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잘 안 읽히는 때가 있다. 문학적 감성이 좀 버거운 시기에 그렇다. 이런 때 소설을 읽으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도 왠지 심드렁하게 읽히고 별것 아닌 묘사에도 닭살이 돋는 등 역효과가 일어난다. 그러나 이런 시기에 읽어도 완벽하게 빨려 들어가서 읽게 되는 작가들이 (드물지만) 있다. 8월에 읽은 책 목록을 보니 소설은 딱 두 권. 서머싯 몸과 슈테판 츠바이크. 둘뿐이다. 그렇다, 이 두 사람의 작품은 언제 읽어도 금세 몰입, 모든 걸 다 잊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몸(Maugham)보다는 츠바이크 쪽이 좀 더 그런 것 같다.
최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서 츠바이크의 중단편 모음집이 나왔다. 표제는 <감정의 혼란>- 녹색광선에서 출간한 <감정의 혼란>과 제목은 같지만 ‘불타는 비밀’ ‘아모크 광인’ ‘어느 여인의 인생의 스물네 시간’ 이렇게 세 작품이 더 들어있다. ‘불타는 비밀’도 예전에 읽은 작품이라(‘타버린 비밀’ ‘일급비밀’ 등등으로 번역되어 나왔음), 이걸 사? 말아? 고민했지만 결국 ‘광인’과 ‘어느 여인’이 궁금해서 전자책으로 구매해서 읽었다..... ‘광인’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진짜 광인처럼 츠바이크가 촘촘하게 글자로 지어낸 세계에 빠져 들어갔다.
여행 중인 ‘나’는 인도를 떠나 유럽으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반복되는 배 위에서의 나날, 같은 배에 오른 사람들의 안면을 다 익힐 정도로 익숙해지고 ‘수평선에서 보이는 돛이며 뛰어오르는 돌고래며 새로 눈에 띈 시시덕거림이며 스쳐가는 농담’ 등 아주 하찮은 화젯거리마저 바닥이 나 지루함에 몸부림 칠 때쯤 ‘나’의 앞에 뜻밖의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선박에 숨어 지내고 있던 한 남자를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남자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고 느낀 ‘나’는 그에게 도와주겠노라 다가서지만 남자는 한사코 도움을 거부한다. 도리어 ‘도와주겠다’는 말에 냉소와 함께 분노를 터뜨린다. 오직 하나의 부탁은 자신을 봤다는 말을 이 배를 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달라는 것뿐이다. ‘나’는 선실로 돌아와서도 이 남자가 궁금하기만 하다. 그의 사연을 알고 싶어 미칠 것 같다. 여기에서도 츠바이크의 심리 묘사는 빛을 발한다.
인간 심리의 수수께끼는 불안할 만큼 나를 사로잡아, 그 관련을 밝혀내고 싶은 충동이 핏속 깊이 들끓게 한다. 기이한 인간은 눈앞에 보이기만 해도 정체를 알고 싶다는 욕구에 불을 붙일 수 있으며, 이러한 열정은 여자를 소유하고 싶은 욕정 못지않게 뜨거운 법이다.
결국 남자의 입을 열게 하는 데 성공하는 ‘나’- 여기부터 본격적으로 ‘아모크 광인’의 사연이 펼쳐진다. 남자의 직업은 의사로 7년 전에 인도로 왔다. 유럽에서 잘 나가는 의사로 지낼 수도 있었는데 어떤 사연 때문에 쫓기듯 고향을 떠나온 것이다. 남자는 말 그대로 ‘돈도 없고 시계도 없고 환상도 없이’ 유럽에서 출항, 인도의 면급 주재지에서 지내게 된다. 그곳은 온통 밀림으로 농장, 덤불, 늪밖에 없는 오지나 다름없다. 그래도 처음에는 의욕적인 꿈에 부풀기도 했다. 현지어를 익히고, 경전도 원문으로 읽고, 풍토병을 연구하고, 학문에 힘쓰고 원주민의 심리도 밝혀내려 애쓰고…. 다리가 부러진 그 지역 부시장을 성공적으로 수술해주기도 하면서 명성도 얻는다. 이렇게 의사로서 그럭저럭 적응해 갔지만 차츰 기력이 빠지면서 이 모든 것들이 시들해지고 만다.
어느덧 사람들과의 왕래도 끊은 채 혼자 틀어박혀 술 마시고 몽상하는 삶에 남자는 젖어든다. 7년을 대부분 원주민과 동물 사이에서만 살아가면서 점차 무기력해지는 그. 남자는 그런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온실 같은 곳에 있다 보면 누구나 기운이 바닥나고 아무리 키니네를 파먹어도 막을 수 없는 열병이 골수에 파고들어 해파리처럼 늘어지고 처지고 물러지게 되지요.”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의사로서 인도에서의 계약 기간이 끝나 연금을 받고 유럽으로 돌아가 새 인생을 살 날만 기다리던 그 남자 앞에 한 여자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난다.
열대병, 향수병, 노스탤지어… 외로움으로 죽어가는 한 사내에게 한 여인이 들이닥친 것이다. 그것도 몇 년 만에 찾아온 첫 번째 백인 여자이다. 그런데 베일을 쓴 이 여자는 수다만 떨면서 말을 빙빙 돌릴 뿐, 왜 남자, 그러니까 이 의사를 찾아왔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남자는 처음엔 백인 여자를 만났다는 사실에 들떴지만 그것도 잠시, 곧 여자가 자신을 찾아온 목적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면서 교묘히 질문을 던진다. 여자에게 필요한 진료가 무엇일지 추측하면서 진실을 더듬어 나간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그런 과정에서 그녀에게 매혹당한다.
이 부분부터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진다. 남자가 여자한테 반한 사연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남자는 좀 특이(?)한데 여자들이 도도하고 쌀쌀맞으면 사족을 못 쓰는 남자로, 유럽에 있을 때도 이런 여자와 문제가 있어서 사고를 일으키고 인도로 도망치듯이 떠나온 터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그런 기질이 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환자로 찾아온 여자가 간절히 부탁하거나 눈물짓거나 등등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라 당당하고 도도하게 ‘강철 같은 꿋꿋함’ ‘남성 같은 꿋꿋함’을 보이면서 자신보다 강하게 굴면서 자기를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매료당한 것이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이 여자의 도도함을 꺾어버리고 여자가 자신에게 부탁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망, 충동에 시달린다.
이제 이 도도한 여자와 그런 여자에게 지배당하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그 기세를 꺾어버리고 싶은 남자의 기 싸움이 시작된다. 사실 이 여자가 의사를 찾아와서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는 중절 수술이었다. 이런 수술이었기에 이토록 동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 의사를 찾아온 것이고, 때문에 남자는 여자의 이 비밀을 이용해 그녀를 협박한다거나 부탁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여자는 이런 목적으로 의사를 찾는 다른 여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로 한껏 도도하고 당당하게 구는 게 아닌가. 게다가 여자는 수술비로 큰돈을 제시한다.
헌데 의사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여자의 도도함에 반해버려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마음속에 욕정이 번득이듯이 솟아오른다. 여자가 악마처럼 안하무인으로 굴수록 더 넋이 나가버린다. 부탁하면 들어주겠다는 남자의 말에 여자는 크게 비웃으며 말한다. “아니요-부탁하지 않겠어요. 차라리 나락에서 떨어지겠어요!” 결국 남자는 분노로 불타올라서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을 드러내고 만다. 이 장면에서는 ‘마조히즘’의 작가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의 <모피를 입은 비너스>가 떠오르기도 한다. 모피를 입은 우아한 여인의 노예가 되기를 자처했던 ‘제베린’, 숭배해 온 여자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자신을 더욱 잔인하게 대하고, 감정의 동요 없이 냉혹하게 채찍질을 해달라고 부탁하던 ‘제베린’의 모습이 남자의 모습과 겹치기도 한다.
이 남자와 여자는 어떻게 될까? 이후의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하다. 낯선 곳에서 소외와 고독과 외로움에 시달리던 남자는 자신과 인종이 같은 백인 여자를 만나 동질감을 느끼며 설레던 것도 잠시, 알 수 없는 불안과 타오르는 욕망을 느끼며 넋이 나간 채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정에 휩싸인다. 외로움이 불러일으킨 광증일까? 아니면 본디 이 남자의 성향, 도도하고 쌀쌀맞은 여자한테 사족을 못 쓰는 그 기질이 이 무자비한 여자 앞에서 폭발하고 만 것일까. 그것은 이 작품을 직접 읽어보시고 판단하시라. 이 작품의 끝에 가면 남자가 ‘나’의 ‘도와주겠다’는 말에 그토록 냉소적으로 분노하게 된 까닭도 밝혀진다. ‘도와주고자 하는 굉장한 의무’에 관한 의사로서의 의무와 한계 등등 그 남자의 고뇌가 한껏 내밀하게 그려진다. 남자는 여자를 구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여자의 자존심과 도도함을 구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어 읽은 ‘어느 여인의 인생의 스물네 시간’도 ‘광인’ 못지않게 재미나다. 이야기는 한 여관에 모인 일곱 명의 숙박객들이 옆 호텔에서 벌어진 호텔 주인의 아내와 호텔 손님으로 묶던 한 청년의 야반도주를 놓고 벌이는 입씨름에서 시작된다. 서른세 살가량의 몸가짐 단정한 부인이 단 두 시간 동안 테라스에서 대화를 나누고 한 시간 동안 정원에서 커피를 함께 마셨을 뿐인데 하룻밤 새 남편과 두 아이를 버리고는 생판 처음 본 청년을 무작정 따라나섰다. 당신이라면 이 여자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이 호사가들은 저마다 의견을 내놓는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엉터리없는 소리요. 허무맹랑한 환상”이라고 깎아내리면서 대부분은 여자를 비난한다. 유독 화자인 ‘나’만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타고난 연애꾼도 전혀 아니고 열정적 연인은 더욱 아닌, 평범하고 연약한 연인이 용감하게 자기 의지를 따랐다는 데 사뭇 존경심이 든다고. 그러면서도 연민을 감추지 못한다. “오늘은 괜찮을지라도 내일은 분명 깊은 불행에 빠질 테니까요.”
화자의 말을 듣던 한 노부인이 용기를 얻었는지 한때 충동적으로 휘말려든 자신의 옛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마흔에 남편과 사별한 후 인생에서 열정을 잃고 방황하던 그녀는 우연찮게 한 청년이 룰렛 도박에 집중하며 사력을 다하는 걸 보고 그 열정에 반해 딱 하룻밤 동안 그와 걷잡을 수 없는 충동에 휘말린다. 열정으로, 광기로 빛나는 얼굴. 불안과 호기심에 이 청년을 따라간 사십 대의 여자… 예순일곱 해의 세월 가운데 단 스물네 시간 동안 일어났지만 평생을 지배하는 그 추억....... 이 노부인의 사연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흥미진진하다. 츠바이크가 그 심리를 숨 가쁘도록 생생하게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예순을 훌쩍 넘긴 여자는 말한다. “제가 그 열 시간 동안 인생에 관해 알게 된 것이 이전에 마흔 해를 예의바르게 살아오면서 배운 것보다 훨씬 더 많았던 거예요.”
당신이라면 오직 열정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버리고 낯모르는 사람과 온 하루를 보낼 수 있는가? 츠바이크는 도덕이나 관습보다도 더 생생하게 살아 꿈틀대는 인간의 열정과 광기, 무의식을 눈앞에 펼쳐 보인다. 츠바이크의 작품이 이토록 흡인력 있는 까닭은 그가 그리는 욕망의 지도에 다들 공감하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