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벌 -권영민


지난 1월 런던에서 돌아오는 길에 썼다. 실화에 기반했다고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 소설로, B-소설로라도 읽힐 수 있다면 좋겠다.



택시에서 내렸다. 짧은 포옹과 함께 간단한 인사를 주고 받았다. 

아참, 둘이서 사진도 찍었다. 엄마에게 잘 지내다가 들어간다는 보고를 해야 하니까. 그리곤 녀석은 여느 때처럼 뒤꿈치를 들고 걷는 그 특유의 걸음으로 성큼성큼 기숙사로 걸어갔다.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지난 해 5월에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이상할 정도로 서운한 감정이 든다. 그래도 택시에서 그간의 오해도 풀고, 손도 잡고 올 수 있었다. 



지난 번에 내가 왔을 때는 엑시앗(기숙학교에서 2박 3일의 짧은 외박)을 마치고 녀석을 지하철로 데려다줬었다. 지하철로 학교까지 오는 길이 조금 서글펐다. 물론 굳이 그런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고, 느껴서도 안된다는 걸 안다. 나는 외국인이고, 잠깐 아들을 보러 온거니까. 그래도 다른 학생들이 고급 차량을 타고 하나 둘 씩 기숙사로 돌아오고 있을 때, 나와 녀석은 지하철을 타고 비를 맞으며 걷고 있자니 저절로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녀석은 아무렇지 않은 눈치였다. ‘아빠는 여기 안 사니까 당연한거지..’.  그 때 느낀 기분 탓일까, 이번에는 택시를 탔다. 35파운드를 냈다. 녀석과 마주보고 1시간동안 대화를 나눈 데 쓴 비용치고는 적당하다. 


녀석의 뒷모습을 보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기숙사 앞에서 다른 학생들이 들어가는 것을 지켜 보았다. 그런데 저기서 녀석이 달려왔다. 


“어.. 왜 다시 나왔어?”

그렇게 묻고 보니, 녀석에게 이번에 주기로 한 요시다 포터 탱크백이 내 어깨에 둘러져 있었다.

“아, 가방 가지러 왔구나. 잘했어“


”아빠, 그게 아니고.. 아이폰을 택시에 두고 내렸어“



순간 머리가 하애졌다.

그리고 곧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얼른 택시 호출앱을 열어 기사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다른 연락처를 찾다가 겨우 연락이 닿은 곳은 우리를 태워 온 기사가 아닌 택시회사였다. 그러는 사이 택시에서 내리고 15분은 흘러 있었다. 15분이면 택시 기사는 제법 멀리 갔을 가능성이 컸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코벤트 가든에서 해로우까지 오는동안 기사는 나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상대 운전자에게 욕을 했다. 브레이크를 과격하게 밟았고, 그렇게 길들여진 오래된 토요타 프리우스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굉음이 났다. 그런 운전자라면 아마도 센트럴 런던까지 이미 가버렸을지도 모른다. 


녀석은 한 눈에 봐도 긴장한 모습이었다. 아빠에게 혼날 걱정, 행여나 아이폰을 되돌려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내 전화로 다시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차에서 내린지 거의 30분이 지나서야 기사와 통화가 되었다. 영국 학교에 10년동안 아들 녀석을 보내면서 내 앞에서 영어로 누군가와 대화를 이토록 길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빠가 늘 평가의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본다고 생각해서였겠지만... 그래도 급하니까 하는구나. 그 정도로 녀석은 다급해 보였다. 중동에서 온 이민자 택시 기사와는 대화가 어긋나는 듯 보였다.


”뭐래?“

”지금은 다른 승객을 태우고 있어서 바로는 못 온대..  한 시간 후에 다시 전화해보라는데.. 어쩌지? 난 지금 전화가 없잖아..“


어느 새 9시가 되었다. 기숙사 입실 마감시간이다.

“아빠가 여기서 기다릴께. 한 시간 후에 나와서 아빠 전화로 전화하면 되지 않을까?”

“아빠가 한 시간 후에 전화해주면 안돼?”

물론 전화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는 한국이 아니다.



“그 사람과 아빠가 대화가 가능할까? 내가 여기서 그냥 기다릴께“

”여기 너무 춥잖아. 비도 오고.. 아빠 그냥 호텔로 가. 내가 Mr Marchant에게 전화 빌려볼께“

”그게 돼?“

”안되면 키런한테라도 부탁해볼께. 키런이 빌려줄거야“.



녀석이 다시 돌아갔다. 아빠 한번 더 보러 나온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반대로 전화기를 두고 왔다는 나쁜 소식이었다.



 버스로 갔다가 다시 택시로



내가 내 아이를 못 견뎌하는 부분 중에 하나가 이런 거다. 물건 잃어버리는 것. 

물건을 좀처럼 잃어버리지 않는 나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착각일 수 있다- 와 달리 녀석은 물건을 자주 잃어버린다. 지난 해 6월 학교에서 간 그리스 여행에선 애플워치를 호텔에 두고 왔다. 다행이 그리스의 호텔에서 애플워치를 영국의 학교까지 소포로 보내줬다. 덕분에 여름방학은 스마트 워치 없이 지내야 했다. 애플워치를 잃어버렸 보던 그 여름에는 또 에어팟도 잃어버렸다. 사촌 집에서 놀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결국 그건 찾지 못했다. 물건은 잃어버린 건 때로는 새 물건으로 갈아탈 기회이기도 하다. 녀석은 두꺼비도 아니면서 헌 에어팟 프로를 잃어버리고, 신형 에어팟 프로를 다시 샀다. 이번에 한국에서 영국으로 들어가는 날도 에어팟이 없다고 소동을 피웠다. 이번에는 겨우 찾긴 했다.


물건을 잃어버리고 찾고, 찾고 잃어버리고... 한 두 번이 아니다. 지난 해는 이런 일도 있었다. 녀석과 둘째, 은희 셋이서 런던에 지낼 때의 일이다. 평소 쇼핑을 거의 하지 않는 은희가 모처럼 영국산 신발을 하나 샀다. 그리고 녀석이 쇼핑백을 들었다. 엄마 대신 들어주겠다는 기특한 말과 함께. 쇼핑을 마친 세 사람은 이층버스 제일 앞자리에 앉아 런던 시내를 구경하며, 빅밴을 보러갔다. 버스에서 내려 빅벤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은희는 녀석의 손에 새로 산 신발이 든 쇼핑백이 없다는 걸 알아챘다. ”야! 쇼핑백은?“ 아마도 은희가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묻지는 않았을 거다. 은희는 다급하게 타고 온 버스와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타고, 그 버스의 종점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다행이 그 버스가 있었고, 쇼핑백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모처럼의 런던 시내 여행은 그렇게 끝났다. 


녀석과 있으면 이런 일이 제법 된다. 잘 지내고 있다가도 물건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찾으러 다니고, 그러는 사이 일정도 끝나 버린다. 돈도 아깝지만 정신적 소모도 어지간히 된다.


이제야 생각이 났는데, 지난 해 5월, 런던에 온 것도 녀석이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BRP 카드라는 일종의 영국 비자를 또 어디선가 잃어버렸다고 했다. 영국에서 거주하는 외국인은 해외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려면 BRP 카드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녀석은 7월에 학교에서 그리스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전에 카드를 재발급 받아야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재발급은 일정상 가능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런던에 가서 재발급 절차를 밟아야 했다.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담 슬롯을 최소 몇 주 전에 예약해야 했다. 분실 경위를 작성하고 영국 경찰에 신고를 해야 했다. 영국은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비용이 들었다. 카드 재발급 비용만 거의 50만원이 들었다. 아까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만원이면 해결될 일인데, 영국은 정말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외국인들의 돈을 뜯어간다는 느낌이었다. 


재발급 신청을 하러 가는 당일도 잊을 수 없다. 오전 일찍 서류를 제출하고 오후에는 녀석과 런던 시내를 느긋하게 구경할 예정으로 첫번째 슬롯인 9시로 예약을 했다. 드문 런던의 맑은 날 아침이었다. 녀석과 버스를 타고 런던의 출근길 풍경을 구경했다.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세인트 폴 대성당을 거쳐 마천루가 즐비한 시티오브런던에 있는 비자센터에 도착했다. 서류 제출 중에 녀석이 이번에는 여권을 호텔에 두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 기분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정말로 폭발할 것 같았다. 


“도대체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거야?” 

사실을 말하자면 폭발했다. 9시에 맞춰 도착했는데, 호텔에 다시 돌아오면 내가 예약해 둔 슬롯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다시 또 몇 주를 기다려야 하는 게 아닐까? 런던에 또 와야 하나? 비자 때문에 비행기값, 호텔값으로 몇 백만원을 지출했는데, 이걸 한번 더 해야 한다고? 다시 택시를 잡았다. 버스를 타고 돈을 아꼈다는 만족감은 사라졌다. 비자 센터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30분만에 돌아오겠다고 하고 다시 호텔로 향했다. 비자센터는 영국 정부가 사기업에게 위탁을 주어 운영하는 곳이라 그래도 융통성이 있었다. 몇 분 늦었지만 다행이 신청을 마무리했다. 


녀석의 물건 잃어버리기 역사에 대해서 길게 썼는데, 이런 일이 꽤 자주 있다는 것이 문제다. 녀석을 보면 가끔은 나와 지금 여기 있지만 정신은 여기에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또 아무 곳에나 물건을 두고, 제대로 챙기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랬을 거다. 아이폰을 보고 난 후 다리 밑과 차량 시트 사이에 끼워뒀을 것이다. 그리고 그냥 내렸고, 내리고 나서도 확인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도 어쩌면 병이 아닐까. 병이라면 무슨 병일까? 

병이 아니라면 보리스 존슨이나 윈스턴 처칠 같은 걸까, 그런 생각도 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영국의 엘리트 계층들은 엘리트로서의 자기의식이 있어서 헤어스타일이나 물건 정리 따위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보리스 존슨의 머리가 자다 일어난 것 같은 상황인 것도 이튼칼리지 출신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고. 녀석도 비슷한 종류의 학교에 다녀서 이러는 걸까?  ‘나는 머리스타일이나 소지품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야’라는 그런 의식.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히 물건에 집중하지 못하는 성격인 걸까. 어릴 때부터 자주 물건을 잃어버렸으니 환경 탓은 아닐 것이다.  뭔가에 집중하지 않고, 정신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일까. 아니 그 반대로 다른 뭔가에 집중하느라 아이폰 따위에는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일까.



택시에 녀석이 전화를 두고 내렸다고 은희에게 알렸더니 지혜로운 답이 왔다. 

”녀석이 해결해야 해. 매트론과 알아서 해결하게 하고 여보는 얼른 들어가서 쉬고 내일 귀국 준비나 잘 하자“


내일 오전 11시가 출국이니까 8시에는 호텔을 나서야 한다. 아직 짐도 안쌌고... 얼른 가야 하는게 맞다.


그러던 중에 어느 덧 한 시간이 지났다. 

비가 많이 와 제법 추웠다. 녀석은 내가 떠난 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빠, 내가 택시 기사와 통화를 했어. 그런데 여기로는 못 가져다 준대.“

”아 왜? 아빠가 그 택시 타고 갈테니까 오라고 해“

”그래도 안된대. 여기 오는 거보다 그냥 일하는 게 더 돈이 되기 때문에 못온대“

”그럼 어떻게 해? 택배로 보내달라고 해“

”그것도 안해준대. 자기는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없대. 이 아저씨 뭔가 말이 너무 안 통해. 그냥 벽 같아“

”아, 우리가 페이를 한다는 데도 왜 안 해준다는거지?  이해가 안되네.. 그럼 안 주려는건가?“

”자기 집으로 오래.. 내일 오전에 오라는데, 아빠가 좀 가주라..“

”야, 아빠가 내일 오전 11시 출국인데 거길 어떻게 가? 못 가지..“

”그럼 어떻게 해? 아.. 어쩌지...“

”매트론하고도 이야기해보고, 안되면 가디언에게 부탁해볼께“


택시 기사가 결국 오지 않게 됐단 걸 알고, 지하철을 타러 갔다. 이때만 하더라도 가디언에게 부탁해볼 심산이었다.

그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빠, 이거 매트론 전화야.“ 녀석이었다.

”매트론이 통화했는데 그 기사가 무조건 집에 와서 가져가래. 내일 오래.. 내일 10시까지“

”가디언에게 부탁해도 내일 10시까지는 못 가. 가디언은 9시 출근이라, 9시에 바로 간다고 해도 10시까지는 무리지. 지금 일요일이라 연락이 닿지 않고“ 

”아 그렇네... 그럼 어쩌지?“

”아빠가 가디언에게 부탁해볼텐데 화요일에 가지러간다고 해줘. 가디언에게 아빠가 부탁해볼께“

”화요일은 안된다고 하던데.. 내일 무조건 오래“


”거기가 어딘데?“

”받아 적을 수 있어.. E13 8AN, Liddon street, No.9이래. 가디언이 내일 아침에 출근하실 때 가면 안되려나?“

”화요일에 가도 돼. 핸드폰 하루 없다고 별 일 안 생겨. 걱정마. 찾게 된다“

”Mr 마천트가 다른 옵션도 이야기해줬는데, 우버는 픽업 옵션을 선택할 수도 있대. 우버 기사가 물건을 받아서 찾아주기도 한데“

”그래? 그거 해도 좋게 아빠가 한번 알아볼께“

”이제 나 컴퓨터도 내야 해서 정말로 연락이 지금부턴 안돼... “

”그래. 아빠가 뭔가 정해지는 게 있으면 밤 중에 메일할께“

주소를 검색해보니 런던의 zone 3에 해당하는 외곽지역이다. 해로우가 런던 서부, 기사의 집은 웨스트햄 근방으로 런던 동부다. 

말 그대로 극과 극이다.


지하철과 237번 버스, 웨스트햄 가는 길


플랫폼에 지하철이 들어왔다. 런던의 지하철은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다. 우버 픽업 서비스에 관한 정보는 찾아보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다.

Sudbury에서 탄 지하철이 그린파크를 지나자 이걸 타고 한 시간 반을 더 가면 웨스트햄에 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거기까지 갔는데 못 만나면 어떻게 하지? 비가 많이 오는데  가서 기다릴만한 곳이 있을까? 민약 기사가 오늘 새벽 늦게까지 일하면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하는데 이 추위에 괜한 짓을 하는 걸까? 


오만 생각이 오가던 중에 돈으로 생각이 옮아갔다. 아마도 가디언에게 부탁하면 도와야주겠지만 이 거리라면 비용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우버로 가능하다고 해도 족히 60파운드는 내야 가능할테고. 반면 내가 오늘 간다면 그보다 저렴하게 처리할 수 있다. 좀 피곤하겠지만 내일 11시간이나 비행해야 하는데, 거기서 자면 된다. 


기사는 무조건 집에 들어올거야.. 설마 안들어오겠나? 기사가 내일 10시 전에 오라고 했으니까, 기사 본인도 최소 6시간은 자야 할테니 새벽 3시에는 아마 들어올거고. 그럼 내가 가서 기다렸다가 아이폰을 돌려받자. 그리고 공항에 가기 전에 해로우에 들르자. 빠듯하지만 가능은 할 것 같다. 그렇게 웨스트햄까지 가보기로 했다.


내 아이폰 배터리는 11%, 시간은 이미 자정을 지나고 있었다.

아이폰이 꺼지면 여러가지 난처했다. 길도 못찾고, 애플페이가 안되니 지하철, 버스도 못탄다. 택시앱도 켤 수 없다. 그 때부터는 제발 전화기야 꺼지지만 마라... 아이폰에 아니, 배터리에 대고 기도했다. 그래도 혹시 꺼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구글맵을 켜서 기사의 집 위치를 숙지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N237을 타고, Plaistow police station에 내린 후 북쪽으로 걸어 좌측 코너로 돌아 두 블럭을 걷는다. 지도를 보고 정리했지만 처음 가보는 낯선 길이라 자신은 없었다. 너무 늦은 시간인데다 비도 많이 와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행여나 전화가 꺼질까 꼼짝 앉고 내릴 역을 놓치지 않으려 지하철 안내방송에만 귀를 기울였다. 



그러고 있다 보니 어쩌다 이렇게 됐나.. 후회가 밀려왔다. 호텔에서 녀석의 기숙사로 갈 때 지난 번처럼 지하철로 갔다면 이런 일이 생겼을까? 괜한 자격지심과 조금 편하게 가보겠다는 생각으로 택시를 탄 것 때문에 벌을 받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니, 남들은 다 자기 차를 타고 가는데, 우리는 택시 타고 가는 게 큰 잘못은 아니지 않아? 



후회란 건 이런 거다. 우연한 실수도 벌로 여기게 만든다. 그리고 그 벌에 억울함을 느끼게 한다. 조금 빨리, 조금 편하게 가려 했다가 나는 지금 편하지도 않고 아직 호텔에도 못들어가고 있다. 만약 지하철을 타고 갔다면 녀석이 스마트폰을 잃어버리지 않았을테고, 우리는 9시에 헤어지고, 나는 10시면 다시 호텔에 돌아와 짐을 싸고 이때 쯤이면 잠에 들었을 거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짜증이 났다. 돈 쓰고 고생하고.. 뭐하는 짓인가.. 중동 이민자 택시 기사에 대한 원망도 시작됐다. 학생이 학교에 가야 하는데 어떻게 자기 집까지 찾아가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갈 수 있단 말인가? 돈을 지불하겠다는데 좀 와서 가져다 주면 안되나? 한국에서는 당연한 일인데... 불친절한 기사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사의 집 앞에서 그를 만나면 죽을만큼 때려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왜 무조건 자기 집으로 와서 찾아가라고 하는건가... 다시 생각은 런던에, 아니 영국에 대한 환멸로 이어졌다. 퀵서비스도 없는 멍청한 나라.. 물건을 잃어버려도 찾을 수 없는 부도덕한 나라.. 외국인의 돈을 체계적으로 뜯는 양아치 같은 나라.. 




Requiem, CHRIS OFILI



테이트 브리튼에서 본 'Requiem‘이라는 벽화가 생각났다. 켄싱턴구 남부 지역 빈민들이 모여 살던 켄싱턴 구립 운영 아파트 화재로 인한 희생자를 추모한 작품이다. 그렌펠 타워 화재 사건으로도 알려져 있다. 스프링쿨러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수십명을 죽게 만든 정부와 기업이 합작해 대규모 희생자를 냈다. 멍청한 정부와 공공예산 삭감이 불러온 대참사였다. 


이 작품이 떠오른 건 이 화재의 시작이 중동 사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발화지점인 4층은 중동계 이민자가 살고 있었다. 화재 직후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그 중동 이민자에게 비난이 쏟아졌다고 한다. 인종 차별과 함께 이슬람에 대한 테러공격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안되지.. 이슬람과도, 중동과도 상관 없는 일이야.. 그냥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택시 기사 이름이 Mr Ali인 것을 알고 나니 ”역시 중동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었나“... 그런 생각으로 옮아갔다. 중동 사람들은 부도덕하다. 런던이 말도 안될 정도로 불친절하고 멍청하고, 더럽고 치사한 나라가 된 것도 이런 사람들 때문이 아닌가... 웨스트햄에 내릴 때 즈음하여 스스로 자책하던 나는 어느새 인종차별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웨스트햄 역은 생각 이상으로 큰 역이었다. 역 내부에서 화장실을 찾아 헤맸지만 그 큰 역에 화장실이 보이지 않았다.-아마 새벽 시간에 내가 정신이 없어서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런던은 치사할 정도로 화장실에 인색하다. 공중 화장실은 없거나 있어도 더럽다. 그냥 더러운게 아니라 추접다고 할 정도로 엉망으로 더럽다. 아마도 위생감각이 없는 인도와 중동과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아무데나 오줌을 싸서 그럴 거야. 혹은 이민자들과 난민들이 화장실에서 범죄를 일으켜서 화장실이 없는 걸거야.. 


역에서 나오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후드를 뒤집어 쓰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신발은 걸을 때마다 스펀지에서 물이 솟아 오를 정도로 젖었다. 소변이 급했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노상방뇨를 하고, 버스를 기다렸다. 비가 씻어내 주길 기대하며.. 그러다 족히 20분은 기다렸을까.. 두꺼운 파카가 무색할만큼 추운데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정류장에 한 인도사람이 와서 말을 걸었다. 


"캐닝타운행 버스 지나갔나요?“. 발음에 여전히 인도 억양이 남아 있는 키 작은 남자다. 이 사람도 이민자일까?

“아무 버스도 안 지나갔어요”. 그날 밤, 나는 퉁명스러웠다.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버스 한대가 왔다. 그 버스를 타고 아까 본 경찰서 앞 정류장에 내려 북쪽을 향해 걷고, 왼쪽 코너를 따라 두 블럭을 갔다. 이상하다. no. 9이라 적힌 집이 없었다. “뭐지? 속은건가?” no. 23이라고 적힌 집 앞에는 프리우스 한대가 서 있었다. 왠지 내가 탔던 택시 같아 보이기도 했다. no.23은 불이 꺼져 있었고, 아니면 말지라는 생각으로 현관문을 두드렸다. 몇 번 두드렸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여기 아닌가 보네.. 그래도 여기 근처가 맞을 것 같으니까 기다려보자’. 


아 그러던 중에 no. 23 집에 불이 켜졌다. “누구세요?”.  이번에도 한 중동 사람이 나왔다. “여기 Mr Ali 집인가요?, 볼트기사가 사는 곳 맞아요?“. 집 주인은 그런 사람은 없다고 했다.


“no 9이 어딘지 아나요?”

집주인은 자기 스마트폰을 켜서 지도로 아래로 한 블럭을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알려줬다.


길을 따라 내려왔지만 No. 9은 보이지 않았다. 프리우스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로 치면 영세민 아파트 비슷하게 집합건축물이 늘어선 한눈에 봐도 거무죽죽한 위험해 보이는 동네였다. 땅콩주택 같은 다세대 주택들이 늘어선 집들은 전형적인 영국 서민들의 가정으로 보였다. 동네에 가난이 묻어 았었다.


집의 넘버링들이 이상했다. no. 23의 다음 집은 24가 아니라 27이었다. 27 다음 집은 29고, 23의 이전 집은 19였다. 알 수 없는 패턴이었다. 그리고 no.9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몇 집을 두르렸다. 새벽 1시에 세 네 집의 주인을 깨웠다. 하나 같이 이민자였다. 그러던 중 no.8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늦은 밤이라 반응이 없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아주 작은 키의 한 중동 아주머니가 나왔다. 



“여기가 Mr Ali 집이 맞나요?”

“맞아요. 무슨 일이세요?”

“제가 전화기를 Mr Ali의 차에 두고 내렸어요. 그가 여기와서 찾아가라고 했는데 그는 집에 왔나요?”

“아니요. 그는 여기 없어요.”

“알겠어요. 저는 그냥 당신 집 앞에서 그를 기다리겠습니다”


지금도 왜 No.8이 no.9인지 모르겠다. 여러모로 혼란 그 자체의 밤이었다.


그렇게 겨우 집을 찾았다. 잠시 후 그녀가 다시 나왔다. 

"그가 지금 오는 중이래요. 20분 정도 걸린다고 해요“

“아 정말요? 아 감사한 뉴스네요”

“추운데, 잠깐 들어와 계실래요?”

“아니요.. 천만에요. 괜찮습니다.”


20분만 기다리면 된다. 시간을 확인하려고 전화기를 꺼냈다. 배터리가 이미 방전되어 있었다. 그래도 녀석의 전화를 받으면 그 전화로 연락과 버스를 타면 된다. 30분 정도 지나서 낯 익은 프리우스가 모습을 보였다. Mr Ali는 운전석이 아니라 조수석에서 내렸다. 

‘어? 왜 조수석에서 내리지?’

그가 걸어왔다. 택시에서 볼 때보다 좀 더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저는 이 방법 밖에는 다른 옵션이 없었어요. 그래서 무례인줄 알지만 지금 당신 집에 오게 됐어요”

“괜찮아요. 제가 가져다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제 택시가 제 차가 아니라서 제 마음대로 방향을 정하지 못합니다.”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그러니까 그는 회사 택시를 운행하는 기사 신분이라, 아이폰을 가져다 주고 싶어도 가져다 주지 못했던 것이다.

연신 땡큐를 연발하고, 악수도 했다. 다시 내 손에 온 녀석의 아이폰을 보니 헛웃음이 났다. 


N15, 채링크로스로


N15, 나이트버스 15번을 타면 채링크로스까지 간다. 비를 뚫고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이번에는 다시 한 시간만 버스를 타면 된다. 5분 정도 지났을까, 버스가 왔다. 이층에 올라가자 바깥 비로 습기가 가득해 창문 밖이 보이지 않는다. 녀석의 전화로 은희와 대화를 나눴다. 


“인디아나 존스 찍은 것 같아... 너무 춥고 힘들다”

“여보 대단해, 고생했어... 우리 남편 해리슨 포드네”


안도감에 잠이 쏟아졌다. 

습기로 창밖도 보이지 않아 더 그랬다. 바깥이 보이지 않아 버스 내부를 둘러보았다. 모두 인도 사람, 중동 사람... 피부가 하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시안도 나 뿐이다. 그제서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한거지 되묻게 된다. 전화기를 잃어버린 것도 나고, 노상방뇨를 한 것도 나인데... 이민자 때문에 화장실도, 거리도 엉망이라고,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다니... 늦은 밤 2시의 런던 버스에는 청소 노동자들이 이동한다. 내가 싼 소변을 치우는 사람들.. 전화기를 잃어버린 사소한 일조차 의연해지지 못하는 빠듯하게 사는 사람들이 가까운 빠듯하게 사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오해하게 만드는 것, 거기에 삶의 무게가 있다. 


그깟 아이폰, 오래된 12프로맥스인데 중고로 사면 50만원 밖에 안해. 그렇게 생각하고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또 일당 10만원 더 버는 것 그거 아무 것도 아냐라고 생각하고 전화기를 잃어버려 전전긍긍하는 사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는 서로를 의심하고 적대시하고 오해하게 되는 것이다. 녀석이 전화를 잃어버리고 나서 내 마음을 지배하는 건 솔직히 말하자면, 부끄럽지만 ’계산‘이었다. 중고 아이폰 가격 50만원, 가디언에게 부탁하면 최소 30만원, 우버 픽업 요청하면 12만원, 내가 가면 버스타면 갈 때 3파운드, 올 때 3파운드, 녀석에게 가져다주는 비용 30파운드 다 해도 10만원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그런 계산이 지배했던 것이다. 


창 밖이 보이지 않아 어디까지 왔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습기를 손으로 닦아내니 왠 다리가 보였다. 워털루 브릿지다. 한 정거장을 지나쳤다. 아 이거 건너면 안되는데.. 반대 방향인데.. 이번에도 뛰어서 겨우 내렸다. 


내리고 보니 녀석과 오늘 낮에 온 코톨드 갤러리 앞이었다. 

미술관에서 오면 녀석의 정신은 여기 있는 것 같지 않다. 가끔, 아니 자주 아들 녀석과 있다보면 껍데기와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보거나 딴 짓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림을 설명해줘도 어디까지 듣고 있는지 자신이 없다. 그냥 알겠다고 대답만 하는 건지, 정말로 알겠다는 건지... 솔직한 내 느낌은 전자에 더 가깝다. 심지어 그림을 보고는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냥 건성건성 보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하는 것 같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래도 그림 한 점이라도 재밌다고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 미술관 다니는 것도 습관이라 언젠가 좋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미술관에 간다. 여기와 지금, 바로 앞의 사람과 물건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내가 단지 그렇게 느끼는 걸까. 



그래도 내셔날갤러리와 코톨드갤러리를 오늘 돌아보면서 녀석과 재밌게 본 작품이 하나가 있긴 있었다. ’ 엘리야와 까마귀‘(구에르치노)라는 작품이었다. 라파엘로 화풍으로 그려진 초대형 그림에서 엘리야는 신이 까마귀를 통해 보내준 음료와 빵을 두 손을 모은 채 받고 있다. 이방 종교인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와 제사장 7000명과 싸워서 이긴 영웅 엘리야는 고작 여왕 한 사람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러 온다는 소식에 두려움에 몸을 떤다. 그게 그렇게 무서웠을까? 왜 신은 무서워 떨고 있는 엘리야에게 음식을 준 걸까? 


“배고파서 그런게 아닐까“. 녀석의 대답이 정답이다. 

배고프면 모든 것에 부정적이 되는 녀석의 모습은 엘리야와 닮았다. 죽지 않고 승천한 배고픈 엘리야의 이야기를 듣더니 이 그림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참을 들여다 봤다. 신앙의 영웅도 배고프면 부정적이 된다.. 코톨드갤러리에서 호텔까지는 15분을 걸어야 한다. 비가 오는 1월의 밤은 추웠다. 나도 죽여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신은 빵만 준게 아니고 미세한 음성으로 엘리야를 위로했다고 하는데, 빵이든 음성이든 뭐든 주시길 하는 마음에 저절로 ’주여‘ 소리가 나왔다. 그렇게 겨우 도착한 시간은 새벽 3시였다. 로뎀나무 같은 호텔에서 세시간을 잤다.


지하철로 가다가 다시 택시로, 해로우


6시 30분에 일어났다.

밤새 챙겨둔 가방과 캐리어를 들고 호텔을 나섰다. 레스터 스퀘어(Lecester square) 역에서 피카딜리 라인을 타고 Sudbury로 가서, 버스로 갈아타고 녀석에게 아이폰을 전달해줄 생각이다. 8시에 기숙사 앞에서 만나자고 메시지를 남겨뒀는데 녀석은 확인을 못했는지 답이 없다.


지하철을 타고 이번에는 스무정거장을 가야 한다. 꽤 가야 한다. 게다가 큰 문제도 해결됐으니 책이나 한번 읽어볼까 하고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읽기 시작했다. 런던에 와서 다 읽겠다고 시작한 책이었는데 돌아가는 날, 그것도 지하철에서 읽게 되다니... 하루키 책은 껌 씹는 것 같은 맛이 있다. 입 안에 옅은 단맛이 난다. 씹는 듯 읽었다. 


구글맵에서 Sudbury라고 하차하라는 알림이 떴다. 이상하다. 역 이름이 그게 아니다. 뭐지? 놀란 마음에 지하철 노선도를 찾아 보니, 세상에 피카딜리 라인은 Acton town에서 분기해 노선이 나뉘어 지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sudbury행이 아닌 히드로공항 행을 탄 것이다. 아, 왜 또 이런 시련이... 괜히 책을 읽었나.. 집중했어야 하는데... 지도앱을 다시 켜서 녀석의 학교까지 검색해보니 지하철로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러면 녀석과 만나기로 한 8시까지 시간을 지킬 수 없고, 9시반까지 공항에 가서 수속하는 것에도 차질이 생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역에서 나와 택시를 잡았다. 이번에는 30파운드다. 분노가 치민다. 게다가 지금은 출근시간, 런던의 도로는 좁고, 차가 막힌다. 또 돈을 쓰고 시간을 썼다는 생각에 어제를 반복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합리적이지 않은데 다시 녀석에 대한 원망이 시작됐다. 녀석이 스마트폰을 어제 갖고 내리기만 했어도, 나는 어제 잠을 푹자고, 8시에 호텔에서 나와 바로 앞에 있는 지하철역에서 환승 없이 앉아있기만 하면 9시에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물론 그건 아니라는 거 정도는 안다. 내가 지하철에서 책을 볼게 아니라 노선을 봐야 했고, sudbury로 제대로 갔어야 한다. 그렇게 자책에 자책을 거듭하던 중에 해로우에 도착했다. 녀석이 나오고 있었다. 교복을 차려 입은 멀끔한 모습으로..


“아빠, 고마워”

“야, 다음 번부터는 진짜 안 찾아준다. 아빠 부탁해.. 제발 물건 좀 잘 챙겨”

“어, 이제 잘 챙길께. 미안.. 아빠 이제 공항 가?”

“응, 이제 가려고.. 너는 지금 수업가나? 지금 가도 돼?”

”지금 가면 돼. 아빠 고마워.. 진짜로.. 조심해서 가고 곧 만나“


원망하다가다도 녀석을 보니 마음이 풀린다. 볼을 쓰다듬고 한번 더 포옹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두 주 후에 다시 또 만나.

녀석이 이번에도 뒤꿈치를 들고 걷는 특유의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저 멀리서 한번 뒤를 돌아보더니 손을 흔들어 준다. 아 드디어 해결했다.



SL9 익스프레스 버스의 고장, 히드로 공항



해결이 됐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해결되고, 해결되면 또 다시 다른 문제가 온다. 그렇게 인생은 문제의 연속인가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호텔에서 여기까지는 지하철과 버스로 오고, 여기서 공항까지는 택시를 탈 예정이었다. 그런데 내 실수로 택시를 벌써 탔으니 이번에는 버스를 타야겠다고 계획을 바꿨다. 


공항까지 익스프레스로 간다는 SL9 버스를 탔다. 출근시간이라 외곽이지만 차가 어마어마하게 막혔다. 내가 수속을 마쳐야 하는 시간이 10시 25분인데, 절반도 가지 못했는데 이미 10시였다. 중간에 내려 택시를 탈까 생각도 했지만 도로 상황으로는 방법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만 간다면 10시 15분까지 겨우겨우 도착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데 버스 기사가 운행 도중 차량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운행할 수 없다고 모두 내리라고 했다. 어? 왜? 그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왜 이런 일이 자꾸 생기는거지? 영국 너무 싫어...


히드로공항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한 노동자가 버스기사를 향해 달려가 큰 목소리로 욕을 해댔다. 솔직히 속이 좀 시원했다. 영어로 욕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 멋지다고까지 생각했다. 


아 그란데 이제 어떻게 하지.. 버스로는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 다시 택시를 잡았다. 택시앱에서는 도착했다고 나오는데 내게 배정된 택시 시트로엥 피카소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어서 취소 버튼을 눌렀다. 또 6파운드의 캔슬피(cancel fee)가 부과됐다.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아 왜! 타지도 않은 택시에, 보이지도 않는 택시에 6파운드는 너무 많잖아.


30인치 대형 캐리어를 들고 6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하여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한 버스를 탔다. 다행이도 히드로 공항행이었다. 그렇게 나는 10시 28분에 공항에 도착해 항공사 직원의 도움으로 가장 늦게 수속을 마무리했다. 짐을 맡기고, 공항 검색대를 지나 보딩게이트 앞 대기석에 앉으니 눈물이 났다. 벌을 받고 있다는 느낌..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내게 1월은 늘 경제적으로 버거운 달이다. 여유가 없는데 아들 녀석과 보내려고 무리해서 비행기 티켓을 사고, 호텔을 잡고, 매일 밤 아이가 좋아하는 고기를 구워주었다. 그리고 여기왔다는 핑계로 꽤 값 나가는점퍼도 하나 사고.. 그러고 보니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택시를 타야 할 때는 안타고, 택시를 타지 않아도 될 때는 또 탔다. 말하자면 녀석이 기숙사에 들어가고 난 하루동안은 런던이라는 그물에 걸린 것 같은 시간이었다. 런던의 그물, 런던이 주는 벌, 런던의 벌...


점퍼를 사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아이폰을 찾기 위해 지나치게 전전긍긍하고, 런던을 쓸고 닦는 이민자들을 이기적이고 비위생적이라고 혐오하고, 6파운드 취소수수료에 터너와 컨스터블과 베이커과 호크니가 살았고, 테이트브리튼과 내셔널갤러리도 공짜로 가는 이 곳 런던에 환멸이 생겼던 거다. 


자주 잃어버리는 것과 어떤 것도 잃어버리려 하지 않는 것 둘 중 무엇이 덜 불행한 것일까. 벌을 받은 게 아니라 여유가 없었다. 벌조차도 여유있게 받을 여유. 6파운드 때문에, 아니 덕분에. 아니 내가 여유있개 돈을 쓸 상황이 지금은 아니라서....


”이제 비행기 탄다“

”아빠 잘 가“


어떻게 아이폰을 찾았는지 끝까지 묻지 않는 녀석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미안해서 묻기 힘든 걸까? 물어볼 시간이 없었던 걸까? 그래, 그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테니까...글쎄, 어느 쪽인지 모르겠지만 녀석이내게 하루동안 선사해준 하루 밤의 지옥 덕분에, 아이폰을 택시에 두고 내려 걸려버린 런던의 그물, 런던이 준 벌 덕분에 한 편의 글이 나왔다. 


그래 글이란, 지옥에서 쓰여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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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의 공동체 - 여성, 독립, 운동가
박현정 지음, 윤석남 그림 / 연립서가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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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의 공동체 여성, 독립, 운동가'(연립서가) - 윤석남과 박현정의 빈틈을 채우는 다정한 기록


0. 23회 이인성 미술상 수상자로 윤석남 선생님이 선정되었고, 대구미술관에서 지난해 말 <윤석남>전이 열렸다. 전시 공간의 절반은 윤석남 선생님이 최근 집중하고 있는 여성독립운동가 시리즈가, 나머지 절반 정도는  <핑크룸>, <손이 열개라도> 등 그녀의 초창기 스케치 작품부터  대표작까지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었다. 

전시 관람 전 <혼자 가는 미술관>에서 소개된 윤석남 선생님에 대한 글을 다시 읽고 갔는데, 그 때문인지 최근작인 여성독립운동가 시리즈보다 다른 작품들에 더 마음이 갔다. 내게는 초기 스케치 작품들이 참 좋았다.


1. 여성독립운동가 시리즈는 시각적으로 강렬하긴 했지만 어윤희, 차미리사 등 처음 본 인물들에 대해 선뜻 마음이 뺏기진 않았다. 작품 캡션을 꼼꼼하게 읽어 봤지만 A4 반페이지 정도의 글로 그들의 삶과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처음 느낀 감각은 뭔가 ‘탱화 같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나 해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김천의 직지사까지 갔다. 명부전 주변에 그려진 지옥도를 보기 위해서였다. 어딘가 비슷하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비슷하게 느꼈던 이유가 뭘까? 내 무딘 감각 탓도 있지만 뭔가 모를 ’무서움’을 지옥도와 윤석남의 초상화 작품들에서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모성의 공동체 - 여성, 독립, 운동가>(연립서가)는 윤석남이 그렸고, 그리고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 100인>에서 윤희순, 김향화, 어윤희, 유관순, 가네코 후미코, 이애라, 최용신, 차미리사 등에 관한 글이다. 이 책은 작품에 관한 글이지만, 형식과 내용 면에서 전형적인 작품 해설이 아니다. 이 책을 쓴 박현정의 말대로 “글과 그림은 따로,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윤석남 선생님과 저는 서로 각자의 여행을 떠났고, 길이 다르니 여행지에서 만난 적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책의 5장은 윤석남의 “이애라 초상”으로 시작하지만, 박현정은 이애라의 딸이 묻혀져 있는, -그러나 지금은 없는- ‘산7번지’를 찾아 나선다. 아현시장에서 버스를 타고 고개를 오르며, 바닥에 내동댕이 쳐져 죽게 된 이애라의 딸을 떠올린다. 이어진 아현동 만리동 고개 정거장에서는 이 곳이 왜 애오개로, 아현으로 불렸는지로 생각이 이어진다. 가파른 계단의 발바닥 그림을 보며 러시아로 가고자 서울, 원산, 함경북도까지 갔지만 결국 체포되고 말았다는 이애라의 여정을 이야기하고, 가파른 비탈길 아래에 놓여 있는 ‘만유인력’이라는 이름의 책방을 거쳐 만리 배수지 공원까지 걷고 이애라의 삶을 재구성하고 이애라의 딸을 애도한다. 


3. 처음 책을 접했을 때, 여성독립운동가의 전기를 기대했다면 크게 잘못된 예상이다. 애초에 ‘여성-독립-운동가’의 전기는 쓰여지기 어렵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녀들에 대해 제대로 된 기록이 없고, 기록이 있더라도 충분하지 않다. 윤석남은 사진이 남아있지 않다면 상상으로 그렸다고 한다. 

이 책 역시 한 여성에 대한 아주 작은 기록/기억의 조각에 기대어 그녀들이 걸어갔던 공간을 따라가며 그녀들의 삶을 복원/재생한다. 역사의 큰 이야기들로만은 채울 수 없었던, 그래서 생기게 된 빈틈을 아주 다정하고 섬세한 마음으로 채워나간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글이 아름답다고 느껴진 것은 여성독립운동가의 삶 자체가 아름답기도 했지만, 그 빈틈을 채워나가는 작가의 솜씨 때문이었다. 서경식의 <나의 서양미술순례>를 처음 읽었을 때의 놀라움이 이 책을 읽으며 되살아났다. 작품에 대해 말하지만 작품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고, 자신에 대해서 말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는다. 이 책은 여성에 대해서 말하지만 여성에 대해서만 말하는 책이 아니고, 독립에 대해서 말하지만 독립만 말하는 책이 아니었다. 작가가 의도했는지 알기 어렵지만, 내게는 서경식의 ‘순례’를 계승하는 글쓰기로 읽혔다.


4. 서간문 형식의 글에서 글쓴이가 마주하는 곤경은 실제 편지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실제 편지라면 송신자인 ‘나’와 수신자인 ‘너’ 사이에는 서로가 알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는 명확하다. 그러나 송신자와 수신자 사이에서 이 편지를 보는 제3자(독자)가 존재할 때 ‘수신자의 분열’이 일어나게 된다. 송신자는 '너'에게 말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실제로는 '그'(독자)에게도 말하게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책처럼 수신자들(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세상을 떠난 경우, 송신자는 부재하는 ‘너’에게 글을 쓰는 형식을 취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독자’(제3자)에게 말해야 한다. 형식과 실질도 분열되는 것이다. 이때 송신자(작가) 입장에서는 송신자의 이야기만이 아닌 수신자 ‘너’의 이야기를 수신자 ‘그’에게 전달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한다. 송신자 ‘너’의 이야기를 ‘그’에게 전하려는 의도가 너무 강한 글이 되면 서간문 형식의 글은 실패하게 된다. 편지 형식을 빌렸지만 실제로는 편지가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다. 진정성의 파열,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서간문 형식의 글이 자주 지루해지게 되는 이유이지만,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편지는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5. 이 책이 ‘서간문의 곤경’을 돌파하는 방법은 송신자는 수신자 ‘너’를 수신자 ‘그’보다 더 강하게 의식하는 것이다. 서문에서 박현정은 “그동안 제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목숨을 바친 분들은 결국은 얼마나 많은 시간대를 살아 내고야 마는지요. 여행지 곳곳에서, 그분들과 손을 마주 잡듯 가까이 다가서거나 스쳐 지나가며 눈이 마주쳤기에 ‘편지’를 쓸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수신자가 실존하지 않지만, 송신자인 작가는 그들을 구체적 장소와 기억, 사물과 결합시켜 서사의 축을 구성해 부재하는 수신자를 마치 현존하는 존재로 구성한다. 3번에서 작가가 그녀들이 걸어갔던 공간을 따라 걸어갔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마치 아감벤의 '부재자의 정치', 데리다의 ‘유령적인 글쓰기’를 떠오르게 하는 전략이다. 역사에서 지워진 여성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문학적으로 호명하고 실질적인 정치적 발화를 수행한다.

송신자는 부재하지만 부재하지 않는,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살아있지 않지만 살아있는 존재인 수신자들과 깊고 내밀한, 다정하고 친밀한 대화를 나눈다. 수신자 ‘그’, 우리 독자들이 그 다정한 대화에 귀기울이며/엿보게 만든다. 서간문의 곤경은 송신자가 수신자 ‘너’에 대해 집중할 때만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읽기였다. 단순한 역사적 재현이 아닌 1939년생 여성 화가와 1970년대생 여성 작가가 19세기 말에 태어난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만나고 엮여서 연대하는 과정을 숨죽여 지켜보는 느낌은 서간문의 형식 덕분에, 더 나아가 그 형식의 곤경을 넘어서는 힘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여기서 '다정함의 정치'를 발견했다. 다정한 자세는 연대로, 연대는 정치적 행위로 전환된다.


6. 무서움의 실체 – 자기성찰의 눈

신관빈과 어윤희 초상은 내가 가장 무서울 그림이라고 느꼈던 작품들이었다. 굶주림으로 잠들지 못하는 유관순에게 자신의 밥을 양보했던 어윤희 이야기에서 내가 느낀 무서움의 실체는 내가 그녀들만큼 결기도, 용기도 없기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윤석남 작가가 윤두서의 자화상에 영감을 받았다는 말은 내가 느낀 무서움의 정체를 더 명확히 해주었다. “‘불타오르는 얼음’ 같은 눈입니다. 자신의 약점과 추악함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힘에 보는 쪽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계속 보고 싶으면서도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윤두서의 눈이 저 역시 꿰뚫어 본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191쪽). 

지옥도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 역시 그런 이유였을 것 같다.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는가? 정의로운가? 운동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나와 내 자식에 대한 사랑이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되고 있는가? ‘모성’을 실천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어느 하나 당당하게 답할 수 없다면 지옥행을 피할 길이 없으리라는 무서움. 이 책이 여성에 대해서 말하지만 단지 여성에 대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7. 김도균 작가가 이 책의 사진 작업에 참여했다고 해 출간되자 마자 사서 읽었다. 연립서가의 여느 책들처럼 이 책 역시 글뿐 아니라 책의 구성과 형태, 수록된 사진도 뛰어나다. 역사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용어 해설, 자료, 참고문헌도 충실하게 담겨 있다. 윤석남의 그림, 12인의 독립운동가, 박현정의 글이 섬세한 대위법을 이루는 이 책을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문화일보에서의 소개글처럼 ‘자주 울컥하고 끝내 충일해지는 책이다’.


박현정은 앞서 언급한 <혼자 가는 미술관>의 작가이기도 하다.


윤석남 선생이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하고 제일 먼저 시작했던 일인 달리기였다고 한다. 1979년 4월 25일. 구반포에서 국립묘지까지. 바로 오늘이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이유로 4월 25일에 리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이제야 리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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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초엘리트 - 영국을 지배하는 이너서클의 습관, 약점, 그리고 악행
사이먼 쿠퍼 지음, 김양욱.최형우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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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80년대 옥스퍼드 대학의 풍경을 주로 묘사한다. 사이먼 쿠퍼에 따르면 80년대 옥스퍼드는 중세적 분위기 속에서 수학과 과학을 경시하는 분위기의 얕은 지식으로 ‘수사학’이 주를 이루고, 이튼 출신의 특권의식에 절어있는 ’교만한 학생들’로 가득차 있는 공간이었다. 화이트헤드를 배출했고, 9대 사립학교에 해당하는 슈루즈베리의 교장은 ‘자연과학은 교육의 기반이 될 수 없다’고 했을 정도로 사립학교들이나 옥스퍼드나 자연과학보다는 라틴어와 문학을 더 중시하는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나는 이 책의 어떤 부분은 ‘황색언론적인 편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이건 당시 영국의 분위기이기도 했던 것 같다.


“나는 얕은 지식으로도 글을 쓰고 이야기하며 밥을 벌어 먹고사는 방법을 옥스퍼드에서 너무 잘 배웠다”(35쪽)


사이먼 쿠퍼의 이 책은 옥스퍼드를 ‘삐딱하게 보기’를 통해 이튼을 거친 옥스퍼드 출신의 엘리트들이 얼마나 ‘모자라고 교활하며, 특권의식에 젖어 있는지’를 그들의 대학생활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면서 폭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책의 전반부는 주로 보리스 존슨에 관한 것이다. 그가 옥스퍼드 유니언에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했던 협잡들, 상대를 비꼬는 데 능숙한 화법들. 이후에는 데이비드 캐머런, 리즈 트러스, 리시 슈낙 등 옥스퍼드대학 출신들의 ’별 것 없음‘을 파헤치고, 브렉시트가 어떻게 옥스퍼드적 전통에서 비롯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영국을 통치하는 것은 그들의 계급이 가진 특권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럽연합 정부에 있는 외부인이 이러한 특권에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렇게 보수당의 유럽 회의론은 어떤 면에서는 우버 택시에 맞서 싸우는 개인택시 기사들의 투쟁처럼 일자리 보호를 위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사립학교 출신 옥스퍼드 학새들은 그들이 통치할 나라를 그들 자신의 계급과 동일시해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리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의 국력이 약해졌다고는 해도, 누군가 영국에게 이래라저래라하는 것은 여전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132쪽) 


80년대 중반 옥스퍼드의 분위기, 엘리트 집단의 사고가 한 국가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읽고 있노라면, 브렉시트가 유럽연합의 ’분담금‘ 때문이라던가, 난민 수용에 대한 부당한 요구 때문이라던가, 독일과의 경쟁심 때문이라던가, 영국 내 노동계급의 일자리 부족 때문이라던가 하는 분석은 조금은 피상적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브렉시트와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은 ‘영국 귀족과 그들이 다닌 학교들에서 그들에게 심겨진 심성’이 만들어 낸 것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166쪽에는 이런 말도 있다. “작가 존 스칼지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이성애자 백인 남성들은 난도가 ‘쉬움’으로 설정된 현실 세계라는 타이틀의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성인이 되면 원하는 것은 뭐든 할 수 있었다”. 여기서 그들은 보리스 존슨을 위시한 이튼 출신의 옥스퍼드 졸업생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기자 출신의 작가는 ‘인신공격적’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옥스퍼드 초엘리트를 비판하지만, 사실 이 책의 제목이 이 책을 오해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 이 책의 원제는 ‘Chums'로 번역하자면 ’끼리끼리‘, 혹은 ’계-꾼들“ 혹은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으로는 ‘카르텔’ 같은 것이다. 작가가 옥스포드 카르텔로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것에는 이들의 카르텔이 단순한 이해관계에 입각한 ‘이익공동체’라기 보다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러니까 프렙스쿨을 거치고 세컨더리 사립학교를 거치며 만들어진 ’친구들끼리‘, 혹은 귀족 집단의 농담과 말을 이해하는 집단들끼리의 관계를 강조하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로 치면 정치인들이 치열하게 정책과 이념 등으로 모이고 싸우는 것처럼 ’겉으로‘ 보이더라도 알고 보면 경기고등학교에서부터 대학을 거치면서 이념/정책 따위와는 무관하게 서로 서로 어릴 때부터 친구로서 밀어주고 끌어주고 있는 관계를 만들고 있는 그런 관계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옥스퍼드 초엘리트’라는 제목으로 읽게 되면 ’chums'가 만들어지고 작동하는 원리보다 보리스 존스나 데이비드 캐머런 같은 인물들의 보잘 것 없음에 지나치게 관심이 쏠리는 식의 독해를 하게 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인물들이 어떻게 그런 ‘끼리 끼리’ 집단에 들어가서 정치 거물로 성장하고, 그 집단이 어떤 위험한 국가적 결정을 하게 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음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사이먼 쿠퍼는 옥스퍼드의 개혁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더이상 옥스퍼드 대학은 수사학적 토론 기술만 가르치는 대학도 아니고, 과학, 수학을 경시하는 얕은 지식인을 만들어 내는 대학도 아니고, 학생에게 직장 생활에 준하는 40시간의 학습을 요구하는 ‘학술적으로 성장한 대학’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공립학교 비율을 높이고, 노동계급 출신을 우대한다는 점에서 ’공정한 대학‘으로 변하고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노력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단언한다. 옥스브릿지대학에서 학부를 폐지하자는 것이다. 학부제 폐지 주장은 옥스브릿지가 ’chums'를 형성하는 플랫폼으로 작동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지, 초엘리트들에 대한 개인적 반감 때문이 아닌 것이다. 1억에 육박하는 이튼 등록금을 내고도 옥스브릿지에 가지 못한다면, 옥스브릿지에 가는 것이 오히려 그 등록금이 방해한다면 'chums'는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이 책의 분석과 제안, 서술방식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정‘이 이뤄지는 공식적 입장이 아닌 비공식적, 사적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훔쳐 보는 것이 주는 즐거움을 준다. 정말로 재밌는 책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보리스 존슨과 이튼, 옥스퍼드의 힘은 비슷한 수준에 라이벌 구도를 그린다고 알려진 리시 슈낙, 해로우, 캠브리지의 힘보다 훨씬 더 강하고 무서운 것이라 쉽게 해체하기도 힘들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옥스퍼드대학 출신이 쓴 이 책은 ‘끼리끼리’ 문화에 대한 일종의 내부 폭로다. 이 책은 서울대 출신, 검사 출신, 의대 출신의 ‘chums'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물론 내게는 영국 교육에 대해서, 영국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성찰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옥스퍼드 유니언을 연구한 피오나 그레이엄은 ”영국적인 관념에서 괴짜는 사회를 비판하며 사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산이 사회의 필수적인 부분이다“라고 언급했다. 그녀는 괴짜는 일반적으로 신념에 순응하며, ‘태도, 옷차림, 언행, 눈치 같은 외형적인 방식’에서만 괴팍할 뿐이라고 이야기한다”(119쪽)


이 책의 이해를 위해.

1) 영국의 세컨더리 스쿨은 우리로 치면 중고등학교를 통합되어 있는 것이다. 이건 퍼블릭스쿨, 그래머스쿨, 스테이트스쿨로 분류해서 이해하면 쉽다. 스테이트 스쿨이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가 운영하는 공립학교이다. 퍼블릭스쿨은 공립학교로 번역되지만, 국가가 비용을 내는 학교가 아니다. 그래머스쿨은 스테이트스쿨의 하나이지만 퍼블릭스쿨에 못지 않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교로 우리로 치면 공립 특목고에 해당한다. 퍼블릭스쿨은 이튼, 해로우, 윈체스터 같은 곳들로 우리로 치면 민사고 같은 곳이다. 등록금과 기부 등으로 학교가 운영되는 영국의 사립학교들로 영국 내 수백 곳이 있고, 국내에 있는 덜위치 같은 곳이 이런 학교들의 프랜차이즈 브랜치이다. 퍼블릭은 개인 튜터링 학습과 반대된다는 의미에서 퍼블릭을 의미하는 것이지, 공공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2) 책 속에 소개되는 벌링던 클럽은 영화 ’라이엇 클럽‘을 보면 실상을 좀더 실감있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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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다시 읽기 2 - 회상과 대화 / 최종 강의 서경식 다시 읽기 2
하야오 다카노리.리행리.도베 히데아키 엮음 / 연립서가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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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다시 읽기2>, 연립서가

연립서가 최재혁 선생님으로부터 서경식의 정년 퇴임을 기념하는 의미로 <서경식 다시 읽기>라는 책을 기획하신다는 메일을 처음 받았을 때 솔직한 생각은 ’좀 이르지 않나‘.. 그런 생각이었다. 이제 서경식은 대학에서 은퇴하고, 더 왕성한 글쓰기를 할텐데 움직이는 과녁에 활을 쏘는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예상은 완전히 틀리고 말았다. 예기치 않게 서경식은 일찍 세상과 등졌다. 연립서가에서도 예상한 일은 물론 아니었겠지만, 최재혁, 박현정 두 대표의 기획 덕분에 서경식의 사상을 한국과 일본에서 나름대로 조망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서경식의 텍스트로만은 다가가기 힘들었던 서경식을 둘러싼 컨텍스트, 이를테면 서경식을 만든 역사적 사건, 사람들,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고, 또 그 서경식이 한국에서 여러 층위에 어떤 컨텍스트가 되었는지 그려낼 수 있었다.
특히 <서경식 다시 읽기2>는 서경식이 일본에서 만난 동료들과의 대담과 에세이를 실은 우정의 기록이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서경식을 나름 읽어온 나로서도 이 책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정말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70-80년대를 규정지은 형제 구원활동, 90년대 책임 논쟁, 자이니치 그룹을 지배했던 민족 논쟁, 2000년 즈음 대학 교수로 활동하며 본격화된 프리모 레비에 관한 연구, 고립을 감내한 리버벌의 허위의식에 대한 투쟁 등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디아스포라‘나 ‘월경’이 지닌 낭만적 느낌으로 서경식을 읽는 것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정말로 잘 보여준다.
특히 모토하시 데쓰야 선생은 서경식의 재일조선인사를 대략 서기 1000년 경부터 시작된 식민주의에 대한 반식민주의 투쟁의 서사에 기입한다. 시부야 도모미 선생은 서경식이 인간의 추악함, 사실은 우리 자신의 추악함을 들여다보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우리 안의 식민주의를 발견하도록 도와주었다고 고백한다. NHK PD였던 가마쿠라 히데야는 서경식과 방송을 만들며 쌓아온 우정을 통해 ‘친절한 서경식’을 보여준다. 사키마 미술관장인 사키마 미치오씨와 서경식의 대화는 서경식이 일본 사회 내에서 소외된, 내부식민지화된 이들과 어떤 연대를 펼치려고 했었는지를 그려낸다. 그밖에도 최덕효, 리행리, 조경희 등 여러 젊은 연구자들과의 대화는 서경식 본인이 그토록 하려고 했던 일, 즉 서경식을 분절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저는 에세이를 통해 스스로를 관찰하고 이야기합니다. ’자명한 자신‘ 혹은 ’나란 이런 사람이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분절화해서 관찰하며 그것을 이야기하는 작업 방식을 언젠가부터 갖고 있습니다“(330쪽) 그래서 우리는 <서경식 다시 읽기2>를 통해 역설적으로 서경식은 자명하지 않다는 것을 배우게 되고, 그것이 서경식임을 이해하게 된다.

”나 자신을 규정하고 나누고 있는 여러 개의 구분선을 바라보며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향해 가는지, 왜 이런 상황인지, 그런 맥락을 가능하면 지적으로 분절화해서 자기 이해를 하려고 애써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 나갈 작정입니다“. (334쪽)

어쩌면 서경식이 일생동안 해오려 했던 일과 이 책의 서술방식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서경식은 이런 이해를 자신에게만 했던 것이 아닌다. 여러 개의 구분선으로 분절하여 민족을, 일본을, 예술을 이해하려고 했다. (분절적이란, 단지 분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민족이라는 단일선, 젠더라는 단일한 구분선만으로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이항대립적일 수밖에 없음을 조선반도와 일본을 걸쳐서 살아애했던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인식하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조선 내부에 침투하는 일본을 대상화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해부하는 것과 같은 작업“이라고 했던 말의 의미이기도 하다.
얼마 전 춘천에 가서 이종찬 선생님을 찾아 뵈었다.
어느 단체에서 이종찬 선생께 서경식에 관한 연속 강좌를 부탁했다고 한다. 그 부탁에 대해 이종찬 선생은 ”서경식을 잘 이해하기 위한 목표라면 제 강의를 들을 필요가 있으실까요? <서경식 다시 읽기2>를 읽어보시면 됩니다“라고 답하셨다고 한다. 그 강의가 성사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종찬 선생의 강의라면 물론 좋을 것이다. 그러나 서경식을 촘촘하게 읽고 이해하려한다면, 어쩌면 재일조선인에 대해서, 자이니치에 대해서, 우리가 외부화했던 그들에 대해서, 우리 안의 식민주의에 대해서 살펴보고 싶다면, 서경식의 책들과 함께 <서경식 다시 읽기2>는 꼭 읽어봐야 하는 것이라 권한다. 특히 우카이 사토시 선생의 글과 서경식의 응답, 시부야 도모미의 글은 짧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서경식을 입문하는 최적의 글이라 생각한다.
[추가]
내가 깜박 놓친 것도 있어서 내용을 좀 더 보태고자 한다. 서경식이 교수직 은퇴 후 집중하려 했던 일 중 하나는 '소설쓰기'였다. 이는 소명출판에서 나온 <대담집>에도 실려 있다. 그리고 그가 소설쓰기의 전범으로 여긴 작품은 프리모 레비가 쓴 '아르곤', 또 <릴리트>였다. 이 작품은 일종의 인물전이라고 할 수 있다.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만나 함께 귀환했던 이들을 포함해 아우슈비츠라는 독특한 공간, 단적으로 '디아스포라적이라는 의미에서의 국제적 유대인 집합소'에서 만난 다양한 인물들을 조형했고, 그 때의 인물 탐구를 자신의 소설 내지 에세이에 담았다. 서경식 역시 그런 인물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확신할 순 없지만 서경식은 아사히 신문에서 출판한 <20세기 천 명의 인물>에서 대략 마흔 명의 사람들에 대한 인물전을 썼던 것이(국내에는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 프리모 레비와 같은 형식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뜻과 만났을 것이다. 특히 <대담집>에서 소개한 자신의 이모부, 서경식은 그야말로 '디아스포라적이죠'라고 한 적이 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이토록 길게 쓰는 것에는 <서경식 다시 읽기2>에서 일종의 인물전이 등장하고, 마치 소설 처럼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인터뷰 '서경식, 저작을 말하다'에 담긴 내용으로 153쪽부터 이후 시작되는 내용은 한편의 소설로 봐도 무방하다. 야스에 료스케, 고자이 요시시게, 히다카 로쿠로, 이바라키 노리코와 같은 전후 지식인에 대한 선생의 스케치는 그의 표현을 약간 활용해서 말하자면 <선한 일본 혹은 일본인>을 보여준다. 나는 이 책에서 네 명에 대한 서경식의 글을 서경식의 소설 초안처럼 읽었다.

"야구에 비유한다면 야스에 선생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몰린 팀의 포수 같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요. 포수는 팀이 위기에 내몰리더라도 냉정함을 유지하며 "지금은 어떻게 해도 한점 줄 수밖에 없나, 이러다가는 지겠구나."라는 식으로 누구보다 빨리 상황을 파악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괜찮아, 괜찮아!"하며 팀원의 용기를 복돋아야 하죠.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함께 갖추지 않으면 안됩니다. 야스에 선생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166쪽)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참여한 <서경식 다시 읽기1>이 서경식이 한국 사회에 다소 문화적인 관점에서 수용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금은 소프트한 책이라면, <서경식 다시 읽기2>는 일본에서 서경식이 뼈를 깎으며 싸우면 조탁한 운동론, 디아스포라론을 보여준다.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서경식을 만날 수 있는 책인 것이다.
서경식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도, 소외된 자들의 싸움에 관심이 있는 이들 누구에게라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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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집 : 재일 디아스포라의 목소리
김용규 외 엮음, 김석범 외 인터뷰이 / 소명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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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출판에서 나온 <대담집-디아스포라의 목소리>를 읽었다.
최덕효, 정영환 선생의 대담에서는 오랜만에 정말로 큰 지적 도전을 느꼈다. 책에서 3세대로 분류한 이 역사학자들이 벌이는 ‘대담한 기획’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최덕효 선생의 박사 논문은 존 다우어의 ‘패배를 껴안고’에 대한 일종의 카운터 내러티브라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다. 나는 이 책이 일종의 일본의 자기기만이라고 느꼈는데, 어쩌면 역사상 단 한번도 가난해본 적이 없는 나라의 가난 서사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최덕효 선생의 논문 작업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내가 존 다우어의 책에 느낀 불편함의 이유를 알아챘다. 이 책에는 ‘재일조선인’이 빠져 있었다. 패배가 아니라, 패배의 패배를 껴안고 살았던 이들의 목소리는 배제되었다. 최덕효 선생의 기획은 한편으로 서준식의 ‘옥중서신’에 대한 카운터 내러티브기도 했다. 서준식은 옥중 소감에서 한반도가 본류, 자이니치는 지류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최덕효는 자이니치 중심의 역사 서술을 기획한다. 실로 대담하고 놀라운 기획이 아닐 수 없다.
정영환 선생의 논문에 대해서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는 재일조선인사를 자이니치의 시각에서 새롭게 서술하고자 한다. E.P 톰슨과 에드워드 사이드를 계승하며 제3세계와 재일조선인을 연결하고, 유럽중심주의자인 에릭 홉스봄과 대결하려 한다. 김용규 선생님의 잘 준비된 질문과 풍부한 사전 조사, 이재봉 선생님의 예리한 질문이 돋보였다. 특히 김용규 선생님의 질문은 두 학자의 작업 세계를 이해하는 큰 얼개를 그리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서경식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3세대 학자들과의 대담보다는 훨씬 더 어두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2023년에 있었던 두 번째 대담은 선생의 악화된 건강 탓인지 몰라도 다른 인터뷰나 강의에서 느끼기 어려웠던 냉소적 분위기도 감지된다. 그리고 인터뷰는 늘 그런 것이라 해도, 서경식의 답변은 질문을 조금씩 빗겨 가기도 하고, 질문의 의도를 되묻는 방식으로 우회하기도 한다. 질문과 답 사이의 묘한 어긋남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것이 불편하기 보다는 흥미로웠던 이유는, 인터뷰어들과 친밀한 관계였다는 점을 되새겨볼 때 선생님의 사적 대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읽을 때보다 두 번째 읽을 때 의미가 좀 더 다가왔는데, 다시 읽었을 때 선생님의 발언에 선생님의 억양과 말의 스타일이 비로소 더해졌기 때문이다. 이 책에 또 다른 인터뷰어인 서민정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책이 만들어지기 전에 선생님의 발언을 검토하시겠냐는 물음에 서경식 선생님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고 한다. 즉 두 편의 대담에 대해서 다시 읽거나 고쳐쓰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김상봉 선생님과 대담을 하셨던 <만남>에서 자신의 발언을 되짚고, 혹시나 실수를 하실까봐 나 같은 사람에게 녹취를 맡기자고 제안하셨던 것에 비하면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선생님은 대담해지신 것일까, 아니면 조금은 지쳐계셨던 것일까.
물론 그 때문에 가장 서경식의 목소리에 가까운, 그래서 책의 제목인 재일조선인의 목소리를 실현하고, 또 서경식의 목소리를 귀에서 재생시키는 그런 대담이 되었다. 단, 높은 수준의 주의력이 독해에 요구된다는 것도 그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122쪽 이후의 서경식 선생이 말하는 ‘조국’-론은 서경식의 디아스포라-론으로 읽힌다. 정말로 흥미롭다. 특히 144쪽.
“그런데 그것만 보면 안 되죠. 이 사람이 서양을, 서양 르네상스를 우리와는 다른 어떤 시점으로 보고 있는 것인가를 보게 되면, 이 사람의 독창성이라고 할까, 특징을 볼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앞으로 재일조선인에 대한 연구도 그런 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꾸로 이야기하자면,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를 연구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재일 조선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고 있는지를 자신에 비추어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서양이 그런 경향성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재일조선인에 대한 연구도 그렇게 돼야 한다고 봅니다”
나로서는 책 전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서경식이 유럽과 아메리카를 다니며 인문기행과 미술관 다니며 음악회를 다닌 또 하나의 이유를 알게 되는 지점이자, 여러 선생님들과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어떤 방향으로 꾸려가야 할지에 중요한 단서가 되는 구절이었다. 서경식 선생님과의 2부 대담은 나로서는 너무나 값진 대화의 기록이었다.
책을 읽으며 발견한,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남겨둔다. 아무래도 대화를 녹취로 풀다보니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인데 맥락상 이상한 것들이 꽤 있다. 내가 가장 이상했던 부분은 90쪽이다.
”아까 얘기했던 귀화 안 해서 반갑다든지 하는 그런 이야기라기보다, 저는 문제적인 발언일 수 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디보다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였으면 귀화를 거부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 않았을 것 같아요“.‘
내가 충분한 주의력을 기울이지 않아서인지, 나는 인용한 부분의 마지막 문장을 몇 번을 곱씹어 읽었다. 대화의 맥락상, 일본이라는 나라가 재일조선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였다면 귀화를 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문제적인 발언을 예고했다면 더더욱이 그렇다. 그런데 이 구절만 보면, 귀화를 거부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는 귀화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가 된다. 즉 일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라면 귀화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라는 거다. 논리적이지 않은 연결인데, 서경식 선생님이 이렇게 실제로 말씀하신 것이면 앞서 말했듯이 수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편집 과정에서 이런 부분은 확인이 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내가 잘못 독해했을 가능성도 물론 있다. 다른 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외에도 271쪽, 김용규 선생님의 발언에도 모호한 점이 있었다.
”디아스포라라든지 ‘제3의 길’, 이런 것은 서경식 선생님도 별로 좋아하시지는 않는 것 같던데, 그래도 한편으로는 2세대, 3세대의 경우, 재일조선인의 특수한 경험이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있는 디아스포라의 경험들과의 공통성 등도 함께 고민하면서 자신들만의 특성들을 구축하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 같습니다.“
디아스포라를 서경식 선생님이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역시 녹취과정의 실수일 수도 있고, 많은 부분이 생략되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서경식 선생님은 9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디아스포라 담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셨고, 이 개념을 해체해 서경식이 다시 재발명하는 방식으로 사용했다. 서경식은 디아스포라의 경험들과 공통성을 중심으로 연대를 추구했는데 그가 이를 싫어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역시 편집 과정에서 좀 더 살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책의 자잘한 실수들.
사실 녹취를 풀어낸 책의 특성상 굉장히 많을 수밖에 없긴 한데, 몇 가지만.
1) 262쪽 ”정체성을 대신 증명하고나“-> ”정체성을 대신 증명하거나“
2) 263쪽 ”에릭 홉스봄 Eric Hobsbawn"- > "Eric Hobsbawm'
어마어마한 품이 들어간 책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부록으로 실린 최덕효 선생의 ’월경하는 재일‘은 꼭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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