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공의회를 소집하라고 아우성입니다. 그러나 공의회를 소집한들 교회 우두머리들의 현 상태에서 도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공의회를 통해 교회를 개혁한다는 건 인간의 힘으로는 더 이상 안 되는 일이고,
다만 하느님께서 임하사 우리가 모르는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도우셔야 합니다." 그러나 그 설교자가 꿈도 꿔보지 못한 방식으로 그 도움은 이미 오고 있었다. 그 "새 지식"(New Learning)은 교회를 개혁하게 될 그 거대한 운동을 향해인간들을 더디지만 착실하게 인도하고 있었다.
메디치가가 학문 증진을 위해 쏟은 노력에 힘입어 발굴된 오래 전의 저서들이 모든 인류의 공동재산이 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계시와 같았다. - P210

정세가 이렇게 돌아가게 만든 사건은 프랑스의 샤를 8세가 나폴리 왕국을 치기 위해 이탈리아를 침공한 사건이었다. 만약 위대한 자 로렌초가 여전히이탈리아 정계의 중추에 서 있었다면 틀림없이 이 침공을 막기 위한 묘책을강구했겠지만, 그럴지라도 조만간 비슷한 결과들이 잇달아 발생했을 것이다.
이탈리아 제국의 세력이 기울던 때 공교롭게도 다른 나라들의 세력이 팽창함으로써 이탈리아에 대한 외국의 침공이 언제고 밀어닥치고 말 것이 필지의 사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로써 이제 우리는 유럽 정계를 이끌고 가던 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 나폴리, 로마를 제치고 프랑스, 스페인, 독일, 영국이 유럽을 주도함으로써 그런 변화가 일기 시작하던 때로 접어들게 된다. - P256

루터가 한 일은 이미 내연성을 가진 물질들에 불을 붙인 것이었다. 그리고 이 ‘새 지식‘은 주로 메디치가에 의해서 태어나고 양육되고 보호되고 살이 붙었다. - P336

실로 여러 세기가 지나면서 로마 교회의 수장이 이런 식으로 말하거나 이런 정조에 고취된 사례는 다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부패했던 그 시대에서 이런 유형의 교황은 모든 정파에 혐오의 대상이었다. 자기들의 교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비판한 루터의 추종자들, 교황이 올바로 지적했듯이 그 문제를 정치 목적에 이용할 수 있을 때만 관심을 가졌던 독일 제후들, 애지중지하던 모든 것을 앗아간 개혁을 증오한 추기경들, 그리고 누구보다도 막대한 자금을 뿌리면서 도덕성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는 타입의 교황을 사랑하던 로마인들에게 하드리아누스 6세는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추기경들과 로마인들은 하드리아누스 6세와 그의 통치 방식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역겨워했다. 이 극단에서 저 극단으로, 편한 것을 추구하고 사치스럽고 관대 - P345

했던 레오에게서 엄격한 개혁자 하드리아누스로 바뀐 것은 너무나 극단적인대조였다. 교회가 개혁이 필요함을 시인하고 개혁을 단행하고 있는 교황이란그들로서는 지지할 수 없는 존재였다. - P346

클레멘스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황제와 분쟁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성하께서는 황제와의 우호 관계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공의회를 막아준다고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성하께서는 내키는 대로 자신을 지배하고 끌고가던황제에 대한 사랑이 조금도 없으면서도 황제가 무슨 결정을 하든 그것이 내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싫어하는 내색 한 번 못한 채 동의했습니다. 이 모든게 다 공의회를 두려워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황제가, 그리고 그보다 한층 더 공의회에 대한 두려움이 그를 꽉 사로잡고 있던 이런 고통스런상황, 사실상 노예 상태라고 할 만한 상황을 자각하고서, 그는 매우 기독교적인왕(프랑수아 1세)에게 더욱 동정을 얻을만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공작딸의 결혼은 그런 이유에서 계획한 것입니다. 성하의 생각은 자기 조카딸을 프랑스 왕의 아들과 결혼시킴으로써 자기 가문과 자기 자신의 문제, 특히그토록 두려워하던 공의회 문제를 뒷받침할 두 개의 기둥을 놓는 데 있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종교적 분쟁을 어느 정도 가라앉힐 수 있고, 적어도 두려운공의회를 피할 수 있다는 기대가 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 P386

카테리나가 이해받지 못했다는 것은 물론이다. 그녀가 추진하려고 한 노선은 그 시대의 수준을 몇백 년 앞선 것이었다. 그것은 오늘날의 입헌 군주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2백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유럽의 모든 나라에 도래한 모든 종교에 대한 평등한 관용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카테리나가 화해를 이끌어 내기 위해 방법이란 방법은 다 사용했다. 양 진영을 다 만족시킬만한 조치들을 취했다. 로마 가톨릭 교도들뿐 아니라 프로테스탄트교도들도관리로 기용했다. 기즈의 공작과 콩데의 제후 같은 철천지 원수들에게 서로화해의 악수를 하게 만들었다. 시녀도 로마 가톨릭 교도만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교도들 사이에서도 많이 선택했다. 1555년에는 프랑스에 프로테스탄트교회가 하나뿐이었으나, 6년 뒤에는 그 수가 2천 개로 늘었다. 그러나 프랑스가 그런 상태에 처하게 되자 중도 노선은 인기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 처하게되면 중도 노선을 취하는 사람이 ‘미온적 분자‘라는 평가를 받게 마련이다. - P449

정치에서 자유의 정신이란 자연히 종교 자유 사상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카테리나 측에서 이 정신으로 거둔 한 가지 결실은 대단히 돋보이는 것이었다. 이는 종교재판소의 공포가 얼마나 위력적이었는지를 기억할 때, 종교재판소가 주변의 모든 나라들 - 스페인, 네덜란드, 그리고 그밖의 모든 로마 가톨릭 국가들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던 상황에서 카테리나 데 메디치가 평생 로마 가톨릭 신앙을 프랑스의 국교로 삼기를 과감히 거부했다는 사실만큼 카테리나 데 메디치에게 호감을 갖게 하는 것도 없다. 이 일로 카테리나는 교황과 광적인 스페인의 펠리페 2세에게 증오의 대상이었는데, 비빌 언덕조차 없던 프랑스가 이들의 복수를 떨쳐 버릴 수 있었던 데에는 카테리나가 ‘표리부동‘하다는 숱한 비판을 받아가며 펼친 외교에 힘입은 바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테리나는 이 점에서는 무쇠와 같았고,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참혹한 고문과 죽음에서 보호해 준 유일한 은신처였다. 주변 나라들에서이런 이유로 목숨이 위태로워진 사람들이 카테리나에게 와서 보호를 요청하고 실제로 보호를 받은 경우를 거듭해서 보게 된다. - P502

메디치가가 맞이한 유일한 스페인계 여성인 엘레오노라 디 톨레도가문이 외국에서 맞이한 여성들은 그녀를 빼놓고는 모두 프랑스나 오스트리아계였다는 그 가문의 역사에서 그녀가 실제로 받은 지위보다 훨씬 더 유력한 지위를 차지할 가치가 있다. 1539-1549년에 코시모가 권력의 기반을 다질 때 그녀가 발휘한 역할은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엘레오노라디 톨레도는 그 가문의 제2설립자로 간주돼야 옳다. 코시모가 약관의 나이에재산도 가문도 친구도, 그가 장악한 취약한 권좌를 뒷받침할 영향력도 없을때 그녀가 그에게 제공해 준 지원은 지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의지원이 없었다면 그는 얼마 못 가서 권좌를 잃었을 것이고 목숨마저 부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코시모가 과연 어떻게 그처럼 한미한 상태에서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그렇게 확고히 권력 기반을 다졌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해왔지만, 그 비결은 엘레오노라 디 톨레도에게 있다. - P603

코시모 1세는 이렇게 그가 맡은 것과 남긴 것을 비교해야만 올바로 평가할수 있다. 그는 능력 면에서 일찍이 피렌체를 당대의 모든 경쟁국들의 우위에서게 하고, 이탈리아의 예술과 학문의 수도로 만든 메디치가 조상들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이러한 능력뿐 아니라 관대하고 숭고하고, 흔쾌히 용서하고 적에게 자비를 베풀고, 품행이 단정하고 백성을 동정하는 품성들을 아울러 겸비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품성들과 거리가 멀었고, 그의 통치는 철권을 휘두른 전제군주의 통치였다. - P614

여러 세기에 걸쳐곤팔로니에레를 포함하여 국가의 고위 관직을 차지해 온 피렌체의 유서깊은가문들 중에서 코시모 정권에 비서로나마 한 사람이라도 등용시킨 가문은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강렬한 적개심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있는 일이다. 당사자들은 그런 정서를 감히 표출하지는 못했지만 그럴수록안으로 더욱 깊이 새겼다. 차라리 ‘자유‘를 빼앗아가 내전을 겪었더라면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용서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피렌체의 유력한 - P660

가문들이 몇 세대에 걸쳐 지녀온 모든 권력과 중요성을 한순간에 앗아간 일은 용서를 받을 수 없었다. 그것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였다. 메디치가는 다른 가문들과 다를 바 없이 무흠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혹시 천사들이었을지라도 공화정이 군주정으로 바뀌었다는 단순한 사실로 인한 적개심만으로도 그들에게 가해진 모든 비판들이 일어나기에 충분했다.
그러므로 메디치가가 황제들과 교황들의 지원을 받아 왕가가 됨으로써 공공연한 공격이 더 이상 성공할 가능성이 사라지자, 이 다른 가문들은 겉으로는 어쩔 수 없이 복종하면서도 속으로는 이 가문이 성취한 고지에 강한 질투심을 쌓아갔고, 그 질투심을 더 이상 노골적인 공격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메디치가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범죄 이야기들을 은밀히 유포함으로써 표출했다. - P661

페르디난도 2세의 재위 말기에는 왕자 레오폴드의 제안으로 두동생 조반니 카를로와 레오폴드 이들은 가문의 공통 재산이었던 그림들과무관하게 각각 방대한 분량의 그림들과 그밖의 다수의 예술품들을 소장했다-는 자신의 소장품들을 다 내놓아 피티 미술관과 우피치 미술관을 조성했는데, 조반니 카를로가 소장하고 있던 예술품들은 주로 대공 궁전의 미술 - P710

관(피티 미술관)을 조성했고, 레오폴드가 소장하고 있던 예술품들은 우피치 미술관을 조성했다. 동시에 페르디난도는 동생들이 내놓은 이 예술품들에다 자신이 가문의 수장으로 물려받은 그림들과 아내 비토리아 델라 로베레와 함께우르비노에서 구한 그림들을 덧붙였다. - P711

메디치가는 사라졌으나 그들의 업적은 살아 있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모든 것들 중에서 그들의 마지막 행위인 증여를 통해서 온세계가 즐기는 것과, 오래 전 그 가문의 설립자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나라에 기증하도록 심어 놓은, 심지어 부당과 좌절감 속에서 고통을 당할 때조차 그렇게 하도록 심어 놓은 그 가문의 전통과 원칙들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
오늘날의 어느 이탈리아 저자는 이 행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이 행위로 공주 안나마리아는 그 나라에 가장 중요한 예술품들을 헤아릴수 없이 확보해 줌으로써 이탈리아에게 영원히 쇠하지 않는 칭호를 얻어 주었다. 그것은 실로 그녀의 조상들이 저지른 많은 과오들을 상쇄하고 덮을 가치가 있는 행위였다." - P7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며칠만에 책을 샀다.

기존에 산 책도 아직 다 못 읽고 있지만 책을 구입하는 것만큼 기분을 잠시 전환시키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이번에는 한 권의 신간만 빼놓고는 장바구니에 계속 몇 달째(?) 담겨 있는 책들 중에서 골랐다.



이 시리즈의 신간이 나올 때 눈여겨보곤 하는데 이번에 낸시 프레이저가 나왔길래 고민하다 구입했다.

얼마 전부터 사상의 좌반구를 읽고 있는데(아직 1부 밖에 안 읽어서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지금까지는 기대 이상으로 재밌음) 그 책에서도 낸시 프레이저가 언급된다.

이 시리즈의 장점은 무엇보다 사상가의 약력과 주요 사상을 빠르게 훓어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저자에 관심이 간다고 나온 책을 모두 섭렵할 수는 없으니 이런 책을 통해서 저자의 살아온 길을 확인하고 애정이 간다면 관련 책을 더 구입하는 길로 나아가면 되겠다.



<한국 사회과학의 기원>은 한국의 자본주의 기본 방향이 설정되는 1950년대 전후 사회의 동력을 사상사적 관점으로 접근한다. 키워드는 근대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다. 오래 전부터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구입을 망설이고 있었는데 결정적으로 함께 책을 읽는 분들에게서 적극 추천을 받은 바 있었고, 관련 서평을 읽어보며 구입을 결정했다.

   

<사쓰마와 시마즈 히사미쓰>는 메이지 유신의 승자인 사쓰마 가의 입장에서 바라본 역사를 제시한다. 막부 말기 사쓰마 가는 당시 교토 정국을 주도하고 있었으며 시마즈 히마미쓰가 국부였다. 해당 역사에 대한 확장적 관점을 줄 수 있다고 함께 책을 읽는 분에게서 조언을 얻기도 했다. 관련하여 이전에 몇 권의 책을 읽었던 적이 있는데 비교해보며 읽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일리아스의 등장 인물인 파트로클로스를 중심 인물로 하여 그려낸 소설이다. 일리아스를 각색한 소설이라는 것이 먼저 흥미로웠고 일리아스를 읽기 전후로 이 책을 읽어보면 또 다른 시선을 던져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오래 전 일리아스를 읽었는데 이 책을 읽을 때쯤 일리아스도 재독해봐야겠다.


<붉은 혈맹, 평양, 하노이 그리고 베트남전쟁>은 사실 언제 무엇 때문에 담아두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아무래도 어떤 칼럼이나 책을 통해서 담았을텐데 이놈의 기억력... 이제는 장바구니에 담을 때도 무엇 때문에 담았는지 기록을 해놓아야 할 것 같다-_-



6월 중순 쯤부터 새 필라테스 코치 선생님을 만나 1:1 수업을 시작했다.

이번 선생님은 이전 선생님보다 텐션이 높으셔서 약간 기빨리는 것이 있지만 운동을 세심하게 잘 지도해주시는 것 같다.

운동이 목적이니 운동을 잘 가르쳐주시면 됐지 싶다. 계속 수업을 진행하면 어색함도 나아지고 적응할 수 있겠지.

다행히 운동할 때 자세가 계속 나아지고 있다고. 선생님께서 스스로를 의심하지 말고 운동하라고 하셨다(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못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매사 회의하고 의심하는 습관이 있는 것이 운동에도 스며 있나보다. 허허...

주중에 2회 수업을 하는데 퇴근 후 하니까 하루가 정말 빨리 가는 느낌이다. 때문에 주중에는 거의 책 읽을 시간을 내기 어렵다.

2주째 주말에 하루는 근력운동, 또 다른 하루는 유산소운동을 진행하고 있는데 힘들기는 하지만 뿌듯하기도 하다. 

개인 운동을 하는 습관을 들여야 나중에 선생님이 없을 때도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될테니까.



7월부터 불볕 더위가 시작되었는데 지난 주말부터 비가 내리더니 그나마 날이 좀 시원한 듯 싶다.

옆지기는 며칠 전 장염에 걸려서는 고생을 하다 이제 겨우 나아졌다(다른 건 다 참을만했는데 커피 못 마시는 것이 고역이었다고 한다). 다들 건강 유의하시기를 바란다. 



피에쓰)

매년 알라딘 당신의 독서 기록을 확인할 때면 눈여겨보는 것은 좋아하는 책들의 분야다. 올해는 이렇게 나왔는데 예상한 대로의 순위인 것 같다. 


1위

한국근현대사

2위

여성학/젠더

3위

한국소설

4위

중국사

5위

중국사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5-07-16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는 어릴 때 그림책을 너무 많이 사서 1위 어린이, 그림책을 넘어설수가 없습니다. 그림책 안산지 15년은 넘은거 같은데 아직도 그림책이 1위예요. ㅎㅎ
 

폴 길로이, 듀 보이스
포스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성장의 ‘장기파동‘이 나타남에 따라 프랑스에서는 이놈이 가속화하고, 삶의 질이 높아지고, 여가가 일반화하고, 특히 세르주 말레serge Mallet와 알랭 투렌 AlainTouraine 이 분석한 ‘신노동자계급‘이 등장했다. 고등교육의 대중화는 주관적으로 인식되는 사회적 기회와 실질적인 사회적 기회의 격차를 두드러지게 했다. ‘소외‘라는 감정은 이 격차 속에 존재했다. - P72

‘주요한 전선‘은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부차적 전선‘은 크게 확장됐다.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 투쟁(‘제2의 물결‘ 페미니즘), 민족해방운동, 동성애자 운동,
이제 막 태동한 정치생태학écologic politique 이 눈에 띈다. 이런 전선은 경제적 억압의 중심성을 약화하고, ‘착취‘ 개념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그리하여 ‘소외‘ 개념이 그 역할을 하게 된다. - P74

구조주의 패러다임은 1960~1970년대의 이론적 계기‘moment‘를 떠받치던 지주 가운데 하나였다." 이후 수십 년간 구조주의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으며 비판이론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마르크스주의와 함께 구조주의는 모든 사상 부문에 영향을 끼치고 다른 흐름들과 매우 체계적으로 ‘교배‘된 유일한 흐름이다. 마르크스주의적페미니즘, 생태학, 문학 연구가 존재하는 것처럼 구조주의의 영향을받은 페미니즘, 생태학, 문학 연구가 존재한다. - P87

1960~1970년대 비판사상은 두 가지 주요한 특징이 있다. 하나는 해방 주체의 다양화, 다른 하나는 권력에 대한 ‘탈중심적‘ 접근을 위해 ‘국가중심적‘ 권력개념을 점진적으로 포기한 것이다. 이런 특징은 당시 전통적인 노동자계급의 정치적·노동조합적 기구가 겪은 위기의 결과인 동시에, 특히 - P97

페미니즘·반식민주의·생태학 주변에서 형성된 ‘부차적 전선‘의 증가에서도 유래한다. 그런데 이런 특징은 1990년대 후반에 출현한 오늘날의 비판이론에서도 볼 수 있다. - P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동자와 지식인 거리가 멀어진 이유. 1920년대 후반 소련과 공산당의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성격이 정해지면서.
추상적 지식의 전개. 현장과는 멀어짐. 지식인의 정치적 고립은 점점 더 추상적인 분석으로 이끌어.

로자 룩셈부르크 사상에 대해 알아보고 그것이 식민지 조선에 어떤 방식으로 수용되었는지 정리할 것.

비판이론은 대부분 대학교수인데 미국 대학은 개방성이 있어 열려 있기 때문에 많은 지식인들이 자리를 옮겼다. 정체성 정치로 억압받는 소수자에 적합한 사유 전통이 만들어짐.

사상의 지리학이라는 것이, 이 경우에는 비판사상의 지리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고전 마르크스주의를 중요하게 발전시킨 것은 중유럽과 동유럽 사상가들이었다. 그러다 이쪽 대륙에서 스탈린주의화가 진행되며 이후 이론 형성이 차단되자, 사상의 구심점이 서유럽으로 옮겨 갔다. 이 사회적 공간에서 한동안, 즉 반세기 동안 비판적인 지적 생산물이 만들어졌다. 1980년대 동안에는 유럽 대륙에서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비판이 쇠퇴하고, 또 정기간행물 뉴 레프트 리뷰 - P32

New Left Review』 『세미오텍스트Semiotext(e)』 『텔로스Telos』 『뉴 저먼 크리틱New German Critique』 『이론과 사회Theory and Society』 『크리티컬 인콰이어리Critical Inquiry』를 중심으로 지적이고 역동적인 활동이 이뤄짐으로써 비판의 중심이 영미권으로 점차 옮겨 갔다. 이처럼 비판이론은 역사적으로 비판이론이 거의 활발하지 않았던 곳에서 매우 활발히 전개됐다. - P33

비판이론은 사상이 국제적으로 유통되는 일반 체제를 따른다. 파스칼카사노바 Pascale Casanova의 말처럼 "문학의 세계 공화국"이 있다면, ‘비판이론의 세계 공화국‘도 있다. 이 공화국은 동질적이지 않다. 모든 지역이 지적 생산에 공평하게 기여하진 않는다는 점에서 ‘불균등한 발전‘ 형태가 이 공화국을 지배한다. 어느 한 지역의 이론생산에 영향을미치는 여러 결정적 요인들이 있겠지만, 특히 대학 체계의 성격, 경제발전의 정도, 사회운동의 효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지역 격차가 명백히 존재함에도, 오늘날에는 세계적 차원에서 비판사상의 생산과 유통 조건이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 P47

신비판이론의 중요한 특징은 그 내부에서 마르크스주의가 헤게모니를 상실했다는 점이다. 통념과 달리 마르크스주의는 오늘날 확실히 살아 있는 패러다임이다. 동시대 비판이론가 가운데 가장 뛰어난이들 상당수가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표방한다. 이 전통은 비판이론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사회과학 내부에서도 여전히 활발하다. 수 - P53

1990년대 후반 비판사상이 부활했다는 것이 ‘패배‘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뜻은 아니다. 급진 좌파는 오늘날 확실히 방어 태세를 갖춘다. 군사적 패배나 운동 경기의 패배와 정치적 패배가다른 것은, 정치적 패배에는 정해진 끝이 없기 때문이다. 군사적 대치상황에서 무력관계는 어느 한 교전국에 유리한 방식으로 언젠가는변한다. 그러면 전투는 끝이 난다. 운동 경기에서는 경기 시간이 종료함에 따라 패배의 규모가 언제나 제한된다. 반면 정치 영역에서는 패배가 무한히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권리‘ 같은노동운동의 성과가 무한히 파괴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비판사상의부활을 두고 뭐라 말하건, 그런 변수만은 시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한다. 신비판이론은 그 변수에 상당 부분 종속되어 있다. - P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