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쇼샤 페이지터너스 3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지음, 정영문 옮김 / 빛소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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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7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바르샤바가 배경인 이야기를 읽다 보니 단치히도 몇 번 나왔다. 양철북 영화와 소설을 통해 알게된 지명이지만 독일어로 번역된 그 도시의 이름을 보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김애란 산문집에서 그단스크라는 폴란드어 발음을 알게 된 후로 그렇다. 이디시어와 폴란드어를 섞어 쓰던 이야기 속 유대인들은 단치히, 했을까, 아마도 그단스크, 했겠지, 번역할 때 병기라도 하든가 신경써 주면 좋겠다.
그러니까 서울이 등장하는 소설에 자꾸 케이세이, 하면 빡치지 않을까… 경성 경성해도 이상할 것 같다.

글쓰는 삶, 글로 먹고 사는 삶은 성공 이전에는 언제 어디서나 구차하고, 갑자기 세월을 뛰어넘어 13년 후,로 후일담 전하듯 다 죽었어, 하는 이야기는 살아남은 자가 그 사이를 넋두리로 풀어내든,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든, 할많하않, 하든 뭐 남은 사람이 전하는 이야기 밖에는 들을 길이 없다.

싱어는 그냥 궁금하다가, 아이에게 바보들이 사는 나라 켈름을 먼저 사주었다가, 전자 도서관에 올라왔길래 빌려 보았다. 문득 소설가는, 아주 어릴 적 친하던 친구가 그렇게 어릴 때 이미 죽었더라도 다시 살려내서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전쟁 때 죽어버렸더라도 살아남은 걸로 해서 뒤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 있고. 살아남았더라도 죽은 걸로 해서 어떤 감정이든 이끌어낼 수 있을 거고.
내일 세상이 망할 거라는데 여전한 일상을 바라보는 눈길, 마음 같은 건 조금 엿볼 수 있었다. 내가 사는 시대의 대부분의 종말론들은 가짜 예언이었는데, 세계 대전을 겪던 시절 사람들에게는, 일본의 지배를 받고 한국 전쟁을 겪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는 그 종말이 진짜였겠다 싶었다. 그걸 안다고 해도 여지껏 살던 대로 사는 것 말고는 또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겠지 싶기도 했다. 그러니 모조리 조상이 같은 사람들이라는 이유 만으로 지구상에서 말살되어 버릴 위기였던 사람들이 땅을 얻고 나라를 세운 감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이제는 그 사람들이 장벽을 세우고 미사일을 쏘고 있다네. 인간이란 종은 참 답이 없다.

+밑줄 긋기
-그녀는 나를 만날 때마다 결혼을 종교적인 광신주의의 흔적이라고 얘기했다. 어떻게 평생 가는 사랑에 대한 계약에 서명을 할 수 있지? 자본가와 성직자만이 그런 위선적인 제도를 영속화하는 데 몰두할 수 있지. 나는 결코 좌익이었던 적이 없지만 그 점에 있어서만큼은 그녀에게 동의했다. 나는 경험을 통해 현대의 남자들이 가족에 대한 의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하느님을, 목적도 모른 채 만든 자신의 은하계와 무수한 법칙 때문에 오히려 당황하고 있는, 심하게 병든 존재로 생각하지. 이따금 나 자신이 휘갈겨 쓴 글들을 들여다보면 내가 쓰기 시작한 글이 의도와는 전혀 반대가 되고 말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도 해. 우리가 하느님의 이미지에 따라 만들어 졌다면 그분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나요?”
“누군가가 뭔가에 대해 믿음을 갖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요?”
“자신에 대해 믿음을 가져야 해요. 나 자신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것, 그것이 내 비극이에요. 뭔가 좋은 일이 생기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어려움과 불운만을 예견해 모든 것을 망쳐버리죠. 사랑에서나 일에서나 모두 그랬어요.

-언젠가는 모든 사람이 진리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단 하나의 관념이라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야. 모든 것은 게임이야. 국가주의도, 국제주의도, 종교도, 무신론도, 정신주의도, 물질주의도. 심지어는 자살마저도.

-추악한 진실은 사람들 다수가–특히 젊은이들이–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열정을 갖고 있다는 거야. 그들에게는 핑계나 대의가 필요할 뿐이지. 어떤 때는 종교적인 명분으로, 다른 때는 파시즘을 위해, 또는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그런 일이 저질러지지. 살인을 하고자 하는 그들의 욕구가 너무 커서 살해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능가하는 거야. 이건 발설해서는 안 되는 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이야. 히틀러를 위해 살인을 하고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자들은 상황이 바뀌면 스탈린을 위해서도 똑같은 짓을 할 거야. 사람들이 어떤 멍청한 야망과 광기를 위해서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때는 없었어.

-그의 이름은 콩,
국수는 그녀의 이름,
그들은 금요일에 결혼을 했네
그런데 아무도 오지 않았네

그녀는 내 품으로 파고들며 말했다. “오, 아렐레. 우리가 죽게 된다 하더라도 네 옆에 눕는 건 좋아.”

-그의 말의 핵심은 하느님이 영원히 침묵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분께 빚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였네. 자네에게서도 언젠가 비슷한 말을 들은 것 같네. 아니면 자네가 모리스의 말을 인용했을 수도 있겠지. 모리스는 진정한 종교는 하느님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 원한을 품는 것이라고 주장했어.

-“고통에 대한 답은 어디에도 없죠. 특히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게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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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3-01-29 1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다 읽으셨군요!! 그러네요,, 소설가들은 정말 좋겠다,,, 반열샘 소설에 대한 생각 버리지 마시길,,, 진짜 반열샘 소설 읽어보고 싶구요.^^;;

반유행열반인 2023-01-29 21:24   좋아요 1 | URL
라로님 감사합니다 ㅎㅎㅎ 저 너무 오랫동안 소설 안 써서 이제 다 잊어버린 것 같아요 ㅋㅋㅋㅋ그래도 얼른 이놈의 입시 공부 끝마치고 다시 이야기 붙들고 있는 나날로 돌아가고도 싶네요…지금은 읽는 것으로 만족,,,

Yeagene 2023-01-29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로 며칠전에 나치가 점령한 폴란드에서의 유대인 사진을 보고 치를 떨었네요;;;;그 이미지가 넘나 선명해서...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1-30 18:31   좋아요 1 | URL
참 사람은 얼마나 나빠질 수 있을까 싶은 일들이 많았죠…
 
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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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7 김금희.

김금희의 신간을 겨울이 오기도 전에 갖춰두기는 했다. 책을 팔기 시작한 시점보다 출간일이 나중이어서 뭐야, 미래에서 온 책이야? 11월 25일 맞추고 싶었나 보다…했다. 가까이 오래 꽂아두었다. 크리스마스 있는 주에는 읽을까, 이브날에라도, 당일에라도, 그렇지만 크리스마스 이브는어째서 연인들 섹스하는 날이 되었나, 하는 말이 싫어 아마도 십 년 이상은 그날만은 피해…의도한 건지 아닌지 가물가물하지만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이 책도 결국 해를 넘겨서야 읽기 시작했다.

그나마 가장 홀리하게 보낸 크리스마스라면 1995년, 5학년일 때였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반주법을 익힐 좋은 기회라며 데려간 교회 성가대, 거기에는 나랑 동갑내기인, 나중에 한예종에 가고 독일 유학도 다녀와 피아니스트가 될, 그때부터 그런 재목 기질이 보이던 아이가 있었다. 다른 피아노 학원 원장 선생님인 그 아이 엄마는 아마도, 나랑 성가대 지휘하던 내 피아노 선생님이 좀 미웠겠다, 잘 치지도 못하는 게 왜 우리 아들은 노래를 시키고…했을 것 같다고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심심하면 명곡집의 하바네라를 멋지게 건반 위로 두들기던 통통하고 하얀 아이를 나는 잠시 좋아했다. 나는 정말이지 피아노를 잘 치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때가 변성기였는지, 학교 합창부에서 배운 가성 발성이 영 거슬렸는지, 선생님은 몇 번 노래를 시켜보고 다르게 소리를 낼 수 없겠니, 하다가 피아노 반주를 맡으라고 했다.

사람이 그렇게나 많이 모인 성탄 예배는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실력도 부족하고 칸타타 무대는 이전까지 구경조차 못 해본 나는 역시나 반주를 망쳐서 노래하는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했다. 무대를 내려온 아이들과 선생님은 잘했어, 잘했어, 표정과 말은 따로 놀았지만 몸소 예수님의 박애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봄이 오고 갑자기 못되게 굴기 시작한 하얗고 통통한 피아노 소년은 부활절 계란 껍질을 자꾸만 나에게 던지며 체르니 40번의 3번 치는 주제에(4번이야! 하면 4번 치는 주제에), 하고 놀리는 바람에 더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 이후로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기대되는 날인 적이 없었고 기독교의 신을 믿기도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신이 있다면 왜 우리 집은 이 모양이죠? 부활절 세수식에서 어느 집사님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고 물 안에서 손을 꼭 쥐어 주었었는데, 그 따뜻함은 정말 찰나였다. 나의 우주는 언제나 사랑 없는 진공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크리스마스 타일, 크리스마 스타일, 뭐여, 제목만 두고두고 봐도 소설책이 안 끌리는 것이었다… 소설책 첫머리 읽을 때까지도 그랬다. 예능 프로그램 만드는 과정, 방송이 불발되는 에피소드 이런 게 너무 시트콤 같고 작위적이야…하고…

그렇지만 소설 한 편 한 편 읽어갈수록 소설마다 바늘코마냥 하나씩 이어지는 사람들의 이름을 찾는 재미,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새로운 이름 하나 등장할 때마다 이 사람 다음 이야기도 이어질까 하고… 스쳐 지나가는 듯한 사람들 모두에게도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고, 다들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있다고, 참 친절하게도 엮어 놓았다. 타일을 제목에 넣고 싶었을 마음이 이해가 되었는데, 그래도 타일보다는 명멸하는 크리스마스 트리 전구 같은 게 더 어울릴 것 같았다. 가까이에서는 휘휘 감은 전선도 좀 추레하고 불빛 하나하나는 별 감흥이 없지만 멀리서 보면 그것들 모두 모여 번갈아가며 켜지고 꺼지는 게 더 예쁘고 역동적으로 보이니까. 책의 구성이 그랬다. 이야기 하나하나는 조금 아쉬운 것들도 있는데 전체를 관통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목사 아들 주찬성과 사귀던 시절 눈송이에 이름 붙여 주는 이야기-‘하바나 눈사람 클럽’-랑 반려견 설기를 잃고 오래 애도하는 이야기-‘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가 좋게 읽혔다. 마지막 ‘크리스마스에는’, 은 읽으면서 이 책 전체가 이 이야기로 모이는 느낌이라 좋았는데, 아이참 이 이야기 어디서 읽었는데, 이렇게 좋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어디서 봤어…어느 책이었어…했는데 작가의 말에 소설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에서 봤지, 하고 친절하게 바로 알려줘서 아…했다. ㅋㅋㅋㅋ 하여간에 금희 언니는… 이런 거 진짜 잘하는 구나…이런 게 연작이지… 그런데 표지 뒤에 박정민 배우가 쓴 추천사는 좀 과잉이다… 왜 이렇게 힘주고 썼어… 금희 언니 책 좋은데 왜scott님말고는 리뷰 올려주는 사람 없지… 내년 크리스마스엔 흥해라… 아니 꼭 그날이 아니어도 그냥 그런 연말의 기분, 옛사랑 생각나고, 잃은 사람이나 동물이 생각나고, 눈 맞고 춥고 그래도 성냥 파는 소녀처럼 성냥 켜고 싶은 사람은 연중 어느 때라도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겨울 책 읽으면 아무 때나 겨울. 매일 크리스마스 책 읽으면 매일매일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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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7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17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3-01-18 09: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금희 누님의 찐뺀인 열반인 님입니다~! 저도 읽어보고 싶은데 너무 달달(?)할까봐 피하고 있습니다 ㅋ

반유행열반인 2023-01-19 20:48   좋아요 2 | URL
김금희 소설들이 영 달달이랑 거리가 먼데 늘 표지 낚시(?)를 하죠. 뭔가 줄리언 반스 연애의 기억 제목이랑 표지만 보고 낚였다 쓴 맛에 시껍하듯이요 ㅋㅋㅋㅋ

Yeagene 2023-01-19 1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열반인님 이 책 읽으셨군요 ㅎㅎ김금희 신작이라,열반인님 떠오르더라구요♡

반유행열반인 2023-01-19 20:49   좋아요 2 | URL
이제 뭔가 김금희 하면 열혈팬 열반 이렇게 엮이나 보네요. 아실런지 금희 언니 여기 조그만 짝사랑 하나 있는 것을…ㅋㅋㅋㅋㅋ
 
그래도 조금 공부되는 만화
노재승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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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6 노재승.

 공부 다시 한지 한달 반쯤 되었으니, 수학과학만 할 수 없다, 국어도 해보자 했다. 모의고사 보면 처음에 공부 얼마 안 하고도 90점 넘던 국어 점수가 점점 하향곡선을 그리다 80점과 90점 사이를 진동하게 되었는데… 수능 국어는 긴장했는가 완전 맛탱이가 가가지고 생전 안 그러더니 시간 부족으로 독서 지문 하나를 날려 먹었고, 등급은 역대 최저 3등급이 떠 버렸다… 다시 수능을 안 봤으면 평생 구경도 못했을 3등급…고딩 때는 모의고사 때 못한다는 수학조차 3등급은 맞아 본 적 없는 복받은 인생이었는데… 전과목 골고루 1,2,3,4,5등급을 다 받은 성적표를 보니 착잡했다…
 점수 상관 없이 재미로 하던 국어 공부도 그래서 내내 미루었다. 흥이 나질 않아서… 그러다가 기출을 조금 풀기 시작했는데 자꾸 수학 과학하느라 또 미루고 며칠에 한 번 겨우 할까 말까 해… 그래서 국어도 인강 풀커리를 타 보자! 하고 내가 가진 패스의 일타 강사 문법 강의를 하나 들었는데…
 수험생 애들은 이 강사 너무 잘생겼다고, 역시 일타라고, 칭찬이 자자한데 나랑은 너무 맞지가 않았다. 계속 이건 무조건 암기, 외우시고, 외워, 외워…하는데 그 외우라는 내용은 하나도 안 들어오고 그냥 외워외워…만 맴돌다가 강의 한 시간을 채 못 듣고 아웃… 왜 나란 인간 애들이 좋다는 강의 하나 못 듣는가… 수능 국어는 문학과 독서를 좋아하던 나를 어째서 문학과 독서와 유리하고 있는가… 점점 못 읽는 내가 되어가니 슬프다. 

 처지가 이런지라, ‘그래도 조금은 공부되는’ ‘고전운문편’ 만화 광고에 낚여 낼름 신간 만화책을 사고 말았다. 현역 국어 선생님이 대체 언제 시간을 내어 이렇게 두툼한 만화책을 내었는가…에 일단 감탄… 그림체도 십년 전 쯤 휘날리던, 지금은 침착맨이 되어 소멸되다 시피한 이말년의 병맛이 느껴지는… 내 취향…하고 펼쳐 보았다. 앞부분 독고탁과 까치 비벼놓은 독고혜성과 박삼술 노인의 국어 부심 배틀하는 건 웃겼는데… 캐릭터 좋은데… 
 역시 패러디 중에서 좀비물이나 무협물 같은 건 내 취향이 아니라 중간쯤 가서 좀 읽기 힘들었다… 그래서 절반쯤 보다 접어 두었다가 오늘 국어 강의 듣고 흑흑 왜 난 이제 국어도 못해…하고 빡쳐하다 마저 보았다. 뭔가 블록버스터 흉내내는 기차니 비행기니 군사작전이니 하는 전개는 재미없었지만 마지막을 관동별곡으로 마무리한 건 좋았다. ㅋㅋㅋㅋ그렇지 역시 수능 고전 문학의 꽃은 관동별곡이다… 기출 고전 문학 보면 순 사대부 자연에 묻힌 동시에 연군지정, 안빈낙도, 그런 장르만 나오니 빡치긴 하지만… 그만큼 전형적이고 많이 써제끼기도 해서 문제 내기도 내내 좋은가 보다… 그래도 관동별곡은 이십년 전 국어 선생님이 잘 가르쳐 주셨는지 아직도 교과서에 주석달듯 필기하던 내용이 떠오르곤 한다. 그렇다고 문제 다 잘 맞추는 건 아니고요 ㅋㅋㅋ

 흰러닝셔츠에 고무신 신고 손녀딸 예뻐하며 궂은 상황에서도 오늘 배울 내용은, 하고 외치는 박삼술이 부럽기도 했다. 가르치는 사람은 저렇게 내가 가르치는 내용에 대해 자부심이 있어야지… 배우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잘 못하는 내가 여태까지 어떻게 사람 구실 하고 살아왔나… 도무지 모르겠다. 고전운문 편이라 그러냐 악한 편 캐릭터가 이유도 없고 정체도 불명이고 그저 나쁜 놈들 방해자들 그래서 빵야빵야 물리쳐야 하는 납짝한 놈들인게 좀 불만이긴 했지만 뭐 그런 이야기들이 여태껏 잘 살아남는 거 보면… 애초에 영웅물 안 좋아하고 진저리치고 악당 캐릭터에 자꾸만 마음이 가고 자꾸 걔들 신발 신는 나란 놈은 그래서 보편적인 공감 이해 부족인가 보다. 그래서 자꾸 하라는 대로 외우라는 대로 못하고 틀린 공부를 하나 보다… 조금 공부된다더니 안 되서 또 뿔남… ㅋㅋㅋㅋㅋ 국어든 뭐든 강의 듣고 쉽게 할 생각 말고 스스로 많이 풀어보자… 아 작년에도 아무것도 없으면서 스스로만 오래 붙들다 망하긴 했는데… 입시 공부 참 방향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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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6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16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16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17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부만두 2023-01-17 06: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생긴 국어 강사 … 누굴까 궁금해요. 저희집 애는 김동욱 샘꺼 사놓고 .,, 흠…
김동욱 쌤 소나기 해설이 재밌어서 결재해 준 제 잘못이에요.

수험생 열반인님, 힘 내십쇼!

반유행열반인 2023-01-17 10:26   좋아요 0 | URL
제 눈엔 하나도 안 잘 생기고 가르치는 것 마저 말하는 방식 눈빛 표현 마저 저랑은 인연이 아닌 걸로 ㅋㅋㅋ저도 작년에 누가 김동욱 선생님 언매 교재줘서 강의는 안 듣고 책만 열심히 봤더랬죠 ㅋㅋㅋ소개글에 그는 촌놈입니다 를 수험생 사이트에선 밈처럼 댓글 달고요ㅋㅋㅋ 아침에 혼자 기출 네지문 보는데 한 시간 걸리더라구요…국어는 그냥 혼자 열심히!!!ㅋㅋㅋ 힘내라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Yeagene 2023-01-17 16: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림체가 정말 ㅎㅎ 한때 유행했던 병맛 그대로네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1-17 22:28   좋아요 1 | URL
제가 만화 취향은 좀 병맛이랑 빻은 거 좋아하더라구요 부끄럽게도… 만화가 이말년이 그립음… 요즘 애들은 유튜버 침착맨을 더 좋아하는데 나 옛날 사람…
 
가장 아름다운 괴물이 저 자신을 괴롭힌다 - 읻다 시 선집
폴 발레리 외 지음, 윤유나 엮음, 김진경 외 옮김 / 읻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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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7 읻다 시 선집.

아주 많이 울던 즈음이다. 울다 울다 지쳐서 문득 올려다 본 책꽂이에 이 책이 있었다. 제목만 보고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그냥 사둔 알록달록한 책을 맨 뒤쪽에서부터 펼쳐 보았다.
희망, 이라는 시에서 루쉰이 이렇게 말해주었다.
- 절망은 허망이다. 희망이 그러함과 같이.
망 망 망이 세 번이나 들어가는 이 말이 진짜 망했어, 하는 중인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이 말을 읽고 나서는 조금 덜 울게 되었다.

책의 제목은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에서 따왔다고 한다.
-나는 일요일의 휴식을 살핀다
게으름을 찬양한다
감각들이 내게 떠넘기는 저 끝없이 미미한 지식을
어떻게 어떻게 줄여야 하는가
감각은 산이다 하늘이다
도시다 내 사랑이다
감각은 사계를 닮는다
그것은 목이 잘린 채 산다 그 머리가 태양이고
달은 그것의 잘린 목이다
나는 끝없이 뜨거운 시련을 겪고 싶다
청각의 괴물인 네가 포효한다 울부짖는다
천둥이 네 머리칼을 대신하며
네 발톱이 새들의 노래를 반복한다
괴물 같은 촉각이 파고들어 나를 중독시킨다
눈은 내게서 멀리 떨어져 헤엄친다
범접할 수 없는 별들은 시련을 겪지 않은 지배자들이다
연기로 된 짐승은 머리가 꽃피었다
월계수의 풍미를 지니고서
가장 아름다운 괴물이 저 자신을 괴롭힌다
(기욤 아폴리네르, <나는 일요일의 휴식을 살핀다>전문)

시를 잘 모르는 나에게 이전부터 번역 시는 더 어렵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 시집은 정말 좋았다. 여러 번역자들이 여러 시인의 시를 골라 엮었고, 김연수의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잠시 스친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도 실려 있어서 괜히 반가웠다.
특히 최성웅 번역가가 옮긴 폴 발레리,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가 좋아서 번역가에 대해 검색을 해 보았다. 이 시집을 기획하고 여러 시집들을 번역 출간하는 출판사도 꾸렸다고 했다. 내 동갑내기 번역가가 옮긴 시집들이 더 궁금해져서 사려고 하니 대부분 절판…중고판매자들은 정가보다 아주 비싸게 팔고 있어…아쉬운 대로 행복사전, 이라는 어린이책이랑 이 시집 중고를 누구한테든 선물해야지, 하고 두 권 더 샀는데 너무 꼬질꼬질한 것들만 와버렸다…우주점 너마저…

내 후진 말 대신 오래도록 다듬어진 말들로 순간을 그려주지, 하는 듯한, 대부분 이미 죽어버렸을 시인들이 남긴 시들을 나는 감사히 읽었다. 곁에 두고두고 힘이 많이 들면 펼쳐 봐야겠다. 글렀도다, 하다가도 까마귀가 내 방 문간에만, 내 마음 속에만 살지는 않았구나… 하며 굽이굽이를 넘어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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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1-08 0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해보이시지만 눈물이 있으신 열반인님이군요~!! 힘들때 절망적인 이야기나 노래를 들으면 오히려 힘이 되더라구요~!! 화이팅 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1-09 11:27   좋아요 1 | URL
제가 강해보이셨나요 ㅋㅋㅋ 어릴 때는 노래였는데 이제는 활자로 수렴하네요. 화이팅 감사합니다. 시험 끝나고는 (그리고 아직 시험을 저 멀리 앞둔 터라 ㅋㅋㅋ)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습니다 ㅋㅋㅋ

라로 2023-01-08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너무 안 울어요,,, 사람(제가)이 갈수록 건조해지는 것 같습니다요. 저도 반열샘 나이 땐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울고 싶은 때 많이 울기. 늙으면 울고 싶어도 잘 안 울어져요.ㅠㅠ

반유행열반인 2023-01-09 11:29   좋아요 0 | URL
저는 그냥 태생이 울보여서 라로님은 이제 씩씩한 사람이 되셔서?! 울고 나면 확 풀리고 나아져야 되는데 저는 한번 그 구렁텅이에 빠지면 내가 왜 우는지도 모르고 그냥 마냥 그러고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들어서 안 좋더라구요…이번에 공부 쫌 해보고 알게된 저의 울보성…

Yeagene 2023-01-08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이렇게 칭찬하시니 저도 궁금해지네요 찾아봐야겠어요♡

반유행열반인 2023-01-09 11:31   좋아요 1 | URL
예진님은 시집 꾸준히 읽으시니까 이 책 보시게 되면 감상 알려주세요. (난 별로야! 도 괜찮아요 ㅋㅋㅋ그런 거 좋음…) 알라딘 와서 책들 구경하다 보니까 제가 꽂혔던 번역가님이 본인 책마다 내가 번역해서 아는데 이 책 짱 좋음! 이러고 백자평 달고 다녀서 뭔가 확 깸 ㅋㅋㅋㅋㅋ세상엔 독특한 사람이 많아요…

은하수 2023-01-19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록달록 표지 넘넘 예뻐서 안사고는 못배길것 같아요
아폴리네르, 폴 발레리 저 어릴 때? 자주 읽었던 시집인데 참 정감 가네요
추억이 새록새록 돋습니다.
지금은 살수 없는 걸까요?
알라딘이나 중고나 가격차이가 없군요^^

반유행열반인 2023-01-21 16:35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은하수님 ㅎㅎ이 책은 아직 잘 팔고 있고 같은 출판사 최성웅 번역가가 낸 폴 발레리 책은 절판이더라구요. 릴케 시집만 전자책 팔길래 사 봤더니…아 두이노 비가 중에 제일 좋은 거 이 책에 이미 엄선해놨구나…싶더라구요 ㅎㅎㅎ반갑습니다.

최성웅 2023-09-09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확 깨게 해서 죄송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9-09 15:49   좋아요 0 | URL
그래도 팬입니다 ㅋㅋㅋ
 
[전자책]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열린책들 세계문학 46
존 르 카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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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2 존 르 카레.

이년 전 연말에 ‘리틀 드러머 걸’을 인상 깊게 보았다. 이 소설은 그보다 이십 년 전에 존 르 카레가 쓴 작품이었다. 비슷한 시기의 온도와 건조함에 이끌렸는지, 연말부터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바깥을 속이고 자기 자신까지 속이는 삶에 관해 읽는 내내 생각했다. 앞뒤가 맞아야 한다. 개연성 있고 설득되고 약간 흥미롭지만 지나치게 관심을 끌면 또 허점이 드러날 수 있다. 스파이와 소설이 유사하고, 그래서 첩보 경험 있는 작가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 또한 납득이 간다.
이념과 공동체와 대의를 위해 희생되는 개인에 대해서도 내내 생각했다. 리틀 드러머 걸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공산주의 국가든 거기 맞서는 영국 정보부든 어디나 조직은 마찬가지이다. 나는 이제 국가주의 공동체주의 공리주의 이런 걸 떠올리면 코로나가 처음 퍼지던 시절을 함께 생각한다. 사람들은 감염과 전파의 공포에 미쳐있었고, 개인의 움직임, 동선, 성적 지향, 여정과 여가, 모든 것은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낱낱이 파헤쳐지고 공개되었다. 사람들은 참 헬스장엘 열심히도 갔다고, 코인노래방에 미쳤다고, 연애에 미쳐서 연인을 만나러 탈주를 했다고, 욕을 했고 벌금을 물렸고 신상을 돌려보았고 단체로 춤을 추는 게이 새끼들 역겹다고 했다. 소수가 감염되었을 때는 모든 일상과 행동거지가 일탈이었고, 그로부터 일년 후 쯤 모두가 걸리는 시기에는 그건 그냥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 시기의 조직 생활이나, 언론보도나, 인터넷에서 남을 헐뜯는 수많은 사람들의 댓글 같은 게 나한테는 어느 정도의 트라우마를 남겼다. 개인에 대한 건 생각보다 쉽게 너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 수 있고 그건 그걸 알게 되는 사람들의 관심과 의도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든 조리될 수 있다. 자유, 인권, 프라이버시, 그런 말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절대적인 가치가 되지도, 보호받지도 못한다는 걸 교훈처럼 알게 되었다.

왜인지 모르지만 스파이 소설을 보면 그런 시간들이 떠오른다. 전략적으로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아야 하는 나에 대한 정보, 뻔히 감시 받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태연해야 하는 혹은 계산된 행동을 해야 하는 계산된 것조차 그게 본디 모습인 듯 스스로를 속여야 하는 삶이라는 게 너무 극적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결국 내가 알고 있다고 믿고, 내가 인식한 세계가, 내가 놓인 판이, 사실은 또 그 위의 다른 누군가가 또다른 방향으로 짜놓은 전혀 다른 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혹은 알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혼란.

그런 이야기들은 너무 슬프다. 스파이의 사랑도, 스파이를 사랑한 사람도 죄다. 오점이고 치명적인 실수이다. 내가 작전을 망쳤어요. 난 붕괴됐어요.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그 붕괴조차 누군가의 한 수였다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것조차 미리 고려된 일이라면. 우웩.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디스토피아가 스파이 소설 속에 있었다.

+밑줄 긋기
-당신은 광신자예요. 나는 알아요. 하지만 당신이 무엇을 광신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당신은 남을 개종시키고 싶어 하지 않는 광신자예요. 그건 위험한 존재죠. 당신은… 복수나 무언가를 맹세한 사람 같아요.

-「그럼 이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지식인인가요?」
여자는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진보주의자를 자처하고 있는 반동주의자들. 저들은 국가에 맞서서 개인을 옹호해요. 흐루시초프가 헝가리에서 일어난 반혁명 사태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알고 있나요?」
리즈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흥미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여자한테 자꾸 말을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작가 두어 명을 제때에 총살했다면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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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3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07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Yeagene 2023-01-03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미크론 때 너무 퍼져서 그런지..
확실히 코로나 초창기랑은 달라졌죠..

반유행열반인 2023-01-07 23:32   좋아요 1 | URL
제가 걸렸을 때는 아무도 관심도 없을 시기였어요ㅋㅋㅋ휴직한데다 집에서 간이검사하니까 굳이 보건소 들러 등록하고 뭐 이런거도 없고… 그냥 아픈 건데 나쁜 게 되는 세상이 저는 참 힘들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