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무가 쓰러진 뒤에야 이것이 얼마나 거대한 생명체인지 알 수 있다. 바닷가에 떠내려와 죽은 고래처럼 말이다. - P305

나무가 쓰러지면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꼬마나무는 (도목에 짓이겨지거나 밑에 깔리지만 않았다면) 햇빛을 듬뿍 받아 쑥쑥 자란다. 오래 기다렸다. 작고 어려 보이지만 이 꼬마나무들 중에는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묵은 것도 있다. 그늘에서 천천히 자라며 몇 년에 한번씩 뿌리만 남기고 죽었다가 다시 싹을 틔우면서 하늘이 열려 어둠에서 해방될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다. - P306

그리하여 협력은 진화의 정점에서 또 다른 보석을 얻는다.
생명의 역사에서 일어난 주요 변화는 대부분 식물과 균류의 결합 같은 합작 사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큰 생물의 세포에는 어김없이 공생 세균이 들어가 살고 있을 뿐 아니라, 숙주가 된 생물 또한 공생관계를 통해 형성되거나 변형된다. 육상식물, 지의류, 산호초 등은 모두 공생의 산물이다. 지구상에서 이 세 가지를 빼면 사실상 남는 것이 없다. - P322

흙의 생명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수록 ‘뿌리‘, ‘토대‘ 같은 언어적 상징의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이 단어들은 단순히 물리적 연결이 아니라 환경과의 호혜 관계, 다른 공동체 구성원과의 상호 의존, 뿌리가 주변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두루 일컫기 때문이다. 이 모든 관계가 생명의 역사에 아주 깊숙이 뿌리 내린 만큼, 개별성의 환상은 설 자리가 없으며 홀로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P323

땅속은 땅 위와 놀랄 만큼 다르다. 땅 위는 곁을 지나가는 박새 말고는 숲 속에 나 혼자뿐이다. 하지만 낙엽층 표면에서 1센티미터만 내려가면 온갖 동물이 북적댄다.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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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계는 내면의 감정을 얼굴에 쓴다. 지성이 숨기려 해도 어쩔 수 없다. 다윈은표정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리는 것이 우리 존재의 핵심적 요소라고 주장했다. - P277

이 매혹을 설명하려고 나중에 언어를 동원하기는 하지만, 매혹의 과정은 이성의 차원 아래에서, 언어의 층위 밑에서 먼저 일어난다.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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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재소소 아침달 시집 42
김동균 지음 / 아침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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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은 뒤 시 몇 편을 다시 읽었다. 밤에 잠자기 전 읽다가 좋다고 접어놓은 시와 목차에 체크해둔 시. 역시 현대, 도시구나, 싶다. 직장인의 시, 도시의 시라고 시집에 써뒀다. 서울에 살고 서울에서 일하니, 이런 시를 쓰는구나 싶었다. 시에는 푸드트럭도 나오고 꾀꼬리도 나온다. 해설을 읽다 보니 금붕어도 여러 마리 나오는데, 다시 보니 금붕어는 시 이야기이구나 싶기도 했다. 뻐끔거리는 금붕어, 시, 

현대문명이 만들어놓은 이미지와 실재 사이의 허공 거기서 헤매고 일하는 

자만이 쓸 수 있는 시. 견과류나 케이크나 빵처럼 현대가 호명하는 것들, 

(그런 의미에서 시집 표지 디자인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시를 쓴다는 것

시는 아마 다른 높이의 음조 

평시와는 다른 회사와도 다른 

다른 음조로 세상에 대해 얘기해보기,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하지 않는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니 금붕어와 비슷한 것도 같지만, 비어있는 거기에 대해… 



함께 시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하던 그런 풍경이 절로 떠오른다. 그들끼리만의 시, 몇몇들끼리만의 시, 세상과 하등 관계 없는 듯도 한, 그러나 세상과 깊이 관계 맺은, 그런 데를 짚어낸 느낌

그곳을 그리며 그리는… 

그런 데서 시를 같이 얘기하던 때가 있었지… 



내 얘기가 남에게 가닿으면

공명하면 그게 시, 예술

말벗


꾀꼬리가 나타난다. 꿈에 나타난다. 여름밤에 나타나고 꾀꼬리는 ‘호이호‘하고 운다. 가끔은 ‘히요‘하고 지붕 위에서 운다. 꾀꼬리가 나타나서 여름을 몰고 다녔고 꿈밖으로 날아갔고 꾀꼬리 때문에 말벗도 생겼다. 잔치가 열린다. 잔칫집에는 꾀꼬리가 안 보인다. 떡도 없고 노래도 없는 잔칫집에 남아서 퉁퉁 불은 국수를 먹는다. 국물만 찰방이는 그릇에 고개를 묻고 꾀꼬리 생각을 한다. 말벗이 내 옆으로 와서 중얼거린다. 나귀가 있었지. ‘히요‘하고 울던 그것이 여름을 죄다 싣고 갔었지. ‘호이호‘하면서 울기도 하냐니까 고개를 끄덕인다. 꿈같은 건 없는 것 같다 말하고선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게는 지켜보는 눈이 있다. 비스듬히 열린 문이 있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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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인공물은 자연에 묻은 얼룩이 아니다. 이런 시각은 인간과 나머지 생명 공동체를 갈라놓는다. 골프공은 똑똑하고 놀기 좋아하는 아프리카 영장류의 마음이 물질로 구현된 것이다. - P224

하지만 자연을 사랑하고 인류를 증오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인류는 전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인류의 창의성과 놀이 본능 또한 사랑해야 한다. 인간의 인공물이 남아있다고 해서 자연이 아름답지 않거나 일관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물론 우리는 덜 탐욕스럽고 덜 어지르고 덜 낭비하고 덜 근시안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책임감을 자기 혐오로 바꾸지는 말자. 우리의 가장 큰 실패는 세상에 대한 연민을 품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우리 자신도 포함된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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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시벌은 그가 품고 살아가는 고통의 상징이었으며, 맵시벌의 존재는 신에 대한 조롱이었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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