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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가 되는 법 - 읽고 쓰는 사람으로 책 세계를 만끽하기 위하여 땅콩문고
김성신 지음 / 유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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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가가 많은 사회는 병들지 않는다

- 서평가 되는 법


 김성신 지음 [유유] (2025)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다. 일단 서평가가 되어 보라. 되기 어렵지 않다. 책을 읽기만 했던 것에서 딱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책에 대해 쓰기만 하면 된다. (...) 서평가가 되는 것은 어이없을 정도로 쉽다.”(140)


 

서평가 되는 법을 쓴 작가 김성신은 서평가들의 서평가’, ‘서평가들의 멘토라 할 수 있겠다. 이력을 보면 30년 넘게 출판계에 몸을 담고서, 책을 알리고 책에 대해 글을 쓰며 방송에도 출연하여 책을 알려온 작가였다. 그런 출판 전문가가 이번에는 서평가 되는 법에 대해 정리한 글이다. 그가 말하는 서평가 되는 법, 책을 읽기만 하면 누구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읽은 책에 대해 쓰기만 하면 된다고. ‘, 쉽죠~!’라는 유행어가 떠오른다. 이렇게 그는 30여 년의 노하우를 담아 서평가 되는 법을 한 문장으로 얘기해버렸다.

 


그럼 이제 무슨 할 얘기가 더 남아있단 말인가? 일단 책을 읽기만 하면 서평가가 될 수 있다고 했으니, 책의 나머지에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책의 나머지 지면에는 저자가 끌어들인 주변 지인들이 서평가로 거듭나는 과정 담겨 있다. 이들은 저자 주변의 느슨했던 지인들이 책을 매개로 어떻게 그와 친밀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맺으며 함께 가는 동료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는지도 볼 수 있다.

 


코미디언이 책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며 웃기는 서평가가 된 에피소드, 또 오랜 지인이자 호텔에서 30년 일해온 셰프를 꼬드겨 요리하는 서평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게 도운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물론 글만으로 서평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번에 새로 알게 되었다. 책을 읽은 감상을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 독후화라고 명명한 독후 감상 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글이 새로운 매체로의 창작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신기한 경험이다. 이렇듯 저자는 책을 읽은 이라면 누구나 서평가가 될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서평과 독후감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고, 실제로 서평가들의 글을 읽어보면 학창시절에 종종 머리를 쥐어뜯으며 써가야 했던 독후감과도 사뭇 다르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서평 쓰기는 독후감 쓰기와는 분명 뭔가 다르다. 하지만 이 느낌에서 나아가 무언가 서평다운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는 언제나 나의 큰 관심주제다. 내가 쓴 글을 읽으면 언제나 어딘가 부족함을 느끼던 차였다. 물론 내 글의 기술적인 부분, 특히 표현상의 부족함도 많을 테지만, 저자의 말에 따르면 기술적인 면이 서평의 본질은 아니라고 하니 저자는 이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할까.

 


좋은 글은 좋은 표현이기보다는 좋은 생각이다.”(18)

 


뭐랄까, 이 단비 같은 명쾌한 답변이라니. 내게 무엇보다 부족한 건 아마도 좋은 생각의 부족이 아니었을까. 좋은 생각에 이르도록 고민하는 일이야말로 서평가가 주목하여 해결해야할 부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저자가 이야기하는 서평가 되기의 요건 중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이 있었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서평의 본질은 사랑과 공공성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공공성은 글을 쓰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이미 모든 서평가가 무의식중에 염두에 두는 조건이 아닌가?

 


그럼 서평가의 본질로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사랑은 뭘까? 이쯤 되면 나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 자부하는 독자들이 자신감을 얻을 만 하지만, 이것이 어떤 사랑인지는 좀 따져봐야 할 것 같다. 그가 서평가의 자질로 요구하는 사랑이란 결국 존중이었다. 서평글을 매개로 사랑의 작대기를 연결해 보자면, 글을 쓴 사람과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이어진다. 곧 서평을 쓰는 이들은 바로 이 두 관계를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이를 또 내 방식으로 풀어보면, 저자가 이야기하는 서평가의 사랑은 애써 글을 쓴 사람과 애써 이 글을 읽게 될 사람에 대한 환대가 아닐까. 저자가 말하는 쓰는 자와 읽는 자에 대한 존중을 조금 달리 얘기하자면, 결국 쓰는 이와 읽는 이에 대한 마음가짐, 배려하기에 이르기도 할 것이다.


 

서평은 책을 매개로 하는 비평의 한 장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때 사람들은 비판적인 읽기를 떠올리다 그만 비판적인 공격’, 혹은 비난을 하기 쉽다. 자신의 잣대를 기반으로 따져가며 읽는 행위에 잘못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판을 하려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정성껏해야 한다고 본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서평도 결국 대상(작가와 독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먼저였던 것이다.


 

이렇게 혼자 놀이하듯 정리하고 나니, 저자의 말들이 더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저자와 같은 선배를 만날 수 없는, 나와 같은 독자를 위해서도 이런 이야기들을 애써 이야기 해주어서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서평가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되어서는 안 된다.”(18)라고, 소심한 나에게 처음부터 겁을 잔뜩 주긴 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이해를 하니 그가 거듭 당부하고 있는 서평가의 요건, ‘사랑공공성또한 이 둘이 서로 별개의 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서평가는 책(혹은 저자)과와 책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단순히 연결하는 역할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기능적인 면에서 AI가 서평가를 가까운 미래에 대신할 수 있는 영역이 있겠지만, 도덕성·윤리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AI에게 대상에 대한 존중과 아끼는 마음, 그리고 공동체의 안위를 염려하고 스스로 긍정적인 영향력을 전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저자의 말대로 이러한 마음가짐을 지닌 서평가가 점점 더 많아진다면, 정지우 작가의 표현대로 외롭지 않고 병들지 않는공동체를 가꾸는 데 서평가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평은 의외로 힘이 세다.”(140)는 작가의 말을 믿어 보자.  




[책 속으로]

[1] "서평가가 되고 싶다면 ‘공공성’이란 단어만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17) - P17

[2] "누구나 서평가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되어서는 안 된다."

"좋은 글은 좋은 ‘표현’이기보다는 좋은 ‘생각’이다."

"책에 대한 사랑과 무엇보다 공공성에 대한 엄격한 자기 검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무엇인가 되고 싶다면 그 일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서평의 본질은 바로 사랑과 공공성이다."(18) - P18

[3] "나는 파불루머 프로젝트를 통해 성실한 사람이 유능해지고, 유능한 사람이 훌륭해지고, 훌륭한 사람이 멈추지 않고 계속 정진하는 진정한 고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56) - P56

[4] "그림은 명사지만 ‘그리다’는 동사지요. 그림은 아무리 대단해져 봐야 고작 비싼 물건 취급이나 받지만 ‘그리는 행위’는 때로 숭고해서 ‘그리는 사람’은 위대함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57, 독후화 화가 천지수의 말) - P57

[5] "탈북인에게는 남한 사회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내비칠 창구가 없다. 대한민국 사회는 2000년대 이후에도 여전히 체제 우월성의 증거쯤으로만 탈북인들을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71) - P71

[6] "서평의 본질은 책(또는 저자)과 독자를 잇는 것이다. 이 일을 잘 하려면 대상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 책과 그 책을 쓴 이 그리고 독자에 대한 존중 말이다. 그런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화려한 글 솜씨를 동원해 책에 대해 떠들어도 결코 좋은 서평가라고 할 수 없다."(127)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히틀러도 스탈린도 유난스러운 독서가였다. (...) 독서에는 실체적인 위력이 있어서 잘못된 철학이나 생각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기도 한다."(127) - P127

[7] "서평의 핵심은 저자와 독자를 향한 존중이다. 좋은 서평가가 되고 싶다면 ‘나는 저자와 독자를 여전히 존중하고 있는가?’하고 스스로 자주 되물어야 한다."(128) - P128

[8]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다. 일단 서평가가 되어 보라. 되기 어렵지 않다. 책을 읽기만 했던 것에서 딱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책에 대해 쓰기만 하면 된다. 공공성에 대한 인식만 잘 갖추고 있다면, 서평가가 되는 것은 어이없을 정도로 쉽다."(140)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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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5-13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사랑’이고, 사랑을 알려면 ‘사람’과 ‘살다·살리다(살림)’와 ‘사이(새)’라는 낱말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한자말 ‘존중’은 ‘사랑’하고 멉니다. 사랑을 안 하더라도 얼마든지 모시거나 섬기거나 높일 수 있으니까요. 한자말 ‘배려’도 ‘사랑’하고 멉니다. 사랑이 없더라도 얼마든지 ‘마음쓰기’를 하면서 자리를 내주거나 돈을 나눠주거나 밥을 나눌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사랑’이라는 낱말을 사랑 그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고서, 자꾸 다른 낱말을 끼워맞추려 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랑을 더욱 모르거나 등지면서, 사랑흉내나 사랑시늉이나 사랑척으로 기웁니다. 이를테면 ‘좋다·좋아하다’를 섣불리 끼워맞추려 하는데, ‘좋다·좋아하다 = 마음에 들다’이고, ‘마음에 들다 = 마음에 안 들면 모두 쳐낸다’는 밑뜻입니다. 그래서 ‘좋은글·좋은책’이란,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 안 쳐다보거나 치우거나 등진다”는 굴레로 치닫습니다.

한자말을 풀자면, ‘서평 = 글을 짚으며 말하다’요, ‘독후감 = 글을 읽고서 느끼는 대로 말하다’입니다. ‘서평가’란 “글을 찬찬히 짚으면서 꾸밈없이 말하는 사람”일 노릇이라서, 서평가라는 사람은 모름지기 ‘까칠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꾸밈없이 말하려면 ‘좋은말’만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듣기에 나쁜말”을 자주 해야 하니까요. ‘독후감’은 누구나 느끼는 대로 밝히는 말이기에, 좋거나 나쁘다고 가를 수 없이, 저마다 다른 삶 그대로 드러내는 말입니다.

여러모로 보면, 우리는 ‘서평가’가 되기보다는 “사랑을 하며 살림을 짓는 새로운 하루를 스스로 그려서 짓는 사람”으로 서면 됩니다. 스스로 사랑을 배우고 익혀서 나누는 사람이라면, 글을 읽건 일을 하건 놀이를 하건 노래를 하건 논밭을 일구건 부릉부릉 쇳덩이를 몰건, 언제나 ‘사랑’을 바탕으로 움직이기에, 서로 살리는 길을 저절로 펴게 마련입니다.

굳이 어려운 한자말로 ‘공공성’이라 할 까닭이 없이, 어린이 곁에 서는 쉬운 우리말인 ‘같이’와 ‘함께’와 ‘모두’와 ‘나란히’와 ‘서로’를 그때그때 다르게 살피고 짚으면서 쓸 줄 알면 된다고 느낍니다.
 
















아티스트웨이에 영감을 준 글쓰기의 출발점

(feat. 세상 모든 사람들은 글을 쓰고 싶어 한다.)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

(원제: Writing without Teachers)

 

피터 엘보 지음 | 한진영 옮김 [페르아미카실렌티아루네] (2024)

 



피터 엘보(Peter Elbow)...


온라인 서점 앱을 보다가 만난 이름이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곧바로 기억나지 않았다. 앱에서 저자의 다른 저서를 찾아보고서야 그가 글쓰기 책 힘 있는 글쓰기의 저자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몇 년 전에 많은 관심을 받았던 글쓰기 책이다. 정확히 말하면 국내에서 출간(2014)된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기록을 남겨보기 시작했던 때가 2015년이었다. 당시에 난 아마도 글쓰기까지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이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누가 이렇게까지 9년 동안 틈틈이 블로그에 글을 남길 줄 알았나. 서점에서 이 책을 이따금씩 만나곤 했지만, 제대로 읽어볼 기회는 없었다. 내가 여전히 블로그에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고 있으니, 이럴 줄 알았으면 힘 있는 글쓰기를 만났을 때 읽고 글쓰기를 시도해 보면 좋았겠다.

 

저자의 이름을 발견한 건, 이번 달에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가 새롭게 출간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10년 전에 국내에서 출간된 책과 더불어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의 첫인상은, 두 권 모두 글쓰기에 관한 실천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을 보다 강조하고 있는 글쓰기 책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저자가 궁금해서 저자의 프로필 자리를 책에서 찾아보았는데, 저자의 이력을 찾을 수가 없었다. 책을 덮고 무심코 표지를 보았더니 이제야 저자와 간단한 책 소개 글이 눈에 들어왔다. 책 내부에서 저자와 소개하는 공간을 새롭게 해석한 시도라고 여겨졌다. 저자의 이력을 찾다가 발견한 점이다. 간결하면서도 감각적인 표지다.

 

아무튼 표지에서부터 저자의 이력을 더 찾아보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저자가 글쓰기 관련 베스트셀러 아티스트웨이(줄리아 카메론)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나탈리 골드버그)에 큰 영감을 준 장본인이라는 점이었다. 이 글쓰기 관련 베스트셀러에서 적용하고 있는 방법론이 무작정 글쓰기(free writing)’였다. 그러니까 적어도 2010년대부터 지금까지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모닝페이지열풍을 일으켰던 인물이 바로 피터 엘보였다. 참고로 그가 제안한 글쓰기 방법론은 하버드 글쓰기 강의로 실용적인 글쓰기 가이드를 제시했던 저자 바버라 베이그에게도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피터 엘보가 제시한 이 글쓰기 방법이 도대체 어떤 방법이기에 이렇게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걸까, 더 궁금해졌다.

 

출판사 소개 글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저자가 제안한무작정 글쓰기(free writing)’가 글쓰기에 대한 본인의 불안과 좌절, 무력감의 경험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 글쓰기에 대한 심리적 압박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결국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글쓰기에 관한 자신의 실패를 분석하고 기록으로 남겨놓았던 것이다. 이런 경험으로부터 저자는 자신만의 글쓰기 방법을 추출해내었고 훗날 이를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라 할 수 있겠다. 서문에 따르면 저자는 자신의 무작정 글쓰기(free writing)’방법을 다른 작가의 글쓰기 책에서 발견하고 이를 자신의 문제 해결에 적용해보게 되었다. 저자는무작정 글쓰기를 때로는무의식적 글쓰기’,‘지껄이기’,‘수다떨기라고도 소개한다. 달리 말하면, ‘무작정 글쓰기는 우리 각자의 자각/이성/로고스가 개입하고 우리를 통제하지 않는 글쓰기라고 이해된다.

 

젊은 시절에 누구나 한번은 방황하고 좌절한 기억이 있을 테다. 나 역시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들어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 젊음이란 조건에도 정신적 피로감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물론 프리라이팅(free writing) 기법을 알지 못한 지만, 생각해보니 나도 리걸패드(노란 종이 묶음으로 된 노트)에 내 모든 걸 쏟아내듯 끄적거려 본 경험이 있다. 나의 자괴감과 열등감, 원망과 고통의 기억 모두를 뱉어버리듯이 말이다. 떠오르는 단어 하나도 놓치지 않고 휘갈기듯 계속 써본 후 더 뱉어낼 것이 없을 정도로 기진맥진해진 상태에서 뭔지 모를 심리적인 안도감 같은 것이 찾아왔음을 기억한다. 저자가 이렇게 글쓰기로 내뱉는 행위가 저자가 의도한 것에 부합하는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이제 이 책에서 소개 된프리라이팅을 과거에 방황하며 뱉어내듯 무언가를 썼던 경험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서문에 언급된 프리라이팅 방식과 비교해보니 내가 적용했던 방식과 매우 유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난 기억을 되돌아보면, 나는 이미 피터 엘보의 글쓰기 방법을 이때 영접했던 것이 아닐까. 저자의 글쓰기에 대한 불안과 고통의 경험에서 나온무작정 글쓰기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다. 얼핏 보기에 저자가 제안한 글쓰기 방식이 글 쓰는 이의 무의식과 접점을 만들어내는 훈련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이 방식으로부터 어떻게 내가 원하는 글, 보다 좋은 요건을 갖춘 글을 쓰는 데로 나아갈 수 있을지. 오랫동안 많은 창작자/작가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아온 아티스트웨이에서 소개한 바로 그 글쓰기 방식 말이다! 그리고 이 방법을 제안하고 실천했던 저자의 책과 이제 만나게 된 셈이다. 최근 나의 글쓰기가 벽과 같이 무언가에 막혀버린 느낌을 종종 받았다. 글쓰기에 조금 소심해지고 의욕을 잃기도 했는데, 피터 엘보를 만난 것은 마치 일종의 계시(그냥 계속 쓸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글쓰기 연구의 대가가 50년에 걸쳐 축적한 성과를 아무리 많이 내게 보여주든, 이 책이 30년 넘게 옥스포드 대학에서 글쓰기 바이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든, 내가 직접 글을 써보고 실천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저자는 나의 우려를 미리 알고 있다는 듯,‘교사 없는 글쓰기 모임에 관한 조언도 책에 담아놓았다. 저자가 제안하는 교사 없는 글쓰기 모임활동은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들의 격려 속에서 자신의 글을 계속 써나간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기존의 아티스트웨이를 좋아하는 작가들,‘모닝페이지를 시도해 본 열혈 독자들이 함께 글쓰기를 하고 격려해간다면 각자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혼자 꾸준히 무언가를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일주일에 세 번 이상 10분 정도 프리라이팅을 하라는 것도, 사실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라기보다는, 마음의 여유를 마련하는 문제인 것 같다. 현대인들의 집중력을 훔쳐가는 도둑들이 주면에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지신경학자이자 아동발달학자 매리언 울프가 프루스트와 오징어에서도 밝힌 바 있듯이, 인간에게 읽기와 쓰기 행위란 결코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함께 글쓰기 루틴을 꾸준히 지켜나가다 보면 서로에게 분명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역시나 직접 시도해 보는 독자만이 무언가(?)를 얻게 될 것이다.

 

피터 엘보의 다른 책 일상어 문식성도 유명한 듯하고 관심이 가지만, 이 책의 분량과 가격의 압박이, 번역서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 어렵게 되었다. 두꺼운 교과서가 아닌 이상, 개인적으로 역자가 너무 많은 책은 잘 구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 프리라이팅개념을 소개하고 있는 실천적인 가이드로서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부터 읽어보기로 한다. 서울대 나민애 교수가 2023년에 출간한 책 국어 잘하는 아이가 이깁니다에서도 언급했듯이, 글쓰기 행위가 책읽기의 최종 목표 혹은 종착지는 아니라는 지적에 공감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제대로 읽고 쓰는 능력을 매우 귀하게 여기고 책읽기에서 더 나아가 글을 잘 쓰게 되길 열망한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글을 쓰고 싶어 한다.”(17) 진화상으로 볼 때, 인간에게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이 독특한 능력(읽기와 쓰기)이 왜 필요하게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그보다 애초에 우리는 왜 글을 쓰게 되었던 것일까? 저자 피터 엘보가 소개하는 프리라이팅이 우리의 글쓰기 향상에 어떤 토양을 제공해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오래간만에 글쓰기에 관한 책으로 돌아왔다. 최근 나의 글쓰기가 더 나아지지 않는다는 무력감을 느끼던 차였다. 이제 이 책과 더불어 10년 전의 나와 조금은 달라진 원점에서 글쓰기를 다시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글쓰기를배우지않기 #피터엘보 #글쓰기 #무작정글쓰기 #프리라이팅 #freewriting 

#교사없는글쓰기 #writingwithoutteachers #교사없는글쓰기모임 #내돈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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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요새 - 사유의 미로를 통과하는 읽기의 모험
고명섭 지음 / 교양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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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거점을 밝혀 주는 지도를 손에 넣다

- 생각의 요새를 읽고

 

고명섭 지음 | [교양인] | (2023)

 




내가 읽은 생각의 요새는 작전 지도와 같았다. 작가에게 이 책은 오랜 시간 여러 책을 읽고 사유하며 구축해 놓은 생각의 요새라면, 독자에게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지도가 되어준다. 이 요새를 독자와 함께 나누면서 독자는 이 요새를 출발점 삼아 새로운 책읽기의 고지로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셈이다. 물론 작가는 독자의 생각을 일일이 대신 해줄 수는 없다. 이 작업은 독자가 스스로 생각을 전진시킬 수 있도록 길을 밝혀놓은 작업이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은 한 권 한 권이 읽기 만만치 않은 사유의 결과물들이다. 다만 저자는 독자 보다 먼저 지적 모험을 경험하며 여러 거점들을 찾아 두었고, 이를 바탕으로 개별적이고 지속적인 책읽기작전에서 중요한 고지를 독자를 위해 밝혀 놓은 것이다.


 

우선 확인할 수 있는 이 책의 특징은, 저자가 각 저작의 핵심 개념을 명료하게 요약해놓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요약 잘하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책의 핵심적인 내용에 작가가 파악한 책의 가치와 맥락을 더하여 책읽기 작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주기 때문이다. 작가는 도서들의 위상을 제시하여 독자가 이 책을 지도삼아 따라가다 방향 감각을 잃었을 때, 나침반이 되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개별적인 도서의 이해뿐만 아니라, 해당 작가의 사상, 또는 사상의 변화에 대한 흐름을 파악하고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내용은 생각의 요새에 보관되어 있는 일급비밀의 작전 계획서 같다고 느꼈다.


 

특히 이 책은 철학, 정치 및 사회, 종교, 문화, 동양 사상, 과학, 문학 및 비평 등 폭넓은 사유의 고지를 포함하고 있다. 이 작전 지도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독자가 요새로 삼고 싶은 사유의 거점을 먼저 정하면 좋을 것이다. 이 작전 계획서를 기반으로 독자가 사유의 거점을 정하고 이를 향해 나아가 이를 제 것으로 만드는 일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본문에서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서 추방당함으로써 비로소 실존하기 시작했다’(29)실존의 의미를 소개하고 있듯이, 결국 독자는 저자가 마련해놓은 요새를 언젠가는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독자는 자신이 선정한 거점을 찾아 익숙한 요새를 벗어나야 할 것이다. 생각의 요새는 독자의 책읽기 작전을 도와주는 작전 지도이면서, 이 탐험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든든한 베이스캠프라고 생각한다.


 

1장에 소개된 철학서들을 보면, 내가 이 책들을 읽고 이해하려면 족히 몇 년을 걸릴만한 책들이다. 하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해당 철학서들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모르는 철학자들의 저작도 많지만, 이름을 들어보았더라도 막연히 이 철학서들이 어려울 것이라 여겼던 책들도 있다. 여기서 저자의 소개를 듣다보면 왠지 도전해볼 수 있겠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물론 철학서 읽기에 실제로 도전한다면, 현실은 다를 것이다. 곧바로 가수면 혹은 혼수상태에 빠져들 테다. 그러므로 생각의 요새을 읽을 때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이 철학서들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유지하되, 저자가 마련해 놓은 생각의 요새를 출발점삼아, 다른 사유의 거점들을 향해 과감히 나아가야 할 것이다.


 

나는 철학서들에 대한 저자의 소개를 따라가며 몇 권의 거점을 발견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이 철학적 사유의 거점들에 도전해보고 싶다. 예를 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 수학 예찬, 그리고 신유물론 입문, 폭력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책들이다. 언젠가 이런 사유의 거점들을 탐험하게 될 때, 나는 저자가 공들인 독서 및 사유의 시간과 글쓰기의 시간에 힘입어 그가 밝혀 놓은 길을 따라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따금 이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또 나는 어디에 있는지를 꾸준히 묻고 확인하게 될 것이다.


 

저자가 밝혀 놓은 다양한 사유의 거점들 가운데, 우선 나의 관심을 끄는 분야는 과학이다. 그래서 5마음과 우주라는 사유의 거점을 먼저 탐색해보았다. 이 지점에서 내가 관심을 가진 작가는 D. H. 로런스와 괴테, 뉴턴, 그리고 일본에서 존경받는 지식인이자 물리학자인 야마모토 요시타카다. 뉴턴의 경우, 올해 새로 완역 출간된 프린키피아가 소개되고 있어 반가웠다.


 

이 장에서 이 책의 전반적인 특징 하나를 더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가 책을 소개할 때, 유명 작가의 저작과 해당 작가의 면모를 다룬 저서를 함께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D. H. 로런스의 저작 아포칼립스를 소개한 후, 이어서 로런스의 면모와 그의 사상을 연구한 백낙청 교수의 저작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을 함께 소개하는 식이다. 이렇게 관련 있는 주제아래 함께 읽기를 하면 로런스의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해가 보다 깊어질 것이다. 나아가 저자가 보여준 것처럼 해당 주제에 대한 나름의 맥락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다른 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패턴을 볼 수 있다.

 


같은 장에서 이렇게 동일 작가나 작품을 짝을 지어 다룬 방식은 관련 주제나 작가에 대해 특정한 맥락 속에서 이해를 깊게 해줄 수 있는 읽기라고 생각한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독자가 괴테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에 대해 종합적으로 알 수 있도록, 관련 도서를 짝지어 놓은 느낌이다. 괴테는 일생의 역작 파우스트60년 가까이 쓰고 고쳤다. 저자는 이 작품에 대한 광범위한 해설서 불멸의 파우스트를 소개한다. 이어서 이 작품과 관련하여 괴테의 면모를 좀 더 파악할 수 있는 괴테와 융이란 저작을 또 다른 사유의 거점으로 제시한다.


 

생각의 요새가 지니는 장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전에 파우스트를 읽었을 때,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레트헨은 과오 많은 파우스트를 인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파우스트가 구원을 얻었다고 이해했다. 그런데 이렇게 문제가 많은 남자를 무슨 근거로 구원했는지 그다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는 파우스트가 구원을 받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하는 독문학자 전영애의 견해를 소개한다. 파우스트자체가 대문호의 방대한 사상이 응집된 작품인 것은 알고 있지만, 이런 부분에서도 전문 연구자들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음을 지적하는 저자의 예민한 안목이 놀랍다. 이처럼 생각의 요새는 독자가 이미 읽었더라도 다시 생각해볼 여지를 남겨 놓기도 한다. 나는 조만간 이 책을 출발점 삼아, 파우스트라는 높고 중요한 고지를 향해 다시 탐험에 나설 예정이다.

 


이 책에 재인용된 D. H. 로런스의 말 중에서 마음에 든 한 문장이 있다. 소설 읽기에 관한 내용이었다. “소설이란 감정의 모험의 기록이기만 해서는 안 되고 사유의 모험이기도 해야 한다.”(391) 이전에 로런스의 고백적인 에세이와 소설 일부를 읽고 놀란 적이 있다. 처음부터 로런스의 문장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작가의 지성적인 측면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책에 인용된 로런스의 말은 생각의 요새가 표방하는 사유의 모험이란 취지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로런스는 당대에 외설 작가라는 비난과 오명을 쓰기도 했지만, 계급적이고 기득권적인 제약과 관습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 병적인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지닐 수 있었다. 나는 저자가 설명해준 것처럼, 로런스가 자기다움의 실현을 추구했다는 점에 공감했다. 로런스 소설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작가가 독자에게 요구하는 사유의 모험이라는, 지적인 면모를 분명히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 분야에서 나의 눈길을 끌었던 사유의 거점은 야마모토 요시타카라는 작가와 그 저서였다. 저자 고명섭은 이 놀라운 작가의 여러 저작물 중에서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이라는 제목의 과학사 서적 1·2권을 소개한다.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일전에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던 역작 과학의 탄생을 우연히 만나면서 알게 되었다. 저자 고명섭은 소개하는 도서와 작가에 대한 이해를 마찬가지로 저자 나름의 맥락에서 알려준다. 역시나 그는 요시타카의 다른 저서인 과학의 탄생16세기 문화혁명, 그리고 나의 1960년대일본 과학기술 총력전후쿠시마, 일본 핵 발전의 진실까지 묶어서 독자에게 소개해주는 꼼꼼함을 잃지 않는다. 이제 여기에 최근 출간된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3권까지 포함하면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근대 과학사 3부작을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과학 분야에서 탐험할 사유의 거점은 야마모토 요시타카라로 정했다.


 

생각의 요새을 읽는 독자마다 이 책을 활용하는 방법은 다를 것이다. 나는 내 책읽기 여정에서 하나의 거점을 발견하여 모험해보고 싶은 분야를 먼저 골랐다. 이후 관심이 가는 저자나 책을 선정하면, 이를 내 사유의 거점으로 삼는 방식으로 삼았다. 우리는 인생에서 저자가 소개한 인물 사마천, 마키아벨리, 단테처럼 언제든 궁핍해지거나 실존의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어떤 이에게 이 책은 궁핍한 시기에 잠시 머물며 숨을 고를 수 있는 견고한 생각의 요새가 될 수도 있겠다. 내게는 내가 직접 만들어가는 사유의 거점과 가는 길을 밝혀주는 작전 지도와 같다. 그러므로 한 번 읽고 덮어 두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언제든 새로운 사유의 거점을 탐험할 때 참고가 되고 새로운 모험에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1] "집을 떠나는 것은 바깥에 서기, 곧 실존하기를 가로막는 기존의 자기적응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 대해 탈합치를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관성대로 살지 않고 진정으로 실존하는 삶을 사는 길이다."(29)
- <탈합치> (프랑수아 줄리앙) 소개 글 중에서

[2] 억지로 고안해낸 언어는 대가의 말을 바보처럼 반복하거나 멍청하게 모방하는 광신적 신봉자들을 양산하게 된다. 예술에서 소위 ‘예술을 위한 예술’의 시기가 있었던 것처럼, 철학에도 ‘텍스트를 위한 텍스트’의 시기, 따라서 ‘철학을 위한 철학’의 시기가 있는 것이다. 이 시기가 바로 ‘텍스트 종교’가 나타나는 시기이며 이 시기에 글쓰기는 기도가 되고 사고는 주문이 되며 방법은 비이성이 된다.(45)
- <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 (미셸 옹프레) 소개 글 중에서

[3] 인종은 백인을 제외한 다른 모든 유색인종들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지 백인 자신들을 향해 쓰이지 않는다. 백인은 인종의 하나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 그 자체다. "다른 사람은 인종이고 우리는 그냥 인간이다." 이것이 백인들의 생각이다. 그리하여 백인은 언제나 특수성을 넘어선 보편성 자체로 자신을 드러낸다.(167)
- <화이트> (리처드 다이어) 소개 글 중에서

[4] "자연 현상에서 신의 존재를 유추하는 것도 분명히 자연철학의 일부다" 뉴턴이 중력의 배후에 신이 있다고 믿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야마모토의 책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가 ‘자연철학의 신학적 원리’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말하는데, 뉴턴의 고백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459)
- <프린키피아> (아이작 뉴턴) 소개 글 중에서

[5] "훌륭한 책은 독자의 뇌를 흔들어 깨운다. 뉴런에 충격을 가해 깜짝 놀라게 한다. 새로운 생각이 담긴 훌륭한 책은 독자를 사유의 새 길로 이끈다. 책을 읽다가 독자는 문득 자기가 낯선 길로 들어섰음을 깨닫게 된다. 훌륭한 책은 문장들을 외우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책을 통째로 외우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게 한다면 그 책은 틀림없이 훌륭한 책일 것이다. 결정적으로, 훌륭한 책은 독자의 대결의식을 불러일으킨다."(531)
-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고병권) 소개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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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8-26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초란공님^^ 이 책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놨는데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낼 책이겠군요. 저는 책의 어느 지점에서 머물지 기대가 됩니다. 좋은 리뷰 감사드립니다^^

초란공 2023-08-26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소개된 책들이 혼자 읽기에는 만만치 않은 책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해당 책을 읽기 전에 큰 틀에서 이해하기에 좋을 것 같고요.책이 나오개 된 배경이나 저작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간단히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 혼자 이 책들을 무작정 읽으려면 10년은 넘게 걸릴 것 같아요^^;;
 
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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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이상 열정적으로 책을 읽어온 노학자의 독서론



독서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



 


장마철 폭우로 걱정하다가 밖에서 맹렬히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듣고는 정신을 차린다. 아파트 뒤에 있는 조그만 숲에서 어느 날부터 울어대기 시작했다. 매미들의 절규처럼 들리는 이 합창을 듣노라면,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이 지나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요새는 눈이 부쩍 나빠진 것 같은데, 읽고 싶은 책은 끝이 없다. 하여, 나의 책읽기는 언제나 아쉽고 부진하다.

 


잠시 눈을 돌려 책 더미에서 아담한 책 두 권을 찾아냈다. 한국학의 대가 김열규 교수의 독서론을 담은 독서공부. 저자의 생애는 대한민국 근대사에 모두 걸쳐 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소학교에서 일본어를 국어로 처음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해방이 되어서야 조선어를 국어로 배우게 되었다는 저자. 그에겐 일제 강점기의 잔재인 일본식 이름도 있다. 그가 대학교 신입생이던 1950년 여름에는 이른바 한국전쟁을 경험했다. 서울에서 벗어나는 마지막 기차를 간신히 얻어 타고 부산으로 귀향했다는 이야기는 소설에서나 들어볼 법한 경험담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누구에게나 어려웠던 시기를 견딜 만 하게 해준 것은 무엇보다 독서였다. 해방이 되고 일본인들이 급하게 버리고 간 책들을 구하여 읽고, 또 읽으면서 독서의 기본을 익히기 시작했다. 학교가기 전부터 시작하여 반세기 이상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이 바로 책이었다. 저자의 삶은 바로 독서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에게 독서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이렇게 답변할 것 같다. ‘독서는 앎이고 배움이자, 그 자체로 인간의 성숙 과정에 이르게 하는 삶이었다고.


 

어린 저자에게 최초의 독서는 할머니의 옛 이야기였다. 그의 읽기인생은 바로 듣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실감나게 들려주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던 경험이 온몸으로 책읽기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여러 번이고 들려주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저자가 귀로만 들었던 것이 아니라 살갗이 움찔대고 눈이 빛나며 입이 달아오르면서 가슴이 동동거리는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가 추억하는 최초의 책읽기는 바로 할머니의 이바구듣기였던 셈이다. 저자는 유년 시절의 듣기가 읽기, 나아가 쓰기로 이어질 수 있었던 출발점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기억한다.


 

여기서 온몸으로 책읽기는 단순히 텍스트를 읽을 때 나타나는 몸의 생리적 반응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에게 온몸으로 책읽기변신하기였다. 읽는 자신이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가 되고,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가 되는 일이었다. 다시 말해 그에게 읽기란 나의 재창조였고, 신생(新生)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특히 그가 어린 시절부터 흥미를 보였던 문학읽기는 무엇보다 변신하고 둔갑하기였던 셈이다.


 

책읽기 과정에서 독자에게 요구되는 온 몸으로 책읽기마음의 변신모두는 공통적으로 책읽기에 참여하는 독자의 상상력을 요한다. 상상력은 이제 신경가소성이 가져다주는 신경 네트워크 형성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책읽기 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간으로 되어간다. 말 그대로 독서를 통해 는 거듭 변신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평생 지속한 책읽기는 변신의 독서였다고 정리해볼 수 있다.


 

온 몸으로 책을 읽으며 마음의 둔갑을 수행할 때 필요한 마음가짐이 하나 있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그건 파우스트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이 정신은 단테의 정신혹은 두이노의 비가에 담긴 정신이기도 한데, 이를테면 방랑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이다. 방랑하다보면 길을 잘못 들어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선택하여 탐색하다가도 되돌아 나오는 등의 시행착오를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정해지지 않은 길을 가보는 것. 그리고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파우스트의 정신과 비슷하지 않을까. 여기에서 파우스트에 언급되는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는 말은 떠올리게 된다. 그건 이 말이 바로 방랑과 시행착오, 그리고 순례의 과정을 겪어내는 인간의 정신을 말하고 있는 까닭이다. 나는 이를 불완전한 인간 존재의 근본 조건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성숙의 과정을 끌어안는 책읽기의 정신이라 이해해보았다. 평생에 걸친 저자의 독서 편력기를 읽으며 함께 찾아낸 그의 공부론’, 공부도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게으름 피우는 중년의 책읽기 여정에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요즘 청소년들은 학원에서 각 교과 과목을 매우 세분화해놓은 수업을 듣곤 한다. 국어과목을 예로 들면, 학교에서 나가는 진도에 따라 교과내용을 예습, 복습할 수 있는 수업, 그리고 독서 및 글쓰기또는 독서 논술이란 이름으로 별도의 분야를 제공하는 사교육에 의존하는 모양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학원에서, 나아가 가정에서까지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노골적인 요구도 받는 모양이다. 이 과정은 효율성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진 학습이 아닌가 싶다. 책읽기든 공부든 주도적으로 선택하여 시행착오를 겪어볼 겨를 없이 잘 닦인 포장도로를 따라가도록 요구하고, 이런 시스템에 적응하길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학생에 따라 어느 정도는 이런 시스템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방식에 너무 의존하게 된 나머지, 개인의 주도권을 넘겨주고 이런 시스템에만 익숙해지는 경우다. 이런 방식은 결과가 좋지 않으면 곧바로 좋지 않은 방식으로 폐기되곤 한다. 이른바 시행착오의 과정이 부족하다. 당사자가 현상을 개선하고 극복할 기회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김열규 교수의 독서 편력기를 읽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뿐만 아니라 균형 잡힌 감성과 지성을 갖춘 인간으로 성숙해가는 일임을 깨닫는다. 아이들에게 책 선택의 주도권을 주고, 시행착오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일은 주도적인 독서가뿐만 아니라,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하는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독자들에게 반세기가 넘는 저자의 독서 경험을 풀어낸 독서를 통해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한 단초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유년시절 글자를 처음 만난 후 소년과 청년 시기를 거치며 폭넓은 삶의 기초를 독서로부터 다졌다. 장년과 노년에 이르러서는 형성된 자신만의 독서 기술을 통해 자유자재로 변신하기도 하고, 무언가가 될 수도 있었다. 수잔 손탁이 독서는 제게 여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라고 했던가. 이 말도 결국 같은 맥락의 독서 예찬이 아닐까 싶다. 독서란 어제의 나, 낡은 나를 죽이고새롭게 태어나는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저자의 독서론을 정리해볼 수 있는 대목을 인용하면서 마칠까 한다.


 

읽는다는 것은 아는 것아는 짓도 아니었다. 그건 되는 것이었다. 내가 나 아닌 다른 뭔가가 되는 것. 그렇게 나만의 세상이 만들어지는 걸 실감하곤 했다. 그것은 문학 읽기에서만 얻어낼 수 있는 위대한 경험이 아닐까 한다. 문학 작품은 새로운 인격이나 인성의 탄생을 위한 모태일지도 모른다.”(85)





  

[1] "재미난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그 이야기를 내 정서 속에 몽땅 녹아들게 하는 것이었다. 내 감각으로 남김없이 그 이야기를 집어삼키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 이야기 속의 모든 사건, 등장인물의 모든 움직임이 내 몸속의 뼈마디며 근육줄기 속에서 살아 약동하는 것이었다. 나는 온몸으로 들었다. 귀만이 듣고 있었던 게 아니다. 물론 처음엔 귀가 열리지만 이내 살갗이 따라서 움찔대고 눈이 빛나고 입이 달아오르면서 가슴이 동동거린다. 그 모든 과정이 바로 할머니 ‘이바구’ 듣기였다."(29)

[2] "읽는다는 것은 ‘아는 것’도 ‘아는 짓’도 아니었다. 그건 ‘되는 것’이었다. 내가 나 아닌 다른 뭔가가 되는 것. 그렇게 나만의 세상이 만들어지는 걸 실감하곤 했다. 그것은 문학 읽기에서만 얻어낼 수 있는 위대한 경험이 아닐까 한다. 문학 작품은 새로운 인격이나 인성의 탄생을 위한 모태일지도 모른다."(85)

[3] "그것(읽기)은 단순한 정서적인 또는 지적인 성장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건 새로이 무엇으론가 바뀌는 것이었다. 변신(變身)이었다. 나는 크눌프가 되고 토니오 크뢰거가 되어가고 있었다. 읽기는 나의 재창조였다. 아니 신생(新生)이었다."(86)

[4] "문학 읽기를 통해 나는 홍길동처럼, 손오공처럼 변신하고 둔갑했다. 마음의 둔갑. 문학 읽기란 그런 것이다. 희망, 동경 같은 낱말들이 나를 매혹하기 시작한 것도 그 덕분이다."(99)

[5] "릴케는 짙푸른 아드리아해가 내려다보이는 두이노성에서 창작에 몰두하곤 했는데, 이 시집의 제목은 거기서 유래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괴테 《파우스트》의 주인공이나 단테 《신곡》의 주인공처럼 방랑과 시행착오와 순례를 겪어내는 주인공을 만나게 된다."(153)

[6] "괴테는 일찍이 《에커만과의 대화》에서 ‘사람은 무엇인가를 구하는 동안 잘못에 빠진다’라고 했는데, 그게 바로 ‘파우스트의 정신’ 이고, 더 나아가 어느 정도는 ‘단테의 정신’ 이기도 하다. 그리고 《두이노의 비가》의 정신이기도 하고."(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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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7-19 1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미가 벌써 우나요? 저의 동네는 아직입니다. 조만간 울것 같긴한데 그러면 얼추 올장마도 끝나가는구나 하는데 아직 울지않는 걸 보면ᆢㅠ
저도 몇년 전 이 책 읽었습니다. 참 좋더군요. 공부도 읽으면 좋은데 걍 다음 생에서 읽어야 할 것 같아요. ㅋ ㅋ

초란공 2023-07-19 12:22   좋아요 1 | URL
저희 동네 매미는 지난 주부터 울었던 것 같은데 성질이 좀 급한 녀석들인가 봅니다. ^^;; 짝 찾느라 숫기 충만한.... <공부>는 찾아놓은 김에 설렁설렁 읽어볼까 합니다~
 
쓰기의 말들 -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문장 시리즈
은유 지음 / 유유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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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말들

: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은유 지음 | [유유]

 



자기 삶의 맥락 만들기로서의 읽기와 쓰기

 


이번에 쓰기의 말들을 통해 은유 작가의 글을 처음 읽게 되었다. 그의 글은 어딘지 모르게 나를 불편하게 했다. 글 자체가 내게 불쾌감을 주어서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을 들춰놓고, 내 안의 어딘가를 쿡쿡 찌르는 경험을 주기 때문이었다. 항상 결핍에만 주목하던 내가 그럼에도 많은 것들을 지니고 누려온 사람임을 지속적으로 일깨워주었다.


저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글 쓰는 노동자로서 경력을 시작했다. 삶의 현장에서 글을 쓰며 사유의 근력을 키워온 작가였다. 어쩌면 무의미한 반복에 가까워 보이는 글쓰기 노동자로 일하며 유의미한 사유를 캐냈던 사람이었다. 저자는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은 누구나 글감이 있다는 것”(49)이라고 언급하며 각자 자신이 발 디디고 있는 삶을 끌어와 한 줄씩 써보라고 조언한다.


쓰기의 말들은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구조에 따라 쓰인 글쓰기 책이 아니다. 오히려 삶에서 길어낸 깨달음을 차곡차곡 모아둔 글쓰기 도움말 상자 같다. 혹은 작가의 영업 비밀과도 같은 말들을 모아 펼쳐 놓은 책에 가깝다.


그동안 나의 글쓰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무엇보다 개인적인 감정을 노출하는 것이 부끄러워 항상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대개는 솔직함에 한계가 보이는 글들을 쓰지 않았나 싶다. 자신을 들여다보기보다 대상이나 주제를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만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내 삶과 다소간 분리된 상태를 유지하고자 의도했던 모양이다. 그럼 삶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는 글쓰기란 어떤 것일까. 그것이 삶에서 느끼는 고통과 울분을 과감 없이 다 드러내야 한다는 말이 아님을 막연하게나마 짐작해본다. 대신 저자는 줄곧 자기 삶의 맥락을 만드는 글쓰기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에게 읽기와 쓰기는 삶의 맥락 만들기로서의 공부였다.


따라서 작가가 글쓰기를 할 때면 끊임없이 자아와 세계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이 과정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타인의 생각을 들여다보며 이해하고자하는 시도로 나아간다. 이 때 저자는 자신의 지각과 감성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나 뿐이던 세상에 남이 들어오게 된다’(221)고 일러주었다.


작가의 글이 그의 몸에서 나와 내게 스며든 느낌이다. 쓰기의 말들은 얇지만 읽는 내내 작가가 삶에서 끌어 올려 팔딱팔딱 뛰고 생동감 넘치는 문장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 머리 아프게 고민하기를 피해왔던 문제들을 저자는 독자의 사유를 갱신하는 글로 바꾸어 놓았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나도 어느덧 현명해진 느낌이 들었다. 지식을 많이 습득해서가 아니라 나와 타인을, 그리고 세상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는 쓰는 사람을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해주는 비결인지도 모른다.





[1] "남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기가 발 디딘 삶에 근거해서 한 줄씩 쓰면 된다.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은 누구나 글감이 있다는 것."(49)

[2] "쓰는 고통이 크면 안 쓴다. 안 쓰는 고통이 더 큰 사람은 쓴다." (75)

[3] "둔필승총(鈍筆勝聰): 둔필의 기록이 총명한 기억보다 낫다는 말"(90)
- 정약용이 언급한 표현

[4] "공부는 독서의 양 늘리기가 아니라 자기 삶의 맥락 만들기다. 세상과 부딪치면서 마주한 자기 한계들, 남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얻은 생각들, 세상은 어떤 것이고 사람은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고 수정해가며 다진 의식들. 그러한 자기 삶의 맥락이 있을 때 글쓰기로서의 공부가 는다." (109)

[5]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흔들리는 상태를 인식하는 것. 글이 주는 선물 같다." (167)

[6] "하고 싶은 일이면 문제를 해결할 궁리를 하고, 하고 싶은 일이 아니면 문제를 핑계 삼아 그만둘 명분을 만든다." (181)

[7] "묵독이 아닌 낭독은 어조, 억양, 공명, 논점에 주의를 집중시킨다. 내가 나를 벗 삼는 것, 글이 느는 지름길이다."(187)

[8] "굳어버린 지각과 감성이 아니라 흔들리는 감정과 울분이 사유를 갱신하는 글을 낳는다."(211)

[9] "글쓰기는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타인의 처지를 고려하는 작업이다. 나뿐이던 세상에 남이 들어오는 일이다."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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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공 2021-11-05 0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쓰기의 말들. 단단하고 치열한 책이죠?^^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란 ˝쓰는 사람을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해주는 비결˝이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저는 지금 은유 작가의 < 글쓰기의 최전선> 읽고 있는데요. 글쓰는 이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쓰기의 말들.가슴에 새기고픈 글귀가 많아 좋아요^^

초란공 2021-11-05 01:03   좋아요 0 | URL
처음에 큰 기대 없이 읽었는데 아주 좋았습니다. <글쓰기의 최전선>은 더 좋지 않을까 기대가 되네요!! 저도 줄치고 싶은 곳이 많아서 다시 보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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