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 집 마당에 있는 구멍에  40대 남자가 빠졌다. 말을 할 수도 없고 다리도 움직일 수 없는 마비 상태에 가까우므로 곧 이 남자는 죽음 속으로 흘러들게 될 것이다.

중산층 지식인 오기의 이야기다.

 

어쩌다 이 남자는 구멍으로 빠져든 걸까?

왜 집 마당에 사람이 들어갈만한 구멍이 있는 걸까?

이 질문은 곧 누가 구멍을 누가 팠을까? 로 이어진다.

그 답이 재밌다. 장모다.

이 소설의 백미다.

이 정도의 내용을 지인에게 듣고 흥미로워 책을 봤다.

 

사지 불구가 된 남자에게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 장모라는 이 설정만으로도

이야기는 솔솔 피어오른다.

주인공 오기는 바람도 더러 피고 아내와의 사이는 어느 정도 서먹하지만 그렇다고 결정적인 어떤 거대한 문제를 가진 인물도 아니다.

이 가정에 유일하게 눈에 띄는 점이라면 아이가 없다는 것 즈음, 이것은 이야기의 설정을 위해 필수적이다. 아무 혈연도 없는 남자가 사지불구가 돼 의사 표현을 거의 할 수 없음에도 생각은 가지고서

제 장모와 단 둘이 집에 남겨진다는 이 설정을 위해 오기는 고립되어야 한다. 이외에는 그럭저럭 사는

지리학 대학 교수로 때로 기회주의적으로 굴기도 했으나 딱히 악할 것도 선할 것도 없는 남자는 어쩌다 그 구멍 속에서 혼자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위해 준비된 이야기들이다.

 

소설 얘기를 하다 보면 결국 내 얘기를 하게 된다.

꼭 소설이 아니라 영화나 전시회, 가게 등등 결국 무슨 얘기를 해도 내 얘기를 하게 되는데

결국 나와 연결된 지점을 짚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태준의 '달밤'이라는 소설을 참 좋아한다.

약간은 모자라다 할 수도 있는 황수건의 이야기를 담담히 적어내는데 참외 장사라도 해보라는 돈도 다 날려먹고 아내도 떠나버린 뒤 달을 보며 서툰 노래를 부르는 황수건의 모습 속에 담긴

어떤 아득함 같은 것 때문이다.

 

내게 ''을 얘기한 이는 이 소설을 보면

인간이라는 것의 하염없는 비루함에 몸서리치게 된다 하였으나

나는 아주 그렇지는 않았다.

아마 어떤 성향 차이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나빴다는 말은 아니지만

같은 하늘을 바라보는 남자라면 아내가 떠나고 달을 보며 노래를 부르는 황수건에게서 더 하염없는 비애감을 느꼈다.

달밤이 덜 극적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인생은 덜 극적인 채로도 충분히 비애에 젖어 하늘을 바라보게 되므로

 

 

2016. 12. 27. 13: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악마 기자 정의 사제 - 함세웅 주진우의 '속 시원한 현대사'
함세웅.주진우 지음 / 시사IN북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 보니 무슨 예언서 같기도 하다. 2016년 말 화가 나서 이것저것 역사책을 뒤적이다 함께 보게 된 책인데 재밌게 읽다 정치뉴스에 온 마음을 빼앗겨 한동안 멀리하다 오늘(2016년 12월 23일 금요일/ 2017. 6. 6) 다 봤다. 책을 읽던 때만 해도 박근혜 시대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고 빛 한 줌 들지 않는 터널을 걷다 이대로 숨 못 쉬게 되는 게 아닐까 했는데 예언서처럼 상상도 못하던 탄핵이 일어나 정권이 바뀐 역사.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이 책을 시작할 때만 해도 '탄핵'이란 단어는 정말 현실과 연관이 없었으나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현실이 되었다. 


책은 함세웅 신부님과 시사인 주진우 기자의 대화로 전국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를 돌며 토크쇼 한 기록을 묶었다. 각 지역별 역사적 사건과 함께 '역사', '정치', '민주', '통일', '신념'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며 청중들의 목소리도 함께 실어 현장감을 더한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함세웅 신부님이 누군지도 몰랐는데, 묵묵히 자기 길을 걸으며 이 땅의 민주화와 함께한 신부님 말씀이 가슴에 와닿았다. 


미래에서 다시 현재를 바라보자 생각한다. 쉽지는 않지만, 예상치 못한 탄핵으로 답답한 시간이 끝났듯 기다리고 차근히 힘을 보태면 예상치 못한 뜻밖의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증명된 시간을 걸어왔으므로. 


2016년 12월 23일 금요일

미래를 상상하는 겁니다. 내가 미래에 살고 있으면 지금을 과거로 어떻게 얘기할까, 하면서요. 미래와 대화하는 사람이 되면 현실을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 P57

어디에 살든지 초심으로, 또 초심을 기초로 초지일관 아름다운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저희를 재촉해주시고 이끌어주소서. 늘 기쁜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저와 생각이 다른 이웃을 변화시키기 위해 더 뜻을 세우고 노력하겠습니다.
하느님, 친일 잔재 청산, 독재 잔재 청산, 유신 잔재 청산, 분단 세력 청산, 부패 세력 청산, 신자유주의 청산과 합의제 민주주의 실현의 원리들을 되새기며 아름다운 미래를 꿈꿉니다. 우리의 꿈이 모두의 꿈이 되고 현실이 되기를 바라며 노력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 P126

제가 늘 하는 얘기가 있어요. 2050년의 일기를 써보라구요. 2050년에 일기를 쓴다면 "2015년 역사교과서를 불법으로 바로잡겠다던 박근혜 그 여인은 참 나쁜 여인이었습니다" 이렇게 한 줄로 요약되는 게 역사예요. 이런 시각으로 우리가 접근해야죠. 역사는 항상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항상 뜻밖의 사건으로 바뀌게 되어 있어요.
- P1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이라는 것은

삶의 후미진 데를 파고드는 악취미


모든 삶은 실은 후미진 데가 있나

지나치곤 하지만 실은 지나쳐지지 않는 

틈새

그 틈새라는 게 원래 사람한테는 있기도 하다고

만나서 살다 보면 그렇기도 하다고


회사에서 만나는 멀쩡한 사람들도 실은 후미진 데를 안고 살고 있는 거라고


불가해한

세상의 표정들  




하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남았다. -p.42


내게 있지 않음인 이들을 떠올려본다

없음이 아니라 있지 않음

또한 잊지도 않음

그러니까 한 시절을 함께 견디며 

어떤 형용사로도 맞지 않게 

지내던 그들

그들이 있다가 

있지 않음이 되기까지

헛되지는 않았다고

후회하거나 미워하거나 

하지 않게 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제 

어느 시간 동안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노라고

아마도

함께 참 많은 거리를 헤매고 다니기도 했던

같은 방향으로 가다가 결국 제 길로 가야해 서로 갈 길을 가게 될 때까지


모든 사랑은 다 제각각이라 

어떤 식으로도 규정될 수 없으므로

그러니까 모든 사랑이 그리워지는 

글들이었다.



2016 10 16일 일요일



하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남았다. - P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그 쇳물 쓰지 마라 (리커버)
제페토 지음 / 수오서재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뉴스보다 잔혹한 텍스트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콘텐츠보다 아프고 

이상한 뉴스

사람의 진짜 모습

꾸미지도 더하지도 않는다는

 

 판타스틱 잔혹 리얼리즘에

마음  줄기를 얹어

그래도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고 

 지독하고 아이러니한

21세기 지구 대한민국에

마음을 가진 누군가 있다고 증언하는 




 

2016. 9. 22. 1:52


--

국조특위가 열린 날(2016 10 16일)이다.


지난 주에 이어 4회째 국조특위를 보며 출석한 증인들의 딱딱한 외피만 보다 겨우, 아 그래도 인간이란 게 이런 게 있지 지 자식만 지 식구만 챙기겠다고 지 입에 풀칠을 넘어서 좀 더 채워넣겠다고 (이럴 때 생각하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참 대단하다. 그들이 꼭 가오나시 같다.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아서 자꾸 먹는 자기 말을 잊은 그들. 돈도 많고 가질 것들 많이 가진 대학의 고위직들, 의사들. 때로 그들을 보며 그들의 어린 시절이 보이기도 한다. 어느 날인가는 1등을 했다며 천재라며 찬사도 받았을 그들, 장관이라며 대접만 받고 전조직이 네네 고개숙인 그들, 그들이 그 외피 안에서 무슨 꿍꿍이를 갖고 있는가 그것을 한 마디로 하자면 무엇일까 생각하면...) 그 속에 몸을 말고서 법을 들이대며 나는 아니라고 그런 적이 없다고 한다. 나는 그 악의 세력을 모르고 본 적이 없고 그러므로 나는 아니라고. 그래야만 살 수 있다는 생존본능의 발현을 보며 무섭고 무섭고 무섭다.


그의 시 한 편을 보고 그래도 인간은 아직 따뜻한 동물이야


안도한다.


2016 10 16일 일요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그리고 그가 그렇게 속히 죽게 된 원인은 내가 말로나마 동정을 해서 죽었는지? 안 해서 죽었는지? 어느 한 가지에 있으리라고 나는 얼핏 느꼈습니다. - P5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