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배출을 원한다. 특히 요즘 같이 추운 날씨에 자주 소변을 보게 된다. 소변, 대변, 방귀는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다. 소변을 가급적 자주 보는 게 좋다고 말한 의학 전문가가 있다. 하지만 소변이 마렵지 않은데도 억지로 힘을 줘서 쥐어짜면(?) 방광에 좋지 않다. 배뇨 횟수는 계절과 온도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보통 성인의 경우 하루 5~6회 정도다. 소변 횟수와 양은 너무 많아도 문제고, 너무 줄어들어도 문제다.


살다 보면 세 가지 생리 현상을 참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계속 무시하면 언젠가 몸에 이상이 생긴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소변과 대변을 참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학창 시절에 필자는 시험 성적을 잘 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도 간절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지 않고 계속 의자에 앉아 공부만 했다. 재미있는 책을 읽느라 화장실에 가는 일을 미루기도 했었다. 이런 나쁜 버릇이 반복되면 건강에 적신호가 빨리 찾아온다. 2016년에 필자는 통풍 진단을 받았다. 통풍은 혈액 속에 있는 요산이라는 물질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아 관절에 염증을 일으키는 질병이다. 통풍 진단을 받았던 당시에 신장에 이상이 있는지 신장 기능 검사를 받지 않았으나 이때 당시 요산을 포함한 노폐물을 걸러주는 신장 기능이 나빠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방광은 신장과 연결되어 있다. 소변을 계속 참으면 방광의 압력으로 인해 요관(尿管)으로 역류하여 신장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는 보기 좋다. 노력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인내심이 강하다. 어느 한 분야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의 일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끼니를 거르고, 생리 현상을 참으면서 노력했다고 한다. 한 분야에 제대로 푹 빠진 이 사람들의 열정과 노력은 박수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들처럼 따라 하고 싶지 않다. 목표를 빨리 이루고픈 마음은 잘 알겠지만, 생리 현상을 참으면서까지 노력할 필요는 없다.


















[우주지감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202012월의 책]

* 게랄트 휘터 존엄하게 산다는 것: 모멸의 시대를 건너는 인간다운 삶의 원칙(인플루엔셜, 2019)



평점

3점   ★★★   B




독일의 뇌과학자 게랄트 휘터(Gerald Huether)는 자신의 책 존엄하게 산다는 것에서 존엄의 의미를 되짚어본다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내적 표상(內的 表象: 그림이나 언어와 같은 외부적 표현 형태가 아닌 개인의 내적 상태에서 일어나는 표상)은 고유의 한 사람으로서의 행동으로 표출하게 만드는 관념이다. 휘터는 이를 존엄이라고 말한다존엄하게 산다는 것은 결국 외부의 유혹에 맞서 자신의 내면 표상, 라는 존재의 고유한 삶을 지키면서 사는 방식이다


존엄하게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존엄하게 살 기회를 받지 못했거나 혹은 빈번히 놓치고 말았다. 존엄하게 살려면 어릴 때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스스로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지나친 교육열, 빽빽한 교육 환경은 아이들을 외부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는 수동적인 존재로 자라게 했다. 이런 아이들은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할 여유조차 누리지 못한 채 어른으로 성장한다.


자녀를 너무 열심히 가르치는 부모는 자녀에게 과제를 줄 때 과제를 다 할 때까지 절대로 ○○○을 하지 마라!(“간식 먹지 마!”, “스마트폰 들여다보지 마!”, “친구와 만날 생각하지 마!” )고 지시한다. 강압적인 성격의 교사들도 종종 이런 식으로 학생들을 옭아맨다. 그러니까 어떤 하나를 다 끝낼 때까지 다른 어떤 일학생들을 통제하는 부모나 교사는 자신의 지도법에 어긋나거나 따르지 않는 아이의 행동에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딴짓이라고 표현한다을 절대로 하지 말란다. 개인의 자율성을 옥죄는 교육법에 익숙한 학생들은 학교나 집에서 지도받고, 통제당하며, 감시당한다. 이런 갑갑한 분위기에 지배당한 아이들은 화장실에 잠깐 가야 할 상황도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 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어크로스, 2020)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나 분위기가 갑갑하면 아이들은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을 수 있다서울대의 모 교수는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생리 현상을 참는 것이 성인의 자부심이라고 말한다.




* 공부란 무엇인가중에서, 76~77

 

 수업 도중에 화장실에 가도 안 되냐고요? 물론 안 됩니다. 여러분은 성인이고, 성인의 자부심은 똥오줌을 참을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 시간 30분 정도는 생리현상을 관리할 수 있으리라는 사회적 기대가 있습니다. 마치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에 들르듯이, 강의실에 들어오기 전에 화장실에 들르기 바랍니다. 그리고 손을 씻기 바랍니다. 예외적인 사정이 있는 사람은 미리 상의해주기 바랍니다.

 아무리 화장실에 미리 다녀왔어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수업 중에 갑자기 손을 들고, “뭔가 나와요!”라고 울부짖는 것은 민망한 일이겠지요. 그런 경우에는 노래를 부르기로 합시다. 수업 중에 불가피하게 화장실에 가야 할 사정이 생긴 사람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디선가 나직하게 들려오는 노랫가락을 듣고 우리는 누군가 곧 강의실 문을 나갈 것을 예감하고 그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면 강의에 집중력을 잃지 않을 수 있겠지요. 노래를 부르며 강의실을 떠나는 학우의 고통을 공감하고 양해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공감과 양해는 규율 못지않게 중요한 시민적 덕성입니다. 노래하는 목소리가 클수록, 곡조가 슬플수록, 그가 처한 상황이 위중하다는 신호겠지요. 저 역시 만에 하나 급히 용변을 봐야 할 사정이 생기면, 장송곡을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생리 현상을 참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 생리 현상을 참는 나쁜 버릇 때문에 아파봤던 필자는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고 해도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다. 똥오줌을 잘 참으면 느낄 수 있다는 성인의 자부심은 쓸데없는 허세다생리 현상을 참고 공부에 매진하길 바라는 사회적 기대는 학생들의 주체성과 (똥오줌을 눌 수 있는) 자유의 욕구를 통제한다교수의 글을 좋아하는 혹자는 필자의 지적에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재미있게 하려고 쓴 건데 왜 이리 민감한 반응을 보이세요?”, “그냥 웃고 넘길 수준의 내용 아닌가요?” 교수는 우스갯소리로 생리 현상을 참으라고 말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교수의 말에 유머를 싹 다 제거해보면 그 속에 제자들에게 전하는 교수의 본심이 나온다. “내 수업이 끝날 때까지 절대로 수업 도중에 화장실에 갈 생각하지 마!”


필자가 학생이었으면 교수의 지도 방식에 태클을 걸었을 것이다. “교수님, 수업 도중에 화장실에 가는 학생들 때문에 일순간에 집중력이 흐려지는 상황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도 이렇게 생각하는데 열심히 가르치는 교수님은 오죽하시겠어요. 하지만 수업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똥오줌을 참는 일을 성인의 자부심이고 공부에 매진하는 사람의 미덕으로 여기는 교수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공부든 뭐든 무언가를 끝까지 잘 해내기 위해 인내심을 강요하는 것은 구시대적 어른의 사고방식입니다. 교수님, 저는 생리 현상을 참으면 건강이 나빠지는 체질이에요. 교수님의 수업 내용을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수업 도중에 갑자기 똥오줌이 마려우면 망설이지 않고 화장실로 갈 겁니다. 저는 건강을 유지하면서 공부하고 싶어요. 이게 제가 존엄하게 공부하는 방식이고, 존엄하게 똥오줌을 싸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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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0-12-21 1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수용소의 오물통 얘기가 나오는데
더러운 오물통의 존재보다 더 무서운것은 오물통의 부재란 얘기가 있었어요. 우리는 여러 이유로 생리현상을 무시하고 때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말씀하신것처럼 건강에 큰 영향을 줄만큼 본질적으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데 말이죠.
아직 저 두번째 책 읽어보지 못했는데 흠..그런 자부심은 저도 거부하겠습니다^^

얄라알라 2020-12-21 22:54   좋아요 1 | URL
이래서 제가 알라딘 서재에 매일 출석하나 봅니다. 글도 글이지만, 프리즘처럼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를 또 이어가는 멋진 댓글을 보면, 온라인 상이지만 대화의 희열을 느낍니다. 제가 두분의 대화에 끼어든 셈이긴 하지만요^^

han22598 2020-12-22 0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학생뿐 아니라, 선생도 화장실을 가고 싶을때가 있을텐데 말이죠.....ㅋ

cyrus 2021-01-01 13:48   좋아요 0 | URL
대부분 선생님들은 자신이 화장실에 가면 수업 흐름이 끊길까봐 생리 현상을 참고 일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마음을 잘 알지만, 자신의 건강에 무리를 주면서까지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답글이 좀 늦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an님. ^^

페크pek0501 2020-12-24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건강을 유지하면서 공부하고 싶어요. ^^

메리 크리스마스!!!

cyrus 2021-01-01 13:49   좋아요 0 | URL
올해도 건강하면서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페크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초딩 2021-01-01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 님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2021년에는 더 자주 인사 드리고 응원 하겠습니다~
:-)
신정 연휴도 잘 보내세요~
 
연표로 보는 과학사 400년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고야마 게타 지음, 김진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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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점   ★★☆   B-





연표로 보는 과학사 400은 이 책을 쓴 저자저자 이름이 고야마 게타로 표기되어 있다의 또 다른 책 불멸의 과학책(반니, 2020)과 함께 읽으면 좋다. 과학사 연표는 불멸의 과학책에 언급된 35권의 과학 고전의 탄생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저자는 과학자들의 업적 및 역사적 사건들만 열거한 기존의 연표 구성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각 항목마다 짧은 해설과 에세이를 적었다.
 

저자는 과학사 연표의 시작점을 17세기로 잡았다. 17세기 이전, 즉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된 자연 과학 탄생 이전의 역사는 이 책의 서론에서 다루었다. 과학사 연표에서 과학사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17세기를 과학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한 결정적인 시점으로 본다. 이러한 저자의 인식은 불멸의 과학책에서도 드러난다.

 

본 책은 2011년에 나왔다. 그래서 연표의 마지막 해는 2010년이다. 책 뒤편에 부록으로 노벨상 수상자 목록이 있다. 부록도 원서에 있던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 역자와 출판사 편집자가 특별히 부록을 추가했을 수도 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2016년을 끝으로 노벨상 수상자 이름들이 나오기 때문이다이 책의 저자가 일본인이라서 20세기가 시작되는 연표에 일본 과학자들의 성과도 몇 개 언급했다. 이런 내용은 가볍게 훑어보면서 넘어가 줄 수 있다. 하지만 해설과 에세이에 발견된 몇 가지 오류와 오자는 봐줄 수 없다.


 





[Mini 미주알고주알]

 

 


1

 

 

* 73


이탈리아의 핼리 []

 


[] 핼리 혜성의 등장 주기(76)를 처음으로 예측한 에드먼드 핼리(Edmund Halley)는 영국인이다.

 

 

 

 


2

 

 

* 103


이탈리아의 윌리엄 허셜 []

 


[] 윌리엄 허셜(William Herschel)은 독일계 영국인이다. 독일에서 태어나 19세에 영국으로 건너갔다. 저자는 허셜이 천왕성의 발견자라고 언급했는데, 사실 천왕성은 허셜과 그의 누이 캐럴라인 허셜(Caroline Herschel)이 함께 발견했다.

 

 

 

 


3

 

 

* 188


퀴리 자크 []

 


[] ()과 이름이 바뀌었다. 자크 퀴리(Paul-Jacques Curie).

 

 

 

 


4

 

* 227~228


 당시에 시카고대학교의 대학원생이던 플레처가 1981년에 사망하면서 밀리컨 앞으로 한 통의 유서를 남겼다. []



[] 로버트 밀리컨(Robert Millikan)기름방울 실험으로 전자의 전하(電荷: 물체가 띠고 있는 정전기의 양)를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밀리컨이 이 실험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밀리컨에게 지도를 받은 대학원생이었던 하비 플레처(Harvey Fletcher)1981년에 남긴 회고록에 기름방울 실험의 불편한 진실을 폭로한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기름방울 실험을 주도한 사람은 밀리컨이 아니라 플레처였다. 밀리컨은 기름방울 실험 결과가 정리된 제자의 박사학위 논문의 단독 저자명으로 본인의 이름을 넣고 싶었다. 교수는 제 욕심을 채우려고 제자와 거래를 했다. 플레처는 지도교수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어서 순순히 받아들였고, 박사학위 논문의 저작권은 밀리컨이 가지게 되었다. 저자명 이름이 바뀌지 않았다면 192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본 책에 밀리컨 앞으로 한 통의 유서를 남겼다고 나와 있는데,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밀리컨은 이미 1953년에 세상을 떠난 고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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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과학책 - 인류 역사를 바꾼 과학 고전 35
고야마 게이타 지음, 김현정 옮김 / 반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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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3점   ★★★   B





과학적 사고란 무엇일까. 자주 쓰는 말이지만, 생각해 보면 과학적이 무슨 뜻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명시된 과학적의 뜻은 다음과 같다. 과학의 바탕에서 본 정확성이나 타당성이 있는 것. 우리는 과학’을 이해하기 어렵고 쉽게 접근하기 힘든 학문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우리는 과학적 사고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쉽게 답변하지 못한다.


과학을 뜻하는 ‘Science’지식을 뜻하는 라틴어 ‘scientia’에서 출발한다. 어원으로부터 과학의 뜻을 헤아려 보면 과학은 사물을 구분하는 앎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과학적 사고의 의미를 이렇게 풀어서 설명하고 싶다. 과학자는 어떠한 사물이나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그것들을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수행한다. 그런 다음에 과학자는 실험 결과를 타당성 있는 지식으로 변환시키는데 이때 과학적 사고가 필요하다과학의 역사, 즉 과학사는 과학적 사고라는 인식의 틀이 어떻게 형성되기 시작했고, 발전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불멸의 과학책을 쓴 일본의 과학사학자 고야마 게이타(小山慶太)는 과학사를 몰라도 과학을 공부하는 데 지장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학사를 모르고 지나치면 과학적 사고의 생성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다.


불멸의 과학책은 과학사에 한 획을 그은 과학 고전 35권을 요약하여 소개한 책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과학 고전들의 핵심 내용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가치도 함께 설명해준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과학적 사고는 과학의 발전 과정을 통해 형성된 역사적 · 사회적 산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영국의 역사학자 허버트 버터필드(Herbert Butterfield)가 쓴 근대과학의 기원(1949)과학혁명이 언급된 책이다. 버터필드는 고대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사상에 기반을 둔 자연관이 무너지고, 본격적으로 근대과학의 원형이 나타나는 시점을 16세기와 17세기라고 주장했다. 16~17세기는 역동적이고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 시기이다. 버터필드를 포함한 대부분 과학사학자는 ‘16~17세기를 과학혁명이 일어난 시기로 본다이 책의 1장은 과학혁명에 크게 기여한 과학고전들을 소개한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1543년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을 발표한 해이다. 이 책은 견고하게 유지되어 온 천동설을 뒤엎은 과학 고전이다. 저자의 평가에 따르면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는 과학혁명의 막을 올린 책이다.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포함한 운동 법칙을 증명하여 자연 현상으로 수리적으로 계산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의 업적은 매우 혁명적인 과학적 사고에서 비롯된 성과였다. 이론과 실험을 통해 자연 현상에 접근하려고 했던 뉴턴의 고전 역학은 근대과학이 탄생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불멸의 과학책이란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킨 과학적 사고, 과학적으로 사유하는 방식의 정수를 담은 과학 고전을 말한다. 그동안 우리는 지식으로 압축된 과학을 공부하는 방식에 익숙해져서 과학적 사고를 이해할 기회를 여러 번 놓쳤다. 과학사를 공부하면 과학이 대체 어떠한 것이며 또한 어떠한 학문인지 지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과학사에는 인류가 어떠한 체계적인 과학적 사고를 해서 과학을 발전시켜 왔는가, 그 과정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과학사 없는 과학을 공부하는 일은 앙꼬 없는 찐빵을 먹는 것과 같다. 알고 보면 과학은 앙꼬가 가득한 찐빵처럼 맛있는 학문이다






[Mini 미주알고주알]

 

    

1


 

 

 

 


 

2

 

* 97

 

 라 메트리는 인간기계론[] 마무리하면서 쐐기를 박듯이 다시 한 번 대담한 결론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기계이다라고 선언했다. 유물론으로 관철된 라 메트리의 이 대담한 결론은 오늘날 현대과학 기술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 의 오자.

 

 

 

 


3

 

* 110

 

 스터클리 박사가 1752년에 쓴 아이작 뉴턴 경의 생애에 관한 회상록(Memoirs of sir Isaac Newton’s life)에는 뉴턴에 대한 귀중한 회고담이 실려 있다.

 역사적으로 재미있는 일화는 허구인 것들도 많은데, 뉴턴의 사과 이야기는 천재가 젊은 날 실제로 겪은 사건이었다.[]

 

[] 뉴턴의 사과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는 사과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출처: <[과학 오디세이] 뉴턴의 사과나무 전설’>, 경향신문, 201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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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만 해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책방이 생기길 바랐다. 작년에 필자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필자는 대구에서 가장 낙후한 서구에 오래 살았다. 작년에 서재를 탐하다책방이 서구 원대동(신 주소: 고성로)으로 이전하면서 처음으로 서구에 자리 잡은 책방이 되었다.

 

 

 

 

 

 

 

하지만 ‘책방을 탐하다는 대구 서구에서 최초로 문을 연 책방이 아니다. 책방이 처음으로 문을 연 자리는 북구 침산동(신 주소: 옥산로)이다. 책방이 있었던 자리에 큰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대구 전체를 어둡게 만든 코로나19의 그림자가 좀처럼 걷히지 않았던 시기에 서구에서 아가 책방’이 태어났다. 아가 책방의 이름은 담담책방(약칭: 담담). 책방 이름처럼 아가 책방은 코로나19의 그림자를 서서히 걷어내고, 서구 주민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담담은 올해 3월에 서구에서 태어났다. 필자는 여름에 담담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담담이 있는 동네에 마을도서관이 있다. 필자는 마을도서관에 가다가 우연히 담담을 발견했다. 책방에 가기 전에 담담 책방지기가 만든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구경했다.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책방 내부를 찍은 사진들이 있다. 그냥 사진만 봤을 뿐인데, 책방 내부는 무척 깔끔해 보였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우주지감연말 모임 전날인 16(목요일)에 지인과 함께 책방에 갔다. 필자와 동행한 지인은 대구 페미니즘 북클럽 레드스타킹의 남성 멤버다. 이분은 공연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분의 성함은 송승인데, 이 글에서는 특별히 가명을 사용했다. 이제부터 송승씨를 송승환이라고 부르겠다.

 

필자의 집에서 책방까지 걸어가는 데 걸린 시간은 15~20분이다. ‘서재를 탐하다까지 걸어가는 시간과 거의 비슷하다. ‘서재를 탐하다와 담담책방 사이의 거리도 그리 멀지 않다. 버스 타고 조금만 더 걸어가면 금방 도착할 수 있다.

 

 

 

 

 

 

 

 

 

담담이 살아있는 시간은 오후 1시부터 6시까지다. 일요일, 월요일은 책방이 숙면하는 날이다. 가끔 책방지기의 사정에 따라 책방이 조금 늦게 눈을 뜨거나 아니면 일찍 잠들 수 있다. 책방을 만나기 전에 책방 공식 인스타그램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책방은 3층에 있다. 승강기는 없고, 계단만 있다(다리가 불편한 손님은 계단에 오르는 일이 벅찰 수 있다). 계단 주변에 아기자기한 소품과 장식이 배치되어 있고, 싸늘하게 느껴질 하얀 벽에 여러 점의 그림들이 붙여져 있다.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벽에 붙어 있는 담담책방 이용 팁을 발견할 수 있다. 담담은 커피나 그 밖의 음료를 팔지 않는다. 책방에 있는 차와 커피는 손님이 직접 타서 마셔야 한다.

 

 

 

 

 

 

책방 입구에 두 개의 문이 있다. 회색 철제문이 활짝 열려 있으면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오면 된다. 미닫이문 근처에 손 소독제가 있다. 그런데 담담책방의 미닫이문은 한 번 열면 잘 닫히지 않는다. 문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손잡이를 잡고 밀어야 한다. ‘서재를 탐하다읽다 익다책방의 문도 미닫이문인데 역시나 한 번에 닫히지 않는다. 세 책방의 작은 결점(?)이 비슷하다.

 

 

 

 

 

 

 

 

책방지기의 첫인상은 정말 좋았다. 책방지기를 보면 약간 살이 빠진 ‘yureka01’ 님이 생각난다. 책방지기가 책방에 처음 온 필자를 위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대접했다.

 

 

 

 

 

 

 

 

 

 

 

미닫이문 오른쪽에 작은 책상이 있다. 책상 위에 책방 이름이 적힌 여러 종류의 책갈피가 놓여 있다. 미니어처 서재는 책방지기가 손수 조립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대형 TV에서 음악이 나온다. 성탄절을 코앞에 둔 시기에 맞게 책방 내부에 캐럴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책방지기의 가족은 제주도에서 생활하다가 대구에 정착했다. 책방지기는 제주도에 있는 모든 책방을 가봤을 정도로 제주도 여행에 대해 잘 알고 계신다. 그래서 제주도와 관련된 책과 인쇄물을 따로 놓아둔 책장이 있다. 혼자서 제주도를 여행하고 싶은 분은 담담책방에 있는 책방지기를 만나라. 그러면 책방지기가 친절하게 여행 정보를 알려준다.

 

 

 

 

 

 

 

 

책방지기의 부인은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한다. 책방지기는 부인을 만나면서 앤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같은 취향을 공유하면서 지내는 부부의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

 

 

 

 

 

 

 

 

 

 

 

책방지기는 대구에서 가장 낙후한 서구에서 책방을 열었을까? 그가 책방을 열려고 한 목적과 이유는 단순하다. 책방지기는 서구 주민들이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다. 책을 사고 싶은 손님이 오는 책방이 아니라 책을 보러 오는 손님, 잠시 책방에서 쉬고 싶은 손님, 그리고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손님들도 올 수 있는 편안한 쉼터 같은 문화 공간. 담담책방은 책방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공간이다. 담담책방의 진짜 주인은 바로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다. 책방을 찾는 손님의 목적에 따라 책방의 용도와 내부 분위기는 달라진다.

 

필자와 송승환 씨는 책방지기와 대화를 나누다가 우리가 하고 있는 독서 모임 활동을 언급했다. 그러자 책방지기는 우리에게 독서 모임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질문했다. 세 사람은 40분 동안 독서 모임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우주지감연말 모임이 있던 금요일에 다시 담담에 갔다. 두 번째 방문이다. 그날 오후를 담담에서 보내다가 담담이 문 닫을 때 연말 모임 장소인 서재를 탐하다로 갈려고 했다. 연말 모임에 항상 하는 행사가 있는데 책 선물을 모임 참석자에게 주는 일이다. 필자는 담담에서 선물용으로 고른 책 한 권과 빨간 머리 앤북 스탬프를 샀다. 포장지도 함께 샀다. 책방지기가 아주 정성스럽게 책을 포장했다.

 

책방지기는 얼마든지 책방에 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싶은데, 맨손으로 책방에 와서 맨손으로 나가는 일은 여전히 어색하고 괜히 죄송스럽다. 다음부터는 책방에서 신간을 사야겠다. 그러면 담담을 오랫동안 만날 수 있다.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는 담담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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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12-20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시부터 6시까지만 하면 그 나머지 시간은 그냥 비어있는 건가?

cyrus 2020-12-20 23:44   좋아요 0 | URL
책방지기님에 대해선 자세히 모르지만, 그 분이 예전에 NGO 활동을 하셨대요. 지금도 그 일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요즘에는 혼자 또는 여러 명이 책방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예약 서비스가 있어요. 책방 문 닫는 시간이나 책방 쉬는 날에 예약하면 책방을 이용할 수 있어요. ‘서재를 탐하다’ 책방은 이미 예약 서비스를 하고 있어요. ^^

blanca 2020-12-20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따스해지네요. 담담이 잘 되기를....대구는 저에게 고향 같은 곳이에요..

cyrus 2020-12-20 23:45   좋아요 0 | URL
확실히 대구에 동네 책방과 독서 모임 조직이 많이 생겼어요. 요즘 제일 힘든 시기인데 동네 책방과 독서 모임 조직이 잘 버텼으면 좋겠어요.

막시무스 2020-12-20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 책방이라고 불리는게 맞는것 같네요! 뭔가 포근한 느낌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번창하시길 바래요!

cyrus 2020-12-20 23:48   좋아요 0 | URL
한 달에 한 번이라고 책방에 있는 책 한 권 사야겠어요. 그래야 책방이 오래 번창할 수 있거든요. ^^

파트라슈 2020-12-21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업 이윤이 목적이 아닌 진정 자신이 좋아서 즐기는 일을 하시는 분이 연 책방이 대구에 있었군요.. 대구 서구쪽 광범위한 재개발 예약이 되어 있는데 앞으로 한 5년 뒤에 아파트 숲이 들어서도 이런 동네책방이 여전히 존재하면 좋겠습니다. 책방 감성 잊어버린지 오래인데 책방 가서 이런저런 책들 손에 잡히는 대로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던 시절이 있었죠. 지금도 가끔은 대백 교보문고나 예스24서점에 가는데 이쁜 책들 사고 싶은 충동 누르느라 혼나죠. 마음에 드는 읽고 싶은 책 한 권 사서 집으로 오는 버스안에서 이리저리 훑어보며 기대하던 그 설렘을 이제 택배기사님이 대신 제공 제공해 주고 있다는 것ㅎㅎ

cyrus 2020-12-21 11:22   좋아요 0 | URL
책방에 시간을 보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갑니다. 하지만 그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는 기분이 들어요. 책방에 다른 손님이 오면 전혀 싫지도 않고, 어색하지도 않아요. 담담 책방지기님이 편안하게 대화를 시작하는 분이라서 이 분이 입을 열면 서로 모르는 손님들끼리 대화를 하게 됩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한 공간에서 새로운 인연이 맺어지고, 친밀한 소통이 이루어지죠. ^^

psyche 2020-12-22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느낌의 책방이네요! 동네 책방들이 오래오래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미국도 동네책방들이 다 죽고 있어서... 동네 책방만이 아니라 오프라인 책방이 다 죽고 있죠. 너무 안타까워요.

Angela 2020-12-22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과 사진에서 따뜻한 공간이 느껴져서 한번 가보고 싶네요^^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권미선 옮김 / 사람과책 / 1996년 6월
평점 :
품절


 



번역서 평점


2점   ★★   C





단어가 비슷해서 헷갈리기 쉬운 제목이 있다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의 원작 소설 Ardiente Paciencia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두 개의 제목이 생겼다그 제목들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와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민음사에서 출간된 소설 번역본 제목이다최근에 쓴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에 대한 네 편의 글을 다시 읽어봤다글 속에 소설 제목을 네루다와 우편배달부라고 쓴 부분을 몇 군데 발견했다어쩌면 지난 10월 말에 있었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책 모임에 참석한 필자는 제목을 여러 번 잘못 말했을지도 모른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나오기 전인 1996년에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가 출간되었다.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를 번역한 사람은 권미선 경희대학교 외국어대학 스페인어과 교수이다이사벨 아옌데(Isabel Allende)의 소설을 즐겨 읽은 독자라면 역자의 이름을 자주 봤을 것이다.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는 정교수가 되기 전인 30대의 권 씨가 작업한 첫 번째 번역본이다부록으로 네루다의 시가 실려 있다


줄거리 언급은 생략하겠다. 필자는 이미 Ardiente Paciencia와 네루다를 주제로 한 글을 썼다. 작품에 대해 궁금한 분은 필자의 졸문을 참조하시길.


사실 이 글을 쓴 목적은 번역문에 대한 견해를 밝히기 위해서다. 글 쓰는 일을 노동의 개념으로 본다면, 오래된 절판본의 번역을 지적하기 위한 글을 쓰는 일은 필자에게 소득책을 구매한 사람이 그 책의 구매에 도움이 된 글 작성자에게 적립금을 주는 ‘Thanks to 적립금제도의 혜택―을 가져다주지 않는. 그래도 책을 읽었으면 그 책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 대부분 독자는 자고 일어나면 나오는 따끈따끈한 신간에 주목하고 열광한다. 이 사람들은 도서관이나 헌책방에 가야 볼 수 있는 옛날 책에 관심 없다. 절판된 책의 서평도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연이든 필연이든 오래된 책의 실체를 알고 싶은 누군가는 이 글을 참고할 것이다알라딘 온라인 중고시장에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를 만 원에 파는 판매자가 있다. 현재 구할 수 없는 책, 권 교수의 첫 번째 번역서라는 점에서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는 특별해 보인다. 그러나 정가 6,500원의 책을 만 원 주고 사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하면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는 번역이 좋은 책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 마리오는 주점에서 일하는 베아트리스 곤살레스를 첫눈에 보자마자 반한다. 마을에 운동장이 없어서 젊은 어부들은 주점에 설치된 테이블 축구를 즐긴다(민음사 35쪽 참조).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38쪽에 주점의 내부 광경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권 교수는 주점에 설치된 오락 기구를 핀볼 게임(pinball game)이라고 잘못 번역했다




 



 



테이블 축구와 핀볼 게임은 생김새와 작동 방식이 다른 오락 기구다. 스페인어 원서에 ‘taca-taca’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 단어는 테이블 축구를 뜻한다. 권 교수가 정말로 스페인어 원서를 참고해서 번역했다면 핀볼 게임이라는 단어가 나올 수 없다. 아니면 그녀가 테이블 게임을 핀볼 게임으로 착각했을 수 있다.

 

필자는 스페인어를 쓰거나 말할 줄 모른다. 그래서 문장 번역에 대한 개인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 스페인어 원문, 민음사 번역본의 문장(우석균 옮김), 그리고 권 씨가 번역한 문장만 인용하겠다. 번역에 대한 판단은 스페인어에 능숙한 독자들의 몫이다.




* 원문


 Estás húmeda como una planta. Tienes una calentura, hija, que sólo se cura con dos medicinas. Las cachas o los viajes.



húmeda: húmedo(축축한, 습한, 눅눅한)의 여성형 명사

planta: 식물, 풀

cachas: 기골이 장대하고 건장한 사람 

viajes: 여행

 

* 민음사(우석균 옮김), 65

 

 “넌 지금 풀잎처럼 촉촉해. 후끈 달아올랐을 때에는 약이 딱 두 가지밖에 없지. 교미나 여행.”

 어머니는 딸의 귓불을 놓고 침대 밑에서 가방을 꺼내 침대 위에 패대기쳤다.

 “가방 싸!”

 

* 권미선 옮김, 72~73

 

 

 “넌 지금 온 몸에서 식은땀이 흘러. 열병이 난 거야, 이년아. 거기엔 딱 두 가지 약밖에 없어. 몰매를 맞든지 아니면 짐을 싸든지 둘 중에 하나야. 빨리 짐이나 싸!”





현재 외래어표기법이 시행되기 한창 전에 나온 책이라서 외국 인명 표기가 어색하다. ‘프랑수아 비용(Francois Villon: 프랑스의 시인, 민음사 83쪽 참조)’을 영어 발음에 가까운 프랑소와 빌롱(93)’으로 표기되었다. 당통(Danton: 프랑스의 정치인, 민음사 119쪽 참조)단톤(130)’으로 표기한 것도 눈에 띈다.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함께 읽어 보면 확실히 문체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권 교수는 스페인어 원서에 있는 문장 일부를 두루뭉술하게 번역하거나 의역했다. 아마도 권 교수는 작품에 드러난 라틴아메리카의 정서 및 문화를 생소하게 여긴 90년대 독자들을 위해 직역보다는 가독성을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번역을 시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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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20-12-19 23: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번역 수준에 대해선 차치하더라도 제임스 조이스 책을 꾸준히 개역하는 김종건 교수의 예만 보더라도 번역서일수록 초역판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재독을 할수록 보이는 게 많은 게 책인데 하물며 번역은 더 말할 게 없죠!

cyrus님과 제가 알라딘 오는 타이밍이 잘 안 겹쳐서 그동안 격조했어요/ 하지만 책 속에서 늘 열심이실 거란 거 멀리서도 종종 생각했답니다^^

cyrus 2020-12-20 16:41   좋아요 0 | URL
초판 번역의 오류를 한 번도 고쳐본 적이 없는 역자가 다른 역자의 번역을 지적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두 달 전에 유명한 역자가 옮긴 소설을 읽었는데(이번 달에 제가 썼던 글을 보면 역자 이름과 소설 제목을 알 수 있어요), 생각보다 실망했어요. 역주도 엉망이었어요.

AgalmA님도 잘 지내셨죠? 올해는 책만 열심히 읽으면서 지냈어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글을 쓸 여력이 없었어요.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도서관이 잠깐 문 닫는 바람에 글을 쓸 의욕이 나지 않았어요. 제게 도서관은 글을 쓰기 위한 재료들이 가득한 곳이거든요. ^^

2020-12-20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12-20 16:42   좋아요 0 | URL
오역을 지적하기 전에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돼요. 그러면 “비록 표현이 어색해도 오역이 아닐 수 있구나”라고 깨닫게 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