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 전면 개역판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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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가 끝나면, 두 번째 항해가 시작된다. 두 번째가 끝나면 세 번째가 시작되고, 그렇게 영원히 계속된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견딜 수 없는 세상의 노고인 것이다.

읽어본 듯 하다가도 아닌 것도 같은 묘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전에도 읽기를 시도했던 것 같은데 앞부분 몇 페이지만 읽다 그만두지 않았던가 싶다. 그것도 아주 오래 전. 이슈메일이 퀴퀘그를 만나 피쿼드 호를 타게 되기까지 과정이 그랬다. 그 뒤 피쿼드 호를 타고 벌어지는 일들은 솔직히 지난하고 지루한 읽기 과정이었다. 핵심 줄거리는 간단한데 가지가 많은 나무 같은 느낌이랄까.
고래의 분류(향유고래 등), 포경업의 역사, 흰색이 의미하는 바, 고래가 등장하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 바다와 육지의 차이까지... 물론 그 와중에 흥미를 끄는 부분이 있을 때는 덤으로 이런 것을 얻어가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완독하고 나서 느낀 것은 이 책은 한 번쯤은 도전해봐야 할 책이라는 것이다. 영문학 책 중 꼭 읽어야 할 책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어떤 관점에 맞춰 읽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기 때문에 꾸준히 읽기를 시도(도전)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너무 뻔한 클리셰와 해석만 있는 책은 계속 읽힐 수 없을 테니까. 이 책은 역자들의 긴 주해가 있으며 다양한 해석들이 있다. 나는 책의 등장 인물과 상황에 대한 상세한 분석까지 할 자신은 없어서 이성과 감정이 가는대로(내 방식대로) 읽었다.

모비 딕은 눈처럼 새하얗고 주름이 잡혀 있는 이마와 피라미드처럼 높이 솟은 하얀 혹을 가진 고래다. 이런 두드러진 특징을 가지고 있어 바다에서도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먼 거리에서도 고래잡이들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모비 딕이 ‘흰 고래‘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대낮에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바다에서 거품을 만들어내며 모습을 드러낼 때 은하수 같은 포말처럼 아름다우면서도 한편으론 하얀 수의 같기도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앞서 언급했듯 이슈메일은 피쿼드 호를 타고 항해를 하게 되었다. 고기잡이배를 타고 바다를 몇 년간 돌아다니는 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물을 무서워하는 데다가 그 망망대해를 어떻게 몇 년씩이나... 짧게 1~2시간을 이동하는 배에서도 멀미가 날 듯말듯하여 고역인데 말이다. 일반 고기잡이배는 그래도 항해 기간이 좀 짧은데 포경선은 그 기간이 무척 길다. 그런데 이들은 이를 몇 십년동안 몇 회를 반복한다. 한 번 나가면 3~4년은 걸린다고 하니 40년 동안 배를 탄다고 하면 10번을 반복한 게 되려나?

피쿼드 호의 중심 인물은 에이해브 선장이다. 에이해브는 과거 모비 딕으로부터 한쪽 다리를 잃은 후 복수(!)를 위해 고래를 추적한다. 그는 항해를 하면서 만나는 배마다 모비 딕의 행보를 물어본다. 선장은 그 욕망에 집착한다. 마치 인간이 세상을 향해, 자연을 향해, AI(기계)를 향해 (무모할 수 있는) 도전을 하는 것 같다. 마침내 이겨보겠노라고, 내가 쓰러뜨려보겠노라고. 그래서 그의 모비 딕에 대한 추적은 집착과 광기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빌대드, 이슈메일, 퀴퀘그, 펠레그, 스타벅을 비롯한 선원들은 그저 고래를 잡으러 가는 목적이거나 돈을 벌기 위함이거나 등 달랐기에 갈등은 항해를 할수록 더해간다.
모든 악마성-이 모든 악이 미쳐버린 에이해브는 아담 이후 지금까지 모든 인류가 느낀 분노와 증오의 총량을 그 고래의 하얀 혹 위에 쌓아 올려, 마치 자기의 가슴이 대포라도 되는 것처럼 마음 속에서 뜨거워진 포탄을 그곳에다 겨누고 폭발시켰던 것이다.

왜 하필 모비 딕일까, 왜 하필 흰 색의 고래일까 생각했다. 흰색은 여러 함의를 지닌다. 그것은 깨끗함을 상징하기도 하지만(과거 우리 선조들이 입었던 흰색의 한복) 흰 배경 사이에서는 보호색처럼 은폐되기도 하여 눈에 띄지 않음으로써 두려움을 이끌어낸다. 가장 중요한 것은 흰 색이 수의로 널리 쓰인다는 것이다. 죽음의 세계와 가장 가까운 색이라 두려움을 자아내면서도 사후세계와 신-인간을 연결하면서 영적인 힘, 신성함과 숭배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포경선을 타는 선원들은 언제라도 사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죽음을 가깝게 느끼고 준비한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배를 타기 전에는 무사히 그 여정을 끝마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의식을 가지고, 만약 무사히 육지에 닿는다면 남은 날들은 덤으로 사는 인생으로 여길 수 있는 일이다.

사실 인생을 살다 보면 내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다. 내 의지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도 불평하고 한탄하며 감정 낭비를 하여 손해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나. 따지고 보면 에이해브의 집착과 광기를 나 또한 어느 측면에서는 갖고 있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목에 밧줄을 두른 채 태어났다. 하지만 인간들이 조용하고 포착하기 힘들지만 늘 존재하는 삶의 위험들을 깨닫는 것은 삶이 갑자기 죽음으로 급선회할 때뿐이다. 그래서 태어남과 사라짐만이 인간에게 유일한 공통점이 아닐까. 살아가는 모양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결국 태어나고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은 동일하니까.

나는 누가 어떤 종교를 믿든, 그 사람이 자기와 다른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남을 죽이거나 모욕하지 않는 한, 그 사람의 종교에 대해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종교가 정말로 광신적이 되어 그 사람에게 명백한 고통이 되면, 그리하여 결국 우리의 이 지구를 살기 힘든 곳으로 만들어버리면, 그 개인을 구석으로 데려가서 문제점을 따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위처럼 종교적 관용성과 포용성을 주장하는 부분도 있지만 이 책의 주요 흐름은 ‘기독교=문명‘ 이라는 레퍼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세계, 문명과 그 외를 분류하며 차별화하고 계급화, 위계화시키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지금으로서는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게 한다. 특히나 골상학에 대한 신봉은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저 멀리 아메리카와 아시아를 향해 너도 나도 배를 띄웠던 일들이 19세기와 20세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흐름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포경선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여겨진다. 나아가 지금의 자본주의 세계도 위계화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주축국과 식민지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런 측면에서 포경선은 참으로 여러 함의를 지니고 있다고 보여진다.
고래의 남획으로 개체수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알고 있다. 이를 비롯하여 인간의 탐욕으로 들소, 호랑이, 펭귄 등이 지구상에서 많이 사라졌다. 모두 다 인간의 창 끝에 사라진 것들이다. 현재 들끓는 지구의 기후도 이의 영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 책을 완독하며 숙제 하나를 끝낸 기분이 들었다.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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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7-09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도 숙제 같은 책이에요. 몇년 째 책꽂이에서 저를 노려보고 있어요. ㅎㅎ
어쨌든 좋은 책이란 이렇게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할 수 있는 책일테니 이 책도 많은 사람들이 좋다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화가님 글 읽으면서 또 어떤 부분을 생각하며 읽어야 할지도 생각이 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5-07-10 07:5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 숙제 같은 책들이 많죠^^; 저도 책꽂이에 노려보는 책들은 그대로 둔채 책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서(요즘은 그나마 자제한다고 하는데도ㅎㅎ) 민망합니다.
맞아요. 여러 사람이 좋다고 하는데는 이유가 있기 마련인것 같아요. 읽어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5-07-09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을 읽어도 생각이 뻗어나가는 방향은 다르다는게 독서의 재미이며 알라딘에서 글 읽는 재미인 것 같습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은 거리의화가 님 글이라 확실히 감상도 다릅니다. 잘 읽었습니다, 거리의화가 님!

거리의화가 2025-07-10 07:57   좋아요 0 | URL
같은 책을 읽어도 다양한 소감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이곳이지요. 그래서 제가 이곳을 여전히 붙박고 있는 이유겠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희선 2025-07-10 0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몇해 전에 그래픽 노블로 나온 걸로 한번 봤어요 긴 소설로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사람이 자연을 이기려는 것처럼 모비 딕도 자연일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기도 하네요 지금은 이런 걸 보면 그냥 내버려두지 합니다 고래를 많이 잡아서 사라진 게 많으니...


희선

거리의화가 2025-07-10 08:00   좋아요 0 | URL
그래픽 노블로도 있었군요.
인간 대 자연의 싸움으로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너무 뜨거워진 지구를 보니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맘브루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7
R. H. 모레노 두란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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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버지 없는 자는 고통과 향수가 아니라 호기심 때문에 자기 아버지가 누워 있는 곳에 세워진 십자가를 찾는다. 우리 아버지는 너무나 먼 시대의 지시물이라 내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했다. 아버지는 내가 여섯 살 때의 사진과 느낌, 그리고 희미한 기억이 서로 교차하면서 행방불명된 지시물에 불과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사람의 아들이라면서 대표적 본보기로 나를 내세우는 사람들에게 더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주인 행세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 P415


주인공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아버지의 후예라는 위치에서 태어나 아버지란 사람에 대한 궁금증과 전쟁에 대한 의문점을 갖고 관련 연구를 시작한다. 국내외 문서보관소와 도서관의 자료부터 찾는 것을 시작으로 알려진 일들이 과연 진상인가 궁금증이 일면서 사건에 더 파고들게 된다. 하긴 수치로 기록된 통계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 것이며 기록의 사실들이 서로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을테니 참전한 군인들로부터 증언을 들어보자 생각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짐작하겠지만 자료나 보고서에서 기록된 수치적 통계와 참전 용사들의 증언은 일치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로서 기록과 현실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느끼게 된다. 결국 보고서와 증언이 미묘하게 겹치는 공간을 추적하고 빈 공간을 다른 자료를 통해서 교차 분석하는 것만이 가장 가까운 진실에 다가가는 일이 아닌가 싶다. 


전쟁 발발 후 미국을 비롯하여 많은 해외 국가가 참전했다(그 시기와 규모만 다를 뿐). 콜롬비아도 그 중 하나다. 콜롬비아군은 총 두 차례에 걸쳐 한국에 파견되었다. 1951년 5월에 제1파견대가 에이킨 빅토리호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고 휴전이 가까워질 무렵(1953년 3월) 제2파견대가 출발했다. 시기적으로 보면 짐작할 수 있듯 1차 파견대는 실 전투(녹십자 전투, 바르불라 전투, 불모 고지 전투 등)를 겪었으나 제2파견대는 부산에 도착할 무렵 휴전 즈음이 되어 실 전투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당시 콜롬비아 내정은 혼란스러웠다. 명분은 국가를 위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내정의 눈을 외부에 돌리고자 대통령은 준비도 되지 않은 이들을 전쟁터에 내보냈다.

천 명이 넘는 신병들이 레알 거리를 행진했어요. 마치 엄청난 승전보를 울리러 가는 것처럼. 오로지 낙관적인 친구들만, 우리를 보면 적들이 부리나케 숨어버릴 거야, 하고 말했어요. 난 군기 인도식을 거행하면서 대통령이 했던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대통령은 말끝마다 그가 매일 짓밟았으나 검열 때문에 그 누구도 문제 삼지 못했던 단어인 '자유'를 입에 올렸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자유가 범죄인데 머나먼 아시아 국가로 가 자유를 위해 죽으라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 P54

자유를 억압당하는 와중에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나가라니 참 어처구니가 없을 법하다. 이는 콜롬비아가 내정도 어지러웠지만 당시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는 현실이다. 


한국전쟁은 1951년 무렵이 되면 전선이 이미 교착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 2년 동안 격렬한 전투들이 이루어지면서 많은 병사가 희생되었다. 콜롬비아 1파견대군은 (이전과는 달라진 전투적 양상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중국군을 비롯한 북한군과 어려운 전투를 치러야 했다. 미군의 강요와 입김으로 올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은 후방에 있는 미군들을 위해 전방에 나서야 했던 것이다(예를 들어 미군 앨라배마 연대 병사가 뒷정리를 하는 동안 전선의 돌파구를 열고 앞장서는 일 같은 것). 

전쟁을 마주한 어느 병사는 당시 전쟁터의 상황을 이렇게 증언한다. 우리는 한강변의 화천지구를 따라가고 있었고 나는 휘파람을 불었어요. 종종 새의 노랫소리가 들렸고 도로변에 탱자나무가 한 그루 보였지요. 우리는 마치 굶주린 벌레들처럼 바로 열매를 따먹었어요. 저 멀리 버려진 집 몇 채와 폭격 맞은 집들이 보였어요. 이런 평화는 지옥 속의 전원곡이었지요. 그러나 정찰에 나선 날은 모든 게 달랐어요. 광활한 사막, 재로 뒤덮인 평원,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황무지, 정말이지 나무 한 그루 구름 한 점 없었죠. 침묵에 잠긴 참호가 있을 뿐이었지요.(P36) 전쟁이 시작하고 이미 1년이 지난 즈음 한반도는 그야말로 초토화되어 있었다.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생각지도 못했던 통역이었다. 

가끔씩 미군들이 말하고 연락장교가 통역하고 나머지 군인들이 끝없는 논쟁을 벌일 때면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미군들 전략에 오류가 있거나 그것에 반대했기 때문이 아니라, 연락장교가 마음대로 통역하는 바람에 그런 끔찍한 소동이 벌어졌던 거거든요. ... 발단은 미군들이 참호로 들어가 더 넓게 파라는 뜻으로 '호우hoe'하고 지시한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괭이' 혹은 '파다'라는 의미였지만, 우린 자기들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우리에게 욕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호그hog', 그러니까 '돼지'라고 들었던 거죠. - P174

그러고 보니 낯선 땅에 가서 소통을 해야 하는데 통역을 어떻게 했을까 싶은 것이다. 전투에서 여러 개의 전략이 충돌하며 갈등이 일어나고 언제 사고가 터질지 알 수 없는 와중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생각해보면 당황스럽다. 전쟁만큼 소통이 중요한 때가 있을까. 말귀 못아먹어서 작전이 잘못 전달되면 나도 너도 죽고 다 죽는 일인데 허허. 단 한 번도 통역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좀 놀라웠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언급조차 안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을 것 같다.


공감가는 이야기는 역시 미국의 매카시즘, 반공주의였다.  

몇몇 사람들은 서양이란 단어는 미국을 의미한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지요. 파나마 아래쪽과 적도 북부를 끊임없이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 도살장 말입니다. ... 우리가 한국에 관해 뭘 알고 있었을까요? 아무것도 몰랐어요. ... 무조건 복종하는 통역사는 괴로워하는 목소리로 그들을 빨갱이, 빨갱이 개자식들, 빨갱이 살인자라고 칭했지요. - P167 

한국은 당시 매카시즘 광풍의 한복판에 있었다. 어쩌면 미국 국내보다도 전선에서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을 오가며 한편에선 자유주의와 다른 한편에선 공산주의의 길로 나뉘어 있었던 것이다. 자유주의 편에 서지 않으면 살아남을 길이 없었다. 콜롬비아도 같은 이념을 강요받았다. 


(이와 이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 주인공이 홉스봄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으로 흥미로웠다. 홉스봄의 이야기는 지금은 철지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한국이 이념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의 세기가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세기이며 진정한 야만의 극치라는 것은 틀린 소리가 아니라네. 제3차 세계대전은 한국에서 시작됐거든. 많은 사람들이 줄기차게 지칭하던 '냉전'을 말하는 것이네. 한국전쟁은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전쟁이었지만 전쟁터가 아니라 협상 테이블에서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지. 새로운 방식이자 새로운 전략이었어. 미국은 자기들이 한국에서 싸우는 건 북한군이 아니라 중공군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고, 백오십 대의 중공군 비행기들이 사실상 소련인들이 조종하는 러시아 비행기라는 것도 알고 있었네. 그러니까 내 말은 콜롬비아는 사실상 미국의 사주를 받아 한국에 가서 북한군과 싸웠지만, 북한군이 중공군의 사주를 받았다는 것도 모른 채 러시아군과 싸운 꼴이 되었다는 소리야. - P281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 일은 어렵다. 포르노 잡지 사진을 제작 및 보급하여 돌려보는 병사들과 유곽과 유흥업소를 드나드는 일을 무훈처럼 떠벌리는 병사들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전투 고지를 여성의 신체 기관에 빗대어 묘사하는 부분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콜롬비아군은 전투에서 북한군의 공격으로 부모가 사망하여 고아가 된 아이를 부대원으로 들이는데 이들이 보고 배우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기가 찰 노릇이었다. 모성을 찾아, 실연을 찾아 성을 찾아다닌다는 논리가 말이 된다고 보는가? 그저 구실이고 허언이며 집착이자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하지만 이것이 전쟁터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 현실이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하물며 전쟁터 뿐이겠는가). 


파견된 콜롬비아군은 1954년 10월에야 부산을 떠날 수 있었다고 한다. 1953년에 휴전협정이 맺어졌음에도 1년이 훌쩍 지난 기간동안 이들은 전선을 정리하고 봉사하는 일에 시간을 보냈다. 이들이 귀국하자 그야말로 환영 인파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보상을 바라고 떠났던 이들에게 실제로는 원하는 만큼 주어지는 것은 없었다. 살아 돌아온 병사 중 몇몇은 범죄의 세계에 빠지기도 했다. 정부는 군대 파견으로 미국에 성의를 보였고 국민에게 체면 치레를 했지만 이들은 정작 돌아온 것이 작지 않았나 싶다. 물론 명예는 다른 일이겠지만(명예가 밥 먹여주나. 실제적인 것이 있어야지^^;). 


이 책을 통해서 콜롬비아군이 한국에 어떤 배경으로 파견되었고(정치적 상황이라던지) 전쟁터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등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혹시라도 읽고 싶은 분들이 계시다면 지금처럼 찜통 같은 계절에 이 책을 읽는 것은 결코 추천하지 않는다(울화통 터짐 주의. 분노 조절 장애 주의). 


"우리가 서로 죽고 죽이는 건 내가 보기엔 정치적 이유 때문이야."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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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전쟁 1494~1559 - 근대 유럽의 질서를 바꾼 르네상스 유럽 대전
크리스틴 쇼.마이클 말렛 지음, 안민석 옮김 / 미지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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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중세(근세까지도)까지의 역사에서 이탈리아의 지분이 크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세의 역사에서 십자군 전쟁, 종교 개혁, 르네상스까지 이탈리아는 늘 중심에 있었으니까. 서양사를 잘 알지 못해서 틈날 때마다 공부 중이지만 여전히 어렵다. 그래도 서양 중세의 역사(보다는 미술 쪽인 듯)에서 그나마 가장 흥미를 느끼는 부분은 르네상스의 시기인데 이 당시의 미술가들을 유독 좋아하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화가의 그림에는 신이 아닌 인간이 등장했고 인간의 실제 모습처럼 그려졌다. 이탈리아에 갔을 때 라파엘로의 그림을 보았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화가란 그림의 주체에 생동감을 부여해야 함을 그가 그린 그림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달까. 살아 움직이는 그림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던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15세기(1494년)에서 16세기(1559년)에 걸쳐 이탈리아 반도에서 일어난 60년간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기 이탈리아에서는 왜 전쟁이 일어났는가. 긴 십자군 전쟁이 끝나고 난 뒤 이탈리아 반도에 있었던 베네치아, 제노바, 피사는 해상 왕국으로 발돋움하며 세력을 확장중이었다. 이때 이탈리아 왕국에 눈독을 들이며 권리를 주장하는 여러 세력이 있었다. 프랑스 왕과 스페인 왕은 나폴리의 왕위를 두고 계승권을 주장했고 대가 끊긴 밀라노 공국의 왕위를 두고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당시 북부와 중부 이탈리아 영토의 많은 부분이 제국의 봉토였음)이 격돌했다. 당시 이탈리아는 여러 왕국으로 나뉘어 있었다. 대표적으로 나폴리,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 그리고 교황령의 큰 도시 국가가 있는가 하면 이 밖에도 시에나, 루카, 제노바, 페라라를 비롯한 수많은 소국이 존재했다. 소국들은 서로 동맹을 맺고 연합하여 대국을 상대하고 방어했다고 한다. 

주요 참전국은 프랑스, 스페인, 밀라노 공국, 나폴리 왕국이었다. 여기에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발칸반도의 국가의 군인들이 참전하며 전쟁 참전국 범위가 확대되었다. 


전쟁의 흐름을 바꾼 몇 차례의 전투가 있다. 


1503년 벌어진 체리뇰라 전투는 프랑스군의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프랑스 기병과 스위스 창병의 공격에 맞서 스페인은 화승총병으로 맞서며 승리했다. 이 전투는 화승총을 사용하여 승리한 최초의 유럽 전투로 평가되고 스페인의 지휘관이었던 곤살로 데 코르도바였는 위대한 지휘관으로 회자되었다.

1508년부터 1516년까지 이어진 캉브레 동맹 전쟁은 베네치아를 상대로 일어났다. 반베네치아 연합에는 프랑스, 스페인, 신성로마제국, 교황령 등이 동맹에 포함되었다. 전쟁 기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이 전쟁하는 동안 동맹관계가 자주 바뀌어 전쟁의 흐름이 복잡했다. 캉브레 동맹 전쟁 중 아냐델로 전투는 1509년 벌어졌다. 전투에서 베네치아가 프랑스군에 지면서 이탈리아에 소유하고 있던 상당수의 영토를 토해내야 했다. 

1512년 벌어진 라벤나 전투는 프랑스군 vs 스페인-교황군 간에 이루어졌으며 프랑스군이 승리했다. 스페인은 교황을 끌어들였지만 프랑스군에 승리하며 참패의 쓴맛을 봐야했다. 그러나 프랑스군도 지휘관인 가스통 드 푸아가 전투 중 사망하면서 그 빛을 퇴색시켰다. 

1515년 마리냐노 전투는 캉브레 동맹의 마지막 전투로 프랑스군과 스위스군이 격돌했다. 스위스군은 당시 유럽 최고의 보병으로 평가받았기에 프랑스군은 수세에 몰렸다. 그러나 이때 베네치아군이 프랑스군에 합류하면서 프랑스군이 최종적으로 승리했다. 프랑스의 지휘관은 이제 막 국왕이 된 프랑수아 1세였고 그는 이 전투로 자신의 능력을 만방에 알렸다.

1525년 파비아 전투는 신성로마제국군의 압승으로 끝났다. 프랑스는 군이 거의 전멸했을 뿐 아니라 국왕인 프랑수아 1세가 포로가 되는 수모를 겪었다. 전투의 결과 프랑스는 나폴리와 밀라노, 제노바에 대한 권리를 포기한다는 서명을 해야 했다. 


전쟁에 가담 인물도 많고 여러 국가가 엮여있다 보니 솔직히 많이 복잡하다. 게다가 짧지 않은 기간의 전쟁인 만큼 여러 차례의 전투가 벌어지기 때문에 넋놓고 보면 흐름을 놓치기 십상인데 책에서 전투의 배경과 전개 과정, 결과를 충분히 설명해주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책의 앞부분에 전쟁의 주요 등장인물인 스페인-합스부르크(막시밀리안 1세, 카를 5세), 프랑스(루이 12세, 프랑수아 1세, 앙리 2세), 교황령(율리우스 3세, 레오10세, 바오로 3세) 뿐 아니라 그 밖의 인물 중 체사레 보르자, 루도비코 마리아 스포르차, 피에로 데 메디치, 샤를 드 부르봉, 루도비코 마리아 스포르차 등 중심 인물들의 사진이 실려 있어 도움이 된다. 

또한 이탈리아 지도를 전체, 북부, 중부, 남부의 부분도로 나누어 놓아 독서 중 관련 지명이 나올 때마다 찾아볼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


이처럼 이탈리아 전쟁은 서유럽 강대국들이 충돌하며 발생했다. 결국 승리는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가문이 차지했다. 그 결과 이탈리아에서 스페인 황실의 입김이 강해졌다. 전쟁 기술적으로는 보병의 강화, 장창과 화승총의 확산, 대포와 요새의 발전, 직업 군인 제도의 도입 등이 이루어졌다. 또 이탈리아 전쟁에의 교황의 참전은 유럽 전역에서 하나의 제도로서 교황과 교황권이 인식되는 방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교황이 세속적 목적을 위해 기독교 세력들을 상대로 능동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다는 점, 그리고 때때로 자기 가문을 군주적 지위로 격상시키겠다는 목적을 위해 일으킨 군사 원정에 교회 재산을 유용했다는 점 등은 로마 교황청을 향한 환멸을 더욱 자극하여 신교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이는 종교 개혁의 빌미가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쟁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가 알프스 너머로 확산되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데 기여했다. 이는 향후 종교 개혁, 과학 기술의 발전과 맞물리며 서양 근대 문명의 기틀을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띤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전쟁이 중요한데 왜 이제야 제대로 된 한 권의 책으로 정리되어 나왔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이탈리아 전쟁의 역사를 읽으니 비로소 십자군 전쟁과 종교 개혁, 르네상스까지 비로소 한 흐름으로 정리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러 모로 구입하고 읽기를 잘한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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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타자의 텍스트
이정현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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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역사‘에는 수많은 영웅이 존재하고, 전황 분석과 숫자가 가득하다. 아울러 그것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객관적인 자료도 넘쳐난다. 그러나 기억의 전승은 객관적인 사실들을 그대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 모든 기억의 전승은 ‘이야기‘와 ‘이미지‘를 동반한다. 국가가 관리하는 기억에는 개별적인 인간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은 쉽게 잊힌다. 특히 국가의 관리 방향과 다른 기억일수록 빠르게 부정되고 소거된다. - P8
이야기와 이미지는 어떤 방식으로 생성되는가. 문학과 영화 등의 텍스트가 가장 적절한 예시일 것이다. ... 충분히 기억되지 못한 그 결여를 채우려는 노력이 동반되지 않은 채 서술되는 기억은 과거를 단조로운 이미지로 박제할 뿐이다. - P9~10

이 책은 한국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국가들의 당시 역사적 상황과 이를 기록한 문학, 영화 등의 텍스트를 다룬다.

한국전쟁에 직접 참전하지 않았지만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부터 시작된 미소의 갈등으로 전후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입장에서 끌어들여야만 하는 국가였다. 소련이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참전하며 아시아에 관여하고 미국이 힘을 실었던 국민당이 공산당에게 밀리면서 미국은 소련과의 힘의 싸움에서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일본은 아시아를 침략한 제국주의적 과오를 잊고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냉전 초기에는 일본 사회를 비판적으로 응시하며 의견을 내는 지식인들이 있었고 직접 운동에 뛰어든 청년들도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동력은 떨어졌고 비판의 목소리는 지속되지 못했다.
오에 겐자부로 초기 작품은 전후 일본 청년의 공허함을 묘사했다면 오구마 에이지, 존 다우어 같은 학자들은 전후 일본 사회의 변화에 주목했다. 일본에 강제로 편입된 오키나와는 태평양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곳이다. 이후에도 미국의 기지로 전용되면서 상당한 인적, 물적 피해를 입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일본에 지배당하고 이후에는 미국에 의해 여러 피해를 입었기에 특히나 우리와 비슷한 역사적 시간을 거쳤다. 때문에 관련 텍스트를 읽어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같다.

중국은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 부르며 매해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당시 중국 국민들에게 전쟁이 미국과의 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버텨 자긍심을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면 오늘날에는 미중 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자국민을 끌어모으는 도화선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 포로 협상에서 중국군의 2/3 이상이 타이완행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중국 정부를 불편하게 했고 (당연히) 공식적으로 이 진실을 거론하지 않았다. 하진의 <전쟁쓰레기>는 거제수용소에서 친공 포로와 반공 포로로 나뉘어 있던 상황에서 국민당 장교 출신이던 주인공이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상황에 대해 다루고 있다. 최인훈의 <광장>과 비슷한 구도에서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고 상황이 전개될지 궁금하다.
중국의 참전으로 타이완은 미국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었던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 후에 중국은 타이완을 여러 번 도발함으로써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타이완은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에는 미국의 보호를 받으며 냉전기를 거쳤기에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전쟁을 다룬 타이완 텍스트는 천잉전의 <충효공원>에 대해서만 나와 있는데 그만큼 국내에 번역된 작품이 별로 없다. 다만 최근 타이완 작가들의 작품이 국내에 활발하게 소개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것 같다.

2차 대전 후부터 서서히 시작한 미소간 대립은 소련이 원자폭탄을 개발하는데 성공하고 중국 내전에서 마오쩌둥이 승리하면서 미국은 위기 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여기에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국은 곧바로 전쟁에 개입한다. 소련은 암묵적이지만 적극적으로 한국전쟁에 개입했고 중국은 많은 병사를 실전에 투입하면서 전쟁이 장기화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전쟁은 무엇보다 미국의 매카시즘 광풍과 엮이면서 반공 정치 투쟁을 심화시켜 정치계 뿐 아니라 문화, 예술업계 등에 몸담고 있던 사람들이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에요.‘란 사상 검증을 강요받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전쟁에 개입한 미국 작가의 텍스트에 정작 한국전쟁은 갑자기 떠밀려 휘말린 전쟁처럼 부차적으로 다뤄졌다. 필립 로스의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닥터로의 <다니엘서>는 매카시즘의 광풍을 잘 그린 텍스트라고 한다.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한 경험이 있는 제임스 설터스의 <사냥꾼들>은 공중에서 한국전쟁을 겪은 미군의 이야기를 그린다. 토니 모리슨의 <Home>은 전쟁의 상처 뿐 아니라 인종 차별 문제까지 함께 다룬다. 제인 앤 필립스의 <Lark & Termite>은 노근리 학살 사건을 다룬다니 관심이 가는데 둘 다 번역서는 찾아보니 없는 것 같아서(누가 번역 좀) 아쉽다. 폴 윤의 <스노우 헌터스>는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닌 이후 세대가 이방인의 시선에서 한국전쟁을 다루고 있는 텍스트다.

이 밖에도 한국전쟁 관련하여 프랑스, 독일, 영국, 콜롬비아의 역사와 문학 텍스트를 다룬다는 것이 흥미롭다. 특히 콜롬비아는 남미에서 유일하게 참전한 국가다. 당시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았던 콜롬비아는 미국이 마셜플랜으로 유럽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처럼 자신들에게도 그렇게 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군사적인 요구만 늘어나자 국민들의 반미 감정이 고조되었다고 한다. 이에 미국이 경제 문제 해결을 협력하는 제스쳐를 취한다. 콜롬비아는 한국전쟁에 참전함으로써 미국과의 관계 개선 및 국가 안정에 도움을 받고자 했다. 그러나 전쟁에 참전했던 병사들은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렸고 정부의 지원도 딱히 없어서 빈곤에 내몰렸다고 한다. 모레노 두란의 <맘브루>가 번역서로 나와 있는데 읽기는 쉽지 않을 것 같지만 도서관에 대출해서 조만간 읽으려고 한다.

몇 작품만 언급했지만 이를 비롯하여 많은 텍스트들을 다루고 있다. 

공식적인 역사에서 언급하지 않은 많은 목소리들이 이처럼 텍스트에 기록되어 있다. 물론 이들의 언급과 기억도 축소, 과장되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할 것이지만 물질적인 숫자로만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역사라는 점은 분명해보인다. 묵혔던 책을 이제야 끝내서 홀가분한데 읽을 책은 더 많아졌다. 즐거운 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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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5-06-26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즐거운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아요! 저도 궁금해지는 책이 많네요. 전 요즘 책을 거의 안 읽고 있지만…

거리의화가 2025-06-26 21:13   좋아요 1 | URL
수하 님도 관심이 갈만한 책이 많을 것 같아요. 책이야 읽을 수 있는 마음이 들 때 읽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몸과 마음이 준비가 되어야 책도 읽히는 것 같아서요. 축축한 장마 기간인데 건강 잘 챙기시길^^

건수하 2025-06-27 00:21   좋아요 0 | URL
앉아있을 수 있는 시간이 짧다보니 누워서 폰을 보게 되네요 ^^ 화가님 말씀대로 몸과 마음이 다 준비된 때가 오겠지요? :)

희선 2025-06-29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전쟁도 세계사에 들어가기도 하겠습니다 한국전쟁으로 다른 나라는 어땠는지를 볼 수 있는 책도 있군요 가깝든 멀든 세계는 이어져 있기도 하니 영향이 아주 없지는 않겠습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자기 나라만 생각하지 않아야 할 텐데... 이런 생각해도 하는 건 거의 없네요 거리의화가 님은 관심을 가지고 책을 만나시는군요

유월 하루 남았습니다 2025년 반이 다 가겠습니다 거리의화가 님 여름철 건강 조심하시고 하루 남았지만, 칠월 반갑게 맞이하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5-06-30 21:46   좋아요 0 | URL
요즘은 한국사라도 주변 국가와의 역사를 다루며 관련성을 짓는 시도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일국사를 읽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죠.
6월도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았습니다. 희선 님도 7월 반갑게 맞이하시기를요!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홍한별 지음 / 위고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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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의 일은 무엇보다도 침묵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일이다. 첫째로 나의 언어가 아니라서 들리지 않던 침묵하는 말이 들리게 한다. 번역가는 에코처럼 숲속 깊이 숨어 있어 눈에 보이지 않고 나르키소스가 먼저 입을 열지 않으면 말을 하지 못하지만, 나르키소스의 혼잣말을 멀리,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전한다. 또 번역가는 원저자의 언어만 번역하는 게 아니라 침묵까지 번역한다. 번역은 언어의 빈틈을 다룬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발생하는 의미를 읽고, 그 의미를 번역된 글의 여백에 눈에 보이지 않게 다시 침묵으로 담는다.

한 분야에서 꾸준히 자신의 길을 밟아나가는 사람들에게 눈길이 가는 편이다. 작가는 번역가의 길에 들어선 후 20여 년 넘게 꾸준히 그 일을 해왔다. 그 열정과 노력만으로 이미 대단한데 그 일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결코 계속 할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하는 작가의 고백이 인상적이었다.

작가가 어떻게 해서 번역가의 일을 하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물론 자신이 선택한 이유도 있겠지만 역시 주변에 영향을 받을 만한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가 한국전쟁 당시 미군과 부딪쳤을 때 잡혀갈 뻔한 위기에서 자초지종을 영어로 설명하여 자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구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일로 아버지는 오히려 관련 일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좋은 기회가 된 셈이다. 그 시절 아버지의 안목과 혜안이 탁월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자구적으로 찾아 나가셨던 것이니까. 아무튼 놀라웠다.

번역가는 유독 호평보다는 혹평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번역이 무난하거나 좋을 때는 별 말을 하지 않지만 그 반대라면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번역서에는 번역에 관련된 평이 상당수를 차지하니 번역가들은 다른 번역가나 독자의 의견에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번역가는 늘 직역과 의역 사이에서 고민하며 선택의 기로에 선다. 발터 벤야민 같은 경우는 원문에 대한 직역을 해야 한다는 쪽이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원문이 어떤 장르에 속하느냐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문학 같은 경우는 메시지 전달에 주력해야 하는 만큼 독자의 이해에 맞춰 의역 쪽에 가깝게 번역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면 문학(특히 시)은 직역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제국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근대화를 경험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문화를 수용하는 입장에서 번역의 원문 충실성을 중요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말한대로 온라인 서점이 성장하면서부터는 독자 리뷰나 블로그 등을 통해 오역 논쟁이 벌어지니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AI번역까지 등장했다. 물론 AI 번역에 대해서는 작가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기계 번역은 방대햔 양의 통계 데이터를 바탕으로 무난한 번역은 가능할지 몰라도 특별하고 유일한 번역이 나오기 어렵다는 사실 말이다.

나는 시대에 따라 문화가 변하는 것처럼 언어도 멈춰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번역서도 시대의 요구사항에 따라 맞춰 변화해야 한다고 여긴다.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은 지금까지의 번역 연구가 서로 다른 언어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을 중대한 문제로 지적했다. 실제로 식민화 과정에서 번역이 지배자의 세계관이나 통치 체계를 강제하고 식민지의 언어와 문화를 왜곡하거나 삭제하는 등의 역할을 했음에도 번역 연구는 그 점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문화의 다양성이 요구되는 시대에 예전처럼 위계에 따른 묘사를 답습한다면 그 번역서는 낡은 것으로 치부될 것이다.
이제는 한국어 책이 외국에 번역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라 스미스가 논쟁에 휘말린 것처럼 과거의 이론이나 가부장적인 사고를 담고 있는 책을 번역할 때는 오늘날에 맞춰 변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언어의 본질은 변화다. 언어는 고정되지 않는다.

번역에 대한 역사(번역의 방법에 대한 차이), 번역가의 입장에 대한 이해 등을 충실히 담고 있다. 번역서를 많이 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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