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병 - 인생은 내 맘대로 안 됐지만 투병은 내 맘대로
윤지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00205 윤지회

두 번째 도서관에 간 날, 어떤 청년이 쇼핑백 가득 책을 빌려서 같은 엘리베이터에 탔다. 어떤 책을 빌렸나 괜시리 궁금해져 가방 안을 흘긋대다가 딱 한 권 보였던 게 이 책이었다.
예전에 책 소개에서 4기 암 투병기라는 것만 간단히 보았는데 궁금해서 나도 보았다.
나와 비슷한 연세에 아이가 내 막내둥이와 비슷한 나이 즈음 작가님은 위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이후로도 계속 항암치료를 받고 계시다. 병과 치료의 고통, 두려움, 미안함, 무력감, 가족들의 도움과 고마움, 사랑스러운 아이. 그림일기인데 읽는 동안 너무 마음이 아프고 슬프고 그랬다. 내가 아프면 내 가족도 겪을 수 있는 일. 내 가족이 아프면 내가 지켜봐야 할 일.
가까운 사람 중에는 외사촌오빠와 이모부가 암투병을 하시다 영면하셨다. 막연하게 슬프기만 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 환자가 겪는 고통과 병바라지 하는 가족의 어려움을 조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아픈 와중에도 살아야 한다, 아이와 가족을 생각하며 그림일기를 남기신 작가님이 참 대단하신 것 같다.
작가님 인스타그램에 가서 새로운 책들을 준비하며 계속 병과 싸우고 계신 모습을 보았다. 얼른 암에서 완치되어 아프지 않고 하고 싶은 일하며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시길 진심으로 빌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커피 연구소 - 완벽한 한 잔을 위한 커피 공부
숀 스테이먼 지음, 김수민 옮김 / 웅진리빙하우스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00204 숀 스테이먼

커피를 마신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6-7년 정도. 그전까지는 커피가 피부염과 수면장애를 악화시킨다고 생각해서 마시지 않았다.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다.
일이 고된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카페인의 도움이라도 받지 않으면 제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블랙커피믹스와 그냥 커피믹스를 사다가 번갈아 마셨다. 공정무역에 대해 가르치면서 아름다운커피에서 공정무역 원두를 원료로 만든 믹스커피를 구입했다.
인스턴트 커피가루만 사다 우유와 꿀, 민트시럽, 흑당시럽, 코코아, 화이트초코가루 등 온갖 걸 섞는 시도를 했다. 인스턴트는 편하긴 한데 확실히 향이 덜 하다.
우유들고 달달한 걸 주로 먹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먹는데 생각보다 마실만 했다. 그전까지는 그 쓴 걸 왜...했었다.
파우치에 소분된 것과 병에 가득담긴 콜드브루를 사 마셔보았다. 물에 타도 우유에 타도 맛과 향이 최고였다. 그런데 너무 비싸니까 여름에 아이스커피 먹는 시절에만 주로 구입했다.
어쩌다 분쇄원두를 얻어서 컵에 걸어 간편하게 내리는 종이필터를 사서 어설프게 드립커피를 만들어 마셨다. 의외로 맛이 좋았다. 원두는 다 먹었는데 필터가 남아서 알라딘에서 생애 처음!!분쇄원두를 구입해 보았다. 어쩌다 얻은 원두보다 향미가 많이 약해서 아쉬웠지만 신선함은 있었다. (실망한 리뷰는 예전에 올렸다…그런데 왜 나 구매자인데 리뷰 메뉴에 자꾸 비구매자로 나와...열반인 블랙리스트설 진짜임? 가끔 구입한 도서도 비구매로 나와요….왜죠...나 샀어 내 돈 주고 샀다고….)
생애 최초 알라딘 서점 구입 원두는 아직 남아서 열심히 먹고 있다. 문득 종이필터 매번 사기 귀찮고 쓰레기 나오잖아? 하면서 검색을 하다 금속 드리퍼라는 것을 발견했다. 무려 스테인리스 소재에 로즈골드 컬러의 티타늄을 도금한!!! 종이필터가 필요없는 반영구적인!!!간지는 덤으로!!! 내가 쓸 것과 친구에게 선물할 것까지 두 개 구입했다.
음. 금속 드리퍼까지 갖추니 진짜 커피 마시는 사람 된 기분. 심지어 향과 맛 약하던 알라딘 원두조차 탄맛과 풍미가 상승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향은 여전히 약하다…

문득 커피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몇 년을 먹는데 하나도 모르고 너무 무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커피에 대해 커피빈, 볶기, 분쇄, 추출, 맛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측면에서 과학적 연구결과들을 바탕으로 설명한 책이다. 주관과 경험으로만 커피를 말하지 않고 여러 과학적 근거를 대면서 설명하니 더 흥미로웠다. 다만 커피에 대한 연구가 생각보다 풍부하지 않아서 대다수의 결론이 ‘근거 없음,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음, 유의미한 차이를 말할 수 없음’이었다. 그게 어디야. 단언하지 않는 신중함만으로도 왜 신뢰가 상승하는지 모르겠다 ㅋㅋ

커피라는 식물, 품종, 우리에게 커피 한 잔이 놓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커피의 맛과 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하다면 가볍게 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뒷부분 커피 맛에 대한 내용은 예전에 읽은 가스트로피직스 연구의 많은 내용과 겹쳤다. 혀의 미각지도가 완전 근거 없다는 것, 맛은 혀 전체의 맛봉오리에서 다양하게 느끼고 감칠맛과 기름맛도 최근 새로운 맛으로 인정받거나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것, 맛이 단순히 혀의 감각만이 아닌 수많은 환경요소와 다른 감각과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감각이라는 것 등등이다. 아는 내용 나오니 신났네 ㅋㅋ 커피라는 복합화합물 덩어리 용액이야 말로 맛과 향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소재이긴 할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드립 한 잔, 믹스 한 잔 마셨지.
어제는 드립 한 잔, 그리고 밖에 나갔다가 지인이 스타벅스 리저브 커피? 뭐 그런 걸 사줬다. 되게 비싸던데 그냥 아메리카노랑 구분 못 하는 나새끼의 혀...그냥 싼 거 사주시지...컵이 검다는 것 밖에는 구분하지 못했다.

아, 이건 구별된다. 아라비카는 늘 먹는 익숙한 맛, 로부스타는 더럽게 쓰고 먹으면 잠 안 오는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의 맛...실제로 카페인 차이가 있다는 것 같다.

이것도 세계화와 농업에 대해 가르치면서 책에서 봐서 진작 알고 있었는데, 브라질이 세계에서 커피 제일 많이 생산하고, 2위 생산국이 베트남이다. 진짜 의외였다. 우리나라에선 저 두 나라 원두로 커피 잘 안 만듦…

알라딘아 다음에는 다른 원두도 다시 도전해 볼테니 삐지지마...자꾸 비구매자 리뷰로 표시하고 그러지 마...맨날 까는 리뷰만 쓰는 내가 미안해…그래도 나한텐 안 좋은데 막 좋다고 할 수는 없잖아...책도 맛도 주관적인 거잖아...동백꽃 블렌딩 화이팅...ㅋㅋㅋㅋㅋㅋㅋㅋ

+밑줄 긋기(별로 안 그음.)
-7가지 요소들이 커피의 향미에 영향을 준다고 증명되었다. 유전적 구성과 고도(모호한 점이 일부 존재한다), 해충 및 질병, 커피 체리 가공, 건조, 분류, 저장이 그것이다.

-커피콩이 복잡하다는 의미는 커피의 화학적 구성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생산 연도와 유전적 구성, 재배지의 기후, 나무의 영양 상태, 비료 시스템, 수확 시 성숙도, 커피 체리의 가공 방식, 생두의 저장 방식, 생두의 저장 기간, 로스팅, 블렌딩, 신선도 등이 포함되며, 이 밖에 다른 요인이 있을 수 있다.

-드리퍼 사진...누구 마음처럼 삐뚤어진 거 봐라 ㅋㅋ알라딘 굿즈 구슬이 유리 머그에 맨날 내려 먹는다.
-원두 20그램 키우는데 300여리터 물이 들고 그걸로 커피 300여밀리리터의 커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농업이란 참으로 환경 파괴적인 것...지구의 기생충 인간...
-세계 87개국 2600만 농민이 커피 재배 중.
-커피 볶는 정도 따라 달라지는 특징들
-사이펀 커피는 진공 커피라 하는 게 과학적으루다가 맞다는 저자의 말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울할 땐 뇌 과학 - 최신 뇌과학과 신경생물학은 우울증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앨릭스 코브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00204 앨릭스 코브

내가 어릴 때 아빠가 우울증과 조현병 때문에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다. 엄마 역시 아빠의 질병과 폭력 때문에 우울과 무기력에 쩔어 내게 무표정하게 대했고 만성 두통으로 자주 누워있었다. 지금은 잘 웃고 잘 떠들고 운동과 글쓰기 열심히 하며 즐거이 사신다. (때론 신속한 이혼이 가장 좋은 우울증 치료제 입니다…)
유전과 환경. 스물 일곱 살의 나는 수면장애와 자살충동에 시달렸다. 다행히도 병원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비교적 빨리 했다. 나중에 정신보건 관련 연수에서 발병과 치료 시작 시점 간격이 짧을 수록 예후가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게 병인지도 모르고 가족들까지 잔뜩 시달리고 굿을 하고 기도원에 가고 엉뚱한 짓을 하다 치료 시점을 놓치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다.
정신과의원에 갔더니 항우울제와 항불안제, 수면제를 처방해줘서 6개월을 먹었다. 상담치료는 비용이 매우 비싸서 대부분 정신과의원이 짧은 진료 후 투약 위주로 치료를 진행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내가 간 곳이 소아정신과라 그랬는지 좋은 분이라 그랬는지 의사 선생님이 비교적 오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런저런 조언도 해 주었다. 운동과 독서를 권하면서 오소희 여행책과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어보라고 했다. 읽긴 했지만 재미는 없었다.
한참 뒤에 우연히 그 의사 선생님 sns를 보게 되었다. 사진과 짧은 글들이 그분 또한 심한 어둠에 빠져있는 걸 알려주었다. 의사도 사람이고 아플 수 있구나 새삼 느꼈다.

이후로도 산후우울증과 여러 심리 문제가 종종 닥쳤고, 수면장애는 거의 평생을 따라다니고 있다. 그래도 최근의 마음 상태는 아주 좋은 편이다. 그러니 이 책도 읽을 수 있었다. 지금은 좋은 시기이지만 혹시 모를 나중을 위해 읽어두면 좋을 것 같았다. 자신의 상태에 관해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지고 이해하는 일만으로도 때로는 많은 도움이 된다. 예전 같으면 운동해라(이 책에 제일 많이 나오는 말), 미소지어라, 감사해라, 다른 사람과 같이 있어라 같은 조언들이 다 부질없다고 여겼을 것 같다. 이번에는 읽으면서 빤한 소리지만 맞는 소리라고 끄덕거렸다. 내가 무난한 날들을 보내고 나아진 이유가 나도 모르는 사이 책에 나온 행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책에서는 우울증과 관련된 뇌의 부위의 구체적 이름과 기능, 우울증이 발생했을 때 해당 부분의 변화, 호르몬의 변화 등을 알려준다. 뇌의 부위 이름이 워낙 생소하고 어려워서 외워지지 않고 금세 까먹지만, 그래도 증상이 나타나는 이유가 내 머릿속에 무슨 일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만 알아도 위로가 되었다.
거기에 더해 생활 속에서 스스로 시도할 수 있는 행동의 변화가 뇌의 부위에 어떤 자극과 변화를 주는지, 어떤 메커니즘으로 우울증에서 벗어날 힘을 주는지 과학을 바탕으로 설명해준다. 단순히 운동해라, 웃어라, 잘자라, 미소지어라, 하는 말은 한 귀로 새어나가지만 그렇게 하면 이러이러한 일이 네 뇌에서 일어난다- 하는 과학자의 말은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
우울로 빠져들게 하는 나쁜 습관들과 그 연속 반응을 하강곡선, 하나라도 나아질 계기를 만들어 일어나는 변화를 상승곡선으로 표현한 것이 제법 잘 와닿았다.

다만 주변에 우울을 앓는 이들이 있을 때, 아픈 사람에게 이 책을 읽고 스스로 노력하면 쉽게 병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권하는 착각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기 자신과 타인을 해칠 수준의 우울에 빠진 사람, 자살충동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으면 투약, 입원 등 의료적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당장 사람이 죽을 상황인데 약 먹는 일을 꺼릴 이유가 없다. 약은 상태 호전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너무 심한 우울과 무기력에 빠진 사람은 책을 읽을 기력조차 없다. 과학적 설득조차 통할 수 없고 행동변화를 시도하기도 어렵다. 본인이 강한 치료 의지가 있거나 투약으로 어느 정도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상태로 호전 중인 사람에게는 이 책의 지침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정신 건강과 뇌과학에 대한 책과 글에 관심이 많고 열심히 찾아본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잘 발견하고 내 일인양 걱정하곤 한다. 병원에 가고 약을 먹어보라는 권유도 쉽게 한다. 모두가 그렇게 해서 낫는 건 아니지만 일부에게는 확실히 효과가 있는 방법이라 그렇다.
다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와 주변 사람들 모두 마냥 행복했으면 좋겠다. 계속 들여다보고 나빠지지 않게 보살피는 수 밖에는 없다. 올해는 많이 걸을 생각이다. 읽기와 쓰기도 마음에 많은 도움이 되니 계속 할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이드 인 강남
주원규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00203 주원규

같은 작가의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열외인종잔혹사를 한참 전에 사 두기만 하고 읽지는 않았다. 작년 이 무렵 강남 유흥가를 둘러싸고 경찰 비리, 연예인 성범죄 등등 이슈와 함께 이 책 홍보를 많이 접했다. 신나게 읽던 뇌과학책이 절반쯤 읽다가 기한을 넘겨 반납되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다 가벼운 거나 하나 보자 하고 빌렸다.

장편 문학상까지 탄 사람인데, 왠만큼은 쓰겠지 하는 기대를 이 책은 져버렸다. 읽기 어려운 내용이 아닌데도 문장이 매끄럽지 못해서 읽는 내내 힘들었다. 주술 호응 안 맞고, 주어 명확하지 않게 오락가락 거리고, 반복 중복 표현 많고, 지나치게 긴 문장에다가, 구역질이 적합한 자리에 세 번이나 비역질이 뜬금 없이 들어가 있었다. 사전 찾아 보는 게 어려운 거니… 성매매 여성을 내내 콜걸로 칭해서 되게 올드한 느낌이 들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삼류 영화 시나리오 초안이나 드라마 대본 읽는 듯한 대사가 많이 등장했다. 아무래도 시나리오로 써서 투자처를 찾다가 강남 유흥가 관련 사건 터지면서 부랴부랴 소설로 각색해 출간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미흡한 글이었다. 소설을 처음 쓰는 작가도 아닌데 이 정도 글쓰기라니 실망스러웠다.

비리 경찰, 사건을 조작 은폐하는 설계사 변호사, 포주, 부동산재벌, 멤버쉽제 변태 유흥 클럽과 그 고객인 소위 고위층과 전문직과 연예인, 성매매여성, 유흥 중 벌어진 살해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또다시 사람을 죽이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그 과정에서 큰 돈이 오가는, 바로 이런 곳이 강남이다, 하는 식의 이야기였다.
범죄와의 전쟁, 신세계, 범죄도시, 내부자들 같은 범죄 영화를 꿈꾸는 스토리같은데, 그냥 그랬다. 온갖 선정적인 설정과 장면 가지고 뭘 말하고 싶은지 뭘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재미도 별로 없었다. 김성모 만화 비스무레한데 만화는 실소라도 나오는데 이 소설은 웃길 생각도 없는 것 같고 되도 않는 문장으로 멋만 잔뜩 부려놨다. 아 이걸 읽은 내 시간.

검색해 보니 저자 인터뷰 기사를 몇 개 찾을 수 있었는데 이력이 특이했다. 소설가 겸 드라마 작가 겸 목사님 ㄷㄷ. 주님, 정의로운 도둑이 되는 걸 허락해 주세요.
아까운 시간 죽인 것도 후질 걸 짐작하고도 홧김에 빌려본 내 탓. 안 본 눈 사고 싶어도 방법이 없으니 다음부터는 좋은 책만 골라 봐야지. 하하하. 맨날 이러고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이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0-02-03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리뷰는 매우 감사합니다, 반유행열반인님. 원래도 읽고 싶은 책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마음 놓고 패쓰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2-03 12:55   좋아요 0 | URL
패쓰 리뷰 전문가로 특화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ㅎ
 
시 읽는 법 - 시와 처음 벗하려는 당신에게
김이경 지음 / 유유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00130 김이경

송인 -정지상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비 갠 긴 둑에는 풀빛이 짙은데
그대 보내는 남포엔 슬픈 노래 울리네
대동강 물이야 어느 때 마를 건가
해마다 이별 눈물 푸른 강물에 더하는 것을

고등학교 때 한문 교과서에 실린 이 한시를 정말 좋아했다. 짝사랑하는 아이를 생각하며 일기장에 베껴 적었다.
시를 읽지 않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지만, 더 어릴 때는 시를 찾아 읽은 적이 있었다. 처음 인터넷을 시작한 중3-고1 무렵엔 이상의 시 전작을 올려놓은 홈페이지를 찾아 우와! 횡재했어! 하면서 잉크젯 프린터로 슉슉 뽑아 A4용지에 호치키스 박아 책인 양 고이 들고 다니며 읽었다.
중학생이 알아야 할 시 라는 책을 엄마가 사줬는데 꾸역거리고 보다가 마음에 들어서 종이에 옮겨 적은 시도 있었다. 황석우의 벽모의 묘. 어쩜 파란 털 고양이래, 하며 중이병답게 하늘색 펜으로 적어놨다. 생각난 김에 시인의 다른 시들을 검색해 읽어보니 캬아 나란 놈은 역시 이런 취향이군. 몰랐는데 이 시인 자체가 되게 기인에다 여자 밝히는 놈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어린 나는 주로 세기말적이고 퇴폐적인 1920, 30년대의 시를 좋아했던 것이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 69에 실린 걸 보고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을 읽으려다 실패했던 기억도. 어둠의 자식아...
그나마 읽었던 것 중 가장 예쁜 시는 엄마가 화장실 벽에 붙여준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다. 거기 이국적인 소녀 이름 중에 내 이름자가 있어서. 그래도 화장실 휴지걸이 위에 올려둔 기형도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게 처음 시를 건네준 건 제도권 교육이다. 다만 계속 찾아 읽을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았을 뿐. 수능 문학영역 준비하며 시며 소설이며 나름 재미거리 위안거리로 즐겼던 것 같다. 그런데 대학 오면서는 많지도 않은 읽는 거리가 그나마 산문으로 치우쳤다. 말이 많고 친절한 말을 길게 건네 듣는 게 좋은 나한테는 시보다는 소설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짧게 요약할 만큼 시와 만난 시간이 짧고 경험도 부끄럽게 부족하다.

이 책은 얇아서 읽은 책 권수를 늘리는 데 아주 유용하다. 전자책을 빌려서 쪽수만 보고 처음엔 좀 두껍나했더니 뒤에 1/3 정도가 유유 출판사 책 광고였다. 세상에…
얇지만 시에 관해 나처럼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수업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어려운 말은 거의 안 하고, 서술도 강의에서 말로 전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작가가 실제로 시에 관해 가르쳤던 강의록을 바탕으로 한 책인 듯하다.
나한테는 시가 별로라고,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사실 괜히 겁을 내고 벽을 쳤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가로막힘을 살살 걷어내고 시를 읽어야 할 이유를 조금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말과 글을 잘 갈고 다듬어 건네는 사람을 보며 느낀 점이 많다. 나도 그런 고운 말을 써서 마음을 건네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거친 말들은 고운 사포로 열심히 문질러서 부드럽게 전하고 싶다. 말로 누구를 다치게 하는 일이 너무 많았어서 이제는 줄이고 싶다. 내 속에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걸 잘 풀어줄 단어와 문장도 가지고 싶다. 소설과 다른 좋은 산문 독서도 꾸준히 해야겠지만 뒤룩뒤룩한 내 글을 날씬하게 하는 데 시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의 시 읽는 법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그럭저럭 마음을 갖추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다음 달부터는 매달 시집 한 권씩을 읽어야 겠다. ㅎㅎㅎ엄마가 모아둔 책들이 아주 많다.


+밑줄 긋기

시를 읽을 때는 시가 가진 형식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시는 다양한 라임(압운)과 장치로 운율을 만드는데 때로는 시구의 내용이나 의미보다 이 리듬이 더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19세기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이렇게 말했어요.
어떤 책을 읽는데 전신이 얼어붙어 어떤 불기로도 몸을 덥힐 수 없게 되면, 나는 그것이 시인 줄 안다. 머리 맨 위가 떨어져 나간 듯 몸이 반응해도, 나는 그것이 시인 줄 안다. 이것이 내가 시를 알아보는 유일한 방법이다. 다른 방법이 있을까?

시는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 반성이에요...반성이 한자로 反省인데 돌이켜 살핀다는 뜻이에요. 돌아본다, 다시 살핀다는 건 내가 무엇을 봤는지, 제대로 봤는지, 왜 그것을 봤거나 못 봤는지 의심하고 확인하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란 눈에 보이는 사물, 현실을 돌이켜서 다시 보는 것이란 뜻입니다.

보는 것은 일상적으로 하는 행위지만 시인은 이것을 의식하고 내가 어떤 대상을 왜, 어떻게 보았는지 스스로 자문합니다. 대상을 정확히 보았는지, 본다는 행위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보는 ‘나’는 어떤 존재인지, 계속 묻는 거죠. 시란 이런 물음의 과정이고 탐구이고 그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물음에 쉽게 답하고 안주하지 않겠다는 결의의 표현이고요. 그러니까 이 말은 시란 끝없는 질문이고 의심이고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끝없는 회의를 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언어를 배려한다는 건 말만이 아니라 말과 말 사이의 틈, 여백에도 마음을 쓴다는 걸 의미합니다. 여백에도 의미가 있으니까요.

쉼보르스카는 시인에겐 모른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모른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자세히 보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새롭게 보게 되고 새로운 것을 보게 돼요. 새로운 발견, 새로운 표현이 나오는 거지요. 릴케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질문 자체를 낯선 말로 쓰인 책처럼 사랑하라”고 조언한 것도 비슷한 얘기입니다. 모른다는 마음,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하는 마음, 이런 겸손과 호기심이야말로 시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조른다.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鍼처럼월광月光이묻었다.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수명壽命을헐어서전당典當잡히나보다.나는그냥문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문을열려고안열리는문을열려고. (이상-‘가정’)

별들은 어떻게 물을 구할까

전갈은 어째서 독을 품고

거북은 무엇을 생각할까

그늘이 사라지는 곳은 어디일까

빗방울은 무슨 노래를 부를까

새들은 어디에서 마지막을 맞을까

나뭇잎은 어째서 초록색일까



우리가 아는 것은 한 줌도 못되고

짐작하는 것만이 산더미 같다

그토록 열심히 배우건만

우리는 단지 질문하다 사라질 뿐

(네루다, 「다문 입으로 파리가 들어온다」, 『에스트라바가리오』,1958)

요즘은 책들도 그렇고 시들도 위로와 공감을 앞세우면서 괜찮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사실 괜찮지 않잖아요. 그렇게 간단히 괜찮아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지요. 괜찮다고 말하는 건 하얀 거짓말 같아요. 우리는 괜찮다고 최면을 걸면서 살아요. 그런데 이 영화가 일깨우듯이, 시란 괜찮지 않음을 직시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미자는 거기서 시작해서, 어떻게 하면 내가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는지, 우리가 다 괜찮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로 나아가요.

이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감옥

빠져나올 어떤 방법도 없네.

팔십 되면 모두 죽여 버리니

백성도 임금도 똑같은 신세.
(이언진)
‘아우아불우인’我友我不友人, 나는 나를 벗하지 남을 벗하지 않는다고 해요.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나를 믿고 나아간다는 거죠.

하지만 나 가난하여, 오로지 가진 것 꿈뿐이라

그대 발밑에 내 꿈을 깔아 드리니

사뿐히 밟으라, 그대 내 꿈을 밟는 것이니.
(예이츠, ‘그는 하늘의 옷감을 바라노라’)

가능이 아니라 불가능을 꿈꾸는 것, 불가능의 힘을 믿는 것, 그래서 마지막까지 우리가 자기 안의 힘에 눈 뜨고 최선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것, 그것이 시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