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처럼 나도 외로워서
김현성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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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와 통인동인지 효자동인지 경복궁역 어디 즈음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러 갔던 기억이 난다. 여러 번 모임을 같이 했는데도 왜 이 기억이 가장 먼저 나는지 모르겠다. 딱 이만큼의 추위 때문인가. 그때 누가 같이 있었지?


기억이 다 헝클어졌는데 이 샌드위치 집은 기억이 난다. 비싼 고급 샌드위치 가게라서일까. 그날 우리는 샌드위치 가게를 들렀다가 사람이 많아 가지 못하고 그 동네 시장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잔치국수 집에서 국수를 먹고 카페에 갔었나. 샌드위치 가게는 위치만 기억해두고 다른 친구와 갔던가. 그때 그가 그 동네로 이사를 가고 얼마 안 돼서 인가.


생각해보면 모임은 늘 경복궁역에서 했다. 대학 이후 대학교 친구들과 했던 모임도, 대학원 이후 대학원 친구들과 했던 모임도 그랬다.


아주 친하지는 않았는데 안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대학 이후 대학생활 추억하기 아니면 대학 생활에서 얻은 것을 잘 꾸려나갈 수 있는 발판을 함께 마련하기를 했고 대학원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그랬다. 생각해보면 대학 이후, 대학원 이후 그 학창시절과 결별하는 과정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딱 부러지게 헤어질 줄을 모르니까. 심지어 학창시절에 대해서도 그랬던 것 같다.


그 역시 친하지도 안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었고


모임에서 자주 만났고 글을 잘 썼다.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소설이 두 편 정도인 것을 보면. 나는 왜 그가 세상에 소설가로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세상을 믿지 않게 되었다.


아니 세상과 나의 시각의 편차 때문에 혼자 놀기로 했다고 해야 할까.


세상은 능력이나 재능만으로 되는 곳이 아니라


운과 재능과 노력이 합쳐져 홈런을 한 방 칠 수 있을까 말까 한 곳이라는 것


이 말이 좋은 말인 것도 같지만 어느 날 보면 답답해 미치게 한다는 것.


때로 대단히 편협하게 굴기도 하는 나는


이 지점에서 대단히 편협해서


이도 저도 못하고 있는 걸까.


 


평일 경복궁역 부근은 한산하고 깨끗하다.


아직 서촌이 이렇게까지 급부상하기 전에 모임을 해서 더 그랬을 것이다.


나는 그때 왜 우리만 이렇게 한량처럼 사는가


나는 부잣집 딸도 아니고 예술적 재능을 허벌나게 인정받은 것도 아닌데


아무도 내게 이 증표를 부여해주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사는 거지


이건 죄악이야


이런 생각도 더러 했다.


현실 속으로 들어가자고


9시부터 6시까지 좀 더 쥐어짜내며 견디는 곳


그 견딤이 현실일까


지금 이곳에서는 이런 말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나는 떠나는 일을 업으로 하다가


좀 더 멀리 떠나왔다.


떠나는 일을 업으로 할 때도 9시부터 6시까지라는 이 일정표 안에서 초침을 계속 바라보는 기분이 들게 하는 날이 있었고(심지어 6시가 땡치는 시간이 아닌 날이 많아 배신감이 더했으며)


여기서도 그렇다.


그런데도 우습게도 시간이 지나 정말 6시가 되면 내 하루가 다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가 없다.


쓰레기통이나 하수구 속으로 흘러들어간 것도 같고


몇 푼의 돈과(이 돈이 없으면 나는 못 사는) 맞바꾼 것도 같고


왜 세상은 돈과 시간을 맞바꾸려할까


그렇게 인간을 통제해서 시스템을 이루고


그것이 언젠가 발전으로 이어지고


나는 한 마리 작은 개미라 그것을 잘 이해할 수 없는 걸까


 


떠날 준비를 함께 하던 그


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그는 그냥 예술가로 계속 살고 있다.


이제 나는 완전히 떠나서 다른 곳에서


그가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역시 다른 의미로 한국을 떠나서 어딘가를 돌아다녔고 그 기록을 책으로 냈다.


 


페이스북에서 보고 그가 맞나 확인해봤다.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집이라 서운했지만


첫 걸음이 무엇이든 뭐...


 


 


사실 이 세계에서 나에게 오는 메시지는 무언가를 사라는 것 말고는 없게 된 것 같다.


돈을 주고 우리가 만든 물건을 사라는 것.


우리에게 이윤을 남길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오늘 온 3통의 카톡도 그랬다.


유니클로, 맥심, 카카오페이,


이 고유명사들은 모두 판매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그 판매를 좀 더 예쁘게 포장해 말을 건다. 하지만 나는 자본주의의 혹독함과 세련됨이 싫을 뿐이다.)


무지막지 쓸쓸한 일이다.


 


페이스북의 메시지도 그런 것이었으나


그럼에도 반가웠다.


 


책은 읽어서 뭐하게


이 질문으로부터 나는


요새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면서도 책을 사고 빌리고 때로 읽는다.


한동안은 점심시간에 그림책을 읽으며


마음의 평화를 찾았으나


점차 생각도 그림책 같아지고


그림책 같은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자꾸 떠오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케치북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를 앞에 두고 더는 한 발자국을 나가지 않고 있다.


 


요새 읽은 책도 빌려온 책도


대부분 에세이집인 것을 보면


정말 에세이가 판 치는 시대다.


더는 소설을 읽기 어려운 시대라서일까


남의 생각을 들여다보며 무엇을 얻고 싶은 걸까


잠시간의 마음이 맞는 대화 같은 것인가.


(책을 읽다보니


그 시절 안국동 코코브루니 2층에서 놀던 기억이 새록새록하긴 하다)


 


 


그래도 어제 현성 오빠의 '고해소' 글 때문에


나는 맥주를 안 마시고 잠들 수 있었다.


새벽에 1층 편의점으로 갈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 앞에서


나는 고해소의 글을 떠올리고 그냥 잤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그의 소설이 그의 에세이보다 좋다.


 


 


 


-나는 가끔 다음 생에는 인디언으로 태어날 거야


이런 말을 한다.


그러면 제국주의의 희생자로 조낸 불행해하는 인디언의 마지막 자손 즈음이 돼서 다음 생에는 다시는 인디언으로 태어나지 않을 거야


이런 말을 하게 될 걸


이런 농담으로


이번 생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2015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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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 죽음의 땅 일본원전사고 20킬로미터 이내의 기록
오오타 야스스케 지음, 하상련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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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한다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사람의 주변부를 이루던 것들

어쩌면 중심이기도 했을 것들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우리에게 남겨준 문제들에 대해 내가 얼마나 인간 중심적이거나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서점에서 제목을 보자마자 깨달았다. 원전 사태가 뉴스의 중심에서 사라진 해산물 먹거리 문제나 일본으로 여행갈 느끼는 우려 등등을 주로 생각하거나 표현했다. 때로 일본 정부가 사태에 대해 무책임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에 대해 분노하는 정도로 국가 권력에 대한 불신을 표하거나 조금 시야를 넓게 갖는다면 앞으로 전세계적으로 원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하는가 등등을 미디어가 제시해주는 생각의 지표에 따라 떠올리거나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대부분 피상적인 차원이었다.

그런 대화를 나누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에도 후쿠시마는 여전히 미해결된 문제가 산재한 곳이었다. 특히 그곳을 떠난 사람들과 그곳에 남겨진 무수한 생명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야말로 문제의 직접적인 피해로 여전히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책을 보며 생생히 깨달았다.

책의 저자인 오오타 야스스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을 없었'기에 그곳에서 구조를 시작했고 고통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 전혀 없었던 일이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그의 우려 덕분에 현실을 있었다. 이토록 직접적인 기록이 아니었다면 동물들에 대한 전언이 들려왔을 망정 아픔을 것으로 느낄 있었을까. 어떤 기록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이때문일 것이다.

삶이 걱정으로 가득 있고, 자칫하다가는 삶이 흔들릴지도 모르기에 우리는 고통보다는 행복을 보고자 하고 거기서 에너지를 얻고자 한다. 자기 계발서 같은 도서를 통해 삶을 단단하게 있는 데에 집중하는 현대 대한민국 사회에서 다른 고통을 돌아보자는, 사람의 고통뿐 아니라 사람의 주변부를 이루고 있던 것들, 사람과 마음을 교류하던 것들이 사람으로 인해 겪게 되는 고통을 돌아보자는 이야기는 몹시 현실 감각이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이야말로 삶을 단단하게 하는 일이 아닐까. 사람들에게 종종 책을 추천하는 이유다.

지금 당신이 이루고 있는 삶이 충분히 소중하다는 .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야말로 값어치있는 일이라는 것을 책은 사진과 담담한 기록을 통해 전한다. 자기 생명을 물어뜯기며 집을 지키는 곤타나 조용히 자신의 집에서 생을 마감하면서까지 반려인을 기다리는 마음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해준다. 동시에 '원자력 발전' 순식간에 평범하지만 지극히도 아름다운 삶을 무너뜨리게 위험 요소를 동반한 가동되고 있다는 것을 동시에 전한다.

나는 책을 때마다 순식간에 울게 된다. 울음은 전혀 의도되지도 계산되지도 않았다. 책이 다루고 있는 마음들이 나를 울린다. 고통 속에서 고통의 원인도 모른 생명이 사라지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을 동물들이나 끝끝내 반려인을 기다리고 있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삶이라는 것은 무수한 디테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또한 우리가 노력하는 이유는 누구도 침범할 없는 권력이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디테일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타인의, 다른 생명의 고통에 공감할 있다는 것은 사람이 사람인 조건일 것이다. 편리한 세계와 사회를 이루기 위해, 무릅써야 위험이 어디까지인가,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묻는다. 마음이 하나인 동물에 비해 너무나도 겹겹의 마음을 가진 인간이지만, 때로 멈추기도 해야한다는 . 어떤 논리적인 설명보다도 현실에 대한 생생한 기록은 가장 무겁게 '멈출 아는 지혜' 대한 책무를 깨치도록 해줬다.



2015년 9월 3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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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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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그런 상사와 함께 일한 적이 있다.

일은 남 시키고 이름은 자기 것을 적는 타입의 인간이었다.

결국 고생은 남이 하고 일은 그가 한 셈이 되게 판을 만드는.


나는 학을 뗐고

같이 일하던 후배는 격투기를 하는, 회사에서 가장 건강한 아이인데도 대상포진에 걸렸다.

내가 가장 빡쳐히는 대목은,

그런 인간이 겉만 잘 포장해 인문학 좀 공부하는 척한다는 것이었다.

인문학은 한번도 그런 가치를 가르친 적이 없는데

그 어떤 책도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이게 내 고민이었다.

그가 주창하는 세계 속에서 자기만 쏙 빠져나와 있는 채로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지?

그때 많이 들은 말은

"회사생활은 그렇게 하는 거야."

였다.

그처럼은 못 해도 거기 감정이입하지 말 것.

그러니까 회사생활은 대충 스리슬쩍하라는 것인가

뱀처럼 혀만 날름대며


김금희의 '조중균의 세계'에 내가 찌르르한 이유다.

우연히 읽었는데 너무 좋아서

앙금 같은 게 남아서 계속 맴도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름을 적는 것만으로 돼버리는 세계

진실이나 알맹이와는 상관 없이

이것은 내것 하는 것만으로 자본이 허락되기도 하는 세계

사인을 했다는 사실은 그래서 중요하지만

때로 가장 공허해지기도 하는 그 세계.

회사란 그런 곳이란다.

자본이 만들어지고

자식을 먹이고 한 가족을 살리는 곳의 진실

이라는 게





가끔 울고 싶어지기도 하는데

내가 그런 세계를 살아가고 있고 바퀴를 굴리고 있고

나는 어찌할 수도 없이 그 안에서 겨우 발맞춰 사는 사람인 것이다.

어찌할 도리도 없이.


그런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조중균이 결국

회사에서 쫓겨나

인쇄소를 차리고 소설가가 된 나와 만나는 에필로그까지

소설가가 된 나가 면목이 없지요 라고 말하는 대목까지

좋았다.


그래서 작가의 첫 소설집을 찾아 읽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밤' 을 읽을 때는

오정희 소설가가 잠시 떠올랐고

다른 작품을 읽을 때는 박완서 소설가의 단편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아닌 듯 품은 서늘함 같은 것 때문이다.

너무 날카롭지 않은

그래서 거북하지 않은

그런 서늘함이 소설에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돈이 벌고 싶었던 걸까 평범해지고 싶었던 걸까

사람들은 돈이 벌고 싶은 걸까 평범해지고 싶은 걸까

평범

평평하고 그저 그런 땅 위를 걷는 일 같은

어마어마한 행복을 바라면서 회사를 다닐 수는 없잖아




틀려먹었나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럼 맞는 것은 뭘까

틀려먹었다면

그러니까


인생에는 결말이란 없으니 말이다.

혹은 모든 결말은 모두 같으니 말이다.

그래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는 결말이 될 수가 없다.

부자가 됐다가도 쫄딱 망하고

쫄딱 망했다가도 또 무슨 일인가 일어나서

결국 죽을 때까지 결말이라는 것은 나지 않는다.

부자가 되어서 내내 돈이 많아 별 달리 걱정없이 무위도식하다가 죽었습니다.

이 정도면 행복한 결말인가?

최고인가?

이런 최고의 인생을 대부분 못사니까


우리는 계속 살아야지

이렇게 저렇게


옷을 사다가 신불자가 되기도 하고 까페에서 만화를 그리다 그 신불자가 갔던 일본 나라의 사슴 얘기를 훔쳐보기도 하고('당신의 나라에서')

죽은 친구네 집을 찾아가보기도 하고

그 흔적 같은 것들을 계속 사진으로 남겨보기도 하고

신불자가 되어 집을 나간 아버지를 찾아다니기도 하고

('너의 도큐먼트')

산부인과에 갔다가 몇 번이나 다시 나오기도 하면서

('센티멘털도 하루이틀')

폐허가 된 동네를 떠나야지 하면서도 머무르며('집으로 돌아오는 밤')

다단계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하면서 ('아이들')

외국에 어학연수 갔다 만난 우울증 걸린 애랑 연애 아닌 연애도 하면서('차이니스 위스퍼')

어학원에서는 유부남이랑 바람이 나기도 하면서('우리 집에 왜 왔니')

그저 그런 평범함 속에 깃들어 자신의 삶을

뚜벅뚜벅





2016. 5. 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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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에 무엇이 있든, 사람은 때로 울고 싶어진다 - P268

나는 울어도 좋을 것 같았다.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어린 나에게 어떤 슬픔이 있었던 것일까? 이제 와 그때를 떠올리면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저, 뭔지 모르지만, 맑고 투명한 강물의 흐름이 주는 알 수 없는 포근함 때문에, 그 청명한 물소리 때문에, 끝을 알 수 없는 물의 신비로운 질서 때문에, 아마도 그냥 울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그 이후, 내 방의 책상 밑에서, 도시 어느 골목에서 혹은 이국의 여행지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에는 언제나 강의 얼굴을 생각하게 된다. 내 모든 상처를 감싸 안아줄 것 같은 강물의 품을생각하게 된다. 누군가의 인위적인 손길이 닿지 않은, 새나 강아지, 염소 혹은 또 다른 연약한 동물이 와서 남몰래 울고 갔을 것 같은, 강물 속의 수많은 눈물을 생각하게 된다. 어디에서든 내가 ㄹ린 눈물이, 배꼽 근처에서부터 뜨겁게 올라오는 울음이, 그 강물로 흘러갈 것이라는 생각을.
아마도 당신, 당신의 강물 또한 내 강물과 만나서 함께 흐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우주의 만남 같은 것이 아닐까. - P270

나, 그 강물에서 멀리 가지는 못하리라.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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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독립한 당신, 이제 서른한 살이다. 서른까지 남의 손에 의해 차려진 잔칫상만 받았다. 서른한 살, 이제 당신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잔칫상을 차리기 시작해야 한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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