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세 고지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평소 쓰는 것보다 3배 가까이 나온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정도 까지 전기를 썼을 리가 없다. 한전에 연락해 계량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보았다. 요즘은 디지털로 데이터가 쌓여 있어, 매일 매일 얼마만큼 사용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많이 나온 날과 안 나온 날을 더듬어 기억해보니 틀리지는 않아 보인다. 그럼 계량기의 문제는 아닌듯 한데....


전기가 들어가는 기계를 하나 하나 다 점검해 보았다. 집안에서 사용하는 것 중엔 이상한 것은 없어 보였다. 밖에 펌프 2개가 있는데, 혹시 이것이 문제였을까. 물은 잘 나오고 있었는데.... 물을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었기에, 당연히 펌프 쪽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물을 끌어오는 펌프 쪽에서 오작동이 있었다. 



물탱크로 향하는 밸브를 잠갔는데도 펌프가 계속 돌고 있었던 것이다. 전기세 나온 것으로 추측컨데 거의 한 달 넘게 헛돈 셈이다. 펌프가 타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먼저 전원을 차단하고 전문가가 아닌 이도 처리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 보기로 했다. 자주 교체해 보기도 했던 압력 스위치를 새 것으로 바꿨다. 헛도는 것이 멈췄다. 다행히 문제가 해결된 듯 보였다. 하지만 이틀 후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닌 것을 알게 됐다. 펌프가 아예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압력스위치를 조정해서 압력의 수위를 맞추어 주니 펌프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웬걸. 물통에 물이 가득 차고 볼탑이 올라가 물이 끊어졌는데도 압력스위치가 간헐적으로 돌아간다. 윙~ 계속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윙~ 뚝. 윙~ 뚝. 돌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밸브를 잠가보니 뚝 멈춘다. 밸브를 다시 열면 간헐적으로 돈다. 이건 어딘가 누수가 발생했다는 신호다. 


펌프에서 물탱크까지는 대략 30미터가 넘는다. 누수가 어디에서 발생한 것인지를 알 수 없는데 무턱대고 이 길이의 땅 속을 다 파헤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번에도 가장 손쉽게 해볼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다. 바로 볼탑의 교체. 볼탑의 수명이 5~10년이라고 해서 올해 8년이 되어가는 볼탑에 문제가 발생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볼탑의 나사 크기는 볼탑에 적혀 있다. 집에서 쓰고 있는 물탱크가 2톤 짜리여서 사이즈는 15로 가장 작은 것이었다. 이번에 볼탑을 교체하는 김에 부레식이 아닌 새로운 볼탑으로 바꾸기로 했다. 



부레식은 물이 차면 부레가 올라가는 방식으로 물을 차단하는데 조금씩 조금씩 부레가 올라가며 압력이 낮아지기에 압력스위치가 윙~ 돌다가 점점 간헐적으로 돌고 이윽고 멈추게 된다. 아무래도 스위치가 붙었다 떼어졌다를 반복하게 되니 사용기한이 짧아 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물이 차면 바로 스위치를 꺼주는 방식의 볼탑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물론 가격은 3~4배 차이가 난다. 하지만 압력 스위치 교체 값을 생각하면 오히려 더 경제적이지 않을까 싶다. 



제발 다른 곳의 누수가 아니기를 바라며 볼탑을 교체했다. 일단 물은 잘 나온다. 마지막 물이 찼을 때 펌프가 멈추느냐가 관건이다. 물이 다 차가고 있을 때 물이 나왔다 안나왔다를 반복하지 않고 바로 멈췄다. 설치는 제대로 된 듯하다. 이제 펌프가 멈췄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제발 멈춰라! 하는 마음으로 펌프실로 향했다. 하지만 바람과는 반대로 펌프는 간헐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진짜 어디인가 누수가 발생한 것일까. 가장 가능성이 큰 탱크와 호스의 연결부위를 살피기 위해 땅을 팠다. 물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탱크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다시 살피는데 탱크 안이 조용하지 않고 압력차가 발생하는 듯한 아주 작은 소음이 들려온다. 혹시 볼탑의 연결 부위가 꽉 조여지지 않은 것일까. 인터넷과 유튜브, 인공지능 등등을 통해 여러 가능성을 탐색해 보았다. 탐색을 통해 이리저리 생각해 본 결과 전문가를 부르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 해 볼 것이 있었다. 볼탑과 물통을 연결하는 나사 부위의 테프론을 더 두툼하게 해 보는 것. 



테프론을 볼탑 나사에 서너 번 돌리고 물통과 결합시켰는데, 이것으로는 부족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엔 작심하고 스무 번 가까이 돌린 후에 물통과 다시 연결했다. 물론 테프론을 돌리는 회전 방향도 중요하다. 나사를 돌리는 방향과 똑같아야 한다. 물통과 연결할 때 빡빡한 느낌이 들 정도로 꽉 조여줬다. 그리고 다시 펌프를 가동해보니, 와! 만세~. 물이 빠지면 제대로 돌기 시작하고 물이 차면 멈추었다. 이번엔 펌프가 돌아가지 않으면서 소리가 뚝 그쳤다. 정말 행복한 적막이었다. 


큰 공사를 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뿌듯함과 안도감이 밀려왔다. 아무 문제가 없어 보여도 평소에 기계들은 한 번씩 점검을 해 보는 것이 좋다는 교훈도 얻었다. 우리 몸이 건강할 때 검사를 통해 미리 큰 병을 예방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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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했던 논에 트랙터가 들어선다. 논이 갈리고 물이 들어간다. 물 댄 논이 찰랑찰랑 연못이 되어 간다. 몇 일 후 이앙기가 들어가 모내기를 시작한다. 두어 시간이면 모내기가 끝나고 모가 심겨져 있다.



5월 중순의 풍경이다. 이윽고 해가 저물면 논 이곳저곳에서 개굴 개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한 마리, 두 마리로 시작해 수 백 마리, 수천 마리가 노래를 부르는 듯하다. 


5~7월이 산란기인 참개구리들에게 논 만큼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알맞은 물 높이와 먹이가 되는 각종 벌레들. 혹시나 들이닥칠 천적들을 피할 수 있는 땅 속까지. 제초제와 농약이 뿌려지지 않은 논이라면 정말 천국이 따로 없을 것이다.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고 있다보면 창문 너머로 개구리 울음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봄이 지나 여름이 다가올 것임을 알게 된다. 개구리 울음소리는 어떤 날은 아름다운 음악처럼 들려 잠을 부추기고, 어떤 날은 소음으로 들려 잠을 이루지 못하게 만든다. 개구리 울음은 그대로인데, 그걸 듣는 나의 마음은 같지 않아, 소음으로도 음악으로도 들려온다. '개구리 소리도 들을 탓'인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이 짓는 것이다(一切唯心造). 아니, 마음마저도 한결 같지 않아(無常) 그 때 그 때 다른 상을 만든다. 개구리 울음 소리를 통해 시절을 알고, 마음을 안다. 이렇게 알아 차려진 마음으로 다시 개구리 울음을 들으면 개구리 울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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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 꼭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차로 2분 정도만 벗어나도 고요하다. 한정된 좁은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비가 왔다 그쳤다 지 멋대로다. 지금 내가 맞고 있는 이 비는 수만년 전 백두산의 호랑이가 맞았던 그 비이고, 임진왜란 때 큰 칼을 휘두르며 지휘했을 이순신 장군이 맞았을 그 비이며, 저 멀리 <사랑은 비를 타고>에 출연한 배우 진 켈리가 맞았을 비 일지도 모른다. 


물은 순환한다. 태고적부터 존재했던 물은 그 장소를 달리하고 모습을 달리하며 지금까지 존재해왔다. 절대량의 변화가 거의 없이 땅 속에서, 강과 바다에서, 얼음으로, 또는 구름으로 모습을 변해가며 생명을 지켜줬다. 그런데 물의 순환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지구 대기의 기온이 올라가면서 수증기의 발생량도 많아지고, 이로 인해 홍수가 자주 발생한다. 한 쪽에 홍수로 물 난리가 나면 물의 총량은 정해져 있기에 다른 쪽은 가뭄으로 곤란을 겪게 된다. 홍수와 가뭄 등 물의 격차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지하수가 말라가면서 물 부족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곳도 늘어난다. 물의 격차가 지구온난화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물의 격차는 마치 인간 사회의 부의 격차와 닮아 보인다. 한정된 부를 나눠 갖는 인간 사회에서 이 부가 점점 한쪽으로 치우쳐 가고 있다. 부의 차이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던 원시공산시대에서 개인의 소유가 등장하면서 격차가 발생하고, 자본주의라는 제도가 가져온 부의 확대 이면엔 상위 20%와 나머지 80%의 부가 비슷해지더니, 이젠 상위 1%의 부가 나머지 99%의 부와 맞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빈부격차는 물의 격차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폭탄이 될지 모른다. 우리가 감당하고 감내할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부의 격차가 가져올 재난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머지않아 이 부의 격차가 건강은 물론 수명의 차이를 불러올 것이고, 이는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크다. 탄소의 증가가 지구의 기온을 끌어올려 기후변화를 야기하듯, 경쟁의 극심화가 욕망을 끌어올려 부의 격차를 가져온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경쟁을 적절하게 억누르고 협동, 공생이 어우러지는 제도를 마련해야만 하는 때가 온 것은 아닐까. 우리가 탄소를 억제하고 친환경 기술을 연구하고 실용화 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듯이 우리 사회제도 또한 경쟁을 적절히 억제하고 공생의 기술을 연구하고 실용화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퍼붓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공상에 잠겨본다. 올 한 해 홍수와 가뭄의 피해가 없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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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의 스마트 도어락이 저 혼자 삑삑거리기를 1년이 넘은 것 같다. 중문을 닫고 TV를 보고 있자면 삑삑 소리가 들리지 않아 그냥저냥 놔두었다. 그러던 것이 이젠 숫자 터치를 먹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순간 당혹스러웠지만 카드키가 있어서 문을 열고 닫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언제 이 카드키마저 작동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교체를 결정했다. 직접 도어락을 교체하기로 마음 먹고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주문 시 설치까지 해 주는 옵션도 있는데 설치비가 최저 3~4만원은 하는 듯했다. 단독주택에 살면서 수리, 교체를 맡기기 시작하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집이 아니라 관리비를 내고 위탁하는 아파트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직접 설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일단 기존의 도어락을 해체하고, 새것으로 갈아 끼웠다. 부품이 그렇게 많지 않아 어려운 작업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직접 교체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그림 설명서나 동영상 안내가 없어서 아쉬웠다. 해체했던 기억을 떠올려 반대 순으로 하나 하나 결합을 해 가면서 도어락을 달았다. 



그런데 두 개의 잠금장치가 꼼짝을 않는다. 위에 것은 수동으로 작동시켜 보려 단추를 누르지만 '윙' 소리만 나고 움직이지를 않는다. 아래 것은 손잡이가 움직이지조차 않는다. 구멍을 잘 맞추어서 나사를 풀었다 다시 조립해 보지만, 위 잠금장치만 움직이던가, 아래 잠금장치만 작동하던가 할 뿐이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야? 이리 허술하게 만들진 않았을텐데 생각하면서도 점점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풀었다 잠그기를 몇 번 하다 문득 틀의 앞 뒷면을 바꿔 보기로 생각했다. 맞았다. 앞 뒷면이 바뀌어서 작동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참, 어떻게 앞 뒷면을 바꾸었다고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그것도 신기했다. 구멍의 위치나 크기는 똑같은데 왜 앞 뒤를 바꾼 것 만으로 열리고 닫히는 게 달라질까. 아무래도 구멍 밖의 좌우가 완전히 대칭되는 것이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아주 조금의 차이로 걸쇠가 틀에 걸렸던 모양이다. 



이제 잠금쇠가 잘 움직이니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생각했다. 모든 부품들을 다 조립하고 비밀번호와 카드키를 등록하고 마무리 지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왠걸? 문이 잠긴 후에 밖에서 여는데 그냥 열리는 것이다. 이게 뭐야? 왜 안 잠기는 거지? 어라? 이번엔 안에서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꼼짝을 않는다. 이런! 안과 밖이 바뀐 것이다. 도대체 이번엔 뭐가 잘못된 거지? 


곰곰히 생각해보지만 해결책이 떠오르질 않는다.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으니 다시 분해를 하고 조립을 해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안과 밖이 바뀌었다. 잘못된 제품인가 싶어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보지만 휴일이라 통화를 할 수가 없다. 천천히 다시 분해해서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며 조립을 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미더운 부분이 보였다. 손잡이 뭉치에 IN과 OUT이 써 있는데, 아무리 해도 인을 안쪽으로 아웃을 바깥쪽으로 향하도록 조립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립이 가능하도록 인과 아웃을 바꾼 채로 조립했던 것이 영향을 미친 듯했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고민고민 하다 도어락 뭉치 전체를 거꾸로 하면 어떨까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손잡이와 숫자 위치가 위아래 뒤바뀌고, 문의 타공이 보이게 된다. 설마 이렇게 조립하도록 만들었을까? 


문제는 알 것 같은데 해결책은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 그렇게 다시 분해와 조립만 두어 번 더 했다. 그러다 문득 손잡이 뭉치를 왜 꼭 안에서 집어 넣어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잡이 뭉치를 밖에서 안으로 집어 넣으면 인과 아웃도 제대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맞았다. 그게 정답이었다. 손잡이 뭉치를 밖에서 집어넣어 인과 아웃을 제대로 위치에 놓으니 도어락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30분 이면 끝날 작업을 무려 3시간이나 걸렸다. 


사고의 경직성. 한 번 떠올린 생각에 사로잡혀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 벌어진 고생이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한 생각에 사로잡힌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 정말 '한' 생각에 사로잡혀 고통을 당한 느낌이다.

도어락을 교체하면서 경직된 사고가 얼마나 고생스러운지를 체감했다. 언제든 열려있는 <사고의 유연성>을 갖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가장 근거가 되는 전제조차도 의심해보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 논리의 도약으로 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는 불교의 '중도'에 대해서도 고찰해본다. 제법무아, 제행무상. 틀에 갇히지 않는 삶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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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5년 4월 3일) 자동차 사고를 제법 크게 당했다. 맞은편에서 오던 차가 중앙선을 넘어 내 차를 들이받아버린 것이다. 중앙선을 넘는 것이 보여 경적을 울리고 급하게 피해보려 했지만, 사고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속도가 시속 40~50키로미터 정도로 빠르지 않았고, 자동차 앞 부분을 피하면서 뒷 부분이 받쳤다는 것. 그럼에도 차 뒷바퀴 쪽 축이 완전히 나가버려 거의 반파수준이다. 상대차량은 에어백이 터지면서 운전자분이 꽤 많이 놀란듯하다. 다행히 응급차를 타고 병원에 갔는데 타박상이라고 한다. 나 또한 조금 놀란 마음에 어디 아픈 곳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다. 


왜 중앙선을 넘어왔는지 물어보니, 휴대폰이 울려 전화를 받기 위해 차 안에 놓여 있던 휴대폰을 주우려다 상체를 숙이는 통에 핸들이 꺾여버렸다고 한다. 몸을 일으켰을 때는 이미 '쾅' 부딪첬다고 한다. 그랬으니 브레이크를 밟을 새도 없었던 것이다. (제발 운전 중엔 휴대폰을 만지지 맙시다!)


이 전 과정에서 중앙선을 넘어오는 차량을 최대한 피해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는 것과 함께, 어떻게 정확히 이 시간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차를 탄 지 5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는데, 차를 조금 일찍 탔거나, 조금 늦게 탔더라면, 또는 차를 운전했던 5분 사이 속도가 조금 빨랐거나 반대로 늦었다면 등등 갖은 생각이 떠올랐다. 흔히들 이런 경우 어떤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사고는 말 그대로 그냥 사고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우연일 뿐이지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운명이라 함은 필연적이라는 것을 의미할 텐데, 이런 사고가 필연적일 수는 없다. 하필 그 때 전화가 울렸고, 전화를 받으려 했고, 운전대의 중심을 잡지 못했고... 상대방에게 닥친 이 모든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사고를 당하고 렉카차를 타고 공업사에 들르고, 차를 렌트하고 등등. 이후 일처리를 진행하면서 마음이 조금씩 진정이 되어가자 문득 이 문구가 떠올랐다. 신학자인 라인홀트 니버가 쓴 것으로 알려진 <평온을 비는 기도>다. 


주여,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가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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