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시 일상시화 7
안미옥 지음 / 아침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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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산다. 시를 읽는다. 그냥 읽는다. 끌리는 대로 읽다 꽂히는 시가 있으면 메모한다. 알 것 같기도 모를 것 같기도 한 시. 그런 모호함이 좋다. 소설에도 모호함이 있지만. 왠지 모호와 난해는 시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시인 안미옥의 에세이 『빵과 시』는 시를 쓰는 마음, 시를 준비하는 마음을 빵과 연결시켜서 보여준다. 시를 좋아하는 이라면, 아니 빵을 좋아하는 이라면 반가고 기꺼울 책이다. 일상이 시가 되는 순간, 아침달 시리즈 ‘일상시화’의 마지막이라니 아쉽다.


시인은 시를 언제 쓸까, 떠오르는 시상을 어떻게 붙잡을까. 시어에 숨겨진 시인의 의도는 무엇일까. 시인의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따라오는 생각이다. 시를 써야지 준비하면 바로 시를 쓸 것 같은 생각은 독자의 오만이다. 단 번에 시가 되고 단 번에 소설이 될 수 없으니까. 그러니 아무 말이나 쓴다는 시인의 글은 괜히 반갑다. 아무것도 아닌 나도 뭔가 쓰려고 하면 시간이 필요하니까. 시간을 정해두고 그 안에 쓰려고 노력하니까. 쓴다는 건 쉬우면서도 어렵다는 건 모두에게 같다는 게.


시를 쓰기 전에 한글 창을 켜고 시간을 정해둔 뒤 아무 말이나 쓴다. 일종의 모드 전환을 위해 쓸 준비를 하는 것이다. 시의 주제와 상관없이 워밍업의 시간은 늘 필요하다. (33쪽)


『빵과 시』이라는 제목답게 시인은 빵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빵, 자주 가는 카페, 친구들과의 만남, 동네책방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빵을 좋아하는 이라면 빵 이름이 나올 때마다 그 모양과 맛을 떠올릴 것이다. 잘 모르는 빵이 등장하면 나는 검색을 했다. 아, 이런 빵이구나. 시인이 좋아하는 카페가 나오면 나는 또 검색을 했다. 내가 모르는 공간, 한 번도 간 적 없고 앞으로 방문할 일이 없을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시인을 상상했다. 「이혜와 서울」란 이름의 카페는 오래도록 잊지 않을 것 같다. 알지 못하는 곳을 향한 어떤 그리움까지 생겼으니까.


빵은 어디에나 있다. 빵에 가장 가까운 형태로, 또 가장 멀리 있는 형태로. 손 닿을 곳에. 마음 닿는 곳에. 시가 그러한 것처럼. (62쪽)


가만가만 시를 생각하고 시를 쓰는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아이의 정직한 마음은 웃음과 감탄을 불러온다. 빵과 시에 대한 글을 쓴다는 엄마에게 관심을 보이고 천변의 돌 다리를 건너며 멋지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이 행동으로 나온다는 아이.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시인의 바람은 생각하면 생각이 밖으로 나오고 문장이 다음 문장을 쓸 수 있게 만든다고 이어진다. 시인처럼 좋은 시와 문장을 쓰는 삶은 아니지만 생각이 행동으로 나온다는 걸 잊고 있었구나 돌아보게 된다.


시는 흐르고 있는 것일까. 멈춰 있는 것일까. 흩어지는 것일까. 가라앉아 있는 것일까. 사라진 것일까. 새겨진 것일까. 어떤 시는 투명한 상자 안에 서 영원히 흐르고 있는 모래바다 같다. 가라앉으면서 흐르는. (83쪽)


시인에게 모든 건 시로 연결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글을 읽기 전까지는 시인이 원하는 시와 독자가 어떻게 읽어주기를 바라는지 몰랐다. 모든 시에는 괴로움이 있고 괴로움은 질문을 발생시키고 삶과 고통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그런 마음은 당근을 먹으면서 당근 케이크를 생각하고 자꾸 씹히는 당근 조각 같은 시로 이어진다. 세상의 모든 시가 품은 괴로움은 시인이 시를 쓰며 넣어둔 씨앗은 아닐까.


시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만큼 사람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동물 앞에서도, 생활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부끄러운 일 앞에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생활 없이, 이웃 없이, 사랑 없이, 반성 없이는 시도 없고 시인도 없다. (139~140쪽)


빵이 좋아서, 시가 좋아서 만난 책. 시가 더욱 궁금해졌다. 바게트빵을 상어라 생각하는 아이를 키우고 유서를 편지처럼 보낸 엄마에게 말하지 못하고 쓰는 사람이 된 시인. 그 마음이 시가 되어 나와 닿았을 순간. 시를 읽는 건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일이고 고통을 읽는 일이고 헤아리는 일이다. 다 알지 못하고 알 수 없어 오독하며 시를 읽는다.


사람이 자라면 눈물도 더 크게 자란대 다들 이걸 어떻게 감추고 살까 매일 한 뼘씩 커지는 눈을 어디에 묻어두고 있는 걸까 잘 기억나진 않지만 나는 거울 속에 감춰둔 것 같다 그래서 거울을 볼 때마다 울 것 같은 기분이 되나봐

너는 빵 속에 숨겨두었지? 그래서 울고 싶을 때마다 빵을 먹잖아 부드러운 빵이 더 좋을 것 같은데 너는 매번 딱딱한 빵을 먹는다 잘 씹히지도 않는 빵을 오래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고

(시 「적란운 위에 쓴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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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가는 마음
윤성희 지음 / 창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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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인다고 볼 수 없는 움직임으로 살고 있다. 속내는 멈춤 그 자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럴 수 없기에 천천히 느린 속도로 산다. 빠르게 가라고 재촉하는 이가 없는데 왜 마음은 불편한 것일까. 이런 마음은 괜찮다고 나쁜 게 아니라고 말하는 소설을 읽었다. 윤성희의 단편집 『느리게 가는 마음』를 읽으면서 마음속 더위를 날려주는 바람을 만난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익히 알았던 윤성희의 소설이 주는 기쁨을 만끽했다. 삶의 슬픔과 불운에 대해 수군대고 혀를 차는 게 아니라 그럴 수 있다며 달래는 유머.


우리의 삶 전체를 행운으로 채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디에도 그런 삶의 주인공은 없다. 누구나 누군가를 잃고 상실과 동행하며 죽음을 두려워한다. 다만 견디는 것이다. 켜켜이 쌓여있던 슬픔을 지켜보고 알아주는 소중한 이와 함께. 『느리게 가는 마음』 속 8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 곁을 지키는 이들처럼. 혼자가 아니기에 소설의 주요 키워드인 생일을 축하하는 이들이 있기에 살아간다.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런 인물의 구성이 윤성희 소설의 장점이다. 처음부터 특별하고 끈끈한 관계가 아닌 시간이 지나 단골이 되고 우연한 만남의 연속으로 친밀해진 사이라고 할까.


사실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8편의 이야기는 슬프고 우울하다. 가장 가까운 이의 부재를 견디며 살아간다. 죽은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아빠에게 엄마가 남긴 마지막 김치라는 걸 모르고 매일 먹는 김치볶음밥을 그만 먹고 싶다고 말하는 아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딸의 생일에 가장 좋은 그릇을 꺼내 생일상을 차리고 콜라를 따라주는 엄마, 혼술 유튜버의 영상에서 죽은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그 식당을 찾아가는 아들.


때문에 『느리게 가는 마음』에서 기억을 떠올리고 축하를 건넬 수 있는 생일이라는 장치는 유용하다. 잘 모르는 사이여도 반갑게 축하를 해주고 거짓으로 생일이라고 말해도 식당에서는 미역국을 내준다. 외할머니의 생일이라 가족이 모두 모일 수 있고 지난 시간을 이야기한다.






이쯤에서 표제작 「느리게 가는 마음」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암 투병 중인 엄마 대신 나를 살피고 챙기는 이모와 함께 느리게 가는 우체통을 찾아간다. 이모가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보낸 엽서를 찾기 위해서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결혼해서 엽서를 받으면 안 될 상황이다. 이모의 엽서를 찾다가 다른 이의 엽서를 읽게 되는데 자신에게 보낸 내용이 많았다. 1년이 지나 자신에게 도착할 마음. 스스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모한테 엽서에 적힌 사연들을 몰래 읽어봤다고 고백했다.

“뭐 근사한 내용 있었어?”

“거의 비슷비슷하던데. 별거 없더라.”

“그치. 별거 아니지. 그런데 또 별거지.” (「느리게 가는 마음」, 98쪽)


별거 아닌데, 별거인 것. 남편이 죽고 음식 하기가 귀찮았는데 자신들이 맛있는 거 먹으려고 식당을 시작했다는 할머니들의 말도 비슷하게 다가온다. 시골길에서 느리게 가는 만물트럭에서 생일 케이크를 발견하는 우연. 남녀노소 나이와 상관없이 축하할 수 있는 날, 생일. 아픔과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우선은 축하로 시작할 수 있는 생일이 있다는 게 참 좋다.


친구 윤석에게 생일이 아닌데 생일 축하 전화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해피 버스데이」의 ‘나’도 그랬을 것이다. 구내식당의 미역국과 잡채를 먹으며 생일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덕분에 직장 상가의 단골집에서 저녁을 먹게 되는데 그곳에서 가스폭발 사고를 당한다. 크게 다치지 않는 나는 항상 동생에 비해 운이 나쁘다고 여겼던 자신의 삶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깨닫게 된다. 더 이상 생일 축하 인사를 받을 수 없는 동생을 떠올리며 동생의 흔적을 찾는다. 그러니 엉뚱하게 생일이 아닌 날에 생일 축하를 하고 그런 축하 인사를 받고 싶다. 생일이 아니어도 생일처럼 보내는 하루, 그런 하루가 있어 다른 힘겨운 하루가 살만해질지도 모르니까.


“생일 축하해.” 나는 윤석에게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내 생일은 아직 멀었어.” 윤석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하루 생일처럼 지내라고 말했다. 점심에 미역국도 사 먹고 저녁에는 케이크에 촛불도 밝히라고. (「해피 버스데이」, 192~193쪽)


생일에 아빠가 미역국을 끓여주지 않아 가출하는 소설 속 십 대 청소년이 아니라서 그런가. 나이가 들면서 생일을 챙기는 일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미역국을 챙겨 먹지도 않고 케이크를 사지도 않는다. 돌이켜보면 어려서는 가족이나 친구가 생일을 챙겨주기를 바랐다. 생일을 챙기는 일, 나의 존재를 기억하는 일이다. 문득 언젠가 나의 부재에도 나의 생일을 챙기는 이가 있을까 궁금해진다.


매일을 생일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생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도 좋겠다. 생일이라는 이유로 실수나 잘못을 용서받고. 누군가 세상을 떠나는 날, 누군가는 태어나는 것처럼 죽음과 상실의 자리에 기쁨과 축하로 채워질 것이다. 다시 또 삶은 그런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오늘 생일을 맞는 누군가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생일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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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과 꿀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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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선 길을 잃기 마련이다. 두렵거나 무섭다기보다 처음 간 곳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길을 찾으면 그만이라고. 돌아갈 곳이 있으니 괜찮다고. 그러나 돌아갈 곳이 어딘지 잃어버리고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걸 발견하면 절망에 빠진다. 도움을 청해야 할 이가 아무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폴 윤의 단편집 『벌집과 꿀』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그러하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고향을 떠나고 길을 나선다. 정착한 듯 보이지만 뿌리를 내린 적 없다. 원망할 대상은 사라졌고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 그들의 여정(여행이든 이주든)은 고단함을 넘어 고독하고 쓸쓸하다. 때문에 자신과 같은 처지의 타인을 돌본다.


첫 번째 단편「보선」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와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교도소에 갔다가 출소한 ‘보’의 이야기다. 교도소에서 만난 이의 소개로 낯선 동네의 카지노에서 일한다. 집과 카지노를 오가는 게 전부인 어느 날 동료의 잃어버린 아이를 찾다가 주인집 딸과 마주한다. 그녀에게도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족이 있지만 가족과 살지 못하고 집을 원하지만 집을 갖지 못하는 이들이다. 그들의 마음 한편에 자리한 감정을 나는 짐작할 수 없다.


자신이 살아온 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사연도 마찬가지다. 「코마로프」 속 탈북한 뒤 이곳저곳을 떠돌다 스페인에서 청소 일을 하는 나이 든 여자 ‘주연’의 사연, 런던 외곽 한인타운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크로머」 속 탈북 한인 2세 부부의 이야기.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갈 곳이 없는 주연은 사람들이 아들이라 말하는 남자에게 진짜 엄마의 주소를 전하고 한인 2세 부부는 길을 잃은 아이가 신경 쓰이고 걱정된다.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도는 삶.


소설 속 인물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한 한국계 디아스포라들이다. 「보선」, 「코마로프」, 「크로머」는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지만 조선인 고아와 에도시대 사무라이가 등장하는 「역참에서」, 할아버지를 이어 사할린섬의 교도소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찾아가는 고려인 십 대 소년 ‘막심’의 이야기 「고려인」, 러시아 극동 지방의 고려인 정착지에 임관한 러시아인 장교가 목격한 고려인의 삶을 보여주는 「벌집과 꿀」, 한국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남자의 이야기 「달의 골짜기」는 한국의 아픈 역사를 불러온다.





표제작 「벌집과 꿀」과 「달의 골짜기」는 짙은 여운을 남겼다. 내가 잘 모르는 역사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벌집과 꿀」의 고려인에게 러시아인 장교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자 외부인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하나가 되어 뭉쳐야 했다. 고국을 떠나온 그들에게 그들을 지킬 수 있는 이들은 그들뿐이라고 믿었을 테니까. 설령 무지한 믿음일지라도.


“우리는 아무도 원치 않고 관심도 없는 땅에서 살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벌집과 꿀」, 198쪽)

“그럼에도 내일이라는 게 있지 않게습니까?”(「벌집과 꿀」, 199쪽)


전쟁의 상흔만 남은 고향 집을 고치고 혼자 살아가는 「달의 골짜기」속 ‘동수’에게도 다르지 않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지만 동수에겐 그곳이 집이었으니까. 땅을 일구고 가축을 키우고 한 번씩 만나는 땜장이에게 필요한 물건을 샀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채, 전쟁고아인 남매를 거두며 살아간다. 결국엔 서로에게 상처로 남은 시간일지 모르지만.


매일 밤 여기서 달이 뜨고, 기울고, 부서졌단다. 그러고는 스스로를 다시 만들어냈지. (「달의 골짜기」, 250쪽)


그들은 살아내야 하기에 아무도 돌보지 않는 땅을 개간하고 넓혀간다.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나아간다. 어느 누구도 정확한 방향과 길을 알려주지 않지만 멈출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실패를 반복하며 방향을 찾고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낸다. 그곳이 어디든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온다는 진리에 기대어. 변하지 않는 그 사실은 여전히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하고 어딘지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나가가는 이들에게 애틋한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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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리는 개 안온북스 사강 컬렉션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유진 옮김 / 안온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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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을 사랑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사랑을 원하는 방식도 그러하다. 분명 서로를 사랑하는 연인이지만 갈구하는 사랑은 같을 수 없다. 사랑이라는 속성이 그렇다. 그래서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게 현명한 사랑이라는 말도 있다. 사랑하니까 뭐든 원할 수 있고 괜찮다고 믿는 사람에게 그건 아니야, 그럴 수 없어라고 말한다면 사랑을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사실, 이렇게 말은 해도 사랑에 빠지거나 미치게 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성적인 판단은 사라지고 순간의 감각과 감정에 취해 그게 전부라고 믿고 만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엎드리는 개』 속 ‘게레’와 ‘마리아’의 관계는 무엇일까. 마리아를 향한 게레의 몸짓은 사랑이었고 그런 마리에게 게레는 처음엔 마냥 귀찮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관계와 감정은 수시로 변하니까.


스물일곱 살 게레는 고가의 보석 주머니를 발견하는 순간 다른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이 보석만 있으면 탄광회사도 때려치울 수 있으니까. 하지만 꿈과 현실은 달랐다. 게레가 주운 보석의 주인은 열일곱 번이나 칼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게레를 바라보는 마리아의 시선도 그러했다. 과거 마르세유 갱단 두목의 여자로 살았지만 정원을 가꾸며 하숙집을 운영하는 마리아는 그를 살인자로 착각한다. 하루하루가 지겹기만 했던 마리아에게도 게레가 신선한 활력으로 다가온 것이다. 늙은 여자와 젊은 청년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단단히 착각하면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마리아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착각, 게레가 잊었던 감각과 본능을 깨워줄 거라는 착각.


둘은 서로에게 몸을 기울인 채 속삭이고 공모하면서, 절반쯤은 적의를 품고 또 절반쯤은 유혹적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어다. 둘 사이를 방해하는 것은 그들의 나이 차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비슷한 부류라는 데 있었다. (69쪽)


소설과 별개로 게레와 마리아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둘만의 세계로 떠났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소설 속 늙은 여자를 정부로 두었다고 말하는 게레의 동료나 바에서 게레와 마리아를 두고 이모나 모자 사이라고 오해가 아니라 확신하는 이들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마리아 쪽에서 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 역시 게레를 향하 마음이 진심이었음을 발견한다.





그녀는 자의 신경을 긁어대는 내면의 무언가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다, 바람에서 정말로 좋은 냄새가 난다는 것을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115쪽)


게레가 보석 주머니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연하게 운명이 게레에게 다가온 것이다. 마리아라는 사랑도. 누군가 마리아는 그저 외로웠고 고독했으며 게레는 욕망을 사랑이라고 착각한 거라 말할지도 모른다. 그들의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이다. 게레가 마리아를 만나기 전까지 만났던 여자를 보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게레는 마리아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깨우친다.


『엎드리는 개』란 제목이 말하듯 소설에는 개 ‘파샤’가 등장한다. 떠돌이처럼 보이지만 주인이 있는 개 파샤는 게레 주변을 맴돌고 따라다니지만 게레에게 온전하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배를 내밀어 쓰다듬어 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모두가 느낄 수 있다. 파샤가 게레를 좋아하고 있다는걸. 파샤의 행동을 통해 게레와 마리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엎드릴 수 있지만 주저하고 조심스러워하는. 마리아가 조금 더 빨리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고 게레에게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마리아는 차갑고 조금은 적대적인 얼굴로 자신을 대면했다. 스푼을 내려둔 손이 턱으로, 머리카락으로 올라갔다. 간단한 동작으로 풍성하게 볼륨을 만들어보았지만, 거기엔 눈이 띄는 흥미도 열의도 없었다. 꼼짝하지 않고 아득히 머물러 있는, 권태와 무관심 그 자체인 얼굴이었다. 그러므로 오만한 눈꺼풀 아래 맑고 단단한 눈에서 너무나 둥글고 응축된 눈물이 아무런 전조 없이 연달아 솟아올랐을 때, 그녀가 느낀 감정은 괴로움이 아닌 놀라움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귓가에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흐르는 눈물을 바라보았다. (131~132쪽)


오해와 착각으로 시작된 관계였을지 모른다. 연민이나 동정으로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게레와 마리아는 서로를 사랑했다. 사랑하는 방식과 속도가 달랐다. 마리아 앞에 납작 엎드리는 개가 될 수 있었던 게레, 그런 게레를 쓰다듬고 만지는 대시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는 마리아. 타인의 시선에 가깝고도 멀게 보이는 그 거리가 그들에겐 가장 가까운 거리였다. 둘 사이에 오가는 눈빛은 둘만이 알 수 있는 신호다. 게레와 마리아의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이들도 오직 그들뿐이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말하는 사랑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사랑.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방식, 행복과 기쁨이 아닌 고독과 쓸쓸함만 남은 사랑, 사랑이 무엇인지 곱씹고 곱씹게 만든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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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백 바깥여름 - 12g, 7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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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여름은 온통 장맛비 세상이다. 귀여운 무민은 반갑고 땡스투는 호호 할머니가 되어도 커피를 잘 마실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 그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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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2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6-23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