한 책이라는 취지의 평을 트위터에서 하셨던 적이 있다. 나는 하지현 선생님의 독자로서 하지현 선생님의 책은 상당히 재미있고, 아주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지는 책이라 평하고 싶다. 그리고, 내 책에 대해서는 변명할 말이 별로 없다. 아마도 하지현 선생님과 같은 높은 안목을 가지신 분에게 그렇게 보이는 것은 사실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책에는 두 분의 대화가 아주 경쾌하게 이뤄져 있고, 정보도 풍부해 배울 점이 많다. 두분이 제시하는 해결책, 여러 사람이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확산시키면 결국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낙관적인 면도 있지만 어쩌면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이 책의 제목인 <공부중독>처럼 어떤 의미에서는 소위 '교육 자체'를 문제시 삼는 방법 밖에는 없을 것이다. 



공부중독

공부만이 답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1.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시나요?


이번 주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위고에서 만들고, 엄기호, 하지현 두 분이 쓴 <공부중독>이라는 책입니다. 아무래도 하지현 선생이 정신과 의사인만큼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어떤 정신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와 같은 조금은 개인적인 영역에 주목하신다면, 엄기호 선생은 인류학적 시각을 가지고 우리 교육 문제를 조망하는 시선을 보여줍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공부중독>은 이렇게 비슷하지만 다른 시각을 가진 두 분이 서로 네 차례에 걸쳐 했던 대담을 정리한 책입니다. 두 분 모두 우리 사회가 지금 ‘공부중독’에 빠져 있다고 진단합니다. 


2. ‘공부중독’이라면 좋은 것 아닌가요? 다들 공부에 중독되고 싶어도 중독되지 않아서 걱정인데 공부에 중독된다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이 책에서 하지현, 엄기호 선생은 우리 사회의 공부 중독이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합니다. 먼저 두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 모두가 ‘공부’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공부가 우리의 삶을 식민화한다는 거죠. 예를 들면 요즘 많은 대학에 실용음악과가 있는 것 아시죠? 아이들이 TV에 연예인이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런 학과들이 인기가 좋아졌는데, 이 책에서는 그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일하면서 배워도 되는 것을 굳이 대학이라는 곳에서 배우려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진단합니다. ‘뭘해도 대학은 나와야지’라는 것이 마치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공통의 신념처럼 되어 버렸어요. 그러니까 예전에는 도제시스템으로 가능했던 일이 이제는 학교 시스템으로 대치되고 있는 겁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이 학교가 되어버린 건데요, 네일아트 학원, 바리스타 학원도 일종의 그런 것이라 할 수 있구요, 삶의 전 영역이 모두 ‘공부’를 통해서 자격을 획득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이 책은 ‘식민화’라고 하는 거죠. 재밌는 이야기 중 하나가 연극영화과였는데요, 연극영화과의 신입생 입학정원이 대략 3천명에서 5천명 정도인데, 졸업한 친구들의 가장 큰 수입원은 놀랍게도 배우나 연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연기학원강사라고 합니다. 연극영화과 입학 경쟁률이 70:1, 100:1이니까 학원이 되는거지요. 심지어 JYP, YG, SM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기 위한 학원까지 따로 있다고 합니다. 


3. 예전 같으면 공부로 해결할 일이 아닌 것을 모두 학원이나 학교에 가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을 두고 ‘공부의 식민지’가 되었다고 진단하는 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래도 도제식으로 배우는 것이나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나 모두 똑같은 ‘공부’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모두 공부라는 점은 같은데, 이 책에 이런 예가 나옵니다. 만약에 제가 음악하겠다고 집에서 혼자 기타치고 있으면 ‘미친 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크지요. 그런데, 학교를 다니고 2년 공부해서 자격증을 얻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스스로도 앞날이 불안했던 차에, 일단 2년동안은 공부를 하는 거고, 주변에도 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지 이야기하기가 훨씬 더 쉬워집니다. 학교 제도가 주는 안정감에 요리사가 되고 싶었던 사람, 음악하고 싶었던 사람, 커피 만들고 싶었던 사람도 모두 학교에 들어가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같은 공부라고 해도 같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학교에서나 학원에서 배우는 사회가 되면 다양한 형태의 배움 방식이 출현하지 못하게 됩니다.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하는 방식대로만 배워야 하는데, 모든 것을 학교, 학원 같은 제도에서 가르치다 보니까 삶이 획일화되어 버리는 문제가 생긴다고 보는거죠. 


4. 네, 하긴 학교나 학원에서 가르치는 것은 어느 정도는 천편일률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긴 합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직업현장으로 나가야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거든요.


이 책에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요즘은 연애도 배워서 한다고 합니다. 연애연구소를 운영하는 분이 주로 하는 강의가 “연애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라는 제목의 강연인데, 가장 반응이 좋은 직업군이 뭔지 아세요? 바로 법조계와 의료계라고 해요. ‘이럴 땐 이렇게 하고, 저럴 때 저렇게 해라’라고 가르쳐주면 반응이 아주 뜨겁답니다. 법조인들과 의료인들은 소위 ‘공부’를 잘했던 사람들이니까 연애도 이런 공부 형태로, 딱 매뉴얼대로 하는 것을 선호하는 거에요. 심지어는 교육이 끝나고 나서 어떤 분이 이런 질문도 한다고 합니다. “저, 이런 거 질문해도 될까요?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어요, 이건 거절의 의미일까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가장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직업군은 어딘지 아세요? 대형마트 직원분들이랍니다. ‘이런 뻔한 걸 왜?’ 이런 반응이라는 거죠. 이분들은 늘 사람을 대하고 있으니 연애기술이나 사람 대하는 기술 같은 걸 가르치는 게 그냥 웃긴 거에요. 이런 건 경험을 통해, 삶을 통해 배워야 하는거니까요. 


5. 아, 그러니까 직접 경험과 삶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것까지도 단지 ‘공부’를 통해, 잘 정리된 매뉴얼을 통해 배우려고 하는 것을 두고 ‘공부중독’이라고 표현하는 거군요. 


네, 바로 그겁니다. 사실 연애가 매뉴얼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연애를 해본 분들은 누구나 공감하시겠지만 막상 남자와 여자가 만나 연애한다는 것은 매뉴얼처럼 그렇게 매끄럽게 되지 않습니다. 제가 지난 주에 여행을 가실 때 족보를 따라다니면서 여행하시지 말고, 길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해보며 여행해 보시라고 권해드렸는데요, 여행만 하더라도 계획대로, 미리 공부한대로 꼭 그렇게 되지만은 않습니다. 삶은 공부하며 배우는 것보다 훨씬 더 울퉁불퉁하거든요. 

뭘 하든 아직 공부하고 있다면 용서가 되는 사회, 모든 것을 공부로 만들어 버리는 사회, 삶의 생생하고 구체적인 배움은 사라지고 매뉴얼만 따라다니는 사회를 이 책은 공부에 중독된 사회라고 하고 있는 겁니다.


6. 음,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왜 이런 공부중독에 빠지게 된 것일까요? 저자들은 어떻게 진단하고 있나요? 


이 책의 저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찾고 있습니다. 학교에라도 소속되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는 심리도 공부중독의 이유가 되고, 또 우리나라 486세대 부모들으 경험도 이유라고 합니다. 486세대 부모들은 공부를 잘하면 잘살 수 있다는 생각이 자기 몸으로 체득된 세대거든요. 무엇보다 제가 인상 깊었던 분석은 저자들은 우리 사회가 ‘공부가 가장 공정하다’는 신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공부중독이 왔다는 진단이었습니다. 공정함에 집착하다 보니까 공부 중독이 왔다는 것이죠.


7. 공정함에 대한 집착 때문에 공부 중독이 왔다는 말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이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엄기호 선생이 지방의대에서 강의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엄기호 선생이 보기에 지방의대생들은 완전히 격리된 학생들이라는 거에요. 자신들은 엘리트이기 때문에 이 대학의 다른 학생들과 자신들은 다르다고 여기는 거에요. 자기들끼리만 동아리를 만들고, 만나고, 헤어지고 합니다. 이런 식의 선민 의식을 가지면 보상 심리도 강해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자신과 비슷한 수준으로 노력하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자신과 비슷한 보상을 받게 되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니까 요즘 사람들은 “왜 비정규직에게 정규직을 쉽게 주냐?”고 합니다. 자기는 죽을 노력을 해서 정규직이 되었는데, 왜 비정규직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비슷하게 대우하냐는 거죠. 서울대생들끼리도 혹시 계급이 있는 것 아시나요? 어떤 전형으로 입학했는지 따라 차별이 있는 거에요. 상대적으로 수학능력시험 점수를 높게 받아 들어온 학생들이 학교장 추천에 의해 상대적으로 쉽게 들어온 학생들을 차별합니다. 지균충이라고 부르죠. 

그러니까 나눠 먹을 파이의 크기는 점점 줄어드는데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니까 살아남기 위해서 공부에 집중하게 됩니다. 다른 것보다는 비교적 공부가 공정한 게임이라는 생각이 공유되고 있는 거죠. 그리고 일단 자기 몫의 파이를 갖게 되면 공정한 게임인 공부에서 패배한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8. 교육 문제라면 입시 문제도 빼 놓을 수 없는데 이 책에서는 어떻게 진단하고 있나요?


금방 우리나라 공부 중독이 486세대 부모들에 의해서 생겨난 점도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486세대 부모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성공하고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자식들에게도 공부를 많이 시키게 됩니다. 그런데 이 책의 진단에 따르면 486세대 부모들의 그 경험은 지금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가능했던 것에 불과했다고 해요. 486 부모들이 살던 80년대 후반은 아시다시피 우리나라가 고도로 성장하던 때였구요, 대학졸업자보다 일자리가 더 많았고, 서울도 점점 커져서 부동산 부자가 된 사람도 많았던 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경기 침체가 오래 지속되고 있고, 일자리도 점점 줄고 있죠. 그러니까 공부를 잘하면 성공한다는 공식은 사실 더 이상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울산, 창원 지역 노동자 부모들 중 상당수는 자식들을 전문대에 보내고, 지방 4년제에 보내면 중퇴를 시키는 경우도 많다고 해요. 4년제 대학을 나오면 중공업, 자동차, 조선소 노동자로 못가거든요. 더 이상 좋은 대학 나온다고 더 잘사는 것은 아닌 사회가 된 것이죠. 서울대학교 인문대 학생 중 졸업을 유예한 학생이 50%가 넘는다고 합니다. 서울대 나온다고 성공은커녕 취업도 보장받기 어려워진거죠. 


9. 정리해주시죠.


이 책은 현재 우리나라 입시판을 두 가지로 비유합니다. 하나는 도박판이구요, 다른 하나는 다단계 사업입니다. 먼저 다단계부터 말씀드리면요, 다단계라는 건 전국민이 다하면 망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 중 다수가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대학 나온다는 것이 전혀 장점이 될 수가 없는 사회가 된거에요. 박사가 너무 많아서 박사 학위만으로는 교수가 될 수 없는 사회가 된 것도 다단계와 비슷한 논리입니다. 다른 하나는 도박판인데요, 카지노에서 돈을 따는 사람은 프로겜블러도, 딜러도 아니고 판돈이 무한인 사람, 예를 들면 아랍 왕자가 결국 돈을 쓸어간다고 합니다. 지금 강남의 많은 사람들이 한등급 높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서 학원에 많은 돈을 쏟아붓는데, 점점 더 판돈이 커져가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이 판돈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이 끝까지 싸우게 되는데 판돈이 부족한 사람은 결국 노후 자금까지 깨면서 이 도박을 한다고 해요. 대기업 부장 뿐 아니라 의사, 변호사가 되어도 미래는 불확실한데 이런 도박을 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진단합니다. 

이 책은 공부에 중독된 우리 사회의 모습, 원인, 해결 방법을 제시하려는 책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삶을 살라’는 메시지로 읽힙니다. 배운다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지만 때로는 누군가의 가르침에 지배되는 일이기도 하구요, 배움에 집착하다가 자신의 노후의 삶도 어렵게 되고, 자식의 삶도 차별 의식에 삐뚫어지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배움이나 공부를 모두 거부하는 게 아닙니다. 이 책을 통해 진정한 배움, 공부란 무엇인지 되새겨 보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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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부 다 멸종으로 끝나?


얼마 전 아이와 읽던 책의 한 부분이다. “지금은 늑대가 너무 많이 죽어서 늑대를 볼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어요. 몇몇 사람들은 늑대가 멸종될까 봐 걱정했어요”. 아이에게 이 부분을 읽어주자 아이는 “또 멸종이야?”라며 고개를 들었다. “또 멸종이라니?”, 내가 되묻자 아이는 “말리 코끼리도 원래 1000마리나 됐는데 지금은 400마리도 안 남았대. 지구가 더워져서. 지난 번에 읽었던 책에는 바다 거북도 바다에 기름이 퍼져서 많이 죽었대. 왜 전부 다 멸종으로 끝나?”. 그러고 보니 그랬다. 아이와 함께 읽었던 동식물 관련 책은 언제나 멸종으로 끝난다. 동물은 위기에 처해있고, 자연은 더러워졌고, 지구는 병이 들었다.

"아빠, 왜 전부 멸종으로 끝나?"


영국에 사는 데이비드 본드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자연’에 대한 이런 이미지들을 바꿔보고 싶어했다. 자신의 두 아이가 스마트 기기에 중독되었다고 생각한 그는 아이들이 자연으로 나가지 않는 이유가 ‘자연’에 대한 아이들의 부정적인 이미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두 아이들에게 자연은 따분하고, 지저분하고, 썩어가는 공간이다. 그는 자신의 두 아이 뿐 아니라 영국의 대다수 아이들이 가진 이런 생각을 바꿔보기 위해 ‘Wild Thing Project’를 시작했다. 우선 그는 폭스바겐과 같은 대기업의 브랜드를 구축해온 마이클 울프의 조언에 따라 아이들이 ‘자연’에 대해 긍정적 이미지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브랜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요컨대 사람들이 어떤 디젤 자동차에 대해 ‘클린 디젤’, ‘친환경’, ‘경제성’과 같은 긍정적 이미지를 가진다면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연비를 속였음’, ‘배출가스 측정을 조작함’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가진다면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을 것이다. 데이비드는 ‘자연’이란 브랜드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 과학자와 환경보호활동가, 작가들을 인터뷰했다. 이들에 따르면 자연은 아이들을 더 행복하게 하고, 자연을 더 사랑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야생(wild)은 의지(will)의 원천이다. 데이비드가 ‘자연’을 새로운 이미지로 브랜드화하고 아이들을 자연으로 데려나가기 시작하자 ‘자연’이라는 말에서 따분함, 지루함, 불결함을 떠올렸던 아이들도 표정이 하나같이 밝아졌다.

영국 아이들에게도 ‘자연’은 인기가 없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단지 쥐와 뱀과 거미가 있는 무서운 곳이고, 너무 춥고 더워 불편하고, 해야 할 것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아 지루하고, 신발에 진흙이 묻기도 하고 동물이 썩어가는 것도 보이는 더러운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데이비드 본드처럼 사람들이 ‘자연’이라는 브랜드를 잘 구축하여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도록 한다면 쉽지는 않겠지만 아이들을 자연으로 데려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처한 상황은 이와 다르다. 우리 아이들이 가진 자연에 대해 갖는 무서움, 불편함, 지루함, 더러움을 마이크 울프와 같은 브랜드 대가가 와서 모두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꿔준다고 해도 아이는 자연으로 나갈 수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해 자연으로 나가도록 허락할 수가 없다. 며칠 전 아이가 쓴 그림일기를 살펴보니 날씨란에 맑음, 흐림, 비, 눈, 안개가 적힌 날은 며칠되지 않았다. 대신 ‘미세먼지’가 적힌 날은 절반이 넘는다. 날씨란에 미세먼지라고 적은 날, 아이는 심심하고, 답답하고, 짜증났고, 집에서 낮잠을 잤다고 썼다. ‘야생’은 고사하고 마음껏 달리지도 못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어떤 ‘의지’를 품고 이 사회에서 자라날 수 있을까.



배출가스 측정을 조작한 자동차 회사는 조작 사실이 드러난 직후 대규모 할인을 실시해 조작이 알려지기 전보다 판매량이 더 늘었다고 한다. 배출가스 측정을 조작했다는 것이 드러나자 소비자들이 ‘미세먼지’, ‘부도덕’, ‘범죄’ 등 부정적 이미지를 대신해 ‘합리적 가격’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갖도록 재빠르고 영리하게 브랜드를 관리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상아를 얻으려 코끼리를 죽이고, 가죽을 얻으려 늑대를 밀렵하는 것과 몇 푼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런 회사의 자동차를 사는 것은 얼마나 다른 일일까? 동물들에게만 닥친 일이 아니다. 지금 아이들도, 어른들도 온갖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일보 오늘자에 쓴 글이다. 분량이 너무 많았는지, 글의 마지막 문단은 잘린 채로 기사가 나갔다. 아쉽다. 

여기에 원글을 옮겨둔다. 관심있는 분들 두 글 모두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www.hankookilbo.com/v/043033ac2dcd4ce6b6eba657842a8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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