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서재에 요즘 리뷰를 자주 쓰는 편이지만,

거의 쓰지 못했다.


어차피 읽는 책이니 독서로그 쓰자는 기분으로, 날 위해 쓴다.

좋아요를 눌러주는 이름은 기억하려 애쓰고

댓글 남겨주는 분은 기억하려 애를 쓰지 않아도 기억된다.


그러고 보면, 기억하려 애쓰는 자체보다

저절로 기억하는 게 더 큰 마음인 것 같기도 하고.


알라딘을 이용한지 십수년이 지났는데

오늘에서야 알라딘 서재 '친구 사이' 되는 법을 알았다.


서재관리에서 팔로잉/팔로워를 누르면

내가 친구신청한 사람이 나오고


팔로워를 누르면 내게 친구신청한 사람이 나온다.


내가 친구신청한 사람은 까먹었다 치더라도(그걸 다 외우고 있을 순),


내게 친구신청한 사람들한테 응답을 못했다~~~~~~~~.


내게 친구신청한 지 벌써 몇 년 된 경우도 있었다.


몇 년 묵은 답을 뭐라고 생각할지.


무심하거나 거부한 게 아니라(그럴 이유가 없지요!)


제가 기계치라 그래요~~~~~~~~~.


나는 도통 기계가 싫으다.


'친구 신청' 수락하고 나도 거기 그 서재에 가서 뭘 해야 친구 사이가

제대로 되는 건지, 또 그 고민 하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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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스트리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2
V.S. 나이폴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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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소설의 문장마다 기억하긴 힘들다.

온갖 미디어에 중뿔나게 소개되는 명문장조차 단 한 줄도 외우기 힘들다.


우리가 기억하는 건, 그냥, 소설의 줄거리다.


그래도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니, 

어디 가서 소설의 몇 문장-명문장 아니고, 몇 문장-은 외워서 읊는 척도 하고 해야 할 것 같아

외우려고 해 봤다. 머리가 시멘트처럼 굳었나보다. 안 된다.


그래서 외우기를 포기하고 매달린 게 밑줄이다.

밑줄을 긋기 위해 온갖 펜을 동원했다. 


(요즘 내 독서의 밑줄긋기를 맡아주기 위해 엄선된 애들)


펜을 동원하다 보니 펜에 관해 쫌 알게 되었다.

펜이 많이 생기기도 했다-팬 말고, 펜-.


내 책상을 볼 기회가 있는 사람들은 문구점이냐, 필기구 공장 차렸냐,

하는 말들을 잊지 않고 한다. 난 칭찬으로 듣는다.


뭔 이야길 하다가 펜으로 흘렀나...


아, 밑줄긋기.


문장을 외우지 못해 밑줄을 긋다가 위기에 봉착했다.

어느 책의 어디에 밑줄을 그어놨는지 당췌 알 길이...


책을 일일이 열어봐야만 그어놓은 밑줄을 찾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또 짱구를 굴렸고, 그래서 찾은 방법이 '머리띠' 끼우기다.


책갈피 위에 '머리띠'를 끼우듯  head tab을 하나 붙이는 거다.


끄트머리에 메모를 적어서. 

이렇게.



이게 얼마나 유효한지 모른다.


뭘 찾아야 하는데 어떤 책에서 봤더라???


그러면 책꽂이로 달려가 이 '머리띠'를 훑으면 된다아!!


<미겔 스트리트>에서 그렇게 머리띠를 끼워놓은 문장이다.


내가 미겔 스트리트로 돌아와서 처음 만난 사람은 해트였다.

그는 팔에 신문 한 부를 끼로 평발 걸음으로 어슬렁어슬렁 카페에서 돌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손짓을 하며 그에게 소리쳤다.


그는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나는 네가 이맘때쯤 하늘 위에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실망했다. 해트가 이렇게 냉랭하게 맞아주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영영 이곳을 떠나기 위해 가버렸는데도 모든 것은 이전과 같았고

나의 부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실망했던 것이다.


289p)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나'가 어디 다른 나라로 떠났다가 돌아온 게 아니다.
어디 다른 나라(런던)로 가려고 공항으로 갔는데 비행기가 6시간 연착돼서
다시 미겔 스트리트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말하자면, 엄청 민망한...

나도 이런 적 있다.

나도 '나'와 꽤 비슷한 상황이었던 때.
다른 나라로 갈 때.

가족, 친구, 친척 다 모여 울고불고 콧물 짜고 했더랬다.
나는 그들 곁에 내가 있던 자리가 받을 타격을 상상하며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았더랬다. 

다들 예상했겠지만, 여권을 빼놓고 택시를 탔고,
나는 곧 죽을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며 택시를 돌렸다.

이미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고 그랬는데,
내가 다시 돌아가자 내 자리는 이미 거기 없었다.

내가 사라지기 직전까지는 내 사라짐에 대해 하늘 무너지던 사람들이
나의 귀환에 "너, 왜 또 왔어?" 였다.

두번째 이별은 밖에 나와 보지도 않드라...

예전에 지방으로 전보나서 떠나는 직장 동료와 뜨거운 작별 회식자리에서
그 동료가 먼저 뜰 때도 그랬다. 손수건 없이는 볼 수 없는 눈물의 허그와 울먹임.

그러고 먼저 나간 그 동료가 10분 쯤 우산을 두고 왔다며 다시 돌아왔을 때
우린 어깨동무를 하고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부르느라 
그 동료가 왔다 간 줄도 몰랐다.

나중에 우산이 있다가 없어진 걸 알고 알았다. 

나는 실망했다. 해트가 이렇게 냉랭하게 맞아주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영영 이곳을 떠나기 위해 가버렸는데도 모든 것은 이전과 같았고

나의 부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실망했던 것이다.


289p)


내가 이 문장을 외우고 밑줄 긋고 머리띠를 하고 난리치는 건

이 문장 속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때 얼마나 실망했던지.

나는 영영 그곳을 떠나기 위해 가버렸는데 모든 건 이전과 같았다.

나의 부재를 가리키는 건, 끔찍하리만치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나를, 50여년 전에 쓰여진 문장 속에서 만난다.

내가 언어화하지 못한 나, 내 마음, 내 처지, 나의 무엇-.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에 태어난 소설가에게 기댄다.

나의 언어를 좀 찾아달라고.


그게, 소설가라는 사람들이 가진 위력적인 힘이다.


내게 기댈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의 언어를 좀 찾아줘어어-.


내가 오늘 단 한줄의 소설도 쓰지 못한 이유.

내 언어부터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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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에 관한 생각
김재훈 지음 / 책밥상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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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에 관한 책은 다 산다. 

애정에 더해 무슨 회한 같은 게 작용하는 것도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서재 책꽂이에 '피아노' 칸을 따로 마련할 것 까진.


체르니 30번 치다 말았어요. 


내 피아노 실력을 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한 마디다.

 어지간한 가요나 팝송을 친다. 요즘은 일본 만화 주제가를 친다. 악보 없이는 한 줄도 못 친다. 죽은 지 백년 넘은 작곡가들의 곡을 하나도 못 친다. 한 두 줄 흉내는 낸다. 넘을 수 없는 벽을 금세 만난다. 그 벽 앞에서 늘 중얼거리게 된다. 

에잇, 저만 아는 천재들...


부제가 '버려진 피아노를 만지며'이다.


내게, 딱 이런 순간이 있었다.

내게서 버려지려는 피아노를, 만지던 순간이.


내 손가락이 한 번도 닿지 않았던 양끝 건반을 제일 먼저 눌렀다.

그쪽은 죽은 지 백 년 넘은 작곡가들이나 감당할 '신'의 구역이다.

건반 청소할 때나 닦개로 눌러봤을까...


음 같지도 않은 음이 났다.

굳이 따지자면,


제일 낮은 라

제일 높은 도


제일 높은 도에는 있어야 할 검은 건반이 없다.

반쪽짜리를 넣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뚜껑을 닫고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손으로 쓸어보았다.

손가락에 먼지가 묻어났다. 

옷방에 있던 수건으로 피아노 몸체를 닦았다.


누구 집에 가더라도, 날 잊지는 마.


이런 오그라드는 생각은 안 했다.


이 피아노로 처음 엘리제를 위하여,를 치고 

혼자 박수치고 뿌듯해하던 장면 같은 것도 떠올리진 않았다. 


나는 그때, 내 피아노가 처음으로 그냥 피아노로 보였다.

40만원짜리 중고 피아노.

건반 달린 물건.


그때 눈물이 났다.

거기 스민 기억이나 추억 같은 것과 연관 지을 때보다

그냥 물건으로 보인 피아노가 더 눈물 났다.


피아노의 소명은 누가 치면 소리를 내는 것.

'신의 구역'은 한 번도 쳐주지 못한 주인을 만나 가운데 쪽 건반만 반질거리게 

닳았지만, 내 피아노는 내게 온 제 소명을 다한 물건으로 남았다.


이제 물건의 숙명답게 어딘가로 팔려나가 또 누군가에게 건반을 내어줄 것이다.


그때는 백년 전에 죽은 작곡가들이 칠 수 있다고 장담한 신의구역,

그쪽 건반도 건드릴 수 있는 주인을 만나길.


사용자에 따라 쓰임이 달라지는 물건으로서의 효용도 누리길.

그래서 언젠가 너 또한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여한없이 최후를 맞길.


아주 유용한 물건으로 잘 쓰였다, 하길.


*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겠지만, 만의 하나, 궁금할까봐,

  피아노 판 돈 40만원은 시어머니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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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10-18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체르니 30번 치다 말았어요.
지금은 악보도 못보는 닝겡이 되고
말았지만요.

어려서는 헤비메탈만 음악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죠.
그러다가 클래식의 바다에 빠지게
되고는 고전 레코딩에 심취하여
서울의 시디샵을 돌던 시절도 있었
죠.

치지 못하니 듣는 것으로 만족...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는 디누
리파티, 샹송 후랑수와 그리고 코르
토 정도가 되겠습니다.

아, 빌헬름 켐프가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도 무척 좋아합니다.

젤소민아 2024-10-18 21:43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남과 헤비메탈~. 어쩐지 어울립니다!
클래식과 헤비메탈을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알프레드 코르토!! 이분의 바하 아리아는 첫소절에 눈물 뻑...
오랜만에 또 들으러가야겠어요.

오늘 주신 피아니스트들 연주를 다 찾아서 들어보는 ‘아름다운‘ 하루로 삼고파요~
감사합니다!

stella.K 2024-10-18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민아님 결혼하셨어요? 전 몰랐네요.ㅎ
피아노하면 저죠. 피아노 배우기 싫어서 죽을 것 같았는데 그나마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배우기 위해 꾸역꾸역 치다가 그만뒀는데 얼마나 좋던지. ㅎ 근데 저는 악보 보는 게 싫어서 왠만한건 귀로 듣고 맞거나 말거나 그냥 흉내는 내게되던데. 물론 지금은 그런 신경 다 죽었지만요. ㅠㅋ

젤소민아 2024-10-18 21:34   좋아요 0 | URL
그간 보아 오신 제 리뷰가 ‘결혼 전‘으로 보이셨단 거죠? 왜 기분 좋죠? ㅎㅎ
‘젊어보인다‘는 말 같기도 해서요. 젊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인가봐요~

그러고보니 저도 백년 전에 죽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치는 게 있네요??
엘리제를 위하여!! ㅋㅋ

언젠가 다른 에세이에서 제가 ‘엘리제를 위하여‘를 이렇게 표현한 기억이 있어요.

어디를 가더라도 돌아올 곳이 있는 나그네의 본향같은 곡...이라고요.
어떤 곡을 치더라도 ‘엘리제를 위하여‘는 ‘나그네의 본향‘처럼 감동적이고 안정감이 있는 것 같아요~.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텔라님. 요즘 스텔라님 읽으시는 책 보러 가야겠어요~


stella.K 2024-10-18 21:51   좋아요 1 | URL
오, 그런 표현을 쓰시다니!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하고.
그렇게 생각하면 월광소나타도 멋지지 않나요?
암튼 베토벤 아저씨는 위대한 것 같아요.^^

근데 정말이어요. 결혼 안한 줄.
거기엔 서재 프사도 한몫했겠죠? ㅋㅋ
 
쿠조
루이스 티그 감독, 크리스토퍼 스톤 외 출연 / 야누스필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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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동생만 겨냥했다. 

동생보다 서너 배는 몸집이 큰 도사견은 입에 거품을 뿜고 있었다.

눈에는 핏발이 섰으나 몽롱했다.

자신이 하려는 짓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일곱 살 내 동생은 목숨 걸고 뛰었다.

나도 그 옆에서 뛰었다.

내가 차마 먹지 못한 마음은, 그 개가 나를 겨냥했으면 하는 것이었다. 

아니, 그런 마음을 먹기는 했다.

개가 동생 외 다른 이에겐 일말의 관심도 없음을 간파하고서.

그 마음이 쓸쓸해서였을까.

나는 달리면서 울었다.

동생은 울지도 못했다.

울 여력에 달려야 했으니까.


동생의 보드라운 허벅지에 개의 이빨이 가 박혔다.

동생은 무력하게 넘어지며 비명을 올렸다.

그건 '엄마'여야 했다.


반드시 엄마,여야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누나, 였다.


동생은 나를 향해 흰 팔을 뻗었다.

나는 개와 눈이 정면에서 마주쳤다.

동생의 허벅지에서 배어나온 피냄새에 희열을 느낀 개는

급기야 눈빛에 초점이 모아졌다.


그 초점이 내게 와 박혔다.


도망쳐라

내게서 도망쳐라


나는 홀린 듯 뒷걸음질 치다 다시 전력질주했다.

집 문을 부술 듯 박차고 들어가 단말마의 비명을 쏟아내고 쓰러졌다.


"아부지, 대성이 죽는다아!! 개새끼한테 물려 죽는다아!!"


나는 그 길로 까무러쳤고 정신이 들어보니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중죄를 지은 범죄자 심정으로 내 무릎을 세워 거기 얼굴을 처박고 하염없이 울었다.


동생은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한달동안 물린 다리를 펴지 못했다.

뼈가 드러났다는 허벅지에는 두툼한 붕대가 매어져 있었다.

나는 자다말고 일어나 자는 동생 옆에 무릎을 꿇고 울었다.

그제야 드는 마음에 가슴을 치면서.


내가 물렸다면 좋았을 걸.


스티븐 킹의 '쿠조'에는 미친개가 나온다.

미친개가 제대로 사람을 물고 다닌다.

스티븐 킹의 디테일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책으로 번역된 건 없어서 DVD를 가져왔다)


하지만 스티븐 킹도, 감독도 채 담지 못했다.


미친개의 눈빛은 저렇지 못하거든.

미친개의 눈을 명치 언저리쯤에 박고 사는 사람만이 알아보는 게 있거든.


저건 멀쩡한 개가 그런 척하는 미친개거든.


소설 쓰는 내가 소설에 담아야겠다.

이 죄책감의 한 가닥 가지 끝이라도 자르려면

나는 그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것이다.


그래, 내 다음 소설은 '(미친) 개'다.


제대로 마주하자, 미친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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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뉴 샌드위치
시바타쇼텐 엮음, 조수연 옮김 / 시그마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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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 도시락을 싸 갖고 다닌다.

액젓과 마늘이 많이 들어가는 한국음식은 냄새 때문에 노노.

그렇다면, 단연 샌드위치다.


빵만 있으면 된다.

식빵?


보드라운 한국 식빵.

미국에서는 사치다.


미국식빵은 퍽퍽하다. 보드라움은 일도 없다.

(보드라움을 억지로 입힌 브리오슈 같은 건 물론 있다)


미국식빵엔 어떤 내용물을 넣어도 맛이 없다.

한국에서 먹던 그맛이 안난다.


한국식빵을 파는 한국 베이커리가 있다.

멀다.

잘 못간다.


퍽퍽한 미국 식빵에 이런 멋진 샌드위치 레시피북은 가당치도 않다.


그래도 샌드위치 레시피북은 꼭 산다. 

그대로 해먹지는 않는다. 


나의 샌드위치는 언제나 BLT. 

혹은 냉장고에 굴러다니는데 빵에 끼울 수 있는 거 아무거나. 

그런데도 이런 책은 산다. 

언젠가는 이렇게 해 먹지 않을까, 하는 희망? 기대? 

부질없단 걸 알면서도. 내게는 참 부질없는 꿈 같은, 샌드위치.


결혼기념일 아침인데...


샌드위치가 먹고 싶은 건 뭐지.

아하, 남편도 만들 수 있으니까!


또또 이런다...


부질없는 희망, 기대.

샌드위치는 이렇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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