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세계문학의 숲 3
토머스 드 퀸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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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대구 독서 모임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6월의 세계 문학





소크라테스(Socrates)지혜를 사랑한(philosophy) 말쟁이.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온 ‘어떤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주1] 그는 자신을 훈계하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신중하게 생각했고, 행동했다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Plato)은 이 신적인 존재를 다이모니온(daimonion)’이라고 불렀다. 다이모니온은 철학 하는 수호신이다.


토머스 드 퀸시(Thomas De Quincey)아편을 사랑한 글쟁이. 치통과 위장병은 궁핍한 생활로 허약해진 드 퀸시를 괴롭혔다. 한동안 잠잠했던 병은 불쑥 튀어나와 드 퀸시의 몸과 마음을 들이쑤셨다. 아픔을 참지 못한 드 퀸시는 아편을 자주 마셨다. 드 퀸시가 살았던 19세기 영국 사회는 지금과는 다르게 아편에 관대했다. 아편은 약국에 가면 구할 수 있는 진통제였다. 하지만 아편은 야누스(Janus)의 얼굴을 가진 마약이다. 통증이 조용해지면 소란스러운 금단 증상이 생긴다. 드 퀸시는 불면에 시달렸고, 눈앞에 환영이 펼쳐졌다. 이렇듯 정신이 어지럽거나 알 수 없는 불안이 덮치면 아편을 찾았다. 드 퀸시는 아편에 절인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세상에 알리는 글을 썼다. 그 글이 바로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약칭 고백’)이다.


고백은 드 퀸시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글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괴롭힌 글이기도 하다. 드 퀸시와 알고 지낸 시인 새뮤얼 콜리지(Samuel Coleridge)도 아편 중독자였는데, 그는 아편을 미화한 고백을 비난했다. 예전부터 아편 남용의 문제점을 주장한 의사들도 고백의 비난 행렬을 멈추지 않았다. 19세기 영국 사회는 변하고 있었다. 고백이 발표된 이후부터 아편을 관대하게 바라보던 여론이 줄어들었고, 대중의 아편 남용이 사회를 좀먹는 문제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도덕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 지식인들은 고백이 아편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오히려 아편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드 퀸시는 고상한 비평가들의 반응에 맞서서 변론했다. 그는 아편 중독 문제의 원인을 무조건 고백탓이라고 몰아세우는 집단 심리를 비판했다.


드 퀸시는 아편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고 고백한다. 그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은 고통과 불행에 초연한 삶이다. 고통이 아예 없는 삶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아편은 일시적으로 고통을 가라앉히게 해준다. 아편의 약효가 사라지면 고통이 다시 생긴다. 드 퀸시는 가난한 부랑자로 살아온 시절이 무척 힘들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매춘부 앤(Anne)과 함께했던 가난한 시절을 그리워한다. 앤은 드 퀸시에게 선심을 베풀고, 지쳐서 거리 한가운데서 죽을 뻔한 드 퀸시를 살려주었다. 드 퀸시는 아편 중독에 관해 고백하기에 앞서 앤이 어떤 인물인지 소개한다. 앤은 드 퀸시의 은인이자, 드 퀸시에게 고통과 불행을 견디는 법을 알려준 수호신이었다.


아편쟁이생계형 글쟁이는 지금까지도 드 퀸시를 졸졸 따라다니는 명함이다. 이 명함을 치우면 철학쟁이드 퀸시를 만날 수 있다. 드 퀸시는 철학을 혼자 공부하면서 자신만의 철학 저서를 쓰고 싶어 했다. 드 퀸시는 고백에서 종종 자신을 철학자인 것처럼 언급한다. 그는 성별, 신분, 학벌 등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과 어울리는 소크라테스 풍대화를 좋아한다고 했다(예비 고백, 47).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아무에게나 다가가서 먼저 질문을 던지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거리를 떠도는 부랑자의 삶, 행복을 느끼고 싶어서 아편을 마시는 일에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는 품성. 고백》에서 드러난 드 퀸시의 삶의 자세는 플라톤이 미친 소크라테스라고 평가한[주2] 거리의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를 떠올리게 한다.


드 퀸시는 자신이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 아닌 겨울이라고 했다(『아편의 고통으로 들어가는 말』, 124~125쪽). 역시 고통을 견딜 줄 아는 사람답다. 남들은 따사롭고 편안한 봄을 좋아하지만, 그는 폭설과 한파를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살려고 한다. 고대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Seneca)고난과 불행을 차분히 견디면서 사는 삶은 결국 우리 정신을 강인하게 만들어준다고 했다.[주3] 고대 그리스 · 로마 고전을 즐겨 읽은 드 퀸시는 고백에 세네카를 인용하지 않았지만, 그는 세네카처럼 살았다.

 

니체(Nietzsche)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욱더 강하게 만든다라고 했다.[주4] 아편은 드 퀸시의 몸을 갉아 먹으면서 죽였다. 하지만 철학을 사랑하는 정신은 죽이지 못했다. 스토아주의자들은 철학을 마음이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는 약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가? 드 퀸시는 생각보다 오래 살았다(74세에 눈을 감았다). 드 퀸시를 강하게 만든 것은 아편과 철학이다.








[1]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31d, 79~80(강철웅 옮김, 아카넷, 2020). ‘다이모니온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루이-앙드레 도리옹의 소크라테스(김유석 옮김, 소요서가, 2023)을 참조할 것.

 

[2]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6<견유학파>, 518(김주일 · 김인곤 · 김재홍 · 이정호 옮김, 나남, 2021).

 

[3] 세네카, <섭리에 관하여> 4, 22~23(김남우 · 이선주 · 임성진 옮김, 세네카의 대화: 인생에 관하여, 까치, 2016).

 

[4] 니체, 우상의 황혼, <잠언과 화살>, 14~15(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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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5-07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이 한국에도 벌써 번역되었군요.개인적으로 이책은 셜록홈즈가 왜 아편중독이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지식같은 설명으로 언틋본기억이 납니다.마약이아닌 기호식품으로써의 아편을 다룬 책이라고 들었는데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보고 싶군요

cyrus 2025-05-11 09:46   좋아요 0 | URL
홈스가 사건 해결을 위해 아편굴에 위장 전입한 일을 언급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본인 말로는 아편을 피우러 간 게 아니라고 해명해요. <네 개의 서명>에 홈스가 단순히 심심해서 코카인을 복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의 말을 믿으면 홈스가 아편을 복용했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심심해서 약물을 즐기는 홈스가 아편을 그냥 지나쳤을지 위험한(?) 상상을 해보게 돼요. ^^;;
 
딕테
차학경 지음, 김경년 옮김 / 문학사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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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대구 독서 모임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2월의 세계문학









얼떨결에 하와이에 불시착한 테레사(Theresa). 아시아의 변방으로 알려진 한국에서 온 소녀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 아늑한 집, 듬직한 어버이, 어머니의 포근한 품에 나오는 말(母語). 어디서 잃었는지 소녀는 모른다. 불안해진 소녀의 조그마한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는다. 테레사는 외로움과 추위에 떨었다. 소녀를 움츠리게 만드는 하와이의 차가운 바람은 어디서 부는 것일까.







테레사의 괴로움에 이유가 있다. 소녀는 혼자다. 커다란 하와이는 육첩방과 같은 남의 나라.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무인도. 혼자서 아픔을 참다가 병원에 온 테레사. 그러나 의사는 소녀의 병을 모른다. 그녀한테 병이 없다고 한다. 지나친 시련, 지나친 피로. 하지만 소녀는 성내서는 안 된다. 테레사, 불쌍한 테레사. 끝없이 침전하는 테레사.


인생살이가 어렵다던 윤동주 시인시가 쉽게 써지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고달픈 인생살이를 너무 일찍 깨달은 테레사도 손쉽게 글을 쓰지 않았다. 그녀가 글을 쓰는 것은 어렸을 때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한 일이다어른이 된 테레사는 여러 번 쓰다가 하와이의 바닷모래로 덮어 버린 자신의 옛 이름을 찾았다. 차학경(Hak Kyung Cha). 어머니의 말(母語)에서 태어난 이름이다.[]


차학경의 첫 번째 책 딕테(Dictee)가족과 고향의 추억을 되새긴 앨범이요, 회상록이다딕테》는 눈으로 읽는책이면서도 눈으로 보는이다. 이 책에 차학경의 아버지 차형상이 직접 붓으로 쓴 글씨어머니 허형순의 사진이 있다. 차학경은 어버이에 대한 그리움을 이미지로 표현했다. 그녀는 왜 텍스트 곳곳에 이미지를 넣었을까그녀는 말하기가 자신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이 책에서 차학경은 자신을 말하는 여자(diseuse)’로 지칭한다. 하지만 그녀는 언어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다. 낯선 언어를 억지로 만나면 입과 혀의 활기가 없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언어는 라는 정체성을 보여주지 못한다차학경에게 이미지는 책을 쓰기 위해 활용된 비언어적 표현 수단이 아니다. 본인의 정체성과 다양한 감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시할 수 있는 2 언어.







차학경은 남의 나라에 적응하기 위해 남의 언어와 문화를 받아 쓰면서(Dictee)’ 성장했다. 포근한 어머니의 말에 익숙한 혀는 차가운 남의 언어가 닿는 순간, 바로 얼어버린다. 목젖은 닫힌다. 웅크린 목소리는 목구멍으로 들어간다. 말하는 여자가 되고 싶은 차학경남의 말과 비슷한 것을 뱉어본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 나오는 것은 단어들이 어설프게 만나서 생긴 비문(非文)이다. 남의 나라 사람들은 이방인의 어설픈 말을 듣지 못한다.


어머니 차형순은 차학경에게 말하기와 글쓰기의 가치를 처음으로 알려준 스승이다. 그래서 차형순은 딕테를 태어나게 한 할머니이자 산파이 책의 2칼리오페 서사시는 어린 차학경이 소중하게 여긴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텍스트다어머니, 모국어, 고향은 차학경의 삶에서 절대로 분리할 수 없는 것들이다.






 당신은 어둠 속에서 말합니다. 비밀 속에서. 바로 당신의 언어를 말합니다. 당신 자신의 언어. 당신은 아주 부드럽게, 속삭여 말합니다. 어둠 속에서, 비밀스럽게. 모국어는 당신의 안식처입니다. 당신의 고향입니다. 당신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진정으로. 


(56쪽)



말하는 여자자신이 누군지 떳떳하게 말할 줄 아는 인간이다. 그리고 자유와 존엄성을 말살하는 세상에 거세게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차학경은 남성에게 복종하는 여성을 양산하는 세상에 저항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유관순과 잔 다르크(Jeanne d’Arc), 가톨릭 성인 테레즈 수녀(Thérèse de Lisieux, 리지외의 테레사, 小花 데레사)를 소환한다. 이 세 사람은 차학경보다 먼저 태어났다. 그녀들은 어린 나이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인식했으며,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행동으로 실천했다. 1장 「클리오 역사」(유관순), 5장 「에라토 연애」(테레즈 수녀, 잔 다르크) 주체적인 여성의 삶과 목소리를 재구성한 글이다. 차학경은 이 글을 통해 자신 또한 그들처럼 살아가겠다고 천명한다.


딕테는 작가가 소중하게 여긴 것들을 모아 놓은 보석함과 같은 책이다. 어머니와 모어는 굳어 있던 작가의 입과 혀를 살아있게 해주는 생명력이다. 작가는 한국을 떠나면서 놔두고 온 어머니와 모어를 되찾고 나서야 자신이 진정 누군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한국 사람이면서도 미국 사람이다. 한국에서 차학경으로 태어나 ‘테레사’라는 이름을 부여받아 미국에 정착한 디아스포라(Diaspora)다. 글 쓰는 작가이자 비디오 아트(Video art) 예술가였다. 어머니와 모어는 풍요로운 정체성을 지닌 테레사 학경 차’로 성장하게 만든 힘이다.





[] 숨은 윤동주 찾기글의 첫 문단부터 세 번째 문단까지의 글은 윤동주 시인의 시구(밑줄을 친 부분)를 엮어서 썼다. 내가 인용한 시는 <쉽게 씌어진 시>, <>, <바람이 불어>, <>, <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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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Homeros)는 물음표가 많은 음유시인이다. 그가 어디서 태어났으며, 언제 태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나마 알려진 정보는 호메로스가 시력을 잃은 걸인이었다는 점이다.


















* [개정판 절판] 알베르토 망겔, 김헌 옮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 세계적인 인문학자가 밝히는 서구문화의 근원(세종서적, 2015)

 

* [구판 절판] 알베르토 망겔, 김헌 옮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 세계적인 인문학자가 밝히는 서구문화의 근원(세종서적, 2012)

 

* 새뮤얼 버틀러, 한은경 옮김, 이인식 해제 에레혼(김영사, 2018)





호메로스는 어떤 사람인가, 실제로 존재했을까?정답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이 질문을 호메로스 문제(Homeric Question)’라고 한다사람들은 호메로스의 정체에 대해 갖가지의 가설을 제시했다. 에레혼이라는 유토피아적 소설을 쓴 영국의 작가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ler)호메로스의 성별을 의심했다. 그는 호메로스가 여성이라고 주장했다.


















[대구 책방 <일글책서양 인문 고전 읽기 2023년 첫 번째 선정 도서]

* 호메로스,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도서 출판 숲, 2015)


[대구 책방 <일글책서양 인문 고전 읽기 2023년 두 번째 선정 도서]

* 호메로스, 천병희 옮김 오뒷세이아(도서 출판 숲, 2015)





그가 내세운 증거는 오뒷세이아에 있는 사소한 오류들이다. 예컨대 배의 내부 구조와 그리스 국가의 지리와 관련한 묘사가 정확하지 않은 점이다. 여러 개의 오류를 발견한 버틀러는 남성이라면 하지 않는 실수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뒷세이아의 작가가 여성이라서 오디세우스(Odysseus)의 궁전 내부를 상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버틀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호메로스의 정체는 시칠리아 출신의 젊은 미혼 여성이다. 그녀는 일리아스를 마음대로 인용하면서 오뒷세이아를 썼다.


몇몇 독자는 여전히 호메로스가 여성이라는 가설에 끌린다(나도 한때 이 견해에 흥미를 느낀 적이 있다). 그러나 버틀러의 견해는 억측이다. 호메로스를 둘러싼 성별 논란은 재고할 가치가 없다. 여성의 창작 능력을 깎아내리는 성차별적 인식에서 비롯된 남성들만의 문제. 버틀러는 가부장의 권위가 식민지로 뻗어나가고 있던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했다. 이 시대에 살았던 여성 작가들은 남성 중심 문단이라는 커다란 장벽을 마주쳐야 했다. 이들은 작품들이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남성 작가로 보일 수 있는 필명을 썼다.


버틀러는 여성의 글솜씨가 서투르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그래서 호메로스를 여성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남성 지식인들은 버틀러의 허무맹랑한 주장에 분개했다. 그들은 유구한 서양 지성사의 시작을 알린 아버지와 같은 호메로스가 절대로 여성일 리 없다고 믿었다. 버틀러를 비판한 지식인들은 두려워했다. 호메로스가 여성이라고 알려지게 되면, ‘남성의, 남성이 만든, 남성을 위한 지성사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남성의남성이 만든남성을 위한 지성사’를 거룩하게 묘사한 그림이 앵그르(Ingres)의 호메로스 예찬(The Apotheosis of Homer, 1827)이다. 앵그르는 이 그림에서 호메로스를 고전의 전당을 다스리는 통치자로 묘사했다.


















* [절판] 정금희 엮음 앵그르(재원, 2015)


* 아르킬리코스 & 사포 외, 김남우 옮김 고대 그리스 서성시(민음사, 2018)

 

* 아르킬리코스 외, 오자성 옮김 고대 그리스 서성시선: 서정시는 어떻게 쓰여지는가(청개구리아카데미, 2011)





승리의 여신이 권좌에 앉아 있는 호메로스에게 월계관을 씌워주고 있다. 권좌 아래에 있는 두 여자는 일리아스오뒷세이아를 상징한다호메로스 이후에 활동한 남성 작가와 예술가들이 아버지를 숭배하기 위해 모여들었다이 그림에서 유일하게 등장한 여성 문인은 고대 그리스의 시인 사포(sappho).


알베르토 망겔(Alberto Manguel)은 버틀러의 기이한주장이 틀렸음을 인정하면서도, 고전을 대담하게 해석한 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고전은 예나 지금이나 독자를 지배한다. 고전의 위압감에 눌린 독자는 고전이 알려주는 모든 내용을 순순히 따른다. 그러나 버틀러는 고전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고전을 해석했다. 망겔은 버틀러처럼 유쾌한 뻔뻔함이 있어야 고전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 265).


논리적으로 맞지 않더라도 고전을 읽고 느낀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고전 해석에 정답은 없다. 완벽한 해석은 없다. 그러나 버틀러는 자신의 해석이 정답이라고 믿었다. 버틀러의 해석은 편파적이다. 이런 해석은 재미가 없고 불쾌하다. 버틀러의 불쾌한 뻔뻔함은 고전뿐만 아니라 고전을 읽은 타인의 해석마저 망가뜨리려고 했다. 고전을 자기 마음대로 뒤집으려면, 고전을 대하는 자신의 해석도 뒤집을 수 있어야 한다. 고전 해석은 고전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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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5-01-25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오늘부터 연휴 시작인데, 편안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월요일이 임시공휴일이 되면서 이번 연휴가 많이 길어졌어요.
연휴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25-01-27 09:18   좋아요 1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니데이님. 연휴 전 2주 동안 잔업을 연속으로 해서 책을 제대로 못 읽었어요. 토요일부터 읽고 싶은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 많아서 집과 카페에서만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

그레이스 2025-01-27 0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망구엘의 이 책 저는 왜 몰랐죠?
장바구니에 넣어갑니다~♡
절판이네요 ㅠ
아! 이펙트! 이 책으로 갖고 있어요 ㅋㅋ

cyrus 2025-01-27 09:34   좋아요 1 | URL
구판, 개정판 모두 절판됐어요. 이중에 한 권만 있으면 됩니다 ㅎㅎㅎ
망겔이 쓴 책도 그렇고 , 그레이트 이펙트 시리즈가 읽어볼만한 고전 개론서인데 전부 다 절판됐어요.
 
벨기에 물고기
레오노르 콩피노 지음, 임혜경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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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점  ★★★★☆  A





동심은 신이 나서 팔딱거린다. 어린이는 놀기 좋아하는 동심이 이끄는 대로 세상을 여행한다. 어린이는 새로운 것과 친해지고 싶어 한다. 지칠 줄 모르는 동심을 품은 어린이는 놀면서 한 뼘씩 계속 자란다. 동심은 어린이가 어른으로 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른은 동심을 가두는 감옥이다. 꼼짝 없이 어른에 갇힌 동심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어른으로 변한 어린이는 자신의 가슴속에 살고 있었던 동심이 죽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프랑스 극작가 레오노르 콩피노(Léonore Confino)의 생각은 다르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본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린 시절의 흔적을 찾으려고 했다. 비록 동심을 만나지 못했지만, 콩피노는 동심 찾기를 실패로 단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 안의 어린아이가 아직 죽지 않았으며 세월이 흐르면서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콩피노의 희곡 벨기에 물고기는 우리에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동심을 다시 만나라고 부추긴다벨기에 물고기에 나오는 인물은 40대 중년 어른과 10대 어린아이. 그랑드 므시외(Grande monsieur)는 혼자 사는 크로스드레싱(Crossdressing)이다. 생물학적 성별은 남성이지만, 평소에 여성의 옷을 입는다. 그랑드 므시외는 잊을 수 없는 불행한 과거를 안고 살아간다. 그는 과거에 한 명의 자식을 둔 유부남이었다. 아내는 여성의 옷을 입는 동성애자 남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린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 


프티 피유(Petit fille)는 정신분석가로 활동하는 부모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그랑드 므시외를 만난다. 친한 성소수자 외에 타인을 경계하는 그랑드 므시외는 프티 피유를 자신의 집에 초대한다. 아이를 양육한 경험이 없는 그랑드 므시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프티 피유의 말과 행동에 쩔쩔맨다프티 피유는 특이한 인물이다. 자신이 물고기라고 주장한다. 그녀의 양쪽 옆구리에 아가미가 있다그랑드 므시외는 프티 피유의 부모가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고아가 된 프티 피유는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데, 한 번 나온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프티 피유가 흘린 눈물은 어항을 한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이 극작품에 튼튼한 금붕어가 나온다. 그랑드 므시외는 프티 피유를 위해 특별한 상중 의식을 치른다.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를 눈물로 채운 어항에 집어넣는다. 일주일 동안 물고기와 함께 산다. 일주일이 지나면 물고기를 방망이로 한 번에 때려서 기절시킨다. 빈사 상태가 된 물고기를 튀겨서 먹으면 상중 의식은 끝이 난다. 하지만 그랑드 므시외와 프티 피유는 튼튼한 금붕어를 죽이지 못한다. 빗자루로 여러 번 내려쳐도 금붕어는 죽지 않는다. 두 사람은 금붕어와 함께 산다.


벨기에 물고기에 묘사된 시공간은 어른어린이의 경계가 없다. 그랑드 므시외는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성장하는 인간이다. 그랑드 므시외는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고독한 어른이다. 프티 피유를 만난 이후부터 그는 가족과 타인과 함께 사는 삶의 소중함을 느낀다죽지 않는 튼튼한 금붕어살아서 움직이는 동심을 상징한다. 동심은 단순히 어린이만 가지고 있는 백지상태의 마음이 아니다. 어린이와 함께 책을 읽는 일을 하는 작가 김소영동심을 어린이의 세계’라고 표현한.[어린이의 세계는 계속 커진다. 어린이의 세계 안에는 어린이가 세상을 만나면서 얻게 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속에 즐겁고 유쾌한 추억만 있는 건 아니다. 눈물과 상처도 있다. 어린이의 세계는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자양분이다. 성장이 멈춘 어른은 어린이의 세계를 잊어버린다. 하지만 어린이의 세계를 소중히 간직하는 어른은 날마다 달라지는 세상과 친해지려고 열심히 배우는 인간이다. 낯설고 새로운 것을 환대할수록 그들의 정신은 끊임없이 성장한다. 따라서 동심은 계속 자라는 마음이다.


벨기에 물고기희미해진 어린이의 세계로 향하는 거울과 같은 희곡이다. 그랑드 므시외와 프티 피유가 주고받는 대화를 읽으면 우리가 어린 시절에 했던 말버릇과 행동을 발견할 수 있다.맞아, 나도 저랬었지!’라고 느꼈다면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동심이 꿈틀거릴 것이다. 동심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





[]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사계절,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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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긍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김영신 옮김 / 불란서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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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Nietzsche)는 스스로 디오니소스(Dionysos)의 제자라고 했다.
그리고 성자보다는 사티로스(Satyr)가 되고 싶다고 했다.

콜레트(Colette)는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사제 마이나스(Maenads)다.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글을 써라.”
그녀는 숙녀의 삶을 거부하고 사포(Sappho)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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