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겨울 에디션)
이언 보스트리지 지음, 장호연 옮김 / 바다출판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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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시집을 펼친 음악가가 슬픈 시를 고른다. 

음악가의 눈물을 먹은 시는 녹아서 잉크로 변한다.

잉크가 오선지에 번지면

시는 노랫말로 다시 태어난다.










슈베르트(Franz Schubert)음률(音律) 시인이다. 그가 고른 시는 음표를 만나면 가곡이 된다슈베르트는 눈물이 많다. 그의 서글픈 곡(, 울음)이 그치면 애절한 가곡이 나온다그가 흘린 수많은 눈물방울은 가곡이 싹트는 씨앗이다슈베르트는 가곡의 왕, 눈물의 왕이다.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가 죽기 일 년 전에 만든 가곡이다. 빌헬름 뮐러(Wilhelm Muller)의 시에 음률을 입힌 연가곡(連歌曲)이다. <겨울 나그네>는 24개의 노래로 이루어져 있다. 노래의 주인공은 사랑에 실패한 남자. 깊은 절망에 빠진 그는 정처 없이 겨울 여행(Winter Journey, <겨울 나그네>의 원제)을 한다실연의 아픔을 잊지 못한 슈베르트는 쓰라린 눈물들을 모아 자신과 비슷한 겨울 나그네를 만들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이 곡을 여러 번 고쳤다고 한다. <겨울 나그네>를 만드는 데 슈베르트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삼켰을까


<겨울 나그네>는 슬픔을 머금은 가곡이다. 가곡을 듣는 청중도, 가곡을 부르는 성악가들은 노래에 취하면 슈베르트의 눈물 자국과 겨울 나그네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그들도 슈베르트와 겨울 나그네의 비애감과 닮아간다그러나 <겨울 나그네>의 선율에 눈물 자국만 있는 건 아니다. 노래가 만들어질 당시의 날씨, 유행했던 문화, 유럽의 정세까지 과거의 흔적들이 묻어 있다독일의 성악가 이언 보스트리지(Ian Bostridge)<겨울 나그네>의 선율을 해부하여 귀로 들을 수 없는 과거의 흔적들을 들추어낸다. 그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슈베르트의 삶과 참모습까지 복원한다그가 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어둡고 암울한 노래로만 알려진 <겨울 나그네>의 다양한 매력을 보여준다. 책의 부제는 집념의 해부(Anatomy of an Obsession)’.









눈물이 많은 슈베르트는 감성의 시대에 살았다. 감성의 시대는 18세기 중후반에 눈물이 유행했던 시기를 가리킨다. 작가와 예술가들은 실패한 사랑을 경험한 후에 흘린 눈물에 매혹을 느꼈다대중은 실연당한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을 읽고 울었다<겨울 나그네>감성의 시대가 끝날 무렵, 대중의 눈물이 말라버린 시기에 나온 노래<겨울 나그네>에 묘사된 겨울 풍경은 유럽 전역을 덮친 혹한기에 볼 수 있었던 일상적인 장면이다. 날씨는 우리의 감정을 지배한다. 눈물마저 얼어붙는 말쌀한 날씨는 슈베르트와 나그네를 더욱 처량하게 만든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음악 비평서도, 음악 해설서도 아니다. 음악 감상론에 가깝다. 저자는 비평하듯이 음악을 분석하지 않는다. 음악에 자신의 감정과 관심사들을 채워 넣는다. 노래를 들으면서 느낀 여러 가지 감정과 예술적 취향을 곁들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다시 만든다. 저자의 음악 감상은 원작자를 무시하거나 원곡을 파괴하는 행위가 아니다. 음악은 죽지 않는다. 음악은 청자와 연주자들의 반응을 먹으면서 자란다. 세월이 지날수록 연주 방식과 선율은 조금씩 달라진다. 음악은 느리게 변신한다. 청자와 연주자들과 함께하는 음악의 변신은 무죄다.







<책을 해부하면서 읽는 cyrus가 만든 주석>

 






[1] 서평 제목은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1969년) 노랫말(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을 패러디했다.





* 255





 생기론(생명체는 그것을 무생물과 구별 짓는 생명의 약동을 갖고 있다는 주장)19세기 말까지 지속되었겠지만, 1858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주2]에서 제시된 진화론이 힘을 얻으면서 생물 형태들 사이의 장벽, 궁극적으로는 유기체와 비유기체 사이의 장벽이 무너지게 되었다.



[원문]


 Vitalismthe doctrine that living stuff has some sort of spark or elan vital which distinguishes it from brute mattermay have lingered on to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but the impact and tendency of evolutionary theory from Darwin’s Origin of Species in 1858 on was to break down the barriers between life forms and ultimately between life forms and ultimately between the living, the organic and the inorganic.

 






[주2]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초판이 처음 나온 해는 1859년이다. 저자가 출판 연도를 착각했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펴낸 바다출판사다윈과 진화론을 소개한 책을 많이 출간했다2016년에 나온 초록색 표지의 양장본 구판에도 연도 오류가 남아 있다.





* 292





 최근에 나는 작곡가 토머스 아데스와 카네기홀에서 이 작품을 연주했다. 프로그램에는 리스트가 편곡한 바그너의 <사랑의 죽음>[주3]도 포함되어 있었다.



[주3] <사랑의 죽음>(Mild und leise)은 곡명이 아니다. 바그너(Richard Wagner)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33장 제목이다.





* 305~306

 

 토머스 드 퀸시의 열정적인 산문은 1849년에 영국 우편 마차의 잃어버린 영광을 이렇게 회상했다.[주4] 당시로서는 전례 없던 속도를 통해‥… 움직임의 영광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주4] 영국 우편 마차를 주제로 한 토머스 드 퀸시(Thomas De Quincey)의 산문은 <영국의 우편 마차>. 번역본: 유나영 옮김, 심연에서의 탄식/영국의 우편 마차(워크룸프레스, 2019).





* 452




 

 그는 1827년에 친구 에두아르트 바우에른펠트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자네야 궁정의 고문관이자 유명한 희극작가가 아닌가! 그런데 나는! 나처럼 가난한 음악가는 어떻게 되지? 나이가 들면 괴테의 하프 타는 노인[주5]처럼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빵을 달라고 구걸해야 할지도 몰라!”

 






[5] 괴테(Goethe)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안삼환 옮김, 민음사, 1999)에 나오는 인물이다. 소설 제411 마지막에 하프 타는 노인과 미뇽(Mignon)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노랫말이 소설보다 유명해서 괴테 시 선집에 수록되기도 한다.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나의 이 괴로움 알리라!

혼자, 그리고 모든 즐거움과 담 쌓은

곳에 앉아

저 멀리 창공을

바라본다.

, 날 사랑하고 알아주는 사람은

먼 곳에 있다!

이 내 눈은 어지럽고

이 내 가슴 타누나.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나의 이 괴로움 알리라!


 

(안삼환 옮김,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 1중에서,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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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05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 패러디가 멋집니다. 덕분에 겨울 나그네를 다시 감상하려 합니다.

cyrus 2025-12-08 06:11   좋아요 0 | URL
글 제목을 뽑느라 나름대로 생각 많이 했어요.. ㅎㅎㅎ

북프리쿠키 2025-12-06 2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cyrus 2025-12-08 06:1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북프리쿠키님도 서재의 달인에 되신 거 축하드립니다 ^^
 
침묵의 마법 -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가 그려낸 고요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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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사람을 그리지 못해서 슬픈 화가를 아시는가? 이 화가는 모델의 얼굴만 보면 긴장한다. 그가 인물화를 그리려고 하면 붓이 뻣뻣해진다그리다 만 그림이 있는 캔버스는 수줍은 화가를 지켜주는 가림막이다화가는 다시 그려보지만, 붓이 가는 대로 그리지 못한 인물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누드 그림도 못 그린다.


화가는 사람보다 나무, 바위, , 바다를 좋아한다. 그는 도시를 여행하면 자연을 유심히 관찰하는 습관이 있다화가는 인물화를 포기하고 풍경화를 그리는 일에 매진한다. 그런데 그가 그린 풍경화는 독특하다. 그림에 나온 인물은 한두 명, 많으면 세 명이다. 인물화에 자신 없던 화가는 사람을 아주 작게 그리거나 뒤돌아선 모습을 그렸다. 사람 한 점 없는 풍경화는 쓸쓸하고, 적막하고, 그윽하다.









사람의 눈을 마주치지 못해 풍경화만 열심히 그린 독일의 화가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는 자신의 단점을 알고 있었다. 동료 화가들은 인물화와 누드 그림 실력이 형편없는 프리드리히를 비웃는다. 쓸쓸한 공기가 흐르는 풍경화는 인기가 없다프리드리히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림을 그린 자신을 애벌레에 비유한다외로운 애벌레는 고치와 같은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그린다대중과 후대의 화가들에게 인정받는 화려한 나비가 될지, 아니면 어둠 한구석에 있는 구더기로 남게 될지 시대에 맡기겠다고 담담하게 말한다침묵의 마법백 년 동안 무명의 구더기로 지내다가 우여곡절 끝에 나비가 된 화가의 일생을 들려준다









프리드리히의 대표작 <뤼겐의 백악 절벽>은 한때 다른 화가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프리드리히의 작품으로 확정되기까지 백 년이나 걸렸다. 백 년 묵은 구더기가 어두운 고치를 뚫고 나비가 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20세기에 도착한 프리드리히의 날갯짓은 부자연스러웠다20세기 독일은 프리드리히가 살았던 19세기 독일과 너무나도 달랐다. 20세기 독일은 히틀러(Adolf Hitler)의 나치(Nazi)가 휘어잡고 있었다. 프리드리히가 20세기에 날갯짓을 하는 데 도움을 준 미술사학자는 열렬한 나치즘 신봉자였다히틀러에 경도된 미술사학자는 프리드리히를 강인한 게르만인으로 둔갑시켰다강인한 게르만인은 나치가 선호하는 인간상이다프리드리히는 시대를 또 한 번 잘못 만났고, 본의 아니게 나치에 복무하는 나비가 되었다.


프리드리히의 풍경화는 단순히 자연을 묘사한 그림이 아니다. 화가는 눈으로 본 자연을 똑같이 그리지 않는다. 자연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프리드리히의 풍경화는 거의 추상화에 가깝다. 그에게 자연은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한 소재다프리드리히는 예술학교 정교수로 채용되지 못해서 실망했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빗댄 <좌절된 희망>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프리드리히의 그림에는 여러 가지 색깔로 이루어진 여백이 칠해져 있다. 감상자는 풍경화의 여백에 자신이 느낀 것들을 그릴 수 있다. 수많은 감상자는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프리드리히의 풍경화에 다시 그렸다독일의 작가 클라이스트(Heinrich von Kleist)는 프리드리히의 <바닷가의 수도사>를 보자마자 언젠가 자신을 덮치게 될 무거운 절망감을 느꼈다(클라이스트는 34세에 자살했다). 히틀러를 지지한 미술사학자들은 그림 속에 고대 게르만인의 강인한 정신이 있다고 주장했다. 나치에 세뇌당한 독일 군인들은 수첩에 그려진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보면서 전투 의지를 높였다.


세상은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외면하지 않았다. 다만 세상이 변할수록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졌다프리드리히를 심하게 왜곡한 감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잊힐 뻔한 화가를 재조명하게 해주었다예술은 시대적인 분위기와 이데올로기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때론 정치 체제 선전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감상과 해석의 범위가 더 넓어진다그래야 대중은 예술에 다가갈 수 있다.


예술 작품은 예술가가 혼자서 만든 것이 아니다. 예술 작품은 화가가 죽어서도 살아 있으며 감상자의 다양한 생각을 흡수한다. 감상자를 만난 예술 작품은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다감상자의 해석은 예술 작품 일부가 되기도 한다작품 속에 숨어 있는 창작자의 해석과 작품 밖에 있는 감상자의 해석을 구분 짓는 경계는 흐릿해진다침묵의 마법예술이 창작자의 감정과 경험으로만 빚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살아 있는 예술은 늘 열려 있다. 감상자의 해석을 막는 예술 작품은 매력이 없다. 프리드리히의 풍경화는 잘 그렸다는 이유만으로 유명해지지 않았다. 시대와 불화했던 프리드리히는 아틀리에에 갇히다시피 살았지만, 풍경화는 모든 감상자를 위해 활짝 열어 놓은 그림이다. 시대를 불문하고 수많은 감상자는 화가가 되어 완성된 그림 위에 다시 그렸다. 그림을 그린 감상자들 덕분에 프리드리히는 유명해질 수 있었다. 사람들의 눈빛을 듬뿍 받은 그는 독일 낭만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나비가 되었다.






<책의 여백에 적은 cyrus의 주석>




* 227


 마르셀 프루스트는 프리드리히가 숨겨놓은 메시지를 정확하게 이해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프루스트는 이렇게 충고한다. “언제나 당신 인생 위에 한 조각 하늘을 간직하시오.” [주]



[] 저자가 인용한 프루스트의 문장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스완네 집 쪽으로」(1권, 김희영 옮김, 민음사, 2012년)에 나온다.



 “어린 친구, 언제나 그대 인생 위에 한 조각 하늘을 간직하게나.” 


(김희영 옮김, 1권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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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품은 미술관 - 예술가들이 바라본 하늘과 천문학 이야기
파스칼 드튀랑 지음, 김희라 옮김 / 미술문화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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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우주는 무한한 도화지다. 사람들은 까만 도화지에 알록달록한 상상력을 마음껏 수놓았. 바빌로니아 지역에 살았던 칼데아 사람(Chaldean)은 밤의 화가들이었다. 그들은 누워서 별 하나하나 눈 맞춤했다별빛을 듬뿍 받은 화가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밤의 화가들은 별을 그러모아서 여러 가지 동물을 그려 넣었다. 별들을 연결해서 만든 동물 그림은 별자리가 되었다. 밤의 이야기꾼들은 별자리에 어울릴만한 신화를 만들었다. 신화를 믿는 사람들은 밤하늘에 위대한 영웅들의 모습을 새겼다.


붓을 든 화가들은 한 폭의 캔버스에 우주를 담으려는 야망을 품었다. 대부분 화가는 우주를 몰랐다. 하지만 잘 모를수록 우주의 모습은 더 잘 그려진다. 화가들은 상상력을 동원해서 자신만의 별과 우주를 만든다.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천문학자들은 최대한 정확하게 별과 행성을 그린다. 거대한 도화지였던 우주는 그림이 되었다코스모스(cosmos, 우주)는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먹으면서 자라난다.


우주를 품은 미술관: 예술가들이 바라본 하늘과 천문학 이야기멀티버스(multiverse) 화보. 과학에서 말하는 다중우주(多重宇宙)는 실험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저 멀리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우주들을 직접 볼 수 없다그러나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서양 예술가들이 그린 다중우주는 감상할 수 있다미술관에 코스모스(우주)가 울긋불긋 만개한다책의 저자는 문학 교수다. 저자는 그림 작품들을 설명할 때 우주와 행성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들을 인용한다시인과 소설가들도 우주에서 영감을 찾았다.








예술가들이 상상한 멀티버스는 시대별로 다르다중세인들의 우주는 신의 피조물이다. 태양은 예수의 신성함을, 달은 성모 마리아의 순결함을 상징한다. 성직자와 교부 철학자들은 성경 구절에 부합하는 우주를 좋아했다. 중세 예술가들은 성경을 펼쳐서 우주를 찾았다








실험과 관측을 중시하는 천문학자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중세 우주론의 한계가 드러났다. 코페르니쿠스(Copernicus)갈릴레이(Galileo Galilei)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주장했다. 천문학자들이 이용한 망원경은 우주를 좀 더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화가들이 풍경을 그릴 때 사용한 카메라의 조상)









낭만주의자의 우주는 우울하고 암울하다낭만주의 예술가들이 묘사한 석양은 태양의 뜨거운 생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하늘이다. 희미한 석양은 힘이 없다. 인간처럼 우주 또한 쇠퇴하고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거인 같은 망원경과 우주를 홀로 떠도는 인공위성 덕분에 우리는 우주와 행성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대에 살았던 밤의 화가들은 토끼가 살고 있는 달을 상상하면서 그렸다. 과학의 혜택을 받고 사는 현대인들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선명한 달 사진을 찍을 수 있다그래도 예술가들은 여전히 우주를 상상한다. 우주를 정확하게 아는 과학은 우주를 자유롭게 상상하는 예술을 죽이지 못한다








예술로 피어난 코스모스는 영원하다.









<별의 먼지로 만들어진 cyrus가 만든 주석과 정오표>







* 106




 

 아폴리네르시집 알코올(1913)에서 과감하게 목이 잘린 태양이라 표현함으로써 태양의 언어를 혁신했다. [1]



[1] 목이 잘린 태양이라는 시구가 나오는 시는 알코올에서 첫 번째로 실린 변두리. “목이 잘린 태양은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기욤 아폴리네르, 황현산 옮김, 알코올, 열린책들, 2010)






* 145




 

아르튀르 랭보, <태양과 육체>, 시집, 1870 [주2]

 


[주2랭보가 처음으로 발표한 시집지옥에서 보낸 한철이다. 1873년에 발표되었다. 이 시집이 나오기 전에 랭보는 잡지를 통해 시를 발표했다. 1870년에 랭보의 이름이 실린 시집은 나오지 않았다. <태양과 육체>1870년에 쓴 시다.



[우리말로 번역된 <태양과 육체>가 실린 랭보의 시 선집]

 

* 최완길 옮김, 지옥에서 보낸 한철(북피아, 2006, 절판)


* 한대균 옮김, 나의 방랑(문학과지성사, 2014)



폴 베를렌(Paul Verlaine)은 랭보의 연인이다. 우리말로 번역된 베를렌의 시 선집은 그리 많지 않으며 절판되었다. 베를렌의 시 <하얀 달> 전문을 볼 수 있는 번역본 베를렌 시선(윤세홍 옮김, 지만지, 2013)이 유일하다.






* 159~160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소련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놀라운 업적을 칭송했다레비나스는 가가린이 한 시간 만에 인간이 모든 지평선을 넘어 존재했음을 보여준 첫 번째 사람이고 우주에서는 그를 둘러싼 모든 게 하늘이었다고 말했다[주3]



[주3출처는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에세이 Heidegger, Gagarin and Us(하이데거가가린 그리고 우리, 1961)이 글은 <Difficult Freedom: Essays on Judaism>(1963)에 수록되었다.



















[주4]


* 186

토성의 위성 수: 82

 

* 206

목성의 위성 수: 79

 

* 218

천왕성의 위성 수: 27

 

* 220

해왕성의 위성 수: 14



[주4토성, 목성, 천왕성, 해왕성의 위성 수가 정확하지 않다. 토성은 태양계 중 가장 많은 위성을 가진 행성이다. 국제천문연맹(International Astronomical Union, IAU)이 인정한 토성의 위성 수는 274. 목성의 위성 수는 95, 천왕성의 위성 수는 28, 해왕성의 위성 수는 16.

 

(출처: NASA Jet Propulsion Laboratory, ‘Planetary Satellite Discovery Circumstances’, https://ssd.jpl.nasa.gov/sats/discovery.html)







* 215





에베레스트산 8,844m [주5]


 

 


[주5] 에베레스트산의 높이 측량은 1849년부터 시작되었다. 중국, 인도, 미국이 산의 높이를 측정했는데, 측량법이 달라서 높이가 다르게 나왔다. 1954(또는 1955) 인도가 측정해서 확인된 산의 높이는 해발 8,848m였다. 처음으로 인정된 에베레스트산 높이 값이다


2005년 중국이 측정했을 때는 약간 줄어든 8844.43m가 나왔다. 8,844m는 바위 위에 쌓인 눈을 제외한 상태에서 측정된 높이 값이다


1999년에 미국은 GPS로 측정해서 확인된 산의 높이가 8,850m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의 측량 결과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공식 높이는 해발 8,848m


에베레스트산은 지각 변동의 영향을 받으면 높아진다. 2015년 히말라야에 지진이 발생하고 5년이 지나서 중국과 네팔이 공동 측량을 착수했고, 1m 높아진 8,848.86m로 확인되었다.


(출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실측해 보니 1m가량 높아졌다>, 연합뉴스, 2020128일 입력,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2067863?sid=104)






* 259




 


 혜성의 꼬리와 사람의 머리카락이 비슷하므로 혜성은 여성의 이미지와 강력하게 동일시된다. 예를 들어 프루스트는 꽃다운 소녀들의 행렬이 바다를 향하는 것을 반짝이는 혜성처럼 둑을 따라나아간다고 표현했[주6]

 


[주6] 저자가 인용한 문장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2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1919) 2고장의 이름 : 고장에 나온다프루스트 특유의 길고 늘어진 문장의 첫 부분에 해당한다.



 방파제를 따라 빛나는 혜성처럼 앞으로 나아가던 그 무리 안쪽에서 소녀들은 주위 군중이 자기들과는 다른 인종인 듯, 또 그들의 고통 역시 자기들 마음속에 어떤 유대감도 불러일으킬 수 없다고 판단한 듯 군중을 바라보지 않는 것 같았고, 나사가 풀린 기계처럼 보행자들을 피하는 수고도 할 필요 없다는 듯, 멈춰 선 사람들에게도 길을 비키도록 강요했으며, 기껏해야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접촉도 꺼리는 어느 겁 많은 또는 분노한 노신사가 허둥대거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도망이라도 치면, 자기들끼리 서로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김화영 옮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2중에서, 255,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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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08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도 흥미롭지만 책의 오류를 잡아내는 cyrus님의 수고와 능력이 항상 경이롭습니다.

cyrus 2025-09-10 06:51   좋아요 1 | URL
책을 읽다가 궁금한 내용이나 무언가 의심스러운 내용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편이에요. ^^;;

서니데이 2025-09-09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위의 댓글 쓰신 분과 같은 생각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오타가 있거나 오류가 있을 때도 있지만, 그냥 지나가게 되거든요.^^
지난 월요일에 개기월식이 있어서인지, 우주와 행성의 이야기가 좋네요.
cyrus님 잘 읽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cyrus 2025-09-10 06:53   좋아요 0 | URL
알고 있어서 오류를 잘 잡아낸다기보다는 모르는 것이 많아서 오류를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요. 오류를 확인하면서 제가 몰랐다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되거든요. ^^
 
왜 베토벤인가
노먼 레브레히트 지음, 장호연 옮김 / 에포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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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4점  ★★★★  A-

 








귓속에 바이러스가 들어 있다. 여러분! 귓속에 바이러스가 살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귀에 기생하는 음악 바이러스



귀 벌레(earworm)는 음악 바이러스의 매개체다. 귀 벌레는 사람들이 즐겨 듣는 노래에 달라붙어 있다. 달팽이관으로 들어간 귀 벌레는 음악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음악 바이러스가 뇌를 침투하면 머릿속에 멜로디가 계속 맴도는 증상이 일어난다.








음악은 다양하고, 지금도 계속 확장되고 있다. 그런 만큼 음악 바이러스의 종류도 많으며 질긴 생명력을 가졌다. 가장 유명한 음악 바이러스는 베토벤 바이러스(Beethoven Virus)이다. 2000년에 처음 나온 클래식 음악 바이러스로, 베토벤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8비창’> 3악장의 변이체(변주곡)다. 베토벤 바이러스가 많이 나타나는 곳은 오락실이다펌프라는 이름이 더 유명한 댄스 리듬 게임 <Pump It Up>을 하면 베토벤 바이러스를 들을 수 있다.


멜로디가 뇌에 잘 꽂히는 사람은 음악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쉽다. 멜로디가 반복해서 들리면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다. 우리를 괴롭히는 단점 하나만 빼면 음악 바이러스에 좋은 점이 훨씬 많다.


영국의 클래식 음악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Norman Lebrecht)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바이러스보균자. 그는 말러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썼으며, 2010년에 쓴 왜 말러인가?: 한 남자와 그가 쓴 열 편의 교향곡이 세상을 바꾼 이야기(Why Mahler?, 이석호 옮김, 모요사, 2010년)가 국내에 번역되었다.


2020년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었다. 세계의 모든 음악인이 베토벤의 곡들을 연주해야 할 그해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를 집어삼켰다연주회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음악인들의 악기는 침묵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습격에 쓰러진 음악인들의 부고까지 들려오자, 레브레히트는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마음이 약해진 그를 다독여준 것은 베토벤의 음악, 베토벤 바이러스였다.


베토벤 바이러스를 받아들인 레브레히트는 말러에 이어서 베토벤의 삶과 음악을 톺아본다왜 베토벤인가(Why Beethoven)는 전 세계 음악인들의 귓속에 살고 있는 불멸의 베토벤 바이러스를 소개한 책이다이 책은 100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마다 베토벤의 곡들과 그 곡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베토벤의 대표작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범작들과 졸작이라 불리는 작품들도 나온다. 저자는 젊은 시절에 클래식 음반을 수집했다. 명반(名盤)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베토벤 연주곡 음반들뿐만 아니라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그래도 들어줄 만한 음반들을 소개한다오랫동안 귓속에 베토벤 바이러스를 달고 살아온 클래식 음악광과 베토벤의 음악을 제대로 듣고 싶은 입문자 모두에게 유용한 정보다.


위인전에 갇힌 베토벤은 음악 천재. ‘위인 베토벤은 어린 독자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지 않는다. 결국 어린 독자들은 그가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 아닌 음악인으로서 힘들게 살아온 과정을 읽는다. 위인전에 베토벤의 작품들, 그중 가장 유명한 대표작들의 제목만 언급된다. 그러나 작품들은 작곡가의 천재적인 능력만 돋보여주는 장식품으로 전락한다. 따라서 위인전은 베토벤의 생애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간혹 사실과 다른 내용을 덧붙여서 쓰는 위인전 지은이도 있다.


왜 베토벤인가는 베토벤 전기(傳記)저자가 다시 만난 베토벤은 천재 베토벤이 아니다.음악 바보 베토벤이다평생 음악만 바라보면서 살아온 베토벤. 음악과 동거한 베토벤의 방은 지저분했다. 음악을 껴안은 베토벤은 소변이 가득한 요강을 비우는 것을 잊었다베토벤은 반권위주의자. 그는 귀족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음악을 만들지 않았다. 베토벤은 반전통주의자. 그는 오랫동안 유행한 작곡 형식을 거부했다. 베토벤은 기존의 형식에 벗어난 멜로디를 만들었다전통적인 멜로디에 익숙한 당대의 음악인들은 베토벤의 곡이 귓속을 거칠게 문지르는 소음으로 느꼈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곡(<엘리제를 위하여>, <월광>, <비창>)을 제외한 베토벤의 음악은 감상자뿐만 아니라 연주자들도 대단히 어려워한다


레브레히트는 독자와 감상자들을 위해 베토벤의 음악이 어려운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한다왜 베토벤의 음악은 어려운가? 베토벤은 혼돈의 음악을 제대로 만들려고 했다. ‘조화로운 음악은 대부분 화려하고, 감상자를 편안하게 해준다. 이와 정반대인 혼돈의 음악은 거칠다연주 중간에 나와서는 안 되는 악기의 소리가 갑자기 튀어나올 때가 있다감상자는 다음에 어떤 멜로디가 나올지 예상할 수 없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음악인들이 사랑하는 음악 바이러스다연주자들의 숙원은 베토벤의 곡을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이다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는 베토벤이 만든 9개의 교향곡을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했다. 바흐(J. S. Bach)<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로 천재 피아니스트로 급부상한 글렌 굴드(Glenn Gould)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을 카라얀(Karajan)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마력은 문학과 미술에도 뻗어 있다음악 바이러스는 작가들의 펜에 침투하여 한 편의 문학으로 다시 태어난다. 톨스토이(Tolstoy)는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에 영감을 얻어 동명의 소설을 썼다. 앤서니 버지스(Anthony Burgess)는 소설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교향곡 9번 합창’> 피날레 환희의 송가를 끔찍한 폭력의 송가로 만들었다.






 18974, 구스타프 말러가 빈 국립 오페라단에 입성한 그 주에 구스타프 클림트는 반항적인 예술가들을 모아 빈 분리파 운동을 시작했다. 5년 뒤에 클림트는 황금 지붕을 얹은 분리파 건물을 지어 전시회를 열었다. 막스 클링거의 베토벤 조각상(영웅적이고 옷을 거의 다 벗은 모습)이 중앙 홀에 놓였고, 벽 위쪽에 그려진 벽화에는 황금 갑옷을 입은 기사가 보이는데 용모가 영락없는 말러다.

 

(301)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는 베토벤 사망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02년에 벽화 <베토벤 프리즈>(The Beethoven Frieze)를 그렸다.


감상자를 압도하는 베토벤의 음악은 독재자를 미화하거나 찬양하는 곡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대중은 베토벤의 음악을 오해했고, 베토벤의 반권위적인 참모습을 알지 못했다. 왜 베토벤인가는 독자와 음악광들을 향해 대단히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왜 베토벤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가? 그 답은 이 책 속에 있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절대로 해롭지 않다

음악 바이러스는 잘못이 없다

음악을 곡해하는 나쁜 귀(bad ear)가 달린 사악한 인간, 

악귀(bad ear)가 달린 악귀(惡鬼)가 음악을 오염시킨다

그들의 귓속에 음악은 없다. 귓속에 ()이 들어 있다.







<cyrus가 만든 주석>








초판 1쇄 발행 2025328[1]



[1]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날짜는 326일이다.





* 37





 마르셀 프루스트는 할머니가 연주하는 <비창>을 듣더니 이 곡을 베토벤 소나타의 스테이크와 감자라고 했다. [주2]


[주2] <비창>이 언급된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글은 존 러스킨(John Ruskin)의 책 참깨와 백합서문, <독서에 관하여>. <독서에 관하여>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유정화 · 이봉지 옮김, 민음사, 2018)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유예진 옮김, 은행나무, 2014)에 수록되어 있다.






 “박식한 요리사일지는 몰라도 감자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는 제대로 할 줄 모르는군요.” 감자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 단순하기 때문에 도리어 매우 어려운 이 요리는 요리 경연의 이상적인 주제로요리의 비창」 소나타이며[생략]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중에서, 138)


 “박식한 요리사일지는 몰라도, 그녀는 사과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는 할 줄 모르네요.” 사과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 단순하다는 자체로 어려운 이 요리는 바로 그 때문에 요리대회 경연에 이상적인 음식이고, 요리 분야의 <비창 소나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으며, [생략]

 

(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중에서13)



스테이크와 감자의 프랑스어 원문은 ‘Le bifteck aux pommes’. 두 책의 번역문이 다르다. ‘pomme’는 사과와 감자를 뜻하는 단어.






* 58




 

 체코에서 태어나 크로아티아에서 자란 알프레트 브렌델은 1951년 빈에서 프란츠 리스트의 <크리스마스트리 모음곡>으로 음반 데뷔를 했다[주3] 미국 음반사 복스-턴어바웃이 빈 필하모닉을 가짜 이름을 내세워 고용하고는 브렌델을 데리고 베토벤의 피아노곡 전곡 녹음에 나섰다.


[주3] 이 책에 언급되지 않은 한 가지 사실. 복스-턴어바웃(Vox turnabout)에 고용된 알프레트 브렌델(Alfred Brendel)이 첫 번째로 녹음한 곡은 프로코피예프(Sergei Prokofiev)<피아노 협주곡 5G장조 op. 55>이다. 이 곡은 브렌델의 첫 음반이 발매되기 일 년 전인 1950에 녹음되었다.






* 160~161

 

 베토벤이 매독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책들이 있다. 하지만 그가 매독으로 고생했다는 임상적 증거나 부검 증거는 거의 없다는 것이 최근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주4]






[주4] 이미 반증되었고, 근거가 빈약하지만 베토벤이 매독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학자의 견해를 비교해서 읽어보기를 권한다. 참고문헌: 데버러 헤이든, 이종길 옮김, 매독(길산, 2004)





* 286




 

 제러미 덴크[주5]농담이 섞인 진지한 작품이 아니라 () 곡 전체가 웃음바다이며 웃음이 곡의 핵심이라고 느꼈다.






[주5] 제러미 덴크(Jeremy Denk)는 미국의 피아니스트다. 작년에 그가 쓴 책 이 레슨이 끝나지 않기를: 피아니스트 제러미 덴크의 음악 노트(장호연 옮김, 에포크)가 출간되었다이 책의 부록은 제러미 덴크가 추천하는 플레이리스트 목록이다. 이 목록에도 베토벤의 명곡들이 포함되어 있다.

 






* 451




 

 베토벤은 아르놀트 쇤베르크처럼 숫자에 신경 쓰지 않았다. [주6]


[주6] 쇤베르크(Arnold Schonberg)는 불길한 숫자로 알려진 13을 무척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13일에 태어난 것을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13 공포증이 심한 쇤베르크는 악보에 쪽수를 적을 때 13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쇤베르크는 713일 금요일에 세상을 떠났다.





* 482





 웨일스 시인 딜런 토머스가 말한 빛의 스러짐” [주7]


[주7] 빛의 스러짐(The dying of the light)’이 나오는 딜런 토머스(Dylan Thomas)의 시는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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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예스카스 2025-04-22 1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멋진 후기를 남겨주시다니!
장바구니 고민은 끝입니다^^

cyrus 2025-04-27 22:57   좋아요 0 | URL
생김새는 벽돌 책이지만, 베토벤의 삶과 작곡 비화, 베토벤 연주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어서 어렵지 않을 거예요. ^^
 
블루 베이컨 - 프랜시스 베이컨의 파란색과 함께 통과하는 밤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야닉 에넬 지음, 이재형 옮김 / 뮤진트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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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붓질은 포악하다

그는 붓을 휘두르면서 모델의 얼굴을 때린다







붓에 맞은 입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찌그러진다

검정, 회색, 빨간색이 불길하게 뒤섞인 피부는 거칠거칠하다

베이컨이 그림을 그릴 때 자주 사용한 빨간색은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처럼 보인다.







베이컨의 초상화와 인물화를 만나게 되면 지옥도(地獄圖)가 떠올린다.고어(gore: )’로 가득한 그림들이 유명해지자, 대중은 베이컨을 폭력의 화가로 기억한다.


하지만 베이컨은 자신의 그림에 폭력성이 드러난다는 대중의 감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본인은 즐거운 그림을 그렸다고 말한다. 그는 야만과 전쟁이 판치는 이 세상이야말로 자신의 그림보다 더 폭력적이라고 비판한다베이컨의 일침은 틀리지 않았다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희곡 닫힌 방에서 타인은 지옥이라고 했다. 베이컨은 한술 더 떠서 지옥은 바로 이 세상이야!”라고 말했다.


베이컨은 자신의 그림에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고 공공연히 주장했다. 그러나 어두침침한 그의 그림은 볼 때마다 무섭다. 여기서 베이컨 그림의 기괴한 매력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은 고민한다. 폭력잔혹. 살벌한 단어를 쓰지 않고, 베이컨의 그림이 덜 무섭게 보이도록 대중에게 소개할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 주는 책이 바로 블루 베이컨(Blue Bacon)이다.


이 책을 쓴 야닉 에넬(Yannick Haenel)은 청소년 때부터 베이컨을 좋아한 작가다. 그는 베이컨의 작품들이 전시된 퐁피두 센터(Pompidou Center), 그것도 한밤중에 혼자 관람한다.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들을 혼자서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일은 축복이다. 하지만 저자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는 베이컨의 그림들과 함께한 하룻밤이 마치 지옥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회상한다.


저자는 베이컨이 만든 지옥의 쓰라린 맛을 느낀 이후로 편두통에 시달린다하룻밤의 그림 감상의 후유증이다하지만 푸른 기운이 감도는 베이컨의 또 다른 그림을 보자마자 그의 머리를 콕콕 찌르던 고통이 말끔히 사라진다. 편두통에 짓눌린 저자의 마음을 치유해 준 베이컨의 그림은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Water from a Running Tap)이다이 그림은 베이컨이 세상을 떠나기 십 년 전인 1982년에 완성되었다<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난폭한 베이컨이라는 수식어가 나오게 만든 검은색이 가득한 그림들과 다르게 아주 평범하다. 노란색 배경 한가운데에 푸른색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만 그려져 있다. 저자는 베이컨의 그림에서 튀어나오는 파란색에 흠뻑 젖는다. 



 나는 입을 크게 벌리고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 앞에 서 있었다. 물은 더할 나위 없이 시원했다. 물의 시원함은 우리를 가득 채워준다. 그 시원함 덕분에 유익한 빛이 내 머리 주위로 흘러들었다. 나는 점점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숨도 잘 쉬었다.


(47쪽)



그는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를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기분 좋은 청량함을 느낀다저자는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파란색상처 없는 나라로 이끄는 빛으로 비유한다<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파란 천국이다


블루 베이컨 그림 없는 미술 책이다저자는 그림을 보여주지 않고, 오로지 단어로 이미지를 설명한다이 책을 펼치자마자 베이컨의 기괴한 그림들이 불쑥 튀어나와 독자를 놀라게 하는 일은 없다유명한 블랙 베이컨’을 만나기 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베이컨의 파란색 그림을 먼저 알고 있으면 좋다. 그러면 검은색에 가려져 있던 색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베이컨은 붓으로 자신과 인물들을 분해했다블루 베이컨베이컨의 삶에 칠해진 검은색을 분산시켜서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주는 프리즘이다.






<cyrus의 주석>

 



* 21




 

 데이비드 실베스터와의 인터뷰[1]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곧 살아있는 사람을 잡기 위해 덫을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 42




 

 데이빗 실베스터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흠잡을 데 없이그려진 자신의 가장 완벽한 작품으로 언급한다.


[1] 데이비드 실베스터, 주은정 옮김,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프랜시스 베이컨과의 25년간의 인터뷰 (디자인하우스, 2015).





* 51




 

 앙토냉 아르토반 고흐의 까마귀가 지구를 황폐화하는 악령에 맞서기 위해 세워진 허수아비라고 확신했다. [2]

   

[2] 앙토냉 아르토, 이진이 옮김, 사회가 자살시킨 자, 반 고흐 (읻다, 2023), 조동신 옮김, 나는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본다: 사회가 자살시킨 사람 반 고흐 (도서출판 숲, 2003, 절판)





* 58




 

 우리는 우리 삶의 질료가 갇혀 있는 이 같은 고통을 인식하지만, 베이컨은 그것에 예술이라는 형식을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견딜 수 있는 경험으로 변화시킨다. 어느 정도 예민함의 차원에서는 사는 것이 참을 수 없지만, 것의 극히 짧은 순간들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그림은 그 고통에 굴하지 않고 우리를 풍요롭게 해준다. 랭보 나는 나의 풍요가 어디서나 피로 얼룩졌으면 좋겠어라는 싯구[3]에 그것이 있다.

 

[3] 시구(詩句)’가 올바른 표현이다. 인용된 시구가 있는 시의 제목은 착란 I: 어리석은 처녀. 출전: 랭보, 김현 옮김,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민음사, 2016).





* 78




 

 조르주 바타유는 라스코의 벽을 마주하고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이 풍요로움의 놀라운 광채를 위해 태어났다고 느낀다.”

   

[4] 조르주 바타유, 차지연 옮김,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 / 마네 (워크룸프레스, 2017).





* 119




 

 질 들뢰즈는 그가 베이컨에 관해 쓴 저서[5]에서 다음과 같이 외친다. “불쌍한 고기 같으니!” 이보다 더 진실한 외침은 없다. 그날 밤 베이컨의 그림들은 이렇게 소리쳤다.


[5] 질 들뢰즈, 하태환 옮김, 감각의 논리 (민음사, 2008).





* 128




 

 랭보의 시에 등장하는 사랑의 열쇠라는 시구[주6]는 나를 꿈꾸게 한다.

   

[주6사랑의 열쇠이라는 제목의 시에 나온다. 출전랭보김현 옮김지옥에서 보낸 한 철 (민음사, 2016).





* 163




 

필립 솔러스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





* 166




 

 15세기에 회화 예술을 이론화한 레오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회화란 분수의 표면을 예술적으로 껴안는 것이라고 썼다. [주7]


[7]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김보경 옮김, 회화론 (기파랑에크리, 2011), 노성두 옮김, 알베르티의 회화론 (사계절, 2002년, 절판).





* 177~178







 

 1953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여러 개의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 레슬링 장면을 기록한 뮤브리지의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두 인물또는 레슬러라는 제목으로 불린다.

 

뮤브리지 마이브리지(Eadweard James Muybridge)

 




* 217




 

 앙드레 브르통<나드자>(Nadja)[주8] 서두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누가 나를 괴롭히는가?”라는 질문을 더 선호했다.

   

[주8앙드레 브르통, 오생근 옮김, 나자 (민음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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