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사전 1
허영만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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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도 부자가 되려는게 꿈인 세상이다. 몇 년안에 몇 억을 모을 수 있는가가 화두다. 그야말로 세상엔 온통 재테크 기술로 넘쳐난다. 정말 모든 사람들이 모두가 부자가 되는 그런 세상이 머지않아 올지도 모르겠다는 환상마저 갖게 만든다. 이렇게들 열심히 공부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왜 부자가 되려고 하는 걸까? 만화는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부자가 되면 다 행복해지는 걸까? 라고 물었을때 그렇다라고 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작가는 부가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필요조건이라 한다면 또한 생각해볼 문제다. 부가 행복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면 국가의 부 지수가 낮으면서, 그리고 실질적으로 수입이 적은 사람들이 행복지수가 높은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지만 이러한 명백한 사실을 알고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진 것이 없다면 왠지 불안하다. 가난하면 절대 행복해질것 같지가 않아 보인다. 지금 당장에라도 단 몇 억, 아니 몇 천만원만 하늘에서 떨어진다면 훨씬 행복할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정말 얼마나 가지고 있어야 부자이고, 또 얼마나 여유가 있어야 행복할수 있을까?

어렴풋한 기억으론 만화에서는 부동산을 제외하고 10억 이상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부자라고 했던 것 같다. 여기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어떻게 부자가 됐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이 만화의 목적인바 그것을 잠깐 소개해보면, 부자가 되겠다는 굳은 의지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성실성과 실천력이 그 뿌리라고 한다. 무엇인가 비결을 바랐던 사람들에겐 실망감을 안겨줄듯 싶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이렇다. 아끼고 아껴쓰는 절약정신으로 종잣돈을 만들고, 그것을 대부분 건물에 투자해 임대수입이나, 부동산 차익을 노려라. 제대로 파악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기억 속에선 역시 이 땅에서는 부동산이 최고야 라는 느낌만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런데 이들이 돈을 모으는 행태를 보면 조금 치졸해보이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이 책의 저자 허영만의 아들이 다음에는 베푸는 부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보라고 주문했을까? 그렇게까지 해서 돈을 모아야만 할 것인가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그러나 일정한 부의 축적 이후의 그들의 삶은 솔직히 부러운 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양심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으니 만화 속에서도 드러나는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자본주의에선 모든 사람들이 부자가 될 순 없다. 조금 전의 부동산을 당장 생각해보더라도 임대업을 한다면 주인과 세를 든 사람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고, 땅도 가진 자와 가질 수 없는 자로 나뉘어야 한다. 즉, 자본주의에서는 일정한 부 안에서 누군가가 많이 가진다면 누군가는 그만큼 덜 가질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체 자본의 양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을 나누어 갖어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제로섬 게임을 할수밖에 없다다.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복지제도적 측면, 특히 세금을 통해 차이를 줄여나갈 수도 있을텐데, 우리는 오히려 그 차이의 심각성을 말하면서도 실재론 그 차이를 더욱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한심스럽다.)내가 가진만큼 누군가는 덜 가지고 있어야지만 하는 사회. 그 속에서 하나라도 더 갖기위해 다들 악다구니를 쓴다면 과연 그 세상은 행복한 곳일까? (우리 사회는 더 갖는 것이 더 자유로울 수 있는, 그리고 갖고 있는자가 더 챙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 극소수의 특권자가 되기 위해 어떤 수단도 다 동원할 수 있도록 유혹하고 있지 않은가?)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서 있는 몇몇 사람만이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곳, 그래서 그 자유로운 소수가 되기 위해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 하는 곳, 그곳이 행복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라도 행복해지자고, 그러기 위해선 돈을 모아야 한다고, 비책을 찾는 사람들을 욕할 수도 없을 것 같다.  행복으로 가는 유일하고 빠른 길은 먼저 부자가 되는 길밖에 없다고 세상은 가르쳐오지 않았는가? 한번도 그것을 의심해보지 않는 사람들에겐 부자가 되는 것이 일생 일대의 과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제로섬으론 자본주의만이 유일한 생존자가 된다. 아니, 이런식의 자본주의라면 그것을 지탱해줄 사람들을 잃음으로써 끝장날 시기가 올지도 모르겠다.

정말 제로섬으로 움직이는 무서운 세상 속에서 제로섬이 아닌 시너지게임을 할 수 있는 세상은 환상이고 망상일까? 시너지로 움직이는 그런 세상을 꿈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게 현실일까? 마음 한켠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움크리고 있다. 그 마음을 활짝 피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은 없을까?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일단 곳간부터 채워야만 가능한 일일까? 이 책이 말하는 부자가 되는 방법을 그대로 마음의 부자가 되는 방법으로 적용해, 세상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굳은 의지를 갖고 하나하나 방법을 찾아 행동하면 혹시 '행복의 나라'가 가능할까? 의지와 성실성이라는 똑같은 방법을 가지고서도 세상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과연 어디로 갈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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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생태보고서 - 2판
최규석 글 그림 / 거북이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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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마치 자연 환경 관련 서적이거나 글자 그대로 생태보고서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책장을 펼치면 그림이 그려져 있는 만화라는 것에 놀라고, 책을 읽다가 이것이 자연과는 전혀 관련없는 사람의 감추어진 심리를 잘 드러내고 있는 점에서 또한번 놀라게 된다.

이 만화는 경향신문에서 연재된 것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인데, 예상을 뛰어넘는 재미를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키득키득 웃게 만드는 캐릭터들의 표정과 대사에 감탄하게 된다.

책에서 말하는 습지는 가난한 대학생들의 지하 단칸 자취방을 말한다. 작은 방에 4명의 친구와 1마리의 사슴이 동거하는 모양새다. 비록 가난하지만 비참하지는 않는, 아니 비참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려는 이들의 모습이 왠지 감추어진 자신의 속마음을 비추어주는 듯하여 얼굴이 확 달아오르면서도, 이내 헛웃음과 함께 통쾌한 웃음까지 흘린다.

자신보다 못한 친구 재호가 여자 후배로부터 칭찬을 받고 멋있다는 소리를 듣자, 대뜸 그 친구의 못난 얼굴을 들춰내며 어쩔 수 없는 생존 전략일 뿐이라는, 친구의 아픔을 이해하는 듯한 말을 건넨다. 하지만 속내는 친구가 칭찬받는게 기분 나쁜 것이다는 <칭찬은 고래 친구를 도발한다>라거나, 너무나도 착한 정군이라는 친구, 어렵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는 모습에 주인공 최군과 사슴은 부자이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정군이 부자가 아님을 깨닫는다. 그래서 이것은 그릇의 차이임을 자각하고 자신들을 부끄러워하다 문득 정군의 일기장을 훔쳐본다. 그 일기장엔 친구들을 난자하는 그림과 욕설이 쓰여져 있다. 최군은 정군을 안으며 친구야 사랑해를 외치는 <친구의 조건>등은 사람간의 관계 속에 감추어진 속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도덕적 위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방 어퍼컷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책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마지막 한 컷 속에 담긴 글들이다. 일단 그것들을 조금 나열해보자.

타인의 슬픔을 피해 달아나는 빠른 발걸음이 있다. 혹 내 생활이 더 나아질 일이 없더라도 슬퍼할 일은 없을 것이다고 생각하다 c8 성공하자라고 내뱉고. 쯔쯔 자네 혹시 진실은 통한다고 믿는 거야?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보라는 말에 손을 얹었는가 싶었는데 실은 안 닿았다 라는 한 마디. 꼭 동정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가령 사랑한다거나.. 절대 동정이야! 다른 가설은 없어 라거나. 자기보다 부자인 후배에게 월 4만원 용돈 아껴가며 밥 사주다 후배의 정체를 알고 여윳돈 땅에 투자하자 라고 생각하는 등등.

내가 자라면서 배워온 가치관이 산산조각나게 만드는 현실을 이처럼 정확하게 표현하는 만화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부자 친구의 옷을 빌려입는 순간, 자신도 왠지 얼짱처럼 느껴지며 마치 상류계급에 속한 듯 행동한다거나, 富란 그렇게 소중한 것이 아니라고 지껄이면서도 실은 먹지 못한 포도는 실 것이다는 것 때문에 나오는 변명거리로 치부하는 등, 위선이라고는 한 자락의 껍데기도 걸치지않고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속말에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이내 가슴 한 켠이 시려오는 것은 내가 이미 위선으로 치장되어져 있는 사람임을 절실하게 느끼기 때문이리라.

현실과 이상 사이의 차이가 클수록 지켜내기 힘든 일관된 자아의 정체성. 돈의 맛이 얼마나 달콤한지 안 후에도 그것에 종속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의 부재. 단 몇 컷의 만화 속에서 크게 깨우친다. 속내와 밖으로 표현하는 것 사이의 괴리에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소시민들에게, 삶이 결코 스카이라인으로 내비쳐지는 불야성이 아니라 배기가스가 온통 진동하는 지하단칸방인 사람들에게 이 만화는 따뜻한 위로가 되어줄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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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테~♡ 2010-01-15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 제목보고 진짜 습지생태보고서인 줄 알고 주문헸었지요...ㅋㅋㅋ
"내가 먼저 보고 조카들 공부하라고 주어야지~" 그렇게 생각했답니다.
만화는 거의 다 래핑(비닐포장)되어서 판매가 되니까...
내용은 모르고 그냥 작가의 이름을 보고 구입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EBS<맞수>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말 그대로 한 분야의 맞수들을 골라 그들의 경쟁 심리와 함께 서로 이해하고 존경해주는 모습들을 비쳐준다. 이번 주에는 소백산 근처의 말금마을이라는 곳의 두 농부가 주인공이다. 60이라는 같은 나이지만 한 명은 어렸을적부터 전형적인 농부로서 살아온 사람이고, 다른 한 명은 기업체에서 간부까지 지내다 퇴직 후 자리를 잡은 5년 경력의 초보다. 문제는 이 초보가 유기농 농법을 시도하면서 매사 부딪힐 수밖에 없는 외부환경이다.

전통 농부는 새벽부터 일어나 고추가 제대로 건조되고 있는지 살펴보고, 배추가 잘 자라는지 돌보며, 무우를 캐내어 시장에 내놓을 궁리를 한다. 자신이 거둔 농작물의 품질에 대해 자부심도 가지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어는 정도 어려움에 몰리지 않고 잘 해내고 있다.

반면 5년차 농부는 아침 9시나 10시 쯤 느긋하게 일어나 원두커피를 갈아서 커피 한잔 마시고서 천천히 일을 시작한다. 농삿일이라는 것도 그저 자신이 먹을거리만 구하면 되는 것이라 풍작을 기대하지도 않는듯하다. 벌레 한마리 한마리를 손으로 잡아 천천히 던져놓고 잡초는 잡초대로 그냥 놔두고, 놀려둔 땅은 놀려두는대로 땅의 힘이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후가 되면 밭에 스피커를 열어놓고 모차르트를 틀어주기도 한다.

이웃사촌은 그 음악소리가 못마땅하다. 하우스 안에서 음악작농은 효과를 보지만 야외에서는 효과를 볼 수 없다며 비판하기도 하고, 다른 것은 다 신토불이라면서 왜 음악은 양놈 것을 듣는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이웃은 도움을 청하는 초보자에게 아낌없이 도움을 주고, 그를 선량하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다만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뿐이라고 이해하면서.

그렇다고 모든 것이 다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다. 저녁에 집을 수리하는 톱질 소리에 불만도 쌓이고, 비둘기 피해가 염려되는데도 불구하고 기어이 호밀농사를 짓겠다는 고집에 화도 난다.

초보 농부는 친환경적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로 깊은 골짜기에 살면서도 과감히 차를 처분하기로 마음 먹는다. 대신 당나귀를 기를까 고민중이며, 염소도 한마리 살 생각이다. 이웃은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에 당나귀는 무리며 임도 또한 경사가 심해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설득하지만 고집불통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이렇게 티격태격하면서도 이웃사촌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은 덕분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티격태격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방식의 차이가 서로에게 낯섬을 넘어 무엇인가 자신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폐해의 크기가 서로 감당하지 못할 지경까지 된다면 과연 그들의 평화는 계속될 수 있을 것인지 염려스럽다. 만약 이들 농부가 바로 옆에서 밭농사가 아닌 논농사를 다른 방식으로 했다면 과연 어땠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어쨌든 이 초보농부의 삶은 내가 생각하고 있던 삶의 방식과 무척 닮아 있었다. 다만 농부 내외가 자급자족을 해내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는 점에서 베짱이로서의 삶의 여유를 부리다 굶어죽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 작물은 최대한 스스로 자라도록 내버려두고 사람의 손길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나머지 시간을 여가로 돌릴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은 과연 꿈일 것인가? 초보 농부는 부족한 것은 이웃에게 빌리고, 나머지는 아무래도 지금까지 벌어놓은 돈으로 해결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자급자족은 아직 먼 꿈이고, 진정 자급자족을 이루기 위해선 자신의 여가 대부분을 헌납해야만 되는 것은 아닐까?

전통 농부가 밤낮없이 농사를 하는 것은 농사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자 함이다. 눈물을 머금고 팔아야만 하는 작물이 있고, 배짱을 퉁기면서 제값을 챙기는 작물도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경제적 논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최상의 작물을 위해 비료와 농약을 아낌없이 준다. 물론 그 농부도 농약을 뿌리지 않고 자라난 작물이 건강에도 좋고 자신 또한 농약을 마시지 않아도 되니 좋은 줄은 알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게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바로 옆의 초보농부는 바로 그런 면에서 과연 유기농을 통한 친환경적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이 땅에서 키워야 할 아이들이 이미 성인이 되어 있기에 가능한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교육에 대한 문제 등을 생각해보면(또한 문화적 혜택이나 여행, 의료 등등의 제반 조건들도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이 또한 어려운 문제일수밖에 없다. 자급자족은 말 그대로 자족일뿐인데 그 이외의 비용이 들어갈 경우는 어떻게 해결가능할 것인가? 더군다나 농촌을 점차 살아가기 힘든 곳으로 만들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이 땅에서 말이다.

복지제도가 정착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베짱이로서의 삶이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몽상이 되지 않기 위해선 얼마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 또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인지 많은 것을 생각하게끔 만든다. 바로 이웃과도 평화를 정착하지 못하면서 친환경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않겠는가? 아사 직전이면서도 벌레가 먹을 것을 남겨놓는다는 여유가 관연 가능하겠는가? 초보 농부의 미래가 궁금하다. 어쩌면 그 속에 나의 미래도 조금은 투영되어 있을테니...(만약 단순히 퇴직 후의 전원적인 삶이라는 양태를 띤다면 차라리 젊었을 적 돈 버는데 집착해 나이든 후 느긋하게 별장 생활을 꿈꾸는게 낫지 않겠는가? 행복을 미래에 차출당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또 그것이나마 가능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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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모도 해명산에서 바라본 서해바다

 

 

석모도엔 산이 세개 있다. 해명산 낙가산 상봉산. 유명한 사찰인 보문사는 낙가산에 위치해 있다.

지난 15일 토요일 석모도에 갔다. 해명산에서 낙가산으로 가는 길은 총 9킬로미터. 최고 372미터 정도의 얕으막한 산으로 바다를 보면서 산행을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산행코스 중의 하나이다. 날씨가 너무 좋아 연신 기분이 좋은 상태로 산을 올랐다. 탁 트인 바다를 보면서 가슴도 확 트였다.

섬으로 향하는 전신주들. 아직 추수를 못한 논의 노란 벼이삭들. 갯벌에 보라색으로 비쳐지는 함초(?-칠면초가 맞지 않을까 싶다)들(안타깝게도 사진으로는 잘 안보이지만) 그리고 바로 옆에는 하얀 색을 드러낸 염전들.(이건 다른 사진에 있는데 날려버렸다 ㅎㅎ-나중에 알고보니 이 염전이 내년에는 사라진다고 한다. 점차 이 땅의 염전은 사라지고 소금은 수입으로만 가득 찰 날이 머지 않았다.) 따가운 햇살 덕분에 아름다운 색들의 잔치를 구경했다.
 

아직 단풍은 들지 않았지만 곳곳에 억새가 눈에 띤다. 햇살이 부서진다. 바람이 슬쩍 간지르고 간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드뎌 찾았다. 사진 왼쪽 위의 하얀 부분이 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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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저녁 11시 SBS 스페셜<유언...>을 보았다.

감당못할 좌절감에 온 몸을 불살러 죽으려 했던 권투선수가 극적으로 살아나, 도장을 꾸려가며 못 다 이룬 세계 챔프의 꿈을 제자들을 통해 이루려 하는 모습은 삶의 의지를 불태우게 만들었다. 그의 유언 중에선 자신을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준 아내에 대한 사랑이 넘쳐난다. 진짜 환생이 가능하다면 나는 내세에도 당신을 만나겠다. 비록 당신이 나를 거절할지라도 나는 당신을 찾아서 이생에서 빚진 것을 꼭 갚도록 하겠다.

다음으로 소개된 분은 루게릭 병에 걸린 아주머니. 남편은 암 투병중에도 자신을 간호하다 결국 1년전 세상을 떠나고, 지금은 두 딸이 자신을 거들고 있다. 몸이 점차 말을 듣지 않고 결국 숨조차 쉴 수 없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그녀는 자신이 움직일 수 있을때 딸들에게 전하고픈 글들을 남겨놓았다. 이렇게 투병에 괴로워하던 나의 모습도 잊지 말아달라는 그녀의 글은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일반 사람들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그녀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큰 딸의 모습은 감동이다. 특히 작은 딸에게 해준 것보다 자신이 받은 것이 더 많아 미안하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엄마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되새긴다.

당뇨병에 걸린 아내와 암에 걸린 남편의 유언 등등.

<인생 9단>이라는 책에서 저자가 매년 한번씩 유언을 쓴다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지금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가야겠다는 의지를 일깨운다. 이것이야 말로 아마도 방송 제작진이 의도했던 것이었으리라. 난 유언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한가지 더 떠오른게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생겨나는 빚. 한없이 일방적으로 퍼주거나 받는 관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관계 속에서도 채무감은 분명 들게된다.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그런 채무감을 깊게 느껴야만 하는 사회적 압력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사회적 압력을 떠나 개인적으로도 사람들 사이에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끝없는 채권채무의 사랑이 오간다. 비록 꼭 갚아야 할 필요가 없을지라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또는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받을지라도, 그건 빚이다. 빚이라고 생각한 순간 관계는 지속된다. 빚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철저한 냉혈한이던가 세상을 초월한 도인일 것이다.

물론 내 삶이 빚에 얽매여서는 안될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와의 빚잔치가 끝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사라진 청산의 관계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빚의 부담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준 게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플러스 마이너스에 대한 개념없이 항상 마이너스로 생각하는 삶이라면, 즉 난 언제나 채무자임을 자각한다면, 그리고 그 채무를 꼭 당사자에게만 갚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조금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편안해지려나. 위의 유언을 남긴 사람들도 채무의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눈물이 줄어드려나.

가슴에 빚을 지고 살아보자. 이미 나는 세상으로부터 많은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그 빚을 세상에 조금씩 조금씩 갚아가보도록 해보자. 한없이 가벼워질 몸과 마음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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