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소멸 - 우리는 오늘 어떤 세계에 살고 있나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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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럴 줄 알았다. ‘사물‘에 삶이 있을 줄 진즉 알아봤다. ‘정보‘를 지향했다. 정보가 많으면 유복할 줄 알았다. 정보의 즉각성과 휘발성은, 못본 체했다. 정보에 의해 사물이 소멸되는 중이다. 사물이 품은 실재와 시간이 아울러 소멸되는 중이다. 잊지 말자. 정보보다, 사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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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만우절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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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목을 매 죽은 이후로 내겐 두려울 게 없었다.

그때 나는 열아홉 살이었고,

말린 단풍잎을 책갈피로 쓰던 여고생이었고,

오 남매 중 막내였지만,

침착하게 부엌칼을 가지고 와서 아버지의 목을 죄고 있는 끈을 잘랐다.

시체가 된 아버지의 머리가 마룻바닥에 부딪치는 순간

이제 가족은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겁나는 일이 없었다.

그보다 더한 일은 없을 테니까.


버스 정류장 근처 꽃집에서 나를 위해 꽃다발을 샀다. 


축의금이나 조의금도 섭섭지 않게 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오빠들은 집을 떠났고,

나는 어머니와 둘이 남았다. (10p, 여름방학 중에서)


아버지가 목을 냈고 그 끈을 잘랐는데

퇴직을 했고

그 때문에 꽃집에서 나를 위해 꽃다발을 사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오빠들은 집을 떠났다...


완전히 상관없는 사건들의 혼재가 덩어리로 이어진다.


의식의 흐름.

과거의 경험에 뿌리를 둔 의식이 자발적으로 튀어 오르는.


그 돌연함에 신기하게도 어긋남이 없다.


잘 섞인다.


윤성희, 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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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하는 마음 - 김혜리 영화 산문집
김혜리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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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작가의 책은 챙겨 본다. 글 잘 쓴다...그런 건 잘 모르겠다. 책을 낼 정도면 글을 잘 쓰겠지. 좀 당연한 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다만, 나는 영화이야기를 듣고 싶을 때 그의 책을 읽는다. 그는 영화를 많이, 누구보다 많이 보는 사람 같아서. 그것만으로도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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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개의 모노로그 오늘의시민서당 50
최형인 지음 / 청하 / 199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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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을 위한 연기 대본 연습집이다.


제목 위에 이렇게 붙어 있다.


'배우, 자유로운 인간을 위한'


난 배우는 아니다.

엄마가 배우다. 

단역배우.


그래서 엄마 드리려고 샀는데,

나도 해당된다.


난 '자유로운 인간'이 되고픈 인간이니까.


그래도 대본 연습집이니까,

외워서 연기를 해 볼 참이다.


어느 책이더라...


가수 백지영이 이 책의 문장들을 외워서

온 마음으로 연기 연습을 해보고 

지금의 그녀만의 감정과 감정을 품을 수 있었다는.

(최근에 읽었는데 어떤 책인지 기억이 안남 ㅠㅠ)


배우들은 진짜 대단.


한 줄 외우기도 이리 힘든가 그래.


포기하고, 그냥 보면서 읊어봤다.

온 마음으로 감정을 실어.

내 딴에는.


이 문장이다.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난 배우도 아닌데,

단역배우의 딸인데,


뭐지...


눈물이 나려 했다.


자기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는 사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이 자신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존재,

체온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세번째 읽을 때 여기서 코끝에 쫘악, 핏기가 모이는 것 같더니


마지막 줄에서 


비 한줄기가 내리고 나면 불행한 증오는 서서히 걷히고


여기서 운에 습기가 촉촉.


바깥에 비가 내리고 있기 때문...일 거야.


순전히, 말이지.


이 비가 그런 비면 좋겠네.


불행한 증오를 서서히 걷게 해 주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부터 미워하지 않게 해 주는.


와씨,

소설 쓰지 말고 배우할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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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娛 2022-09-13 1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故 신영복선생님 이글 읽기전에는 여름이 살기 좋다고 했지요

젤소민아 2022-09-13 21:00   좋아요 0 | URL
옆사람을 증오하게 만드는 여름...사실, 체온이 꽤 뜨거운 거드라고요~~
 
아이 괴물 희생자 - 우리 곁에 살지만 보이지 않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
주원규 지음 / 해리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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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집을 뛰쳐나왔던 아이는 부조리하게도 길거리에서 자신의 몸을 팔아 연명하고, 부모로부터 매일같이 맞고 자란 아이는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을 낙으로 삼다 교도소에 수감되고, 알코올중독자 아버지가 집에 불을 지르는 바람에 집에서 나온 아이는 사랑을 찾아 헤매다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지금 여기서 희망을 얘기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말하려는 듯이.


세상은 모순의 아수라장


그 아수라장에서 가혹히 짓밟힌 청춘들에 읍소하고 싶다.


용서해...달라고.


몹시 아프다.

난 당분간 아프고 말겠지...그들은 계속 아플 텐데.


책갈피를 넘기며 미안해, 미안해를 읊조리지만

나는 여전히,


비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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