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리커버 특별판)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권김현영 해제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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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200115 벨 훅스

읽은 지 오 년 이상 된 책은 안 읽은 거나 다름없다고 느낀다. 그러니 스무 살 무렵 동아리에서 공연준비를 위해 얼마 간 진행한 세미나에서 열심히 읽었던 여성주의 관련 책들은 이제는 제목마저 생각나지 않는다. 어쨌든 친구들과 열심히 공부하고 나서 월경 페스티벌이란 이름의 축제 무대에서 공연을 했었다. 스물한 살에는 엘리자베스 워첼의 비치 표지를 보고 누드에다 가운데 손가락까지 올린 저자의 도발적인 모습에 안절부절못하다 없는 돈을 탈탈 털어 결국 손에 넣고 말았다. 그 덕에 참치캔 하나를 몇 번에 나눠가며 몇 끼 밥을 떼워야 했지만 책 자체는 재미있게 읽었다. (생각난 김에 검색해 보니 같은 저자의 프로작 네이션 이라는 책도 너무 보고 싶어져서 질러버렸다...) 스물두 살에는 다이어트의 성정치 등의 책을 보고 친구들과 몸과 성차별에 대해 전공 수업 발표를 했던 기억이 난다. 취업하고 얼마 안 되어서 그냥 읽고 싶서져서 이갈리아의 딸들을 사 봤다.
거기까지다. 다 십 년도 넘은 시절이다. 이후로 비슷한 책 조차 한참 안 본 것 같다.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가르치고, 깨알같은 업무 목록에 양성평등 교육 담당이라고 적혀 있긴 했다. 인권, 차별, 평등 등등의 단어가 들어간 연수를 몇 차례 이수했지만 건성건성 들었다. 그러니 아주 오래 안 읽고, 잊어버리고 살았다.
어려서 열심히 읽은 한국 소설은 주로 남성 작가들이 쓴 것이었다. 길게 봐야 이삼 년 전? 아주 최근에야 젊은 작가상 작품집 같은 걸 읽기 시작하면서 여성 작가들이 많이 활약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 녹아있는 성소수자, 젠더, 페미니즘 같은 소재들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 그때 나의 반응은...그닥 공감하지 못했다. 가장 인기를 끌었던 어느 작가의 소설은 담고 있는 메시지의 가치나 반향과 별개로 너무 후지게 썼다는 반감 때문에 좋은 말을 하지 못했다. 굳이 찾아 읽으면서도 시류 편승해서 열심히 팔아 제끼려고 급조해 쓰거나 출판한 탓에 완성도가 떨어지는 글들 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편견이었을까. 메시지를 담으면서 예술성까지 챙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걸 알면서도 문학의 가치와 역할에 유독 편협하고 인색하게 굴었던 것 같긴 하다.
쏟아져 나오는 담론과 논쟁과 투쟁의 모습, 관련 분야의 책들을 나는 외면했다. 혹은 저렇게까지 해야 해? 오히려 반감과 역풍을 가져오고 여성 인권 신장에 부정적일 것 같다는 옆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하기까지 했다.
왜 그랬을까, 궁금했다. 나는 왜 애써 무관심하거나 냉소했을까. 역설적이지만 오히려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인 사람의 스톡홀름 증후군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성애자, 기혼자, 임신중절대신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선택하고 경력을 중지한 채 휴직 중인 사람. 주로 문학에서 제기된 문제지점을 보면서 뭔가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가치 있는 헌신이라는 믿음으로 선택한 일들이 온통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존재 만으로도 체제를 공고화하는 데 부역하는 사람. 물론 그 공고화된 체제 안에서 큰 고통을 겪는 것도 나같은 위치의 사람일텐데. 그렇다고 그런 것들에 문제를 제기한다면 불편해질 관계, 상처입을 사람을 생각했다.
이런 자각도 있었다. 나의 배우자는 어려서 나와 세미나와 공연을 함께했고 성장 배경의 영향이 있는 것인지 이유는 모르지만 소위 말하는 억압적인 남성상과는 거리가 멀다.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가사나 육아에 있어서 스스로 하는 부분은 제한적이고 내 지시와 요청에 따르거나 돕는 수준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우습게도 남성 가부장이 부재한 상황에서 상호 호혜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이뤘냐, 하면, 억압을 넘어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나는 성별만 바뀌었을 뿐 그 가부장의 역할을 열심히도 재현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역할은 전통적인 엄마들 하는 부담을 지면서, 가족 구성원을 대하는 태도는 내가 원하는대로 많은 부분을 통제하고 대부분의 결정을 내 마음대로 하면서 그걸 제대로 따라주지 못할 때 잔소리를 퍼붓고 거기에 언어든 신체든 폭력적인 요소까지 가끔 동반되는 일이 있었다.
자각을 못하는 게 아니라 끊임 없이 자책하고, 고쳐야지, 하면서도 나아지다 악화되고. 그러니 그런 문제제기를 하는 글들을 볼 때면 눈물 가득한 채 노려보는 눈이, 가리키는 손가락이 온통 나를 비난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나아지고 싶고 달라지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래서 남들이 남기는 글도 읽어 보고,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는지, 어떤 정책이 요구되고 있는지 조금씩 관심을 가지는 중이다. 입문서라도 다시 보자,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골랐다. 페이지가 얇아서 제일 마음에 들었다. 저자가 ‘명료하고, 간결하고, 쉽게 읽히는 책’이라는 바람을 실현한 책이라고 했다.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가고 솔직히 말하면 아주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흑인 여성으로서 성차별문제와 인종차별문제 양쪽 모두에 민감함을 가지고, 수십 년 간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 투신, 헌신, 연구한 저자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페미니즘 운동의 약사는 제법 생생하게 와 닿는 부분이 있었다. 책의 내용 또한 수많은 페미니즘 갈래 중 하나의 주장이겠지만 그래도 운동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안하는 부분이 가치 있어 보였다. 깊이있지는 않아도 페미니즘과 연결될 수 있는 삶의 다양한 부분을 최대한 많이 언급해 놓은 것이 입문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 꼭지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이 있다면 더 자세하게 파고들어간 다른 책들을 찾아볼 수 있으니까.
어제 사회과교육과정을 오랜만에 뒤적여 보았다.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는데,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국가수준 문서에 명시되는 날이 올까? 하는 질문에 친구는 오지 않을까, 하고 답했다. 나에게는 그 정도까지 확신은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어린 친구들이 차별과 착취와 억압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해결하려 노력하는 사람으로 자라는 데 기여할 만한 방법을 궁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밑줄 긋기
-이 명료한 개념 정리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다.’
-억압의 가해자가 남성 뿐 아니라 여성 스스로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책에서 저자가 계속 성토하는 개혁적 페미니스트들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기득권에 편입되어 올바른 변화를 방해하는 역할을 하고 있던 건 아닌가 돌아보게 되었다.
‘의식화 모임이 거둔 가장 강력한 성과는, 모든 여성에게 내면화된 성차별주의, 다시 말해 가부장제적 사고와 행동에 대한 충성과 헌신을 직시하고 페미니스트로 거듭나라고 촉구한 것이다. 이러한 개입은 여전히 필요하다. 페미니즘 정치를 선택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런 단계를 꼭 거쳐야 한다. 외부의 적과 맞서려면 그전에 내면의 적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를 위협하는 적은 성차별주의적 사고와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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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1-15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님 요즘 열독하시네요. 저는 그렇지 못한데......
알라딘 뜨문뜨문 등장하는 syo의 빈자리(그리 큰 것도 아니겠지만)를 반님이 채워주세요.....
저는 현실세계에서 제가 있어야 할 자리를 더 많이 채워야 하지 않나 싶어요.....

반유행열반인 2020-01-15 22:22   좋아요 0 | URL
우와 현실세계에서 syo님이 있어야 할 채워야 할 자리가 생긴 게 저는 정말 반갑고 기쁘게 여겨집니다. 곱고 재미난 글 자주 못 보게 된 건 이 작은 공동체와 저 개인에게 아주아주아주 큰 손실이지만...눈물 닦으며 괜찮아 어여 가 하는 중입니다...

무식쟁이 2020-01-16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의 내 안의 혁명. 하나.
한 명이라도 말하게 되는 내일. 혁명 둘
모두 말하게 되는 날. 큰 혁명. ... 이라고 <디디의 우산>을 읽고나서 메모장에 끄적여 놓았었네요 제가.

반유행열반인 2020-01-16 15:06   좋아요 0 | URL
우와 뭔지 모르게 되게 심오해요. 저는 디디의 우산 읽고 막 깠던 거 같은데...황정은님 좋아하지만 빠가 무서워서 살살...ㅋㅋㅋ 큰 혁명 오면 막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그럴까요 ㅎㅎㅎ

무식쟁이 2020-01-16 15:17   좋아요 1 | URL
저는 뭐 맨날 혼자 방구석 혁명중이라. 제3의 장소(like 알라딘)에서 제대로 말하는 사람들 (like 반x행x반x님) 보면 참 멋져요.

반유행열반인 2020-01-16 15:21   좋아요 0 | URL
네? 제가요? 제대?제대로? 제 뭐요? 저 그냥 방구석 키보드 워리어요...ㅋㅋㅋㅋ참 멋지다 고이 넣어두셔요...무님 취향 특이하셔요...

무식쟁이 2020-01-16 15:56   좋아요 1 | URL
왁. 방구석 키보드 워리어 ㅋㅋㅋㅋ
열반인님이 말씀하시니까 막 간지나고 막..🤭

근데. 저 취향 특이한거는 쵸큼 맞는거 가타요.. 😒

반유행열반인 2020-01-16 16:11   좋아요 0 | URL
아...취향 특이한 사람한테 약한 특이한 취향을 가진 저인데...약해집니다...간지도 넣어두세요...저한테 왜 이러세요 ㅋㅋ(갑자기 급 제가 모이웃님한테 하던 액션을 떠올리며 아 이런 기분이셨겠다...하고 급반성중입니다...)

2020-01-16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6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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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3 줄리언 반스

보내야 하는 시간동안 책을 읽었다. 의외로 그 시간이 꽤 괜찮았다! 밖은 춥고 안은 따뜻했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그런데 무척 재미있었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 많이 남은 게 신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 걱정이 들었다. 그저 평범하고 최악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던 살아온 날들, 그 작은 역사를 문득 돌아보다가 나야 말로 구제불능의 쓰레기였고 내 인생 자체를 부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면 어쩌나 하는. 그래서일까 미리부터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매번 되뇌이고 가깝고 먼 예전 일들을 돌아보며 부끄러워 하는 일을 반복한다. 다 부질없는 짓이다. 내가 상처주고 고약하게 굴었던 사람들은 내가 그러는 걸 모른다. 안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이십 대 어린 날. 나는 이제 두 사람 분을 먹어야겠군, 하며 커다란 오리지널 와퍼를 꼭꼭 씹어 삼켰다. 두 줄이 그어진 사진을 보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니어 와퍼 하나를 겨우 꾸역대며 삼키고 밤새 토하던 옆 사람 모습이 기억난다.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사람 너무 무서워서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지만 그 정도의 충격을 받을 정도로 준비되지 않은 임신은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사건이다. 그래도... 배부른 채 수근대는 소리 무시하며 낳기 며칠 전까지 돈벌러 나가고 찢어지는 고통으로 낳고 젖먹이고 안아 재우는 건 누구였을까요. 목을 매거나 욕조에서 손목을 긋지 않은 건 감사할 일이지만. 그냥 십 년 전의 그런 일들 생각이 난다.
주제는 사뭇 다르지만, 잃었던 기억을 되짚어가는 구성에서 올드보이가 생각났다. 전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아니, 자기가 겪은 일을 어찌 잊지? 기억에도 있고 일기도 쓰고 편지도 쓰고 하잖아. 그런데 그런 것들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 진실을 담는데 취약하고 편향된 관점이 담기는지 뒤늦게 알았다. 거기에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축복인양 바라던 망각이 기억을 잠식하는 꼴을 드디어 보게 되었다. 이런 거구나...내가 틀릴 수도 있겠구나...그걸 모르고 누굴 미워하고 누구에게 미움받는 걸 모르고 살 수도 있겠구나… 약간 무서워진다.
어릴 때는 여럿이 몰려다니고 농담 따먹고 궤변 늘어놓고 그러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특히 남자애들 패거리 노는게 너무 재미있어 보였는데. 그깟 빻은 놀이가 뭐가 부러웠나 모르겠다. 면밀히 주변인으로 관찰하며 배운 거라곤 음담패설과 욕뿐, 남남이고 여여고 여남이고 셋 이상의 이너써클에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사춘기 남자아이들이 노닥거리는 소설 보면 괜히 회한에 젖는다. 지나고 보면 걔들도 다 저 살기 바빠서 안 만날 걸...토니가 친구도 없고 부인하고도 이혼하고 자식도 안 찾아오고 하는 걸 보면 대체 말년에 남는 사람이란 누굴까 무얼까 싶다. 저놈처럼 눈치없고 생각 없이 살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착하게 대하며 살아야겠다 싶다. 급 교훈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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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쟁이 2020-01-14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지나면 인간은 멋대로 기억을 재배치하는가봐요. 저도 이소설 엄청엄청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음. 이것도 재구성된 기억인지 자신감 급하락.

반유행열반인 2020-01-14 16:55   좋아요 0 | URL
책 읽고 좋았었다고 남은 기억은 정확하지 않아도 누구도 해치지 않으니 자신감 하락하지 않는 걸로!! ㅎㅎ
 
LGBT+ 첫걸음
애슐리 마델 지음, 팀 이르다 옮김 / 봄알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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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1 애슐리 마델
작년에 퀴어의 사랑을 다룬 한국 소설들을 몇 편 읽었다.
문득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알아보려는 노력은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었다.
태어나서 주어지는 대로 자신을 규정하고 혹은 규정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어떤 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을 스스로 또는 남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용어를 만들고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한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수많은 갈래 중에서도 섹슈얼리티나 젠더에 한정하고도 책에 소개된 것만 80여가지였다.
하나하나 용어들을 보며 다 외우고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책 초반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분법을 넘어서 스펙트럼, 좌표 위에 그릴 수 있는, 혹은 심지어 표시할 수 없는 정체성이 있다는 걸 아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무심히, 혹은 호기심에서 던지는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수많은 말들이 누군가를 단정하고 규정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자신을 찾고 설명하고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거나 삭제당하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도 기억하기로 했다.
자신에 대해 말하는 퀴어들의 사례를 곁들인 용어집 형식이라 재미있거나 쉽게 읽히는 편은 아니다. 스스로에 대해 많은 물음을 던지는 과정에 있다면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도움이 될 듯하다. 사람은 범주화하길 좋아하고 거기서 안정을 느끼니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아주 가까운 말을 찾는 일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다양한 끌림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무성애를 포함해 설명하였다. 왜 퀴어축제에서 무지개 모양을 쓰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은데 사실 무지개로도 부족할 만큼 다양한 차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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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끌어안고 사는 강박 - 불편한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다
김현철 지음 / 팬덤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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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200110 김현철

정신의학신문이라는 매체의 기사를 즐겨본다. 마음의 작동 방식을 정신의학 관점으로 설명하는 게 흥미롭다. 스스로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책이나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을 색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의사들의 분석도 꽤 그럴싸 하다.
강박장애 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강박장애와 강박성향의 경계 어디쯤에 위치해 있다는 생각을 스스로 많이 한다. 그래서 그런가 이 책은 제법 재미있게 술술 읽혔다.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지만 솔직히 모든 내용이 납득과 수긍이 가지는 않았다. 일단 제목으로 붙은 주제와 챕터의 내용이 일관성 있게 이어지지 않았다. 읽다보면 갑자기 문단과 문단 사이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고 마구 뛰어넘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건 글쓰는 역량과 구성의 문제일 것이다. 그 다음으로 거슬린 것은 대부분의 이론적 배경이 정신분석학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었다. 뇌과학 발전이 이렇게나 눈부시게 진행된 마당에 많은 임상 사례 해석을 어머니 아버지와 유아기에 맺은 관계, 고착, 뭐 이런 걸로 다 가져다 붙이니 솔직히 조금 웃긴 게 더 많았다. 그래도 프로이트식으로 영화 박쥐를 해석한 건 재미는 있었다. 영화를 이런 식으로도 분석할 수 있구나, 누군가는 이렇게 이런 관점으로 해석을 하는 구나, 틀이라는 건 참, 재미있구나, 했다. 잘 갖다 붙였다 정도였지 전혀 논리적으로 설득되지는 않았다. ㅎㅎㅎ
완벽함이라는 환상,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모든 상황을 통제하려는 욕구가 허황된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쉽게 그런 행동과 사고에 빠지곤 한다. 나 때문에 힘들어지는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면 미안한데, 나 또한 통제력을 발휘하려는 과정에서 힘들고 상처 받는 때가 많은데, 쉽사리 나아지지 않는다. 내가 어떤 행동을 어떤 감정과 마음 상태 때문에 하고 있는지 들여다 보고 인지하는 건 중요한 일 같다. 돌아보는 일은 나아지기 위해 필요하다. 내려놓고, 편해지는 삶을 바라본다. 될까 모르겠다.

밑줄 긋기
-‘박학다식은 강박 성향의 완벽주의가 우릴 홀릴 때 자주 쓰는 무기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위의 생각과는 반대로 가야 합니다. 한 분야에 깊이 있게 접근하면서 필요할 때만 주변 분야의 참고 서적을 보겠다는 마음가짐이 도움이 됩니다.’

-‘무엇이 더 좋은가보다 무엇을 더 잃을 것인가를 기준으로 삼을 때 선택이 훨씬 더 쉬운 까닭은 위기 혹은 위험에 민감한 강박 성향 특유의 경보체계를 역이용했기 때문입니다.’

-‘죄송하다는 표현은 상당히 공격적인 의미를 내포합니다. 죄송함이란 잔인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비롯된 분노가 폭발해 화산재처럼 자신을 뒤덮을 때 발생하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이는 인간관계를 맺을 때마다 항시 떠올려야 하는 명제입니다. 하지만 우린 규정지은 틀에 스스로를 구속하는 본성 탓에 착각과 망상의 늪에 빠지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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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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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0 옌롄커
중국 소설은 별로 읽은 게 없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와 인생 단 두 권. 그리고 옌롄커의 사서를 읽었다. 중국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몇 편의 소설 속에서 마주한 이미지들에 공통점이 있었다. 사람의 일이란 완벽할 수 없고, 어떤 대의와 신념과 확신으로 뭉쳐 무언가를 이루려는 자들이 힘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런데 그 힘이 향하는 방향이 생각보다 한참 잘못되었을 때 그 영향력 아래 놓인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고통을 당하고 인간의 존엄을 잃고 쉽게 죽어간다. 그 와중에 할 거 다하는 우리 인간들...이라는 이웃의 코멘트에 격하게 공감하며 읽었다.
제목처럼, 네 개의 책이 교차 서술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사실 시시포스 신화 한 권은 마지막에만 짧게 등장하고, 저자를 알 수 없는 하늘의 아이, 작가가 몰래 쓴 옛길, 작가가 아이의 지시에 따라 쓴 죄인록 세 작품이 번갈아가며 나온다. 죄인록은 중반부에 사라지지만 작가가 아이에게 식량을 구걸하고 나중에 뒤늦은 죄책감을 깨우치는 장치로 종종 등장한다. 여러 책을 병치하며 서술을 달리하는 구성이 나름 신선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뻘짓을 다하면서 온갖 실패를 겪어도 인간이란 이내 적응한다. 일부는 살아남는다. 또 일부는 그 와중에 사랑도 한다. 책이 뭐라고, 어떤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책을 지킨다. 아니 그런데 또 극한에서는 역시 목숨이랑 먹을 게 우선이긴 하다.
왠만한 괴작들 아무렇지 않게 보는 편인데 읽기 힘든 장면들이 더러 있었다. 작가가 황무지에 홀로 나가 밀을 키우는 이야기, 음악의 비밀, 작가가 학자와 음악에게 사죄하기 위해 하는 일들이 그랬다. 단순히 장면의 고어함이 문제라기보다 그만큼 절박하고 한계에 몰린 인간 상황을 감당하는 게 힘들었던 것 같다. 그게 다 있을 법할 이야기로 느껴지는 동시에 말이 되나, 아니 또 저럴 수도 있겠다, 오락가락거려서 더 그랬지 싶다. 피를 팔아 아이를 살리려는 허삼관 매혈기 속 아버지, 인생에서 홀로 남아 콩을 퍼먹다 죽은 가여운 손자, 극심한 기아의 끝에 아이를 잡아먹거나 생살을 베어 먹이거나 시체를 뜯어먹는 설화 같은 것들이 자꾸 떠올랐다. 저런 이야기가 반복해 나오는 건, 언젠가는 누군가 정말 겪은 일들인지 몰라, 그게 아니라도 저렇게까지 할 수 밖에 없겠다 싶은 처지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야기에 공감하며 내내 전해왔는지도 모른다.
이야기 속 아이의 존재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랑을 가진, 선량한 의도, 동시에 자신의 명예와 허영을 채우려는, 호기심 많은, 천진한, 죽고 싶은, 마지막에는 자기 희생을 감내하는, 알고 보니 책의 수호자인, 그의 죽음을 도교적으로 구름 까치 등등 온 자연이 슬퍼하는, 굉장히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상징이었다. 저자가 나는 인민의 반동도 아니고, 사실 국가가 나를 아껴서 그런 거 알아, 뭐 이렇게 물타기하려고 저렇게 그린 건가 싶기도 했지만 조금 무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중간 마름에 착취에 일조하는 멍청이 아닌가. 이 소설 보니까 애들한테 스티커 나눠주면서 동기 부여하는 일이 되게 끔찍하게 느껴졌다. 많이 하던 짓인데. 아 싫으다. 빨간 꽃 종이별 강철별 온갖 치장의 말로 탐미적으로 아름답게 그린 장면들이 많지만 그냥 섬뜩하기만 하다.
황폐해 가는 자연 풍경,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장면들을 예쁘게 써 놓은 문장들이 많았다. 지나온 역사에 상상을 더하고 사람의 마음과 일을 전하고 아름다운 말을 만들어내는 소설의 일을 생각한다. 많은 생각과 씀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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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6 15: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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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6 15: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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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6 16: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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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6 16: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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