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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의 공동체 - 여성, 독립, 운동가
박현정 지음, 윤석남 그림 / 연립서가 / 2025년 3월
평점 :
'모성의 공동체 여성, 독립, 운동가'(연립서가) - 윤석남과 박현정의 빈틈을 채우는 다정한 기록
0. 23회 이인성 미술상 수상자로 윤석남 선생님이 선정되었고, 대구미술관에서 지난해 말 <윤석남>전이 열렸다. 전시 공간의 절반은 윤석남 선생님이 최근 집중하고 있는 여성독립운동가 시리즈가, 나머지 절반 정도는 <핑크룸>, <손이 열개라도> 등 그녀의 초창기 스케치 작품부터 대표작까지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었다.
전시 관람 전 <혼자 가는 미술관>에서 소개된 윤석남 선생님에 대한 글을 다시 읽고 갔는데, 그 때문인지 최근작인 여성독립운동가 시리즈보다 다른 작품들에 더 마음이 갔다. 내게는 초기 스케치 작품들이 참 좋았다.
1. 여성독립운동가 시리즈는 시각적으로 강렬하긴 했지만 어윤희, 차미리사 등 처음 본 인물들에 대해 선뜻 마음이 뺏기진 않았다. 작품 캡션을 꼼꼼하게 읽어 봤지만 A4 반페이지 정도의 글로 그들의 삶과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처음 느낀 감각은 뭔가 ‘탱화 같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나 해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김천의 직지사까지 갔다. 명부전 주변에 그려진 지옥도를 보기 위해서였다. 어딘가 비슷하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비슷하게 느꼈던 이유가 뭘까? 내 무딘 감각 탓도 있지만 뭔가 모를 ’무서움’을 지옥도와 윤석남의 초상화 작품들에서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모성의 공동체 - 여성, 독립, 운동가>(연립서가)는 윤석남이 그렸고, 그리고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 100인>에서 윤희순, 김향화, 어윤희, 유관순, 가네코 후미코, 이애라, 최용신, 차미리사 등에 관한 글이다. 이 책은 작품에 관한 글이지만, 형식과 내용 면에서 전형적인 작품 해설이 아니다. 이 책을 쓴 박현정의 말대로 “글과 그림은 따로,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윤석남 선생님과 저는 서로 각자의 여행을 떠났고, 길이 다르니 여행지에서 만난 적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책의 5장은 윤석남의 “이애라 초상”으로 시작하지만, 박현정은 이애라의 딸이 묻혀져 있는, -그러나 지금은 없는- ‘산7번지’를 찾아 나선다. 아현시장에서 버스를 타고 고개를 오르며, 바닥에 내동댕이 쳐져 죽게 된 이애라의 딸을 떠올린다. 이어진 아현동 만리동 고개 정거장에서는 이 곳이 왜 애오개로, 아현으로 불렸는지로 생각이 이어진다. 가파른 계단의 발바닥 그림을 보며 러시아로 가고자 서울, 원산, 함경북도까지 갔지만 결국 체포되고 말았다는 이애라의 여정을 이야기하고, 가파른 비탈길 아래에 놓여 있는 ‘만유인력’이라는 이름의 책방을 거쳐 만리 배수지 공원까지 걷고 이애라의 삶을 재구성하고 이애라의 딸을 애도한다.
3. 처음 책을 접했을 때, 여성독립운동가의 전기를 기대했다면 크게 잘못된 예상이다. 애초에 ‘여성-독립-운동가’의 전기는 쓰여지기 어렵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녀들에 대해 제대로 된 기록이 없고, 기록이 있더라도 충분하지 않다. 윤석남은 사진이 남아있지 않다면 상상으로 그렸다고 한다.
이 책 역시 한 여성에 대한 아주 작은 기록/기억의 조각에 기대어 그녀들이 걸어갔던 공간을 따라가며 그녀들의 삶을 복원/재생한다. 역사의 큰 이야기들로만은 채울 수 없었던, 그래서 생기게 된 빈틈을 아주 다정하고 섬세한 마음으로 채워나간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글이 아름답다고 느껴진 것은 여성독립운동가의 삶 자체가 아름답기도 했지만, 그 빈틈을 채워나가는 작가의 솜씨 때문이었다. 서경식의 <나의 서양미술순례>를 처음 읽었을 때의 놀라움이 이 책을 읽으며 되살아났다. 작품에 대해 말하지만 작품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고, 자신에 대해서 말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는다. 이 책은 여성에 대해서 말하지만 여성에 대해서만 말하는 책이 아니고, 독립에 대해서 말하지만 독립만 말하는 책이 아니었다. 작가가 의도했는지 알기 어렵지만, 내게는 서경식의 ‘순례’를 계승하는 글쓰기로 읽혔다.
4. 서간문 형식의 글에서 글쓴이가 마주하는 곤경은 실제 편지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실제 편지라면 송신자인 ‘나’와 수신자인 ‘너’ 사이에는 서로가 알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는 명확하다. 그러나 송신자와 수신자 사이에서 이 편지를 보는 제3자(독자)가 존재할 때 ‘수신자의 분열’이 일어나게 된다. 송신자는 '너'에게 말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실제로는 '그'(독자)에게도 말하게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책처럼 수신자들(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세상을 떠난 경우, 송신자는 부재하는 ‘너’에게 글을 쓰는 형식을 취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독자’(제3자)에게 말해야 한다. 형식과 실질도 분열되는 것이다. 이때 송신자(작가) 입장에서는 송신자의 이야기만이 아닌 수신자 ‘너’의 이야기를 수신자 ‘그’에게 전달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한다. 송신자 ‘너’의 이야기를 ‘그’에게 전하려는 의도가 너무 강한 글이 되면 서간문 형식의 글은 실패하게 된다. 편지 형식을 빌렸지만 실제로는 편지가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다. 진정성의 파열,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서간문 형식의 글이 자주 지루해지게 되는 이유이지만,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편지는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5. 이 책이 ‘서간문의 곤경’을 돌파하는 방법은 송신자는 수신자 ‘너’를 수신자 ‘그’보다 더 강하게 의식하는 것이다. 서문에서 박현정은 “그동안 제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목숨을 바친 분들은 결국은 얼마나 많은 시간대를 살아 내고야 마는지요. 여행지 곳곳에서, 그분들과 손을 마주 잡듯 가까이 다가서거나 스쳐 지나가며 눈이 마주쳤기에 ‘편지’를 쓸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수신자가 실존하지 않지만, 송신자인 작가는 그들을 구체적 장소와 기억, 사물과 결합시켜 서사의 축을 구성해 부재하는 수신자를 마치 현존하는 존재로 구성한다. 3번에서 작가가 그녀들이 걸어갔던 공간을 따라 걸어갔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마치 아감벤의 '부재자의 정치', 데리다의 ‘유령적인 글쓰기’를 떠오르게 하는 전략이다. 역사에서 지워진 여성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문학적으로 호명하고 실질적인 정치적 발화를 수행한다.
송신자는 부재하지만 부재하지 않는,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살아있지 않지만 살아있는 존재인 수신자들과 깊고 내밀한, 다정하고 친밀한 대화를 나눈다. 수신자 ‘그’, 우리 독자들이 그 다정한 대화에 귀기울이며/엿보게 만든다. 서간문의 곤경은 송신자가 수신자 ‘너’에 대해 집중할 때만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읽기였다. 단순한 역사적 재현이 아닌 1939년생 여성 화가와 1970년대생 여성 작가가 19세기 말에 태어난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만나고 엮여서 연대하는 과정을 숨죽여 지켜보는 느낌은 서간문의 형식 덕분에, 더 나아가 그 형식의 곤경을 넘어서는 힘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여기서 '다정함의 정치'를 발견했다. 다정한 자세는 연대로, 연대는 정치적 행위로 전환된다.
6. 무서움의 실체 – 자기성찰의 눈
신관빈과 어윤희 초상은 내가 가장 무서울 그림이라고 느꼈던 작품들이었다. 굶주림으로 잠들지 못하는 유관순에게 자신의 밥을 양보했던 어윤희 이야기에서 내가 느낀 무서움의 실체는 내가 그녀들만큼 결기도, 용기도 없기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윤석남 작가가 윤두서의 자화상에 영감을 받았다는 말은 내가 느낀 무서움의 정체를 더 명확히 해주었다. “‘불타오르는 얼음’ 같은 눈입니다. 자신의 약점과 추악함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힘에 보는 쪽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계속 보고 싶으면서도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윤두서의 눈이 저 역시 꿰뚫어 본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191쪽).
지옥도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 역시 그런 이유였을 것 같다.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는가? 정의로운가? 운동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나와 내 자식에 대한 사랑이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되고 있는가? ‘모성’을 실천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어느 하나 당당하게 답할 수 없다면 지옥행을 피할 길이 없으리라는 무서움. 이 책이 여성에 대해서 말하지만 단지 여성에 대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7. 김도균 작가가 이 책의 사진 작업에 참여했다고 해 출간되자 마자 사서 읽었다. 연립서가의 여느 책들처럼 이 책 역시 글뿐 아니라 책의 구성과 형태, 수록된 사진도 뛰어나다. 역사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용어 해설, 자료, 참고문헌도 충실하게 담겨 있다. 윤석남의 그림, 12인의 독립운동가, 박현정의 글이 섬세한 대위법을 이루는 이 책을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문화일보에서의 소개글처럼 ‘자주 울컥하고 끝내 충일해지는 책이다’.
박현정은 앞서 언급한 <혼자 가는 미술관>의 작가이기도 하다.
윤석남 선생이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하고 제일 먼저 시작했던 일인 달리기였다고 한다. 1979년 4월 25일. 구반포에서 국립묘지까지. 바로 오늘이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이유로 4월 25일에 리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이제야 리뷰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