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생존자들 - 다섯 번의 대멸종을 벗어난 포유류 진화의 여섯 가지 비밀
스티브 브루사테 지음, 김성훈 옮김, 박진영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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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전 세계 고생물학자들이 모여서 영화 <쥐라기 공원>(Jurassic Park)을 다시 만든다고 상상해 보자이야기가 확 달라질 것이다. 1993년 원작 영화에 나오는 생물들이 몸집이 큰 공룡이라면, 고생물학자들이 만든 영화는 공룡과 포유류들이 동시에 등장한다공룡과 포유류가 같이 나오는 영화는 원작을 파괴한 것이 아니요, 과학적 오류도 아니다. 공룡은 해가 뜬 시간에 어슬렁거렸다. 포유류는 하루의 절반을 땅속에 지내다가 밤이 되면 마음껏 돌아다녔다공룡과 함께 살았던 포유류는 현재 포유류의 모습과 완전히 다르다. 포유류의 조상은 대체로 몸집이 작았다.


크기가 작은 포유류는 거대한 공룡에 비하면 평범하게 보인다. 그러나 작다고 무시할 수 없다. 포유류는 극단적으로 변하는 기후 변화에 잘 적응해서 살아남은 생물이다. 만약에 포유류마저 공룡과 함께 멸종했다면 인간은 지구에 나타나지 못했다. 인간은 스스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 부르면서 다른 동물종보다 슬기로운 존재(sapiens)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포유류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경이로운 생존자들을 쓴 저자 스티브 브루사테(Steve Brusatte)는 공룡을 좋아해서 연구한 고생물학자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공룡에 대한 애정을 잠시 접었고, 포유류에 집착하게 됐다. 공룡 박사는  왜 포유류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포유류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다. 수백만 년을 지구에서 살아온 인간의 역사는 포유류 역사의 끄트머리에 해당한다. 인간은 포유류와 다를 바가 없다. 인간과 포유류는 젖샘을 가지고 있다. 젖샘은 젖을 분비하는 기관이다.


고생물 하면 우리는 항상 공룡을 먼저 생각한다공룡을 좋아하는 우리는 공룡 프레임에 갇혀 있다지금까지 발굴된 고대 포유류 화석의 수가 공룡 화석보다 적은 편이라서 포유류 진화와 관련된 연구가 더디게 진행되었다공룡이 멸종된 이후에 포유류가 본격적으로 나타났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 없지만, 고생물의 역사를 시대 구분(periodization)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오랫동안 이어져 온 포유류의 진화 과정이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고대 포유류는 공룡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 포유류 시대는 공룡 시대가 끝난 이후에 시작되지 않았다포유류의 조상은 32,500만 년 전에 등장했다. 이 시기는 고생대 석탄기에 속한다.


경이로운 생존자들인간을 위한 책이 아니며, ‘공룡을 위한 책도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공룡은 거대한 조연이다. 과거의 지구온난화는 고생물들에는 대재앙이었다. 우리는 고생물들을 위태롭게 만든 사건을 대멸종(extinction event)이라고 한다포유류는 다섯 번의 대멸종을 모두 경험했다. 페름기 대멸종(3차 대멸종)은 역대 대멸종 중 가장 피해가 심했다. 거대한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면서 생긴 백악기 대멸종(K-Pg 멸종: 백악기-팔레오세 멸종, 5차 대멸종)’은 공룡 시대를 끝낸 대멸종이다.


포유류는 대멸종으로 위기에 처한 지구에서 어떻게 끈질기게 살아남았을까포유류는 공룡보다 몸집이 작았다. 땅 밑에서 활동할 수 있는 신체 조건은 육상생물들을 괴롭힌 이상 기후를 피하는 데 유리했다. 그리고 포유류는 치아를 발달하면서 진화했는데, 치아 덕분에 풀과 곤충 등을 먹을 수 있었다. 잡식성은 생물이 튼튼하게 성장하는 데 이롭다. 반면 몸집이 큰 공룡은 예상하지 못한 기후 변화에 취약했다. 게다가 그들은 한 가지 음식만 먹었다. 육식 아니면 초식성이었다백악기 대멸종을 견딘 포유류는 지하 생활을 청산하고, 점점 몸집을 키우면서 진화했다.


저자는 백악기 대멸종으로 사라진 공룡을 희생자, 살아남은 포유류를 생존자로 비유하면서 포유류의 생존 비결을 치켜세운다. 비록 새를 제외한 모든 공룡은 사라졌지만(우리가 흔하게 보는 새는 살아있는 공룡이다), 기후 재앙에 적응하지 못해서 호락호락 당하기만 하는 아둔한 희생자는 아니었다. 공룡들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노력했다. 2006년에 미국에서 공룡이 지구온난화를 피하려고 만든 땅굴이 발견되었다. 땅굴 안에 있는 공룡 화석을 분석한 결과, 이 땅굴 주인은 백악기에 살았고, 큰 이구아나만한 크기의 초식공룡이었다.[주1]


경이로운 생존자들여러 갈래로 뻗은 진화의 경로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잊어버린 고리(forgotten link)’[주2] 주목한다. ‘잊어버린 고리우리가 알아야 할 포유류의 역사.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자신의 기원을 고민하는 유일한 종인간이 어떻게 진화하는지 설명한다. 인간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6,000종 이상의 포유류 중 하나이다. 자신의 기원을 알고 싶어하는 우리가 고대 포유류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모르면 안 된다. 포유류의 역사를 모르거나 잊어버린다면 슬기롭지 않다





[주1] <“공룡, 지구온난화 피해 땅굴 팠다”> 서울신문, 2009717일 입력.


[2] 진화와 관련된 용어인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를 패러디해서 만든 단어다. ‘잃어버린 고리는 진화 경로의 중간 단계(과도기)이며 화석이 많이 발견되지 않은 시점을 뜻하기도 한다.

 






<cyrus가 만든 주석과 정오표>

 



* 47




 

 나는 해파리를 특히 좋아했다. 메이존크리크의 베테랑 화석 사냥꾼들은 경멸하듯 이것을 블롭(blob, 얼룩-옮긴이)’[주3]이라 불렀다.

 


[3] blob얼룩’과 방울’, ‘덩어리를 뜻하는 단어다. blob흐물흐물하거나 물컹물컹한 물질을 가리킬 때 쓰이기도 한다







blob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영화가 <블롭(The blob)>이다. 1958년에 나온 SF 공포 영화,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이 주연으로 나온다. 영화에 묘사된 블롭우주에서 온 괴물이다. 끈적끈적한 점액질로 이루어졌으며 인간을 잡아먹는다.

 

공포 영화에서 끔찍한 형태로 나오는 우주 괴물 블롭, 화석 사냥꾼들이 흐물흐물하게 생긴 해파리를 경멸하듯이 대하는 반응을 겹쳐서 생각한다면 책에 나온 blob을 ‘(불쾌한)덩어리로 번역해도 된다.





* 60






 파충류가 아님에도 처음에는 파충류처럼 보였던 생명체들이 포유류 줄기 혈통을 따르는 동안 작은 체구에 털이 나 있고 뇌가 큰 온혈[4] 포유류로 모습을 바꾸어갔다.

 


[4] 이 책의 번역자는 온혈동물 냉혈동물이라는 낡은 용어를 자주 쓴다. 외부 기온과 상관없이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동물을 과거에는 온혈동물이라고 했으나 현재는 항온동물또는 정온동물이라고 쓴다. 이와 반대로 체온을 유지할 수 없어서 외부 기온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동물은 변온동물또는 외온동물이라고 한다. 과거에 사용된 용어는 온혈동물과 반대인 냉혈동물이었다정온동물과 변온동물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책의 107~108에 나온다.






* 286




 

 초음파 방향정위(echolocation)[5] 이용해 곤충을 잡아먹던 날개 달린 동물은 당연히 박쥐다.

 

[5] 반향정위(反響定位)’의 오자.






* 509~510

 

 키가 크고 우아하며, 다리와 척추, 목과 머리가 나란히 정렬되고 아치가 있는 두 발로 균형을 잡고 서는 이 새로운 인간적 특성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인간의 선조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유명한 화석 중 하나가 그 대표로 있기 때문이다. 바로 루시(Lucy). 이 골격은 1974년에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되어 비틀스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에서 이름을 따왔다. 루시의 공동 발견자 도널드 요한슨(Donald Johanson)은 팀 화이트(Tim White)와 그 골격에 대한 초기 과학적 기술을 작성한 후에 책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루시를 대중화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6]

 

 

[6] 1981년에 도널드 요한슨은 메이틀랜드 에디(Maitland Edey)와 함께 <Lucy: The Beginnings of Humankind>라는 책을 썼다. 루시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이 책은 이듬해에 미국 국립 도서상 과학 부문(U.S. National Book Award in Science)을수상했다. 1996년에 번역본 최초의 인간, 루시(이충호 옮김, 푸른숲, 절판)이 출간되었다










2011년에 출판사가 바뀐 루시, 최초의 인류(이충호 옮김, 진주현 해제, 김영사, 절판, 저자명은 도널드 조핸슨)가 재출간되었다. 역자는 구판과 같다. 그런데 개정판에 공저자 메이틀랜드 에디의 이름이 빠졌다







루시 공동 발견자 중 한 사람인 이브 코팡(Yves Coppens)이 쓴 책 루시는 최초의 인간인가: 무릎 화석이 우리에게 말하는 진실(한울림, 2002, 절판)에 출간된 적이 있다.





* 참고 문헌, 610





 

레베카 랙 사익스의 네안데르탈인(생각의힘, 2022) [주7]

 


[7] 정확한 제목은 네안데르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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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와 장 우주의 가장 위대한 생각들 2
숀 캐럴 지음, 김영태 옮김 / 바다출판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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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양자물리학은 백지(白紙)와 같은 과학이다. 물리학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양자역학을 설명한다. 그들은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계산해서 측정한다. 측정해서 나온 결과는 이며 실재(reality)’이다. 하지만 양자계에 속한 입자는 측정할 수 없다. 양자계의 입자는 위치와 운동량이라는 물질 고유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위치와 운동량 중 하나만 측정해도 양자계의 입자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불완전한 측정, 즉 예측만 가능하다. 측정 결과가 분명하지 않아서 물리학자들은 양자계의 입자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양자물리학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한 것들을 말끔히 지워버린다고전물리학으로 설명 가능한 실재라는 상식은 양자계에 들어서면 편견이 된다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 실재라고 믿는 사람들은 양자물리학에 쉬이 접근하지 못한다.


양자물리학은 수많은 과학자를 알쏭달쏭하게 만든다. 그래도 양자물리학은 여전히 살아 있다. 올해로 양자물리학의 나이는 100살이다. 양자물리학은 하이젠베르크(Heisenberg), 막스 보른(Max Born), 파스쿠알 요르단(Pascual Jordan)이 함께 만든 행렬역학에서 시작되었다. 행렬은 수와 함수를 사각형 형태로 배열한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슈뢰딩거(Schrödinger)입자가 파동의 성질을 가질 수 있다루이 드브로이(Louis de Broglie)의 견해에 영감을 얻어 파동역학을 제시했다. 파동역학의 핵심은 파동함수. 파동함수는 파동처럼 움직이는 입자의 상태를 방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행렬역학과 파동역학은 처음에 서로 다른 관점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두 개의 역학이 수학적으로 동등한 방식이라는 사실이 증명되면서, 이들을 통틀어 양자역학으로 부르게 되었다.


수학은 양자물리학이 태어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산파다. 수학이 없었으면 행렬역학과 파동역학은 완성되지 못했다. 과학자들의 머릿속을 백지상태로 만들어버리는 양자물리학이 지금까지도 주목받는 이유는 수학이 양자물리학의 빈틈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숀 캐럴(Sean M. Carroll)이 진행한 온라인 강연 우주의 가장 위대한 생각들(The Biggest Ideas in the Universe)’물리학과 수학이 잇닿은 이론들을 소개한다작년에 나온 강연 1공간, 시간, 운동은 고전물리학에 해당하는 뉴턴역학(Newtonian mechanics, 뉴턴의 운동법칙: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 반작용의 법칙)과 아인슈타인(Einstein)의 상대론 이론을 다룬다.[1] 2양자와 장(Quanta and Field)의 주제는 양자물리학과 양자장 이론이다전작과 마찬가지로 저자는 물리학에서 많이 사용되는 수학적 개념들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물리학자들은 연구하다가 생각이 꽉 막힐 때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수학이 내민 손을 잡았다. 수학을 깊이 공부해 본 적이 없는 물리학자들은 수학에 선뜻 손길을 내밀지 못했다강연 1부에 소개된 아인슈타인은 중력이 물질을 끌어당기는 힘이 아닌 시공간의 곡률로 설명하기 위해 리만(Riemann)의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참고했다. 하지만 수학과 친분이 깊지 않은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을 수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에 불만이 있었고, 리만 기하학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친구이자 수학자인 마르셀 그로스만(Marcel Grossmann)에게 리만 기하학을 배웠다양자역학 하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하이젠베르크는 행렬이라는 수학적 개념을 몰랐다. 그의 선배 동료인 막스 보른이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에 행렬을 도입했다.


물리학 역사에서 언급된 수학은 중요하지만, 이해하기 쉽지 않은 조연 또는 어려워서 대충 보기만 하는 단역으로 취급받는다. 숀 캐럴의 물리학 강연은 수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1부와 마찬가지로 저자는 물리학 이론을 설명하기에 앞서 물리학 이론이 만들어지는 데 사용된 수학 개념과 수식들을 소개한다. 1부에 나온 수학 개념이 2부에 다시 나온다. 1부를 건너뛰고 2부를 먼저 읽거나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라면 숀 캐럴의 강연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내용이 어려운 책은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된다. 양자와 장은 완독을 포기하게 만드는 어려운 책이다. 완독하지 못하더라도 이 책의 끝부분인 11장과 12장은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물론 두 장의 내용도 쉽지 않다). 11장에 저자는 독자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한다.

   


 원자는 왜 말랑말랑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원자 집단을 모아서 단단한 물체로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요? (323)



물질이 단단한 이유는 페르미온(fermion)이라는 입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페로미온 안에 아주 더 작은 입자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쿼크(quark). 12장의 주제는 양자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원자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이라서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두 개의 입자가 언급된다.


미국의 물리학자 파인먼(Feynman)은 복잡한 양자장 계산을 좀 더 간단하게 할 수 있는 파인먼 도형(Feynman diagram)을 고안하고, 양자전기역학(QED: Quantum Electro Dynamics)을 완성했다. 그런 과학자가 양자역학을 완벽히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확신했다. 양자물리학은 과학자들도 모르는 과학 분야로 악명이 높다. 알면 알수록 물음표가 계속 늘어나기만 한다. 양자물리학을 연구해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이 많아도, 양자물리학 100주년을 맞이해서 양자물리학에 관한 책들이 계속 나와도, 일상과 전혀 관련 없는 학문이라는 씁쓸한 꼬리표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과학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이 양자물리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대부분 사람은 물음표가 가득한 눈빛으로 넌지시 말한다.

 


양자물리학이 재미있어요? 


살면서 쓸데없는 과학을 왜 공부하세요


양자물리학을 공부하면 이득이 있나요


양자물리학이 이해가 안 된다면서 계속 공부를 하는 건 

시간 낭비하는 일 아니에요?

(모르겠으면 포기하세요)



양자물리학을 몰라도 된다. 하지만 몰라도 되는 학문이라고 해서 공부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입자들과, 입자들끼리 상호작용을 하는 힘이 있어서 우리가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양자물리학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의 기본 성분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학문이다.







<cyrus가 만든 주석과 정오표>

 




[1] 공간시간운동》 서평 

수학자의 어깨 위에 서서

(2024122일 등록)

https://blog.aladin.co.kr/haesung/15241954


 



 

* 175

 

 물리학은 항상 무한대(infinity)와 편치 않은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한편으로 무한대는 종종 매우 유용한 방식으로 곳곳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뉴턴과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가 미적분을 개발했을 때, 그들이 직면한 과제에는 무한대를 체계적으로 다루는 것이 있었습니다. 무한대는 무한히 큰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01 사이에는 무한개의 실수가 존재합니다.[주2] 실제로 시공간에서 힐베르트 공간에 이르기까지 매끄럽고 연속적인 모든 수학적 구조에는 무한개의 원소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기초 물리학에 관한 현재 최고의 아이디어들은 모두 이러한 구조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알지 못하지만, 우리의 실제 우주는 공간이나 시간, 또는 두 가지 모두 무한히 멀리 뻗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주2] 실수는 자연수보다 많다. 독일의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Georg Cantor)는 이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대각선 논법을 사용했다. 칸토어는 난해한 무한개념을 수학적으로 규명하려고 시도한 수학자. 하지만 검증이 불가능한 무한을 받아들이기 힘든 수학자들은 칸토어를 비난했다. 학문적으로, 정신적으로 외톨이가 된 칸토어는 심한 우울증에 걸렸다. 말년을 정신병원에서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참고문헌: 아미르 D. 악젤, 신현용 · 승영조 함께 옮김 무한의 신비: 수학, 철학, 종교의 만남, 승산, 2002)





* 181





 무한대의 퍼즐은 도모나가, 슈윙거, 파인먼, 다이슨 및 그들의 동료가 해결했으며, 처음 세 사람은 그 공로로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이들이 발명한 절차를 재규격화라고 부릅니다. 재규격화는 무한대를 없애 산란 계산의 최종 해를 물리적으로 측정 가능한 양으로 표현하는 특별한 방법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 절차를 완전히 만족스럽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중략) 파인먼 자신도 이를 멍청한 과정’, ‘속임수라고 부르며 수학적으로 정당한 것이 아니다라며 의심했습니다. [* 원주]

 


[* 원주] 파인먼의 인용문은 R. P. Feynman, QED: The Strange Theory of Light and Matter(Penguin), 128에 나와 있습니다. [주3]

 

   

[주3] 저자가 참고한 파인먼의 책은 일반인을 위한 파인만의 QED 강의(박병철 옮김, 승산, 2001)로 번역되었다. 본인의 과학적 업적 중 하나인 재규격화를 의심한 파인먼의 견해는 190쪽에 나온다.






 일종의 도박이다. 이를 전문 용어로는 재규격화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멋진 용어를 갖다 붙인다 해도 그러한 도박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중략) 나는 재규격화가 수학적으로 합법적인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반인을 위한 파인만의 QED 강의중에서, 190)





* 209




   

 우리를 생각하도록 만드는 찰스 임스와 레이 임스의 영화 <10의 거듭제곱>(키스 뵈케 원작)[주4] 1제곱미터시카고 호숫가에서 소풍을 즐기는 한 커플의 시야에서 시작하여 10초마다 10배씩 축소시켜 관객이 우주를 경험하도록 초대합니다. 우리는 점차 축소되는 도시, 지구, 태양계, 가까운 별, 은하수 은하, 그리고 은하단과 더 큰 우주 구조를 보게 됩니다. 그런 다음 이번에는 확대하여 피부 세포, 세포 소기관, 부자, 원자 및 소립자들을 보면서 더 미소 스케일을 향한 여행을 시작합니다.

 


[주4] 1977년에 나온 <10의 거듭제곱>(Powers of 10)930초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다. 짧은 영화라서 지금도 유튜브로 볼 수 있다. 원작은 네덜란드의 교육자 키스 뵈케(Kees Boeke)의 저서 <우주의 조망: 40번의 도약으로 본 우주>(Cosmic View: The Universe in 40 Jumps, 1957년 작)이다.







1982년 미국에 출간된 책을 번역한 것이 10의 제곱수: 마흔두 번의 도약으로 보는 우주 만물의 상대적 크기(사이언스북스, 2012). 책의 공동 저자명에 오른 필립 모리슨(Philip Morrison)은 미국의 물리학자로 영화 해설(narrator)과 자문을 맡았다. 이 책의 공저자인 필리스 모리슨(Philis Morrison)은 필립의 아내이다. 그녀는 과학 칼럼 및 어린이용 과학 서평을 주로 썼다.





(TMI: 필립 모리슨은 파인먼의 일반인을 위한 파인만의 QED 강의추천사를 썼다)

 




* 219






 

조지 즈와이그 조지 츠바이크(George Zweig)






* 역자 후기, 385






캐롤 숀 캐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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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포드의 양자물리학 강의
케네스 W. 포드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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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점  ★★☆  B-





물리학자들은 괴롭다. 왜냐하면 양자물리학이 그들을 괴롭히니까양자물리학은 괴상한 과학이다양자물리학은 우리에게 아주 작은 세계를 보여준다. 아주 작은 세계에 아원자 입자들이 돌아다닌다아원자 입자는 원자보다 크기가 작다양자물리학은 아원자 입자들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아주 작은 입자들을 측정하는 일은 상당히 까다롭다여전히 정체를 숨기고 있는 입자들도 있다.


과거 물리학자들은 실험과 계산만 잘하면 자연 현상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과학자들이 발견한 법칙들은 늘 정확하고,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보여주는 근거였다확실성의 세계를 보여주는 물리학을 고전 물리학이라고 부른다그러나 양자물리학은 고전 물리학과 정반대로 세계는 불확실하며 정확하지 않다고 주장한다특히 아원자 입자들의 세계는 고전 물리학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정말로 이상한 세계다확률이상야릇한 입자들의 세계에서 일어날 현상을 예측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아무리 정밀한 계산을 해도 입자를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


양자물리학은 고전 물리학을 거스른다. 고전 물리학이 생각하는 빛은 입자 상태다. 하지만 양자물리학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주장을 펼친다. 빛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라고 말한다. 빛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은 이중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드 브로이(Louis de Broglie)가 발견한 파동-입자 이중성은 양자물리학의 핵심이다빛이 입자임을 알 수 있는 증거(아인슈타인의 광전 효과)파동임을 알 수 있는 증거(빛의 회절 현상과 간접 현상)가 동시에 있다. 정확성을 선호하는 고전 물리학은 서로 맞지 않는 두 가지 증거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반면 양자물리학은 가능하다고 믿는다.


고전 물리학이 깔끔하게 감긴 실타래라면 양자물리학은 헝클어진 실뭉치. 고전 물리학 실타래는 요령(법칙)을 알면 쉽게 풀 수 있다. 그러나 제멋대로 헝클어진 양자물리학 실뭉치는 요령이 통하지 않는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매듭을 천천히 풀어야 한다. 양자물리학은 느리게 배워야 하는 과학이다


케네스 포드의 양자물리학 강의(The Quantum World: Quantum Physics for Everyone)는 양자 실뭉치를 완벽히 푸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양자 실뭉치를 풀지 않고도 가지고 노는 법을 알려준다각 (chapter)이 끝나면 독자와 학생들을 위한 복습 문제와 심화 문제가 나온다부록으로 문제 해답이 실려 있다모든 문제를 다 풀어봐야 할 의무가 없다. 관심 있는 문제 몇 개 선택해서 풀어보면서 양자물리학을 천천히 배울 수 있다.


학생들에게 물리학을 잘 가르쳐주기로 유명한 케네스 포드(Kenneth W. Ford)도 양자물리학에 두 손을 든 과학자다그는 양자물리학을 기괴한 이론이라고 운을 떼면서도 아원자 입자들을 설명하는 데 성공한 이론이라고 말한다사실 고전 물리학자와 양자물리학자들을 괴롭힌 건 아원자 입자들이다. 입자들이 계속 발견될수록 양자물리학은 무럭무럭 자랐다. 고전 물리학의 키를 넘어선 양자물리학은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물질의 기본 입자라는 오래된 믿음을 무너뜨렸다. 고전 물리학의 편안한 그늘에 벗어난 젊은 과학자들은 물질의 기본 입자인 원자를 쪼개기 시작했다. 그 속에 원자보다 더 작은 입자들이 있었다.







케네스 포드의 양자물리학 강의》 원서2004년에 출간되었다. 번역본은 2008년에 출간되었고, 책 이름은 양자 세계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였다. 2018년에 이름과 앞모습이 바뀐 개정판이 나왔다. 올해가 양자역학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 이 뜻깊은 해에 맞춰 앞모습만 바뀐 책이 다시 나왔다. 어떻게 보면 개정 2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의 겉모습만 바뀐다고 해서 개정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 번역자, 편집자는 책 속에 있는 내용 중에 잘못 알려졌거나 시간이 지나서 생명력을 잃은 상식이 있으면 고치거나 새로운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과거의 책을 단 한 번도 교정하지 않은 채 표지만 바꾼 책은 개정판이 아니라 독자를 속이는 개판이다구판에 남아 있는 오탈자도 고치지 않고 내놓은 개정판도 대충 만든 개판이다.


원서는 2012년 거대 강입자 가속기(LHC)가 검출한 힉스 보손 입자가 발견되기 한참 전에 나온 책이다. 원서를 번역한 김명남 번역가는 자신이 직접 쓴 서문에 원서 출간 후에 나온 2012년의 성과를 언급했다. 하지만, 이 책을 딱히 고칠 데가 없이 좋은 양자 교과서라는 역자의 자화자찬은 동의할 수 없다.


2004년 원서에는 원자 번호 114’원자 번호 118’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다. 당시에 두 원소의 실체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오랜 실험과 관측을 거친 끝에 새로운 원소로 판명되면 원소에 이름이 붙여진다.



* 224




 

 실제로 몹시 무거운 원소들 가운데 원자 번호 114(아직 이름이 없다)의 수명이 약 30초 정도로 제일 길다. [중략]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무거운 원소는 원자 번호 118이고, 탐색은 계속되고 있다.



* 242, <도전 문제>




 

4. 이 책의 출간 이래, 새로운 원소가 발견되거나 명명된 것이 없는지 조사해 보자.

 

 


* 414, <부록>





4번 문제 해답: (아쉽게도 2008년 현재는 없다.)



이 책의 문제 중 하나는 새로운 원소가 발견되었는지를 묻는 것인데, <부록>의 해답에는 ‘2008년 현재는 없다라고 되어 있다


2012년에 원자 번호 114의 정식 명칭플레로븀(flerovium)으로 확정되었다. 원소 기호는 FI이다. 2016년에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원자 번호 118번의 이름은 오가네손(Oganesson, 원소 기호: Og)이다.[주1]


‘The Amazing Randi’라는 별명을 가진 마술사로 활동한 회의주의자 제임스 랜디(James Randi)인쇄된 이야기를 접할 때는 항상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주2] “전문가가 그렇게 말했다.”, “교과서에 그렇게 적혀 있다.” 우리는 전문가와 그들이 쓴 책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사실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회의주의자는 책과 신문에 나온 이야기를 무조건 사실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권위가 된 지식이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하고, 검증해야 한다.

 


* 46





중력은 본질적으로 약하지만 언제나 인력으로 작용하는 힘이다.



중력은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전자기력보다 제일 약하다. 하지만 중력은 질량이 있는 물체들이 서로 끌어당기면서 생기는 힘이 아니다. 중력은 질량이 있는 물체가 시공간을 휘거나 구부리면서 생기는 부산물이다.[주3]







포드는 2011년에 양자물리학과 관련된 책을 더 펴냈다책 이름은 <101 Quantum Questions: What You Need to Know About the World You Can’t See>번역본 이름은 양자: 101가지 질문과 답변(이덕환 옮김까치, 2015)이다전작 케네스 포드의 양자물리학 강의에 다룬 양자물리학의 주요 개념들을 문답 형식으로 풀어 쓴 책이다








[1] 참고문헌: 오시마 켄이치, 원형원 옮김, 곽영직 감수 알수록 쓸모 있는 원소 118(Gbrain, 2020), 171, 173쪽.

 

피터 워더스, 이충호 옮김 원소의 이름: 신비한 주기율표 사전, 118개 원소에는 모두 이야기가 있다(윌북, 2021), 58쪽.





 


[2] 제임스 랜디, <여전히 사이비 과학과 회의주의의 길> 중에서, 한국 스켑틱 편집부 엮음, 김보은 · 김효정 · 류운 · 박유진 · 장영재 · 하인해 옮김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 스켑틱 10주년 베스트 에세이 (바다출판사, 2025), 281쪽.






 


[3] 참고문헌: 야우싱퉁 · 스티브 네이디스, 박초월 옮김 수학의 중력: 일반상대성이론부터 양자 중력까지, 우주를 지배하는 수학의 최전선 (동녘사이언스, 2025).





 

빌 브라이슨, 이덕환 옮김 거의 모든 것의 역사(까치, 2020), 149빌 브라이슨은 중력을 설명하기 위해 미치오 가쿠(加來道雄)초공간: 평행우주, 시간 왜곡, 10차원 세계로 떠나는 과학 오디세이(박병철 옮김, 김영사, 2018)를 재인용했다. 

 





<cyrus가 만든 정오표>



2018년 개정판에 있는 오탈자 1가 개정 2판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세상을 떠난 과학자들의 사망 연도가 적혀 있지 않다.


하인리히 로러(Heinrich Rohrer)와 존 휠러(John A. Wheeler)는 개정판이 나온 2018년 이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개정판에는 두 학자의 사망 연도를 표기하지 않았다



* 76





1058 1958





* 130





스티븐 와인버그(1933년 출생)


2021년 별세





* 198





하인리히 로러(1933년 출생)


2013년 별세




* 363




 

존 휠러(1911년 출생)


2008년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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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5-05-1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스티븐 와인버그가 별세했는지 모르고 있었네요. cyrus 님 꼼꼼하신 모습에 늘 감탄합니다~

cyrus 2025-05-19 06:35   좋아요 0 | URL
제가 아는 학자들의 별세 소식을 한 번 보면 잊어버리지 않거든요. 그래도 착각할 수 있어서 다시 한번 확인해요. ^^

페크pek0501 2025-05-11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양자물리학을 공부해야겠단 생각으로 장바구니에 담아 둔 책이 있어요. 읽는 게 어려울 것 같아 망설여지더라고요. .

cyrus 2025-05-19 06:39   좋아요 0 | URL
양자물리학 관련 책들이 아주 많아서 이 중에 몇 권 골라서 읽기가 쉽지 않아요. 좋은 책 딱 한 권 선택해서 읽었는데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있거든요. 책 읽기 전부터 어려워요. ^^;;
 
수학의 중력 - 일반상대성이론부터 양자중력까지, 우주를 지배하는 수학의 최전선
야우싱퉁.스티브 네이디스 지음, 박초월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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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Schopenhauer)의지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 삶은 고통스럽다고 했다. 어떤 욕망을 충족하려면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만 한다. 우리는 노력한 끝에 욕망 하나를 충족시키지만, 또 새로운 욕망이 나타난다욕망을 폭식하는 인간은 자기 자신마저 먹어 치운다.


에릭 와이너(Eric Weiner)는 기차 타고 철학 여행(The Socrates Express)을 한 작가다. 그는 고통스러운 삶을 잊기 위해 음악을 듣는 쇼펜하우어를 만난다쇼펜하우어는 사는 게 힘들면 예술을 즐기라고 했다. 염세주의 철학자로만 알려진 그는 로시니(Rossini)의 음악을 플루트 연주용으로 편곡했을 정도로 아주 훌륭한 플루티스트음악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쇼펜하우어가 제일 행복해 보인다와이너는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를 중력과 같다고 주장한다.[주1] 그는 의지를 의 형태로 본 것이다그러나 중력의 진정한 실체를 이해한다면 의지라는 힘을 중력과 동일한 의미로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중력은 힘이 아니니까!


우리는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중력(重力)이라고 배웠다. 중력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예시가 나무에 달린 사과가 땅으로 툭 떨어지는 현상이다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이유를 묻는다면 대부분 사람은 지구의 중력이 사과를 힘껏 잡아당겼다고 대답할 것이다중력을 어렴풋이 배운 사람들은 중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엄청난 힘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중력은 물체를 끌어당기는 힘이 아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세지 않다.


세상 전체와 모든 물질을 구성하기 위해 꼭 있어야 할 기본 상호작용(fundamental interaction)이 있다. 한때 기본 상호작용을 자연계의 네 가지 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네 가지 힘은 강한 상호작용(강한 핵력, 강력), 약한 상호작용(약한 핵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이다. 네 가지의 기본 상호작용 중에 힘의 세기가 가장 큰 것은 강한 상호작용이다. 그다음이 전자기력, 약한 상호작용, 중력 순이다. 중력이 기본 상호작용 중에 제일 약하다.


중력은 너무 약해서 관측이 쉽지 않으며 연구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물리학자들은 수학의 도움을 받아 중력의 실체를 밝힐 수 있었다물리학자들은 중력을 설명하기 위해 수식을 사용했다그런 다음에 실험이나 관측을 수행해서 수식을 검증했다. 사실 몇몇 물리학자는 수학자들과의 협업을 반기지 않거나 수학의 중요성을 간과하곤 했다. 일반상대성이론을 발견한 아인슈타인(Einstein)도 처음에 중력을 연구했을 때 수학이 자신의 연구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거로 생각하지 못했다시간이 지나서야 수학의 가치를 깨달았고 중력의 실체가 힘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인슈타인은 수학보다 바이올린을 먼저 배웠다고 말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춘 바이올리니스트연구하고 생각하는 일은 고통의 감옥이다. 풀어야 할 문제가 계속 생긴다. 음악을 즐기는 아인슈타인은 생각이 막히면 고통의 감옥에서 빠져나와 바이올린을 켰다.


수학도 아인슈타인의 바이올린처럼 어려운 문제 앞에서 쩔쩔매는 과학자들을 위로해 준다. 때로는 물리학자들이 미처 보지 못한 아이디어까지 준다수학의 중력은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마다 화음을 내는 물리학과 수학의 앙상블(ensemble)을 들려준다물리학이라는 울타리에만 갇힌 과학자들은 수학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수학자들은 실험해서 결과를 확인하는 것보다 계산하면서 간결한 수식을 도출하는 연구 방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수학이 물리학의 발전에 여러모로 도움을 준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을 별개의 개념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3차원 공간에 1차원 시간을 더한 4차원 시공간을 제시했다. 4차원 시공간은 시간과 공간이 섞여 있다4차원 시공간 속 물체는 끊임없이 변하며시공간으로 이루어진 우주 또한 변한다사실 시공간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독일의 수학자 헤르만 민코프스키(Hermann Minkowski). 그는 특수상대성이론을 기하학적 관점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질량이 있는 물체가 움직이면 시공간도 움직인다. 이때, 시공간은 구부리거나 휘어진 상태가 되는데, 이것을 곡률이라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의 정체가 시공간 곡률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주장했다. 중력은 힘이 아니라 에너지의 형태에 가깝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의 실체를 증명하는 중력장() 방정식을 도출한다. 이 방정식이 그 유명한 ‘E=mc2’휘어진 공간비유클리드 기하학(Non-Euclidean geometry)이 주로 탐구하는 개념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우리가 느낄 수 없는 휘어진 시공간을 명쾌하게 풀어 주는 수학적 도구다.


물리학과 수학의 앙상블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중력의 실체와 중력파의 존재를 증명한 수학은 천체물리학자들의 블랙홀 연구에 합류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학이 만난 과학 문제 중에서 해결 불가능한 난적으로 손꼽히는 것이 양자 중력연구. 양자 중력은 양자역학으로 중력을 설명하는 물리학 분야다. 양자 중력은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앙상블을 시도하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이론은 동시에 성립할 수 없는 관계라서 현재까지는 만족스럽지 못한 불협화음만 나오고 있다.


두 이론의 음이 서로 안 맞는다고 해서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거대한 미지의 우주를 알아내고 싶은 지식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다. 수학을 공부해서라도 물리학의 난제를 풀려고 하는 과학자들의 의지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물리학과 수학의 앙상블은 끝나지 않는다.


ensemble is possible.

     







<cyrus가 만든 주석>

 

 

  

  

[1] 에릭 와이너, 김하현 옮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어크로스, 2021), 156.




* 45, 옮긴이 각주





영국[주2]의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2]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스코틀랜드 출신이다.





* 110





 

베소 미켈레 미켈레 베소(Michele Besso)



* 152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으로 둘러싸인 구는 오늘날 사건 지평선[3]이라고 부른다. 한 번 넘어가면 돌아올 수 없는 지점 또는 표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3] 사건 지평선의 실제 형태는 구()의 표면이다. 그래서 정확한 명칭은 사건 지평면이다. 그렇지만 학계와 대중은 부정확한 이름에 익숙해서 사건 지평선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참고문헌: 브라이언 콕스 · 제프 포셔, 박병철 옮김, 블랙홀: 사건 지평선 너머의 닿을 수 없는 세계, RHK,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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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 브레인 - 우리 안의 극단주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레오르 즈미그로드 지음, 김아림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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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이데올로기(Ideology)는 지저분하다. 이 작은 단어에 인류의 머리에서 태어난 생각들이 무수히 들러붙어 있다. 민주주의, 자본주의, 자유주의, 보수주의, 진보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페미니즘, 파시즘, 제국주의, 종교[주1] 등등이 있다


이데올로기는 갈수록 더러워지고 있다. 여기에 마음씨 고약한 극단주의까지 엉겨 붙어 있다. 극단주의는 다른 생각에 기생한다. 극단주의는 생각의 영양분을 모조리 빨아 먹는다. 영양가 없는 민주주의가 방심하면 전체주의로 변한다. 비실비실한 겁쟁이 자유주의는 멸공의 횃불을 휘두르는 반공주의 전사가 된다. 지나치게 격렬한 페미니즘은 자신과 다른 페미니즘들을 무시한다.


민폐를 끼치는 극단주의가 싫은 사람들은 칠칠치 못한 이데올로기를 피하고 싶어 한다단어를 입에 꺼내기 싫을 정도다하지만 이데올로기와 멀찍이 떨어져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먹고 마신다.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뇌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과 물이다. 이데올로기를 먹으면서 자란 뇌에서 이데올로기가 다시 태어난다개인적인 뇌는 이데올로기적이다(The personal brain is the ideological)이데올로기에 단 한 번도 물들지 않은 순결한 뇌는 절대 없다.








이데올로기 브레인: 우리 안의 극단주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이데올로기를 먹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다양한 맛의 이데올로기를 먹는 우리 모두를 위한 책이다뇌는 한 번 맛본 이데올로기의 맛을 절대로 잊지 못한다. 이데올로기적 뇌는 고프다. 먹어도 먹어도 이데올로기를 자꾸 먹고 싶어 한다. 뇌는 고립된 상황을 싫어한다. 외로움을 잘 느끼는 사람은 관계를 갈망하고, 소속감을 느껴야 만족한다. 이데올로기는 인간관계를 이어주는 힘이면서도 이데올로기가 비슷한 사람들을 똘똘 뭉치게 만드는 힘이다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집단은 이데올로기 맛집이다.


이데올로기를 과식한 뇌는 뚱뚱하지 않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를 소화(학습)할수록 뇌는 점점 딱딱해진다. 이데올로기에 푹 젖은 생각도 딱딱하다. 이런 사람의 사고방식은 경직되어 있다. 경직된 뇌는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숙고하는 힘을 잃어버린 이데올로기적 뇌는 편견에 취약하며 음모론을 쉽게 받아들인다. 이데올로기적 뇌는 독단주의자와 극단주의자를 만든다.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한 사람의 몸과 정신도 경직되어 있다. 독단주의자는 자신과 다른 생각뿐만 아니라 불안정성, 모호함, 다양성도 거부한다. 이데올로기로 굳어진 독단주의자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데올로기 브레인우리의 뇌에 스며든 이데올로기가 신체 행위에 미치는 영향을 신경과학적 관점으로 설명한다. 뇌는 이데올로기를 절대로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먹으면서 자신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만든다. 이데올로기적 뇌를 이해하기 위한 과학은 독단주의와 극단주의에 맞서는 정치학의 든든한 동지다.


이데올로기에 맛 들인 이상, 우리 뇌에 흡수된 이데올로기를 빡빡 닦아서 지우기 힘들다. 그러나 뇌는 이데올로기에 쉽게 통제당하는, 나약한 기관이 아니다. 사람의 뇌 구조는 모두 다 같지 않다. 어떤 사람의 뇌는 이데올로기의 맛에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또 다른 사람의 뇌는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검증한다. 뇌는 외부 환경과 경험에 따라 학습하고 변화한다. 이러한 뇌의 특성을 뇌 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고 한다.


우리의 뇌와 몸속에 들어온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피가 되고살이 된다이데올로기는 유유히 걸어 다닌다. 살아있는 이데올로기를 온몸으로 거부할 수 없다.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알고 먹어야 한다. 회의주의적 태도와 비판 없이 다른 사람이 주는 이데올로기를 넙죽 받아먹어선 안 된다. 이데올로기 브레인은 우리에게 이데올로기에 벗어나는 삶을 상상해 보자고 제안한다. 뇌의 건강을 위해서 우리 각자가 이데올로기 필터(filter)를 설치해야 한다. 이데올로기를 먹고 소화했으면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방해하는 것을 걸러내고 뱉어내야 한다



다 같이 먹은, 이 더러운 이데올로기를 함께 토해야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성토(聲討)해야 한다.







<cyrus가 만든 주석>




[1] 이데올로기 목록에 종교가 포함된 것에 따지고 싶은 분은 마르크스(Karl Marx)엥겔스(Friedrich Engels)에게 직접 따지시길.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를 거짓되고 추상적인 허위의식(Falsches Bewußtsein)’이라고 했다. ‘허위의식은 엥겔스가 만든 용어다. 마르크스는 종교 또한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했으며 자신이 쓴 글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 그 유명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문장을 남겼다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은 헤겔 법철학 비판》(칼 마르크스, 강유원 옮김, 이론과실천, 2011년, 절판)에 수록되어 있다.





 

* 199





 신경과학자들에게 알려진 가장 유명한 유전자 중 하나가 카테콜-O-메틸기 전이효소 유전자이다. 줄여서 ‘COMT’라고도 한다. 1958년 노벨상 수상자인[2] 줄리어스 액설로드가 발견한 COMT 유전자는 전전두엽 피질의 도파민 수치를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준다.

 

 

[2] 1958년은 줄리어스 액설로드(Julius Axelrod)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연도가 아니라 COMT 유전자의 존재를 처음 발견한 해. 액설로드는 1970년 노벨상 수상자.





* 207




 

 과학자들은 어떤 유전적 효과에 대해 말할 때 

후성유전학epigenetic 효과[3]도 함께 주시한다.

 




[3] ‘epigenetic’후성유전적이라는 뜻의 형용사다. ‘epigenetic’ 뒤에 ‘s’를 붙이면 후성유전학을 뜻하는 단어가 된다. 원서에 있는 해당 단어를 확인하지 않았지만, 원문이 ‘epigenetic effect’라, ‘후성유전적 효과로 번역해야 한다. (참고문헌: 리처드 C. 프랜시스, 김명남 옮김, 쉽게 쓴 후성유전학: 21세기를 바꿀 새로운 유전학을 만나다시공사, 2013)





책 본문에 언급된 다른 저자들의 책은 국내 번역본 제목이 적혀 있다

그러나 책 끝에 있는 <>의 참고문헌들은 원제만 있다.

 



* 22




 

 조지 오웰에 따르면, 정치적 언어는 거짓말이 진실처럼 들리고, 살인이 그럴듯해 보이며, 가벼운 마음도 견고한 겉모습을 갖는 것처럼 보이게 설계되었다.”[주4] 우리는 사람이나 생각을 무 자르듯이 깔끔하게 각각의 범주로 나누어 명확성을 높이고 어떤 정체성을 씌우려고 한다.






[주4] 조지 오웰, 정치와 영어(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 1946). 이한중 옮김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 2010)에 수록되어 있다(이데올로기 브레인》에 인용된 문장은 276쪽에 나온다).





* 148~149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제안한 것처럼, 이데올로기 공동체에서 삶은 일련의 아름다운 삶의 실험[주5]이 아니라 엄격한 프로토콜과 같다.






[5] 존 스튜어트 밀, 서병훈 옮김, 자유론 (책세상, 2005, 구판 절판). 110.





* 257




 

 몸과 관련된 문제에 결벽증이 있는가? 정치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다! 이것은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다음과 같은 주장과 비슷하다. 인류 역사 내내, 스스로의 동물성과 도덕성을 두려워하고 증오한 지배 집단이 그것들을 체화하는 집단과 개인을 배제하고 주변화하고자 혐오를 사용했다.” [6]





[6] 마사 누스바움, 조계원 옮김, 혐오와 수치심: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민음사, 2015).





* 260





 현상학의 창시자 에드문트 후설은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주7]


[7] 에드문트 후설, 이종훈 옮김, 순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한길사, 2022).





* 295




 

 소설가 조지 엘리엇은 이렇게 말했다. 단지 은유 하나를 바꾼 것만으로도 놀랄 만큼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8]

 




[8] 조지 엘리엇, 이봉지 · 한애경 옮김,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민음사, 2007).





* 308~309




 

 마르티니크섬 출신의 철학자 프란츠 파농흑인을 대상으로 한 백인의 시선에 대해 이렇게 썼다. [9]

 


[9] 프란츠 파농, 노서경 옮김, 검은 피부, 하얀 가면 (문학동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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