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 그 후 - 우리가 만난 비체들
이현재 지음 / 들녘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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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체(abject)라는 개념을 알기 위해 추천받은 책이다.
2016년에 쓰여져서 메갈리아 논쟁, 강남역 살인사건 등 그 시기 이전의 사건을 다루고 있어 실례의 신선함은 떨어진다.
그렇다고 해도 비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한 책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 여성괴물에서 비체 개념을 처음 접하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다행히 이 책을 추천받아 읽게 되었는데 얇으면서도 개념이 명징하게 잡혀서 정말 좋았다.


비체는 abject. 객체object와 어떻게 다를까?
단어를 보면 알겠지만 둘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객체는 말 그대로 대상이다.
비체는 정해진 위치에서 벗어난 것. 기존의 질서로는 이해되지 않는 어떤 것이다.
그래서 항상 흐르고 있어서 쉽게 잡히지 않는 존재이다.


비체는 흐르는 것이자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며 고체화되지 않기에 어떤 규정, 어떤 언어로도 잡히지 않는다. 비체가 대상object이 아닌 이유는 그것이 주체의 모든 규정성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비체는 손에 잡히는 착한 대상이 아니다. 비체는 경계를 넘나드는, 그래서 더럽다고 여겨졌던 것이며 잡힐 수 없기에 공포스러운 것이다. 비체는 철통방어라고 여겨졌던 경계에 구멍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존재이며, 따라서 특정 사회적 질서와 동일성을 강화하려는 자들에게 경계를 위협하는 비체는 공포를 넘어 혐오의 대상이 된다. - P29


비체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혐오집단으로 치부된 이유는
남성이 여성의 소유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여성을 끊임없이 객체로 몰아갔던 이유가 있다.
이 굳건한 지배 구조에서 비체의 목소리는 지워지고 억압된 것이다.
남성들은 굳건한 지배구조를 깨뜨리거나 흐트러뜨리는 비체를 공포스럽게 느끼며 혐오집단화했다.


이 책은 객체와 비체가 어떻게 다른지. 객체에서 비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시화의 시대 속에서 여성 비체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는지.
여성혐오가 인정 욕망과 왜 연결되는지 이론과 실제 사례들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다.


비체라는 개념을 얻은 것 외에도 비체가 존재하는 공간이 사회 밖이 아니라 사회 내부라는 사실도 되새겼다.
무엇보다 여성혐오가 인정 욕망과 연결되고 신자유주의 사회의 폐해까지 더해지면서 확대된 것에도 공감이 가서 좋았다.


비체는 항시 흐른다.
그래서 어떻게든 변화할 수 있는 존재이다.
비체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비체들이여! 소통하고 공감하고 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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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11 1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화가님 감사합니다. 비체, 정리 넘 잘해주셔서 쏙 들어옵니다 ~~

거리의화가 2022-03-11 20:13   좋아요 1 | URL
이 책 읽고 개념이 어느 정도 정리됐어요. 이제 여성괴물 다시 읽기 시작해야겠습니다^^

독서괭 2022-03-11 19: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체들이여!! 라는 말씀이 멋지네요^^

거리의화가 2022-03-11 20:17   좋아요 2 | URL
앗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익숙한 분야가 아니라서 낯설고 어렵더군요. 모르는 게 너무 많고 해서 그저 짧게 정리하는 수준 밖에 안되는 것 같습니다. 리뷰 쓰는 거 자체가 어려운데 이렇게 조금씩 시작하는거겠죠^^;

수이 2022-03-11 2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읽기도 전에 개념 잡히니 넘 좋아요. 이제 저도 슬슬 시작하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3-11 21:40   좋아요 1 | URL
도움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비타님 아자아자!

다락방 2022-03-11 21: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휴 거리의화가 님 같이 읽게 되어서 너무 좋고 감사하고 그렇습니다. ㅠㅠ 게다가 이렇게 글도 써주셔서 진짜 감사드려요. 복받으세요! ㅠㅠㅠ

거리의화가 2022-03-11 21:44   좋아요 1 | URL
어휴 다락방님 무슨 말씀을… 이 책 읽고 여성괴물 읽으니 확실히 이해가 잘됩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여성의 날 이벤트를 하기에 책을 주섬주섬 담았다.(롱머그의 유혹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주문에 포함을...^^; 흰색과 카키색 찜!)





4월의 여성주의 도서와 리베카 솔닛의 신간, 다락방님이 추천해주신 책 중 미투운동, 기후위기, 그리고 미 대선 이야기가 담겨 있는 리베카 솔닛 책과 과학자의 이야기가 재밌어 보여서 추가로 선택했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언젠간 구매해야겠다 생각했던 책이라 주문에 포함시켰다.

이것저것 담다보니 또 많아졌네.



지난 주에는 에릭 홉스봄 평전과 조소앙 평전이 한꺼번에 나와서 나를 반색하게 했다.

역사를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데 에릭 홉스봄과 하워드 진을 특히 좋아한다.

한국사에서는 여운형 선생과 안재홍 선생을 존경하는 것처럼.

역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극단에 치우친 주장을 경계하게 된다.

이 책들도 조만간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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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03-11 11: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결국 롱머그 주문하시는 건가요 화가님 ㅎㅎㅎㅎ

거리의화가 2022-03-11 11:32   좋아요 3 | URL
ㅋㅋ 유혹에 넘어갔어요ㅠㅠ 집에 없던 디자인이라고 합리화해봅니다ㅋㅋ

새파랑 2022-03-11 12:12   좋아요 3 | URL
롱머그의 유혹은 독서괭님이 뿌리신거 아닌가요? ^^ 역시 스트레스에는 책 쇼핑이죠~!!

거리의화가 2022-03-11 13:07   좋아요 3 | URL
이벤트 보자마자 롱머그 이쁘다고 생각하긴 했어요ㅎㅎ 그리고 주문은 이미 했습니다!ㅋㅋ 몇 권은 시간이 좀 걸리는 모양이에요. 15일 출고라고 뜨네요.

독서괭 2022-03-11 14:16   좋아요 1 | URL
저는 잘잘라님에게 유혹 당했습니다 ㅎㅎ

수이 2022-03-11 11: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카키와 화이트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커피는 화이트지! 하고 화이트로 결정 :)

거리의화가 2022-03-11 13:08   좋아요 2 | URL
비타님 전 카키색을 너무 좋아하는지라^^; 옷도 카키색을 즐겨 입는답니다. 야상 정말 자주 입어요..ㅎㅎ 어쨌든 다른 디자인이라 두 개 사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다락방 2022-03-11 13:12   좋아요 3 | URL
저는 화이트, 그레이, 그린이 오고 있습니다. 😌

수이 2022-03-11 13:18   좋아요 2 | URL
야상 자주 입는 저도 갈등하다 하나만 골랐는데 왜 다들 이렇게 많이 골라요?! -.-;;;;;;

거리의화가 2022-03-11 13:26   좋아요 0 | URL
머그 많이들 담으시는군요. 알라딘 장사 맛집 맞는듯^^;

독서괭 2022-03-11 14:16   좋아요 1 | URL
오 저는 블루인데!!

수이 2022-03-11 14:28   좋아요 0 | URL
독서괭님 머그 받으면 인증샷 콜?! 😊

독서괭 2022-03-11 15:37   좋아요 1 | URL
콜!!😆 원래 오늘 받을 예정이었는데 출고지연 되어 늦어질 것 같아요 흑

건수하 2022-03-11 22:45   좋아요 1 | URL
저는 카키!

수이 2022-03-11 22:48   좋아요 1 | URL
방금 전에 또 질러서 카키도 옴! ㅋㅋㅋ

다락방 2022-03-11 23:14   좋아요 0 | URL
브라보!! ㅋㅋㅋㅋㅋ

mini74 2022-03-11 1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들 힘내서 결국 주섬주섬 책을 담는군요. 화가님 저도 ㅠㅠ 롱머그 잘 와야 헐텐데 ㅎㅎㅎ

거리의화가 2022-03-11 13:26   좋아요 1 | URL
넵 미니님 역시 스트레스엔 책 구입이 짱!ㅎㅎ 안 깨지고 잘 오겠지요^^ 갑자기 머그 주문이 많이 늘었을듯...ㅋㅋ

페넬로페 2022-03-11 17: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결국 롱머그 집에 구비해둬야 알라딘 서재의 일원으로 남는건가요?

거리의화가 2022-03-11 17:33   좋아요 2 | URL
그럴리가요^^; 하나 둘씩 머그 담아가신 분들이 느신 것은 맞지만 안 사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저도 처음에 집에 머그 많아서 쳐다도 보지 말아야지 했어요. 근데 자꾸 보다 보니 밟혀서...ㅎㅎ 제가 넘어간거지요뭐^^

그레이스 2022-03-11 17: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살짝 뒤로 물러났다가 앞으로 나가는 것이 좋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응집력이 생기니까.
밀물에도 물러나는 파도는 있구요.

거리의화가 2022-03-11 17:34   좋아요 3 | URL
앞으로 갈 때 살짝 후퇴했다가 전진하는 것같은 이치겠지요^^ 여성들이 단결할 기회는 점점 많아질 것 같습니다.
 

언제 다시 길을 나서게 될까?

2019년 6월. 후쿠오카 여행이 마지막이 되었다.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라더니...

짧은 감기처럼 금방 지나갈 줄 알았건만 3년째 계속되는 전염병과의 사투는 진을 빠지게 한다.

그리고 오늘 아침 보게 된 대선 결과.

설마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아니길 바랐었다.

그래서 쉬이 잠에 들지 못했던걸까?

누웠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밤사이 엎치락뒤치락 했을 득표율에 일희일비했을 사람들의 간절함이 잠시나마 떠올랐다.

난 그걸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옆지기와 짧게 대화를 나누었다.

둘다  잠시 허탈했지만 결과를 뜯어보면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몇십만 표 차이이기에 누구는 이기고 누구는 졌을 뿐 결코 당사자는 오만함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을 뽑은 이들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을 뽑지 않은 이들이 누구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특히 여성 득표율의 2/3은 이재명을 지지했기에 윤석열은 그 결과를 뼈아프게 새겨야 할 것이다. 

혐오가 아닌 존중의 정치를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윗 글은 아침에 쓴 글이다.

참으로 길고 멍한(?) 고단한 하루를 보냈다.

잠을 설쳤는지 집에 오니 코피를 쏟았다. 

이거 몇 년만인지... 몸이 쉬라고 하는 신호인가보다 싶다.


5년의 시간이 답보 또는 후퇴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소리를 내질러야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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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10 22: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ㅠㅠㅠ 코피까지 나셨다니 ㅠ 건강 잘 챙기시고 힘내요 우리 !!!! 아프지 마세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2-03-11 09:09   좋아요 2 | URL
어제는 꽤 잘 자고 일어나서 괜찮습니다. 이젠 몸 뿐 아니라 정신도 챙겨야 할 것 같죠? 같이 힘냅시다!

페넬로페 2022-03-10 22: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몇 십만표에 일말의 희망을 갖고 있는데 저 사람들은 그까이꺼 깡그리 잊어버리고 무시할 것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2-03-11 09:10   좋아요 3 | URL
총선 때 저력을 다시 보여줘야죠. 그래서 무시가 답이 아니라 더욱 잘못된 지점을 이야기하고 소리높여야할 것 같아요. 소리 없는 아우성은 없습니다!

청아 2022-03-10 23: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 멋져요! 이렇게 근소한 차이가 나왔으니 자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비서실장 인선에 참 어이가 없었지만 더 두고봐야겠죠. 함께 기운내요~^^♡

거리의화가 2022-03-11 09:12   좋아요 3 | URL
네. 만약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고 자만한다면 바로 실패하게 될 겁니다. 주변의 인물들을 고루 뽑아주었으면 좋겠는데... 이제 정말 단임 대통령제가 아닌 새로운 정치 구도로 바뀌는 등 개혁 바람이 불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전자책] 여성혐오, 그 후
이현재 지음 / 들녘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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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적 외부로 취급된 비체들이 벗어나고자 하는 그 공간은 공감과 연대의 장소이기도 하다. 자신을 알기 위해 타인을 보는 것처럼 비체들간의 감응과 참여로 구조적 공간에서 감정의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혐오와 배제에서 벗어나고 차이와 인정의 사회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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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계년사 8
소명출판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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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부터 1907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대표 사건들을 정리해보자.

1906년 2월 17일 밤11시 군부 대신 이근택 집에 자객 세 사람이 뛰어들어와 한 사람이 이근택을 칼로 찌르자 이근택이 촛불을 껐다. 이에 자객들은 이근택을 칼로 머리와 왼쪽 어깨 등 및 팔에 여러 곳에 상처를 입혔다. 이때 안방 근처에 있던 우리나라 병사와 순검과 일본 헌병 및 순사들이 초인종 울리는 소리에 달려왔으나 자객들은 이미 도주한 뒤였다. 이근택은 중상을 입고 한성병원 특별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한달 기간 치료하여 죽지 않게 되었다. 이로부터 박제순 이지용 등 다섯 대신의 집에는 우리나라 병사들이 총을 메고 경계하며 지키고 엄중한 경호를 하게 되었다.

1906년 6월 4일 최익현이 제자 수십 명과 선비 임병찬과 몇몇, 병사 수백 명을 거느리고 의병을 일으켰다. 6월 13일 궁중에서는 궁내부 특진관 정2품 최익현을 해임하고 법부에 명령하여 그를 붙잡아 가두라고 했다. 결국 최익현 임병찬 등 13명이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어 올려지고 많은 사람들에게는 흩어져 돌아가게 되었다. 최익현은 처벌로 쓰시마 섬으로 유배가 보내졌다. 쓰시마 섬에 갇히자 우리나라의 양식과 반찬거리를 마련해 가지고 갔다. 먹을거리가 다 떨어졌는데 일본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가 없어 마침내 단식했다. 최익현의 아들과 조카가 부산으로 돌아와 곡식과 반찬거리를 사가지고 미처 되돌아가기 전 12월 30일 최익현은 숨을 거두었다.

"나 최익현은 비록 세상 돌아가는 것은 잘 모르지만, 나라에 충성하고 남을 사랑하며 믿음을 지키고 의리를 밝히는 도리는 익숙히 익혀 왔습니다. 나라와 인민에 닥친 재앙이 그지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눈으로 보고서, 오직 죽을 자리를 얻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긴 지 오래되었습니다. 수십 명의 동지들과 함께 죽을 것을 결의하고, 장차 병든 몸을 이끌고 서울로 올라가 이토 히로부미, 하세가와 요시미치 등과 한번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을 남김없이 다 하고 죽으려고 합니다. 이에 백성 가운데 함께 죽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또 약간 있습니다." - P42

이 때 재정이 고갈되어, 정부는 일본 흥업은행에서 1천만 원을 빌렸다. 3월 16일 그에 관한 계약을 맺었다.(이자는 매회 1백 원, 연 이자는 6푼 5리. 국내 해관을 담보로 하여 10년을 상환기간으로 하고 5년 내에는 상황을 하지 않으며, 발행가격은 1백 원당 90원만 받기로 했다.) 단지 관리 및 초빙 고용한 일본인들의 봉급 비용에 쓰기 위해서였다. 1907년 1월 국채가 1백30만원이었는데 정부에서 갚을 대책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1월 29일 대구에 사는 전 주사 최상돈은 국민들이 국채 보상을 담당한자는 말을 앞장서서 부르짖었고 서울과 지방의 벼슬아치, 백성들이 그 주장에 호응했다.

전 주서 나인영, 전 주사 이기, 전 의관 윤주찬, 전 주사 오기호 등이 박제순 등을 죽이려 했으나, 실패했다.

나인영은 글을 작성하여 여러 사람들을 격려했다. "여러분! 오늘의 일은 실로 대한의 독립을 유지하는 데 첫째 가는 요체입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 2천만 민중들의 생사가 달린 문제입니다. 있는 힘을 다하고 죽음을 각오하는 뜻으로, 이 다섯 역적들을 처단하여 나라 안의 화근을 제거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된다면 우리들 및 우리 자손들은 독립된 세상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줄줄 흐르는 눈물에 잠기고 뚝뚝 떨어지는 피를 걸러내어 마음을 바쳐 복수를 맹세하고, 엉금엉금 기어와 몸을 숙여 엎드리어, 이처럼 의로운 임무를 혈기와 의협심 그리고 슬기와 용기를 지니고 있는 우리 여러분의 가슴 앞에 내어놓습니다. 여러분! 각자 순결한 애국심을 힘껏 발휘해, 나라를 팔아먹은 흉악하고 완고한한 역적들을 서둘러 처단함으로써, 우리나라로 하여금 세계 위에 독립된 나라로 우뚝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 P69

광무 2년 네덜란드 수도 헤이그 1차 회의가 열려 세계의 전쟁을 없애버리자는 큰 뜻으로 국제분쟁의 평화 처리조약(80조항)을 맺었다. 1907년은 제2차 회의를 여는 때였다. 황제는 5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것을 분하게 여겨 전 의정부 참찬 이상설, 전 평리원 검사 이준을 밀사로 파견했다. 이상설에게 비밀 지령을 주어 헤이그에 가서 일본인이 강제로 맺은 조약을 맺은 것과 일본에 달라붙은 박제순 등이 정부 대신이 되어 우리나라를 억누르고 인민에게 잔인하고 포악하게 군 사실에 대해 만국평화회의에 호소하도록 시켰다. 이상설은 4월 20일 시베리아 철도로 러시아 수도에 이르러, 전 러시아 주재공사관 서기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로 갔다. 러시아 수도에 있던 네덜란드 신문사 통신원이 그 사실을 알고 6월 28일 이 내용을 본사에 전보로 알렸다. 그 신문사에서는 곧바로 한국의 밀사가 헤이그에 온다고 신문에 실었다. 7월 1일 헤이그로부터 미국의 신문사에 전보를 보냈다. 헤이그에 주재하던 일본 공사가 이 소식을 듣고 갖은 방법으로 힘써서 이상설 일행이 평화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준은 이위종에게 평화회의 간부를 방문하여 회의 참석에 대해 말하도록 했으나 간부는 그들의 회의 참석을 허락하지 않았다. 비록 발언권은 허락이 안되었으나 방청은 허락되어 회의장소로 갔다. 그곳에서 이준은 자결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궁중에서 밀사 파견을 이유로 이완용을 크게 꾸짖었다. 이완용은 7월 16일 회의에서 황제를 만나 이번 헤이그 평화회의에 위원을 보내 곤란을 당한 것을 벗기 위한 방책에 대해 말했다. 하나는 광무 9년 11월 17일의 새 조약에 옥새를 찍는 일, 둘은 황제 폐하의 섭정(대리인)을 추천하는 일, 셋은 황제 폐하께서 일본 황제에 직접 사과하러 가는 일이었다.

이완용 등은 황제에게 황태자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일에 대해 아뢰었다. 압박하는 분위기 속에서 황제는 오전 3시에 황태자 대리 명령 조서를 내렸다. 이완용 등은 그제서야 물러갔다. 황제는 수라를 들지 못한지 며칠이 되었고 이날 밤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 대궐 안의 신하들과 대궐 사람들도 모두 잠을 자지 못했다. 이날 밤 11시 온 도성의 인민이 종로에 모여 결사회를 만들고 일곱 대신이 한 날치기 짓에 대한 상소를 적었다. 오전 4시 점포 상인들이 모여 황제가 대리 조서를 비로소 내렸다.

이완용이 이토 히로부미의 지시로 각 대신들과 함께 송병준 사저에 모여 남몰래 의논했다. 1907년 7월 24일 이완용이 이병무와 함께 황제를 만난 후 대궐에서 물러 나와 내각 회의를 열었다. 이완용과 송병준이 황제를 만나고, 대궐에서 물러 나와 통감 관저로 갔다. 임선준 고영희 조중응 이병무가 통감 관저로 가 이완용과 송병준을 기다렸다. 이토 히로부미 및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 외무성 대신 하야시 다다시와 함께 7조항의 협약에 조인했다.

"하나, 한국 정부는 시정의 개선에 관해서 통감의 지도를 받도록 할 일.
둘, 한국 정부의 법령 제정 및 중요한 행정상의 처분은 미리 통감의 승인을 거칠 일.
셋, 한국의 사법 사무는 보통의 행정사무와 구별할 일.
넷, 한국 관리를 임명하고 해임하는 일은 통감의 동의로써 이를 행할 일.
다섯, 한국 정부는 통감이 추천한 일본인을 한국 관리에 임명할 일.
여섯, 한국 정부는 통감의 동의 없이 외국인을 초빙하여 고용하지 않을 일.
일곱, 메이지 37년 8월 23일에 조인한 한일협약 제1항은 폐지할 일."
한일협약 제1항의 내용은 "대한 정부는 대일본 정부가 추천한 일본인 1명을 재정고문으로 대한 정부에 초빙해 고용하되, 재정에 관한 사항은 일체 그의 의견을 묻고 시행할 일." 이었다. 조약의 끝에 기록했다.
광무 11년 7월 24일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 인
통감 후작 이토 히로부미 인

1907년 7월 31일 오전 군부 대신 이병무와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이토 히로부미 통감 관저에 모여 우리나라 군대를 해산하기로 논의해 결정했다. 오후 9시 40분 총리대신 이완용, 법부 대신 조중응이 황제에게 아뢴 뒤에 조서를 내렸는데, 아직은 반포하지 말도록 했다. 8월 1일 7시,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우리나라 각 대대의 영관 위관 장교 및 전직 대장들을 불러모았다. 각 부대 장관은 자기 부대로 돌아가 군사들에게 맨 손으로 훈련원으로 가서 훈련을 하도록 꾀어 서로 통솔하여 갔는데, 일본군이 좌우로 호의하며 갔으니 훈련원에서 해산식 거행을 위한 것이었다. 8시에 일본 장교는 각 부대가 텅빈 틈을 타 전동의 시위 3대대 부대와 정동의 숙위소로 가서 점거하고 9시에 흥화문 앞 징상대 부대를 빼앗고 무기를 모두 거두어들였다.


을사오적에 대한 분노로 인한 줄곧은 상소와 암살 시도. 헤이그 만국회의에 밀사 파견과 그 후폭풍. 한일신협약과 군대 해산. 고종의 강제 퇴위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등장한다.

어느 것 하나 분노하지 않을 것이 없지만 을사오적과 한일신협약을 강제로 맺은 정미칠적의 안하무인은 기가 찰 노릇이었다.
국민을 가벼이 여기고 이토 히로부미라는 권력에 빌붙어 오만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일삼는 무리들에 가슴 속으로는 여러 번 단칼을 날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당시 백성들과 일부 관리도 수없이 그들의 집과 가옥을 불태우고 암살을 시도하기도 하는 등 수많은 행동이 있었다.
결코 가만히 그들 손에 놀아나려하지 않았다. 그들도 백성들의 눈치를 살폈고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왜 아니 그럴까. 가다가 돌 맞아 죽을까봐 두려워한 적도 많았을 것 같다.
실제로 그들은 강제 협약을 맺고 나서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군의 비호 아래 자택과 가족을 단단히 보호했다.

수많은 의병들이 강제 조약과 군대 해산, 고종의 강제 퇴위로 들불처럼 들고 일어났다.
고종은 그들을 보호하지 못했고 순종도 마찬가지였다.
을사늑약 이후에는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와 일부 대신들이 비밀리에 국정을 협의한 내용들을 고종에 통보하여 재가를 받는 식으로 이루어지다보니 그들의 입맛대로 정리될 수 밖에 없었다.

통탄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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