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읽기 - 날씨와 기후 변화,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공기에 숨겨진 과학
사이먼 클라크 지음, 이주원 옮김 / 동아시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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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높은 하늘 위에 푸른 거인이 우뚝 서 있다.

높푸른 거인은 45억 년째 지구를 듬쑥 끌어안고 있다.

나이를 먹어도 지구는 여전히 푸르다.




우리는 거인을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거인과 함께 살고 있다. 지구를 상냥하게 안은 거인이 모든 생명체를 먹여 살린다.


건강한 거인은 평온하다거인의 기분이 좋으면 날씨가 매우 좋다. 반대로 기분이 안 좋으면 날씨가 사나워진다그런데 우리는 거인을 잘 모른다거인에게 고마워할 줄 모른다오히려 거인에 역정을 낸다. 우리는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거인이 미쳐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이 푸른 거인의 이름은 대기(大氣)’우리가 매일 마시는 공기는 대기가 숨을 쉴 때 나온다거인의 드넓은 포옹은 지구를 아늑하게 해준다행복한 지구는 대기와 함께 춤을 춘다. 지구는 빙그레 미소를 띠면서 빙글빙글 돈다그러나 분노한 대기는 지구를 숨 막히게 한다. 힘겨운 지구가 울먹거리면 암울한 날씨가 이어진다. 불볕더위는 지구를 빨갛게 불태울 기세다. 동장군이 휘두르는 칼날은 점점 매서워진다지구온난화가 심해질수록 암울한 날씨는 더욱 자주 나타난다그런데 우리는 대기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알지 못한다. 지구는 계속 뜨거워지는데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학을 모르는 정치인과 화석 연료로 수익을 올리는 기업인들은 지구온난화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지구온난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을 멍청한 사기꾼이라고 비난한다.


하늘 읽기우리가 잘 몰라서, 제대로 보지 못한 대기를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대기가 어떻게 움직이고,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려준다저자 사이먼 클라크(Simon Clarke)는 영국의 기상학자. 기상학은 여전히 대중에게 생소한 학문이다. 대부분 사람은 기상학자를 과학자로 여기지 않는다. 내일 날씨를 정확히 예측하는 전문가 혹은 공무원 정도로 인식한다. 내일 날씨에 관심은 많지만, 기상학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기상학자들이 몸담은 기상청을 불신한다.


기상학은 생각보다 오래된 학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하늘에 일어나는 현상을 알고 싶어 했다. 비록 정확하지 않지만, 날씨에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설명하려고 했으며 기상학(Meteorologica)이라는 논문을 썼다. 물리학과 공학은 온도계와 기압계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 특히 유체역학은 지구가 움직이면서 생기는 기후와 기후 변화를 방정식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해주었다물리학 학위를 받은 저자는 지구 물리 유체역학(geophysical fluid dynamics)이라는 학문을 만났고, 본격적으로 대기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기후는 기온, 습도, 바람 등의 기상 현상을 아우르는 장기적인 대기 상태를 의미한다. 기상학은 복잡하면서도 광범위한 기후 변화를 연구하는 대기물리학이다. 기상학자와 대기물리학자는 이상 기체 법칙(상태 방정식)을 이용해서 대기 거인이 움직이는 모습을 본다. 이 법칙은 기압, 온도, 습도 등이 상호작용을 하는 기후를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도구다.


가끔 기상학자는 태풍의 경로를 예측하지 못하거나 정확하지 않은 날씨 예보를 내놓는다. 그렇다고 누구보다 대기 거인의 기분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과학자들을 멍청하다고 비난할 수 없다. 대기 거인의 성격은 장난기 가득한 카오스(Chaos). 대기 거인은 뒤죽박죽으로 움직인다. 정밀한 관측 기기가 있어도 무질서하고 예측이 어려운 거인을 따라가지 못한다. 여기서부터 오차가 생긴다. 대기 거인의 어수선한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면 아주 작은 오차는 점점 커진다.


기후 변화는 우리의 삶과 생태계를 위협한다. 암울한 날씨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터전을 사라지게 할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악영향을 준다. 대기 거인은 환경 오염에 민감하다. 대기 거인을 화나게 하면 안 된다. 진노한 거인은 무섭다지구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꽉 껴안는다숨 막힌 지구는 생명체가 살기 힘든 지옥이다. 대기와 지구가 건강해야 우리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대기만성(大器晩成)형 인간이 되고 싶은 

해성(海成)이 만든 주석과 정오표>




* 18


 글레이셔와 그의 동료 헨리 콕스웰열기구 조종사, 그러니까 말 그대로 공중 선원이었습니다. 기구를 타며 여행하는 용감한 개척자였죠.




[1] 이 책의 1기상학의 발전에 이바지한 과학자들의 업적을 소개한다. 제일 먼저 나오는 사람은 열기구를 타고 세계 최초로 성층권에 도달한 제임스 글레이셔(James Glaisher)와 헨리 콕스웰(Henry Tracey Coxwell)이다. 저자가 참고한 글레이셔의 저서 <Travels in the Air>(1871)는 죽을 뻔했던 상공 비행에 대한 경험담을 기록한 책이다. 글레이셔는 이 책에 또 다른 열기구 탐험가들의 비행 시도와 실패 사례도 언급했다. 번역본은 열기구 조종사: 하늘길 여행자 에어로너츠(정탄 옮김, 아라한, 2020)이다. 정탄은 러브크래프트 전집(7, 황금가지, 2009, 2012, 2015)과 스티븐 킹(Stephen King)의 소설 그것(황금가지, 2017)을 번역한 정진영의 필명이다.



※ 《열기구 조종사: 하늘길 여행자 에어로너츠서평

<기구를 탄 이카로스

202113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2273532






* 112






터키 튀르키예






* 181, 각주 27










[2] 저자가 카오스 이론(Chaos theory)을 설명하기 위해 참고한 책은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다. 비록 출간된 지 꽤 오래되었지만(초판은 1987년에 출간되었다), 본격적으로 카오스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제임스 글릭(James Gleick)카오스(박래선 옮김, 김상욱 감수, 동아시아, 2013)를 참고하면 된다. 2013년 번역본의 저본은 초판 출간 20주년 기념판이다글릭이 쓴 책에도 카오스 이론 연구의 선구자로 알려진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Jules Henri Poincaré)와 러시아 수학자 안드레이 N. 콜모고로프(Andrey N. Kolmogorov)의 업적이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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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복자들 - 농업부터 인공지능까지, 세상을 움직이는 곤충의 놀라운 변신
에리카 맥앨리스터.에이드리언 워시번 지음, 김아림 옮김 / 곰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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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카 맥앨리스터 · 에이드리언 워시번 함께 씀

김아림 옮김

작은 정복자들:

농업부터 인공지능까지, 세상을 움직이는 곤충의 놀라운 변신

곰출판

2025





4.5점  ★★★★☆  A






왕크왕귀. 왕 크면 왕 귀엽다를 줄인 신조어다. 왕크왕귀는 몸집이 크면서도 귀여운 동물에 호감을 느낄 때 쓴다왕크왕귀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동물은 우리에게 친숙한 반려동물이다. 순하디순하기로 유명한 골든 리트리버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왕크왕귀다.


왕크왕귀에 어울리지 못하는 동물이 있다. 이 동물의 몸집은 인간보다 작다. 그러나 인간보다 먼저 지구에 등장했고, 개체 수가 많다지구에 사는 동물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이 동물의 정체는 곤충이다. 곤충은 동물계 절지동물에 속한다.


곤충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은 드물다. 여러 개의 발이 달린 곤충의 생김새는 귀여움과 거리가 멀다우리는 작은 곤충을 미물(微物), 엄청 커다란 곤충을 괴물로 인식한다. 그래서 거대한 곤충이 생포되는 일은 세상을 발칵 뒤집는 특종감이다<위클리 월드 뉴스>(Weekly World News)황당한 가짜 뉴스와 조잡한 합성 사진으로 지면을 도배했던 미국의 신문이다이 신문은 거대한 곤충이 발견되었다는 가짜 뉴스를 심심찮게 보도한다. 거대한 곤충의 모습이 나온 합성 사진도 실었는데, 사진의 출처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은 진짜라고 믿는다.


사람 몸집만 한 곤충이 살아서 우리 눈앞에 있다면 기절초풍한다. 왕 커서 왕 무섭다. 기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 감독이 만든 공포 영화 <미믹>(Mimic, 1997년)인간의 형상과 비슷하게 진화한 크리처(creature) 나온다영화 주인공인 곤충학자(미라 소르비노 분)바퀴벌레를 죽이는 유전자 변이 곤충 유다(Judas)’를 만든다. 유전자 변이 곤충의 생태계 교란을 방지하기 위해 곤충학자는 유다의 생식 능력을 제거한다. 하지만 유다는 번식에 성공하고, 곤충의 천적 인간을 모방하면서(mimic) 괴물로 진화한다.


기예르모는 유다를 살아 있는 기계 장치처럼 보이도록 표현했다. 그가 유심히 관찰한 곤충은 자연의 살아 있는 기계 장치.











 “곤충은 자연이 만든 완성도 높은 작품입니다. 곤충의 구조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사회적, 정신적 기능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곤충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합니다. 곤충에게는 정서라는 것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으니까요. 곤충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연의 살아 있는 기계 장치입니다. 그래서 곤충이 그토록 많은 것들의 상징이 되는 겁니다. 그들은 완전히 에일리언이니까요.

 

(기예르모 델 토로기예르모 델 토로의 창작 노트중에서, 88)




기예르모는 정서가 없는 곤충을 외계의 존재(alien)와 동일시한다. 하지만 곤충학자들은 기예르모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곤충은 인간보다 먼저 지구에 정착한 작은 동물이다그들은 뛰어난 학습 능력을 갖췄고, 혹독한 기후 변화에 적응하면서 살아남았다곤충이 정서를 느끼고 있는지 좀 더 연구해 봐야 하고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다윈(Charles Darwin)과 동물학자, 곤충학자들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곤충을 포함한 동물은 고도의 지적 능력과 정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따라서 지구에 오래 살았던 곤충을 우주에서 온 이방인(alien)과 같다고 볼 수 없다.








곤충학자 에리카 맥앨리스터(Erica McAlister)와 과학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프로듀서 에이드리언 워시번(Adrian Washbourne)이 함께 쓴 책 작은 정복자들우리가 잘 모르는 곤충의 다양한 특기를 알려준다에리카 맥앨리스터는 파리를 사랑하는 곤충학자. 2년 전에 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그녀의 저서 위대한 파리》(이동훈 옮김, 마리앤미, 2023년)가 출간되었다파리는 자연을 깨끗하게 만드는 청소부다지구에 파리가 살지 않으면 우리가 버린 쓰레기와 사체는 썩지 않은 채 그대로 남게 된다.


기예르모의 유다는 인간을 죽이기 위해 인간의 신체 구조를 모방한다. 반대로 곤충학자들은 곤충의 신체 구조를 모방한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하는 연구에 매진한다벼룩은 동물, 식물,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해충이다. 영화에 묘사된 곤충학자는 벼룩을 퇴치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하지만 벼룩에 정말로 관심이 많은 곤충학자는 벼룩이 어떻게 높게 뛸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벼룩은 날개가 없는데도 자기 몸집의 60배나 넘는 거리로 펄쩍 뛸 수 있다. 벼룩의 근육은 더 멀리, 더 높게 뛰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저장한다. 천적을 만나거나 장애물을 뛰어넘을 때 근육에 있는 에너지를 방출한다. 기술 공학자들은 벼룩이 점프하는 메커니즘을 응용한 소형 로봇을 만들었다.


기예르모의 유다는 바퀴벌레와 사마귀와 흰개미의 유전자를 결합, 조작해서 만들어졌다. 바퀴벌레는 생각보다 똑똑한 곤충이다. 바퀴벌레의 뇌는 다른 곤충에 비해 뇌가 크고, 뇌의 신경세포인 뉴런 연결망이 활성화되어 있다. 학습 능력이 뛰어난 바퀴벌레는 미로처럼 좁고 복잡한 공간을 잘 돌아다니며 자기가 지나가던 길을 기억한다. 바퀴벌레가 생존 본능이 강해서 요리조리 도망 다니는 것이 아니다. 바퀴벌레는 인간이 찾을 수 없는 안전한 구역과 은신처로 돌아가는 경로를 알고 있다그들은 똑똑해서 잘 숨고 다닌다.


책에 언급된 호주의 곤충학자는 이십 년 넘게 곤충 신경계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주변 환경을 이해하면서 단시간에 생존 전략을 찾는 곤충의 유연한 모습에 감탄했다.



 곤충은 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고정된 상황에서 판에 박힌 작업을 수행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조그만 로봇이 아닌 거죠.”


(《작은 정복자들》, 8. 바퀴벌레의 신경」 중에서, 297)




해충과 익충으로 구분하는 곤충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이 곤충이라는 단어는 절지동물의 다양하면서도 복잡한 생활 방식을 설명하지 못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정지인 옮김, 곰출판, 2021년)를 쓴 과학 전문 기자 룰루 밀러(Lulu Miller)는 다윈이 말한 좋은 과학’이 해야 할 일을 강조했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중에서, 227쪽,

저자가 인용한 다윈의 말은 종의 기원》에 나온.)




좋은 곤충학은 해충과 익충으로 구분하기 위해 우리가 그어놓은 선을 무너뜨린다



우리가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할 곤충은 미물(微物)이 아니다

자연을 잘 아는 영리한 미물(美物)이다.








<곤충을 함부로 밟지 않는(不殺生戒) cyrus가 만든 주석>








《작은 정복자들》 270~271


 16세기 프랑스의 수필가이자 철학자인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수상록2에서 1513년 포르투갈 군대가 샤틴(Xiatine)의 영토에서 벌인 타믈리 시 포위 공격에 대해 묘사했다. 상황이 좋지 않자 주민들은 성벽 너머로 여러 개의 벌집을 던지자는 기발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벌집에 불을 붙인 채로 적을 향해 벌이 맹렬하게 날아갔고, 적들은 벌침에 쏘이는 것을 견디지 못해 짐을 싸고 물러나기에 이르렀다.” 화가 난 암컷 벌들 덕분에 주민들은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 [주]



[] 저자가 인용한 이야기는 에세 212레몽 스봉을 위한 변호(Apologie de Raimond de Sebonde)에 나온다. (심민화 옮김,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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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1-10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믹이란 단어를 보니 델 토르 감독의 미믹이란 영화가 생각나네요.참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운 영화였지요.

cyrus 2025-11-11 07:01   좋아요 0 | URL
제 글의 중간 부분을 안 보셨군요. 영화 <미믹>의 줄거리와 기예르모가 미믹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구상했는지 설명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해하는 미적분 수업 - 풀지 못한 미적분은 무용하고 이해하지 못한 미적분은 공허하다
데이비드 애치슨 지음, 김의석 옮김 / 바다출판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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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나는 미적분을 계산할 줄 모른다. 문과생이라서 미적분을 배우지 않았다과학책과 수학책에 미적분이 자주 나온다. 책을 보다가 미적분과 마주치면 피하지 않는다. 일단 찬찬히 살펴본다. 하지만 계속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눈은 미적분을 쳐다보고 있지만, 줄줄이 나오는 수식이 부담스러워서 미적거린다. 머리는 미적분을 강하게 거부한다. 수학 문제를 풀기 싫은 머리는 미적분만 만나면 적분(積忿)을 품는다. 이래서 내가 어려운 미적분과 친해질 수 없다.


미적분은 수학자도 어려워한다. 이해하는 미적분 수업을 쓴 영국의 수학자 데이비드 애치슨(David Acheson)도 미적분이 쉽지 않다고 인정한다그래도 과학자와 수학자들은 미적분을 반드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미적분은 물리학을 포함한 모든 과학의 기초미적분은 생각보다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다. 기타를 연주할 때 나오는 음악 속에 미적분이 숨어 있다기타 줄의 진동은 소리를 만든다. 여러 개의 줄이 흔들리면서 나오는 소리가 모이면 음악이 된다. 미적분을 알면 기타 줄이 진동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 미적분학은 사물과 자연 현상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알기 위한 학문이다. 미적분학을 만든 사람은 뉴턴(Isaac Newton)과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로 알려져 있다. 뉴턴은 행성의 움직임을 연구하기 위해 미적분을 만들었다면 라이프니츠는 일상생활에 적용되는 수학 문제를 쉽게 풀고 싶어서 미적분을 만들었다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미적분학을 만들었지만, 영국과 독일의 과학자와 수학자들은 공동 발명자를 인정하지 않았다.[주]


우리가 배우는 미적분 기호는 라이프니츠가 만든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은 뉴턴 미적분학이 라이프니츠 미적분학보다 어렵다고 생각한다내성적인 뉴턴은 집에 틀어박혀 혼자서 연구하는 성격이었다. 그의 미적분학에 나오는 기호와 공식은 뉴턴 본인만 알고 있었다. 뉴턴은 대인관계가 서툴렀고, 자신이 혼자 생각한 아이디어를 동료 학자들과 공유하는 것을 꺼렸다. 뉴턴을 지지하는 동료 학자들은 뉴턴이 혼자 만든 미적분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라이프니츠가 뉴턴보다 좀 더 정밀하게 미적분학을 만들었다고 알려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라이프니츠도 자신이 쓴 논문에 미적분 공식을 어떻게 유도했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영국과 독일 학자들은 국가 간의 명예가 달린 미적분학 논쟁에 뛰어들었으나 여기에 동참하지 않은 학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회의주의적 태도를 유지하면서 미적분학을 이해하려고 했다. 미적분에 의문을 품은 대표적인 학자가 아일랜드 철학자이자 성공회 주교였던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그는 신과 종교에 회의적인 수학자를 신앙심 없는 수학자라고 비판했다. 특히 뉴턴과 라이프니츠 미적분학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무한소(無限小, infinitesimal)’라는 개념을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오늘날 무한은 수학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이지만, 게오르크 칸토어(Georg Cantor)가 본격적으로 무한 개념을 연구하기 전까지 수학자들은 무한을 설명하려는 수학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대부터 근대까지 수학자들은 몸소 느낄 수 없는 무한을 두려워했고, 어려워했다.


이해하는 미적분 수업에도 미적분을 계산하는 과정이 나온다. 수학 공부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건너뛰어도 된다. 미적분을 풀지 못하더라도 미적분이 왜 중요한지를 이해하면 된다수학이 싫다고 해서 수학을 아무 쓸모 없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미적분 문제를 죽어도 풀기 싫은 수포자 cyrus가 만든 주석과 정오표>




[] 우리는 뉴턴과 라이프니츠를 미적분을 최초로 발명한 학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14세기에 이미 인도의 수학자 마다바(Mādhava)와 그가 이끌었던 케랄라 학파(Kerala school)가 미적분과 비슷한 계산법을 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미적분을 최초로 정립한 학자.







[참고 문헌] 

* 케이트 기타가와 · 티모시 레벨 함께 씀, 이충호 옮김, 다시 쓰는 수학의 역사: 당신이 수학을 사랑하게 만들 책, 젠더 · 인종 · 국경을 초월한 아름답도록 혼란스럽고 협력적인 이야기 (서해문집, 2024)

 





* 185





 


자연스로운 반응 → 자연스러운 반응








2020년에 출간된 구판에 있는 오자가 (표지가 새로 바꾼) 개정판에 그대로 남아 있다바다출판사에 나오는 개정판을 볼 때마다 고치지 않은 구판의 오탈자를 발견한다. 문제는 이런 책이 한두 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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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5-10-11 2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학시간에 미적분 안 나오나요? 문과도 배우면 경제학 등 공부하기 좋을것 같은데요. 그런데 저도 배운지 오래되어 대충 알지만 다시 보고 싶네요.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많이 어려운 내용은 나오지 않을것 같은데 요즘엔 어떤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cyrus님 좋은주말 보내세요.^^

cyrus 2025-10-12 00:22   좋아요 1 | URL
제가 문과생이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군요. 이과생들이 배우는 수학 교과서에 미적분이 나와요. 요즘 문과, 이과 교과서도 이렇게 편성되었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학생이었을 때 이과생들만 보는 수학 교과서가 미적분이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
 
뇌, 생각의 출현 - 대칭, 대칭의 붕괴에서 의식까지, 개정판
박문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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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점  ★★  C










철학자 데카르트(Descartes)생각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몸이 허약한 그는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천장은 데카르트를 위한 석판이다. 그는 총명한 눈빛으로 거대한 석판에 철학의 제일원리(first principle)를 새겼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생각하는 나모든 지식을 의심한다. 다만 생각하는 나를 의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생각(의심)하는 동안 나는 확실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기 위해서는 존재해야 한다.[1]


생각하는 나는 주체도, 자아도 아니다. 데카르트가 생각한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영혼이다. 데카르트는 뇌를 해부하다가 솔방울 모양을 한 아주 작은 샘(분비샘)’을 발견한다. 그는 이 부위가 영혼이 있는 자리라고 주장한다.[주2] 그러나 데카르트의 주장은 틀렸다. 샘은 영혼의 집이 아닌 송과체(송과선, 솔방울샘)라는 내분비기관이다. 밤이 되면 송과체는 수면을 유도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을 만든다.


우리는 헛다리 짚은 데카르트를 비웃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나도 그렇고, 대부분 사람은 뇌를 잘 모른다뇌는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아주 먼 부위이다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것은 영혼이 아니라 데카르트의 철학 명제를 빌려서 뇌 과학의 제일원리를 쓰면 이렇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뇌가 존재한다.” 우리가 생각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뇌가 있어야 한다.


출간된 지 17년 만에 개정판으로 나온 , 생각의 출현두 개의 역사를 다룬다. 하나는 우리 몸속에 새겨진 생명의 역사. 이 역사는 세포에서 시작해서 뇌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뇌가 형성되기 이전의 이야기다. 뇌가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으면 인간은 직립보행이 가능해지고 생각하는 동물이 된. 부지런한 뇌 덕분에 인간은 학자와 예술가가 되었다. 똑똑해진 인간은 자신들이 태어나기 한참 전인 과거의 역사를 돌아봤고, 생명의 기원을 알아냈다. 이 책이 두 번째로 다룬 역사는 우주와 지구, 인류의 역사를 아우른 거대 역사(Big History)’.


빅 브레인(Big Brain)은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주변 환경까지 지켜보고 있다빅 브라더(Big Brother)는 인간을 감시하지만, 빅 브레인은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게끔 이끌어준다. 뇌는 주변 환경을 살피고, 직접 수집한 여러 정보를 범주화해서 를 차곡차곡 만든다뇌가 제공해 준 정보를 얻은 는 감정을 느끼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기억한다저자는 인간을 움직이게 만드는 뇌의 역할을 환경에 적응하는 운동이라고 표현한다. 뇌는 우리 머릿속에서 쉬지 않고 운동한다. 뇌가 열심히 운동하는 내내 우리는 살아있다








, 생각의 출현2008년 출간 당시 뇌 과학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 이바지한 책이다. 이번에 나온 개정판은 책의 판형이 커졌고, 책값도 2배로 불어났다그러나 구판 속 내용과 거의 달라진 게 없는 책은 개정판이 아니라 개판이다. 잘 만든 과학책 개정판은 본문의 오류와 오탈자가 고쳐져 있다. 과학 공부를 좋아하는 저자와 편집자가 과학책 개정판을 잘 만들고 싶다면 새롭게 밝혀진 연구 성과나 최근 과학자들이 주목하는 과학 분야를 소개해야 한다.


잘못된 용어와 명칭 표기는 저자의 가벼운 실수로 이해하고 넘길 수 있다. 그래도 글을 쓸 때나 다 쓴 후에도 정확히 썼는지 확인해야 한다.

 


 

* 37




 


 1-8은 허블우주망원경이 성간 거대분자구름에서 원시별이 형성되는 과정을 관찰한 사진입니다. 맨 위는 지상에서 저배율 망원경으로 본 독수리자리 성운 부근의 밤하늘이고, 그 왼쪽 사진의 구름 기둥을 허블망원경이 관측한 것이 아래 사진들이죠.

 


저자는 독수리 성운(Eagle Nebula)’독수리자리 성운으로 잘못 썼다. 독수리 성운은 뱀자리에 있는 성운이다.







그다음 페이지에 독수리 성운을 확대한 사진 도판(1-8)이 있다. 맨 위의 사진에 별자리 이름이 적혀 있는데, 독수리자리 바로 옆에 말굽자리가 있다


국제천문연맹(IAU)이 공인한 별자리는 총 88개이다. 말굽자리는 국제천문연맹 공인 별자리가 아니다. 인터넷에 검색해 봐도 말굽자리를 설명한 자료가 나오지 않는다.말굽자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명칭이다. 궁수자리는 독수리자리 근처에 있는 별자리다. 궁수자리에 있는 오메가 성운(Omega Nebula)의 별칭이 말굽 성운이다.

 

저자는 뇌 시스템의 진화 순서를 설명하면서 뇌 시스템에 위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뇌가 세 단계로 진화하는 과정을 뇌 과학 용어로 뇌의 삼위일체설이라고 한다.




* 372




 

 세 단계로 뇌의 시스템이 진화되어 온 순서는 이렇습니다. 맨 처음 나타난 게 파충류 뇌. 뇌간을 중심으로 발달한 시스템입니다. 주로 호흡 작용이나 맥박 등과 관련되어 있죠. 그다음에 나타난 것이 고() 포유동물의 뇌입니다. 흔히 뇌의 삼위일체설(미국의 심리학자 폴 맥클린이 인간의 뇌를 뇌간, 변연계, 대뇌피질 등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세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고 주창한 것)을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감정을 생성하는 부위죠. 변연계를 중심으로 발달한, 원시 포유동물이 갖고 있는 뇌입니다. 그리고 인간으로 진화하면서 대상회를 완전히 덮으며 신피질이 크게 발달하게 되죠.



파충류 뇌는 도마뱀 뇌라고 불리기도 한다. 뇌의 삼위일체설을 믿는 대중은 파충류 뇌를 감정적이고 생존 본능에 충실한 야성적인 뇌라고 인식한다. 반면 신피질은 감정을 조절하고 충동을 억제하는 이성적인 뇌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뇌의 삼위일체설은 한참 오래전에 오류로 밝혀진 잘못된 과학 상식이다.[주3] 뇌 구조와 뇌 시스템에 위계는 없다. 뇌는 신경세포를 만들어가면서 진화하고, 점점 커지면서 재조직한다. 신피질은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신경세포가 점점 발달하면서 형성된 조직이다.




* 442




 

 기존 입자와 상호작용의 표준 모델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입자가 힉스(Higgs) 보존입니다.

 

 


* 463




 

 상대성이론이 예측하는 중력파를 측정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죠.

 



2012년에 힉스 보손이 발견되었다. 2015년에 중력파 검출에 성공했고, 이듬해에 과학자들은 중력파의 존재를 인정했다


저자는 새로운 지식을 학습하는 일을 멈춘 상태다. 얼굴과 몸집만 달라진 책의 속살에 빛바랜 지식은 지워지지 않았다.









[1] 르네 데카르트, 이재훈 옮김, 방법서설: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휴머니스트, 2024), 84.


[주2르네 데카르트, 김선영 옮김, 정념론(문예출판사, 2013), 45.


[주3리사 펠드먼 배럿변지영 옮김이토록 뜻밖의 뇌과학뇌가 당신에 관해 말할 수 있는 7과 1/2가지 진실》 (더퀘스트, 2021년), 1강 뇌는 하나다삼위일체의 뇌는 버려라







<좋은 책인지 그저 그런 책인지 구별하는 cyrus의 정오표>



* 299, 368






정신분열증 조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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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보기 전에 책 얼굴(앞표지)부터 살펴본다내가 선호하는 책 얼굴은 화가의 그림이 있는 것이다. 특히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으로 장식된 책 얼굴을 만나면 반갑다. 최근에 완독한 탄소라는 세계의 책 얼굴은 앙리 루소(Henri Rousseau)의 그림이다.






 













* 폴 호컨, 이한음 옮김 탄소라는 세계(웅진지식하우스, 2025)

 

* 코르넬리아 슈타베노프, 이영주 옮김 앙리 루소(마로니에북스, 2006)

 

* [절판] 정금희 · 조명식 · 쥬세페 고아 편집 앙리 루소(재원, 2005)





책 앞날개에 적힌 루소의 그림 제목은 Jungle with Setting Sun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해가 지는 정글이다







루소는 이국적인 풍경을 주로 그렸다. 그러나 루소는 열대우림이 많은 아프리카에 가본 적이 없다정글에 가지 않아도 정글을 그리는 방법이 있다. 열대 식물들이 자라는 식물원에 가면 된다. 루소는 식물원에 드나들면서 열대 식물들의 생김새를 눈여겨봤다하지만 그는 꽃과 나무를 똑같이 그리려고 하지 않았다루소는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아마추어 화가였다. 그는 원근법을 무시하거나 상상력을 덧칠해서 풍경화를 그렸다.








 

그림의 실체를 잘 모르는 독자는 루소가 평화로운 정글을 상상해서 그린 풍경화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책 얼굴의 절반을 가린 띠지를 벗기면 참담한 형상이 나타난다수풀 사이로 야생 동물에 잡아먹히는 아프리카 원주민이 보인. 이 그림의 다른 제목은 Black Man Attacked by a Jaguar. 야생 동물의 정체는 재규어상상화에 묘사된 세상은 환상이고, 정확하지 않다. 재규어의 습격에 당한 아프리카 흑인은 모순이다. 재규어는 아프리카가 아닌 중남미에 서식한다.


루소의 그림들에서 나타나는 모순적 이미지는 예술적 상상력이 빚어낸 산물이다루소의 그림을 감상하려면 사실을 바라보려는 눈을 감아야 한다. 그러면 루소가 그린 환상의 세계를 들어갈 수 있다.

















* 찰스 로버트 다윈, 장대익 옮김, 최재천 감수 종의 기원(사이언스북스, 2019)



탄소라는 세계를 다 읽은 후에 다시 책 얼굴을 살펴봤다. 책 얼굴과 책의 속살(책의 핵심 내용)이 다르다.


책 얼굴이 된 루소의 그림은 약육강식의 냉혹한 정글을 연상시킨다. 강자는 약자를 지배하고 멸망시킨다지금까지 살아남는 존재는 강자다정글에 오직 힘의 논리만이 통한다탄소라는 세계는 정글이 생각보다 냉혹하지 않으며 자연에 살벌한 경쟁만 있는 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 책이 독자에게 보여주고픈 속살은 협력하고 공생하는 자연 생태계다.



































* [개정판] 최재천 다윈 지능: 최재천의 진화학 에세이(사이언스북스, 2022)

 

* 브라이언 헤어 · 버네사 우즈 함께 씀, 이민아 옮김, 박한선 감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디플롯[주1], 2021)

 

* 다니엘 S. 밀로, 이충호 옮김 굿 이너프: 평범한 종을 위한 진화론(다산사이언스, 2021)

 

* 프란츠 부케티츠, 이덕임 옮김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 다윈의 자연선택론과 적자생존의 비밀(이가서, 2011)




지금도 여전히 대중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자연관을 주장한 생물학자로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을 지목한다. 다윈은 억울하다. 그는 약육강식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책 종의 기원에 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강조하는 비정한 논리로 사용됐다하지만 다윈의 의도와 다르게 진화론은 경쟁을 부추기고 사회적 약자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선전 도구로 변질되었다.


자연에서 가장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적자는 완벽하지 않다. 그리고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 진화는 생명체가 완벽한 상태로 거듭나는 과정이 아니다. 약점이 있는 생명체가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에 적응하기 위한 전략이다

















신현철 다윈을 오해한 대한민국》 (소명출판, 2025)

 

[수정 증보판] 찰스 로버트 다윈신현철 옮김 종의 기원 톺아보기》 (소명출판, 2024)




우리나라에 번역된 진화경쟁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를 수입한 것이다. 두 개의 단어는 일본의 지배를 받기 전인 대한제국 시절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근대 일본에서 번역된 진화경쟁은 명확한 정의가 없는 불완전한 단어였다. 서양 사상을 받아들인 일본 지식인들은 진화경쟁을 다윈의 생각과 다르게 이해했다. 다윈이 생각한 자연관을 제대로 이해한 일본 지식인은 남을 이기기 위한 경쟁이 아닌 모두가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약육강식’을 내세우는 진화론이 우세했다유럽과 자웅을 겨룰 만한 강대국이 된 일본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전역을 지배한다. 이 시기에 진화경쟁은 우리가 아는 약육강식과 동일한 의미의 단어로 자리 잡게 된다.


일제강점기의 조선 지식인들은 굴욕적인 약소국 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론적 대안으로 약육강식을 주장했다. 처음에 그들은 부국강병을 주장했지만, 독립에 대한 열망이 식어버린 이후부터 강자 앞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였다. 고개 숙인 지식인들은 아시아의 강대국 일본에 순응하면서 발전하는 것이 이롭다고 주장하는 친일파로 변절했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5년 9월의 세계 문학]

조지 오웰이한중 옮김 나는 왜 쓰는가》 (한겨레출판, 2025개정 증보판)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아카넷[주1], 2025)

 



조지 오웰(George Orwell)정치와 영어라는 글에서 정치적 언어를 이렇게 정의한다.



 정치적 언어거짓을 사실처럼 만들고 살인을 존중할 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순전한 헛소리를 그럴듯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안된다.


(조지 오웰, 정치와 영어중에서, 나는 왜 쓰는가수록, 291)




진화는 다양한 생명이 한데 어우러진 자연의 참모습이 담긴 과학 용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의 생각들이 묻혀서 지저분한 정치적 용어가 되고 말았다. 다윈의 책을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은 진화를 거쳐야 인간이 진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다윈은 진화가 진보의 동일한 단어로 쓰이는 것에 반대했다. 진화론을 잘 안다고 주장하는 우파는 경쟁에서 살아남은 개인을 존중한다. 얼치기 진화론자는 진화의 정의가 강한 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거짓말하고, ‘남을 쓰러뜨려 이기는 경쟁을 정당화한다. 정치적 언어가 된 진화는 위험하다.


최근에 새로 나온 니체(Nietzsche)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번역본은 기존의 번역서들보다 번역자의 주석이 많은 편이다. 이번 번역본의 역자는 니체 철학 연구의 권위자 박찬국 교수그런데 본문이 시작되는 부분에 위험한 주석이 있다. 문제의 주석은 다윈의 자연관과 니체의 자연관을 비교한 내용이다.








 자연에는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종과 다채로운 변화와 풍요로움이 존재한다. 이 점에서 니체의 자연관은 자연을 부족한 자원을 둘러싸고 생명체들이 투쟁하는 결핍의 장소로 보는 다윈식의 진화론적인 자연관과는 다르다.

 니체에게서 자연은 마치 넘쳐흐르는 자신의 힘을 분출하지 못하여 고통스러워하는 생명체와 유사하다. 차라투스트라에게는 자신의 지혜를 베푸는 일이 행복이다.

 

(주석 5, 14)




박 교수가 언급한 다윈의 진화론적 자연관은 정치로 오염된진화의 잘못된 의미가 반영되어 있다. 다윈은 지구상의 수많은 생명체가 생물 다양성에 의해 건강한 상호 관계를 유지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유기체 간의 상호 관계, 그리고 각 유기체와 물리적 환경 간의 상호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면서도 딱 들어맞는가도 생각해 보라.

 

(찰스 다윈, 장대익 옮김, 종의 기원》 「4장 자연선택중에서, 141)



다윈의 진화론을 편협하게 설명한 위험한 주석은 사소하지 않다. 주석의 심각성에 둔감한 독자들이 있다면 거꾸로 생각해 보자. 니체의 철학이 독일 나치즘(Nazism)에 영향을 준 사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보기만 할 텐가. 니체는 반유대주의를 비판했지만, 그가 죽은 후에 니체 철학의 핵심 위버멘쉬(Übermensch)’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Hitler)가 좋아하는 정치적 용어가 되었다.


다윈과 니체는 억울하다. 두 사람은 정치에 물들인 언어 진화와 위버멘쉬를 말하지 않았다그들을 지지하는 추종자들은 이론과 사상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치색을 입혔다













<다윈과 니체를 좋아하는 cyrus가 만든 주석>



[1] 디플롯 출판사는 학술서와 고전을 주로 펴낸 아카넷 출판사 소속의 임프린트 출판사(독립 브랜드).

 





* 다윈을 오해한 대한민국, 104




 

 다윈이 쓴 또 다른 책 Desecnt of Man[2]인간의 친연관계가 아니라 인간의 기원이나 인간의 유래또는 인간의 계승으로 번역한다면, 다윈이 생각하는 바가 조금은 오해될 수 있을 것이다.



[2] Desecnt Descent. 인간의 유래로 알려진 다윈의 책 제목의 영어 철자가 틀렸다중간에 있는 ec가 바뀌었다.






* 다윈을 오해한 대한민국, 214




 

 다윈이 모든 생명체 사이에서, 그리고 생명체와 물리적인 살아가는[3] 조건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상호 연관성이 얼마나 무한히 복잡하면서도 서로에게 잘 부합하는지도 유념해야 한다고 설명했듯이, 생물과 환경과의 적절한 관계가 생물다양성의 지속성을 담보할 것이다.



[3] 문장이 어색하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번역하고 주석을 단 종의 기원 톺아보기에 있는 문장을 인용했다. 그런데 종의 기원 톺아보기구판(2019년 출간) 118쪽에 있는 비문(非文)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옮겨 적었다작년에 나온 수정 증보판에도 비문이 남아 있다. 비문이 나오는 쪽수는 구판과 똑같이 118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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