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집 2 펭귄클래식 26
이디스 워튼 지음, 최인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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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1 이디스 워튼.

이디스 워튼이 그린 인물들은 마냥 선량하거나 사악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유혹에 빠지기도 하고, 충동적이기도 하다가, 갑자기 절제심을 발휘하고, 사랑이 솟다가 환멸을 느끼고, 친했던 사람에게 등을 돌리고 험담을 하고, 상대에게 증오가 솟다가도 한없이 돌보고 도우려는 마음을 가졌다.
많은 이야기들이 사람을 납짝하게 누르고, 우리 또한 그렇게 쟤는 착한 놈, 쟤는 나쁜 놈, 너는 우리 편, 저새끼는 개호로잡놈의 우리의 적, 세상을 사람들을 단순하게 해석하는 편이 덜 복잡하고 편안하긴 하겠지. 그렇지만 그게 세상을 이해하는 제대로 된 방식은 아니다.
새삼 그런 사실을 일깨워주며 사람의 변덕스럽고 모순되고 몇 마디 말로 후려칠 수 없는 면모를 담아 펼쳐주는 게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약 먹고 죽는 건 뻔해서 어떤 창작자들은 모래밭에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밀려드는 파도에 익사하는 것부터 나무에 매달려 서서히 사라지는 것, 굴 밑에 산 채로 묻혀 죽는 때까지 사는 것 등등 다양한 최후를 그려보지만 어쨌거나 모든 이야기 속 사람들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예쁜 연꽃도 보고, 예쁜 연꽃이 되어 보고, 진흙구정물 같은 이야기도 읽어 보고, 밤에는 잠을 잘 자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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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가씨는 평소에는 부지런히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노예처럼 죽도록 노력하지만, 정작 추수를 거두어들여야 할 때가 되면 늦잠을 자버리거나 소풍을 떠나 버리기 일쑤라니까요.

-“방금 나더러 진실을 말하라고 했지? 글쎄, 진실은 바로 이런 거야. 어떤 아가씨든 일단 한 번 소문이 나면 그걸로 끝장이라는 거지. 진실을 해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꼴만 우스워진다니까. 오, 우리 착한 거티. 근데 혹시 담배 한 대 가진 거 있니?”

-릴리는 짜증스러운 손짓으로 이 질문에 응답했다.
“거티, 난 사람들이 어떻게 훨씬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항상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어떻게 돈을 덜 쓸 수 있는지 결코 모르겠거든!”

-릴리가 아는 사람들은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모두 제각기 고립된 채 빙글빙글 맴을 돌며 떠도는 원소들과 같았다. 그러므로 릴리는 어떤 지속력을 지닌 삶의 모습을 그날 저녁 네티 스트루더의 부엌에서 난생처음 본 것이었다.
그 가엾은 노동자 처녀는 산산이 부서져 버린 삶의 파편들을 어떻게든 다시 주워 모을 힘을 찾았고, 그 파편들로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어냈다. 릴리가 보기에는 그런 그녀야말로 존재의 핵심적인 진실에 도달한 사람 같았다. 물론 그것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삶이었다. 냉혹한 가난의 가장자리에 서서, 언제든 병이 들거나 불행이 닥쳐올 수 있는 아슬아슬한 처지였다. 하지만 그것은 벼랑 끝에 매달린 새의 둥지처럼 연약하지만 끈질긴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 둥지는 겨우 지푸라기와 잎사귀를 엮어놓은 것에 불과했지만, 살아 있는 것들이 믿고 몸을 맡길 수 있을 만큼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어서 검은 심연 위에 무사히 매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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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집 1 펭귄클래식 25
이디스 워튼 지음, 최인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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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0 이디스 워튼.
 

 
 연초까지 디킨스의 ‘황폐한 집’을 보았다. 이번에 처음 이디스 워튼의 책, 아직 다는 안 읽었지만 ‘기쁨의 집’ 1권을 보고 나니, 역설을 노리지 않는다면 두 소설의 제목이 바뀌어도 이상할 게 없다 싶었다.
 
 ‘보바리 부인’을 한 번 읽고는 또 봐야지, 하고는 아직 못 읽고 있다. 이런 생각은 든다. 그렇게까지, 그 여자는 독약 먹고 죽을 만큼 잘못한걸까? 누구나 어리석은 실수를 하는데 어떤 선택은 그 사람을 끝으로 몰고 가 약을 삼키든 기차 바퀴 밑에 깔리든 돈에 팔리든 인생을 절단낸다. 릴리 몰리는 꼬라지를 보니 보바리 부인이 자주 생각났다. 아직 2권 안 봤지만 릴리는 결국 죽겠지? 자아실현이 남들 보기에 괜찮은 혼인, 부자 남자 만나 잘 사는 것, 그 이상 선택지가 많지 않던 시절인 걸 감안하면 릴리가 사치스럽고, 허영심 넘치고, 충동적이고, 실제 도박을 좋아하면서 삶 자체도 도박처럼 굴리고, 그렇대도 짠한 마음이 들기는 한다. 이 모든 게 그녀가 예뻐서, 그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자기 위신을 세우는 도구로 삼으려는 남자들이 많아서 라는 건 좀 판에 박힌 듯도 싶다. 난 안 예쁘니까, 조연에 만족하고, 사랑도 체념하고, 남에게 헌신하고 각종 자선사업과 사회사업에 헌신하는 패리시를 대조적으로 제시하는 게 더 그런 느낌이 들게 한다. 뭘 말하고 싶은 거야. 장원영처럼 예쁘면 오히려 삶이 고달파질 수도 있다는 거냐. 한 사람 사랑만 얻을 정도로 적당히 생겨먹고 거기에 감지덕지하는 게 미덕이라는 것이냐. 좀 예쁘다고 이거저거 재다가 나이 먹고 절박해지면 삐끗하는 게 여자 팔자라는 것이냐. 도박이랑 과소비는 나빠요! 하는 메시지는 확실한 것 같다.
 
 디킨스 소설에서 선남선녀 만나서 해피엔딩-하던 것도 이 이야기 읽다보면 구시대적 유물 같은 해결책이네 싶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엔 디킨스 소설과 달리 괜찮은 여자도 괜찮은 남자도 하나도 안 나오는 것 같다. 부를 주체 못해 온갖 돈지랄 떨고 혼인도 돈 써재끼고 싶은 여자와 여자가 돈 써재끼는 걸 감당할 만큼 나 잘났다고 과시하고 싶은 남자들이 한아름 나온다. 셀던이 책 좀 읽고 자유 타령 하면서 자기가 릴리를 구하겠다고 잠시 주접을 떨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뻑 하면 튀어버리고 그러는 모습이 돈으로 릴리를 지배하려는 놈들이랑 그리 달라보이지도 않는다. 그 시절 안 살아봤지만 이디스 워튼이 그런 물질만능주의의 시대 미국의 어떤 시절을 잘 잡아서 보여준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데. 지금은 또 뭐 다른가? 여전히 돈은 좋은 것… 누군가 에르메스에서 뭔 편의점 과자 사먹듯 명품 잡화와 의복을 사 놓고 자기 부인 사준 거라고, 커플템이라고 인터넷에 잔뜩 과시해 놓은 게시물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굽신대는 사람들에겐 댓글 달아주고 뭐 하는 사람인데? 하는 물음이나 빈정거림에는 ^^* 하는 걸 보고 뭐지 싶었던 때도 생각났다. 지금은 또 뭐 다른가?
 
 어깨를 다쳐서 운동을 열흘 정도 못했고, 제대로 못 잔 건지 종일 피곤하고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휴가가 끝나가는 것도 한몫 하겠지… 거기에다 하루 종일 사치부리다 나락가는 릴리 바트양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재미있어서 계속 읽기는 하는데 몸도 영 찌뿌드드하고 여기저기 아픈 것 같고 마음도 아픈 것 같았다. 실내자전거 조금 타고 아주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나 잃은 거 없어, 나 완전 만족해, 하던 게 엊그제인데 순식간에 곤두박질 치는 기분을 보니까 사람의 마음이란 어렵고도 어렵구나, 내 마음 한 가지마저 어렵구나 싶다. 일찍 푹 자고 곧 나아지면 다행이고 아니면 줄였던 약을 다시 주섬주섬… 얼른 어깨나 나아서 운동이나 할 수 있으면 좀 나아질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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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여성이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을까? 위대한 예술의 장인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언제나 여자는 아름답게 보여야 하고 찬미와 수집과 돌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그럼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기고 마는 수동적인 운명을 타고난 존재인가?
 
-거티는 착하게 살길 원하고 저는 행복하고 살고 싶어 하죠. 거티는 자유로운 몸이지만 저는 아니에요.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저 역시 거티의 좁은 집에서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그게 바로 다른 점이에요. 남자에게는 선택인 것(초라하고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결혼)이 여자에게는 의무가 되죠.”
 
-그녀는 계속 성공을 쫓아야 했고 더 많은 지루함을 견뎌야 했고 날마다 새롭게 순종적이고 유순한 자세를 갖춰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노력이, 어쩌면 그라이스 씨가 언젠가는 그녀에게 평생토록 지루함을 안겨 주는 영광을 베풀어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 때문인 것이다.
이거야말로 너무 끔찍한 운명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녀에게 무슨 선택의 여지가 있는가?
 
-“어디 아파요?”
부인이 다시 물었다.
“아프냐고? 아니, 난 망했어.”
바트 씨가 대답했다.
릴리는 깜짝 놀라 헉 소리를 냈고 바트 부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망했다고요?”
부인은 꽥 소리를 지르려다 곧 이성을 되찾고 침착한 얼굴로 릴리를 돌아보았다.
“가서 부엌문을 닫아라.”
 
-딱 한 가지 부인에게 남은 위안거리는 릴리의 미모를 살피는 것이었다. 부인은 지대한 열정을 가지고, 마치 자신이 천천히 공들여 만들어온 복수의 무기라도 되는 양 릴리의 미모를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그것은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자산이었고, 그들의 삶을 다시 재건할 수 있는 토대였다. 바트 부인은 그 미모가 원래 자신의 소유물이고 릴리는 단지 보관자에 불과한 것처럼 질투 어린 눈길로 딸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런 미모를 지녔을 때 반드시 가져야 할 책임감을 딸에게 심어주기 위해서 애썼다. 부인은 다른 미녀들의 일생을 상상 속에서 그려보며, 딸에게 그런 미모를 통해서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 알려 주었다. 또한 미모를 타고났음에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한 여자들에 대한 무서운 경고를 길게 늘어놓았다. 바트 부인의 생각에, 자신이 예로 든 여자들의 한탄스러운 결말은 오직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불운은 그녀의 잘못이라기보다 달려드는 운명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릴리는 지금까지 그라이스 씨에게 아메리카나가 했던 역할을 자신이 대신할 작정이었다. 그가 아낌없이 돈을 쓸 만큼 충분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단 하나의 소유물이 되려는 것이다. 릴리는 이런 식의 관대함이 사실은 천박함의 한 가지 형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허영심과 자기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해서, 그녀의 소망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곧 남편에게는 가장 세련된 방식의 자기 탐닉으로 여겨지게끔 만들 것이라고 굳게 결심했다.
 
-결국 삼십 분 정도 헛되이 기다린 끝에, 릴리는 의자에서 일어나서 주변을 이리저리 거닐었다. 갑작스럽게 피로가 밀려왔다. 환하게 타오르던 불꽃이 꺼져 버리고 인생의 쓴맛만이 입안에 남았다. 릴리는 자신이 여태껏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왜 이토록 자신의 마음이 어두워지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막연한 실망감이, 그녀를 둘러싼 외로움보다 더 깊은 소외감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제가 생각하는 성공이란 개인의 자유입니다.”
셀던이 대답했다.
“자유라고요? 모든 걱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말씀인가요?”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 말입니다. 돈으로부터, 가난으로부터, 그리고 나태함이나 불안으로부터, 모든 물질적인 우연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죠. 일종의 영혼의 공화국을 이루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성공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에겐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셀던은 몸을 일으켜 앉더니 릴리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하지만 제게 뭔가가 있다면 그건 모두 당신 것입니다.”
릴리는 방금 전보다 더 낯선 태도로 이 갑작스러운 선언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 짧은 순간 셀던은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꿈꾸는 방은 사치스럽고 복잡하기만 한 다른 친구들의 방을 완전히 능가할 정도로 완벽한 예술적 감각을 보여 줌으로써 그녀의 우월감을 충족시켜 줄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색깔 하나하나와 선 하나하나까지 조화를 이루어 모든 게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고 그녀에게 편안한 휴식을 선사해 줘야 했다. 이번에도 그녀의 우울한 마음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추함에 대한 예민한 반응으로 표출되었다. 그리하여 보기 흉한 가구들 하나하나가 오늘따라 유난히 툭 튀어나온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바트 양은 번번이 잘못된 길로 빗나가곤 했다. 그녀를 비난하는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그녀 자신만큼 그 사실을 뼈아프게 절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잘못된 길에서 나와서 또 다른 잘못된 길로 빠져버리는 치명적인 감각을 갖고 있었다.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을 때까지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알아채지도 못했다.
 
-누군가 옆에 있는 것이 불편할 정도로 마음이 상한 사람에게 방이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자신을 맞아줄 수 있는 장소다. 그러므로 이런 시간에 그런 방을 갖지 못한 사람은 어디를 가든 추방자일 수밖에 없었다.
 
-근래에 셀던이 더욱 아낌없이 베푸는 친절의 본질에 대해서 패리시 양은 더 이상 정확히 규명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비의 날개에 붙은 고운 가루를 털어서 그 아름다운 색깔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하지 않듯이. 경이로운 것을 움켜쥐려고 하다가는 괜히 그 꽃만 상하게 하는 법이다. 그러다가 어쩌면 시들고 뻣뻣해진 꽃봉오리만 손안에 남게 될 수도 있었다. 차라리 손에 잡히지 않아 더욱 감질나는 아름다움을 그냥 감상하는 편이 더 나았다. 그러므로 패리시 양은 숨을 죽인 채 눈부시게 빛나는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릴리는 난생처음 멋진 외모를 유지하는 것보다 여자의 명예를 유지하는 데 훨씬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지어 도덕성을 유지하는 데조차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자,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세상은 훨씬 더 험난한 곳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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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당선작 적립금으로 산 책은 이것입니다. 시와 새 했더니 시집과 새(조)책을 갖게 됐다. 야생 조류 도감도 가지고 싶은데 12만원...후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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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123q34 2025-09-21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시나몬왕관앵무 미쳤다.. 미모 최고네요 볼에 시나몬 연지곤지 뭐야..

반유행열반인 2025-09-21 11:24   좋아요 1 | URL
왕관 앵무 사실 전 잘 구분 못하는데 호주에선가 쓰레기통 뚜껑 따고 비둘기처럼 다 뒤지고 다닌다는 걸 어디서 들었네요...미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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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토콘드리아 - 박테리아에서 인간으로, 진화의 숨은 지배자 오파비니아 7
닉 레인 지음, 김정은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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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9 닉 레인.

이기타-미토콘드리아.
https://youtu.be/IXCTUkSROcs

닉 레인 아저씨 책 ‘생명의 도약’을 3년 전에 읽고 아 뭔말인지 모르지만 재미있다, 과학 공부도 해 보면 재미있겠지? 하고 이과 전향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적어도 고등 과학은 대입을 앞둔 경쟁 속에 선별과 낙오를 가르는 체가 되겠답시고 과학의 재미는 몽땅 휘발시키고 막 이상한 산수랑 퍼즐이랑 순발력 테스트를 시킨다. 그것도 안 해 봤으면 몰랐겠지만.
그래서 고교 수준 생명과학, 지구과학 공부 조금 한 게 오랫동안 읽어야지 벼르기만 하던 ‘미토콘드리아’를 읽는데 도움이 되었냐 하면, 잘 모르겠다. 분자 수준의 생명현상과 고세균과 세균의 공생과 거기서 등장한 미토콘드리아와 진핵생물 같은 걸, 거기에서 뻗어나오는 진화와 세포소기관/세포/개체 간의 줄다리기와, 왜 누군 오래 살고 누군 빨리 죽는데? 대사율이랑 수명은 뭔 연관인데? 미토콘드리아는 유전자처럼 부모 양쪽 아니라 (거의 대부분) 모계 한부모 유전이라고? 양성이 될 수 밖에 없는 진화적 압력이 있다고? 그래서 우리가 왜 늙는데?

이런 방대한 연결고리와 통찰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궁금했다. 이 책은 어느 정도의 학령과 수학 기간을 거친, 어떤 선행 독서를 한 사람한테 적합할지. (그러니까 내 새끼한테 이걸 몇 살쯤 읽으라고 권해야 할지) 닉 레인 아저씨는 나같은 문과 빡대가리한테도 최대한 이해시켜보려고 열심히 손짓 발짓 비유 개그 골고루 써가며 열심히 써 놓으셨다. 그 정성은 충분히 알겠고요, 저도 열심히 애는 써 봤는데요, 일부는 건진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소 귀에 기도문, 돼지 목에 다이아,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어 송구합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내 눈에도 안 보이고 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니 거기 있대니까 있는 줄 아는 미토콘드리아라는 내 몸 구성체가 삶과 생명의 많은 부분에 이렇게 저렇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건 알았으니까, 항산화제라고 깝치면서 팔아먹는 상품들이 그닥 도움 안 된다는 것도 알아서 돈도 좀 아낄테니까, 도움이 되는 독서였다. 여러분, 뒤지게 힘든데 가끔 재미있는 부분도 있어요! 읽다보면 편형동물의 고추 칼싸움(19) 같은 것도 나와요! 나같은 빡돌이도 500페이지 넘기는 거 까지는 성공했으니 여러분도 할 수 있어요! 이렇게 나만 당할 수는 없다를 시전하는 여름독서캠프 과학책편...참가자는 나 혼자…

아 그래서 우리집 어린이한테 고등학교 때 이걸 읽으래면 좀 아동학대인 것 같고 대학1,2학년 때 기초 생물학 화학 물리학 뭐 이런 거 비슷한 거 주워듣고 아 뭔말인데 왜 대가리 뿌시는데 할 때 이런 재미난 것도 좀 보고 통섭적 사고를 키우렴...우리는 아주 멀리 보기도 해야 하지만 아주 가까이 들여다보기도 해야 한단다… 하고 휴대전화 게임하는 뒷통수에 벽돌을 꽂아주고 싶지만 그쯤 되면 내가 이 책 읽었다는 건 안 잊겠지만 읽혀야지 했던 다짐은 까먹을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여기에 대충 적어놨다.

아, 그리고 2020년 6월 국어영역 모의평가의 공생과 하나의 생물이 되는 것의 차이 구분하는 지문이랑, 내가 치렀던 2023년 대수능의 내가 미처 읽지도 못하고 통으로 날린 국어 지문의 대사량이랑 체온이랑 클라이버의 법칙? 그런 거가 이 책에 다 나오긴 했다. 이 책 읽고 그 지문들 다시 봐도 딱히 국어 문제 푸는데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 그냥 아, 전에 책에서 봤던 거 같다, 정도 느낌만 남을 것 같은데 그 느낌적 느낌 챙기라고 기출분석하면서 ‘미토콘드리아’ 통으로 읽으라고 시키는 부모나 선생(없겠지만) 있다면 제가 아동학대범으로 신고하겠어요… 스트레스 받아서 자유라디컬 뿜지말고 건강하게만 자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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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에게 내부골격이 없는 게 사실이라면, 한 세대 만에 복잡한 세포골격이 진화되지 못했다면, 세포벽이 없는 세균은 절멸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터무니 없는 가정으로 밝혀졌다. 2001년, 과학잡지 ‘셀’과 ‘네이처’에 발표된 독창성 있는 두 논문을 통해 옥스퍼드 대학의 로라 존스와 동료 연구진, 케임브리지 대학의 푸시니타 반 덴 엔트와 동료 연구진은 세포벽과 함께 세포골격까지 갖춘 세균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 세균은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에서 헨리 폰다가 한 것과 비슷한 모양의 허리띠와 멜빵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의 사태를 철저히 대비한 헨리 폰다와 달리 이 세균은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둘 다 꼭 필요하다. (68, 궁금해서 헨리 폰다 사진도 찾아봤다. 대략 서부극의 전문 총잡이 답게 총알 주르륵 꽂힌 벨트를 두 겹 두르고 있다. 1968년 당시의 개간지 힙쟁이였던가 봄.)

-이 (유전에 사는)고세균은 기름 속의 황 함량을 증가시킨다. 기름 속의 황 함량이 증가하면 유정의 쇠파이프나 송유관이 부식된다. 그린피스라도 이보다 더 교활한 방해공작을 생각해내기란 어려울 것이다. (69, 지구지킴이 유정 산성화 고세균)

-콜럼버스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존 리브와 동료 연구진은 진핵 생물의 히스톤이 메탄생성고세균의 히스톤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밝혔다. 이 두 히스톤 단백질 사이의 유사성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히스톤의 구조뿐 아니라 DNA와 히스톤이 이루는 3차원적 구조까지 기가 막힐 정도로 비슷했다. 두 생명체에서 완전히 똑같은 구조가 발견될 확률은 두 경쟁사에서 독립적으로 생산된 두 대의 비행기에 똑같은 제트엔진이 장착될 확률과 비슷하다. 같은 엔진은 당연히 흔하지만 경쟁사의 엔진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상태에서 똑같은 엔진이 두 번 ‘발명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상대 경쟁사로부터 이 엔진을 샀거나 훔쳤다고밖에 짐작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메탄생성고세균과 진핵생물에서 히스톤과 DNA가 이루는 구조가 비슷한 것은 같은 조상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장 그럴 듯하다. 둘 다 같은 조상에서 진화된 것이다. (82-83, 닉 레인 아저씨는 비유 장인이다.)

-크기와 힘이 1대1 비율로 증가한다면 슈퍼맨은 자신의 몸집에서 개미나 메뚜기와 비길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보다 10년 앞서, J.B.S.홀데인은 지구든 어디서든 이런 일이 절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 빗대어 증명했다. “몸무게에 비례해 독수리나 비둘기 정도의 근력을 가진 천사는 날개를 움직이기 위한 근육이 들어갈 수 있도록 가슴 부위가 1미터 정도 앞으로 튀어나와야 하며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다리는 작대기처럼 앙상해져야 한다.” (260, 그거야 말로 아름다운 괴물이네. 연인이 거부할 만한 천사로세.)

-세포의 죽음은 크게 괴사와 아포토시스,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격렬하고도 갑작스러운 죽음인 괴사는 양탄자에 핏자국을 남긴다. 조용히 계획적으로 일어나는 청산가리 음독처럼 아포토시스에서는 모든 행위의 증거가 사라진다. 이런 쥐도 새도 모르는 처형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어울릴 법한 이야기다. 이와 달리 심한 염증반응을 일으키는 괴사에 의한 죽음은 요란한 경찰수사에 비길 수 있다. 시체가 추가로 발견되고 소동이 잠잠해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304, 세포의 죽음과 암 이야기 하면서 멍청이 문돌이 재밌으라고 살인, 처형의 비유를 한다…)

-뉴런은 배 발생이 일어나는 기간 동안 주기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뇌의 어떤 부분에서는 발생 초기에 만들어진 뉴런의 80퍼센트 이상이 출생 전에 사라진다! 세포의 죽음으로 뇌의 ‘배선’은 대단히 정밀해진다. 특수한 뉴런 사이에 기능적인 연결이 이루어져 신경망이 형성된다. 그러나 발생학 전반에 걸쳐 발생을 조각의 관점에서 보는 시각이 널리 퍼졌다. 조각가가 대리석 덩어리를 조금씩 깎아나가면서 예술작품을 만들듯이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덧붙이기보다는 조각을 하듯 빼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손가락과 발가락도 어떤 ‘밑동’에서 가지가 뻗듯 갈라져 나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손가락 발가락 사이에서 정해진 순서에 따라 세포의 죽음이 일어나면서 형성된 것이다. 오리의 물갈퀴 같은 것은 발을 이루는 세포 일부가 죽지 않고 남아서 만들어진 것이다. (305, 이말대로라면 노화도 사라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중이라고 해도 되겠네. 해골 형성 중)

-(…) 원래 히포크라테스는 아포토시스를 ‘뼈의 탈락’이라는 의미로 썼다. 뼈의 탈락이란 붕대를 감은 골절부위가 괴사되어 뼈가 소실되는 현상 전체를 뭉뚱그린 표현이다. 훗날 갈레노스는 ‘상처딱지의 탈락’까지 그 의미를 확장했다. (…) 매일 사람의 몸에서는 약 100억 개의 세포가 죽고 새로운 세포로 대체된다. 이 세포들은 예기치 못한 공격을 받아 죽는 게 아니라 아포토시스에 의해 소리없이 제거되며 죽음의 흔적은 이웃한 세포들에 모두 먹혀 사라진다. 이는 아포토시스가 우리 몸에서 세포분열과 균형을 이룬다는 의미다. 따라서 아포토시스도 정상적인 생리현상에서 세포분열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306, 해골 형성이라 해 놓고 한 장만 넘겼더니 아니래 뼈도 탈락이래… 늙는 건 흔적을 남기니까 또 저런 완전범죄 같은 건 아니겠다...)

-다시 말해서 암을 일으키는 세포는 죽음의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나 아포토시스를 통해 자살할 능력을 잃은 세포다. 죽음의 유전자란 세포에서 정상적으로 아포토시스가 일어나게 하는 유전자로, 종양형성 유전자와 종양억제 유전자가 여기에 포함된다. 이 두 유전자는 몸 전체의 이익을 위해 세포에게 죽음을 명령한다. 와일리는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암 면허는 아포토시스 면허와 함께 딸려온다. 아포토시스 면허가 취소되면 암을 일으키게 된다.”(309)

-미토콘드리아에서 빠져나온 시토크롬c는 다른 물질들과 결합해 복합체(아포토좀)를 형성한 뒤, 최후의 사형집행자 가운데 하나인 카스파제 3을 활성화시킨다. 미토콘드리아에서 시토크롬c가 한번 방출되면 세포는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의 길로 치닫는다. 건강한 세포에도 시토크롬c를 주입하면 같은 결과가 나온다. 다시 말해서 세포죽음을 책임지는 아포토시스의 필수요소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호흡연쇄의 필수구성요소로 밝혀진 것이다. 세포의 삶과 죽음이 한낱 분자가 세포 안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에 달려 있었다. 생물학에서 이처럼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것은 다시없을 것이다. 삶과 죽음, 그 둘 사이의 거리는 겨우 100만분의 2밀리미터였다.(314, 숙연, 웅장, 아니고 미세, 인가...)

-여러 생물군의 성 결정방법을 살펴보면 X염색체와 Y염색체가 보편적인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를테면 조류의 성염색체는 포유류와 조합이 다르며 w와z로 나타낸다. 이를 통해 조류의 성염색체는 포유류와는 독립적으로 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변온동물인 파충류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성별이 성염색체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게 아니라 알이 부화되는 온도에 의해서도 결정된다는 것이다. 악어는 알이 부화되는 온도가 약 섭씨 34도 이상이면 수컷이 되고 그보다 낮은 온도인 약 섭씨 30도에서는 암컷이 된다. 온도가 그 중간이면 암수가 섞여 나온다. 이 규칙은 파충류마다 달라서 바다거북의 경우는 암컷이 더 높은 온도에서 부화된다. 파충류조차도 이 풍성한 성 결정요소를 다 이용하지는 못한 것이다. (344-345, 염색체가 다가 아니래.)

-두 가지 성이 있으면 교배를 할 짝의 수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문제점이 있다. 하나의 성만 있어서 성이 전혀 없는 상황이 되면 안 되는 걸까? 그러면 누구나 짝을 선택할 기회가 두 배로 늘어날 테고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차별도 사라질 것이다. 그럼 모두 행복해질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는 없다. 6부에서 우리는 좋든 나쁘든 두 가지 성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미토콘드리아다. (346, 간성 조차 제3의 성이 아니라 두 개의 성이 동시에 있는 거래...생물학자 말에 따르면 성에서 이분법은 벗어날 수 없는 건가 본데-박상륭 선생님도 이 이분법에 너무 충실해서 만물이 음/양, 요니/링감이던데 무식한 나는 좀 더 읽어 볼게…)

-자웅동체는 모두 서로 같은 도구로 경쟁을 해야 한다.
이것이 얼마나 힘겨운지는 바다에 사는 편형동물인 슈도비케로스 베드포르디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 이들의 교배는 실로 전쟁을 방불케 한다. 저마다 두 개씩 갖춘 음경으로 칼싸움을 하면서 상대방에게 정자를 묻히려고 시도하는 동시에 자신은 수정이 되지 않도록 한다. 사정된 정액은 상대방의 피부에 구멍을 뚫는데, 때로는 구멍이 너무 커서 몸이 둘로 갈라지기도 한다. 문제는 이 편형동물이 모두 수컷만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암컷은 자손을 위해 자원을 더 많이 투자해야 할 게 뻔하므로 다른 개체들을 수정시키면서 자신은 수정되지 않아야 유전자를 더 많이 전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정자를 마구 흩뿌리면서 임신을 피하는 것이다. 남근 선망은 그저 심리학에서만 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벨기에의 진화 생물학자 니코 미셸에 따르면, 정자를 뿌려대는 남성의 교배전략이 모든 종에 적용되어 편형동물의 음경 칼싸움 같은 기이한 교배충돌을 일으킨다. 성이 둘로 분화되면 이 문제에서 벗어날 방법이 생긴다. 암컷과 수컷은 언제 누구와 교배를 할지 자신만의 생각을 갖고 더 예리하고 신중하게 상대를 선택한다. 그 결과 저마다 일종의 진화론적 군비경쟁이 일어나 더 적합한 짝짓기 상대가 되기 위해 더 황당한 교배전략으로 대항한다. 자웅동체 생활방식은 개체군의 밀도가 낮거나 이동성이 적을 때처럼 짝을 찾을 확률이 적을 때 잘 작용하는 편이다(왜 식물에 자웅동체가 많은지 이해가 된다). 반면 자웅이체는 개체군의 밀도가 높거나 이동성이 클 때 발달한다. (349, 어렵고 힘든 책을 꾸역꾸역 넘어서면 이렇게 흥미로운 생태계를 보게도 되는 것...고추 칼싸움이라니…)

-사람의 난자에는 약 10만 개의 미토콘드리아가 있지만 정자에는 100개 남짓 들어 있다. 만약 정자에 있던 미토콘드리아가 난자에 조금 들어가더라도 (인간을 포함해 많은 종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 이 미토콘드리아들은 그냥 묻혀버린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정자 미토콘드리아를 수정란에서 모두 몰아내거나 영원히 조용히 시키기 위한 수많은 장치가 진화되어왔다. 생쥐와 인간의 남성 미토콘드리아에 꼬리표처럼 달려 있는 유비퀴논이라는 단백질은 이 미토콘드리아가 난자에 들어갔을 때 파괴시키기 위한 표지로 작용한다. 다른 종에서도 남성 미토콘드리아는 모두 난자에 들어가지 못하며 심지어 가재와 일부 식물에서는 정자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358-359, 내 어린이들은 외형은 나와 닮은 부분이 적지만-유전자 표현형은 참패다- 적어도 미토콘드리아는 높은 확률로 온전히 나와 같겠다.)

-사실상 거의 모든 화석골격은 DNA가 서서히 산화되어 6만 년이 지나면 거의 남지 않는다. 비교적 최근의 화석조차도 추출할 수 있는 핵DNA의 양이 너무 적어서 서열분석을 신뢰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현재까지는 화석기록만으로 우리 과거를 밝히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다른 방법이 있다. 원칙적으로 우리 몸속에서 과거의 기록을 찾아낼 수 있다. 모든 유전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돌연변이를 축적하고 그 결과 ‘염기’서열이 천천히 분기된다. 분기가 일어난 지 오래된 집단일수록 유전자 서열에 축적된 차이가 더 크기 때문에 사람들의 유전자 서열을 비교하면 이들이 얼마나 가까운지 상대적인 관계를 대강 따질 수 있다. 서열 차이가 적은 사람은 차이가 큰 사람에 비해 더 가까운 관계가 되는 것이다.(365, 그렇다고 한다.)

-조류는 노동자를 많이 고용하는 전략을 쓴 것이다. 경영진은 높은 인건비와 노동자가 감소될 위험을 택하는 대신 설비가 손상되지 않는 것에 가치를 두었다. 게다가 이 경영진은 일을 더 많이 따내면 노동력을 더 많이 가동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야망도 있다. 이것을 생물학적으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조류는 저마다 수많은 호흡연쇄가 들어 있는 미토콘드리아를 엄청나게 많이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조류는 잠재적인 작업능력이 높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여유 있게 보낸다. 분자 수준에서 볼 때, 복합체1의 환원상태는 낮고 호흡연쇄로 들어온 전자는 넓은 공간을 차지한다. 반면 포유류는 완전히 다른 전략을 쓴다. 포유류는 노동자를 적게 고용하는 고용주와 비슷하다. 다시 말해서 보유하고 있는 미토콘드리아와 호흡연쇄의 수가 적다는 뜻이다. 포유류에서는 작업량이 적을 때조차도 전자가 어느 정도 조밀하게 호흡연쇄에 쌓여 있다. 작업량을 감당하기 어려운 노동자가 공장설비에 화풀이를 하듯 자유라디칼이 세포구조를 파괴한다. 이렇게 손상을 입으면 공장이 완전히 문을 닫는 것은 오로지 시간 문제다.
덧붙여 노동자들의 반발, 곧 설비를 손상시키는 정도는 스트레스를 받고 반감을 느낄 때까지 과로한 기간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반감은 작업강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작업강도를 생물학적으로 따지면 대사율이라고 볼 수 있다. 대사율이 높은 쥐 같은 동물은 작업강도가 높기 때문에 코끼리처럼 대사율이 낮은 포유류에 비해 여유공간이 적다. 따라서 이렇게 대사율이 높은 동물은 자유라디칼을 빠르게 누출시킨다. 거의 항상 작업강도가 높기 때문에 손상이 빠르게 축적되며 노화와 죽음 또한 빠르게 진행된다. 이 관계는 조류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단, 조류의 경우는 포유류에 비해 여유공간이 더 많다는 차이가 있다. 작은 조류는 비슷한 조건의 포유류에 비해 수명이 길지만 큰 조류에 비해서는 수명이 짧다. (457-458, 이런 비유는 친절하고 고맙다. 그렇지만 제법 비유를 열심히 써주는 과학책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이거 뭔소리야 하는 과학 용어들과 실험 연구 결과들을 힘들게 쫓아다녀야 하고 대개는 따라만 다니고 상황 파악은 못하게 된다…)

-화학삼투(양성자 동력)는 생명의 기본적인 특성이다. 아마 DNA, RNA, 단백질보다 더 오래전에 시작되었을 것이다. 화학삼투 현상을 일으킨 최초의 세포는 철-황 무기염류로 이루어진 미세한 거품으로부터 저절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 거품은 지각 깊은 곳에서 스며 나온 지하수와 그 위의 해수가 섞이는 구역에서 형성된다. 이런 무기세포는 살아 있는 세포의 특징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었으며 태양의 산화력만 있으면 만들어질 수 있었다. DNA복제를 통한 유전의 기원을 앞서는 복잡한 진화적 신기성이 요구되지도 않는다. 무기세포는 표면을 통해 전자가 이동할 수 있으며 이런 전자의 흐름이 양성자를 마가 주위로 끌어당겨 막을 사이에 두고 전위차가 형성된다. 다시 말해서 세포 주위에 역장이 생기는 것이다. 이 막전위로 세포의 공간적인 차원은 바로 생명의 구조와 연결된다. 가장 단순한 세균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지금도 모든 생명체는 막을 통해 양성자를 수송하면서 에너지를 생산한다. 그리고 이때 생긴 전위차를 이용해 운동을 하고 ATP와 열을 만들어내며 필요한 양분을 흡수한다. (467)

+헨리 폰다의 벨트와 멜빵. 세균의 세포벽과 세포골격 같은 거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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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슈 2025-08-10 1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저도 쟁여놓고 무서워서 못 보고 있는 책입니다 닉레인 트랜스포머도 쉽지 않았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5-08-10 12:37   좋아요 0 | URL
저도 트랜스포머랑 산소랑 얘랑 생명의 도약이랑 사이 좋게 꽂아놨는데 제일 무서운 놈을 펼쳐버렸네요...아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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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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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8 앤드루 포터.


초판을 사 두고도 펼치는 데는 좀 걸렸다. 근래 지나간 여름과는 다른 감각으로 보내고 있어서. 읽고 싶지만 눈으로만 책등을 훑는 처지가 더 이상 아니다. 수험생활 3년은 나에게 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놀랄 만큼 빨리 휘발되었다. 수많은 지식과 문제들이 너무 짧은 기간 너무 빨리 잠시 스쳤다가 사라졌다. 동시에 그 이전의 한참 맴돌이하던 오랜 기억들도 슬쩍 같이 가져간 것 같다.
나쁘지 않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두 번 읽었다. 재독이 드문 나에겐 드문 일이다. (드문드문) 신작 소설집 나왔다는 소식에 많이 궁금하긴 했지만, 꽂아 놓고 못 읽는 게 안타깝긴 했지만, 또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오늘 펼쳐 읽고 보니 예상과 달리, 라고 할 만한 감흥은 역시나 일지 않았다. 그냥 나쁘게 말하면 와, 이렇게나 자기 복제를, 좋게 말하면 비슷한 시절의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나 많은 변주를, 싶었다.

이성애자 중년 아저씨가 나오고, 그의 배우자나 연인이 나오고, 대부분의 그들은 뭔가 위태위태하다. 아이를 낳았든, 낳지 않기로 했든, 낳고 싶은데 못 낳았든, 회한, 노스텔지어, 회상이 무성하다. 예전의 난 몰랐어, 지금의 내가 이렇게 살 줄은, 이런 마음의 사람들은 현재가 행복하지 않은 거겠지. 문학 작품의 주인공들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라 읽는 사람한테 위로가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한테는 이런 위로가 씨알도 먹히지 않는 건, 내가 살만하다는 얘기겠다. 다른 의미로 예전의 난 몰랐어, 지금의 내가 이렇게 살 줄은. 내가 잃은 것들을 떠올려보려 해도 당장 짚이는 게 없다. 점점 많은 걸 얻기만 했고, 그게 다 아직은 나한테 있다. 작품 속 사람들은 자꾸만 지나온 날들을 떠올리지만, 나는 오히려 다가올 날들을 짐작한다. 아마도 지금 같은 날들이 한동안 이어질 것이다. 그렇지 못한 날들이 오면 지금의 나를 부러워하고 그리워 할 것이다. 손을 뻗으면 읽고 싶은 책이 당장 잡히지. 그립고 좋은 것들이 그렇게 가까이에 둘러싸고 있지. 내가 소설을 잃은 이유도 짐작이 간다. 굳이 사라진 것을 찾는다면 쓰거나 읽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마음 정도. 레스트 인 피쓰.

+밑줄 긋기
-“이렇게 늦게 전화해서 미안해.” 나는 말했다. “그냥 네 남편이 여기에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
“살아는 있니?”
“아주 간신히, 하지만 살아 있어. 지금 내 소파 위에서 기절했다.”
“전화해줘서 고마워.”
“너 괜찮아?”
“잠이 안 와.”리베카가 말했다. “뭔가 정말로 나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을 떨칠 수가 없어. 넌 그렇게 느낀 적 없어?”
“항상 느끼지.”
“그러면 어떻게 해?”
“무시하려고 노력해.”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117, ‘라인벡’ 중. 정영수 소설의 ‘우리들’과 조금 비슷한 느낌. 다정한 듯 위태로운 삼각형.)

-알렉시스는 시내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다 해고된 날 밤에 몹시 취하고 화가 난 채로 집에 돌아왔다. 나쁜 소식을 들은 후 몇몇 동료들과 함께 술집에 갔는데, 거기서 동료들이 알렉시스에게 잔술을 연거푸 사주었고 그후에 그녀를 택시에 태워 집으로 보냈다. 알렉시스는 내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을 새도 없이 욕실로 들어가더니 거울을 주먹으로 박살내고 밖으로 나와 카펫 위에 피를 뚝뚝 흘리면서 머리가 떨어져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다. 나는 부엌으로 달려가 행주를 몇 장 가져다 지혈하고 아내를 진정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이제 그녀는 웃고 있었다. 비명이 아니라 웃음소리를 내지르며 나를 끌어당겨 키스하려고 했다.
“당신 취했어.” 나는 아내를 밀어내며 말했다. “다치기도 했고.”
“별로 많이 취하진 않았어.” 알렉시스는 그렇게 말하더니 양손으로 내 얼굴을 감싼 채 이글이글한 눈빛으로, 마치 내 안을 빤히 들여다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난 알아, 당신은 이걸 좋아해.” 알렉시스가 말했다.
“뭘?”
“이거.” 알렉시스는 웃으며 말했다. “이게 당신이 나와 결혼한 이유라는 걸 알아. 당신은 이걸 좋아해.”
나는 아내를 밀어내고 부엌으로 물을 가지러 갔지만, 그 순간의 기억은 내내 나를 떠나지 않았다. 마치 아내가 우리 둘 다 말하지 않았던 우리 사이의 수치스러운 비밀을 정통으로 찌른 것 같았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그녀의 어떤 측면에 나는 또한 이끌린다는 사실을. (227, ‘벌’ 중. 미친 사람과 결혼하지 맙시다… 이미 했다면 미안해요.)

+책갈피 사이에 한국 독자들에게 영어로 쓴 엽서가 있는데 읽다보니 이거 쓰기 싫은데 출판사에서 쓰라니까 겨우 쓴다 싶게 느껴지는 글씨와 문장이었다. 쓰기 싫음 쓰지 말지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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