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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송이 말하는 브레송 - 1943~1983 인터뷰집
윤진 옮김, 로베르 브레송 인터뷰이 / 고트(goat) / 2025년 6월
평점 :
Hide the ideas, but so that people find them. The most important will be the most hidden.
아이디어는 숨겨두되,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하세요.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는 가장 숨겨져 있을 것입니다.
브레송이 한 말이다.
이건 단지 그가 천착한 영화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소설에도 더할 수 없이 적절하게 적용된다.
소설을 쓰다 보면 인물의 감정과 처한 상황을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강박에 눌린다.
그래서 어떻게든 자세히, 상세히 묘사하고 풀어내려 든다.
친절해도 너무 친절해진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좋은 소설이나 영화는 그런 방식으로 독자와 관객을
감응시킬 수 없다. 독자와 관객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닌 것이다.
어쩌면 작가와 감독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고, 더 많은 걸 느끼고, 더 많이 경험한
사람이 그들이다.
소설은 문장으로 다 보여주면 안 된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무언가가 ‘피어나고 자라나게’ 해야 한다.
감정을 강요하면 큰일난다. 망한다.
소설이든 영화든,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정말 골백번도 더 들었다.
실제로 쓸 때, 그게 정말 너무 너무 어려워서 그렇지.
작가는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 말한 것보다 말하지 않은 것이 더 많아야 한다.
결핍을 감추고, 연결을 감추고, 장면을 감춰야 한다.
그래서 생긴 여백과 사이에 무언가가 들어찬다.
긴장
의미
감응
독자는 소설을 침묵 속에서 만나는 것이다, 오히려.
신춘문예나 문학 공모전에서 그 많은 소설을 심사위원이 어떻게 다 읽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들어서도 알고, 겪어서도 안다.
다 읽지 못한다.
그들도 사람이니까.
예심에서 걸러지고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이야 꼼꼼히 보겠지만.
그들은 보이는 텍스트보다 보이지 않는 텍스트를 더 많이 읽어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매직아이'처럼 텍스트의 밑면을 응시하며 거기서 부양해 올라와야 할 텍스트를 자동으로, 본능적으로 알아본다.
그래서 그것들이 적절히 표면으로 떠올랐는지, 그 적절한 타이밍과 분량과 정도를 포착한다.(나는 심사위원이 아니니 들은 소리다)
즉, 브레송하고도 논조가 통하는 것 같은데,
'예술'에서 좋은 작품은
말해지지 않은 것을 잘 말하지 않는데 성공한 경우인지도 모르겠다.
소설 한 권을 읽었는데 책 무게 외에 손에 묵직하게 뭔가 남는 게 느껴지는
책이 있다. 농담 아니고 있다. 뭐, 가슴이 그득해진다...는 오글거리는 멘트는 하기 멋쩍다.
진짜로 손이 무거워지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최근에는 존 밴빌의 <오래된 빛>이 그랬다.
이건 디지털로 책을 읽었을 때는 느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브레송의 철학은 소설가에게 ‘신뢰하라’는 말로 바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독자를 믿고, 그래서 텍스트의 여백을 믿는 것-.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배치하고 충돌시키고 반복하고 변주하면서 만들어지는 '침묵' 속에서
생성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를 덧붙이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남겨두는가, 무엇을 보여주지 않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이다.
그 부재의 미학 속에서 진실은 더 또렷해진다-.
소설가들의 산문집, 작법서, 또 스승님한테서도 골백번 들은 이야기를 다시 상기하게 됐다.
사운드트랙이 분위기를 창조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침묵을 발명했다”고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영화는 관객이 눈을 감을 때 보이는 것을 닮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의 내면에서 그의 영화는 비로소 완결되며, 그의 영화와 말은 우리 관객 자신에게도 참으로 자유로운 여정이 되고 맙니다.
A sigh, a silence, a word, a sentence, a din, a hand, the whole of your model, his face, in repose, in movement, in profile, full face, an immense view, a restricted space…Each thing exactly in its place: your only resources.
한숨, 침묵, 단어, 문장, 소음, 손, 모델의 전체 얼굴, 정지한 얼굴, 움직이는 얼굴, 옆모습, 얼굴 전체, 광활한 풍경, 제한된 공간...
각 사물은 정확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유일한 자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