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쁜 쪽으로
김사과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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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7 김사과

제목과 표지가 수없이 듣는 슬로건을 뒤집어놓은 듯해 끌렸다. 여러 소설가의 짧은 소설 모아둔 책에서 읽은 김사과 글은 거의 최악의 소음처럼 읽혔는데 소설집을 읽고 다시 보자 싶었다.
내 능력으로는 서사도 의미도 찾을 수 없는 1부를 읽으며 조금 괴로웠다. 누가 읽을 걸 생각은 하고 쓴 걸까 궁금했다. 끝까지 이런 식이면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도 어찌저찌 읽었다.
2부 세 편은 나름 귀여운 구석도 있어서 비교적 재미있게 보았다. 아주 또라이인 건 아니구나 싶었다.
3부되면 방심하던 나새끼를 쳐패며 일기장에 술먹고 예술가 놀이 할 때 끄적일 법한 망할 찌그리기들이 다시 등장한다. 왜 영어로 줄줄 주절거리는데. 영어 못하는 사람 먹이는 걸까. 애초에 한국문학이 아닙니다 제 글은. 하고 우길 셈일까.
이런 걸 쓰는데 그치지 않고 계속 쓰고 여러 권 출판해내고 그런 자의식과 뻔뻔함은 배워야겠다. 아무도 못 알아먹을 말의 나열로 현실의 무엇을 전복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혹시 나만 바보라서 그런가. 책 뒤에 해설이 안 붙어있다. 이걸 해설하겠다고 뛰어든 평론가 있으면 궁금해서 오랜만에 읽어보자 했는데 꾀밝게도 나선 이가 없다. 아 뭔말인지 모를 이야기를 읽고나서 목차의 제목들을 다시 보면 제목은 또 잘 지었다 싶었다. 온통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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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10-27 2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김사과 선생님이 김사과하신거죠.

반유행열반인 2019-10-28 00:47   좋아요 0 | URL
김사과 당했네요. 사과 먹을 때마다 어딘가 쓰릴 거 같아...
 
깃털 도둑 -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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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도 소리도 감촉도 냄새도 모를 아름다움에 빠져 있다. 내 머릿속에 공산주의 같은 유령이 멈추지 않고 떠돈다.
어떤 사람들의 뇌는 무언가를 강렬하게 아름답다고 반응하더라도, 같은 대상을 보는 누구나 다 같은 정도의 감흥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냥 예쁘네, 알록달록하네, 하고 말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새의 깃털이 그런 대상이 되었다. 내 눈에는 그저 가볍고 부드럽게 날리는 게 장점의 전부인, 냄새날 것 같아 찝찝한 동물의 체모가 누군가에게는 소유욕을 불러 일으키고 고액에 거래된다. 새들 스스로도 아름다운 깃털을 선호한다. 이성의 선택을 받기 위해 오랜 시간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화려한 깃털과 현란한 춤실력을 발전시켰다. 발전시켰다는 건 정확하지 않고, 그런 유전자를 갖춘 개체가 자손을 남기는 데 성공해 그런 형질이 여태 남았다. 다윈의 종의 기원과 자연선택설에서 다뤄진 이야기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월리스라는 박물학자 또한 세계 오지를 누비며 수많은 동식물 표본을 모으는 과정에서 같은 통찰을 얻게 된다.
월리스와 다윈의 표본은 자연사박물관에 보관중이었다. 그중 트링의 박물관에 에드윈 리스트라는 플루트 전공 학생이 침입해 새 수 백마리를 훔쳐 간다.
난민 구호 단체에서 일하다 지쳐 송어 낚시에 빠져 있던 화자는 그 사건에 관해 흥미를 가지고 범인 본인과 그 주변 인물, 플라이 동호회 사이트 사람들, 박물관 관계자와 경찰 등과 접촉하며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고 아직 회수되지 못한 도난된 새들을 추적한다.
책을 거의 다 읽을 때까지 소설인 줄 알았다. 월리스의 고단한 수집 여정, 빅토리아 시대 깃털 모자 유행, 낚시를 위한 또는 낚시 없이 플라이 자체에 매료된 플라이 타잉 매니아들의 세계를 소개한 글이 중간에 있는 게 흥미롭네, 했는데 뒤늦게 어 이거 논픽션이네 하고 깨달았다. 나 바보 ㅋㅋㅋ
에드윈이 교묘하게 빠져나가고도 내가 뭘 훔쳤는데? 하고 화자에게 당당히 말하는 부분은 섬찟하면서도 얄미웠다. 사실 그런 반응 읽기 전부터 그러게, 잊혀진 채 그저 처 박혀 있는 표본이 무슨 소용이야, 지식의 추구가 미의 추구나 부의 추구보다 상위 가치라는 건 누구 마음대로야, 하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의 깃털 구매자의 허무주의에도 악간 흔들렸다. 어차피 인간이 다 없애고 있는 거. 이미 죽은 걸 그냥 두느니 이용하는 게 왜. 그러면서도 찜찜했다. 어쨌든 자기들은 별 노력 없이 남들이 다른 목적으로 이루고 지키는 것을 자기들 이익을 위해 다 해체하고 돈 몇 푼에 팔아 먹었잖아. 그럼 나쁜 놈들인 건 맞다. 그런 주제에 그런 핑계라니.
아스퍼거증후군이 이제는 DSM에서 삭제되고 자폐증에 통합된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지금은 없어진 그 질병 진단이 에드윈이 감옥에 가지 않을 구실이 된 게 씁쓸하다.
낚시를 잘 모르니 플라이라는 도구를 처음 알았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니 깃털과 실을 이용해 정말 날벌레 같이도 만들어놨다. 만든 사람들이 정말 예쁘고 정교하게 만들려고 애썼구나 싶었다.
언급된 새들도 몇 가지 사진을 찾아보았다. 극락조는 화려하고 긴 꼬리털이 매력적이었다. 우리 주변 참새같은 애들은 고양이한테 채이지 않으려고 짤뚱한 꼬리로 진화했지만 얘들 사는 뉴기니에는 그런 천적이 없어 가질 수 있게 된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 때문에 수많은 극락조가 인간들 손에 죽었고 멸종 위기에 놓였다.
책 다 읽고나서야 맨 뒤에 책 속에서 비싸게 거래되던 멸종 위기의 새들, 깃털과 플라이, 관련인들의 사진이 있는 걸 알았다. 미리 살펴보고 책을 읽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아름다운 것들을 그저 지켜보고 지켜주는 사랑도 있는데, 어떻게든 소유하고 원하는대로 이용하고 거기 만족 못하고 더많이 쥐려는 사랑도 있다. 사랑을 아무데나 붙이면 안 되지. 탐욕, 집착, 파괴다. 수많은 동식물이 그 덕에 사라진다. 사람의 마음이 부서진다. 공동체의 미덕이나 공공이익이 파괴된다. 그런 걸 정당화하는 편에 서서는 안 된다.

사건을 추적하는 집요함 뿐 아니라 서술 방식과 시간 전개를 풀어가는 방식이 흥미롭고 잘 읽혔다. 이전 책 보며 심통났던 게 둘다 대출기간 짧은데 앞에 빌린 책이 너무 재미없고 이 책이 재미있어서 그랬던 것도 같다. 영국 배경의 소설은 좋아하고 인도 작가 관점의 책은 힘들어 한 건 내 문화 축적경험조차 이미 식민지화되서 그런가 하고 잠깐 생각했다. 객관적으로 재미있고 없고 잘 쓰고 못 쓰고 차이일수도 있고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 뭐라고 답을 못하겠다. 어쨌든 책을 읽을 수록 영국에는 가고 싶은 곳이 늘고 (길 가는 여성이 자기 몸을 만져대는 수많은 남자 새끼를 피해다녀야 하는) 인도는 엄두를 못내게 되는 걸 보면 조금 슬프다. 난 너무 쫄보야.

월리스의 말레이 제도도 전부터 보고 싶었는데 이젠 더 보고 싶다. 그런데 너무 비싸...일단 가지고 있는 종의 기원이나 먼저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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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
반다나 싱 지음, 김세경 옮김 / 아작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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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4 읽다 말았음. 반다나 싱

인도 문화를 배경으로 한 SF라니, 흥미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제목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랑 비슷하니까 재밌을 거 같잖아...거 안 그런가요.
허기, 델리,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까지 그럭저럭 읽었고 무한을 힘들게 읽고 갈증까지 좀 더 참고 읽고 보존법칙을 읽는 도중 포기하기로 했다.
다양성과 상상력은 존중하고 싶다. 인도 여성이 처한 거지같은 현실도 여러 작품에 나름 잘 드러냈다. 그런데 수학과 무한에 대한 갈망과 관념을 늘어놓는데서 많이 지루했고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들의 전개나 결론이 다 비슷하게 재미없고 달 거주민 이야기에서는 읽을 의욕을 상실했다.
이런 평을 할 때는 내 상태를 보기는 해야 한다. 책을 읽을만한 정신머리가 안 갖춰져 있어서 일 수도 있거든.
SF들을 조금씩 시도중인데 이번 건 나랑 별로 맞지 않았고 한동안 쉬는 게 낫지 싶다. 굳이 다음에 또 보기로 한다면 집에 모아둔 어슐러 르귄 책 세 권부터 먼저 시작해야 겠다. 아주 나아아아아아중에. 미안해요 작가님 우린 여기까지... 맑은 정신으로...다시 만나진 않을 것 같아요...또르르르르르...부족한 나라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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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가능하다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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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1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미국을 가 본 적 없고 미국에 대해 1도 모르는 내가 일리노이를 들으면 먼저 떠오르는 건 영화 기생충 기우 기정 남매가 독도는 우리 땅 멜로디에 맞춰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과선배는 김진모 그는 니 사촌’ 하고 부르는 장면이다.
Anything is possible 오랜만에 직역한 제목을 보며 정말 그럴까? 하고 반문부터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마치...일리노이 앰개시 판 전원일기 같은 느낌이었다. 연작소설이라 하기엔 조금 느슨한 연결점이긴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 입에 오르내리거나 회상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또다른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되어 다시 등장한다. 그렇게 이어지고 이어지는 사람들 사이의 연결망을 지켜보는 건 흥미로웠고, 종이 한 장 펴고 인물 관계도 같은 걸 그려 보고 싶은 마음을 자꾸만 불러일으켰다. (참고 안 하기로 했다.) 마을에서 안 좋은 취급을 받던 바턴씨 일가와 작가가 된 루시 바턴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마침내 바턴네 세 아이가 모인 소설을 읽었을 때는 정말 슬펐다. 자랐지만, 살아남았지만 그들의 아픔은 너무 커 보였다.
선택할 수 없는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이들이 하필이면 가난한 데다 병들고 엉망진창으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일지라도, 역시 선택한 건 아니지만 그저 남일 뿐이지만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안타깝게 여기고 작은 따뜻함이나마 나누어주는 이웃이 있다면 아이들은 그 부모보다는 조금이나마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것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못해 보이는 사람을 무시하고, 배척하고, 쓰레기 취급하고, 호의를 배반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인간은 한없이 못 되고 답 없는 존재 같지만, 아닌 사람들이 있는 덕에 세상은 지탱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마냥 남을 위해 살 자신도 없지만 가끔은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건 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소설 자체는 어려운 말은 하나도 없는데도 상황 파악이 쉽게 되지 않고 술술 읽히지도 않았다. 무얼 말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는 장면과 이야기가 더 많았다. 온기를 주는 부분이 가끔 있어서 그나마 참고 읽을 수 있었다.

-계시
토미의 헛간에 불이 났고, 토미는 그 날의 일을 오히려 하느님의 계시로 여기며 이후로도 나쁘지 않게 삶을 꾸려왔다. 혼자 지내는 바턴씨네 아들 피트에게 들렀다가 그의 믿음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어린 루시와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아이 같은 피트에게 내민 토미의 손길은 다정해 보였다. 사람에 대한 연민을 가지는 일. 어려운 일을 누군가는 애써 해내고자 한다. 옆 사람 몸냄새를 참아가며,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을 견뎌가며 그렇게 한다. 뒤에 나올 소설에서 피트가 토미와 함께 무료급식 일을 돕는 이야기를 보며 그의 손길이 지속되고 있다는 걸 확인하니 좋았다.
-풍차
나이슬리 걸즈로 불리우며 마을의 손가락질을 받던 패티와 린다 자매. 패티는 자라서 마음을 다친 남편 세바스찬을 만났고, 다시 잃었다. 우울증약을 먹고 살이 쪘다. 학교에서 진로상담교사로 일한다. 루시 바턴의 조카이자 비키의 딸인 라일라에게 험한 말을 듣고 잠시 상처 받지만, 오히려 그 아이의 더 큰 상처를 깨닫고 아이의 잠재력을 일깨워주며 대학에 보내주겠다고 한다. 라일라의 눈물. 자기에게 누군가 잘 해주면 견딜 수 없다는 아이. 패티는 마음에 두고 있는 찰리의 곁에 다가 앉는다. 그가 하는 말을 들어준다. 사랑스러운 패티, 조금 더 사랑 받아도 될 것 같은데 설정이 아직까지는 가혹하다. (나중에 뒤의 소설에서 그녀의 사랑이 다시 시작되는 듯한 소문을 듣긴 하지만…)
-금 간
린다는 부잣집 남자와 결혼했지만, 행복하지 않다. 유명 사진 작가 캐런의 호감을 사기 위해 캐런의 지인 이본이 행사 기간 동안 자신의 집에 머물도록 하지만 그녀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다. 뒤에 나온 민박집을 운영하는 도티와 많이 대조적이다. 린다의 남편 제이는 돈만 많은 대책 없는 미친놈이고 린다와의 사이도 소원하지만 린다는 그걸 직시하지 않으려고만 하는 것 같다. 부자들은 가난한 예술가의 예술을 수집하면서도 무시하고, 예술가들은 부자들의 소비에 의존하면서도 그들을 경멸한다. 유리로 된 투명한 집, 문 없이 개방된 공간, 그러나 그집 사람들의 마음은 그렇지 못하고 벽에 걸린 금간 접시처럼 갈라진 채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한다.
-엄지 치기 이론
베트남 참전 경험이 얼마나 찰리라는 남자의 마음을 부숴놓았는지 잘 와 닿지가 않았다. 사랑에 빠졌던 창녀 트레이시에게 만달러를 뜯기고 상처 받고, 도티의 민박에 머물며 고통과 결핍에 대해 생각한다. 남의 고통에 대한 소설을 가지고 이러면 안 되지만 그래도...읽기 힘들고 재미가 없었다. 남자 화자가 나오는 부분이 특히 그런지, 마지막 소설도 약간 비슷한 기분이었다.
-미시시피 메리
패티의 직장 동료인 앤젤리나는 패티와 비슷한 상처를 공유한다.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집을 떠난 일이다. 60이 넘어 얻은 새 사랑을 찾아 이탈리아로 떠난 엄마 메리는 이제 80대이다. 앤젤리나는 떠난 엄마에 대해서만 골몰해 있다가 남편이 그 사실을 지적하며 떠나버린다. 그런 엄마를 찾아간 앤젤리나가 메리와 보낸 날을 그렸다. 나이를 먹어도, 죽을 때까지도 사랑은 멈추지 않을 수 있겠지. 그래도 남겨진 사람들은 그걸 인정하기 힘든 일 같다.
-동생
바턴씨네가 살던 집에 홀로 남아 살고 있는 피트는 작가로 성공한 동생 루시가 자신을 보러 돌아온다는 말에 청소도 하고 이발도 한다. 또다른 여동생 비키도 오지만 루시가 자신들을 버리고 떠났다는 생각에 루시에게 모질게 대한다. 그들이 어린 날 입은 상처를 파헤치는 시간, 루시의 공황장애, 루시를 챙기는 언니 오빠, 그래도 남아 있는 형제애 같은 게 안타까운 소설이었다. 그 모진 부모들이 죽었어도 주위 사람들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지금 잘 살고 있어도 상처에서 벗어나는 일은 평생을 가도 힘든 일인지 모른다.
-도티의 민박집
루시가 사인회에서 만난 사촌 에이블과 그 동생 도티. 도티는 멀지 않은 곳에서 숙박업을 한다. 스몰씨와 그 부인 셸리가 손님으로 머물렀고, 셸리는 도티에게 자신이 상처 받는 경험을 말한다. 스몰씨의 친구 데이비드의 부인이었던 배우 애니가 자신이 신경써서 꾸민 자신의 집에 대해 모욕했다(는 소리를 데이비드로부터 전해 듣)고 창피했던 일이다. 도티가 그 이야기를 듣고 반응한 것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스몰씨 부부는 자기들 방에서 도티를 모욕하는 험담을 했고 도티는 상처 받았다. 그래서 그들이 먹을 잼에 침을 뱉고 스몰씨에게는 대놓고 항의하는 말을 건넸다. 나름 작은 사이다 같은 장면이지만 그걸로 되었을까 싶었다. 도티는 조용한 위로를 건네고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인 찰리를 잊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도티가 기억하는 찰리와의 시간은 한결 따뜻했다. 앞의 소설에서 찰리가 그걸 제대로 알아챘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마 몰랐을 것 같다. 자기만의 슬픔에 너무 깊이 빠진 사람이라.
-눈의 빛에 눈멀다
바로 앞 소설 속 배우 애니의 이야기이다. 아버지의 엄함, 아버지의 치매 발병 후 뒤늦게 알게 된 비밀, 그런데도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는 듯한 애니의 마음. 눈 쌓인 숲을 함께 바라보던 기억.
-선물
도티의 오빠 에이블이 크리스마스 날 극장에서 겪는 이야기이다. 사실 깊이 공감이 가지도 이해가 가지도 않았다. 배우 링크와의 갑작스러운 조우로 에이블은 심장마비까지 겪는데, 그와중에도 링크와 마음이 통하고 좋은 시간을 보냈고 친구가 되었다고 여긴다.

+밑줄긋기
‘그리고 자책한다는 것, 음, 자책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한 일에 대해 미안해할 수 있다는 것—그것이 우리를 계속 인간이게 해주지.’
-토미가 피트에게 건넨 위로.

‘그녀는 이해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주된, 그리고 가장 큰 관심사는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시비만은 예외여서 그는 그녀에게 관심을 두었고, 그녀 또한 그에게 엄청난 관심을 쏟았다. 그것이 사람들을 바깥세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피부였다—자신의 인생을 공유하는 또다른 누군가의 사랑이.
-그런 사랑을, 피부를 잃은 패티의 마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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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욜로욜로 시리즈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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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9 박지리

박지리를 너무 늦게 알았다. 스스로 세상을 떠난, 상자 가득 원고를 담아 출판사에 보낸 글쓰기를 배운 적 없는 작가라는 아우라를 먼저 접했다. 책을 몇 권 모아두었지만 여태 읽지 않았다.
제목은 좀 후진데 자꾸 궁금하기도 한 이 책을 살까 말까 한참 망설이다 전자 도서관에 올라온 걸 보고 빌려 읽었다.
너무 늦게 읽었고, 지금이라도 읽어 다행이었다. 아직 한 권 밖에 안 봐서 남은 책들이 다행이고 더 새로운 이야기는 그 이상 나올 수 없어 안타깝다. 글을 쓰는게 뭐라고, 그 무게가 뭐라고 견디지 못했을까. 그에게는 단순히 뭐라고 정도가 아니었겠지.

희곡 형식의 이야기 전개가 책 초반부와 종반부에 섞여 있다. 그 부분은 정말 배우의 독백과 방백과 연기를 보는 기분이다. 중간의 전개는 연수원에 들어간 M의 의식과 심리와 인식을 시간대를 명시하며 잘 보여주고 있다. 술술 읽힌다. 고대 비극이나 셰익스피어 희곡 같은 느낌, 그런 걸 이런 식으로 응용하는 게 신기하다.
사실 1인칭으로 내면까지 보여주는 방법은 과연 주인공이 제대로 된 인식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완전 미친 놈인 건지, 또다른 음모가 있는 건지 판단을 어렵게 만든다. 읽으면서도 오락가락한다. 이건 왠지 노렸을 것 같다. 요즘 같으면 얻어 쳐맞을 남자가, 여자가, 하는 성고정관념도 아예 노골적으로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이것도 일부러 그런 것 같다. 손가락 말고 달을 봐야 한다.
문장도 전개도 탄탄했고 전달하려는 상황을 읽는 이가 파악하는데 어려움 없게 서술하고 있다. 생전에 박지리의 소설은 청소년 권장 도서로 인기를 끌었었다. 읽기 쉬운 것이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읽기의 쉬움이 결코 생각이나 감상의 쉬움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 때 그 청소년 권장 목록의 책은 아직 읽지 않아 정확히 모르지만 이번 책은 그랬다. 48번인지 49번인지 50번인지 면접을 보며 면접형 인간이 되어 버린, 평가와 경쟁을 삶의 방식으로 선택해버리고 현실 인식이 왜곡되고 그러다 뒤늦게 진실을 알아채며 무너져버리는 M의 모습은 실존주의 소설 속 인물 부조리극의 주연 배우 그 자체였다. 거리감을 두고 보다가도 나는 안 저런가 하고 이입하고 슬퍼지기도 하는, 줌인아웃을 반복하게 했다.
그런 주인공의 입을 빌어 그의 관찰대로 주변 인물을 묘사하는데, 신기하게도 주인공의 편견 한 겹 씌워진 뒤로 그 인물들의 다른 모습도 같이 보였다.

그래서 제목만 보고 망설이는 독자에게는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저 내 취향일수도 있지만, 새로운 경험이었고 나보다 어린 작가를 훨씬 오래 전에 잃어버린게 너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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