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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품
박상륭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5월
평점 :
-20250806 박상륭.
박상륭 선생님을 이 년 만에 뵈옵습니다. 그때도 지난한 여름이었지요. 육신은 8년 전에 영면하셨으니 지금쯤 바르도 어디에서 또 무얼 들여다보고 계실 것도 같은데, 할 말이 여태 남아 쉬이 해탈 열반하지는 않으셨을 것 같아 제 맘대로 어디 가둬둬서 송구합니다.
사실 그냥 냅둬도 더운 여름에 해골 패는 이 책 끄집어낸 나한테 더 송구하다. 박상륭 전집의 ‘상’권(이름 가운데자라 둘째권임)에는 그의 장편소설과 산문집이 실려 있고, 죽음의 한 연구랑, 이 소설까지 봤으니 절반 이상은
온 것 같다. 전집은 두꺼워서 보기 힘들어서 2019년에 미리 사놨던 ‘잡설품’ 단행본으로다가 읽었다. 전집의 한 권으로 굵게 묶인 책에 아직 남은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랑 ‘산해기’는 글쎄 또 한 이 년 있다 보든가 해야지...힘들었어…
땅 속 무덤에 산 채로 갇혔던 칠조가 순례자로 뿅 튀어나와 유리를 떠나 문잘배쉐란 땅에 다시 등장했다. 반갑긴 한데 촛불중 특유의 합습지, 말투 안 쓰고 젊어 죽어 놓고 혼만 늙었는지 노승이나 신선 티를 내면서 이야기를 거들고 다녔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아니다. 굳이 주인공 따지자면 성배 지기인 앓는 어부왕 구하겠다고 나비인지 불새인지 잡겠다고 나선 어린 시동이가 중심 인물이다. 용인지 뱀인지 무찌르고 공주 구한다고 나서는 왕자인지 기사인지가 칠조어론에서도 한참 동화, 신화로 등장했는데, 여기 시동이는 무슨 모험을 했는지 중간 과정은 딱 생략이다. 출발 전에 한참 미적이고, 그러다 아마도 것11(다른 나라 공주, 아마도 불새)이랑 잠결에 얽히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돌아왔는지, 아님 출발도 안 하고 거기 붙박여서 뇌내망상으로만 광야를 헤맸던지, 혼자 회상도 하고, 혼잣말도 하고, 순례자랑 티키타카도 하고 그러다가 해골바가지가 된다. 이건 침을 마시긴 마셨는데 팔조인지 구조인지 십조인지 모르겠네. 인간은 모두가 다 죽으니까 뭐 끝에선 다 죽는 거 뭐 틀린 건 아닌데, 박상륭 할아버지 여자들은 너무 일찍일찍 죽여버린다. 애틋하게 죽여버려가지고 좀 눈물 핑 도는 도구로 늘 쓰는 것 같아서 마음에는 안 든다.
소설 아니고 잡설이라고 해 놓고, 민주주의, 사회주의, 여성주의, 온갖 이즘들 들었다 놨다 주절주절 불만도 풀고, 축구팬덤도 좀 까고, 그냥 아무말 잔치를 하기 때문에
나는 이 시절에 이걸 왜 읽는지 모르겠다...하면서도 얼른 다 읽고 탈출해야지, 하는 심정으로 읽었다. 기껏 읽었더니 ‘모든끝은그러나시작에물려있음을! 아으, 그런즉슨, 시작하지 말지어다!’ 하며 매조지 하니까 아 그러게요...읽기 시작을 말 걸 다시처음부터다시처음, 하시는 군요…
아무래도 생고생 하고 연극이 끝나고 난 후의 평안을 누리려고 나는 이 책을 들여다봤나 보다. 덤벨 잘못 들어 팔이랑 어깨 아파서 일주일째 운동 못해 서글픈 거 빼고는 나는 평온하다. 별일 없이 산다. 사실 엄청 잘 지낸다. 그래서 굳이 사서 고생하는 구도자들, 굳이 출가/가출해서 뭘 찾겠다고 헤매는 시동이들 보면서 난 이제 그런 거 안 해, 한다. 돌아보면 사서 고생 전문가 나였는데… 그 버릇 못 버리고 작은 고생이나마 읽기 고역인 고약스러운 책들로 맛만 본다. 이제는 적당히 단맛이랑 단백질맛만 보려구요. 행복해지려구요.
+밑줄 긋기
-‘요나서’-이 잡설꾼이, 언제 저런 제목의 잡소리도 썼던가, 의문할 이들도 몇 있을 듯하다. 말이 나온 김에 아예, 절판된 그것들의 연대순이라도 밝혀두는 것은 해스러울 듯하지는 않다. ‘민음사’ 간행, “박상륭 소설집”(1971)‘유리장’의 ‘노트’에 “시간에 있어서의 오두의 문제는, 아직 발표되지 않은 나의 장편 ”요나서“의 주제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소설에선 요약에 그쳤다”고, 밝혀졌던 바의 그것이, 나중에 ‘한국문학사’에 주간으로 있던 때, 이문구공이 산파 역을 담당해, 수년 후에나 출판을 본, ‘죽음의 한 연구’(1975)의 (또 그 빌어먹을 누무) ‘노트’(냐?)에, “졸작 ”죽음의 한 연구“는 그리고, 다른 졸작 ‘유리장’의 ‘노트’에서 ”요나서“라고 밝혀졌던 그것이 개제를 당한 것이라는 것을, 밝혀두는 일은 꼭히 필요한 듯하다“라고, 밝히고 있는 그것이다. (그러고도 그것도, 돈 벌기에 해를 여러 개씩이나 저물리고 난 끝에, 가능했던 ‘자비출판’을 통해 햇빛을 보게 되었더라는 것도, 말해두자.) 이후, 작고한 김현 교수의 귀띔에 좇아, ‘문학과지성사’(1986)에서 재출간을 본 것이, 현존판 ‘죽음의 한 연구’인 것. 그런즉 왜 새삼스럽게 ”요나서“이겠느냐는 의문이 들 것도 분명한데, 그것은, 그것이 들먹여져야 되는, 본문의 전후 사정을 고려한다면, 구태여 대답을 만들지 안해도 될 듯하다. 요나의 레비아탄의 뱃속으로부터 탈출의 얘기-그것이 가제 ”요나서“였던 것이다. 이 레비아탄은, 중첩된 바르도이거나, 상사라이다. 고해 속에 자맥질하는 고래, 그 고래 뱃속에 삼켜진 요나, 아으, 그리고 누구는 요나 아닌 이도 있는가? 이 고래 뱃속은, 숨 막히도록 어둡고, 비리지 않는가? (돌, 소설하기의 잡스러움!) (499, 책을 읽기 전 미주 부터 공부하고 가는 편이 낫지, 하고 읽다 18번 주석에서 죽음의 한 연구가 이문구 덕에 자비출판 했다가, 김현 덕에 재출간 해서 나온 거지롱, 사실 제목 갈기 전엔 ‘요나서’였지롱, 뭐 이런 시시콜콜 뒷이야기를 풀어주는 게 재미있어서 퍼왔다. 한자 많은데 못 읽는 거 많아서 네이버 한자에 끄적끄적 검색한 건 안 비밀…박상륭을 읽을 한자 약한 분들은 네이버한자사전을 깔아두면 좋습니다...)
-그 죄로 로키는, 신들의 손에 죽임당한, 자기 아들놈의 열두 발 창자(가 오랏줄로 쓰였던 모양이다)에 단단히 묶여, 이 세상에서는 그중 어두운, 찬 동굴바닥에 던져졌으며, 그 얼굴 위에로, 그 천정에 매단 독사의 독아에 독액이 고이는 대로 떨어져내리게 했더라 하는데, 모두 그를 버렸음에도, 평생을 충실하게 그를 지켜주어온 그의 안댁 시긴 만은, 그런 자를 남편이라고, 그래도 그의 곁에 남아, 나무그릇에 그 독을 받아, 채워지는 대로, 다른 자리에다 엎질러내고 하기를 라그나뢰크까지 했던 모양인데, 아무리 로키라고, 이런 옌네를 두고,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꼈겠는가? 저런순 로키까지도, 저주키는커녕 애정으로 지켜주려는 시긴이, 지척에 와 있는 라그나뢰크를 지연시키고 있을 테다. 남성우선주의도 비슷한 냄새 같은 것이 좀 풍기는 듯도 싶어, 시긴들에 관해서 말하지 못한 것은 어쨌든 유감이다. 로키는 그러나, 자기의 혀가 뽑혀, 천정에 매달려, 자기를 모욕하고, 고문해대고 있다는 것은 알지 말았으면 좋겠다.
티 베미(Thus I say.) (501, 추기? 수기? 책 가장 말미의 이 부분 나만 러브레터로 읽었냐.)
-것11: (…) 그이 말씀으론, 그건 금서에 속한 것이지만, Tchacos본 “유다”라는 외전에 의하면, 유다는, 그런 역을 맡도록, 운명적으로 예정되었던, 어쩌면 축복받은 선택된 자였다고 하데유. (마님을 향해) 그렇다면 그도, 주의 어떤 대의나 목적을 위해, 주와 다른 쪽에서, 아주 큰 몫을 담당해 있었을 것이라고 하던데유.
(…) 하온데, 소녀가 그 순례자로부터 또 들었삽기는, 유다는, 모세-카인-오이디푸스라는, 셋의 인격체, 아, 아니겠삽지요, 셋의 전설체라고 해야겠삽지유, 하나가 되어 있는 자더군유. (47, 어제 진격의 거인 파이널 파트3를 다 봤는데 말이다, 약간은 스포일러지만 엘렌 예거도 그딴 소리를 하면서 질질 짜고 죽기 시러-하던데. 박상륭 선생님도 빌런에관심많아병에 걸리셨던 모양이다.)
-투미하다:어리석고 둔하다.
-뒤꿈치에서 연기가 풀풀 나도록 달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되는 인고키 어려운 하품의 시간, 확대한다면, 거의 무의미하기까지 한 삶, 그것이 역마을의 시간인 것. 그 극복하기 어려운 시간의, 그 삶의 짐승의 뱃속에서, 죽음을 극복하고 튕기쳐나기 위해, (거 무슨 잡동사니를 모아놓았는지, 아무리 뒤적여보아도, 뭣 하나 짚여지는 것이 없어, 난독성 짜증에 부아까지 치미는, 유리의 계룡산 자락에서 살다 내려왔다는,) 박성모씨라는 잡소리꾼의 품바타령 듣는다고, 하릴없는 시간을 허비하겠는가? ‘요나서’(위에서 미리 보고 온 18번 미주)얘기겠네만, 저 레비아탄의 뱃속을 벗어나기 위해서? 그러다 보면, 희망 없는, 시간이라는 레비아탄의 뱃속에서 토해져 나올 일이겠는가?(“니브리티를 성취치 못한 유정은 어떤 것이라도, 한번도, 이 짐승의 뱃속-축생도-을 벗어나본 일이 없다고 한다면, 유정들은, 보다 더 눈에 힘을 주어, 자기네들이 ‘밖’이라고 이해하는, 그 ‘무엇의 안’인 것을 면밀히 관찰해보아야겠습지. (칠조어론 1권 9쪽..)(387-388, 꾸역꾸역 이쯤까지 밀고 나가다가 나는 시대착오, 우리는 잘못된 만남...하는 차에 셀프로 난독 짜증나지? ㅋㅋ 이래버려서 알면서 뭘 이렇게 구질구질 누가 읽으라고 남겨놓으셨대요...했다. 유튜브 없고 에이아이 없고 영화 없고 만화 없는 세상에서 우리 만났더라면 좀 그럴싸하다 하고 읽었을까요. 컴퓨터도 없이 가출할 때 들고나와 방구석에서 읽던 20여년 전의 죽음의 한 연구처럼요.)
-해당화보다 붉어진 눈으로, 새로 다시, 광야를 내어다보기 시작했다. 적멸도 비슷한 것을, 대무를 내어다보기 시작했다. 아직도 눈알을 눈두멍 속에 갖고 있다는 것은, 좋았다. (425, ㅋㅋㅋ 자기 눈알 후벼 파려다 뭣하러, 이러고 포기하고난 시종. 나도 내 혀가 아직 입구멍에 박혀 있는 게 좋다.)
-어쨌거나, 요즘 먹이를 날라 오는 이 비둘기는, 어찌나 상냥하고 정이 많은지, 이냥 돌아가려는 대신, 시동이의 무릎에도 앉고, 손바닥에도 오르며, 가슴에도 포옥 안겨, 시동이를 빤히 올려다보다, 시동이의 갈라 터진 입술을, 더듬는 듯, 부리로 부드럽게 쪼기도 하고, 또 아무것도 쪼아낼 것 없는 바닥을 헤쳐, 뭐든 입에 넣어서 해롭지 않을 것, 예를 들면, 죽은 무슨 벌레의 껍질이거나, 검불 부스러기 같은 것을 찾아내, 시동이의 입에 넣어주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며 지는 해를 안타까워해 하는 듯이 해보이기도 했는데, 그 빛이 좀 남았을 때, 새는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새도 눈물을 흘리는지는 몰라도, 떠나려 날개깃을 여밀 땐,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는 듯이 시동은 들여다보곤 했는데, 새는, 그날치의 이별이 슬퍼 그러는 모양이었다. 시동이도, 그날치의 이별이 슬프고 했다. (463, 내가 그 새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