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혼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4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황종민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의 마음엔 수만 개의 방이 있고 길이 있다. 어떤 이는 그 방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돌보며 살고 어떤 이는 가장 큰 방만 신경 쓰며 산다. 혹자는 마음 다스리기를 하라고 조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게 그리 쉽게 잡히고 다스려진다면 뭐가 어려울까. 복잡하고 혼란스러움 그 자체가 마음이니 문제인 거다.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이 타오르고 주체할 수 없기에 대책 없이 무너지고 만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런 인간의 심리를 소설을 통해 보여준다. 아니, 꿰뚫어 본다고 하는 게 맞겠다.


『감정의 혼란』 속 네 편의 소설에서 만난 인물은 흔히 볼 수 있는 이들은 아니다. 어쩌면 심연 깊은 곳에서 꺼내지 못한 우리의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오직 욕망에 이끌려 살아가는 이는 얼마 없으니까 말이다. 표제작 「감정의 혼란」의 인물만 봐도 그렇다. 소설은 회갑을 맞은 화자가 들려주는 스승과 자신에 대한 과거 이야기다. 그러니까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다. 현재가 아닌 과거를 꺼내는 건 과거에는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거나 그때는 감정의 본질을 몰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화자는 젊은 시절 학문과 등을 지고 방탕하게 지내다가 아버지의 방문으로 시골대학에서 새롭게 시작한다. 그곳에서 한 교수의 열정적인 강의에 매료된다. 교수의 집을 오가며 학문에 열중한다. 그러나 제자인 자신을 대하는 스승의 태도에 혼란스럽다. 한없이 친절하고 다정했다가 한순간 차갑게 변하는 일이나 수업도 하지 않고 사라졌다 돌아오는 기이한 행동과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교수의 젊은 아내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남편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지만 화자에게 쉽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 알 수 없는 마음과 반발심의 충돌 때문인지 화자는 교수의 젊은 아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된다. 은밀하고 짜릿함보다는 괴로움이 가득한 그에게 스승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화자는 그 사랑을 이제야 꺼내고 자신도 교수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확인한다.


어둠 속의 이 목소리, 어둠 속의 이 목소리, 이 목소리가 내 가슴속 깊숙이 꿰뚫고 들어오는 것이 얼마나 뼈저리게 느껴졌던가! 그 목소리에는 내가 그전에, 아니 그 전뿐 아니라 그후에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울림이 깃들어 있었으니—평범한 운명을 사는 사람은 결코 헤아일 수 없는 심연에서 터져나오는 울림이었다. ( 「감정의 혼란」, 386~387쪽)


슈테판 츠바이크는 휘몰아치는 교수의 감정과 어찌할 줄 모르는 화자의 마음을 소설에서 섬세하게 묘사한다.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억누르다 결국 폭발하고 마는 순간에 도달한 교수의 처절한 목소리가 내게도 들릴 것만 같다. 후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들키고 싶거나 들키고 싶지 않았을 그 복잡함. 그 시절을 깊고 깊은 곳에 가둬둘 수밖에 없었던 화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누군가의 비밀을 듣는 일을 조심스럽다. 그것이 소설 속 이야기일지라도 말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독자를 소설이라는 비밀에 발을 들이게 만드는 놀라운 이야기꾼이다. 표제작에서 화자와 스승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하게 만든 것처럼 「아모크 광인」과 「어느 여인의 인생의 스물네 시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모크 광인」 속 여행 중인 화자는 인도를 떠나 유럽을 향하는 배에서 지루한 일상을 보내다 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선박에 숨어 지내던 남자로 그의 존재를 아는 이가 없다. 그런데 화자가 보기에 몹시 불안한 상태라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해 보여 도와주겠다고 말하지만 남자는 냉소적이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일까. 화자는 그 남자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고 마침내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남자는 의사로 7년 전에 인도에 왔다. 사연 많은 남자는 인도에 도착해 처음엔 의욕적으로 살았다. 현지어를 익히고 원주민과 잘 지내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든 흥미를 잃고 무기력하게 지냈고 계약기간이 끝나 유럽으로 돌아가기만 기다리던 차에 한 여자가 찾아온 것이다. 원주민이 아닌 백인 여자였다. 그러나 여자는 의사에게 시원하게 자신의 상황을 말하지 않는다. 의사를 찾아왔다는 건 어디가 아프거나 진료를 받을 목적인데 말이다. 남자는 호기심이 생겨 여자에 대해 알아보고 관찰하다 도도한 여자에게 빠져버린다. 그러니까 화자가 남자에게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인간 심리의 수수께끼는 불안할 만큼 나를 사로잡아, 그 관련을 밝혀내고 싶은 충동이 핏속 깊이 들끓게 한다. ( 「아모크 광인」, 119쪽)


「아모크 광인」속 화자가 느낀 이런 감정은 어떤 것일까. 점점 타인과 무감한 사이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불필요한 감정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온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이상하게 끌리는 상대에게 마법에 걸린 것처럼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내되는 일 말이다. 나와 아무런 연결점이 없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느 여인의 인생의 스물네 시간」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처럼. 단 하루 동안 여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설은 호텔 옆 여관에 모인 일곱 명의 숙박객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호텔 주인의 아내가 손님이었던 청년과 야반도주를 한 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수다를 떤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하룻 사이에 사랑이 싹틀 수 있을까. 설령 사랑의 감정이 생겼다 해도 남편과 두 아이를 버리고 떠날 수 있단 말인가. 대다수가 아내를 비난하지만 화자는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자신의 의지를 따라 행동한 그녀에게 존경심을 표한다. 화자의 말을 듣던 한 노부인은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어느 여인의 인생의 스물네 시간」속 여인이 바로 이 노부인이다.


그녀는 마흔에 남편과 사별하고 슬픔에 빠져 방황하다 우연하게 룰렛 도박에 열중하는 한 청년을 만난다. 「아모크 광인」속 화자가 그러했듯 그녀도 청년을 향한 호기심을 거부할 수 없었다. 청년이 도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를 뒤쫓는다.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달래로 위로하다 하룻밤을 보낸다. 결과적으로 청년은 그녀의 바람과 다르게 도박을 끊어내지 못해다. 그러나 그 스물네 시간은 예순일곱 해를 살아온 지금까지 평생을 지배한다고 고백한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 밤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그날 밤은 싸움과 대화, 열정, 분노와 중오 눈물어린 애원과 도취가 끝없이 이어져 저에게는 수천 년이 흐르는 듯 느껴졌고, 우리 두 인간은, 한 인간은 죽을 듯 날뛰며, 다른 한 인간은 얼결에 휩쓸려, 뒤엉킨 채 비틀비틀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죽기 살기로 소동을 뚫고 새로이 태어났어요. 완전히 변모하여, 감각과 감정이 바뀌어, 새로이. (「어느 여인의 인생의 스물네 시간」, 236~237쪽)


어디 그뿐인가.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고백하자면 복잡한 심리의 묘사와 탁월함에 절로 감탄하지만 나는 이런 문장에 더 반했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얼마나 수많은 사람을 관찰을 했을지 그가 얼마나 많은 시간 공을 들였을지 알 수 있다.


손은 아무리 은밀한 비밀도 여지없이 드러내요. 간신히 달래져 잠자는 듯 보이던 손가락이 기품 있는 무심함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필할 수 없이 찾아오는 법이니까요. 손들은 저마다 특별한 인생을 드러내니까요. (「어느 여인의 인생의 스물네 시간」, 214쪽


슈테판 츠바이크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저마다 특별한 인생 안에 숨겨진 욕망과 비밀이 있다는 걸 말이다. 우리가 아는 건 겨우 몇 개에 불과하다는걸. 그러니 재밌고 그다음이 궁금해서 끝까지 책을 놓을 수 없게 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5-10-27 16: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불타는 비밀 말고는 다른 출판사에서 읽어봤지만..츠바이크여서 저도 구매했습니다 ㅋ 츠바이크의 문장은 역시라는 감탄만 나옵니다~!!!

자목련 2025-10-29 12:31   좋아요 0 | URL
역시 새팡님은 읽으셨군요. 읽을 때마다 좋음이 커질 것 같습니다!

yamoo 2025-10-27 2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 책은 믿고 볼 수 있죠. 일단 저도 츠바이크 책들은 쟁여놓고 있는데, 이 책은 아직이네요. 이참에 얼른 갖춰놔야 겠습니다..ㅎㅎ

자목련 2025-10-29 12:35   좋아요 0 | URL
쟁여놓은 책만큼 츠바이크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시군요!

coolcat329 2025-10-27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정의 혼란은 두 번, 아모크 광인도 읽어봤지만 이 책으로도 읽고 싶네요. 츠바이크의 책은 볼 때마다 마음이 설레입니다.

자목련 2025-10-29 12:36   좋아요 0 | URL
츠바이크의 문장은 정말 놀랍고 대단해요^^
댓글저장
 
새해 연습 위픽
김지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수를 했을 때 다음에 잘 하면 된다, 괜찮다 말해줄 수 있는 이가 있다면 든든하다. 그것이 실수가 아닌 실패였더라도 도전할 용기가 생긴다. 하지만 누구나 그런 이가 있는 건 아니다. 다수가 아닌 단 하나뿐인 선택의 상황에 놓인 이라면 어쩔 수가 없이 그것을 선택해야만 한다. 그것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하고 살펴볼 여력 따위는 없으니까. 김지연의 소설 『새해 연습』 속 ‘홍미’도 그러했다. 부모의 이혼으로 제대로 된 돌봄 없이 자란 홍미는 스스로 모든 걸 해내야 했다. 이젠 부모도 없지만 말이다. 그런 홍미에게 할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할머니가 18년 동안 써온 일기장이 남겨졌다. 유산인 셈이다.


홍미의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 할머니. 할머니의 이름은 ‘양지’다. 우스갯소리를 하자면 양지란 이름을 듣자마자 나는 양지 다이어리가 떠올랐다. 18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써온 일기. 일기를 쓰는 할머니라니. 그 일기가 홍미에게 도움이 될까. 할머니의 죽음 소식을 전한 공무원의 말처럼 홍미의 소유가 된 일기장. 홍미 마음대로 해도 되는 물건이다. 어쩌면 처음으로 하나의 선택이 아닌 다양한 경우의 수로 이어질 수 있는 물건.


소설은 홍미의 일상과 양지가 쓴 일기를 들려준다. 작은 회사에서 경리로 일하는 홍미의 일상은 단조롭다. 그래도 언제나 그랬듯 홍미는 늘 새해를 기대한다. 다른 곳으로 이직할 수 있고 필요한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지금까지 그런 새해가 홍미에게 오지 않았지만 새해니까. 새해를 위해 연습하는 해라니. 이런 문장을 쓰는 김지연이 좋다. 어느 정도 그 마음을 알고 그 상황을 헤아릴 수 있다는 거니까. 누군가를 어루만질 수 있는 태도를 지녔다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올해는 늘 새해를 위해 연습하는 해였다. (26쪽)


다시 소설로 돌아오면 홍미가 읽는 양지의 일기는 담백하고 아름답다. 양지의 일상도 단조롭기는 마찬가지다. 일기 어디에도 가족과 친구의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양지를 찾아오는 공씨가 있을 뿐. 양지의 하루가 어땠을지 짐작할 수 없다.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야 할 삶의 모든 걸 다 받아들인 것 같은 느낌이다. 양지의 일기를 읽으며 조금 일찍 홍미와 양지가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죽음도 미리 연습해두고 싶은 마음이 든다. 달력을 보니 오늘 보름이다. 절에 간 지도 오래되었다. 집에서는 달을 볼 수가 없다. 다음 보름까지는 한 달이 남았다. 달을 보고 있으면, 자기 것이 아니었던 빛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은은히 빛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없이 흥그러운 마음이 된다. (양지의 일기 중에서, 57쪽)


홍미는 유일한 친구 민석과 함께 양지의 집을 찾는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의 집은 돌보는 이가 없어 폐가나 다름없다. 옆집 이웃을 만나 공 씨의 존재를 묻지만 양지를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양지에게 손주 자랑을 하던 공 씨는 누구일까. 그러던 차에 홍미에게 공씨가 연락을 해온다. 공씨는 양지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자원봉사자였다. 공씨가 원했던 건 아니고 다니던 마트의 재계약에 도움이 될까 해서였다. 홍미가 만난 공씨는 손주가 있을 나이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양지의 일기는 거짓이었다. 양지는 일기를 통해 원하던 삶을 연습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홍미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기 전에 자신을 둘러싼 환경 속에서 무엇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지를 알아내는 데 통달했다. 그러므로 그것은 선택이 아니었지만 홍미는 자신이 최선의 것을 고를 안목이 있다고 착각했다. (60~61쪽)


홍미에겐 다시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 사장인 경식이 홍미가 자신이 뜻대로 되지 않자 회사 사정이 어렵다며 퇴사를 요구한다. 살고 있는 반지하의 빌라도 경매에 넘어가 전세금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홍미의 삶은 최선의 것을 고를 안목이 있다는 착각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그래도 홍미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결혼하자던 민석에게 결혼하자고 농담을 한다.


이처럼 김지연의 소설 속 인물은 유머가 있고 농담을 할 줄 안다. 여유가 넘쳐서 그런 게 아니다. 때로 어쩔 수 없어서, 마냥 울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그렇다고 외로워도 슬퍼도 안 우는 캔디 스타일은 아니다. 빨강 머리 앤에 더 가깝다고 할까. 내 생각엔 그렇다. 김지연의 소설을 기대하는 이유 중 하다. 그러니 홍미는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충분히 연습했으니까. 다음이 없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홍미에겐 새해가 있으니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5-09-30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새해가 엊그제 같은데...
올해도 이제 석 달 밖에 남지
않았네요.

어쩔 수 없이 사는 삶...
왠지 모르게 공감하게 되네요.

자목련 2025-10-01 09:35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시간이 정말 빠르죠.
추석 연휴 지나면 부쩍 추워질 것 같기도 하고요.
댓글저장
 
양면의 조개껍데기
김초엽 지음 / 래빗홀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꿈꾼다는 건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무언가를 갈망하고 다른 세계로의 이동을 뜻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꿈도 꾸지 마, 꿈 깨라고 면박을 준다. 그 꿈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지고 않고 구체적으로 들어보려 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나는 꿈을 꾸는 사람일까, 꿈 깨라고 말하는 사람일까. 김초엽의 『양면의 조개껍데기』를 읽다 보면 그런 질문과 마주한다. 꿈을 이해하고 인정하려 노력하는 사람인가.


다른 존재로 변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에게도 있었다. 소설 속 물고기, 펭귄, 곰 같은 피부를 갖고자 실천하는 이들이나 다른 세계로 넘어갈 막을 찾는 이들과 비교할 수 없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 육체적인 고통에 기인한 것으로 수술 전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신체의 변화로 얻은 활동의 제약, 쪼그라들고 움츠려든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간절함이었다.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는 감정, 나만이 느끼는 통증은 설명할 수 없고 이해와 공감을 얻기도 어려운 종류니까.


모두 똑같을 수 없지만 주류가 아닌 경계나 변두리의 삶을 살다 보면 주류로 넘어가려 애쓴다. 사람들이 그게 정답인 양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삶이라고. 보편적인 것이 아닌 다른 일상을 반복하거나 지향하면 신기한 듯 호기심을 가질 뿐 파고들지는 않는다. 김초엽은 다르다. 그런 타자를 관찰하고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 같은 게 있으면 다른 것도 있는 게 당연하다고. 그러니 그가 그려낸 다양한 세계는 놀랍고 이상한 게 아니라 아름다울 지경이다.


「수브다니의 여름휴가」 속 ‘수브다니’는 최첨단 안드로이드였다가 인간화 시술을 후 기계로 돌아가기를 꿈꾼다. 금속 피부 이식을 받으면 녹슬게 분명해 말류 하지만 수브다니는 강행한다. 그것만이 수브다니가 원하는 것이었으니까. 이해할 수 없지만 수브다니의 삶을 인정하며 어려울 게 없다. 타자를 인정하는 일, 정상이라는 세계로 오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인정한다면 혐오와 차별은 사라질 것이다.


타자와의 공존은 어려운 일이 아닌게 된다. 그런데 정상이라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어쩌면 정상이라는 틀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하나의 신체에 두 개의 자아(‘샐리’와 ‘레몬’)를 지닌 셀븐인의 이야기인 표제작 「양면의 조개껍데기」도 다르지 않다. 샐리와 레몬의 독립된 자아는 감정도 다르고 욕망도 다르고 자아가 바뀔 때마다 신체적 특성도 변한다. 하나로 통합될 수 없고 치열하게 갈등하지만 공존할 수 있는 희망을 보여준다. 우주 어딘가의 행성인 샐리는 내가 될 수 있고 주변의 누군가가 될 수 있다. SF 소설은 상상이 아닌 사고 영역의 확장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것이 김초엽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 거대한 외로움을 직면하는 것이 두려웠었다. 하지만 레몬은 진작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외로운 세계가, 그렇기에 얼마나 자유로운지. (「양면의 조개껍데기」, 106쪽)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주 협소한 우주의 일부라는 걸 알지만 인간의 문명이 아닌 다른 문명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진동새의 진동으로 기록하는 「진동새와 손편지」는 문자 대신 색채로 기록하는 외계 생명체 이야기를 다룬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속 단편 「스펙트럼」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무엇이든 문자와 언어를 대신할 수 있으니 눈빛이나 움직임으로 말하는 존재도 가능하다.





「고요와 소란」에 등장하는 사물과 생물의 목소리를 채집하고 전시하는 세계가 이상할 게 없다. 어쩌면 갑자기 사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라 인간의 요란한 소리에 감춰져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하는 말을 잘 듣기를 바란다. 얼핏 사물을 기억하고 추억하려는 아름다운 단편 같지만 김초엽은 온갖 소리로 가득한 지구를 살피고자 하는 우주의 소리 수집가가 지구에 거미줄을 친 거라고 우리를 안내한다.


더 깊고 넓게 확장된 김초엽의 상상과 탐구는 먼 미래 데이터만 남은 세계에서 인간의 실존에 대해 질문하는 「달고 미지근한 슬픔」으로 이어진다. 소설이 아닌 현실 속 AI로 통하는 세계에서 인간 고유성과 살아 있다는 감각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도래할 세계가 그러하다면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지도 모른다.


살아 있다는 감각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 이 세계도 이곳의 사람들도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단지 다른 방식으로, 어떤 생물도 존재한 적 없는 방식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달고 미지근한 슬픔」, 292~292쪽)


생태 탐사용 고래 로봇 이야기를 다룬 「소금물 주파수」는 동화 같은 소설이다. 작가의 고향인 울산을 배경으로 바다에서 수많은 고래들을 만나고 육지로 돌아오는 돌고래 ‘해몽’을 만들고 사랑한 할머니 과학자. 소설 속 해몽이가 진짜 존재할 것만 같다.


평행 세계를 다루며 그 안에서 정체성을 찾는 「비구름을 따라서」는 나를 울컥하게 만든 소설이다. 죽은 친구 ‘이연’의 이름으로 온 추도식 초대장. ‘보민’은 누군가의 고약한 장난이라고 여겼지만 신경이 쓰인다. 이연과 보민은 보드게임 모임에서 처음 만났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을 만들고 설명하는 게임 ‘노바 파우치’를 하며 친해졌고 룸메이트가 되었다. 이연은 자주 직장을 옮겼고 가족과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이연의 방은 잡동사니와 쓰레기 같은 물건들이 가득했고 그것이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것이라 말했다. 보민은 이연이 불안했다. 그래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사람은 아니었다.


날짜가 뒤죽박죽인 초대장 중 하나에서 발견한 문구가 아니었다면 초대장에 적힌 주소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 문구는 언젠가 이연이 상상했다며 들려준 것이었다. 그곳에서 이연의 초대를 받은 두 명과 이연이 말한 다른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니까 이연은 다른 세계로 건너갔고 그 세계에서 수많은 초대장을 보낸 것이다. 그쪽에서 보낸 걸 이쪽에서 발견하게 될 확률은 아주 적으니 이연은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평행세계에 대한 소설은 익숙하지만 이렇게 애틋한 적이 었었던가. 이연은 자신이 본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들을 초대했다. 막을 건너는 일은 보민과 다른 두 사람의 선택이었다.


알 수 없었다. 막을 건너온 것은 작은 사소한 물건들, 그 너머에 존재하는 것은 거대한 세계와 사람들.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상상하는 일뿐. (「비구름을 따라서」, 374쪽)


김초엽이 보여준 세계는 낯설고 이상하다. 여기가 아닌 거기에만 존재할 것 같지만 그가 전하는 바는 명확하다. 무엇을 꿈꾸든 그 꿈을 방해하지 말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나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타자가 공존하는 세계를 향한 지속적인 환대와 그 안에 거하는 모든 존재를 향한 사랑 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5-09-12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안 읽었다묜 바로 찾아서 읽고싶게 만드는 멋진 리뷰입니다. 김초엽이 전하는 공존과 환대의 세계가 정말 좋죠. 이렇게 끊임없이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작가가 있다는게 너무 좋네요

자목련 2025-09-15 17:19   좋아요 1 | URL
아름다운 SF 소설로의 초대라고 할까요. 김초엽이라는 통로가 아니었다면 저는 SF소설에 대한 관심이 없었을 것 같기도 해요. 배명훈 소설도 좋고요^^
댓글저장
 
소란한 속삭임 위픽
예소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이는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서 큰 소리로 외친다. 정작 그 소리는 소음으로 분류되고 만다. 어떤 이는 상대가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아 침묵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해야 할 말이 있는데 듣는 이가 사라지는 세상을 살고 있다. 예소연의 『소란한 속삭임』은 말한다. 그럴 때 속삭여보라고 말이다. 그런데 소란한 속삭임은 가능한가?


소설은 퇴근길 지하철에서 시작된다. 퇴근길 지하철,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피곤하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다. 동영상을 큰 소리로 시청하는 사람이 있다. 시끄러운데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분란을 일으킬까 염려되고 잠깐 피하면 그만이니까. 그때 ‘시내’가 시끄럽다고 말하며 ‘모아’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모아는 주저하다 너무 시끄럽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시내는 모아에게 속삭이는 모임을 제안한다.


“비밀을 속삭이진 않으나 그것이 마치 비밀이라도 되는 양 속삭여야 해요.” (16쪽)

“중요하지 않아도 속삭임으로써 중요해져요. 그러니까 우리 사이에 허투루 하는 말은 없는 거죠.” (18쪽)


이상하게 시내의 말처럼 별거 아닌 일상을 속삭이니 비밀을 공유한 기분이다. 정말 시내의 말처럼 속삭임으로 중요해진 것이다. 속삭이는 모임은 결성되었고 둘은 가장 시끄러운 명동에서 다른 회원을 찾기로 한다. 시끄러운 곳에서 속삭이는 모임은 회원을 찾을 수 있을까. 둘은 그곳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 심판의 날’을 외치는 ‘수자’를 만난다. 수자는 가입 조건으로 시끄럽게 구는 훈련도 번갈아 하자고 조건을 건다. 그래서 셋은 속삭이며 말하고 수자와 함께 시끄러운 소리도 내는 모임을 하게 된다. 그러다 시내의 집에 초대받게 되는 그곳에서 ‘두리’를 만난다.





시내의 아파트 위층에 사는 두리는 시내가 층간 소음으로 찾아온다고 말하며 자신은 소음을 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수자와 모아가 시내의 집에서 확인하기로 하는데 두리는 지저분하다면서 방문을 주저한다. 시내의 집은 온통 쓰레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두리의 말대로 시내가 듣는 층간 소음은 그곳에서 나는 게 아니었다. 모두가 두리의 집을 치우고 넷은 저마다의 사정을 털어놓는다. 숨겨왔던 마음을 꺼내 보이니 그간의 행동을 알 것 같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심판의 날’라고 소리치는 것으로, 속삭이는 일로, 세상과 단절하며 쓰레기와 살아가는 일은 슬픔을 달래는 각자의 방법이었을지 모른다. 어디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을 모르고 용기 내 도와달라고 말했지만 거절당해서.


이 매력적인 소설은 우리 시대 면면을 보여준다. 진실인 양 거짓을 외치는 동영상, 진실을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믿게 되는 습관, 수많은 소음에 갇혀 듣지 못하는 간절함, 하루하루 살기 버거워 타인의 아픔은 들여다볼 생각조차 못 하는 일상.


어떤 면에서 뻔하다. 세대가 다른 인물의 상처와 그것을 보듬는 몸짓, 한 번도 마주하지 못한 공감과 관계가 시작됨으로 연대하고 위로한다. 그러나 그 방식이 특별하다. 소란할 수밖에 없는지 관심을 갖고 들어주면 그것은 더 이상 소란이 되지 않고 혼자만의 속삭임이 둘, 셋으로 이어져 아름다운 소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작가는 말한다. ‘소란’과 ‘속삭임’처럼 양립하기 어려운 단어의 조합으로 가득한 게 우리 세상이며 둘의 적절한 균형을 찾아가는 일은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외면하고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함께 살아가는 일은 중요하다고. 누군가 살리기 위한 속삭임이 필요하다고.


어쩌면 시내는 자신이 살기 위해 혹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이 모임을 만들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92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alstaff 2025-09-10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오, 오늘 도서관에서 집었다가 다시 놓은 책입니다. ㅎㅎㅎ

자목련 2025-09-11 14:31   좋아요 0 | URL
다음엔 꼭 집어서 데려오세요!
댓글저장
 
오늘의 의뢰: 너만 아는 비밀 창비교육 성장소설 14
김성민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험이 내일인데 학교를 가지 않아될 일이 생기기를 바란 적이 있다. 지금은 시험을 망치면 어때서, 시험이 뭐 대수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아니었는데 스트레스는 받을 만큼 받았다. 만약 이런 나에게 비밀스러운 의뢰를 할 수 있는 사이트가 나타난다면 무시할 수 있을까?

김성민의 『오늘의 의뢰: 너만 아는 비밀』는 그런 사이트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오늘의 의뢰’는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렵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을 의뢰할 수 있는 비밀 채팅방이다. 매일 비번이 바뀌고 소수만 참여할 수 있다. 개인 정보에 대한 언급은 할 수 없다. 의뢰가 올라오면 의뢰를 해결한 사람이 다음 의뢰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누군가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해 줘야만 내가 원하는 일도 의뢰할 수 있다.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에 올라오는 의뢰는 학교 반, 이름까지 구체적이다. 전교 1등 하는 아이가 시험을 망치게 해 달라는 의뢰, 좋아하는 여학생의 신상 정보에 대해 알려달라는 의뢰. 지역 청소년이 드나드는 채팅방이기에 알려고 하면 의뢰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지만 그런 언급을 하면 영원히 사이트 이용이 금지된다.

채팅방의 의뢰와 해결을 시작으로 호기심을 불러온 소설은 중학교 2학년 해민과 해민의 집 2층으로 이사 온 도경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해민은 반찬가게를 하는 엄마와 둘이 산다. 해민의 학교로 전학을 온 도경의 조용하고 친절한 모습과 달리 소문은 수상하다. 전 학교에서 학폭으로 강제전학을 왔다는 것이다. 조금씩 도경과 친해진 해민에게 도경은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도경을 괜찮게 본 아이는 또 있었다. 모범생 소정이다. 곤란한 상황에서 자신을 도와준 도경과 친해지고 싶었다. 그런데 도경의 곁에는 해민이 있었다.

소정은 시험 성적, 동아리 활동,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까지 좋아서 칭찬을 받는 아이였다. 그럴수록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커졌다. 국제중 입시 실패로 스스로를 가만두지 않았다. 소정과 해민은 반은 다르지만 문예 동아리 활동을 같이 했다.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고 완벽에 가깝게 노력하는 자신과 다르게 해민은 간절함도 없고 열심히 하지도 않는데 칭찬을 받는다. 소정은 이해할 수 없는 아이 해민에게 묘한 경쟁심을 느낀다.


완벽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시험 성적도 동아리 활동도 인간관계도 뭐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선생님들께는 모범적이고 예의 바른 학생이, 아이들 사이에서는 친절하고 매력 있는 친구가 되어야 한다. 잘났지만 잘난 척은 하지 않아야 하고, 내세우지 않지만 드러나야 하는 법이다. (39쪽)

그러던 차에 소정과 해민은 문예 대회에 참여한다. 소정은 자신이 대상을 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해민이 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의 의뢰’에 해민의 글이 표절임을 밝혀달라는 의뢰가 올라온다. 의뢰한 사람이 소정임을 아는 도경은 자신이 의뢰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도경도 비밀 채팅방에 참여하고 있었다. 우연하게 그 사실을 알게 된 해민은 도경을 통해 사이트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다.

소정이 의뢰한 일을 도경이 아니라 다른 아이가 해결한다고 했다면 해민의 글은 표절한 게 됐을 것이다. 어쩌면 그럼 해민도 억울함과 분노를 해결할 방법으로 오늘의 외뢰에 의뢰할 수도 있다. 물론 소설 속 해민과 도경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오늘의 의뢰’는 그런 마음을 이용한 사이트라 할 수 있다. 누군가 속상하고 아픈 마음에 공감하는 것 좋지만 대리 복수를 실행하는 건 정당화될 수 없다.

‘오늘의 의뢰’에 등장한 의뢰는 청소년의 일상을 통해 그들의 고민과 갈등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학교생활, 친구 문제, 부모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터놓을 공간과 대상이 없다는 걸 말한다. 현직 교사인 작가는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포착해 탄탄하게 소설로 그려냈다. 그러기에 소설을 읽으며 실제로 이런 채팅방이 존재하는 건 아닐지 걱정하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스스로 해결하려 노력하다 혼자 해결할 수 없다면 도음을 청하는 일이다. 친구나 선생님, 부모님과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조금씩 방법이 보인다. 그건 청소년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대화와 소통이 사라진 시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질문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