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에 대한 두려움은 기독교 세계관을 지닌 서구인들에겐 요한 게시록을 통해서 종종 드러나곤 한다. 기독교에 대한 문외한임에도 워낙 자주 영화의 소재로 요한 게시록이 등장한터라, 그 내용을 따라잡는데 큰 어려움은 없는듯이 보였다.

뤽 베송이 각본을 맡은 이번 영화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상당히 잘 짜여진 얼개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7개의 봉인이 뜯겨지면 종말과 관련된 무엇인가가 나올 것이라 여겨졌고, 그것에 대한 궁금증도 증폭되어졌다. 그리고 왜 현재 그 보물을 꼭 찾아야지만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쌓여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것은 종말과 관련되기 보다는 '주의 서책'이라는 보물로서 인식되어지고, 다시 그것은 새로운 유럽을 탄생시키겠다는 힘의 상징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또한 그 7개의 봉인을 뜯어가는 과정과 예수의 12제자 죽음이 맞물려 있는듯 보여지면서도, 도대체 12제자와 봉인과는 어떤 관계인지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음으로써 혼동을 가중시킨다. 즉 봉인과 12제자의 관계는 실제로 우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기에-12제자로 이루어진 신자집단이 우연히 고대 성당을 구매함으로써, 그리고 그 중 미장이가 새로 건물을 단장하면서 우연히 보물이 놓여져 있는 곳을 발견함으로써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살인자와 피살자간의 관계가 필연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 둘의 관계가 예정되어져 있는 모양 필연적인 모습을 갖추어져 나가고 있는 것처럼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촘촘한듯 보여졌던 이야기의 구조가 느슨하게 풀어져버린다.

게다가 또 그 맥없는 결말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인디아나 존스류의 보물을 찾는 탐험을 그리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마치 그 마지막 결말만 가져오는 듯한 모양을 지니고 있다. 즉, 보물을 지켜내기 위한 여러가지 함정들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으면서 마지막 결정적인 함정의 모양새만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황당무계하기까지 하다.

액션장면은 또 어떤가? 총알세례를 퍼붓는 장면은 나름대로 묘미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물이 쏟아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도망치다 약물을 먹고, 헐크처럼 힘을 내는 장면은 관객이 미리 예상하도록 유도해놓고도 코미디처럼 느껴져버린다. 게다가 초반 쫓고 쫓기는 장면에서 마치 우롱하듯 주인공 형사를 가지고 노는 듯하는 살인기기 전사는 도대체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겠다. 급박한듯 보여지다가도 갑자기 코미디처럼 느껴져버림으로써 액션의 긴장도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물론 조였다 풀었다 하는 리듬을 타기 위한 것이라면 다행이겠지만 그렇게 이해하기에는 넓은 아량이 필요하다.

억지로 끼워맞춰진듯한 이야기의 틈새들을 쳐다보지 않고 그냥 전체 그림만 느긋하게 즐긴다면 그럭저럭 볼만한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내 그 조각들의 거친 선들이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겐 조금은 맥없는 영화일듯하다. 영화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해져버리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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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의 진이 패배를 상정하고서 행해지는 전법은 아닐 것이다. 배수의 진이라는 것도 승리를 위한 고육책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파업 66일.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노사관계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 결국 업무복귀를 선택했다. 파업 잠정중단이라는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배수의 진이랄 수 있는 이 전법이 의도한 효과를 전혀 거두지 못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그저 진을 치고 있는 군사들만이 죽음으로 내몰릴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실리를 거두기 위한 방편으로서 배수의 물을 건너기로 했다. 아마도 이 과정에서 익사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직을 재정비하고 다시 싸우기 위해선 물러날데가 없는 바로 그 적의 아가리로 들어가야 한다.

사람들은 들어가면 무너진다고 걱정한다. 간신히 버텨오던 단결력이 사라질 것이라고. 사측의 회유가 거세어지고, 온갖 비열한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고. 지금까지 그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비상식적이고 비도덕적인 온갖 회책을 꾸며대면서 말이다. 하지만 난 걱정하지 말자고 했다. 내가 나 자신을 믿고, 그 믿음만큼 동료들을 믿는다면 우리가 흔들릴 이유는 하나도 없다. 우리가 돈 몇푼에 시작한 싸움이었다면 흔들리고 무너지겠지만 경영진의 무능과 부도덕, 그리고 그것을 감추기 위한 직원들의 목치기에 대항해 싸운 대의를 가지고 있는한 무너지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내 몸뚱아리 펀하자고 내 마음을 거스린다는 것은 있을수 없다.

이제 물을 건넜다. 조직을 배신하고 사측에 복귀한 사람들과도 서로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한다. 생활은 분명 예전과 갖지 않다. 모든 것이 혼돈이다. 그러나 다시 배수의 진을 칠 각오로 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내가 언제 불의에 직면해 행동으로 저항해본적이 있던가? 이제 바로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부조리한 상황마저 외면한다면 난 어디서 고개를 들고서 살 수 있을것인가? 떳떳하게 살아갈 것인지, 부유하게 살아갈 것인지. 세상은 만만치 않음을 또한번 느끼며 언젠가 다시 내 뒤에 거대한 바다를 두고서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불의에 정면으로 대할 수 있는 용기를 얻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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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30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5-08-30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그 얻음과 잃음의 과정 속에 있습니다.
 
대한민국 희망보고서 유한킴벌리
KBS일요스페셜 팀 취재, 정혜원 글 / 거름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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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있다. 평생직업이라는 말이 그 사라진 곳을 채우고 있다. 그나마 자신의 직업을 꾸준히 계속해 나가는 것도 행복한 경우라고 말할 수 있는게 현실이다. 이직은 거의 대부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가 아니라 생계를 위해 떠밀려 선택되어지게 마련이다. 즉 직장이 자아실현의 장소로서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돈을 벌기위한 생산공장 그 이상의 것이 아니게 되 버린 것이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가 그런 모양새로 다가오기 시작할때 과연 나는 얼마나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인가? 야망을 지니고 있지 않은 대다수의 소시민들에게 그곳은 그저 어떻게든 하루를 버텨내고 훌훌 털어내버리고 싶은, 그래서 결코 오랜 시간 머물고 싶어하지 않는 감옥보다 못한 어떤 곳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고, 그 속에서 내 모습도 찾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과연 회사는 얼마만큼의 성장을 이뤄낼 수 있을까? 회사가 사람을 자산의 중심에 놓지 않고, 그저 비용의 일단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회사도 사람도 모두 성장을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 그런 세상의 변모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희망을 말하는 회사가 있다. 바로 유한킴벌리. 4일 일하고, 4일을 휴식하며, 수많은 시간을 교육에 투자하는 회사. 평생고용을 보장하고, 사람들 또한 평생직장으로 삼고싶어하는 곳. 자아실현이라는 이상이 실현되어지고 있으며, 회사에 대해서도 자신에 대해서도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는 곳. 그저 부럽다라고만 하기에는 부족한 정말 부러운 곳이 대한민국에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이런 회사는 저절로 생겨났을까?

회사는 경영진만으로 또는 회사원들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접하는 갈등의 노사관계. 노사는 회사를 구성하는 중요요소이면서도 항상 어우러진 모습을 보여주기 힘들었다. 태생이 그렇다고 할수도 없을텐데 왜... 유한킴벌리의 노사관계는 정말 모범적이다. 노조원들이 노조 집행부를 믿기보다는 경영진을 더 믿을수 있을정도로 신뢰관계가 돈독하다. 이런 관계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유한킴벌리 또한 다른 회사들처럼 극한의 노사관계 대립을 거쳐왔다. 우리가 지금은 부러워하는 4일 교대를 위한 4개조 2교대의 시스템을 정착시키는데도 큰 어려움이 따랐다. 맨처음 이것을 도입하고자 했을 때는 노사가 서로 신뢰할 수 없는 사이였기에, 조 개편으로 인한 남은 인력에 대한 처우, 그리고 인적 구조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등이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IMF가 터지면서 오히려 기회가 찾아왔다. 타회사들이 사람을 자르기 시작할 때 유한킴벌리는 일이 없어서 놀아야 하는 절반의 인력에 대한 고민에 처하게 됐고, 노조는 할 수 없이 구조조정의 회오리를 피하기 위해 4교대를 택하게 된다. 그리고 경영진은 여타 다른 경영진처럼 뒤에 칼날을 숨기는 비열한 형태를 보이지 않고 정직하게 노조와 상의해 인력을 재편한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시스템이 정착되어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회사를 전적으로 믿게 되고, 그런 믿음 속에서 생산력은 극도로 올라가게 된다. 흔히 생각하듯 인력으로 인한 비용의 증가가 회사의 경영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의 극대화를 통해 오히려 이익을 더욱 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경영진은 매달  회사의 재무구조를 노조집행부에 설명하고, 평노조원들은 2,3개월에 한번씩 사내 랜을 통해 언제든지 자유롭게 회사의 경영실적을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노사갈등의 큰 원인중의 하나인 임금 문제라는 것은 원천적으로 발생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투명경영과 도덕경영을 통한 노사의 신뢰가 바탕이 됐을때 지긋지긋한 봉급쟁이가 아닌, 일하고 즐길줄 아는 빵과 장미를 모두 지닐 수 있는 참자아를 만들어가고, 그 참자아를 통해 회사 또한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유한킴벌리는 바로 우리 노동자들의 마음을 푸르게 푸르게 만들어주는 희망의 씨앗이 될 것이다. 이 씨앗이 어서 빨리 자라 대한민국 모든 회사들 속으로 뿌리를 내려 행복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희망이 나 혼자 마음을 먹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절실하게 느낄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를 이루어내기 위한 중심부에 서 있기에는 노동자 개개인의 힘은 너무나 미약하다.  경영진과 정부가 깨우치지 않는한 아무리 노동자가 목소리를 드높이더라도 그것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일지도 모른다. 유한킴벌리 또한 그 첫발은 경영진이 내디뎠다. 물론 희망을 이루어낸 것은 노사가 함께였지만 말이다. 다른 회사들이 그런 희망을 실현하려면 실제로 그 첫발이 필요하다는 것에서 현실의 비극 또한 감추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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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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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도에서 동물원을 경영했던 한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다. (동물원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마치 최근 영화 마다가스카를 떠올리게 만든다. 밀림 속에서만이 동물이 동물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동물원 안에서도 동물은 동물다울 수 있다는 생각. 즉 밀림이나 동물원이나 제한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는 저자의 생각은 동물원이 어떻게 탄생했고, 그 역사가 갖는 의미와는 별개로, 다분히 인간의 생존조건에 대한 어려움을 전제로, 동물적 관점에서 바라본 동물원에 대한 색다른 견해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 가족이 몸을 실은 화물선은 태평양 한가운데서 좌초를 하고, 주인공인 16세 소년 파이는 구명보트에 몸을 싣는다. 그런데 이 구명보트에는 다리가 부러진 얼룩말, 암컷 오랑우탄, 하이에나, 벵골 호랑이가 타고 있다. 그리고 머지않아 먹이사슬에 따라 동물들은 죽어가고, 결국 파이와 호랑이 리처드 파커만이 보트에 남는다.

소설은 소년과 호랑이가 227일간을 표류하면서 멕시코 해안에 도달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말 '소설'같은 이 이야기는 인간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희망을 일구어내는지를 사실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잘 기억나진 앉지만 잡은 물고기를 싱싱한 활어상태로 육지까지 보관하기 위해 상어 한마리를 집어넣는다는 것과 어찌보면 일맥상통하는 이야기 같다.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호랑이라는 존재가 있음으로 인해서 삶의 끈을 놓지 않고 끝끝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227일간의 표류과정은 마치 로빈슨 크루소를 읽는듯 하다. 물과 음식을 구하기 위한 가지각색의 묘안, 호랑이와의 동거를 위한 길들이기 작업, 실명과 기아 직전에서 행한 식인행위, 바다 한 가운데서 만난 식인섬에서의 안주와 탈출 등등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주인공 파이는 자신이 이 오랜 표류기간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것을 다음의 두가지 요소로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는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것. 하나는 끝끝내 밀쳐내야 하는 것.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삶에의 의지. 밀쳐내야 할 것은 공포감.

삶에의 의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도 끝끝내 놓쳐서는 안될 그 무엇일게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공백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삶에의 의지를 놓치고서 그냥 인생의 바다를 표류하다 가라앉아버린다. 삶의 고비라고 느끼는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얼마나 그 끈을 놓아버리고 그냥 포기하고, 이내 운명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싶어했던지 떠올려보라. 그리고 이내 그 운명의 흐름에 휩쓸려 지금 이렇게 서 있는지도 모를 나의 본 모습을 돌아보자. 우리가 그렇게 의지의 끈을 놓아버린 것은 아마도 공포감을 이겨내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쥐고 있는 이 삶에의 의지가 정말 행복을 가져다 줄것인지에 대한 불안이 이내 이성을 마비시키고, 공포감에 젖어 생을 운명에 맡겼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도 떠올려보자.

살아나고 싶다면 적응해야 한다. 많은 것이 소모된다. 가능한 곳에서 행복을 얻어야 한다. 지옥의 밑바닥에 떨어져서도 팔짱을 끼고 미소를 지어야 한다. 그러면 지상에서 가장 복 받은 사람이 된 기분이 된다.(270쪽)

희망은 희망을 원한 사람들에게만 그 빛을 보여준다. 그 희망은 삶에의 의지요, 그 삶에 대한 신뢰감을 바탕으로 한 용기다. 누가 태평양 한가운데서 호랑이와 구명보트에서 마주한채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포기는 삶의 행동 가운데 가장 쉬운 항목임을 또 한번 가슴에 새기리라.

소설의 재미는 표류의 종결로 끝나지는 않는다. 일본 항운회사가 배의 좌초의 원인을 알기 위해 멕시코 병원으로 파이를 찾아왔을 때, 일본인들은 그의 모험담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파이가 이야기하는 두번째 모험담은 동물 대신 모두 사람으로 대체되어져 있다. 그리고 혹시 그것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에서 이 소설이 가지는 또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라면 너무나도 섬뜩하기에 우리는 호랑이가 나오는 첫번째 모험담을 진실로 여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찾는다. 가슴 속에서 사그라들지 않을 희망의 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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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2005-07-26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리뷰네요. 파이이야기..저는 요리책인줄 알았어요..>_<

하루살이 2005-07-26 0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파이는 3.141592........ 수학부호의 파이랍니다. 삼순이 마냥 자신의 이름이 못마땅해서, 수업시간중에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주입시킨 새 이름이죠. 생각보다 두꺼운 책이었는데도, 또 생각보다 쉽게 술술 빨리 읽히는 재미가 솔솔했답니다.

icaru 2005-07-26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침.. 파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내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을 읽고 있었거든요..읽으면서 조금 느슨했었는데... 이 리뷰보니까... 없는 가속도 붙게 만드는 힘이 생기네요... 아..그런데 하루살이 님 정말 오랜만인듯해요~ 저만 그런가요 ^^

하루살이 2005-07-27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컴퓨터를 접할 시간이 별로 없어서... 아마도 당분간은 이렇게 가끔씩밖엔 서재정리를 못할것 같군요. 정말 오랜만이라 그런지 너무 반갑네요.^^ 빨리 문제가 해결되서 매일 매일 서재에 들를 수 있는 날, 그래서 방문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어서 빨리 오기를 기대하며...

2005-08-10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5-08-11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그런 것은 티를 팍팍 내도 괜찮아요. 남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니까...
사정이 아직 여의치않네요. 최근 읽은 책도 몇권 되긴 하는데 이러다가 책 내용 다 까먹지 싶네요. 읽자마자 느꼈던 그 감정을 그대로 담아내야 하는데, 그때의 흥분들이 다 가라앉고 나면 뭘 어떻게 쓸 수 있을련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리뷰에 올라가기는 힘들듯 싶네요. 하루빨리 제 생활이 정상궤도를 찾을수 있기를 빌어주세요^^.

2005-08-11 1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훈규 언더그라운드 여행기 - 젊은예술가의 세계기행 2
박훈규 지음 / 안그라픽스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친구중에 100만원을 들고 호주로 날아가 1년을 살고 온 놈이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꼭 해보고 싶다던 음향공부를 하고 돌아온 그 친구가 참 대견스럽고, 부러웠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또한 만만치 않다. 나이도 비슷하거니와 사는 모습이 친구와 많이 닮아있어, 마치 친구의 여행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마저 들었다. 50만원을 들고서 떠난 호주, 그리고 영국. 다시 돌아온 서울.

90년대 중반 어학연수가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 집안의 경제적 사정을 핑계로 외국으로 나가보겠다는 꿈조차 꾸어보지 못했던 나. 이제와 돌이켜보니 참 바보같다. 용기가 없는 것을 돈이 없는 것으로 핑계를 대고, 감히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던 어리석음이 마음 한구석을 옥죄어온다.

책은 곳곳에서 무모함으로까지 비쳐질 행동들이 실은 자신을 찾는 지름길이었음을 보여준다. 억누르고, 가다듬고, 맞춰가는 내가 아니라, 표현하고, 흘러가는대로 놔두고, 변모해가는 나를 이루어가는 것. 그것은 두려움과 모험이 공존하는 여행을 통해서 다가온다. 고등학교 숙제가 3개국을 돌아다니고 느낀 점을 써 오는 것이라는 독일의 학생이야기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비행기 한 번 타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나로서는 우물안 개구리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칸트처럼 자신의 고향을 지키면서도 지구만큼 크기의 사고를 펼친 철학자도 있긴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닐테니까...

저자 박훈규는 만화에 대한 애착에 가출을 한 소위 불량학생이었다. 하지만 그 만화에 대한 애착이 결국 그가 외국으로 날아가 희망과 용기를 얻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돌파구를 만들어줬다. 초상화를 그리면서 돈을 벌 수 있었던 그는, 수많은 그림들을 그리면서 그림에 대한 생각도 바뀌고, 공부도 착실히 할 수 있었다. 또한 주위에 많은 사람들과 그림으로 교감하며 사람에 대해서도 많은 걸 배웠다. 익숙하고 정착할 수 있었던 곳을 떠나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그의 여정은 살겹다. 그런 여정들이 마냥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떨고, 불안감에 휩싸이면서도 감행한 것이기에 말이다. 여행의 단상들이 적힌 한편으로 자신이 그려왔던 초상화들과 여행중 손에 쥐어진 영수증등을 보여주는 사진 속에, 손으로 직접 쓴 글들을 읽다보면 그의 마음 속 울림을 접할 수 있다. (서체의 독특함때문에 읽기가 다소 불편하긴 하다) 밖에서 바라볼 땐 아무렇지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행동들도 실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어떤 선택의 순간과 똑같이 고민과 불안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알게 된다. 즉, 참으로 용기있고,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어떤 행동들이 결코 그가 영웅이거나 잘나서가 아니라, 그저 쉬운 것보다 좀 더 힘든 길을 택했다는 차이 하나뿐이었음을 말이다. 그리고 그 힘든 길이 그저 힘들다는 차원을 넘어 자신이 진정 원하는 자신을 찾아 가는 길이었음을, 그래서 여행은 언제나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임을 깨우친다.

용기가 가져다 준 작은 차이가, 자신의 초상화의 모습을 완전히 뒤바꿀 수도 있음을 실감하며, 그의 여행일기장을 조심스레 덮는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떠날 수 있기를 고대하며, 마음 속으로나마 작은 배낭 하나를 꾸려본다. 언제라도 당장 지고 나갈 수 있도록...

(사족; 호주의 정책을 부러워하는 말 중에서 쓰레기를 수출함으로써 자신의 땅을 깨끗이 지키고자 한다는 부분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 쓰레기를 돈을 받고 수입하는 나라는 어떨 것인지... 소위 선진국이라는 곳이 과연 다른 나라의 희생없이 달성된 것인지 찬찬히 뜯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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