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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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7 테드 창

건강보험공단에서 의무로 받아야 하는 직장인 검진만 2년 마다 받다가 남편 직장에서 가족 복지?로 제공하는 검진을 처음 받아봤다. 키 몸무게 재고 피 뽑고 소변 뽑고 끝, 아닌가? 했는데 온갖 곳을 초음파로 쏘고, 생애 최초 위내시경도 받아 보고(수유 때문에 약 안 쓰는 비수면으로...별로 어렵지 않았음...나 좀 대단한 듯), 여기저기 전극 붙이고 집게 꽂고 별 거 다 했다. 원하면 MRI에 CT까지 찍나 본데 난 특별히 아픈데 없어서 안 했다.

원래 알던 이상 수준 외에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결과 ‘교감신경계 과활성화 상태입니다.’ 이 문장 말고는 뭐가 문제다, 이래라 저래라가 없는 항목을 보며 뭐라는 거야, 하고 검색해 보았다. 쉽게 말하면 깜짝 놀란 상태가 하루종일 지속되는 것이란다. 공황장애, 우울증, 불안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는...뭐 그럼 대충 이해가 갔다.
궁금한 건 저런 신체 상태가 저런 심리를 만드는지, 저런 심리 상태의 신체화 증상이 교감신경계 과활성인지 뭔지인지 모르겠다는 것...별다른 설명이 없다.
그냥 아, 그랬구나, 까지지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는 건 그대로다.

과학 기술의 많은 부분이 그런 것 같다. 이런 상태라는 기술적 설명, 이런 관계가 있다는 상관 분석까지는 내놓지만 원인이나 해결책은 명확하게 내어 줄 수 없다. 무엇을 해야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건 사람의 몫이다. 어쩌면 무엇을 하건, 하지 않건 달라질 게 없는 건지도 몰라.

이 소설집 속에 다루어진 많은 이야기도 그렇게 읽혔다. 자유의지 대 결정론, 기술이 인간을 자유롭게 할 것인가 구속하게 될 것인가. 작가의 최신작을 읽고 나서 이 책도 보게 될 건 알았지만 너무 빨리 봤나 싶기도 했다. 나는 숨 쪽이 더 좋았다. 두 소설집 안에 서로 짝이 되는 듯 비슷한 소설들이 있었는데 대개는 두번째 작품집 소설 손을 들어주고 싶었다.

1. Tower of Babylon (1990) 「바빌론의 탑」
바벨탑에서 영감을 얻었을 법한 신비로운 이야기였다. 고공도시, 신을 경배하는 자들이 쌓는 탑, 마무리에서 주인공은 절망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상황이라면 빠져 죽지 않고 자신이 출발한 곳으로 이끈 존재에게 더 감사하고 기뻐했을 것 같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왠지 마리오에서 토관 타고 워프한 느낌….ㅋㅋㅋㅋㅋㅋㅋ빵 터지네 혼자서.

  2. Division by Zero (1991) 「영으로 나누면」
영화 멜랑콜리아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타인은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이 끝난 느낌. 으아니 내가 인생을 바쳐온 수학이 다 헛짓거리라니!!! 하는 절망과 그 옆에서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 절망의 상황은 그대로 지켜보는 이의 심정. 두 가지가 평행선을 그리다 마무리에서 접점을 찾는 듯하다. 단락 나누는 숫자나 기호, 수학 때문에 고민하는 부분은 내게는 너무 어려웠다.

  3. Understand (1991) 「이해」
초지능 인류가 등장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그들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서 이해를 고려하지 않은 채로 자기가 꽂힌 분야에 몰두할 것이다, 뭐 그런 상상 같은데. 이미 거기에서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는지도. 똑같이 지능 폭발한 개체끼리도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상황을 보면 그렇다. 장강명 호모 도미넌스가 조금 비슷한 소재를 다루었다.

  4. Story of Your Life (1998) 「네 인생의 이야기」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시간 구성을 손톱깎이 처럼 접었다고 해야 되나. 이것도 정확하진 않고. 일어날 일을 안다고 해서 바꿀 수도 없고 그렇다고 거부하지도 않고 그냥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것이고 체념이나 달관이나 초월? 매우 묘한데 좋았다. 다른 인식 체계와 언어, 문자를 갖춘 외계인과 소통한다는 아이디어도 재미있었다. 몰랐는데 컨택트 Arrival 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했다. 영화는 왠지 망작일 것 같은 슬픈 예감이…(그저 편견이길….)

딸내미에게 밑줄 친 농담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못 알아 먹었다. 아니 애초에 애한테 할 소리냐…(더럽게 못된 엄마…)
“...‘내가 자식을 여럿 낳는다고 가정해봐. 만에 하나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된 다음에 인생에서 겪은 안 좋은 일들을 모두 내 탓으로 돌리면 어떻게 하지?’ 그랬더니 그 친구가 웃으면서 이러더라고. ‘만에 하나라니, 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5. The Evolution of Human Science (2000) 「인류 과학의 진화」
이해 의 초지능이 등장한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격차, 그럼에도 과학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힘겹게 들고 있다. 나한테는 설득력이 크지 않아 힙겹다고 썼다. 작가노트 보면 자신 있어 보여서 이상하다.

  6. Seventy-Two Letters (2000) 「일흔두 글자」
이 소설에 갇혀 거의 5일은 허비했다. 다음 책의 옴팔로스랑 비슷한 느낌의 소설이다. 명명학이라 하는, 이름으로 뭔가를 움직이는 힘을 만들어내는 능력. 자동 인형을 움직이거나 생식 세포에게 태아 형태를 갖추게 하는 이름들. (주문?spell? 이름? Name? letter? )
해리포터의 주문처럼, 볼트모트 이름을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런데 나한테는 더럽게 재미없었다. 참고 본 보람도 없었다. 눈물 줄줄줄...

  7. Hell Is the Absence of God (2001) 「지옥은 신의 부재」
두번째로 마음에 든 소설이었다. 닐의 입장에 매우 공감이 갔다. 결말도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경건한 듯 신성모독적인 소설이나 영화 너무 좋다. 밀양 같은 거. 독실한 이들은 반대로 읽을 수 있는 형식.
나도 그렇게 신 안에 행복 느끼는, 아이돌 보며 황홀해지는, 지도자들의 카리스마에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지지의 응원과 표를 던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봤지만, 안 될 것이다. 태생이 불신자에 모독자다. 그냥 믿지 않는 자로 살다 신이 있다면 지옥에 떨어지겠다고 단언한 적도 있다. 그런데 신을 사랑하게 되지만 영원히 버림 받는 상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참신했다. 뭐 이미 그렇게 살아온 사람에겐 그것도 커다란 지옥은 못될 것 같다.

8. Liking What You See : A Documentary (2002)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소고 : 다큐멘터리」
이건 세번째로 좋았다. ㅎㅎㅎ다큐 형식으로 다양한 등장인물의 인터뷰? 연설 발췌? 발화만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래 문단 밑줄치며 나에게는 자기 검열 능력만 생겼을 뿐 그런 감수성과 공감능력은 주어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올림픽에서 선수들이 경기하는 걸 보면 자존심이 땅에 떨어지나? 물론 그렇지 않지. 그러기는커녕 경이감을 느끼고 감탄하지 않나. 그토록 비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는 거야. 그런데 왜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같은 느낌을 받으면 안 된다는 건가?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반응을 보이는 우리에게 반성해야 한다고 하겠지. 페미니즘은 미학을 정치로 치환하려고 하니까. 그런 시도가 성공하면 할수록 우리의 문화는 빈곤해질 거야.’
칼리가 있다면, 나는 아마 안 하는 쪽을 택할 것 같다. 한다면 조금 행복해질 것 같긴 하지만. 그냥 안 하고 불행한 쪽으로. 병이야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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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O.S.T
여러 아티스트 (Various Artists)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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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맨슨의 추종자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그 저택에서 녹음한 음반을 들으며 궁금한 나머지 찾아봤었다. 영화 악마의 씨, 소설 로즈메리의 아기도 보았다. 로만 폴란스키의 추문은 피아니스트의 감동을 조금 깎아 먹긴 했지만.

만약, 이라는 방향이 이렇게 애틋할 수도 있다면.
데스프루프에서 자동차 살인마를 응징하는 씩씩한 스턴트 우먼 셋이 생각났다. 바스터스의 불타는 극장도 떠오르고. 화염 방사기. 뜨거운 사이다.
브래드피트는 몇 년 후면 환갑인데 여전히 멋있다. 디카프리오는 찔찔 우는 모습에 왜 저래? 하면서도 밉지 않았다.
1969년과 그 이전 시대 영화에 대한 노스텔지어, 이 정도로 멋지게 그려놨다면 옛날에 할리우드에서 말야- 하는 틀딱의 영화라도, 나도 맞장구치며 어머 그래요, 하며 태어나보지도 않은 그 시절을 함께 그리워할 용의가 있다.
+이소룡과 로만 폴란스키가 이 영화(속 자기 대역을)를 싫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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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좋아
고이즈미 요시히로 지음, 김지룡 옮김 / 들녘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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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라고 별 내용도 없는데 편안하다.
진보주의자는 왠지 제목부터 싫어할 것 같지만. 종교가 현상 유지에 기여한다는 말도 이해할 법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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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꾼 우시지마 46 - 완결
마나베 쇼헤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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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동안 징하게 보던 만화책, 드라마판도 재미있었는데 드디어 마무리 되었다.
욕망과 돈에 빠진 사람들의 비참한 신세가 지겨울 정도로 변주되었다.
후반부 나메리카와랑 대결하는 부분 전개가 지루했고 그걸 참고 본 결말이 허무했다...영화 똥파리랑 똑같아도 되는 거냐... 굿바이 우시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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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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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1 루시아 벌린

자기가 지나온 시간을 담담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씩 뜯어보면 끔찍하고 징글맞고 처절한 일들인데 말하는 사람이 이제는 아무런 감흥 없는 듯 말하는 걸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물론 아직도 괜찮지 않은 걸 들으면서 알 수 있다.
화자나 주인공의 이름은 다르지만 결국 퍼즐 조각처럼 작가의 인생이 맞춰지고 연대표가 그려진다. 중남미와 미국 여기저기를 옮겨 다닌 삶, 안착할 수 없던 여러 배우자와 연인, 엄마와 외할아버지는 또라이, 외할머니는 방관자, 동생의 말년은 시한부 암환자, 신체적 어려움과 또래 아이들의 배척과 잦은 전학, 교사, 통역자, 번역가, 청소부, 응급실 간호사, 병원 사무원, 음식점 점원 등 다양한 직업 경험, 마약 중독자 배우자, 알코올 중독, 교도소, 치료감호소, 중독자모임, 글쓰기 교실, 네 아이를 키우기, 하나씩 따로 떼어 한 사람씩 겪게 해도 어마어마한 일들인데 한 사람의 인생이다. 그리고 그녀가 쓴 글들이 남았다.

세사르와 잠수하고 사랑을 나누는 모든 달과 모든 해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슬픔에서 세사르가 다시 나오니 괜히 반가웠다. 바다에서 다져진 단단함, 여자한테 배 살 돈을 털어내는 매력 보면 나쁜 남자인 건 확실한데도 나도 그 해변에 가면 홀딱 반했을 것 같다.
아픈 샐리와 함께한 이야기도 여러 소설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어 나온다.

샐리와 루의 엄마를 보면, 자꾸 나인 것 같고 나를 욕하고 원망하는 나 죽은 뒤의 내 자식들을 보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엄마를 이해해 보려고 결혼하러 가는 젊은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는 딸들의 모습은 절박하고 애절하고 기특하고 슬프다.
술에 취해 어쩔 줄 모르는 날들, 엉터리 배우자, 연인들과 함께 꼬여가는 인생을 보면 그게 내 전생 같고 내 미래 같고 어쩌면 실현되었을지도 모를 다른 평행세계의 나같고 그렇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누군가의 불행을 보면 나는 안 그래서 다행이라거나 가엾게 느끼는게 아니라 그렇게 저게 어쩌면 나야 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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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10-02 0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놓고 아직 다 못읽었어요.... 읽기 어려운 책도 아닌데 왜 이렇게 손이 안 나갈까요??

반유행열반인 2019-10-02 09:50   좋아요 0 | URL
아 저 syo님 페이퍼에서 이 책 보고 빌렸어요ㅋㅋ 인생이 흥망성쇄 기복이 있어야 읽을 기운이 나는데 대놓고 망 망 좆망 망 이런 얘기 내내 읽으려면 지겹죠. 뒤에 가면 별로 못쓴 것도 있고 내내 담담하진 않은데 저도 얼른 다른 거 보자 하고 꾸역거리며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