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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는 법 - 화가와 미학자의 맛있는 그림이야기
야자키 요시모리.나카무라 겐이치 지음, 이수민 옮김 / 아트북스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절판된 책이다.
특별히 좋은 책들이 자주 그렇듯.
몇백, 몇천 번의 시행착오를 겪는 가운데 일생일대의 진짜 선 하나를 발견하기 위해서죠.
그림을 보며 뭔가 어색하다고 느낄 때, 형태의 세계를 선으로 보는 버릇을 들이면-그 선의 진위를 알 수 있다면-데생의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39p)
문장은...
이 문장의 서술어를 찾기가 힘들다.
훌륭하다, 위대하다...같은 상투어를 갖다대기가 싫다.
문장은...
이 문장의 서술어는 이 문장을 읽은 모두가 제각각 채워주기를.
그게 또, 문장이 부리는 마술 아니겠는가.
문장은 이것을 말하는데 읽는 사람은 저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
미술을 말하는데, 소설을 생각했다.
소설을 쓰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공모전에서 떨어져 보기도 했다.
내 소설은 뭐가 부족해서 떨어질까, 생각했다.
힘들게 탈고하고, 내 마음에 안 들기도 한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마음에 안 든다.
이것도 소설이라고 썼냐???
스스로 호통치거나 머리를 쥐뜯는다.
그리고 다짐한다.
앞으로는 감히, 소설을 쓰지는 말자.
그래놓고 또 쓴다.
다른 글을 쓰다가도 퍼뜩 한 장면이나 이미지가 떠오르면
소설의 첫문장이나 결말을 쓰고부터 본다.
이 책에 의하면, 혹시 '일생일대의 진짜 선 하나를 발견하기 위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정수리가 따끔했다.
정수리를 따끔하게 하는 문장들이 있다.
그런 문장은 외우려고 애쓴다. 물론, 잘 안 된다.
그래서 여기에 써서 남기려 한다.
많이들 읽고 정수리가 따끔거렸으면 좋겠다.
그림을 보며 뭔가 어색하다고 느낄 때, 형태의 세계를 선으로 보는 버릇을 들이면-
그림을 세상으로 치환해 보자.
인간관계로 치환해 보자.
관계에 뭔가 어색하다고 느낄 때, 관계란 형태의 세계를 '선'으로 보자.
흠...선...이라...
여기서 '선'을 해석하고 치환하는데 필요한 게 내공이다.
인생의 내공, 사유의 내공, 경험의 내공, 지식의 내공 등등.
내 수준이 딱 나올 것 같아 섣불리 말하기가 힘들다..끙.
그런데 뭔가 감이 잡히는 것도 같다.
삶을, 인생을, 고통을, 통증을, 고독을, 문제를, 관계를 대함에 뭔가 어색하다고 느낄 때,
'선'으로 보자...선으로 보자...선으로 보자...
어디쯤에서 선이 비뚤어졌나.
이 선은 왜 여러 가닥인가.
나와 너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진짜 선 하나는 어떤 가닥인가.
이 선을 비뚤게 할 내 얄팍한 감정들을 관찰한다.
내가 기억할 것은 이것이다.
일생일대의 진짜 선 하나.
그럼, 데생의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금방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그 다음 문장도 정수리가 후끈거린다.
중요한 것은 윤곽이 아니라 골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의 여부예요. (40p)
크하.
미술서가 아니라, 아니, 미술서면서 자기계발서. 아주 훌륭한.
숨은 장르 찾기.
아, 밑줄긋기 채워넣다가 29쪽에서 발견한 이 문장!
정수리의 찌릿함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게 하는.
선을 하나 긋는 것은 아이도 어른도 아마추어도 모두 할 수 있는 일이죠.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선을 파악하는 일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진 않아요. 우리는 수학 전문가는 아니지만 두 개의 점을 연결하는 직선이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은 알죠.
아무리 선이 많아도, 모든 선이 다 좋은 건 아니에요. 좋은 선을 하나밖에 없죠. 어떤 방향에서든 하나의 선이 잡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는 아니에요.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 선은 달라집니다. 또 한 번 움직이면 다시 무수한 선이 생기죠. 그런 가운데 유일한 좋은 선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데생입니다. 그 선은 대단한 결정력을 갖고 있어서, 결코 흐릿하게 그릴 수 없죠. 화가는 이것을 '진짜' 선이라고 합니다.
화가의 가장 큰 고민은 무수히 교차하는 선 중 이 진짜 선을 결정하는 것인데,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죠. 단 하나밖에 없으니까요.
(29p)
읽으면서 후설의 '현상학'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후설을 다시 찾아 읽어야 할 듯.
이분이 뭔가 '선'과 이어질 만한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본질'과 연관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그런 책이 좋은 책이다.
꼬리를 아낌없이 내주는 책.
더 읽어나가면서 소설 쓰기도 그렇고, 인생의 제반 문제에 관해 치환 가능한 '정수리 후끈한' 문장들을 밑줄긋기에 계속 업데이트할 생각이다.
훌륭한 그림은 조합된 요소의 어느 한 부분도 수정할 수 없을 정도로 구도가 긴밀하죠. 한치의 오차로도 그림은 흐트러지고 맙니다. - P14
라파엘로의 위대함은 단지 귀여운 성모 마리아를 그렸다는 데 있지 않아요. 면과 형태의 문제를 해결한 뛰어난 능력 때문이죠. - P15
데생은 단순히 윤곽을 만드는 것 이상의 작업으로 입체, 운동, 감정까지도 담고 있죠. - P16
그림을 감상할 때는 역사를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역사적 존재이기 때문에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그림을 평가하면 이해의 깊이를 더할 수도 있어요. - P17
종교의 제약을 받아 그린 것이라도, 제한된 범위 내에서 조화를 이룬 화가의 재능을 엿볼 수 있어요. - P18
그러나 그림 그 자체로 말하면 제약 같은 것은 없습니다. - P19
여하튼 감명이라고 해야 할지, 인상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좋은 그림과 나쁜 그림을 나누는 구분 선이 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들라크루아나 루벤스도 그림을 그리려면 종이에 형태와 색을 사용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표현의 문제가 중요한 겁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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