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마음동호회
윤이형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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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4 윤이형

책을 다 읽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좋은 쪽은 아니다.
세 번째 읽는 윤이형의 책이고, 내게는 셋 중 가장 별로였다.
날카롭고 컴컴하고 그런 와중에도 다 놓아버리지 않는 느낌이 이전의 책들에는 있었는데 이번에는 뭔가, 초월, 체념 그런게 너무 강해졌다. 너무 착하다 이런 것도 아니고 약간의 무력감, 눈물 줄줄 쏟으며 어떡해, 하고 안절부절하는 느낌. 사람은 변하고 나이들고 글도 그렇겠지만. 아쉽다. 게다가 그런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는 못된 나를 확인하는 건 더 싫다.
이상문학상 수상작이 이 책에 있을 줄 알았는데 다음 책에 실으려는 건지 없었다. 쳇. 그래서 아직까지 못 읽었다. 반려 애완 문화 자체를 싫어한다. 동물이 싫은 건 아니고 그 동물을 곁에 두는 사람의 커지는 이기심과 인간중심성이 너무 싫다. 작가는 이번 달에 또 반려 고양이를 떠나보냈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보았다. 나는 애도의 대상을 그렇게 확장하고 싶지 않다. 인간만으로도 충분히 슬프다. 난 못 됐다.

-작은마음동호회
집회에 나서지 못했던 여성들이 제목과 같은 집단을 이루고 책을 내고 거리에 선다. 연대와 참여. 누군가에게는 실현하기 어려운. 상위의 욕구일까. 소설집의 표지는 소설에 묘사된 서빈이 디자인해 준, 그녀들이 발간한 책의 모습과 닮았다.
-승혜와 미오
절규, 루카에서 이어지는 동성애 서사. 작가는 자신이 동성애자였다면 하는 상상을 한다고 오래 전 또다른 인터뷰에서 보았다. 우리가 LGBT 라고 커다란 범주로 뭉뚱그려 지칭하는 그 안에도 수많은 다양성이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을까. 아이를 원치 않는 미오와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은 승혜의 불협. 승혜가 베이비시터로 돌보는 이호와 이호엄마가 밀푀유 나베를 먹는 장면은 따뜻해 보인다. 음식을 나누어 먹는 장면들의 효과. 작위적이지만 본능은 반응한다. 모르지만 좋다 나쁘다 판단하지 않는다. 거기에서 이해가 시작되는지도 모르지.
-마흔셋
자매의 기억을 가지고 남매로 살기 시작하는 재경과 재윤. 엄마는 죽고 둘은 늙고 있다. 죽지 않고 버티고 있다. 트랜스젠더를 다뤘는데, 잘 모르겠다. 와 닿지 않았다.
-피클
젠더감수성. 피해자를 보는 눈. 거짓말과 뒤얽힌 진실. 외면하지 못하고 손을 내미는 사람. 이것도 와 닿지 않았다. 약간 짜증이 났던 것도 같다.
-이웃의 선한 사람
내 아이를 구해준 사람이 내게 식초를 들이부은 이상한 사람이라면. 게다가 미래를 볼 수 있다면서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한다면. 불안이 가득 차 있는 느낌.
-하즐라프 1-의심하는 용, 2-용기사의 자격
각기 다른 지면에 발표된 연작소설인데 판타지이지만 약간 우화나 비유하는 바가 있는 듯한 소설이었다. IS에 투신한 아이들의 어머니가 용의 알을 접하고 용기사가 되어 사악한 나라로 가서 싸우다 용은 사악한 기운에 사로잡혀 죄없는 이들을 헤치고, 용기사는 그 용대신 죄값을 치르며 처형된다-는 이야기와 전투용도 번식용도 아닌 그저 사랑하고 의심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두 용 갈과 이파의 이야기가 나온다. 두번째 소설은 용기사 체험을 한 어머니들을 취재하는 여성 화자의 시점인데, 그녀가 어느 도시의 식당을 방문해 용기사 이야기를 구전해 듣는 형식이다. 솔직히 두 가지 다 읽어도 뭘 이야기하고 싶은지 모르겠고 재미도 없어 힘겹게 읽었다.
-님프들
내가 사랑했고, 내게서 떠나거나 죽어 사라진 이들을 모두 준이라 지칭한다. 나에게 중대한 타자 모두가 준으로 대체되면 상당히 혼란하다. 분열적이기까지하다. 마지막에는 죽은 아이 준의 시점으로 독자를 향해 말을 걸듯하는데 이것도 잘 모르겠다.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란다
미러링? 사랑을 가장했던 폭력, 수치심의 치환, 구병모의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이었나 그 소설과 굉장히 유사한 느낌이었다.
-수아
대니에 이어 로봇이 등장하는 소설. 차별에 대한 감수성. 그런데 꼭 이렇게 총구를 들이밀고 옷을 벗겨내고 남편과 사람들을 쓰러뜨려서 입장을 바꾸고 공감을 강요받아야 하나? 그만큼 절박함과 절실함을 느끼는 누군가들이 있지만. 그럴수록 식어버리고 나쁜놈이 되어 버리는 느낌에 진짜로 나쁜놈처럼 굴게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이해가 되요. 이런 일은 더 드물 것 같다.
-역사
알라딘 열일곱에서 읽었을 때도 좋았는데 다시 읽어도 괜찮았다. 끝내 열일곱이 되지 않지만 혐오와 핍박과 학살의 아픔을 잊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당신들은 우리를 끝낼 수 없다.’하고 맺는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내 마음도 좁아 터졌는데 다른 방식으로 작아서 읽고 나서 온통 독한 말들만 쏟아 놓았다. 읽기 전에 무슨 기대를 했나 모르지만 소설들이 전과 달라지긴 한 것 같고 그게 나랑은 안 맞았나 보다. 손가락질이, 눈물 맺힌 시선이 자꾸 나를 가리킨다는 피해망상이 돋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런 죄의식이라니. 대체로 잔잔한 이야기들이지만 불편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라면 성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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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돼지
고이즈미 요시히로 지음, 김지룡 옮김 / 들녘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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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3 고이즈미 요시히로
내가 보려고 사 둔 걸 초딩 꼬맹이가 먼저 몇 번을 읽었다. 재밌다고 했다.
오늘 보고 나니 흠 얘는 어린 게 뭐가 재밌다는 거야. 가끔은 나보다 어르신 같다.
불교의 가르침은 잘 모르고 만화의 내용이 어떤 불교 내용을 표현한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몰라도 상관없다. 그냥 마음 다스리기로 가끔 읽으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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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양장 한정판)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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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20190923 야마구치 슈
제목만 보고, 전자도서관에 길게 선 예약 대기 줄을 보고 따라 섰다. 세 달 넘어서야 내 차례가 되었다.
철학 교양서 같지만, 저자는 철학자가 아닌 컨설턴트이고 철학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자기계발서이다. 사실 테츠가쿠 붙이기도 민망하게 책의 많은 내용이 철학 뿐 아니라 사회학, 심리학(특히 사회 심리학), 경제학 등등 온갖 학문의 이론을 가져다 놓았다. 철학 만으로는 50개 항목을 채우기 힘들었나보다. 강준만이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시리즈를 7권까지 냈고 나는 그 중에 생각의 문법만 봤는데 책 구성은 그것과 아주 흡사하다.
결심한 게 있는데, 무기, 망치, 도끼 등의 제목 붙인 책은 앞으로 거른다. 도구화, 실용화의 허점이 있다. 벽돌을 들어다 못을 박는 시도는 임시방편으로 할 수 있겠지만 그 벽돌 깨지고 파편에 다칠 수 있다. 완벽한 이해는 못하고 불가능하더라도 적어도 완전히 오해하고 오용 남용할 일은 만들고 싶지 않다. 이런 책을 보면 틀려도 그게 틀린지 모를 위험이 있다. (난 의심이 너무 많아 ㅜㅜ)

그래도 책을 읽는 효용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기업 경영이나 실무 측면에서 철학이나 제반 사회과학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갖다 붙이는 게 나름 재미있기도 했다. 간략한 철학자와 사상 소개나마 읽는 동안 전혀 엉뚱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철학을 제대로 모르지만 저자가 완전 사기치고 하나도 모르는 소리를 쓴 것 같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폭넓은 독서와 컨설팅 경험에서 얻은 사례를 통해 자기가 이해한 수준에서 다양한 사상과 이론을 풀어놓았다. 물론 참고 문헌은 제대로 달려 있지 않아 저자가 원전을 읽었는지 온갖 입문서를 섭렵한 결과물인지는 알 길이 없다.

예상과 달랐지만 항상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다양한 분야에 폭넓게 관심을 뻗어 보는 것도 사고를 자극하기 위해 필요하다. 물론 제목으로 낚시하는 건 속는 걸 너무 싫어하는 내게는 데미지가 크다. 사양한다. 차라리 세상을 꿰뚫는 이론, 사상, 직장인을 위한 철학 뭐 이런 제목이면 배신감 덜하겠지만 그러면 나도 볼 일이 없었겠지?

+간략 밑줄 긋기
-얼굴을 본다면 할 수 없을 잔인한 일들에 대한 소설을 봤었는데 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죽일 수 있는 것은 타자의 얼굴을 응시하지 않는 경우뿐이다.’(레비나스)

-이건 뭔 개소리야? 했는데 일본 새학기가 4월 시작이라고 한다. 난 12월생이라 기분 나쁘다. 통계적으로 유의한 연구가 있다고 하는데도 납득 안 된다.
‘확실히 아이의 성적이나 운동 능력이 높아지는 출산법이 있다. 바로 4월에 아이를 낳는 것이다.’

-의외의 깜짝 사실. 일본에 같은 동요가 있다는 것도 함께 놀란.
동요 〈주먹 쥐고 손을 펴서〉는 루소가 작곡한 작품이다.

-뒤에 부분의 말은 잊고 안 퍼 왔는데,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더 공정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말이 좋았다.
‘세상은 공정해야만 하는데 이 조직은 공정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 조직은 도의적으로 잘못되었다’라고 생각하게 되고 결국 조직에 원한을 품게 된다. 이는 테러를 일으키는 심리 과정 그 자체다.(멜빈 러너, 공정한 세상 가설)

-자꾸 이상한 쪽으로 회의하게 된다. 결정론적 세계, 자유의지 부정, 계획한 건 항상 어긋나게 되어 있어. 무계획이 계획이야. 세상은 내가 아닌 소수의 사람들이 움직여. 흑흑 이런 마음 말고 아래의 말에 감탄하며 눈을 빛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만 안 되겠지.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라고 남에게 질문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가?”라고 자문해야 할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엘런 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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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 소설가가 되는 길, 소설가로 사는 길
박상우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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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90922 박상우
소설가 지망생이나 신인 소설가 대상의 일종의 정신교육서?잠언집 같은 책이다.
대체로 훈장님 훈수 같고 반복되는 표현도 자주 등장했지만 연륜 넘치는 도움될 이야기도 많았다. 30년을 한 길 만 걸은 사람의 자부심과 연륜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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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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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0 앤드루 포터

16일 만에 아이패드미니가 돌아왔다. 수리가 썩 잘 되진 않았는지 저혼자 터치가 눌리고 난리지만 일단 그냥 쓴다.
4인치 폰으로 전자책을 보니 눈에 잘 안 들어왔다. 그래도 딱히 할 일이 없으니 계속 읽었다. 큰 화면으로 돌아오니 좋다. 부품이 너무 입고가 늦어져 그냥 확 새 거 살 걸 보름 내내 그랬는데 막상 고친 기계 받고 나니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수리비 13만원이나 들었으니 3년 이상 더 써야겠다.
박상우 소설가의 에세이? 훈수집? 같은 걸 읽고 있는데 추천 도서 30권 목록에 이 책이 있어서 반가웠다. 이야 나 이거 읽고 있는데. 여기 중에 7권이나 읽었네. 안 읽고 가지고 있는 건 8권있네. 하하호호 마저 읽어야지.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제목에 끌려 대출 예약 걸어놨는데 받아보니 소설이었다. 실린 소설 전부 1인칭 나의 시점으로 쓰여있다. 가족을 관찰하는 나의 이야기가 많다.
가족이 아니라도 연인, 부모나 형제자매의 연인, 이웃 등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사람에 대해 화자가 회고하는 식이다. 감출 것, 지금 보여줄 것, 나중에 보여줄 것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호기심과 긴장감을 잘 유지했다. 인물을 묘사하면서 관찰되고 있는 사람의 감정과 그것을 바라보는 화자의 소회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어떤 느낌과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고, 그러면 잘 쓴 소설이지. 아무 생각 없이 봤는데 괜찮았다.
마지막 판권에 편집인 명단에서 김봉곤 보고 혼자 반가워서 오오 하이루 곤이 열일 하는 사회인 소설도 잘 쓰고 계시죠 이 책이 문학동네 거였군 새삼 그랬다. 아 마지막 소설에 비문 있어요. 편집인들 뭐한 거에요. 떼끼.

-구멍
어린 시절 구멍으로 사라졌다 죽어버린 이웃 친구에 대한 회상이다. 기억나는 것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다 마지막 고백 같은 꿈이야기로 덮어둔 일들과 죄책감 같은 것을 슬쩍 비춘다. 짧은 이야기라도 구성하기 나름이다.

- 코요테
성공하지 못한 영화인은 어딜가나 낭인 꼴을 못 면하네 싶다. 변변찮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연인, 떠나는 아버지. 왜 어떤 부모들은 애들한테 그런 모습을 보여주나 싶다. 코요테가 바깥에서 우는 소리는 미국 애들한테는 익숙한가 본데 한쿡 사는 나는 겪어볼 수도 상상하기도 어렵다. 예전 같으면 동네 개 하나가 아우-하고 울면 다른 애들도 아우-우우우-하고 울었지. 집합주택 살면 그런 경험조차 어렵다. 그냥 남의 집에서 밤늦게 개가 짖거나 밥그릇 달각거리는 소리가 천장에서 들리면 아있ㅇ어리머아리백파아ㅓㄹ 하면서 화만 내지. 밤에 밖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를 생각한다. 가을밤의 귀뚜라미. 여름밤의 매미. 대형폐기물 수거하러 올 때 나는 큰 소음. 지금은 바깥에서 사다리차 오르내리는 소음, 인테리어하느라 무지막지하게 때려부수는 소리, 위층의 발소리 쿵쿵만 들린다.

-아술
교환학생인 다른 나라 청년 아술을 집에 데리고 있으면서 아내와 나 사이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아술은 동성애인이 있었고, 그와 싸운 뒤 침울해해서 아내가 아술을 위해 집에서 파티를 열어준다. 집은 난장판이 되고, 나는 무슨 충동인지 전화 걸어온 아술의 구 애인 라몬에게 파티 중이라고 오라고 한다. 그 결과는...피투성이. 머리 깨진 애 이미지는 뒤에 다른 소설에도 또 나온다.

-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이루어질 수 없었던 노교수 로버트와의 사랑과, 현재 배우자인 콜린과의 사이를 넘나들며 담담하게 회고하는 형식이다. 제목이 왠지 의미심장한데 읽고 나서도 왜 이런 제목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로버트와 내가 이어진 건 물리학 수업에서 주어진 터무니 없이 어려운 공식을 푸는 시험 이후였다. 그러니 물리학에 대한 이야기 일 수도 있고. 로버트가 빛 콜린이 물질이라 그러면 너무 유치하고. 시간과 감정에 관한 이론 이래 버리면 너무 노골적이고. 사랑에 관한 이론 이러면 때려버리고 싶으니 역시 잘 지은 제목 같긴 하다. 나한테 영업 성공했으니.
읽으면서 이상하게 먹먹했다. 닿을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한 마음. 신체 접촉 없이 그저 함께해서 좋은 시간. 서신 교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듣는 부고. 인정하거나 발설할 수 없는 감정. 나를 내가 되게 하는 사람은 곁에서 멀고 내가 함께 지내야 할 사람은 나를 종속물 내지 그저 거기 놓인 것으로 만드는 현실. 거기서 생기는 간극.
마지막에 과거의 어느 밤 홀로 있는 장면을 풀어 놓으며 마무리하는게 진짜 여운이 남았다. 미래가 될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압축해 놓은 것 같았다. 헐벗고 남의 이불 속에 홀로 누워 오지 않을 누구를 기다리다 체념하는 그 마음을 왜 알 것 같지.

- 강가의 개
김유정 만무방이 나도 모르게 떠올랐다. 읽은 지 이십년은 넘어서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노름꾼에 개차반인 형이 농사는 안 짓고 산 돌아다니며 송이 따먹던 부분은 생각난다. 그 비슷한 형이 나온다. 그 형 때문에 동생은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 하는 내용이다.
제목은 형 취미가 쓰레기장에 죽은 채 유기된 개 시체를 찾으러 다니는 데서 따왔다. 형 자체도 강가에 사는 개새끼이기도 하고 죽어 버려진 개의 모습이 처량하기도 하다. 나중에 동생이 개를 찾아 다니는 모습으로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는 데에도 등장한다.
형이 어느 밤 파티에서 술에 꽐라된 여자 선배를 건드리는데(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명백하게 강간 우리법에서는 준강간이라고 부르는 상황인 걸 짐작할 수 있다.), 아무 일 없었고 여선배도 고소를 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 시절 잠깐 소문이 돌다 잊혀졌다. 그 날 밤의 이야기를 반복하면서도 바로 접근하지 않는다. 형은 여전히 잘 살지만 화자인 동생은 그 일에 대한 생각을 내내 잊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선배의 안위를 생각하고 남몰래 그 선배를 관찰하기도 한다.
후반부에 형이 남의 차 창문 박살낸 걸(형은 자기가 안 그랬다고 끝까지 발뺌하고 유리값은 엄마가 물어주고) 동생이 치우는 일화가 잠시 나오는데(이 장면도 형과 동생의 유년 내내 관계와 상황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차 주인이 건넨 말로 소설이 마무리 된다.
“얘야, 이 일은 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란다.”
역설적으로 파티에서 선배가 강간 당한 일에 대해 알면서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화자의 죄책감이 몰려오는 말이었다.
형이 준 오토바이는 괴롭힘에 대한 일종의 보상인가 싶은데, 그마저도 동생의 다리를 분지르고 다시는 타지 않게 만든다. 나중에 비슷한 사고로 동생의 대학 동기가 죽기도 하는데, 그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형은 끝까지 도움이 안 돼 심지어 나를 죽일 뻔 했어 하는 느낌도 든다. 그런 형에 대한 불만과 불편한 심기가 직접 발화되지는 않지만 동생의 행동으로 잘 드러난다.
야이씨 자꾸 이렇게 잘 쓸래. 할 말 많게.

-외출
전통 농경생활하며 폐쇄적으로 사는 아미시 공동체 아이들과 화자가 접촉한 경험담을 풀어나가는 형식이다. 공동체 해체와 그 이후를 목격한 자가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해체의 징후는 그곳에 속한 아이들의 밤나들이에서 드러난다. 아미시 아이들은 마차를 타고 식당에 나와 바깥 세상처럼 입고, 먹고, 린치 당하고, 싸움하며 버티고, 데이트 비슷한 걸 하다 마을로 돌아간다. 화자는 친구 태너와 함께 그들이 나와 돌아다니는 식당과 케이마트 근처를 얼쩡대며 아미시 아이들과 접촉한다. 태너와 화자는 잘 나가는 애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열외의 존재고, 그래서 자신들보다 더 열 밖에 있는 아미시 아이들과 어울려 다닌다.
아미시의 몰락과 해체를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아이 둘이 화자의 주요 관심이자 관찰 대상이다.
화자와 오래 데이트를 하면서도 이 도시를 떠날 궁리만 하다 결국 떠나간 레이철. 그 아이와 어둠 속에 십 수 미터 강 위에 놓인 널빤지 위를 질주하는 이미지가 좋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 무모함에 뒤늦게 아찔해 하는데. 나는 이유를 모르겠다. 오히려 그럴 수 있던 시절이 더 좋게 기억될 것 같은데. 현실이 안정되고 가장 만족스러운 순간이면 그렇게 여길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딱히 그래 보이지도 않는다.
아이작 킹. 거대한 덩치로 조용히 음악만 즐기던 남자. 외부 아이들의 가혹한 린치에도 끝까지 맞서다가 가장 오래 버틴 마지막 싸움에서 각목에 맞아 뇌혈전으로 죽는다. 도데의 스강씨네 암염소가 왠지 생각났다. 버티고 버티다 젊은이들이 다 빠져나가며 결국 쇠퇴한 아미시 공동체를 왠지 너무 노골적으로 상징하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가 뉴규먐댸료오-긔겨아뉜데에- 라고 하면 할 말 없습니다...
...

-머킨
공공장소에서 게이의 이성 동반자 행세하는 사람을 비어드, 레즈비언의 같은 역할하는 사람을 머킨(가짜 음모)이라 한다고 소설 주석에서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이렇게 하나 더 배웁니다.
화자가 바로 그 머킨이다. 이웃의 린의 아버지 방문 전 열심히 계획을 짜서 린의 애인처럼 보이려고 한다. 화자는 린의 말에 지나치게 고분거린다. 딱 봐도 린을 좋아해. 린이 단순 레즈비언이 아닌 양성애자라는 것은 후반부에 나온다. 남편이 바람 피워서 상처 받은 적이 있고 딸 아이 조지아가 있으며 델핀이라는 여자친구랑 살고 있는. 화자 역시 구여친이 교수와 바람 나고는 자기 탓하며 헤어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더욱 린과 죽이 잘 맞는지 모른다.
화자는 후천성 청각 장애 아이들을 가르친다. 거기에 호세라는 아이가 시를 쓰고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그래서 듣기 괴로운 쪽에 가까운 시 낭송을 굳이 스스로 하려고 든다. 린은 그것을 보는 일을 견디지 못하고, 화자는 호세의 낭송을 막거나 외면하지 않고 약속이 있는데도 꼭 호세를 보기 위해 행사장에 찾아간다. 화자와 린이 잘 풀릴 듯한 분위기였지만 호세를 대하는 태도에서 둘이 그렇게 잘 되지 않을 것을 예감할 수 있다. 그럼에도 화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언어를 말하여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소통할 수 없는 한 소년‘을 린과 함께 지켜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듯하다. 이런 착해 빠진 놈이.

-폭풍
초반만 보면 리처드를 스페인에 버리고 돌아온 누나가 샹년 같고 동생은 보살이네, 하는데 사실 이 집안 가풍이 보살이다. 병신같은 새 애인 톰을 여전히 끼고 보살피는 엄마나, 누나가 지랄같이 굴어도 항상 기분을 살피고 지지하는 동생이나, 반전이라긴 그렇지만 어쨌든 남의 허물을 자기 허물로 만들어 가리는 누나나. 결국 폭풍은 영원하지 않고 언제든 지나가긴 한다.


- 피부
짧은 이야기이다. 이러저러한 비극의 미래가 예정되어 있지만 지금은 그녀의 피부에. 이런 형식을 본 것도 같은데. 손보미 소설 중에 차 사고 나고 아들 죽고 안 죽었다면 뭐시기 하는게 비슷한 느낌? 이런 거 써 보고 싶다.

- 코네티컷
음. 미국에 대해 진짜 모르긴 하다. 코네티컷 하면 어디 붙어 있는 어떤 느낌 동네인지 감이 안 온다. 뭐 근데 사실 내가 용인, 하면 미국 놈들도 그게 어떤 동네인지 감이나 오겠어? 관심이나 있겠어? 나도 용인, 하는 걸 써 봐야지 언젠가.
엄마의 비밀-벤틀리 부인과의 사랑에 대해 그때와 지금 깨달은 것을 풀어 놓는다. 사실 소설집의 소설 중 제일 그냥그랬다. 아니 어쩌자고 어떤 사람들은 자꾸 애들이 알면 곤란해하고 말도 못하고 괴로울 것들을 자꾸 노출하는지. 의도했든 아니든. 그건 주로 부모의 연애 문제다. 부모의 연애, 자기 양친이 아닌 사람과의 애정 관계의 복잡함, 피할 수 없는 부분일 수도 있지만 자기들 문제를 자녀한테까지 영향을 주게 만드는 건 좀 무책임한 것 같다. 여기 실린 소설 최소 네 편에 그런 부모 자녀가 나온다. 부모 관계가 아이들에게 영향 주듯 연인 문제도 유사한 문제를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아 마지막 소설에 비문이요 한 거 별 거는 아닌데...
땡땡이 쳐도 안 들키고 안전한 화목에 대한 부연이다.
‘그 두 날은 어머니가 평소 어울리는 사람들과 컨트리클럽에서 브리지 게임 하는 걸 좋아했다.’

내가 바보라서 문제 없는 문장으로 트집잡는 건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이상하잖아. 그 두 날이 좋아하는 것 같음. 안 이상해? 화요일이랑 목요일이 엄마가 뭔짓거리 하는지 좋아한다고? 아님 엄마가 좋아한다고? 그것도 아니면 내가 안전해서 엄마가 그러는 걸 좋아한다고?
아무래도 엄마가 좋아하는 거 같은데...그러면

‘그 두 날은- 게임하기를 좋아하는 날이었다.’
‘그 두 날은 -게임하기를 즐기는 날이었다.’
그 두 날은 빼고 ‘어머니가 - 게임 하는 걸 좋아하는 요일이었다.’
몰라 이건 개정판 낼 때 알아서들 고민해 고쳐주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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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9-20 1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좋죠?? 벌써 다 까먹어놓고 이렇게 말하는 게 되게 웃기긴 한데, 정말 좋았어요 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19-09-20 14:01   좋아요 1 | URL
저도 벌써 까먹은 거 같은데 좋구나, 이거만 남으면 됐죠. 진짜 좋았으면 나중에 또 보고 히히

초딩 2019-09-20 14:10   좋아요 2 | URL
저도 동의합니다!!!! :-)

반유행열반인 2019-09-20 14:11   좋아요 1 | URL
초딩님의 동의에 동의합니다ㅋㅋㅋ

은오 2023-08-07 0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읽고 나서 보니까 유열님의 이 페이퍼 제목 딱이네요. 가족이 아니라도- 이 문단 싹 다요! 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8-07 12:17   좋아요 1 | URL
이 잘 쓴 소설의 비결은? 하고 세 마디로 딱 압축했던 거 같은데 실천은 못하고 있습니다 ㅋㅋㅋ나 은오님 댓글 보고서 은오님 웃길라고 개노답 삼총사 만들었는데 은오님이 안 보러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