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3일 밤을 기억한다.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밤, 그다음 날 나의 마음은 이랬다.


어젯밤 뉴스 속보로 뜬 자막을 보고 믿지 않았다. 비상계엄 선포라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채널을 돌리고 뉴스를 봤다. 대통령의 담화가 나왔다. 그는 무슨 생각일까. 왜 그런 걸까. 대통령이니까. 대통령은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 걸까. 비상계엄을 선포하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될 거라 생각한 걸까.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순간 무섭기도 했다. 내가 모르고 경험하지 못한 역사 속 비상계엄이 그려졌다. 소설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국회의원이 국회로 모이고 담을 넘고 무장한 군인들과 대치하는 모습은 실재였다.


뉴스를 보다 잠이 들었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 다시 TV를 켰다. 비상계엄은 해제되었다. 대통령의 설명은 없었다. 비상계엄을 건의한 국방부 장관의 이름을 검색했다. 그는 3개월 전에 계엄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어제 군을 동원했고 소집해제를 지시하며 수고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왜 그런 걸까. 여당의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담화를 뉴스를 통해 알았다고 한다. 국회의원을 국회가 아닌 당사로 모이라고 했다고 한다. 국무회의가 있었다고 하는데 참석한 국무 회원은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하다. 긴 잠에 빠지고 싶다. 뉴스를 그만 듣고 싶다. 뉴스를 그만 보고 싶다. 그런데도 정신이 뉴스를 향한다. 시간 날 때마다 검색한다. 대통령의 자진사퇴, 즉각 사퇴, 내각 총사퇴, 대통령 탈당, 탄핵론의 기사를 읽는다. 대통령은 정말 무슨 생각이었을까. 정말 궁금하다. 한국은 ‘여행 위험 국가’가 됐다. 정치에 큰 관심이 없고 정치적인 인간이 아닌데 정말 싫다. 화가 난다. (20241204의 메모)


우리는 12월 3일을 기점으로 ‘그 이후’의 삶을 살았다. 누군가는 응원봉을 들고 광장으로 나가고 누군가는 하루 종일 뉴스만 보고 누군가는 애써 외면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감정을 추스르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2월 말부터 헌재의 판결 선고 일을 기다렸다. 파면이 될 거라 믿으면서도 만에 하나 파면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겨울, 봄,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었지만 그 겨울밤에 느꼈던 분노는 사라질 수 없다. 그리고 황정은의 『작은 일기』로 읽는 그 시간은 다시 분노를 불러온다. 통렬한 분노.

12월 3일 오후 세면대 밸브에서 물 새는 걸 발견하고 집수리 기술자와 약속을 잡은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하는 글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파주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그 마음을 나는 짐작할 수 없다. 그 광장의 집회를 모른다. 그 새벽의 시간을, 그 추위를, 눈 인사를 나누고, 먹을거리를 건네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마음을. 현장의 긴박함을, 두려움을 모른다. 수도권에 사는 친구의 조마조마한 마음을 들었고 기사를 검색했을 뿐. 황정은처럼 잠을 못 자거나 숨을 쉴 수 없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난 두 달은 아름답고 좋은 것들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지만 그보다 내게는 오염의 시간이었다. 뭐가 오염되었느냐면. 매일 갱신되는 새로운 사건과 경악과 한계가 없는 것 같은 질 낮음으로, 어제의 경악이 오늘의 경악으로 무던해지는 일이 반복되어서, 그런 식으로 세상을 향한 감感이 오염. (106쪽)




그러나 전혀 모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도 그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으므로. 표현과 생각의 차이는 다르겠지만 궁극적인 결말은 같다고 느끼니까. 때문에 이 책은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겪은 이들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기록이라 말하고 싶다. 반복되어서는 안 될 시간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과 개인적인 기록. 뭐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누군가 같은 공간에서 작가의 곁을 스치고 함께 구호를 외치고 박수를 쳤을지도 모른다. 피곤에 찌든 얼굴로 하루하루를 견디며 낮에는 각자의 자리에 있다가 밤에는 시위에 참여했을 사람들. 작가처럼 가족과 친구들이 참여하고 헤어지기 전에 밥을 먹으며 잠깐의 일상을 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작고 소소한 일상의 귀함을 알기에 나는 어떤 결의나 결기가 전해지는 문장이 아닌 잉어빵 노점에서 잉어빵을 사며 쓴 이런 문장에 울컥한다. 이웃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극진한 태도.

우리 동네 가게들, 내가 은밀히 좋아하는 화곡동 상인들, 이웃들. 사람들 때문에 눈물이 난다. 삶이 얼마나 더 힘들어질까. 좋은 것, 웃음을 보면 그것이 뒤흔들리고 사라질 날이 먼저 짚이는 이런 날들은 도대체 언제 끝날까. (154~155쪽)

그 시간을 지나왔고 우리는 또 같은 듯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그 이후로 달라진 것들을 생각한다. 그러나 작가의 말처럼 오염되고 손상된 일상은 말끔하게 복구되고 회복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리고 주의를 살피며 경계하는 태도를 지니고 긴장하게 살지도 모른다. 상흔으로 남아 함께 할 것이다.


가능성만을 바랄 수 있을 뿐인 세계는 얼마나 울적한가. 희망을 가지고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기가 너무나 어려운 세계, 그 어려움이 기본인 세계는 얼마나 낡아빠진 세계인가. 너무 낡아서, 자기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세계. 다만 이어질 뿐. (171쪽)


황정은의 『작은 일기』는 말한다. 기억하라고, 기억해야 한다고, 우리가 무엇을 했고 이뤄낸 게 무엇인지 잊어서는 안 된다고. 그런 이유로 『일기 日記』의 이런 부분을 찾아 읽게 된다. 기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기억하고 질문하고 다름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함과 마주한다.


사람들은 온갖 것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기억은 망각과 연결되어 있지만 누군가가 잊은 기억은 차마 그것을 잊지 못한 누군가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화석이다. 뼈들은 역사라는 지층에 사로잡혀 드러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퇴적되는 것들의 무게에 눌려 삭아버릴 테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기억은 그 자리에 돌아온다. 기록으로, 질문으로. (『일기 日記』,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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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7-22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번 황정은의 신간은 그 이야기를 담고 있군요. 새삼 황정은이 우리와 같은 마음을 지녀서 좋다는 생각이 드는데, 같은 마음이 들어서 좋은건지 좋은데 같은 마음이 드는건지 그건 뭐가 먼저인지 모르겠네요.

책읽는나무 2025-07-23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정은의 신간이로군요.
황정은은 늘 황정은 답다란 생각이 듭니다.
 


책을 샀다. 출간을 기대했고 기다렸던 책을 샀다. 계획 구매는 잘 한일이다. 사려고 했던 책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구매했으니까. 그렇게 산 책은 황정은의 『작은 일기』와 김이설, 이주혜, 정선임의 『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 두 권이다. 나머지 안희연의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과 에이모 토울스의 『테이블 포 두』 두 권은 충동적으로.

황정은의 신간이 나오는 건 몰랐다. 알림 설정이 알려주었다. 그에 비해 다람 출판사의 ‘얽힘’은 기다렸던 신간이다. 김이설, 이주혜의 단편을 읽고 싶기도 했고 작가들이 서로에게 던진 질문과 답변을 담은 「얽힘 코멘터리」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안희연의 시집은 여름이면 장바구니에 넣었다 사라지는 책이었다. 여름이면 생각하는 시집, 여름에 구매가 늘지 않을까 싶다. 에이모 토울스의 소설은 『모스크바의 신사』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서 샀다.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다. 충동은 이래서 별로다. 언제 읽을지 모를, 반드시 읽게 될지 알 수 없는 목록이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아무튼 도착한 책을 보는 일은 좋다.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를 하는데도 충동적인 구매를 한다. 오프라인 서점을 방문하지 않는 게 다행인 걸까. 아무튼 오늘도 시를 한 편 읽어보자.

부러웠어, 너의 껍질

깨뜨려야만 도달할 수 있는

진심이 있다는 거

나는 너무 무른 사람이라서

툭하면 주저앉기부터 하는데

너는 언제나 단호하고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얼굴

한 손에 담길 만큼 작지만

우주를 쥔 건 같은 기분이 들었어

너의 시간은 어떤 속도로 흐르는 것일까

문도 창도 없는 방 안에서

어떤 위로도 구하지 않고

하나의 자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가졌다는 건

너는 무수한 말들이 적힌 백지를 내게 건넨다

더는 분실물 센터 주변을 서성이지 않기

‘밤이 밤이듯이’ 같은 문장을 사랑하기

미래는 새하얀 강아지처럼 꼬리 치며 달려오는 것이 아니라

새는 비를 걱정하며 내다놓은 양동이 속에

설거지통에 산처럼 쌓인 그릇들 속에 있다는 걸

자꾸 잊어, 너도 누군가의 푸른 열매였다는 거

세상 그 어떤 눈도 그냥 캄캄해지는 법은 없다는 거

문도 창도 없는 방 안에서

나날이 쪼그라드는 고독들을 (「호두에게」, 전문)

시집을 훑어보다 나를 이끈 시는 표제작이 아니었다. 어떤 시간, 어떤 날들, 호두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이를 생각한다. 처음부터 단단한 호두였을 리 없는데. 잊는다. 끝내 호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이도 있을 텐데. 호두를 볼 때마다, 호두나무를 지나칠 때마다 이 시가 생각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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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비 2025-07-09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황정은의 신간은 곧바로 구매할 수밖에 없었습니당….작가님은 소설도 얼른 출간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자목련 2025-07-10 10:58   좋아요 1 | URL
실은 소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blanca 2025-07-09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고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 설레요.

자목련 2025-07-10 11:00   좋아요 1 | URL
김연수의『너무나 많은 여름이』처럼 깜짝 출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

blanca 2025-07-10 11:01   좋아요 0 | URL
헉, 저도 딱 그 생각 했어요. 김연수 작가님 분발해 주세요!

관찰자 2025-07-09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황정은 신간 소식 너무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5-07-10 11:00   좋아요 0 | URL
우리 함께 읽어요!

다락방 2025-07-09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댓글 황정은 신간소식으로 대동단결이네요. 저도 황정은 신간 소식을 이렇게 자목련 님 페이퍼로 알게 됩니다. 후훗.

자목련 2025-07-10 11:00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어쩌다 보니 황정은^^

서니데이 2025-07-09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알림이 되어있으면 빨리 알 수 있어 좋은것 같아요. 자목련님 시원하고 좋은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5-07-10 11:01   좋아요 0 | URL
알림이 많아서 걱정이지요 ㅎ
시원한 하루 이어가세요^^
 


수국을 주문했고 풍성한 수국이 도착했다. 여름은 수국이 제철이니까. 정말 풍성한 수국이다. 네 송이가 제법 무겁다.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수국 뒤에 숨어도 좋겠다. 습하고 습한 여름, 청량한 기운을 선사하다. 그래서 여름이면 수국이 떠오르는지도 모른다.





책도 한 권 샀다. 심보선의 시집 『네가 봄에 써야지 속으로 생각했던』이다. 기다리는 책은 황정은의 에세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 책장의 마지막 책들은 시집일지도 모르겠다. 시집은 쉽게 정리하지 못하니까.





여름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마냥 좋아하기는 어렵다. 더위에 취약하고 땀이 너무 많다. 맛있는 자두를 고르고 있다. 온라인으로 고르고 있으니 맛있는 자두를 먹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아파트 앞 마트엔 과일이 없다. 있어도 싱싱하지 않고 선뜻 구매할 수가 없다. 주저하다가 사장님께 마트가 문을 닫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오며 가며 상가 공실을 많이 보는데 폐업으로 가는 과정을 직접 마주하니 씁쓸하다. 심보선의 이런 시가 모두를 달래줄 수 없겠지만 그래도. 다정함이 필요한 이들에게 다정함이 전해지길.


기억의 소실을 응시한다

그 안에 새와 새 아닌 것들이

다 함께 웅크려 있다

날개가 있다고 다 새는 아니고

그 중 다정한 것만

꿈 안에 깃들 수는 없다

내가 너를

신화 속 존재처럼

소중히 여긴다 한들

용서하고 용서받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단어를 고르고 또 고른다

나는 용서하고 용서받을 기회를 놓친다

꿈이라면

꿈이 아니어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나는 너를 오로지 체온으로만 기억한다

따사로움이여

따사로움이여

그토록 아름다운 꿈을 꿨는데

너에게 보여줄 수 없다니

(「다정하고 따사로운」, 전문)





가만히 있으면 더위를 견딜 수 있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움직여야 하고 움직이면 땀이 난다. 땀을 날려줄 바람을 기다린다. 에어컨이나 선풍기의 바람이 아닌 자연 바람. 기다림이 길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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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5-07-02 1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더운데 자두의 맛은 오묘하네요.

자목련 2025-07-03 10:11   좋아요 0 | URL
어제 도착한 자두는 꽤 달아요. 우선은 단맛에 취하고 있어요!

거리의화가 2025-07-02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습한 여름이에요. 풍성한 수국을 보니 화사하니 꿉꿉함이 잠시 사라지는 듯합니다.
주중에는 낮에 밥을 먹고 산책을 하는데 어제, 그제 걸어보니 이건 도저히 안되겠더라구요. 오늘은 건너뛰었습니다^^;
땀 많은 계절인데 건강 잘 챙기시길 바라요.

자목련 2025-07-03 10:12   좋아요 0 | URL
당분간 점심 먹고 산책은 쉬어할 것 같아요. 너무 더워요.
화가 님의 여름이 건강하고 다정한 날들이길~~

페넬로페 2025-07-02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과일을 너무 좋아해
수국과 자두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자두를 선택할 것 같아요.
아름다운 수국수국함은 자목련님의 글에서 충분히 느끼고
얼른 달콤한 자두를 먹고 싶네요.
습한 여름이 시작되었어요 ㅠㅠ

자목련 2025-07-03 10:14   좋아요 1 | URL
아침에 달콤한 자두를 몇 알 먹었어요. 잘 고른 것 같아요 ㅎ
습하지만 뽀송뽀송한 날들이면 좋겠어요^^

푸르리 2025-07-02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국의 아름다운 모습 잘 감상했어요^^ 마음이 삭막해져 수국이 피었는지도 몰랐네요. 예쁜 수국과 시 감상 잘 하고 갑니다.

자목련 2025-07-03 10:15   좋아요 1 | URL
수국을 나눌 수 있어 좋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머무는 하루 보내시길 바라요^^
 


글을 읽고 그 뜻을 이해하는 능력인 문해력(文解力)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금일 오후에 만나자고 했는데 금요일 오후라고 여긴다거나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는 말에 제대로 사과를 하라고 한다든지. 상대가 전하는 말의 뜻을 다르게 해석하고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유명 연예인이 문해력 검사에서 중학교 수준이 나왔다며 문해력 공부를 하고 있다는 방송을 보고 나도 문해력 검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연예인이 문해력 수업을 하는 방송도 보게 되었는데 수업 중 나온 특질이란 단어를 쉽게 설명할 수 없었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지만 말하기 어려웠다. 아니, 나는 그 단어의 뜻을 몰랐던 게 맞다. 그런데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 같은 이에게 『우리말 나들이 문해력 편』은 안성맞춤의 책이 아닐까 싶다.

‘단어 한 끗 차이로 글의 수준이 달라지는’ 말이 얼마나 많은지 책을 통해 새삼 알게 되었다. 단어의 뜻을 제대로 알고 정확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도 말이다. 책은 3장으로 구성되었는데 1장에서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뜻이 달라 헷갈리는 표현」, 2장에서는 「습관처럼 굳어 틀린 줄도 모르고 쓰는 표현」, 3장에서는 「문해력과 문장력을 동시에 높여주는 표현」을 알려준다. 우리가 일상에서 잘못 사용하고 있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실생활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뜻이 달라 헷갈리는 표현」에서는 ‘갑절’과 ‘곱절’처럼 둘이 같은 뜻이 아닐까 싶은 ‘너비’와 ‘넓이’, ‘돋구다’와 ‘돋우다’ 말들과 뭐가 다른지 바로 떠오르지 않는 ‘밤새다’와 ‘밤새우다’, ‘신소리’와 ‘흰소리’ 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소개한다. ‘신소리’와 ‘흰소리’를 보면 이렇다. 신소리는 상대편의 말을 슬쩍 받아 엉뚱한 말로 재치 있게 넘기는 말이며 흰소리는 터무니없이 자랑으로 떠벌리거나 거드럭거리며 허풍을 떠는 말이다. 흰소리를 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되겠다. 그리고 신소리를 쉰소리로 잘못 쓰거나 잔소리와 같은 뜻으로 오해하지 말아야겠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잘못 알고 사용한 단어와 만났다. 세상에나 정말 창피한 순간이었다. 날씨가 개지 않고 흐린 상태는 ‘끄물끄물하다가 맞는데 나는 ‘꾸물꾸물하다’로 알았던 것이다. 한 번의 의심 없이 말이다.






「습관처럼 굳어 틀린 줄도 모르고 쓰는 표현」에서는 요즘처럼 더운 여름에 자주 쓰는 말‘ 겨땀’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마 많은 이들이 겨땀이 표준어가 아니라는 걸 모르고 사용할 것이다. 겨땀이 아닌 ‘곁땀’이 표준어라는 걸 잊지 않을 것 같다. ‘밥 한 번 거하게 살게’라는 말도 틀린 말이다. 거하다는 산 따위가 크고 웅장하다는 말이고 넉넉하다는 뜻은 건하다. ‘밥 한 번 건하게 살게’, ‘아침을 건하게 먹었다’로 쓸 수 있다. 가장 흔하게 잘못 사용하고 있는 말이 ‘흡연을 삼가해주세요’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게 왜 잘못된 말이지 하고 생각하는 이가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바른 표현은 ‘흡연을 삼가주세요’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문해력과 문장력을 동시에 높여주는 표현」에서는 정확한 뜻을 모르면서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들을 만날 수 있다. ‘미더운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기분이 좋다면 ‘미덥다’의 뜻을 아는 사람일 것이고 뭐지 싶은 생각이 든다면 미덥다란 말을 모르는 것이다. 믿음이 가는 데가 있다란 말이니 주변 동료나 친구에게 사용해 보면 어떨까. 굳건하고 확실하여 아주 미덥다는 뜻의 ‘구덥다‘, 꾸밈이나 거짓이 없이 참되고 미더운 데가 있다는 뜻의 ’실답다’를 사용해도 좋을 것이다.

「사투리도 외래어도 아닌 알고 보면 표준어」란 부록도 유익하다. 사투리로 착각하거나 비속어나 잘못된 말이라고 여겼던 말이 표준어라니. ‘까지다’, ‘빠대다’, ‘삐대다’, ‘싸대다’, ‘오지다’가 모두 표준어였다. 그럼 ‘아따’는 표준어일까? 맞다. 표준어다. 아따는 사투리가 아닌 무엇이 몹시 심하거나 하여 못마땅해서 빈정거릴 때 가볍게 내는 소리다.

매일 쓰는 우리말이 가장 어렵다. 새삼 확인한다. 『우리말 나들이 문해력 편』은 우리가 쉽게 사용하고 무심코 쓰는 말의 소중함과 문해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다. 단순히 글을 읽는 능력이 아닌 사회적 소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말한다. 어떤 말을 쓰고 어떤 표현을 하느냐로 자신을 나타낼 수 있고 상대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올바른 언어 사용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이 책 한 권으로 자신과 가족, 친구의 문해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봐도 재밌을 것 같다. 처음 만나는 것처럼 생소한 말이 많겠지만 스마트폰의 세상이 아닌 재미난 우리말의 세계에서 충분히 좋은 시간을 갖게 되지 않을까. 꼼꼼하게 읽고 반복해서 읽는다면 풍부한 우리말을 쓰며 문해력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우리말 나들이 어휘력 편』 과 함께 든든한 우리말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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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5-06-24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끄물끄물하다˝ 완전 충격인데요? 저도 이 책 읽어봐야겠어요. 다 잘못 쓰고 있었네요.

자목련 2025-06-27 11:42   좋아요 0 | URL
잘못된 표현이라는 사실 조차 모르고 그냥 쓰고 있는 말들이 무척 많았어요.

잉크냄새 2025-06-24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흡연을 삼가주세요˝ 라는 표현에 적응하기는 금연보다 힘들 듯 합니다.
아마 대부분 ‘가‘와‘주‘ 사이에 ‘해‘를 끼워넣고 자신의 해박함에 흐뭇해할것 같네요.

자목련 2025-06-27 11:4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삼가주세요라고 쓰면 말씀처럼 고치는 이들이 있을 것 같아요 ㅎ

젤소민아 2025-07-05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리버리‘도 틀린 말이고 ‘어리바리‘가 맞더라고요~~. 이런 책 정말 유용하고 유익합니다!

자목련 2025-07-10 11:23   좋아요 0 | URL
의심없이 맞다고 여기고 쓰는 말이 많더라고요. 청소년에게 권하고 싶은데, 아이들은 싫어하겠죠 ㅎㅎ
 


장마가 시작되었다. 예보는 정확하게 맞았다. 마치 알람을 맞춰놓은 것 같았다. 그치는 시간도 그랬다. 비가 올지 몰라 우산을 챙기는 게 아니라 반드시 우산을 가지고 외출을 해야 하는 걸 알려준다. 편리하고 좋은 세상이다. 우연의 순간에 맞닥뜨리는 감정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었다. 비 때문에 챙기지 못한 것들을 할 여유를 준 것일까. 어제의 하늘과는 다른 하늘이다.


장마의 나날을 보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비를 좋아하지만 비가 지닌 무서움을 잘 안다. 비가 몰고 오는 불쾌지수를 잘 다스려야 한다. 첫 번째 준비로 에어컨을 새로 장만했다. 장만이 아니라 선물이다. 더위를 많이 타는 누나를 위해 동생이 선물한 시원함이다. 공간의 재배치가 필요했다. 덕분에 책장을 정리했다. 이번에도 책을 버렸다. 좋아했지만 다시 읽을 것 같지 않은 책, 읽겠다 다짐하며 버리지 못한 책, 그리고 CD를 정리했다. 갖고 있는 게 많지 않았지만 막상 버리려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선물 받은 게 많았다. 고마운 마음을 정리하는 것 같은 미안함이 몰려왔다.





책장에는 공간이 생겼다. 드립 커피와 몇 권의 책을 샀다. 버리는 만큼 맞춰 들이는 건 아니니까. 김애란의 단편집 『안녕이라 그랬어』, 『소설 보다 : 여름 2025』는 구매 계획이 있었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별의 시간』은 고민하다 구매했다. 왜냐하면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책을 읽다 만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글이라는 건 알겠는데 어려웠다. 친애하는 이웃 님의 추천으로 도전하기로 했다.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알 수 없으니까.


비가 지나간 아침은 고요하다. 바람도 없지만 시원하다. 이 시원함이 곧 사라질 걸 알기에 더욱 달콤하다. 다시 비가 오기 전 해야 할 일은 세탁기 돌리기. 게으른 마음을 달래며 해야 할 일이 많다. 주말의 아침이 분주하다. 모두 장마의 나날을 안전하게 지냈으면 한다. 눅눅한 일상이 계속되겠지만 보드라운 시간도 이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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