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매월당 김시습
이문구 지음 / 문이당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20251026 이문구.
엊그제는 어린이들 동아리날이라 관악구에서부터 노들섬까지 5킬로 남짓을 걸어갔다. 이번엔 대교 중간까지 죽 갔지만, 대교를 안 건너고 서로 틀면 노량진과 사육신공원이 있다. 5년 전 여름, 코로나 들끓던 시절 10살, 3살 데리고 방학숙제 한다고 사육신공원에 갔었다. 충신들 모시는 사당 건물이랑, 묘역이랑, 한강 내려다보이는 언덕이랑, 휘-돌다가 날이 너무 뜨겁고 모기가 자꾸 애기를 물려고 해서 오래 있지는 못하고 사진 몇 방 찍어주고 집에 왔다. 그때도 충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게까지 목숨 바칠 일이었나, 불충한 마음. 사실 욕심쟁이들이 어떤 마음이든 먹고 일러바치면 자동 충신+걸려든 사람은 저세상 예약이 되었던 시절일지도 몰랐다.
어려서 금오신화를 만화로 엮은 걸 정말 재미있게 봐서, 6학년 때인가 만약 반에서 장기자랑으로 연극제를 하면(5학년에 했었어서 또 할 줄…) 이생규장전을 극화해서 올려야지, 다짐했다. 쟤랑 쟤는 오랑캐 시켜야지...했는데 연극제는 없었고, 어린 놈이 연극 만들 원대한 구상을 했다는 기억만 호기롭네, 하고 남았다.
학이시습지불역열호. 이웃 양반 할배 최치운이 이 문구에서 따다가 김시습의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그런데 이름에 시가 들어가 그런가 맨날 시만 쓰고, 그래도 마음은 풀리지 않고 음습하다. 길로 숲으로 끝내 나돌아다닌다. 그렇게나 배우고 때때로 익혔어도 기뻐보이지 않는다. 이문구 선생은 문구라서 자꾸 문구를 쥐고 글을 썼겠지...죄송합니다.
어쩌다 인생 꼬인 어린 시절 수재는, 과거봐서 입신하려던 찰나, 마침 세조가 단종을 폐하고 거기에 들러붙어 잘먹고 잘살며 관련된 사람들 다 죽이고도 고개 빳빳한 관리들 사이에 끼기 싫어 응시 자체를 포기하고 떠돈다. 절과 산을 오가며, 그런데도 글 쓰는 건 놓지 않아 누가 읽어줄지 모를 ‘금오신화’도 남기고, 시편은 수두룩 빽빽 쓴다. 그런데 초야에 묻힌 야인 같지만 의외로 핵인싸여서, 친구들이 다 벼슬아치에 급제한 인간이고 보니 다들 막 시습 챙겨주고 편의 봐주고 그래서 굶어 죽지도 않고 몇 십년을 그럭저럭 술퍼먹으면서도 안 죽고 살아왔다. 시종 같은 어린중들도 있고, 결혼도 두 번(둘다 금세 사별), 친구 유자한이 후사 보라고 빌려준(헐) 기생도 있었고…
특히 기생 소동라와 잠시 맺어질 뻔하다가 금세 헤어지는 부분은 깬 척 하면서 제사에 대잇기에 자손생산에 집착 못 버린 가짜 땡중 유교아재 술주정뱅이에다 꽁생원 같아서, 김시습 좀 관심 있게 봤는데 조선 사람이 조선 했지...했다. 기생 소동라도 밉상이긴 한데 나중에 그녀가 새벽길로 도망간 뒤 먹 갈아서 추한 꽃이라고 그녀 모습을 떠올리며 휘갈긴 글은 진짜 쪼잔하게 느껴지고, 못생겼네 어쨌네 해도 미련이 남았구나 했다.
책 중간쯤에 매월당이 자기 얼굴을 먹필로 그려놓고 누구 얼굴인가? 하고 고사 속 절개지킨 인물들을 나열하고 또 그가 지은 한시를 연결하는데...그 부분을 읽어넘기기란 정말 참을성을 시험하는 일이었다. 루쉰이 단편집 3권에서 옛 고사 타령하는 거 뺨치게 모르는 사람들 나오고, 그래도 어떤 사람인지 개략적으로 소개는 하지만 그렇게 비슷한 인물들이 쎄고 쎘음을 줄줄 읊으면서 매월당이 자기도 거기에 동일시하는 건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탄하는 건지, 아직도 열거 속에 있기 때문에 몇 명이나 더 나오는지 살펴보고 판단(하거나 욕)해야 겠다. 다 읽고 나니 아 이렇게까지 열거할 일이냐...쪽수 채우기 같고 재미도 감동도 없다. 서두의 작가의 말에서 작가가 아 이 작품 망했다, 하고 실토한다음 읽게 하는데 확실히 이문구의 다른 좋은 작품들 생각하면 이 작품은 좀 망한게 맞다.
무력으로 왕위 찬탈하는 게 폭력적이고 정당하지 않다는 면은 동의하지만, 이제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는 선출직 임기제 대표들을 뽑았다 말다가 하는 시대에는 직계비속이 왕위 잇지 않고 방계든, 전혀 다른 핏줄이든 왕이 바뀐 거 가지고 저렇게까지 자기 인생 바친 걸 신념이라고 우국충정 어쩌고 할 것인가 싶기도 하다. 진짜 충심이면 벌레충들 우글대는 그 아사리판이라도 뛰어들어서 나 하나 갈리더라도 바꿀 수 있는 만큼 바꾸려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어금니만 박박 갈고 욕만 하면 다냐...했더니 사실 그게 나네...오호호호
오히려 기존 임금 배신 때리고 새 왕 모시고 왕위 찬탈하고 하는 걸 저렇게 열거한 걸 두고 보면, 왕정이란 그렇게 무한 쿠데타로 갈고 갈리는 부실한 뭔가가 아닌가, 저걸 막겠답시고 왕의 힘을 강화하면 그 왕이 선한 왕이란 보장이 없으니 또 신하들과 백성들이 갈리고 갈리겠네, 그래서 다들 민주주의 짱짱 하는 거구나 새삼 지금 입장에서 과거를 판단하는 문화 상대주의적이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나놈이고…(대충 중학생들 배우는 내용. 정치 가르치기 너무 힘듦. 되게 재미없어함. 내 탓이다.)
그런데 마저 읽어보니 충신들이 죽을 각오하고 왕위찬탈 반대하는 말이라도 하면 다 역신으로 찢어 죽이고, 그 식솔들은 소위 공신놈들, 일름보에 죽여무새의 노비가 되고, 땅도 공신놈들이 다 빼앗아 차지하는 거 보면 세조와 친구들이 나쁜 놈들이 맞긴 하다. 벼슬 안 하고 입 꾹 닫고 초야에 묻혀 세상 안 나오는게 최선일 세상에서 김시습도 말로 못할 건 다 쓰고, 자기 봐줄 친구들 있는 자리에서만 욕하고, 사실 대부분 욕하고 성질 내는 건 세조 예종 다 죽고 성종 때이긴 하네... 진행이 역순이라 정신이 없긴 한데 이놈의 세상, 하고 울화가 치밀고 세상이 거지같아서 내가 뜻을 못 펴지 인생 꼬였지...하고 살면 고통이긴 하겠다. 그냥 내가 모자라서 그래... 하면 좀 덜 불행했을까. 내가 요새 그런다. 오세 신동이 오십세 신동 못 가듯 어려서 수재가 사십세 바보가 되는 것이다...어쩔 수 없네 하니까 조금 덜 불행함…
우리 동네에 양녕로라는 길이 있고, 양녕대군의 묘인 지덕사가 있다. 이 소설을 보니 양녕대군은 세조에게 단종을 죽이라고 소도 올리고 난리가 아니였다. 세종 손자가 싫었냐… 하여간에 코닿을 데에 나쁜 아저씨 묘도 있고, 조금만 더 걸으면 노량진이라, 평생 남을 이름 대신 일찍 목숨 거둔 선생님들 묘도 있고, 한강도 있고 국사봉도 있고 다 있다. 걷고 쓰기만 하면 되겠는데 요즘엔 걷기만 한다. 쓰고 싶음 쓰겠지.
그리고 누가 이문구 선생 책 본다고 하면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읽으시우. 그다음엔 ’관촌수필‘, 더 볼작시면 ’우리 동네‘까진 안 말리는데 ’매월당 김시습‘은 훠이훠이, 그냥 금오신화나 읽으시우, 하겠다. 이문구 선생이 1992년 51세쯤 이 소설책 내셨는데, 이제 한물 갔네, 갔어, 하기엔 이후 60세 무렵 낸 마지막 소설집으로 동인문학상도 타고, 그게 제법 읽을 법하니 사람은 죽기 전엔 모를 일이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닐 수도 있다.
+밑줄 긋기
-너는 양 아닌 양
나는 사람 아닌 사람
같이 물건 아닌 물건이라
서로 몸 밖의 몸을 가졌으니
누가 너를 쫓고
누가 나를 찾을 것이랴
너는 바위에 뿔을 걸고
내 갓은 바람에 벗겨지는데
너는 꼬리로 푸른 이끼 만지고
나는 폭포수에 발을 씻나니
정답게 볕을 나눠 쪼이며
우리 청산에 함께 사세나.
(203,‘영양이 저만치 달아나 해바라기하다’ 중. 이렇게 김시습의 무수한 시편 중 여러 가지가 소설 안에서 소개된다. 물아일체에 그놈의 백구타령이 많은데 주로 바닷가 동네 부임했다 해먹을 만큼 해 먹은 뒤 유사 안빈낙도하는 사람들이 갈매기 타령이고, 산에 처박혀 산삼처럼 늙은 이 아저씨는 산에서 영양 타령이다. 사실 직전에 등장한 도망간 기생첩 이야기 에둘러 쓴 것 같다.)
-자종의 아내는 위에서 자종이 어진 것을 알고 불러서 크게 쓰려고 하자 자종에게 말하였다. 왈, 당신은 신을 삼는 것이 직업으로, 왼편에는 거문고가 있고 오른편에는 책이 있으니 즐거움인즉슨 그 속에 있다. 사람이 편히 쉰다 한들 고작 다리를 펴는 것이요, 비록 맛나게 먹는다 한들 고기 한 점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이제 다리를 펴는 재미와 고기 한 점의 맛을 위하여 바야흐로 초나라의 걱정을 짊어지겠다는 것인가. 자종은 아내의 말에 길이 있음을 알고 깊숙이 숨어 들어가 남의 논에 물을 대주는 일로 나머지 삶을 마쳤으니, 참으로 제 길을 갔던 사람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다.
‘덧없는 인생에 갈 길은 많지만 저승으로 난 길만은 똑같다’고 한 한퇴지의 시처럼, 저승길이 아닌 다음에는 각자가 선택한 길을 가는 것이 사람이 사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길을 가되 지름길이 있음을 알면서도 좁고 굽은 에움길로 들거나, 비탈지고 가파른 벼룻길로 들거나, 더디고 적적한 두름길로 들거나 하는 것은, 사람마다 사는 나름과 모습이 대개 같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치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애초에 잘못 든 길임을 가다가 알았다고 하더라도 행여 수원수구할 일은 결코 아니었다. 또 비탄하고 절망할 일도 아니었다. 만일 가다가 가던 길을 돌이킨다면 오다가 맛본 오던 길의 고달픔만을 곱으로 겪게 될 터이었다. 다만 약간의 겨를은 있으니 그것은 그 자신이 스스로 위안을 꾀할 수 있는 점일 것이었다. (211-212, 걷기 쟁이 샛길 쟁이끼리 약간의 공감은 되는 ‘길’론)
-한 30년 동안 머리 검은 짐승의 고기로 안주를 하며 주야로 갈아 대다가 잇몸에서 달아난 이빨이 그렇고, 못 볼 꼴만 보는 데에 질려 버려 저만치에 있는 것만 보이고 이만치에 있는 것은 보이지 않게 된 두 눈이 그렇고, 못 들을 소리만 듣다가 열이 오른 나머지 먼 데 소리는 가까워도 옆의 소리는 아득하게 들리는 두 귀가 그렇고, 산수간에 티끌을 이고 산 적이 없어 감고 빗기를 게을리하는 사이, 반은 세고 반은 빠져 버린 쑥대머리 또한 그러하였다.
(212-213, 그건 늙으면 거의 다 그래요 님같이 안 살아도…)
그뿐만도 아니었다. 자나깨나 들리는 영월의 소쩍새 울음소리로 애를 태우는 사이에, 그을음을 뒤발한 것 같이 타 버린 검은 얼굴도 길에서 얻은 것이었다. 한번 들어간 뒤로 더욱 우묵해진 눈이며, 볼에 갈래갈래 골이 파이면서 한결 커 보이는 코도 길에서 얻은 것이었다. (213, 단종은 불쌍하지만, 얼굴 검은 건 타기도 탄 거지만 술 너무 마셔서 간이 나빠져서 그런 거예요 아저씨… 저도 많이 걸으니까 피부도 새까매지고 나이 드니까 눈도 음푹 볼도 더 홀쭉 그러더라고요. 아, 수능 때문이냐?!학교 때문이냐?!)
-하룻밤 사이에 하늘이라도 바뀐 양 무서리를 하면서, 잇꽃물과 치자물을 한꺼번에 뒤집어쓴 것 같던 계룡산의 단풍도 며칠이 못 가 가랑잎으로 쌓이고, 자고 나면 허옇게 된내기를 하여 섬돌 밑으로나 남아 있던 늦풀 몇 포기까지 아주 못쓰게 얼데쳐 놓곤 하던 10월 하순께의 일이었다. (316, 이 계절이 입술 근처까지 왔다. 저건 음력이겠지.)
-매월당은 다 그만두더라도 초동에 베풀던 황감제만은 꼭 한 번 과필을 겨루어 보고 싶었다.
황감제는 제주도에서 진상한 감귤을 반궁과 사학에 내리고, 그 감귤을 과제로 하여 보이던 과거였다.
그렇지만 별동의 승낙은 끝내 받아 낼 재간이 없었다.
매월당은 그것이 두고두고 걸리고 섭섭하였다.
회고하면 감귤의 벗기기 아깝던 껍질의 그 빛깔, 쪼개기 아깝던 앙증한 그 태깔, 삼키기 아깝던 과육의 그 맛깔, 날리기 아깝던 그 향긋한 향기에 속절없이 반했던 숫진 동심의 소치였을 거였다. (349, 성균관 청강생이던 시절 귤을 걸고 보는 시험에 응시하고 싶었지만, 청강생이라 응시 기회 얻지 못해 아쉬웠던 귤이 먹고 싶은 귀여운 시습 어린이. 우리집 어린이들은 내가 안 떨어지게 귤을 자꾸 사 주니 조선 양반보다 낫게 사는 구나...)
-“선생들, 여기 계셨소이다그려.“
매월당은 가슴이 복받쳐서 말을 잇지 못하고 엎드려서 울었다.
육신의 머리는 섬에 담아다가 무덕지게 쏟아 부리고 간 그대로 한군데에 쌓여 있었다. 바람결에 맡은 시취로 하여 곧장 찾아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효수경중을 한다고 머리끄덩이에 명색을 적어 매어 놓은 종이 오리가 마른 풀잎처럼 바람에 나부끼고, 저만치 떨어져서 희읍스름하게 보이는 것은, 속을 비우고 내버린 섬이 바람에 뒹굴다가 움버들의 밑동에 걸려 있는 것이었다. (392-393, 효수에 능지처참 당한 육신의 머리가 버려진 갈대, 억새밭에 시습과 몸종 천석이가 비와 바람을 뚫고 몰래 스며가 울면서 수습을 해오는 장면이 나름 작가님이 제일 힘을 준 부분으로 읽혔다. 죽으면 끝, 싶었는데 그 죽음 이후마저 모욕을 주고 애도도 금기되고 제대로 쉬도록 모시지 않는게 사람들에게는 가장 상처가 되는 모양이다. 술주정뱅이 낭인으로 늙은 김시습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나름 역순으로 거슬러올라가 그가 목도한 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아무 무엇도 아닌 몰골로 그렇게 이르렀다고 한다면,앞으로 그 무엇이 기어이 되리라거나, 그 무엇에 영 못 미치리라거나, 그 무엇에서 오히려 지나치리라거나 하는 따위의 앞날에 대한 어떤 기약도 막연해지는 나이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것은 대체 무엇이더란 말인가.
매월당은 그에 대한 답도 생각하고 있었다.
다 된 미완성.
아직까지는 그것이 답이었다. (409, 작가 선생님이 이 소설에 대한 답으로 생각한게 이거겠구만… 저는 아직 몇살 더 어리니 덜 된 미완성일까요?)
-하루는 외조부에게 시는 어떻게 짓는 것인지를 물었다.
“일곱 글자가 나란히 어우르는 가운데, 소리의 울림에 높낮이가 있고, 뜻은 달라도 같은 모양으로 둘식 짝이 되어야 하고, 또 일정한 곳에다 운을 달아야 하느니라.”
그 말을 듣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런 것쯤은 저도 할 만합니다. 할아버지께서 한번 첫 자를 불러 보세요.” (415, 시 짓기 조기교육과 삼세 신동의 패기. 율곡은 신동이면서 그래도 뜻을 펼치기라도 했는데 시습은 시를 잘못 타 성질만 뻗치다 갔다.)
+20251024 노들섬에서 구름 구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