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지금까지 딱 한 시기 안경을 쓴 적이 있다. 그냥 써 보고 싶어서, 공부 잘하는 애처럼 보이고 싶어서 중딩 시절 엄마한테 눈이 잘 안 보인다고 뻥을 쳐서 안경을 쓰게 되었다(정확히 중2병 시절).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웃음이 난다. 공부는 전혀 잘하게 생기지 않았고 그저 웃기다. 금테, 뿔테 그것도 연달아 바꿔가면서 썼는데 뿔테를 쓰던 때 친구들과 피구하고 놀다가 날아온 공에 테가 부러졌다. 엄마는 또 새 안경 맞춰야 하느냐며 잔소리를 했는데 그때쯤 안경에 싫증이 난 나는 “나 이제 잘 보여!” 하고는 더 이상 안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엄마는 좀 이상하게 여겼는데 나중에 말하길 "니가 거짓말한 거 다 알고 있었"........다고. -_-;
그 후로 1.0/1.5 이상 시력을 늘 유지했었다. 그런데 다시 안경을 써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번에는 진짜다. 그래서 슬프다. 최근에 급격하게 눈이 나빠졌다. 회사 모니터를 보다가도 글자가 흐릿하게 보일 때가 잦다. 일시적인 것인가 싶었는데 며칠 전엔 퇴근 후 집에서 책 읽는데 글자가 너무 흐릿하게 보여서 너무 짜증이 나서 책을 덮어버렸다. 너무 우울했다. 아아, 내 눈!!!!!!!!!! 내가 세상에서 제일 끔찍하게 생각하는 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책을 읽을 수 없을까 봐. 안과를 가든 안경점을 가든 곧 그렇게 될 것 같다..... 아아, 내 눈!
2025년 상반기에 87권을 읽었다. 눈이 흐릿해서 짜증나서 책을 덮지 않았더라면 더 읽었을 텐데! 분하다! (엥?) 아무튼 그중에서 고른 2025년 상반기에 좋았던 책.
문학
작년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여전히 문학은 많이 읽지 못했다. 그런 중 기억에 남는 책들.
자우메 카브레, <겨울 여행>
<나는 고백한다> 이후로 현존 애정하는 작가가 된 자우메 카브레. 그의 작품은 나오는 족족 읽을 것 같은데 이 단편 모음집 <겨울 여행>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슈베르트 음악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미술과 문학 등을 넘나들면서 예술작품과 이런저런 역사가 개인의 삶에 스며들어 어떤 이야기들을 빚어낼 수 있는지.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키는지 쓸쓸하고 회한 섞인 어조로 보여준다. 다 읽고 나면 어쩐지 14개의 단편이 한 작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 책은 또 읽을 것 같다.
J. M. 쿳시, <추락>
쿳시 작품을 읽는 일은 그다지 즐겁지 않다. 읽을 때마다 좀 괴롭다. 서걱서걱 불편한 감정이 어디선가 솟아오른다. 그런데 그게 바로 쿳시 작품의 장점이자 매력이 아닐까. 읽는 이의 마음과 생각 모두를 불편하게 건드리는 것. 그래서 당신이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얼마나 부조리한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공간인지 기어코 눈을 감지 못하게 하는 것. 이 작품 또한 그렇다. 성, 젠더, 권력, 인종, 정치, 식민주의 모든 것이 담긴 완벽한 작품.
페르난다 멜초르, <태풍의 계절>
사둔 지는 좀 됐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에 읽었다. 그러다가 띵~!! 한 대 얻어맞은 느낌. 일단 입담이랄까 필력이 대단하다. 초반에는 잘 안 읽힌다(그래서 예전에 한 번 읽다가 내려놓은 경험이 있다). 알고 보니 이것은 내가 싫어하는 만연체! 그럼에도 한번 빠져들면 계속 그 문장을 읽고 읽고 읽고 읽게 된다. 게다가 또 얼마나 자극적인지. 수위를 넘는 폭력과 노골적 성(性) 묘사가 읽다 보면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 이렇게 끝까지 가야 하는가 싶어지기도 하는데......... 가야 한다. 왜냐하면 작가가 묘사하고 있는 이 태풍의 계절, 태풍의 도시, 태풍의 국가 멕시코의 현재가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마술적 리얼리즘의 진수를 보여준다. 마녀는 진짜 마녀일까요? 안 알랴줌. ㅋㅋㅋㅋㅋㅋㅋ
카릴 처칠, <클라우드 나인>
카릴 처칠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극작가 중 한 명. 특히 페미니즘 관점에서 쓴 작품들이 기막히다. 페미니즘 공부하는 분들은 카릴 처칠 작품 한번 읽어보시라. 웬만한 인문사회과학 책 읽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다. 지만지 책이 좀 비싸... 카릴 처칠은 저작권 살아 있는 작가라 더 비싸... 그래도 카릴 처칠 한 번 안 읽는 것은 너무 안타까움. 이 책 100자평에 “인종/성정체성/식민주의/섹슈얼리티 대혼란 속 비틀기와 풍자는 일품. 지배와 종속에서 해방으로. 성정치학 교과서로서 완벽한 작품”라고 남긴 바 있음.
샹탈 아케르만, <브뤼셀의 한 가족>
워크룸 문학 총서 ‘제안들’에서 나오는 소설 중에 물건인 작품들이 종종 있는데 이 작품도 그렇다. 벨기에 출신의 영화감독 샹탈 아케르만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소설로 어느 가족의 한 단면을 보여 줄 뿐이다. 엄마에서 딸로 화자가 자유자재로 변화하면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인데 그 안에 신기하게도 가까운 이의 죽음에 대한 성찰, 엄마와 딸, 아내 등 여자로서의 삶, 유대인으로서 살아가는 삶 등등 굵직한 주제들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단지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로르카를 다시 보게 된 작품. 파시즘의 유령이 떠돌기 시작한 스페인에서 로르카는 끝내 총살당했는데,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비운의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어진다. 이 작품만 봐도 그런 전체주의 사회에서 이런 작가가 온전히 살아 숨쉬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은 로르카가 죽기 2개월 전인 1936년 6월에 완성한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1964년까지 스페인에서는 상연될 수 없었다. ‘스페인 시골 마을에 사는 여인들의 드라마’라는 부제를 가진 이 작품이 왜 그 사회에서는 오래도록 용납되기 어려웠을까? 궁금하신 분들은 읽어보시라!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문학>
볼라뇨 작품은 좋은 게 있고 좀 실망스러운 게 있는데 이 작품은 단연 전자에 속한다. 처음엔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허구인가 아리송한 상태에서 계속 읽게 된다. 백과사전 형식을 빌어 가상의 아메리카 극우 작가 30명의 삶과 작품 세계를 해설하는 블랙 유머 소설. 볼라뇨의 이 형식을 빌어 <아시아의 극우문학> 또는 <대한민국의 친일문학> 이런 걸 써 봐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시도해보려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다가 그만뒀는데... 그래서 역시 볼라뇨는 천재 나는 범인凡人.
비문학
디디에 에리봉, <랭스로 되돌아가다>
뒤늦게 읽고 홀딱 반한 책. 이 책에 남긴 100자평으로 대신한다. 계급 탈주자로서, 이른바 비정상적인 성정체성을 지닌 게이로서 자신이 속한 위치에서는 늘 이방인일 수밖에 없던 이의 시선으로 써내려간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너무나 정치적인 글. 진솔하고 날카로우며 아름답고 명민하다. 에리봉의 저작은 다 읽어볼 요량으로 그가 쓴 푸코 평전도 샀다능(푸코 개인의 삶엔 그다지 관심 없음에도).
라즈미그 쾨셰양, <사상의 좌반구>
이 책 100자평을 남긴 이후 몇몇 분들이 책을 구매하거나 빌려 읽으면서 즐거워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사상의 우반구”말고 “좌반구”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집에 한 권씩 구비해놓고 필요할 때마다 펼쳐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책을 사면 매우 깨끗하게 보는 편인데(여차하면 다시 팔아버릴 생각으로) 이 책은 처음 몇 장 읽고는 그냥 연필로 죽죽 줄 치면서 읽었다(이런 경우 거의 드묾). 좌파 이론의 흐름이나 핵심에 관심 많은 분들을 위한 교과서 같은 필독서.
다이앤 엔스, <외로움의 책>
처음 읽는 작가의 글인데 일단 문장에 반했다(그런데 본인은 정작 자기 문장 멋없고 건조해서 인기 없다고 고민하는데 난 그래서 더 좋은데). 외로움을 사유한다고 하면 뭐랄까 왠지 말랑말랑 유치하고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할 것 같은데 이 책은 결코 그렇지 않다. 다이앤 앤스 작가 자체가 인간의 ‘외로움’과 ‘관계’의 의미를 오랫동안 탐구해 온 철학자라고. 이 책도 여기저기 줄 치고 싶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밀리의 서재’에 뒤늦게 들어온 거 보고 오앙! 문장 긁어모으기 중.....
야닉 에넬, <고독한 카라바조>
카라바조! 카라바조! 카라바조! 평소 카라바조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카라바조에 관한 어떤 책보다도 이 책을 선물해 줄 것 같다. 화가에 관한, 그의 작품에 관한 글을 이렇게도 쓸 수 있다고. 화가의 그림보다도 더 아름답지 않으냐고.
피에르 부르디외, <상속자들>
젊은 부르디외를 느낄 수 있다...(엥? 근데 한번 읽어보시죠. 진짜라니까요 ㅋㅋ) <구별짓기>의 부르디외 학문의 출발점 같은 글. 교육 평등?! 학교가 모든 걸 다 해결해 줄 것 같지만 사실은 집안 내에서 오래도록 쌓아온 문화자본이 교육 격차를 얼마나 벌어지게 하는지, 그리고 결국 직업 선택과 그 이후의 삶의 격차도 벌어지게 하는지 연구한 통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책.
자크 랑시에르, <체호프에 관하여>
체호프빠라면 읽어야 합니다. 랑시에르가 오직 체호프만으로 책 한권을 썼으니 읽고 있으면 어쩐지 유식해지는 기분도 듭니다. 책 소개에 “이 작은 책은 체호프의 단편처럼 힘 있고 크다. 특히 상상력과 작품 해석의 여백이 광활” 하다고 쓰여 있는데 진심 공감합니다... 갑자기 왜 존대냐고요? 집에 한 권씩 두고 체호프 작품 읽을 때마다 펼쳐보시라고 권유하려고요. 저도 이 책 다 읽고 안 팔았다니까요.......
미란다 프리커, <인식적 부정의>
처음 읽는 저자라 확신이 서지 못해서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었다. 아, 이 책은 줄 치면서 읽어야 하는데 내 책이 아니라서 안타깝구나 했던 책(물론 도서관 책인데도 자기 책처럼 줄 치는 인간들 종종 있다만....-_-). 오늘 이 책, 세일즈포인트를 보니 그새 많이 올랐다. 좋은 책은 역시 사람들이 소문 내지 않아도 알아보는구나! 증언을 불신당하기 일쑤인 흑인, 성폭력에 대한 비판적 언어로 고통받는 여성, 정체성을 표현할 언어를 갖지 못한 성소수자 등 편견이나 차별로 자신을 표현할 정확한 언어가 없어 침묵할 수밖에 없던 이들을 대하는 인간의 사고 체계에는 인식적 부정의/해석학적 부정의가 따른다는 사실을 철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부정의에 저항하는 인식적 실천이 가능함을 일깨우는 책.
주디스 버틀러/프레데리크 보름스,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
두꺼운데 읽을 만한 책과 읽을 만하지 않은 책이 있듯이 얇은데 읽을 만한 책과 읽을 만하지 않은 책이 있다. 이 책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은 얇은데도 읽을 만한 책이다. 아니 다 읽고 나서 팔 만한 책과 팔 만하지 않은 책 중 팔 만하지 않은 책에도 속한다. 얇은데 있을 것 다 들어 있어. 버틀러 책치고는 쉽게 읽혀! 대담이거든요. 자, 이 책 살 만하지 않습니까?ㅋㅋㅋㅋㅋ
비비언 고닉, <끝나지 않은 일>
<사나운 애착> 읽고 비비언 고닉 선집 다 모으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잠자냥은 그새 고닉의 전작 <사나운 애착>과 <짝 없는 여자와 도시>는 다 읽고 팔아버렸다. 그런데 이 책은 책장에 고이 남을 것 같다. 문학에 대해서 책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와 토머스 하디의 <이름 없는 주드>를 빨리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음.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뒤늦게 읽었지만 아주 좋았다.... 이 말밖엔 쓸말이 없는데... 여기까지 쓰느라 지쳤기 때문.....
상반기에 딱 한 권만 권하라면
(사용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북적북적은 알라딘보다 섬세하게 별점을 줄 수 있다. 알라딘에 5별 준 책도 사실 북적북적에서 보면 4.5별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은 무조건 5별이었다. 오랜만에 진짜 완벽한 책을 읽었음. 이 책은 지난해 내가 열심히 밀었던 샹탈 자케, <계급횡단자들 혹은 비-재생산>에 견줄 만하다. 말하고자 하는 바도 비슷하고.

2025년 7월 1일 현재 87권을 읽었다... 북적북적에서 전체 캡쳐하려면 광고를 보라고 해서 안 했다......

북적북적처럼 알라딘도 별 반개 있으면 좋겠따.... 내가 후하게 5별 주는 경우 많지만 사실 그중 진짜 5별은 드물다능.

올해도 청구된 영수증.... 엄마가 왜 날더러 거지냐고 했다.... 엄마...... ..... 그러니까.....
요 몇 달 산 책을 올리지 않았다(그러면 안 살 줄 알았지만 웃기시네 더 사고 앉아있네...). 아무튼 그래서 울집 냥이들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 오랜만에 냥냥이들 투척.....

수하 님이 좋아하는 1호. 암컷들한테는 한없이 관대하고 수컷 3호는 못잡아 먹어서 안달인 1호....-_-

먼로 점 2호는 헬가 님을 위해 올립니다.......

먼로 점 잘 보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마전의 3호. 너무 예쁘게 나옴. 꺄........................

너무 예쁘고 잘생기게 나와서 영정 사진으로 써주기로 약속함....(엥?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나의 사랑이자 모두의 사랑 무럭무럭 막냉이!!!!!!!

너 그 담요로 꾹꾹이 하고 있었지!!!!!

이불 폭 꺄......... 귀여운 막냉이!

오늘도 막냉이는 꿀잠 자고 잘 먹으면서 무럭무럭.... 하트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