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 그려진 선비정신 - 피부과 의사, 선비의 얼굴을 진단하다
이성낙 지음 / 눌와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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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7 이성낙.

 

 피부질환, 하면 증상이 무엇이든 남이야기 같지 않다.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아토피성 피부염을 오래 앓았다. 잠못드는 가려움도 문제지만, 염증성 피부를 긁다보면 손상이 오고, 감염도 오고, 그렇게 생긴 상처는 일반적인 것보다 아무는 것도 더디다. 심할 때는 회복에 달이 걸리기도 한다. 스테로이드 연고 남용으로 부작용도 심하게 겪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부모는 의원, 민간요법, 한의원, 온갖 수단을 동원했지만 오래도록 차도가 없었다. 그냥, 앓을 만큼 오래 앓고 나을 되면 나았다.

 성인기에도 재발과 호전을 반복해서 2005 대학 2-3학년 무렵엔 학업도 삶도 중단하고 싶을 만큼 괴로운 시기를 오래 보냈다.(그무렵 아토피 전문 한의원이라는 곳엘 다녔고… 나는 한의학에 대한 모든 기대를 버렸다. ㅋㅋㅋ) 나았나 싶더니 취업 무렵 2008년에 다시 재발해서 피부과 다니면서 스테로이드 부작용을 토로했지만, 의사가 그래도 친절하게 복약 지도를 줘서 치료를 지속했고 더디지만 나았다. 마침 습윤반창고가 나와서 심하게 벗겨진 피부를 인공피부마냥 보호해줘서 그전보다는 치료기간도 버틸만 해졌고 다리는 상처투성이었지만 출퇴근도 무리없이 했다. 2015년에 또다시 얼굴까지 염증이 심해졌는데, 마침 어려서 역시 심하게 아토피성 피부염을 앓던 큰어린이까지 피부염이 같이 심해져서 조금 고생했다. 그렇지만 우연히 친절한 피부과 선생님 만나서 위로도 많이 해주시고 스테로이드 연고 부작용 염려 덜도록 정확한 사용량도 알려주시고, 먹는 약도 처방하시고, 조금 낫고 나니 스테로이드 대안으로 프로토픽도 여러 용량으로 처방해주셔서 역시나료를 마쳤다.

 

 쓰고 보니 병이 거의 주기로 재발하는데 벌써 년이 되어 가서 조금 걱정이다. ㅋㅋㅋㅋ 점점 피부질환 진료보는 피부과는 줄고 레이저 쏘는(원래 전공은 다른 과목이거나 그냥 일반의 선생님들이 운영하는) 병원만 많아서 무좀약 처방 받으러 가려해도 큰일이다. 약은 안주고 보험 되는 비싼 레이저 쏘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고… 그래도 우리 동네 피부과(전공은 비뇨기과…) 발톱 무좀약 처방 받으러 가보니 선생님이 바로 다른 치료 권하진 않고 내복약이 제일 효과 좋다고, 일단 환자 선호대로 바르는 (그나마도 보험 지원 되는 일반의약품으로 주심) 주고 나으면 먹는 지으러 다시 오라고 하셨다.

 

 ’초상화, 그려진 선비정신‘이란 책이 피부과 의사가 책이라고 해서 제법 관심이 갔다. 책을 만나게 경로는 수능 국어공부이다. ㅋㅋㅋ 문제집에서 조선과 중국의 그림 화풍 차이를 다룬 지문을 읽다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윤두서인지 강세황인지 초상을 검색해 찾아 보았다. 그런데 대상 인물의 온갖 피부 흠결까지 그린 조선 초상화에 관한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https://m.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304250500001

 

 기사 내용은 대부분 아래 참고 서적 이성낙 저자의 도서에 기댄 부분이 많은 같았고, 그래서 직접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중고판매자에게 6770원에 저렴하게 ...ㅋㅋㅋ

 

 책표지 안쪽의 저자 소개를 보고 놀랐다. 1938년에 태어난 할아버지 저자는 60년대에 독일 유학가서 피부과 의사가 되어 돌아와서 국내 이런저런 의대 총장 학장 지내신 교수님이었다. 그림 연구하고 초상화에서 피부 질환 찾아내는 취미 내지 여흥이 있으셨는데, 그러느라 모은 자료들을 어쩌나, 하는 말에 지인들이 그냥 논문 ...해서 진짜로 70대에 미술사학과 가셔서 박사 논문을 버리셨다...ㅋㅋㅋ 책의 많은 내용 바탕도 논문에 두고 있었다. 80살에 책을 펴내신 이성낙 박사님은 아직 건재하게 계신 같다. 의대 증원 문제에 관해 조심스럽게 칼럼 놓으신 것도 찾아 보고…(의대정원 막은 그간 의료계가 아닌 정부였다, 그러니 증원 자체가 나쁜 아닌데 갑자기 의대가 수용하기도 힘들게 한해에 왕창 늘리는 재고해라 점진적으로 가자... 이런 의견으로 읽힘…)

 

 조선 화원들은 거의 편집증에 가깝게 인물의 세밀한 구석구석을 그려 두었다. 초상화를 남긴 인물은 주로 왕이나 고위관직 공신들이고, 그래서 그림 그린 화원들도 국가 소속 최정예 실력자들이었다. 너무 세세하게 가감없이 남겨둬서 현대의 피부과의학자들이 그림 보고 어떤 질환인지 진단 가능할 정도라고, 저자는 부분에 주목해서 조선 초상화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그런 표현상 특징을 선비정신과 연관지어서, 이게 선비정신 갖춘 양반들이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그리도록 동의해서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선비 정신은 조선 왕조 지탱에 기여한 바가 있으니 다시 살아날 하다, 그런 논조로 전체를 이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곱게 보지 않을 수많은 병변들, 당장 앓고 있거나 예전에 앓던 질환들, 그로 인해 변한 피부의 형태와 색깔, 질환은 아니더라도 노화로 인한 주름과 검버섯, 터럭, , , 얼굴 실루엣의 변화까지 세밀하게 파악할 있는 기록이 남아 있는 후대에게 도움 되는 바가 있긴 것이다. 나도 당장 흥미롭게 있었고…   지금도 뽀샵을 거쳐 스노우필터가 유행하고, 에이아이 프로필 서비스 같은게 인기를 끄는 보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흠결을 감추고 고쳐서 실물과 다른 나를 만들고, 그걸 나라고 인식하며 자존감을 높이는 쪽을 택하는데, 과거의 초상화도 대부분은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도 조선 시대 국가 주도 제작 초상화, 혹은 그런 국가 주도 그림 제작 기관에 속한 화원들은 노빠꾸로 천연두 곰보자국에 반점에 주먹코에 실명한 눈에 다 그려놔…

 

 워낙 높은 사람들이고, 사람들의 동의 없이 그런 흠결을 그렸을리 없다, 그런 흠결조차 남기는 동의하는 사람들, 정직하다, 이것이 선비 정신, 여기에는 많은 의문을 느꼈다. 일단 정직이라는 미덕부터 이거 정말 조선 시대에도 있던 걸까 새마을운동 성실 정직 이러고 나온 아니냐...하면서 찾아보니 공자가 말하는 군자의 덕목에 , 이라는 있다는 알게 되었다. 곧고 강직한 것보다 솔직함에 가까운 미덕이라고 하였다. 그렇군. 이렇게 동양철학에 무지한 나새끼 가지 더 배우고요…

 그렇더라도 정말로 공신들이 정직하게 그대로 그려줍쇼, 오케이, 했을지는 모르겠다. 일단 왕이 하사하는 그림인데 예쁘게 그려달라고 떼부릴 있었겠나… 심지어 도화서 초상화 그리는 원칙이 정확하게 그대로! 이런 것을 유도리있게 지워주시고... 있었겠냐고…

 사진 없던 시절이라 자신의 모습을 누군가 세세하게 그려서 제공하면 나름 특별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피사체가 초상화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많이 상처 받았을 같다. 개의치 않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심한 피부병변 흔적은 대다수 이들에게 콤플렉스였을텐데, 그걸 굳이 그려서 직접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그게 후손들한테도 남고, 아마 2024년도의 나새끼가 흥미거리로 읽고 구경할 생각도 못했겠지…

 

 역사적 기록, 후대에 과거에 있던 일들을 최대한 자세히 남기는 , 혹은 피부의과학 연구에 기여하는 목적이라면 그대로 병변의 모습들을 남기는 가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오늘날에 자료에 관심 갖는 사람들의 사후적 해석인 같다. 그냥 결과론적인 것이고, 미학적, 미술사적 측면에서는 최대한 있는 그대로, 실사구시, 이런 필요는 하겠지만 미술이나 예술 측면에서 우수한 것으로 칭송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상 현대예술 뽕에 취한 포스트모던 넘어 온갖 해체하는데 미친 생각이니 거르셔도 되고요...ㅋㅋㅋㅋ 자료 자체는 특정 분야에서 가치 있는 부분이지만 그나마도 저렇게 세세하게 얼굴 남겨서 불멸에 오른 자들은 대부분 남자구요…  서양 미술 초상 사례로 모나리자나 진주귀고리 같은 여성 모델 가져왔던데 우리 역사에 남은 여성들은 저정도 퀄리티 초상도 없어서 현대 화가들이 열심히 고증해서 그려봤자 맨날 논란 일고 얼굴이 맞냐 답도 나올 걸로 옥신각신… 논개가 그랬고 춘향이가 그랬고 신사임당은 모르겠다… 예시 인물이 일천한 것도 한숨 나오고요… 적어도 얼굴이 정말 윤두서 강세황이 맞냐 하는 논란은 나오겠다… 아참 자화상이지… 화가들은 셀프로 그리니 그런 특권 누려도 말은 없다.ㅋㅋㅋㅋ

 

 얼굴 사진이 흔한 시대라, 원하면 일초에 수십장 찰칵찰칵찰칵챡칵 찍어 동영상도 만들 있는 때라 정직한 기록의 미덕 운운하기도 애매하게 되긴 했다. 심지어 에이아이 기술 나와서 영상도 이미지도 뜯어 고치니 후대 사람들은 우리 조상님들은 전부 턱이 뾰족하고 눈이 왕방울 만하셨군요...하고 실물과 다른 이해를 해도 없겠지만… 글의 말미에 이렇게 얼굴에 흉한 병변 있어도 높은 벼슬에 오를 있었다, 능력주의라 해야 할까 아니면 혈연과 가문으로 인한 특권일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남들이 흠결이라 모습을 그대로 남겨 놓은 그린 이나 그려진 이나 조금의 용기가 없었다고는 없겠다. 못생긴 셀카 지우고 남겨둘 자신 있냐고요...ㅋㅋㅋ 저는 추한 것도 냅두자 주의였지만 이제는 점점 고우나 미우나 남기는 쪽으로 가고 있네요… 아토피성 피부염 얼굴까지 앓을 남은 사진 보면 그저 가엾네요…

 


이 정도면 그래도 그려진 사람이 봐도 그러려니 하겠는데… (출처, 위의 책 31쪽)

 


천연두 자국 저렇게 디테일하게 얼굴 전체에다 그려 준 거 보면 나라면 맴찢일 듯…(출처, 위의 책 31쪽)

 

 


 이건 미술 시간에 남긴 자화상… 곱슬에 점에 흉터자국까지 정직하게 못생김 탈탈 털어 그린 나놈도 선비정신 넘치는군요...ㅋㅋㅋㅋ 지금도  저렇게 생겨서 지나가다가 누가  알아볼까 걱정이네요...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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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 2024-07-07 19: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ㅋㅋㅋㅋ 예사롭지 않은 그림솜씨와 표정에 감탄했습니다 ㅋㅋ 공부하시는게 독서로 연결되는거 넘 멋져요🥹🥹

반유행열반인 2024-07-08 21:31   좋아요 2 | URL
20여년 전의 중학생 저를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ㅋㅋ 나름 이런 의미라도 찾아야 공부하는 맛이지 하고 있어요...(점수가 안 나오니 다른 쪽으로 합리화 ㅋㅋㅋㅋ)

라로 2024-07-08 1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솜씨가 대단하시네요!! 근데 반열샘 예민해 보이세요. ㅎㅎㅎ 머리숱이 근데 왜?? 저와 비슷해 보입니다. ^^;;;(이런 것만 보는. 이해하시죠?ㅋㅋ)

반유행열반인 2024-07-08 21:33   좋아요 1 | URL
예민이라고 이름을 바꿔야 될 거 같습니다. 은근 이름 예쁜데?! ㅋㅋㅋ 저때 머리가 너무 많아서(?) 꽉꽉 묶고 다녔어요. 진짜 빗자루 한움큼 이던 것이 이제는 저도 머리 숱 술술 줄어 특히 가운데 이마가 요샌 자꾸 줄어서 곱슬까지 더하니 장미여관 육중완 아저싸 같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자목련 2024-07-08 18: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중3에 그린 자화상, 정말 잘 그리셨네요. 지금도 그림을 잘 그리실 것 같아요!

반유행열반인 2024-07-08 21:34   좋아요 1 | URL
어린 저를 칭찬해주셔 감사합니다 ㅎㅎㅎ그리기든 뭐든 너무 오래 안 하고 냅둬서 많은 것들이 그저 전생의 저인 것 같습니다 ㅋㅋㅋ

호시우행 2024-08-31 0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피부병 호전되길 빌게요. 나도 그 고통을 겪었던 사람인지라. 아무튼 선조들의 사실화는 정말 압권인 것 같아요.

반유행열반인 2024-09-05 22:15   좋아요 1 | URL
호시우행님, 건강을 빌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은 재발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호시우행님도 항상 건강히 지내시길 기원합니다.
 
포켓몬 한글쓰기 100일 마스터 포켓몬 마스터
예림당 편집부 지음 / 예림당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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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포덕 큰어린이에 따르면 이 책 기획자가 공식 도감 이상의 덕력 내지 자세한 조사를 바탕으로 퀴즈를 만든 것 같다고 한다ㅋㅋㅋ 실제 사용자인 작은어린이는 백일이 아니라 사십일만에 후다닥 글씨쓰기를 마쳤다. 어린이가 자발적으로 글씨연습하게 만드는 신비한 책..후속작인 퀴즈왕도 삼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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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4-07-04 17: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부 잘 되나요?

반유행열반인 2024-07-05 17:06   좋아요 2 | URL
라로님 ㅎㅎㅎ잘 되는지는 몰라도 이번 주 내내 일 11시간씩은 스터디카페(요즘 독서실을 이렇게 불러요) 갇혀 지냅니다. 여름방학 잘 보내시고!!! 라로님 기 받아 저도 합격 기원 ㅋㅋㅋ수능 못 봐서 합격 못해도 다시 수능감독관되니 개이득?!?!ㅋㅋㅋㅋㅋㅋ
 

뭣이 2만4천권을 더 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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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6-28 14: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달려요! 2만 4천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4-06-28 14:28   좋아요 3 | URL
그보다도 100세까지가 더 빡세지 않을까요 ㅋㅋㅋㅋ미리 질러?!?

잠자냥 2024-06-28 14:34   좋아요 2 | URL
아 맞다.... 100세까지가 더 빡세요! ㅋㅋㅋ 걍 미리 미리 지릅시다 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4-06-28 15:30   좋아요 3 | URL
안 살래...있는 거나 천천히 볼래 빌려볼래 (이러고 아마 또 슬금슬금 사는 게 책노예들 패턴이죠......여기가 호구와트로구나...)

북깨비 2024-06-28 15: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마이 ㅋㅋㅋ 2만4천권 ㅋㅋㅋㅋㅋ 🤣🤣🤣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는 읽으실 수 있습니다와는 별개의 문제인거죠?

반유행열반인 2024-06-28 15:29   좋아요 4 | URL
그렇죠 ㅋㅋㅋ그래서 독서기록이라고 이벤트에 뜨면 에잉 떼잉 쯔쯔 지름 기록으로 바꿔다오 해요 ㅋㅋㅋㅋㅋ아니 그보다도 이만원이면 권당 싸게 쳐서 만원 잡아도 2억4천만원만 더 내놔라는 뜻인거죠? ㅋㅋㅋㅋㅋㅋ

북깨비 2024-06-28 15:41   좋아요 1 | URL
금액으로 환산하니 어마어마하네요. 🤣

반유행열반인 2024-06-28 21:47   좋아요 1 | URL
쓰고 보니 알라딘 너무한 듯도 싶습니다 ㅋㅋㅋㅋ이천만원어치 샀는데 이억원을 더 내놓으래....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4-06-28 17: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열반인님 젊은 것으로~
저는 겨우 2,300권!

반유행열반인 2024-06-28 21:46   좋아요 2 | URL
알라딘이 저에게 영생(과 전재산 헌납)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ㅋㅋ

라로 2024-06-29 13: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한동안 책을 안 사던 때가 있었어요. 그때 알라딘이 저에게 ˝이 기세라면 100세였나? 80세였나? 아무튼 그때까지 0권을 더 구매할 수 있을˝거라고 했어요. 근데 그때 저 무척 서운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책을 살수록 구매할 수 있다는 책이 많아지더라고요. 저는 100세까지 0권을 구매하는 것을 목표로, 쿨럭, 그나저나 벌써 여름이네요!

북깨비 2024-06-29 13:36   좋아요 1 | URL
저 꾸준히 사고 있는데도 100세까지 0권이래요. 알라딘 유에스 회원은 그냥 0권이 나오는거 같아요. ㅠㅠ

반유행열반인 2024-07-02 13:48   좋아요 0 | URL
라로님 평안한 여름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ㅎㅎㅎ저도 있는 거나 읽고 안 사는 시절 보내보고 싶긴 한데 자본주의 노예라 자꾸 뭘 (싸게) 사면 도파민 터지는 거...못 고칠 거 같아요 ㅋㅋㅋㅋ책값이 더 비싸지는 수 밖에 (뭐?!?!) 이 병 고칠 길 읎겠습니다.

- 2024-07-01 2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커피 평을 그렇게 호로로록호로록 남기더니 40개 밖에 안 구매한 게 더 이상합니다!!! 400 팩은 사먹은 줄 알았다!!

반유행열반인 2024-07-02 13:51   좋아요 1 | URL
왕년 커피리뷰 맛집이었는데 자꾸 비싸다, 맛 없다 깠더니 막 이달의 당선작도 안 주고 그러더라고요? ㅋㅋㅋ알라딘이 콜드브루 외주주는 연두커피로 거의 갈아탔는데 또 지난 달에는 뭔 바람인지 알라딘에서 콜드브루도 두 번 사고, 에티오피아 원두도 하나 사 먹고 그런데 리뷰는 왠일인지 안 썼습니다.. 쓰지 않아도 읽지 않아도 어렴풋이 행복한 삶에 근접한가 싶어요. 잘 살고 있습니다. (뜬금없이 생존신고 생존자랑)

- 2024-07-02 22:29   좋아요 1 | URL
ㅎㅎㅎ 안 읽고 행복한 자가 진짜 승리자!!! 살아있어요~!!
 
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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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필립 로스.


 

 대부분의 책을 기대나 정보를 많이 갖지 않고 펼친다. 필립 로스나 보자, 얇은 걸로, 하고 가장 가까이 있는 걸 보기 시작했다. 첫문장과 마주한 내 시공도 새삼 6월, 한반도라 오, 했다.

 

-1950년 6월 25일 소련과 중국 공산주의자들의 지원으로 무장한 북한의 정예 사단들이 38도 선을 넘어 남한으로 들어가면서 한국전쟁의 고통이 시작되었고, 나는 그로부터 두 달 반 정도 뒤에 뉴어크 시내에 있는 작은 대학 로버트 트리트에 입학했다. (13)

 

 책의 6분의 1쯤에 이미 19년 산 마커스는 죽었다고 까놓아서 그래서, 어디서, 왜 죽었는데, 하고 내내 궁금해하며 마커스가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사실 누구나 언젠가는 죽으니까 서사의 끝은 죽음이지 뭐. 4년 전 소설 강좌들을 때 선생님이 소설의 결말에 관해 (자세한 건 기억 안 나지만) 질문했는데 비슷하게 끝에선 다 죽는 거죠, 했던 것 같다.

 

 마커스가 대학에 가자 얘가 어디서 망하거나 죽을까 봐 불안에 사로잡힌 마커스네 아빠는 애를 엄청 닥달한다. 엄동설한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왔더니 애새끼 당구치고 방탕하게 다니는 줄 알고 문 잠가버린 아빠한테 질린 마커스는 집근처 뉴어크의 대학을 때려치우고 미국 내륙 오하이오 주의 와인스버그에 있는 대학에 편입해 기숙사로 들어간다. 1950년대에 미국에 징병제가 있었다는 것을 소설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대학생은 징집 유예가 있었지만, 졸업하고 나면 군대 끌려가서 한반도에 사병으로 투입되서 죽을 확률이 엄청 높아진다. 마커스의 사촌들도 그렇게 1,2차 세계대전에서 둘이나 죽었다. 죽기 싫으니까 열심히 머리 굴려서 최대한 학점 잘받고, 알오티씨 들어가서 장교 입대 자격도 얻고, 졸업할 때 고별사 할 정도로 우수학생 되어가지고 최대한 죽을 자리 아닌 곳으로 입대하자, 그러고나서 로스쿨가서 변호사가 되자, 우리의 마커스 엄청난 J였다. 성실하고 똑똑하고 그렇지만 불합리에 못 견디고 자유로운 영혼. 어찌보면 예민하고 지랄맞은 구석도 있다. 밤늦게 시끄럽게 음악트는 룸메 레코드판 뿌숴 버리고 결국 기숙사 방 옮기고,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애 욕했다고 새로운 룸메한테 욕해서 쳐맞고 또 방 옮기고, 그래서 너 적응에 좀 문제 있는 거 아니니, 하고 부른 학과장 방에 가서 러셀 타령하면서 갑자기 채플 필수 이수 그거 반대한다!!! 이러다가 못 참고 학과장방에 다 토해 버리고… 완전 공감은 아니지만 마커스가 왜 저러는지 자꾸 알 것만 같지…

 

 채플 설교 중 마커스는 어린 시절 뜻모르고 부르던 중국 군가를 속으로 몇 번이고 외친다. 나중에 그 노래 부르며 몰려 내려올 죽음을 그땐 모르고… 그 노래가 지금은 중국 국가로 쓰이고 있다고, 서문에서 필립로스가 소개해 놔서 궁금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중국 국가 ‘의용군진행곡’을 찾아보고 유튜브로 한 번 들어 보기도 했다.

 

-우리 모든 동포의 가슴에 울분이 가득하다. (92)

 

 노래 가사 속에서 이 책의 제목(indignation)이 나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이상했다. 내가 찾아본 중국 국가 가사 해당 부분은 울분, 분노로 해석할만한 단어가 없었다. 함성, 외침, 등으로 번역한 중국어 가사 속 한자 단어는 아무래도 이것이었는데.

吼声

 grand howl, loud call, roar에 가까운 중국어의 포효는 왜 영어 indignation을 거쳐 울분으로 번역되었을까. 책을 끝까지 읽으면 어떤 단서라도 얻게 될까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책을 다 읽고 서문을 다시 보니 2차 대전 중에 번역된 노래라고 하는데, 번역 주체는 나와 있지 않고 일본에 대항하는 중국을 지지하는 동맹국들이 많이 불렀다고만 되어 있다. 영원한 동맹은 없다…

 

 짧은 생애지만 짧은 사랑도 있었고, 뭐 그랬다. “좆까, 씨발” 한 마디로 한반도 끌려가서 며칠 안 되어 전사하는 이야기는 슬프지만… 마커스가 죽은 무렵의 한국전쟁 전투를 찾아보니 아마도 파주 근방의 ‘장단-사천지구 전투’ 초반에 죽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천강이 지도 검색으로도 안나와서 보니까 그냥 임진강 급의 강은 아니고 사천이라는 개천 정도 같고, 장단면도 현재는 대부분 북한 땅에 행정구역명도 바뀌었다. 친구랑 전에 하던 이야기도 생각났다. 난 그냥 아닌 건 아니라고, 들이받고 지적하고 끝까지 그러니까 결국 건드리는 사람이 별로 없게 되었지.(친구도 별로 없음) 그러니까 친구는 그냥 운이 좋아 여태까지 진짜 나쁜 사람 만나지 않아서 무사한 거라고 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전투 중이지도 않고 유신 시대도 아니고 왕정도 프랑스혁명도 아니고 마녀화형식도 없으니. 전근대시대였으면 사지가 남아나지 않았겠다. 혀도 뽑히고 하여간에 뽑힐 건 다 뽑혔을지도…

 

장단 사천강 전투는 해병대에게는 나름 전쟁 막바지의 중요한 전투/전장이었던 것 같다. 검색하면 주로 해병대의 공적 관련 자료가 나옴…


장단 사천 지구, 필립로스와 미국인들이 말하는 학살의 산은 백학산???


 마커스 엄마는 마커스한테 건네듯 나에게도 감정에 대해 말했다. 야이 새끼야 성질 좀 죽이고 살아라...한 마디 할 걸 되게 착하게 다정하게 말했다. 맛탱이 간 남편하고 헤어질 결심 중에 그걸 번복하면서까지 그러니까 너도 그러고 살아, 하고. 그러고서 백살 가까이 산 마커스 엄마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저 성질 많이 죽인 거라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진짜예요...저 많이 착해졌답니다…

 


 제목을 “좆까, 씨발”. 로 뽑으려다가 참았다. 저거야 말로 울분이 아주 농축되어 있는 언어 아니냐. 너무 농축되면 목 맥히니까 거꾸로 놓고 식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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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가 나를 사로잡았다. 하나는 절묘한 가르마였다. 나는 그때까지 어떤 사람의 가르마 앞에서 그렇게 마음이 허물어진 적이 없었다. 또 하나는 그에의 왼쪽 다리였다. 그 다리는 그녀의 오른쪽 다리 위에 걸쳐진 채 박자에 맞추어 아래위로 흔들리고 있었다. 당시 유행대로 치마가 종아리 중간쯤까지 내려와 있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앉은 곳에서는 탁자 밑으로 다리의 쉼 없는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그애는 그 자리에 그렇게 두 시간은 앉아 있었을 것이다. 쉬지도 않고 메모를 했다. 그 시간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균등하게 양쪽으로 머리를 가른 가르마와 쉬지 않고 움직이는 다리를 본 것뿐이었다. 그렇게 다리를 움직이는 것이 여자아이에게는 어떤 느낌일지 자꾸 궁금했다. (56)

 

-삶에서처럼 나는 오직 있는 것만 알 뿐이고, 죽음에서는 있는 것이 있었던 것으로 바뀔 뿐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만 삶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사라진 뒤에도 계속 그 삶에 붙어 있게 된다. 아니면, 역시 이것도, 어쩌면 나만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나 혼자만. 누가 내게 말해줄 수 있었을까? 사실 죽음이 끝없는 무가 아니라 영원히 자기 자신에 관해 숙고하는 기억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았다 한들 죽음이 덜 무서웠을까? 어쩌면 이렇게 영원히 기억하는 과정은 그저 망각으로 가는 대기실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비신자로서 나는 내세가 시계, 몸, 뇌, 영혼, 신이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모양이나 형태, 내세는 기억이 없는 곳이 아니었다. 아니, 기억이 전부인 곳이었다. (64-65, 내세가 로스 할배의 상상대로라면, 나는 이미 내세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주 많은 시간을 자기 자신에 관해 숙고하는 기억에 파묻혀 살고 있(었)으니까… 종교인의 관점에선 야, 마커스, 니가 신을 부정해서 임마 니는 연옥에, 림보에 간 거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녹색 사각형 안뜰을 가로 세로로 교차하는 돌길을 따라 걸어다니는 다른 학생들을 부러운 눈으로 보았다. 왜 나는 학생들의 모든 요구에 답해주는 작은 대학의 광채 속에서 저들이 누리는 기쁨을 함께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기는커녕 왜 모든 사람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일까? 갈등은 집에서 아버지와 시작되었다.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끈질기게 쫓아왔다. 처음에는 플러서, 다음에는 엘윈, 다음에는 코드웰. 누구의 잘못일까? 그들의 잘못일까, 아니면 나의 잘못일까? 전에는 문제라고는 한 번도 일으켜 본 적이 없는 내가 어쩌다 이렇게 빠르게 문제투성이가 되어버렸을까? 그러면서 왜 불과 일 년 전에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한 여자애한테 알랑거리는 편지를 써서 더 큰 문제를 자초하고 있을까? (123, 마커스야...갈등의 목록도 역사도 생각보다 짧구나...더 길고 장구한 트러블메이커로서 드는 생각은…네가 경험이 적어서 그런 것 같다… 목록이 길어지기 전에 죽어서 아쉽+부럽구나...)

 

-너는 다른 모든 메스너와 똑같은 메스너야. 네 아버지도 한때 분별력 있는 사람이었어.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네 아버지도 다른 사람들처럼 미쳐버렸어. 메스너는 단지 정육점을 하는 사람들 집안이 아니야.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집안이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집안이고, 발을 구르고 벽에 머리를 찧는 사람들 집안이야. 이제 갑자기 네 아버지도 다른 메스너들처럼 나빠졌어. 너는 그러지 마. 너는 네 감정보다 큰 사람이 되어야 해. 너한테 이런 요구를 하는 건 내가 아니야. 인생이 요구하는 거야. 안 그러면 너는 네 감정에 쓸려가버릴 거야. 바다로 쓸려나가 두 번 다시 눈에 띄지 않을 거야. 감정은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어. 감정은 가장 무시무시한 속임수를 쓸 수 있거든. (184-185, 와… 다시 보니까 엄마의 혜안… 그치만 대부분의 엄마들이 하는 충고와 애원이 그렇듯 이것도 부질없지...)

 

-“팬티! 팬티! 팬티!” 사춘기가 시작할 때와 다를 바 없이 대학생들에게도 여전히 선동적인 이 말이 밑에서 우렁차게 되풀이하며 외쳐대는 환호의 전부였다. 여학생들의 방에서는 술에 취한 남자아이들 수십 명, 옷과 손과 상고머리와 얼굴에 블루블랙 잉크와 선홍색 피가 묻고 몸에서 맥주와 녹은 눈이 뚝뚝 떨어지는 아이들 수십 명이 닐 홀의 처마 밑에 있는 내 작은 방에서 영감을 받은 플러서가 혼자 했던 일을 집단적으로 재연했다. 그들 모두는 아니었다. 결코 그들 모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들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얼간이들만, 다 합쳐서 셋, 1학년 두명과 2학년 한 명-이들 모두 다음 날 가장 먼저 퇴학을 당하게 되지만-만 실제로 훔친 팬티에 대고 자위를 했다. 마치 손가락을 튀기듯 빠르게 자위를 한 다음, 각자 더럽혀진 팬티, 사정한 액체로 젖고 냄새가 나는 팬티를 아래로 던졌고, 밑에서는 뺨이 새빨개진 채 눈을 모자처럼 쓰고 용처럼 입김을 뿜으며 환호하는 하급생 무리가 두 팔을 들어올리고 그들을 선동했다. (214-215, 아이 참 드러운 놈들...의 가짜 광기. 집단 눈싸움에서 흥분한 무리가 떼지어 저지르는 난동 같은 걸 난 가짜 광기라 부른다. 진짜 광기를 보고 싶다면 독고다이로 모두가 차분하고 조용할 때 마커스의 방에다가 정액을 여기저기 싸지른 플러서의 앞부분 이야기로…)

 

-만일 그가 채플에 마흔 번 나가 마흔 번 출석표를 제출만 했다면 그는 지금 살아서 변호사 일에서 막 은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어린아이처럼 말도 안 되는 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알랑거리는 찬송가를 들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신성한 교회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기도, 그 눈을 감고 하는 기도-썩어빠진 원시적인 미신! 하늘에 계신 우리의 어리석음! 종교의 치욕, 그 모든 미성숙과 무지와 수치! 아무것도 아닌 것을 둘러싼 광적인 경건함! 코드웰이 그에게 그래야만 한다고 했을 때, 코드웰이 그를 다시 사무실로 불러 마티 지글러에게 돈을 주고 대신 채플에 가게 한 것에 대해 렌츠 학장에게 반성문을 제출하고, 그런 뒤에 훈련의 방식이자 속죄의 방법으로 마흔 번이 아니라 총 여든 번 채플에 참석해야만, 다시 말해서 대학에 다니는 동안 거의 매주 수요일마다 채플에 가야만 퇴학을 안 시키겠다고 했을 때, 마커스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다름 아닌 메스너답게, 다름 아닌 버트런드 러셀의 제자답게, 주먹으로 학생과장의 책상을 내리치면서 두번째로 이렇게 내뱉는 것 외에 달리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좆까, 씨발.”

 그래, 멋지고 오래되고 도전적인 미국의 ”좆까, 씨발”. 그것으로 정육점집 아들은 끝이었다. 그는 스무 살 생일을 석 달 남기고 죽었다. 마커스 매스너(1932-1952)는 그의 대학 동기 가운데 불운하게도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유일한 학생이었다. (238, 그래서 내가 할 일은 채플 필수 이수 대학 목록을 찾아두고 거기는 원서를 쓰지 않는 것...누가 받아준대니...성적부터 만들고 생각해라...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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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이문구 지음 / 아로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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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9 이문구.

작년에 아프고 나서 올해 수능은 다 봤다 하고 책이나 보기 시작해서 뚝딱 반 년동안 백 권 보고 연말에 다시 공부 시작했다. 20년 전 쯤 읽은 ‘관촌수필’도 다시 보았다. 올해 수능특강 문학편 마지막에 ‘장곡리 고욤나무’가 실렸길래 야, 올 수능 전에 나 이거 실린 소설집 읽고 간다 했다. 그러다가 다른 문제집에 ‘우리동네 리씨’ 실린 걸 읽었는게 리낙천씨 캐릭터가 맘에 들어서 이 소설이 더 궁금했다. 그래도 일단 연계 교재 실린 작품이 우선이지? 하며 나무 시리즈를 먼저 보기로 했다.
엄마가 2007년 8월 13일 신림동 광장서적에서 산 책이라고 한다. 맨 뒷표지를 들추면 볼펜으로 그렇게 써 놨다. 광장서적은 이제 없어졌고 나는 신림동을 떠나 떠나 봤자 그짝이 그짝이라 옆동네 봉천동 붙박이가 되어서 벌써 십 년 가까이 살았다. 이문구 아저씨는 마지막 소설에서 까그매(까마귀) 어디 갔냐고 자꾸 묻는데, 거기서도 들리신다면 말해주고 싶다. 까마귀요 관악산 언저리랑 그 근방 언덕배기들 국사봉 장군봉 상도근린공원...하여간에 관악구 근처로 다 와서 잘 살고 있어요. 저 맨날 봐요. 맨날 들어요. 까옥까옥.

전봇대에서 한참 뭔가를 노려보던 그 까마귀, 마침내 해장국집 앞 벌어져 있던 종량제 봉투에 발을 뻗어 잽싸게 뭘 하나 나꿔채서 다시 전봇대로 올라갔다. 겨우 가져간게 사리면 빈봉다리, 꽝이었다. 라면 봉지 허무하게 떨구던 그 장면을 직접 보며 나는 또다른 국어 기출 문제에서 읽은 오세영의 시 속 까마귀를 생각했다. 그리고 코웃음쳤지. 그렇게 멋있는 새일리 없잖아.


전신이 검은 까마귀,
까마귀는 까치와 다르다.
마른 가지 끝에 높이 앉아
먼 설원을 굽어보는 저
형형한 눈,
고독한 이마 그리고 날카로운 부리.
얼어붙은 지상에는
그 어디에도 낱알 한 톨 보이지 않지만
그대 차라리 눈발을 뒤지다 굶어 죽을지언정
결코 까치처럼
인가의 안마당을 넘보진 않는다.
검을 테면
철저하게 검어라. 단 한 개의 깃털도
남기지 말고......
겨울 되자 온 세상 수북이 눈을 내려
저마다 하얗게 하얗게 분장하지만
나는
빈 가지 끝에 홀로 앉아
말없이
먼 지평선을 응시하는 한 마리
검은 까마귀가 되리라.
-오세영, ‘자화상2’ 전문

넘보지 않기는요 ㅋㅋㅋ요즘 까마귀는 쓰레기 봉투도 뒤져요…
까치 떼랑 까마귀가 싸우는 걸 봤다. 독고다이 까마귀가 머릿수로 떼까치들한테 밀려서 결국 다른 곳으로 날아갔고, 이때다 싶은 까치새끼들은 득달같이 도망간 걸 쫓아가서 더 멀리 쫓고, 쫓았다. 그걸 보면 까치나 까마귀나지 뭐. 뭐가 달라.

까마귀처럼 미움 받다 못해 무심해지고 어느새 누구도 모르게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디로 갔을까, 내내 궁금해하며 이문구 아저씨는 밤잠을 설치다가 나름대로 이렇게 저렇게 적어 놓았다. 우리 동네 시리즈도 그런 것 같고, 김명인 시에서 책 제목을 빌린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도 그랬다. 나는 차가운 도시 여자가 다 되었는데, 이제 대부분 죽고 있거나 죽어 없어졌을 농사 짓던 아저씨들 서사가 이렇게 흥미로워도 되는 거냐 싶었다.
1980-90년대 언저리의 몰락하다 못해 다 망한 갯가 농촌 이야기를 보면서 아저씨나 할배들 너무 미워하면 안 되겠네 사실 그렇게 미워한 적도 무서워 한 적도 없지, 그냥 놀려먹고 젊은애들 미래 당겨다 다 말아먹은 탓하고 그러기만 했지, 그런데 역시 자세히 봐도 예쁘진 않지만 가엾긴 하지, 그러고 재미나게 읽었다.

-장평리 찔레나무
시작부터 아저씨는 아니었다. 전화해서 자꾸만 니네 딸 수능 몇 점이나 받았냐고 부아 돋우는 시동생 새끼 때문에 골머리 앓는 부녀회장님이 첫번째 주인공이었다. 스스로 반갑잖은 이 왔슈, 하면서 기껏 키운 실한 고추밭 다 털어가고, 까치 고기나 좀 잡아다 얼려 놓으라고 지랄 떠는 시동생놈 꼬라지 보면서 속터지는 두 내외 보는데 와 진짜 왜 저도 같이 열받게 이렇게 잘 써 두셨나요… 세상에 가시 찌르듯 성가시고 얄미운 인간은 왜 이리 많을까요. 어디선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인간일까요.

-장석리 화살나무
관촌수필의 민구 아버지는 좌익에 연루되었다 젊어서 돌아가시고 집안도 고초를 겪고 기운다. 이념 때문에 인간 취급 못 받고 목숨마저 위태롭던 이가 해안선을 질러 섬으로 가서 살아남도록 돕는 이들이 나오고, 마지막은 그렇게 살아 늙은 홍옹이 단테가 한 말은 아니라지만 하여간에 중립 타령한 애들 제일 조심하라고 제일 먼저 가까이서 뒤통수 칠 놈들이라고 이야기 전해듣는/전해 주는 이에게 말해주는 액자식 구성이 좋았다. 약간 원스어폰어타임인 헐리우드 처럼 만약에, 우리 아버지도 그렇게 많은 도움으로 살아 남아 여기 할아버지처럼 늙었더라면...하고 쓴 기분이어서 그런 만약에, 를 읽을 때는 늘 짠하다.

-장천리 소태나무
농촌 야외 가서 카섹스 좀 하지 맙시다...한 마디 하고 싶은 걸 가지고 소설 한 편 잘 써 놨다. 소태나무 본 적도 먹은 적도 없지만 도로 뚫리고 도시에서 교외로 몰려온 수많은 사람들은 농촌 사람들에게 안 본 눈 사고 싶은 일도 많고 많게 씁쓸하게 만들었다는 걸 이렇게 박제해 놨다.
신규 발령 받은 학교에 매일 새벽부터 몸빼바지 입고 집게랑 봉투 들고 쓰레기 줍고 다니던 독특한 선생님이 계셨다. 그 분이 교감 선생님한테 막 속상한 듯 말하던 게 생각났다. 교감 선생님! 내가 학교 주차장에서 뭘 주웠는지 아세요? 콘돔! 한강변이라 그런가 외부차들 막 들어와서 별짓을 다 하고 가… 덕분에 젊어서 알았다. 사람들은 참 때와 장소 가리지 않는구만… 학교라고 하면 더 신날 수도 있겠네… 교회나 절, 고궁이랑 비슷한 배덕감… 여기까지...

-장이리 개암나무
예전에 ‘나무의 모험’이란 책 읽었을 때 야무진 이웃에게 넌 개암나무! 난 산사나무! 막 이랬었는데 개암나무 나오는 이 이야기가 참 좋았다. 날이 가무니까 비라도 오라고 기우제를 지내겠다는 마을 사람들, 그런데 이 지역 연고 없는 서울 사람이 묘를 여기다 써서 그렇다며 무덤을 파버리겠다고 작당을 한다. 거기다 대고 혼자서 끝까지 그게 말이 되냐고, 에미넴 싸대기 치게 8마일 찍어가며 충청도 사투리로 랩배틀 뜨는 인물이 나오는게 재미났다. 송곳 같은 사람이 그래도 동네마다 하나는 있구나, 그래서 우리 존재 다 망하진 않고 이럭저럭 버티고 있겠지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기우제 비과학 빼액 하던 아저씨도 자기네 꾸찌뽕 나무에다 까치가 집 짓는 거 보고 옛 고전에서 본 선비님들 집 앞 나무에 까치집 짓고 나서 다 과거 급제 했대...우리 고3 아이도 제발… 내년엔 지금 고2인 참한 조카 아이도 제발… 이러는 거 더 재미있었다. 인간은 참 모순의 존재라 재미있지. 잘 여문 개암 한 움큼, 열 세톨 주워다가 여섯 톨은 아이들 먹이고 일곱 톨은 묻어서 단 하나 난 나무를 키우는 아저씨,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의 무덤이라도 그거 파버리는 마을 사람들 말리는 거랑 아주 일관되게 올곧고 다정해서 이 책에서 제일 마음 가는 캐릭터였다.

-장동리 싸리나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아저씨가 밤새 잠 못들고 달빛 훤하게 비친 곳에 풍란 그림자 보고 수묵화로 착각하고, 잡앞 저수지에 머물다 가는 새들을 떠올리고. 분위기나 묘사가 꽤나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마지막에 고깃배 착각한 이야기는 뭔 금오신화 따라하듯 기이한 분위기도 있고… 이문구는 매월당 김시습 가지고 소설 써 놓은 게 있기도 하니까 이 소설 전개에 그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안 읽고 거의 십 년 전에 사 쌓고 그런 소설이 (집에) 있다는 걸 알기만 하고...여태 안 읽은 이문구 소설이 아직 남아서 행복…

-장척리 으름나무
나는 시골 (그래도 읍내) 살았어서 으름 먹어봤다. 삼촌들이 야생 바나나야, 하고 줬는데 씨꺼먼 씨만 겁나게 많고 미끄덩거리고 영 거슬리던 생각만… 자기 장인더러 으름덩굴 같다고, 우직하게 농촌 지키는 종구에게는 미련하다고 퉁박 주는 농촌운동 한다는 은산이 새끼 너무 얄밉더라…

-장곡리 고욤나무
나는 역시나 시골 출신이라 고욤열매도 먹어봤다. 할머니가 고염이라고 알려줬는데. 할머니네는 감나무는 없고 접붙일 때 놓쳐 작고 시꺼먼 열매 다닥다닥 열리는 고염나무만 집 앞에 하나 있었다. 할머니가 그걸 가지째 말려 곶감이다 하고 줬는데 먹잘 것도 없고 씨만 크고 살은 적고 조금 달긴 한데 덜 마른건 뜹뜨래 하고 먹기 싫었던 것 같다. 고욤 하면 그렇게 말라 비틀어져 일만 하다 할아버지한테 맞아 죽은 할머니만 생각난다. 이 이야기에서도 기출이 아저씨가 농지법 바뀌고 망했네 시발 하고 거의 우울증처럼 땅도 못팔고 땅팔아 돈달라고 지랄거리는 새끼들 때문에 속터지다 고욤나무에 송아지 목줄 매달고 죽은 일을 사촌 봉출이 아저씨가 명탐정 코난처럼 회상하고 관찰하면서 세상 재미없다더니 죽었네, 하는 주변 사람들한테 아닌데 이눔들아...속 생각 하는 구성으로 그려놨다. 과연 나놈이 이 책을 읽게 만든 기출이 아저씨 이야기는...수능 기출로 남을 것인가 미출제될 것인가 ㅋㅋㅋㅋ

-더더대를 찾아서
까마귀에서, 언년이에서, 더더대로 이어지는, 이문구의 문학관이 압축된 듯 읽히는 이야기였다. 나무타령하다 마지막은 갑자기 까마귀 타령으로 마무리해서 밀란쿤데라 전집 나온 뒤 갑자기 ‘무의미의 축제’ 하나 내서 전집에도 안 싣고 매롱하던 할배 생각도 좀 났지만, 잊었던 것들, 사라진 것들을 내내 궁금해하는 화자는 그것들을 그리워하는 것이겠지 싶었다.

이 소설집은 2000년에 동인문학상을 받았는데, 마지막 수상 소감도 재미있었다. 조선일보라 뭐라해도 이 상은 있을 만하고, 나도 주니까 잘 받고, 김동인 친일이라고 그 상을 받냐고 뭐라하는 놈한테는 우리 조상도 창씨개명도 했던 집안인데 내가 독립운동가도 아니고 뭐 어쩌라고 이러고 눙치는 거도 패기쩔고 뻔뻔한게 어디서 쳐 맞고 다니진 않았겠네...싶었다. 근데 술이랑 담배는 좀 줄이시지 벌써 이십 년 전에 돌아가시다니 좀 빨리 가셨네요 이문구 아저씨...그래도 쓸만큼 쓰고 가서 저는 남겨주신 거 재밌게 읽습니다 다음엔 우리동네 읽겠습니다… 6모 국어 1등급 맞고, 매번 4-5등급 언저리던 수학도(현실적으로 낮춰 잡은) 목표치였던 3등급 찍맞 컷으로 겨우 달성해놓고 그래도 신난다고 상이라고 오랜만에 읽다만 소설책도 다 읽고 독후감도 써갈기고 내일부턴 또다시 지하감옥 스터디카페로..읽던 책 한 권 다 해치워 속 시원한 주말 밤입니다… 저는 까마귀/사마귀도 제 친구 같아 좋지만 요즘엔 물까치가 더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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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저냥 저랬던겨. 달빛에 번들거리는 저 물빛마냥 살아온겨. 못나게. 지지리도 못나게. (177)

-까마귀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다만 여느 새처럼 예쁘지가 않다고 하여 미운 털이 박힌 새로 사람들에게 돌림을 받아온 것이었다. 그렇지만 검은 깃털이 왜 미운 털이란 말인가. 또 짖는 소리가 좋지 않다고 하여 사람들의 눈 밖에 난 셈이라지만, 까마귀 소리가 왜 저승에 가자는 소리나 곡을 하는 소리와 비슷하단 말인가. 까마귀를 훌닦는 험구는 덧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터무니없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마을에 살면서도 서로가 뜨악하여 탐탁지 않게 보다 보니 조석으로 마주쳐도 으레 낯이 설 수 밖에 없었고, 낯이 설다 보니 오해만 되풀이되게 마련이었을 거였다. 그리하여 까치는 사람들에게 국조로 추대되어 한창 대접을 받아가며 사는 동안 까마귀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나은 새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새로 소외되어 외로움과 서러움을 도맡아서 살다가, 언젠가부터는 원래 없었던 새처럼 숫제 구경도 하기가 어렵도록 죄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29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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