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인권학교 - 노숙인도 우리와 같은 시민이에요! 톡 꼬마 철학자 7
그자비에 에마뉘엘리 지음, 레미 사이아르 그림, 배형은 옮김, 노명우 감수 / 톡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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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7 그자비에 에마뉘엘리, 소피보르데 글, 레미 사이아르 그림, 노명우 감수.

서울역을 지나다 아주 슬픈 표정을 하고 앉아 있는 아저씨를 본 기억이 난다. 겉차림은 초라하고 힘이 없어 보였다. 주변에는 아무 데나 누워 있는 사람들, 걷거나 날아다니는 비둘기들.
어느 오전에는 병원에 다녀오다 한참 거리를 걸었는데, 길 위에서 노숙인으로 추정되는 많은 사람들을 마주쳤다. 햇볕을 쬐며 가만히 앉아 있기도 했고, 주민센터 앞 배달음식 그릇 봉지를 뒤지며 남은 음식물을 집어먹다 내가 다가오자 아무 일도 안 한 척 봉지를 여미기도 했다. 마스크를 쓴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위기 상황에서 가장 큰 위험에 놓이는 사람들.
자칫하면 미끄러지고 넘어져 누구나 놓일 수 있는 위치. 거리의 사람들도 한뎃잠을 자는 삶을 즐기지는 않을 것이다. 춥고 덥고 의식주 해결이 안 되고 화장실 사용과 씻기 같은 최소한의 욕구조차 채울 수 없는 삶.

프랑스 저자들이 쓴 노숙인 인권에 관한 어린이책이다. 짧은 책이지만 노숙인에 대해 알고 싶은 어른이 읽기도 좋았다.
프랑스에는 노숙인 구조대가 있다고 한다. 어려움에 처한 노숙인을 돕고 병원이나 쉼터로 데려간다고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이 책에서는 돈이나 먹을 걸 주는 게 나쁘다고 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도울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눈이 마주칠 때 미소지어 주기.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받을 수 있게 하기. 그 부분을 읽을 때는 노숙인들 중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도 많다는데 괜히 웃어보였다가 해코지 당하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 이내 그런 생각하는 자체가 벌써부터 우리랑 다른 사람이라 선 긋는 게 아닌가 싶어 부끄러웠다.
우리나라에도 노숙인 자활을 돕는 지자체 정책과 시민단체가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서울시 다시서기센터 www.homelesskr.org
홈리스행동 www.homelessaction.or.kr
사이트를 통해 코로나 감염 예방을 빌미로 노숙인들에게 거주하는 곳에서 퇴거를 요구하는 사례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빈곤 퇴치와 자활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모습도 사진이나 글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뭘까 하다가 네이버 아이디 세 개 콩 털어서 노숙인쉼터랑 무료급식소에 기부를 했다. 아룬다티 로이 소설 속에서 무덤가에 머물던 안줌과 주변 노숙인들이 생각났다. 세상 모든 거리의 사람에게 벽과 천장이 막히고 편히 화장실 쓸 수 있는 깨끗한 거처가 마련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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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형 인간 - 천재인가 미치광이인가
대니얼 Z. 리버먼.마이클 E. 롱 지음, 최가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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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6 대니얼Z.리버먼,마이클E.롱.

‘...대학생을 대상으로 정치적 신념을 묻는 대규모 설문조사가 실시됐다. 연구팀은 피시험자 중 절반은 손세정제가 비치된 장소로 안내하고, 나머지 절반은 손세정제가 비치되지 않은 장소로 안내해 설문지를 작성하게 했다. 손세정제는 은연중에 감염의 위험을 상기시키기 위한 장치였다. 실험 결과, 손세정제를 옆에 두고 앉았던 학생들은 도덕규범, 사회사상, 국가재정 측면에서 보수주의 성향이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실제로 투표소 곳곳에서 손세정제가 눈에 띄었던 일이 우연이 아닌 것이다.’ (본문 244-245쪽)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시기에 선거까지 겹치니, 우리는 이 실험의 현실 적용 결과를 곧 확인할 수 있겠다. 기표소에 비치된 비닐장갑과 손세정제는 정말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결과를 낳을까? 책에서 말한대로라면 현재 상황이 불리한 정당이 있을지도. 이 책에는 이런 실험 결과가 자주 인용된다.

나는 스스로 중독에 취약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한 가지에 몰입하면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특정 행동에 꽂히면 끝없이 반복한다. 운동이나 자기계발 같은 유용한 것이면 좋을텐데, 불행히도 컴퓨터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에 미쳐서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가 삭제나 계정 폭파 같은 극단의 조치 뒤에야 멈춘 적이 있다. 대개 중독이라는 말이 붙는 일은 반복할수록 안 좋은 것들인데, 글로 적기 부끄러울 만큼 다양한 안 좋은 시기를 겪었다. (게임...SNS…약물...알코올...김성모 만화...기타 등등…)
처음에는 즐거움을 주었던 일도 그 지경쯤 되면 난 이걸 하는 게 정말 싫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는데 몸은 어느새 패턴화 되어 그 싫은 짓을 반복하고 있다. 해결책은 완전히 단절하는 기간을 두는 것이다. 적당히 즐기며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수준의 중용이 내게는 없었다. 불행한 인생.
과몰입형 성격의 장점도 있다. 입시공부나 대회참가, 공채시험 같은 성취지향적 활동에서 목표를 향해 무서운 집중력을 보였다. (늘 그런 건 아니고...가끔…) 어쨌거나 그 덕에 밥벌이는 하고 산다. 내가 하는, 겪는, 궁금한 일에 관해 집요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오래 시간을 쏟다보니 업무 수행 능력도 나쁜 편은 아니다. 작은 일에 너무 진을 빼서 삶이 피곤할 뿐...

그런 내 눈에 이 책이 들어왔다. 당신을 미치광이이자 천재로, 중독자이자 창조자로 만드는 욕망의 분자 ‘도파민’.
미치광이래. 중독자래. 욕망이래. 내 얘기 막 나올 것 같다?
사실 알라딘에서 과학책을 사면 주기율표 북램프를 준대서 급히 고른 책이었다. 막상 받은 북램프는 별로 예쁘진 않았지만 취침등으로 잘 쓰고 있다. 열받는 건 큰 마음 먹고 이 책을 지르고 고이 모셔뒀더니 내가 이용하는 전자책 도서관마다 이 책이 신규 입고 되었다. 아...좀 참을 걸…
그래도 어느 날 이 책을 펼쳤을 때,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다행이었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인간 행동과 성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석구석 어떤 분야에까지 마수?를 뻗치고 있는지 다양한 사례와 실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해주는 책이었다.

도파민, 하면 뭔가 저절로 쾌락이 뿜뿜 솟을 것 같은 이미지이지만, 실제로는 미래를 바라보는 기대감과 함께 뭔가를 계속하도록 의욕이 넘치게 만드는 힘이라고 한다. 이 미래지향 호르몬의 반대편에는 현재지향적 화학물질, 세로토닌, 옥시토신, 엔도르핀, 바소프레신, 엔도카나비노이드 계열 분자들 등등이 있다. 얘네들은 행복을 말할 때 자주 등장하는 호르몬이다.
첫 장부터 사랑에 빠지게 하고, 그 사랑을 걷어차고 새 사랑을 찾게 만드는 도파민의 작용이 등장해서 재미있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반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하며 미래를 꿈꾸게 하는 것은 도파민이지만, 콩깍지가 벗겨진 뒤에도 그 사랑을 잔잔하게 유지하며 행복으로 이끄는 것은 현재지향적 화학물질의 역할이라고 한다. 사랑에도 단계가 있는 것이다. 눈부신 미래를 향해 돌진하는 사랑에서 친숙하고 지속되는 사랑으로의 전환. 자꾸 새로운 것을 찾아나서게 만드는 도파민을 극복하는 일이란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

도파민은 사랑의 묘약이 되기도 하지만 약물, 술, 도박, 포르노에 빠져 인간 노릇을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승리와 지배와 권력에 취해 끝없이 상승을 향한 노력을 하도록 이끌지만 행복을 주지는 못한다.
도파민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은 예술, 학문 등의 분야에서 창조성을 발휘할 수도 있지만, 운이 나빠 유전적, 환경적 요인이 작용하면 조현병 같은 정신질환의 발현율이 높아지기도 한다. 연구에 따르면 예술가와 정신질환자와 꿈꾸는 사람의 뇌 활동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까 기왕이면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미친놈이 되고 싶다구…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데에도 도파민 관련 유전자가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도파민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록 진보, 현재지향적 회로의 영향 하에 놓인 사람일수록 보수인 경향이 있다고 한다.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주의자는 소수자 관련 정책(저소득층 복지, 이민자 포용, 동성혼 등)은 반대하면서도, 그들이 가진 손실혐오, 가해 혐오라는 기재 때문에 오히려 봉사나 기부와 같이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는 적극적일 수 있다는 설명이 재미있었다. 반대로 도파민의 수혜자?인 진보주의자는 변화한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사회를 낫게 만들겠다고 뛰어다니지만, 정작 사회성이나 공감능력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아인슈타인이 한 말을 보라: “사회 정의를 향한 열정과 사회적 책임은 이렇게나 강렬한데 가급적이면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싶지는 않으니 나도 내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프하하...영감님 저도 제가 잘 이해되지 않네요...인류는 사랑하지만 사람대하는 일은 무서워요...
사고 훈련 만으로도 보수성과 진보성이 조정된다는 실험 결과도 흥미롭다. 구체적 사고(어떻게?)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보수주의가 유지되지만, 추상적 사고(왜?)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소수집단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질문과 전략에 따라 교묘하게 원하는 답변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 섬뜩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이나 여론을 이끌 때 유리한 전략이 될 수 있어 보인다. 잘들 활용해 보시게나…

마지막 장은 모험적 인류에 대한 이야기인데, 고고학, 인류학 관련 책에서 몇 번 읽었던 인류의 이동을 도파민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니 흥미로웠다. 도파민을 자극한 동물이 탐험 행동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실제로 인류의 이주경로를 따라 유전자 데이터를 분석하니 도전 정신이 투철한 유전자를 가진 후손 집단이 많았다고 한다. 이건 유전자가 사람을 멀리 보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런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멀리까지 살아남고 도달했다고 볼 수도 있다. 불만족감과 동요를 일으켜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더 나은 곳을 찾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특정 유전자와 호르몬에서 나온다니, 뭔가 사람이 꼭두각시 같은 느낌도 든다.

저자의 결론은 미래 지향의 도파민을 잘 활용하되 그 역작용은 극복하고, 현재지향적 회로와 조화를 잘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조화를 이루는게 말은 쉽지만 이미 물질의 지배를 받고 어떤 인간들은 날 때부터 그렇게 생겨 먹어서 그렇다, 하는 말을 실컷 해 놓고선, 사람이 자유의지로 뭔가를 바꿀 여지라는 게 있을까 싶었다. 사람 마음이 마음대로 되니!
그래도 내가 왜 이렇게 중독에 취약한가, 한 자리에 머무는 걸 못 견디는가, 변화를 갈망하는가, 하는 물음에 특정 물질의 작용이 영향을 줬다고 설명을 들으면 나름 위안이 될 수도 있겠다.
거의 환원론 수준으로 이게 다 도파민 때문이다! 하는 건 조금 지나치다 싶을 때도 있었다. 저자도 유전, 환경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도 있다오- 다 도파민이 한 건 아니라오- 하면서 수시로 얼버무리기는 한다.

어쨌거나 재미있는 독서였다. 내가 이 책을 드문드문이지만 끝까지 읽고 독후감을 쓰게 만든 것도 결국 미래 지향의 도파민 놈이겠지? 완성된 글 한 편이라는 쾌감, 좋아요라는 자극, 이걸 얼른 읽고 새로운 책을 정복하러 나아가자 므헤헤헤- 하는 부추김. 아 이렇게 써놓으니 징그럽다. 징그러운 물질의 힘. 어쨌든 그것이 나라는 인간을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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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부스의 ‘먹고 기도하고 먹어라’ 댓글 이벤트 당첨으로 글항아리 도서 30만원 상품권을 받았다.
고민 끝에 고른 열 권이 오늘 도착했다. 선물할 책 네 권은 친구가 골랐다.(나 이거 다 보고 준다? 한 이십 년 걸릴 듯?ㅋㅋㅋ)
이렇게 많은 책 선물은 처음이다. 어마무시한 두께지만 모두 마음에 들고 천천히 다 읽어 보고 싶다.
좋은 책 만날 기회 주신 글항아리 출판사에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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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03-24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전 풍년인데요 :)

반유행열반인 2020-03-24 16:30   좋아요 0 | URL
정말요. 배가 터질 지경이에요!

2020-03-24 1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24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20-03-24 1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부럽슴다~

반유행열반인 2020-03-24 17:2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골라놓고 보니 제 독서력에 비해 과분한 책들이 많습니다...

Comandante 2020-03-24 1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3-24 17:45   좋아요 0 | URL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락방 2020-03-24 1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책들이 다 어마어마하네요! 무려 30만원 상당의 책이라니!!!

반유행열반인 2020-03-24 17:52   좋아요 0 | URL
정말 어머어마하지요. 저 이런 거 당첨되어 본 적이 잘 없는데 올해 운을 여기 다 쓴 게 아닌가...싶습니다.

단발머리 2020-03-24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기만 해도 배부른 그런 멋진 풍경이네요. 저녁 안 먹어도 되겠어요. 반유행열반인님, 너무 축하드려요!!!

반유행열반인 2020-03-24 18:31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축하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0-03-24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너무 좋으시겠어요^^
책을 선물받는 기쁨~~
그 누구보다 잘 알죠^^

반유행열반인 2020-03-24 18:59   좋아요 1 | URL
흔치 않은 경험이라 기쁘네요.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03-24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유행열반인님 여유롭고 즐거운 독서 시간 되세요! 축하드립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3-24 21:25   좋아요 1 | URL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님^^

초딩 2020-03-24 2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대박이에요 ㅎㅎㅎ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아아아~~~

반유행열반인 2020-03-24 21:26   좋아요 0 | URL
제가 열심히 읽어야 진짜 대박일텐데...일단은 꽂아만 놔도 든든하네요. 감사합니다 초딩님!!

막시무스 2020-03-24 2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음의 곳간에 양식을 가득 쌓아둔것 같이 든든하시겠어요!축하드립니다!ㅎ

반유행열반인 2020-03-25 06:54   좋아요 1 | URL
네 정말 그런 마음이에요. (그렇지만 다 안 읽고 또 책 사는 욕심 부리겠죠...ㅎ)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03-24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3 1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0-03-25 0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읽을 책이 많아서 기분 좋으시겠습니다 제가 읽은 책도 한권 있어요 예전에 우연히 알고 봤는데, 《2천년 식물 탐구의 역사》예요 재미있었습니다 그거 보고 식물 이야기도 재미있구나 했어요


희선

반유행열반인 2020-03-25 06:56   좋아요 1 | URL
희선님, 축하해주셔서 감사해요. 저 두꺼운 식물사를 벌써 보셨군요. 대단해요. 고른 책이 같은 걸 보면 희선님과 비슷한 취향이 있나 봅니다!!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로셀라 포스토리노 지음, 김지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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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4 로셀라 포스토리노.

나치 독일 아래 학살당하거나, 사랑하는 이를 포함한 모든 것을 잃고 겨우 살아남은 유대인을 다룬 이야기는 많이 접했다. 초등학생 때 읽은 안네의 일기, 중학생 때 본 아트슈피겔만의 만화 쥐, 조금 더 커서 본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피아니스트, 쉰들러리스트 등. 나치에게 부역했던 연인이 나오는 영화 더 리더(소설은 아직 못 읽었다)가 조금 특이한 소재였다. 전범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읽는 내내 어려웠지만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생각보다 쉽게 악한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이 책은 같은 시기를 겪은 독일인의 이야기이다. 대다수 독일인이 나치당에게 정권을 맡기고 전쟁이 일어나는 데 일조했지만, 모두가 나치를 좋아하고 전쟁을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독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며 분노할 수도 있겠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틈새의 사람들을 지켜보는 경험은 새로웠다.

이탈리아 제목 Le assaggiatrici. 번역해보니 감별사, 시식가쯤 되겠다.
영어 제목 At the Wolf‘s Table. 늑대의 식탁에서. 늑대는 히틀러를 일컫는다.
히틀러가 달라 붙은 한국어 제목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내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소설 앞 부분에서 히틀러의 음식, 히틀러의 뭐시기, 하는 서술이 반복되는데 작위적이고 낯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책의 소재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난 제목이긴 하다. 자기가 뭘 읽게 될지 알고 펼치는 건 좋은 점일 수도 있지만, 초반을 읽는 동안 제곧내(제목이 곧 내용)...하면서 약간 지루하고 유치하게 느꼈다. 그래도 참고 읽었더니 2,3부는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베를린에 살던 로자는 신혼 1년 만에 남편 그레고어가 전장으로 떠나고 함께 지내던 어머니가 공습으로 죽자 그레고어의 부모 헤르타와 요제프가 있는 그로스-파르치로 옮겨 가 그들과 함께 그레고어를 기다린다.
인근의 라스텐부르크 볼프스샨체에 히틀러가 머물고 있었다. 로자는 히틀러의 음식을 시식하라는 명령을 받고 군인들 손에 이끌려 매일 크라우젠도르프의 병영에 출입한다. 로자 말고도 레니, 엘프리데, 하이네, 베아케, 아우구스티네, 울라, 게르투르데, 자비네, 테오도라 총 10명의 여자들이 시식을 담당한다. 독살을 사전에 막는 총알받이 역할이라 여자들은 넉넉한 급여를 받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불안에 떨었다. 식재료 절도, 식중독, 원치 않는 임신, 중절, 데이트 강간, 신분 위장과 발각 등 온갖 일을 겪으며 여자들은 서로를 경계하기도 하고 우정과 사랑을 쌓기도 한다. 1부까지 음식을 둘러싸고 마치 여학교 학생들처럼 신경전 벌이다 친해지다 하는 모습은 별로 공감이 가지 않고 내 취향이 아니다 싶었다.
참전한 그레고어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로자는 삶의 희망을 잃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귀환만 믿고 알지도 못하는 곳에 그의 부모와 지내기 위해 왔는데, 기다림은 기약이 없어지고 살기 위해 먹는 음식이 끊임없이 생명을 위협한다면 절망하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2부에서 새로 병영에 부임한 알베르트 치글러 중위의 등장과 함께 이야기가 다시 흥미로워졌다. 여자들에게 고압적이고 통제하려 드는 치글러 중위는 처음에는 그저 비호감 덩어리였다. 그런데 요제프가 정원일을 해주던 마리아 남작부인의 저택 파티에 로자가 초대받았을 때, 로자는 치글러와 마주친다. 이후 치글러는 밤마다 로자의 방 바깥에 와서 서성이고, 결국 마음이 움직인 로자는 그를 헛간으로 이끌어 육체 관계를 맺는다.
남편이 실종 상태이긴 하지만 로자는 시부모집에 얹혀사는 처지이고, 알베르트 치글러 역시 유부남인데다 나치군 소속이다. 로자는 알베르트에게 몸과 마음이 이끌리면서도 증오하던 나치, 자신과 시식가 여성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군인과 친밀한 관계가 된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레고어가 돌아올 것을 걱정하고, 임신을 걱정하고, 시부모나 엘프리데가 알아차릴까 봐 두려워한다. 그것도 사랑인데, 로자와 치글러의 사랑은 모두에게 숨겨야 하고 서로에 대해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도 없다. 어쩌면 그런 불완전한 상황 때문에 둘은 서로에게 빠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종전과 독일군의 패전이 뚜렷해질 무렵 치글러는 로자를 베를린행 기차에 태워 피신시킨다. 로자는 이후 시부모도, 치글러도 다시 만날 수 없었다.
후일담처럼 짤막한 3부는 읽는 내내 찡했다. 50년 가량의 시간이 흘러 노인이 된 로자가 누군가를 만나러 하노버로 향한다. 죽어가는 옛 사랑을 보러 가는 일. 마지막에 로자가 병원 구내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모습은 오래 전 시식하던 시절과 겹쳐지는데 그럴 듯한 마무리였다. 이 책의 중심 이야기는 전쟁 때문에 살아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애도라는 생각을 했다. 로자는 사랑하는 부모와 동생을, 친구 엘프리데를, 그레고어를, 치글러를 전쟁 때문에 잃었다. 그녀가 50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노년의 그녀는 혼자인 듯하다. 아이도 없고 사랑하는 이도 없이 늙어버린 미래. 그게 나라고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온다. 치글러가 로자를 베를린행 기차에 태우려 했을 때 ‘나를 제외한 전 인류가 정말로 죽음 대신 비참한 삶을 사는 것을 선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목에 바위를 매단 채 모이 호수 바닥에 가라앉는 대신 궁핍하고 외로운 삶을 선택할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처럼, 사랑 없이, 영원히 혼자라도 살아 있는 편이 정말 나은 것일까. 긴 외로움 속에 그저 숨만 쉬는 게 아닐까.
그래도 그녀가 살아 남은 이유 또한 사랑 덕분이다. 치글러가 그녀를 살렸다. 그녀 또한 전쟁이 끝난 뒤 사랑했던 사람을 살려낸다. 그녀의 사랑은 끝났지만 그녀가 살려낸 사람은 또다른 사랑을 찾아서 제법 긴 여생을 보냈다.
살아있다면, 운이 좋다면 그렇게 다시 사랑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끝내 혼자 남더라도, 정말 끝까지 혼자일 거라는 단정과 포기 없이 사랑할 희망을 붙들고 살아야 하는 걸지도.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될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전쟁의 가장 나쁜 점은 사랑의 그런 가능성조차 자비 없이 박살내 버린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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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4시간만 일한다 - 디지털 노마드 시대 완전히 새로운 삶의 방식
팀 페리스 지음, 최원형.윤동준 옮김 / 다른상상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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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3 팀 페리스.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쓰고 강연하는 일로 수익을 창출하고 너희도 나처럼 되면 돼-하는 다단계 영업 마냥 보인다.
그래도 이 책 제목 봐, 하루 4시간만 일해? 아니, 주4시간이랜다. 이쯤되면 예전 같으면 사기꾼이네...하고 넘겼을 건데 읽어보았다. 많이 심심했나 보다.
주로 마케팅 분야에서 일해온 저자와 다른 이들의 사례가 등장한다. 모든 직업에 적용하기는 힘든 조언들이 있었다. 제3세계에 아웃소싱하는 데는 영어권 노동자에게는 이점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래도 건질만한 것은 일과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우리는 긴 시간 직장에 머무르고 내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누군가에게 보여야 진짜 일하는 거라고 여겨왔다. 아닌 걸 알면서도. 개인 사정으로 몇 주간 두 시간씩 업무 시간을 단축했다. 동시에 전임자의 명예퇴직으로 새 보직을 같이 맡게 되었다. 하루 6시간, 내게 갑자기 주어진 생소하고 잡다한 일을 처리하는데 부족했을까? 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같은 일이라도 대개 10시간이 주어지면 10시간 동안 늘려서 하고 4시간이 주어지면 4시간 내에 끝마치게 된다. 짧은 시간만 주어지자 일의 우선순위를 다시 세우고 시간 낭비하던 일들은 미루거나 집어치우게 되었다. 내 일이 아닌 것도 내가 떠맡고, 남과 나누어 할 일도 내가 혼자 다 하는 성격이었는데 여전히 약간은 그런 짓을 했지만; 그래도 거절하고, 분담시키고 혼자 하던 일을 많이 줄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왠만한 일은 다 처리되었다. 다행히 일에서도 큰 구멍난 적이 없었고, 작은 구멍이 나면 수습하면 되었고, 무사히 그 시기를 넘겼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다 해도 상사가 안 받아들여주면 소용이 없다. 어떻게 재택근무를 놓고 딜을 할 수 있을지. 이 책에서는 흥미로운 방식을 가르쳐주었다. 시험 삼아 질러보고, 그 회사를 떠난 기간 동안 최대한의 성과를 올리고, 반대로 회사에 있을 때는 최저 성취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하하하. 그렇게 신뢰를 쌓은 뒤 일하는 날을 주3, 주2, 주1회로 줄이고, 남은 시간은 자신이 원하는대로 즐기면 된다. 참 쉽죠? 안 받아들여지면 때려치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회사 관둔다고 니 인생 안 망해. 하하하하 이렇게 쿨할 수가. 이런 긍정과 낙관은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지 그게 더 부럽고 궁금하다.
이메일이나 메시지 작성에 특히 고심하고 문서를 뒤적이며 과도하게 정보를 수집하는 나는 그런 시간을 줄이자는 저자의 쿨함에 놀랍기도 하고 느끼는 바가 있었다. 토씨 하나라도 받는 이가 기분 나쁘지 않을지, 못 알아 먹는 건 아닌지 걱정하며 정성을 들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나도 남이 보낸 이메일이나 메시지를 공들여 읽지도 별 생각 하지도 않잖아. 정보를 마구 수집하는 건 그저 불안을 다스리고 시간을 낭비하는 방법이 아니었는지.
주 1회 메일 확인, 전화 안 받거나 덜 받기, 이득도 없이 에너지만 빼앗는 골치거리 고객 잘라내기, 단순하고 시간 잡아먹는 일은 아웃소싱, 쓸데없이 긴 회의 줄이거나 빼먹기 ㅋㅋ 다 지키지는 못하더라도 그동안 무용하게 소모된 시간을 앞으로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새 직장에서 전화번호 두 개 쓰고 단체카톡방 안 들어가서 직장 밖에서 업무지시 안 받는 건 잘 한 일인 듯하다. 급한 사람은 알아서 메일이나 문자메시지나 전화한다… 스트레스도 줄고 가끔 엉뚱한 정보로 분란 생겼더라 하는 소식을 뒤늦게 따로 전해 듣는 수준 ㅋㅋ
단순히 일하는 시간만 줄이고 최대한의 소득을 확보하는데 그치지 않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데까지 저자는 자신의 사례를 들어준다. 솔직히 이 부분은 공감이 가지 않았다. 당장 코로나 바이러스로 입출국이 묶인 상황이라 세계를 돌며 즐기는 삶이 가능하지 않기도 하고, 그보다도 원래 내가 집에 처박혀 있는 걸 너무도 좋아하기 때문인 듯. 최소한으로 일하고도 생활을 보장 받을 수 있다면 나는 남은 시간을 전부 읽고 보고 쓰는데 쓸 것이다. (정말? ㅋㅋㅋ) 휴직 이 년 동안 두문불출 한 달에 한 두 번 나간 적도 있는데 그래도 살 것 같다. 다만 가끔 산책으로 하루 만 걸음씩만 걸으면 조금 더 행복할 듯. 꿈같은 바람이지만 그런 꿈대로 사는 삶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겠다. 직장과 월급에 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삶. 적게 소비하고 많이 행복하고 많이 사랑하는 삶. 아유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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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03-23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막 읽고 싶어졌어요 이 책 ^^ 근데 전업주부도 하루 4시간만 일해도 괜찮을까 음 싶은 거 있죠. 그럼 좋겠다, 근데 어쩐지 완전 불가능할 거 같아서 갑자기 힝 ㅠㅠ

반유행열반인 2020-03-23 18:07   좋아요 1 | URL
하루가 아니고 주4시간이더라구요.ㅎㅎㅎ 잦게 하는 일을 몰아서 하래요. 그렇다면 빨래는 주1-2회 돌리기, 식사는 한 번에 왕창 준비해서 조금씩 얼려놨다 데워 먹기, 청소도 못 견딜 수준까지 버티다 주1-2회 청소기 돌리기ㅋㅋㅋ 꼬맹이들 돌보는 건...아웃소싱? ㅋㅋㅋ 아 나 이미 그렇게 사는 거 같은데...왜 그런데도 시간 없지...그렇게 아껴 남은 시간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 생각하는 게 먼저인 거 같아요.

수이 2020-03-23 18:36   좋아요 1 | URL
말도 안돼 ㅠㅠ 정말 다시 보니 주4시간이네요;;;; 가능할 수 있을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Comandante 2020-03-23 1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유행열반인님께서 쓰신 글을 보니 자기계발서지만 읽고싶어지네요^^ 자기계발서는 포르노수준으로 취급하는데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0-03-23 20:50   좋아요 0 | URL
시간에 묶여 일하는 공무원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ㅎㅎ 다음 인생을 설계할 때라면 참고나 할 정도구요. 읽다보면 그래 너 좋겠다...정도. ㅋㅋㅋ좋겠다 까지고 따라할 엄두는 안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