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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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3 줄리언 반스

보내야 하는 시간동안 책을 읽었다. 의외로 그 시간이 꽤 괜찮았다! 밖은 춥고 안은 따뜻했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그런데 무척 재미있었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 많이 남은 게 신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 걱정이 들었다. 그저 평범하고 최악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던 살아온 날들, 그 작은 역사를 문득 돌아보다가 나야 말로 구제불능의 쓰레기였고 내 인생 자체를 부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면 어쩌나 하는. 그래서일까 미리부터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매번 되뇌이고 가깝고 먼 예전 일들을 돌아보며 부끄러워 하는 일을 반복한다. 다 부질없는 짓이다. 내가 상처주고 고약하게 굴었던 사람들은 내가 그러는 걸 모른다. 안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이십 대 어린 날. 나는 이제 두 사람 분을 먹어야겠군, 하며 커다란 오리지널 와퍼를 꼭꼭 씹어 삼켰다. 두 줄이 그어진 사진을 보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니어 와퍼 하나를 겨우 꾸역대며 삼키고 밤새 토하던 옆 사람 모습이 기억난다.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사람 너무 무서워서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지만 그 정도의 충격을 받을 정도로 준비되지 않은 임신은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사건이다. 그래도... 배부른 채 수근대는 소리 무시하며 낳기 며칠 전까지 돈벌러 나가고 찢어지는 고통으로 낳고 젖먹이고 안아 재우는 건 누구였을까요. 목을 매거나 욕조에서 손목을 긋지 않은 건 감사할 일이지만. 그냥 십 년 전의 그런 일들 생각이 난다.
주제는 사뭇 다르지만, 잃었던 기억을 되짚어가는 구성에서 올드보이가 생각났다. 전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아니, 자기가 겪은 일을 어찌 잊지? 기억에도 있고 일기도 쓰고 편지도 쓰고 하잖아. 그런데 그런 것들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 진실을 담는데 취약하고 편향된 관점이 담기는지 뒤늦게 알았다. 거기에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축복인양 바라던 망각이 기억을 잠식하는 꼴을 드디어 보게 되었다. 이런 거구나...내가 틀릴 수도 있겠구나...그걸 모르고 누굴 미워하고 누구에게 미움받는 걸 모르고 살 수도 있겠구나… 약간 무서워진다.
어릴 때는 여럿이 몰려다니고 농담 따먹고 궤변 늘어놓고 그러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특히 남자애들 패거리 노는게 너무 재미있어 보였는데. 그깟 빻은 놀이가 뭐가 부러웠나 모르겠다. 면밀히 주변인으로 관찰하며 배운 거라곤 음담패설과 욕뿐, 남남이고 여여고 여남이고 셋 이상의 이너써클에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사춘기 남자아이들이 노닥거리는 소설 보면 괜히 회한에 젖는다. 지나고 보면 걔들도 다 저 살기 바빠서 안 만날 걸...토니가 친구도 없고 부인하고도 이혼하고 자식도 안 찾아오고 하는 걸 보면 대체 말년에 남는 사람이란 누굴까 무얼까 싶다. 저놈처럼 눈치없고 생각 없이 살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착하게 대하며 살아야겠다 싶다. 급 교훈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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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쟁이 2020-01-14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지나면 인간은 멋대로 기억을 재배치하는가봐요. 저도 이소설 엄청엄청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음. 이것도 재구성된 기억인지 자신감 급하락.

반유행열반인 2020-01-14 16:55   좋아요 0 | URL
책 읽고 좋았었다고 남은 기억은 정확하지 않아도 누구도 해치지 않으니 자신감 하락하지 않는 걸로!! ㅎㅎ
 
LGBT+ 첫걸음
애슐리 마델 지음, 팀 이르다 옮김 / 봄알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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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1 애슐리 마델
작년에 퀴어의 사랑을 다룬 한국 소설들을 몇 편 읽었다.
문득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알아보려는 노력은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었다.
태어나서 주어지는 대로 자신을 규정하고 혹은 규정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어떤 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을 스스로 또는 남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용어를 만들고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한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수많은 갈래 중에서도 섹슈얼리티나 젠더에 한정하고도 책에 소개된 것만 80여가지였다.
하나하나 용어들을 보며 다 외우고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책 초반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분법을 넘어서 스펙트럼, 좌표 위에 그릴 수 있는, 혹은 심지어 표시할 수 없는 정체성이 있다는 걸 아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무심히, 혹은 호기심에서 던지는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수많은 말들이 누군가를 단정하고 규정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자신을 찾고 설명하고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거나 삭제당하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도 기억하기로 했다.
자신에 대해 말하는 퀴어들의 사례를 곁들인 용어집 형식이라 재미있거나 쉽게 읽히는 편은 아니다. 스스로에 대해 많은 물음을 던지는 과정에 있다면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도움이 될 듯하다. 사람은 범주화하길 좋아하고 거기서 안정을 느끼니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아주 가까운 말을 찾는 일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다양한 끌림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무성애를 포함해 설명하였다. 왜 퀴어축제에서 무지개 모양을 쓰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은데 사실 무지개로도 부족할 만큼 다양한 차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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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끌어안고 사는 강박 - 불편한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다
김현철 지음 / 팬덤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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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200110 김현철

정신의학신문이라는 매체의 기사를 즐겨본다. 마음의 작동 방식을 정신의학 관점으로 설명하는 게 흥미롭다. 스스로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책이나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을 색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의사들의 분석도 꽤 그럴싸 하다.
강박장애 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강박장애와 강박성향의 경계 어디쯤에 위치해 있다는 생각을 스스로 많이 한다. 그래서 그런가 이 책은 제법 재미있게 술술 읽혔다.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지만 솔직히 모든 내용이 납득과 수긍이 가지는 않았다. 일단 제목으로 붙은 주제와 챕터의 내용이 일관성 있게 이어지지 않았다. 읽다보면 갑자기 문단과 문단 사이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고 마구 뛰어넘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건 글쓰는 역량과 구성의 문제일 것이다. 그 다음으로 거슬린 것은 대부분의 이론적 배경이 정신분석학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었다. 뇌과학 발전이 이렇게나 눈부시게 진행된 마당에 많은 임상 사례 해석을 어머니 아버지와 유아기에 맺은 관계, 고착, 뭐 이런 걸로 다 가져다 붙이니 솔직히 조금 웃긴 게 더 많았다. 그래도 프로이트식으로 영화 박쥐를 해석한 건 재미는 있었다. 영화를 이런 식으로도 분석할 수 있구나, 누군가는 이렇게 이런 관점으로 해석을 하는 구나, 틀이라는 건 참, 재미있구나, 했다. 잘 갖다 붙였다 정도였지 전혀 논리적으로 설득되지는 않았다. ㅎㅎㅎ
완벽함이라는 환상,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모든 상황을 통제하려는 욕구가 허황된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쉽게 그런 행동과 사고에 빠지곤 한다. 나 때문에 힘들어지는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면 미안한데, 나 또한 통제력을 발휘하려는 과정에서 힘들고 상처 받는 때가 많은데, 쉽사리 나아지지 않는다. 내가 어떤 행동을 어떤 감정과 마음 상태 때문에 하고 있는지 들여다 보고 인지하는 건 중요한 일 같다. 돌아보는 일은 나아지기 위해 필요하다. 내려놓고, 편해지는 삶을 바라본다. 될까 모르겠다.

밑줄 긋기
-‘박학다식은 강박 성향의 완벽주의가 우릴 홀릴 때 자주 쓰는 무기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위의 생각과는 반대로 가야 합니다. 한 분야에 깊이 있게 접근하면서 필요할 때만 주변 분야의 참고 서적을 보겠다는 마음가짐이 도움이 됩니다.’

-‘무엇이 더 좋은가보다 무엇을 더 잃을 것인가를 기준으로 삼을 때 선택이 훨씬 더 쉬운 까닭은 위기 혹은 위험에 민감한 강박 성향 특유의 경보체계를 역이용했기 때문입니다.’

-‘죄송하다는 표현은 상당히 공격적인 의미를 내포합니다. 죄송함이란 잔인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비롯된 분노가 폭발해 화산재처럼 자신을 뒤덮을 때 발생하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이는 인간관계를 맺을 때마다 항시 떠올려야 하는 명제입니다. 하지만 우린 규정지은 틀에 스스로를 구속하는 본성 탓에 착각과 망상의 늪에 빠지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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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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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0 옌롄커
중국 소설은 별로 읽은 게 없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와 인생 단 두 권. 그리고 옌롄커의 사서를 읽었다. 중국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몇 편의 소설 속에서 마주한 이미지들에 공통점이 있었다. 사람의 일이란 완벽할 수 없고, 어떤 대의와 신념과 확신으로 뭉쳐 무언가를 이루려는 자들이 힘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런데 그 힘이 향하는 방향이 생각보다 한참 잘못되었을 때 그 영향력 아래 놓인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고통을 당하고 인간의 존엄을 잃고 쉽게 죽어간다. 그 와중에 할 거 다하는 우리 인간들...이라는 이웃의 코멘트에 격하게 공감하며 읽었다.
제목처럼, 네 개의 책이 교차 서술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사실 시시포스 신화 한 권은 마지막에만 짧게 등장하고, 저자를 알 수 없는 하늘의 아이, 작가가 몰래 쓴 옛길, 작가가 아이의 지시에 따라 쓴 죄인록 세 작품이 번갈아가며 나온다. 죄인록은 중반부에 사라지지만 작가가 아이에게 식량을 구걸하고 나중에 뒤늦은 죄책감을 깨우치는 장치로 종종 등장한다. 여러 책을 병치하며 서술을 달리하는 구성이 나름 신선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뻘짓을 다하면서 온갖 실패를 겪어도 인간이란 이내 적응한다. 일부는 살아남는다. 또 일부는 그 와중에 사랑도 한다. 책이 뭐라고, 어떤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책을 지킨다. 아니 그런데 또 극한에서는 역시 목숨이랑 먹을 게 우선이긴 하다.
왠만한 괴작들 아무렇지 않게 보는 편인데 읽기 힘든 장면들이 더러 있었다. 작가가 황무지에 홀로 나가 밀을 키우는 이야기, 음악의 비밀, 작가가 학자와 음악에게 사죄하기 위해 하는 일들이 그랬다. 단순히 장면의 고어함이 문제라기보다 그만큼 절박하고 한계에 몰린 인간 상황을 감당하는 게 힘들었던 것 같다. 그게 다 있을 법할 이야기로 느껴지는 동시에 말이 되나, 아니 또 저럴 수도 있겠다, 오락가락거려서 더 그랬지 싶다. 피를 팔아 아이를 살리려는 허삼관 매혈기 속 아버지, 인생에서 홀로 남아 콩을 퍼먹다 죽은 가여운 손자, 극심한 기아의 끝에 아이를 잡아먹거나 생살을 베어 먹이거나 시체를 뜯어먹는 설화 같은 것들이 자꾸 떠올랐다. 저런 이야기가 반복해 나오는 건, 언젠가는 누군가 정말 겪은 일들인지 몰라, 그게 아니라도 저렇게까지 할 수 밖에 없겠다 싶은 처지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야기에 공감하며 내내 전해왔는지도 모른다.
이야기 속 아이의 존재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랑을 가진, 선량한 의도, 동시에 자신의 명예와 허영을 채우려는, 호기심 많은, 천진한, 죽고 싶은, 마지막에는 자기 희생을 감내하는, 알고 보니 책의 수호자인, 그의 죽음을 도교적으로 구름 까치 등등 온 자연이 슬퍼하는, 굉장히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상징이었다. 저자가 나는 인민의 반동도 아니고, 사실 국가가 나를 아껴서 그런 거 알아, 뭐 이렇게 물타기하려고 저렇게 그린 건가 싶기도 했지만 조금 무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중간 마름에 착취에 일조하는 멍청이 아닌가. 이 소설 보니까 애들한테 스티커 나눠주면서 동기 부여하는 일이 되게 끔찍하게 느껴졌다. 많이 하던 짓인데. 아 싫으다. 빨간 꽃 종이별 강철별 온갖 치장의 말로 탐미적으로 아름답게 그린 장면들이 많지만 그냥 섬뜩하기만 하다.
황폐해 가는 자연 풍경,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장면들을 예쁘게 써 놓은 문장들이 많았다. 지나온 역사에 상상을 더하고 사람의 마음과 일을 전하고 아름다운 말을 만들어내는 소설의 일을 생각한다. 많은 생각과 씀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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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6 15: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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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6 15: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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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6 16: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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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6 16: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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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를 베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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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7 윤성희
어느 새벽 잠을 자다 깨서 베개에 대한 글이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저런 메모도 해 두었다. 베개를 다르게 부른다면. 잠기둥 잠들보 머리받침 머리도마. 나는 왜 머리도마가 제일 마음에 드냐. 뎅겅 할 것 같다. 결국 베개에 관해서 뭘 쓰지는 못했다.
그래서 소설집 이름을 보고 끌려서 빌렸다. 윤성희의 소설은 처음 보았다. 막 엄청 재밌고 술술 넘어가고 하지는 않았는데 그래서 오래 보다 말다 했는데 또 읽고 있으면 좋았다. 읽고 나서도 그럭저럭 좋았다.
엄마, 딸, 언니, 형부, 전부인, 친구, 친구의 부인, 친구의 자녀, 외삼촌, 조카, 직장 동료, 다양한 관계들이 등장했다. 그런데 자꾸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소설은 사람 사이의 다양한 관계에 관한 이야기지 참, 싶었다. 내가 이 년 간 끄적인 습작 속 관계들도 돌아보았다.

아내와 남편과 단식농성 중인 내연남/시간강사와 그의 한 학기짜리 제자들/중학생과 중학생/고3수험생과 담임과 아버지/교사와 중학생/고등학생과 독서실 주인/아내와 남편/동아리 부원과 신입생/또 동아리 부원과 신입생/형과 동생/딸과 아버지와 언니/일기 쓰는 나와 친한(친했던) 언니와 옛 남자사람 친구/외할머니와 엄마와 아들/소개팅에서 만난 먹방유튜버와 한국사검정능력시험 대리로 쳐주는 대학원생과 주선자인 뷰티유튜버/또 아내와 남편/교사와 복학생/남자와 갑자기 쳐들어온 모르는 여자와 그 여자 전남친과 남자의 전남친/동네 꼬마아이들/남자와 약혼자와 전여친과 전여친의 남편/여자와 남편과 여자의 남자인 친구들과 아이/중학생 연인/엄마와 나와 실종됐다 돌아온 아버지

사람 사는게 뻔하고 관계도 뻔하다 싶다. 그 뻔한 관계에 대해 나의 이해는 너무나 협소하고 상상력은 부족하고 할 이야기는 별로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 뻔한 걸 뻔하지 않게 관찰하고 생각해서 쓰는 사람들이 작가가 된다. 뭐가 되고 싶어서 썼던 건 아닌데 그래도 꾸준히 일 년 반 가까이 끄적이던 걸 초고 하나 쓰지 않은지는 두 달이 넘었다. 퇴고조차 하지 않게 된 건 한 달 쯤 됐다. 내가 잠시 쉬고 있는 건지 아예 그만 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이번에 읽은 소설가는 이 십년 넘게 쓰고 있는 사람이다. 궁금하기도 하다. 내가 오 년 후에 쓸 글은, 십 년 후에 쓸 글은. 나아질까. 계속 쓸 수 있을까. 쓰지 않는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어떻긴 지금처럼 살고 있겠지. 요즘 나는 조금씩 읽고 가끔 멍때리고 누군가를 무언가를 자주 기다리며 산다. 얼른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이 들면 좋겠다.

소설집에서는 휴가라는 소설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낮술도 좋았던 것 같다. 베개를 베다도 쪼끔 좋았다. 제목을 보고 딱 어떤 내용이었지, 하고 떠오르지가 않는다. 읽다 보면 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 또 다르기도 했는데. 대체로 덤덤한 서술인데 읽고 있으면 자꾸 서글픈 느낌이 드는 소설들이었다.

가볍게 하는 말 …… 『문학동네』 2015년 여름호
못생겼다고 말해줘 …… 『현대문학』 2012년 5월호
날씨 이야기 …… 테마 소설집 『헬로, 미스터 디킨스』(이음, 2012)
휴가 …… 『창작과비평』 2014년 가을호
베개를 베다 …… 『세계의문학』 2012년 가을호
팔 길이만큼의 세계 …… 『문학동네』 2013년 여름호
낮술 …… 『한국문학』 2014년 겨울호
모서리 …… 『자음과모음』 2013년 봄호
다정한 핀잔 …… 『악스트』 2015년 11·12월호
이틀 …… 『21세기문학』 2013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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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쟁이 2020-01-07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 글쓰시는 분이셨군요. 어쩐지 뭔가 아우라가 남다르다 생각했었드랬었었어요..
머리도마.. 앞으로 베개에 머리를 못대고 잘것 같아요. 책임지세욧.이라고 말하기엔 드르렁쿨쿨 잘만 자겠지만요.

반유행열반인 2020-01-07 18:09   좋아요 0 | URL
글쓰는 사람이라 하기엔 민망한 수준의 취미여요...그냥 북플에 서평 쓰고 일기 쓰는 수준이옵니다...
도마가 죄송스러워 무님께는 다른 이름 드릴게요. 베고자는왕마시멜로우라든가...수습이 될까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