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
박형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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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 선 상상력이라니. 날 서도 예리하지 않다. 날렵하다. 박형서의 문장이기에 헛웃음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아무나 따라하지 말자. 덜 벼려진 날에 다쳐 피보는 사람은, 죄없는 독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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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전설
데이비드 밴 지음, 조영학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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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서사와 묘사와 장면이 담당할 몫이 바로 이런 것이다,하고 보여주는 소설. ‘유니트‘ 번역을 설파하는 조영학 번역가가 최대한 영어의 이미지 흐름과 보조를 맞춘 번역도 좋다. 특히, 소설류에서 원서와 번역서의 간극이 넓어 딴소리하는 작품들이 많다. 적어도, 이 책은 대단히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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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거나 오해하거나 - 소심한 글쟁이의 세상탐구생활
김소민 지음 / 서울셀렉션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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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간 밀도가 몹시 단단하다.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면 대놓고 가르치는 작법서를 보는 것도 좋지만 잘 쓴 글을 보는 것도 좋다. 단어와 단어가, 문장과 문장이 돕는 것같은 글이 있다. 따로 놓고 보면 덤덤한데, 그것들이 얼크러져 뿜어내는 게 있다. 이 책은, 짙게 남는 유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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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배웅 - 국내 첫 여성 장례지도사가 전해주는 삶의 마지막 풍경, 개정증보판
심은이 지음 / 푸른향기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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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더 충분히 듣고 싶은 죽음 이야기들이었다.

퉁명스러운 듯 뭉툭하게 끊어지는 감정들이 짧은 이야기들 속에서 야속해질 때가 있었다.

그러다 느꼈다.

일면식도 없이 살다가 주검으로 마주한 타인의 죽음을 놓고

길게 말한다는 자체가 폐라고...


어째서 이야기들이 짧게 끊어지는지 알 것 같았다.


글을 잘 쓴다고도 할 수 없는 글이었다.


무엇보다, 감정의 고조없이 담담하게...

많이 밋밋해 보일 정도로.


슬픔을 굳이 다른 것으로 표현하려 애쓰는 사람들에 비하면 

이내 '아마추어' 문장가로 여겨질 정도로

슬프면 슬프다, 안타까우면 안타까웠다, 정도가 고작인.


자꾸 읽다 보니 슬프면 몸을 뒤틀며 울었다, 보다

그냥 슬프다고 하는 게 더 슬퍼졌다.


저자가 대하고 있는 것은 '죽음'이니까.


거듭 말하지만, 타인의 죽음 앞에서 제 아무리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해봐야

교활할 뿐이다. 


말없는 죽음. 입닫은 인생. 


하지만 그렇다고 순전히 허무만 하랴.


그들이 짧고 긴 생애동안 밟은 땅의 면적만큼이라도 

그들이 보고, 그들을 본 사람들은 있었다. 

사람이 없었다면, 새가 있고, 꽃이 있고, 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장례지도사로서 '아름다운 배웅'을 담당한 저자에게 머리숙여 대신,

감사를 전하고픈 심정이다. 나도 언젠가는 말없는 죽음을 맞을 것이므로.


이 책을 읽고 참을 수 없는 게 있어,

내 독서노트에 끼적거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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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지체인이 자살을 선택했다

저자가 말한다. 타인에게 폐가 된다는 이유로 

목숨을 스스로 저버릴 수 있는 사람이 정신지체일까.


나는 생각한다.

혹시, 그가 정상이고, 우린 정신과잉이 아닐까, 하고.

남에게 고의로 폐를 주고도 말짱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우리는 어쩌면

정신과잉이 아닐까 하고.


남에게 폐가 될까 스스로 목숨을 버린 지적장애인의 죽음 앞에서 

나는 할 말이 없다.

할 말이 없다.

저자는 '아름다운 배웅'이라도 해 드리는데,

나는 배웅조차 못하겠다.


남에게 폐가 될까 스스로 목숨을 버리게 한 

그 '남'에게 나는 속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기 바쁘다.

죄송하지만...배웅은 그 다음에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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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의 픽션
박형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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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나'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가장 가까운 근사치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어떤 소설을 읽다가 중단할 때, 끝까지 읽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아쉽지가 않을때, 못내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 싫을때...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다시 맨 앞 장을 뒤적일 때...


독자로서 '나'의 그 모든 행동은 '나'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는 작은 몸짓들이 아니었을까.


'나'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도 모르기에, 우리는 소설 사이를, '여행'을 가장한 채 '표류'하는 게 아닐까.


박형서의 '자정의 픽션'은 '나'가 모르고 있었지만, 정작은 '나'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은 기분이 들게 하는 소설집이었다. 


그 중에서도 '노란 육교'.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해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괴롭히기 위해 머물렀다. 남들이 던져주는 그 계절의 음식을 먹으며,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모든 망자와 눈을 마주쳐가며, 그들 사이에서 오래 전에 죽어버린 자기 사람을 찾으며 날카롭고 뾰족한 것으로 제 약한 살을 짓눌렀다. 그러다 통증이 둔해질 만큼 고단하여 잠깐 눈을 감을라치면, 얇은 눈꺼풀 안쪽에서는 망자와 함께 길에 관해 나누었던 대화가 서럽게 되살아나 소용돌이쳤다. 결국 지키지 못했던 약속의 언어가 능금 과즙처럼 입술 사이로 쏟아져 나오고, 노란 육교를 흥건히 적시며 계단을 타고 내려와 조금씩, 조금씩 망자들의 길로 흘러갔다. 그럴 때면 자책과 피로로 온통 혼미해져, 저기 저 흰 흙길이야말로 영원히 다다를 수 없을 만큼 멀리 있기 때문이라고 슬프게 변명하곤 했다


이 문장을 읽는데 다양한 감각이 올라온다.

아프고, 따갑고, 서늘하고, 아쉽고, 슬프고...


분명한 이유를 들어 풀어내긴 힘들다. 

그러나 어떤 배경이나 정황의 개입없이 

순전한 텍스트만으로 전해지는 감정이 있었다. 


서로가 더할 수 없이 알맞게 포용하고 길항하는 단어들...


적절한 빈도의 생동감, 적절한 채도의 색채감으로 단장하고.


'나'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쩌면 '존재'와 관련되는 지도 모르겠다.


망자

자전거

대화

약한 살

약속

언어

육교

계단

흙길


'존재'를 표현함에 이보다 더 적절히 선택된 단어들이 또 있을까?


저자의 의도가 표의가 무엇이었든, 

'나'는 자책과 피로로 망각하고 있던 어떤 '존재'를,

노란 육교 위에서 저 흰 흙길 쪽을 바라보며 

슬프게 변명하는 '나'를 발견하고 

서글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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