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3일 밤을 기억한다.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밤, 그다음 날 나의 마음은 이랬다.
어젯밤 뉴스 속보로 뜬 자막을 보고 믿지 않았다. 비상계엄 선포라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채널을 돌리고 뉴스를 봤다. 대통령의 담화가 나왔다. 그는 무슨 생각일까. 왜 그런 걸까. 대통령이니까. 대통령은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 걸까. 비상계엄을 선포하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될 거라 생각한 걸까.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순간 무섭기도 했다. 내가 모르고 경험하지 못한 역사 속 비상계엄이 그려졌다. 소설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국회의원이 국회로 모이고 담을 넘고 무장한 군인들과 대치하는 모습은 실재였다.
뉴스를 보다 잠이 들었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 다시 TV를 켰다. 비상계엄은 해제되었다. 대통령의 설명은 없었다. 비상계엄을 건의한 국방부 장관의 이름을 검색했다. 그는 3개월 전에 계엄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어제 군을 동원했고 소집해제를 지시하며 수고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왜 그런 걸까. 여당의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담화를 뉴스를 통해 알았다고 한다. 국회의원을 국회가 아닌 당사로 모이라고 했다고 한다. 국무회의가 있었다고 하는데 참석한 국무 회원은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하다. 긴 잠에 빠지고 싶다. 뉴스를 그만 듣고 싶다. 뉴스를 그만 보고 싶다. 그런데도 정신이 뉴스를 향한다. 시간 날 때마다 검색한다. 대통령의 자진사퇴, 즉각 사퇴, 내각 총사퇴, 대통령 탈당, 탄핵론의 기사를 읽는다. 대통령은 정말 무슨 생각이었을까. 정말 궁금하다. 한국은 ‘여행 위험 국가’가 됐다. 정치에 큰 관심이 없고 정치적인 인간이 아닌데 정말 싫다. 화가 난다. (20241204의 메모)
우리는 12월 3일을 기점으로 ‘그 이후’의 삶을 살았다. 누군가는 응원봉을 들고 광장으로 나가고 누군가는 하루 종일 뉴스만 보고 누군가는 애써 외면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감정을 추스르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2월 말부터 헌재의 판결 선고 일을 기다렸다. 파면이 될 거라 믿으면서도 만에 하나 파면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겨울, 봄,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었지만 그 겨울밤에 느꼈던 분노는 사라질 수 없다. 그리고 황정은의 『작은 일기』로 읽는 그 시간은 다시 분노를 불러온다. 통렬한 분노.
12월 3일 오후 세면대 밸브에서 물 새는 걸 발견하고 집수리 기술자와 약속을 잡은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하는 글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파주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그 마음을 나는 짐작할 수 없다. 그 광장의 집회를 모른다. 그 새벽의 시간을, 그 추위를, 눈 인사를 나누고, 먹을거리를 건네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마음을. 현장의 긴박함을, 두려움을 모른다. 수도권에 사는 친구의 조마조마한 마음을 들었고 기사를 검색했을 뿐. 황정은처럼 잠을 못 자거나 숨을 쉴 수 없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난 두 달은 아름답고 좋은 것들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지만 그보다 내게는 오염의 시간이었다. 뭐가 오염되었느냐면. 매일 갱신되는 새로운 사건과 경악과 한계가 없는 것 같은 질 낮음으로, 어제의 경악이 오늘의 경악으로 무던해지는 일이 반복되어서, 그런 식으로 세상을 향한 감感이 오염. (106쪽)

그러나 전혀 모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도 그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으므로. 표현과 생각의 차이는 다르겠지만 궁극적인 결말은 같다고 느끼니까. 때문에 이 책은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겪은 이들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기록이라 말하고 싶다. 반복되어서는 안 될 시간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과 개인적인 기록. 뭐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누군가 같은 공간에서 작가의 곁을 스치고 함께 구호를 외치고 박수를 쳤을지도 모른다. 피곤에 찌든 얼굴로 하루하루를 견디며 낮에는 각자의 자리에 있다가 밤에는 시위에 참여했을 사람들. 작가처럼 가족과 친구들이 참여하고 헤어지기 전에 밥을 먹으며 잠깐의 일상을 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작고 소소한 일상의 귀함을 알기에 나는 어떤 결의나 결기가 전해지는 문장이 아닌 잉어빵 노점에서 잉어빵을 사며 쓴 이런 문장에 울컥한다. 이웃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극진한 태도.
우리 동네 가게들, 내가 은밀히 좋아하는 화곡동 상인들, 이웃들. 사람들 때문에 눈물이 난다. 삶이 얼마나 더 힘들어질까. 좋은 것, 웃음을 보면 그것이 뒤흔들리고 사라질 날이 먼저 짚이는 이런 날들은 도대체 언제 끝날까. (154~155쪽)
그 시간을 지나왔고 우리는 또 같은 듯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그 이후로 달라진 것들을 생각한다. 그러나 작가의 말처럼 오염되고 손상된 일상은 말끔하게 복구되고 회복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리고 주의를 살피며 경계하는 태도를 지니고 긴장하게 살지도 모른다. 상흔으로 남아 함께 할 것이다.
가능성만을 바랄 수 있을 뿐인 세계는 얼마나 울적한가. 희망을 가지고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기가 너무나 어려운 세계, 그 어려움이 기본인 세계는 얼마나 낡아빠진 세계인가. 너무 낡아서, 자기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세계. 다만 이어질 뿐. (171쪽)
황정은의 『작은 일기』는 말한다. 기억하라고, 기억해야 한다고, 우리가 무엇을 했고 이뤄낸 게 무엇인지 잊어서는 안 된다고. 그런 이유로 『일기 日記』의 이런 부분을 찾아 읽게 된다. 기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기억하고 질문하고 다름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함과 마주한다.
사람들은 온갖 것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기억은 망각과 연결되어 있지만 누군가가 잊은 기억은 차마 그것을 잊지 못한 누군가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화석이다. 뼈들은 역사라는 지층에 사로잡혀 드러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퇴적되는 것들의 무게에 눌려 삭아버릴 테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기억은 그 자리에 돌아온다. 기록으로, 질문으로. (『일기 日記』,7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