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밀라 - 태초에 뱀파이어 소녀가 있었다
조셉 토마스 셰리든 르 파뉴 지음, 김소영 외 옮김 / 지식의편집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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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박혜영 님 보세요.

 

역자님의 글 마지막에 있는 남성 십자군에 의해 남근을 상징하는 말뚝에 박혀 죽는다라는 문장(295)은 제가 2019년에 썼던 표현(“남성 십자군”, “‘남근을 상징하는 말뚝에 박혀 죽는다”)과 비슷합니다.

 


* [레즈비언 뱀파이어는 여성이 아니다] 2019826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1055237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저는 2019년에 작성한 글을 절대로 고치지 않았습니다.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서 책의 별점을 낮게 주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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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작가 레 파누(Le Fanu, 르 파뉴 또는 레 파뉴라고 부르기도 한다)공포문학의 대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미국의 작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는 공포문학 비평집 공포문학의 매혹(Supernatural horror in literature, 1927)에 레 파누의 이름만 언급했다무슨 이유에서인지 레 파누가 쓴 작품을 단 한 편도 소개하지 않았다.


















* 르 파뉴 카르밀라(지식의편집, 2021)


평점: 3점   ★★★   B

 

 

* H. P. 러브크래프트 공포문학의 매혹(북스피어, 2012)




 

레 파누의 대표작은 카르밀라(Carmilla, 1872). ‘카르밀라뱀파이어(Vampire)로 등장하는 소녀의 이름이다. 이 작품은 브램 스토커(Bram Stoker)드라큘라(Dracula, 1897)에 영향을 주었다레 파누는 세상을 떠나기 일 년 전인 1872년에 단편집 <In a Glass Darkly>를 발표했다. 이 책에 총 다섯 편의 단편소설이 실렸는데, 그중 한 편이 바로 카르밀라<In a Glass Darkly>에 수록된 녹차(Green Tea, 1869)는 종종 카르밀라》와 함께 언급되는 소설이다.

















 

*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1(마로니에북스, 2017)




 

<In a Glass Darkly>는 동서양 고전을 집대성한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1에 포함되었을 정도로 문학적으로 가치가 있다. 뱀파이어 문학 작품의 계보에서 차지하는 카르밀라》의 위상은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와 비슷하다. 다음 내용은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1에 있는 <In a Glass Darkly>(우리말 제목은 유리잔 속에서 어둡게)의 설명문이다.



 이 작품은 사악한 초자연적 능력에 대한 다섯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잡지에 연재 형식으로 실렸다가, 후에 한 권의 책으로 묶어 간행되었다. 각각의 이야기는 화자인 독일인 외과 의사 마르틴 헤셀리우스의 환자 사례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야기들을 묶어 통일된 화자의 역할을 하는 헤셀리우스는 자신이 목격한 어둠에 일관성과 명확성분석과 진단과 묘사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이것이 레파뉴의 의도였다면 이 책은 실패작으로 보아야 한다. 어느 누구도 완전히 치유되지 못하고, 어떤 이론도 확립되지 못하며, 어떤 의미도 발견되지 못한다. 대신 이야기들은 작가의 상상에서 나온 끈질기고 오싹한 창조물들에 의해 결합된다. 이들은 잔인한 판사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희생자[1]부터 목사의 머리를 통해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르는 상상할 수 없는 악의에 찬검은 원숭이[2]까지 다양하다. 그들은 어디에서 왔건 간에, 흔들리지 않는 의지에 차서 자신의 목표물을 좇는다. 그러나 남자를 홀리는 흡혈귀 레즈비언 카밀라(이 소설의 등장인물 중 가장 잊을 수 없는)의 예에서 보듯, 이들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도 지니고 있다. 카밀라는 영혼이 아닌 육체의 망령으로, 후에는 쾌락과 증오, 육체적 흥분과 혐오를 동일 선상에 놓는 흡족한 눈동자로 화자를 빨아들인다. 레파뉴는 이제껏 보지 못한 공포와 욕망으로 우리 자신의 망령들을 가장 현대적이고 사라지지 않는 유령의 모습으로 탈바꿈하여 보여준다.




 

[1][2]밑줄은 내가 표시했다. [1]하보틀 판사(Mr. Justice Harbottle, 1872)의 줄거리이며 [2]녹차의 줄거리다. 올해 1월에 나온 카르밀라번역본(지식의 편집)하보틀 판사녹차가 수록되었다.
















 

 

* [e-Book] 르파뉴 에인저 거리에서 일어난 기묘한 소동에 대한 기술(올푸리, 2020)

 

 


하보틀 판사는 레 파누가 1853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에인저 거리에서 일어난 기묘한 소동에 대한 기술을 새롭게 고쳐서 쓴 작품이다

















* 정진영 엮음 뱀파이어 걸작선(책세상, 2006)

 

* [품절] 르 파뉴 카르밀라(초록달, 2015)

 


 

카르밀라는 다양한 제목으로 여러 차례 번역되었는데, 뱀파이어 문학 작품 선집인 뱀파이어 걸작선에도 수록되었다. 2015년에 초록달 출판사카르밀라번역본을 펴냈다. 그러나 그 책에 실린 녹차에 일부 문장이 누락되었을 정도로 전체적으로 번역이 좋지 않다.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최근에 나온 지식의편집 출판사카르밀라번역본 출간 소식이 반갑긴 한데, 이 번역본에도 오역과 역주의 오류가 있다.




※ 《죽은 연인이 수록된 번역본

 















* 테오필 고티에 고티에 환상 단편집(지만지, 2013)

 

* [품절] 이탈로 칼비노 엮음 세계의 환상소설(민음사, 2010)

 

* 이규현 엮음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프랑스(창비, 2010)

 

* 정진영 엮음 뱀파이어 걸작선(책세상, 2006)

 

 

 

번역자와 지식의 편집출판사는 카르밀라최초의 여성 뱀파이어로 소개했다(초록달 출판사도 책 앞표지에 카르밀라를 최초의 여성 뱀파이어라고 소개한 문구를 넣었다). 뱀파이어 문학 작품의 계보를 제대로 확인했으면 그런 주장을 할 수 없게 된다. 카르밀라는 최초의 여성 뱀파이어가 아니다. 카르밀라가 나오기 전에 이미 여성 뱀파이어가 등장한 소설들이 몇 편 있었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소설은 프랑스의 낭만주의 작가 테오필 고티에(Theophile Gautier)죽은 연인(La morte amoureuse, 1836)이다. 이 소설의 영문 제목은 클라리몽드(Clarimonde)’. 클라리몽드는 소설에 나오는 여성 뱀파이어의 이름이다.

 

 




* 카르밀라(지식의편집) 중에서, 53

 

 그는 누렇고 까맣고 자주색이 섞인 옷을 입고,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끈과 벨트를 차고 있었다. 그리고 그 벨트에는 온갖 물건들이 달려 있었다. 등에는 환등기와 흰독말풀이 담긴 상자 두 개를 지고 있었다.

 

[원문]

 

 He was dressed in buff, black, and scarlet, and crossed with more straps and belts than I could count, from which hung all manner of things. Behind, he carried a magic lantern, and two boxes, which I well knew, in one of which was a salamander, and in the other a mandrake.



 

흰독말풀은 가지과의 한해살이풀에 속한 식물이다. 흰독말품과 같은 식물로 잘못 알려진 맨드레이크(mandrake)는 가지과의 여러해살이풀에 속한다. 두 개로 갈라진 형태인 맨드레이크의 뿌리는 사람의 하반신처럼 생겼다. 과거 유럽인들은 맨드레이크의 뿌리가 만드라고라(mandragora)라고 하는 정령이라고 믿었다. 뿌리에 정령은 존재하지 않지만, 정령의 이름은 맨드레이크의 학명(Atropa mandragora) 속에 있다. 몇 몇 역자들은 맨드레이크를 흰독말풀로 옮기는데, 정확한 명칭은 ‘맨드레이크.


 


* 하보틀 판사(지식의편집) 중에서, 262

 

 카웰 부인은 갑작스럽게 고인의 이야기를 들추어낸 것에 대해 소리를 지르며 비난했고, 보란 듯이 눈물을 터뜨렸다네. 평소라면 하보틀 판사가 유쾌하게 수도꼭지 터진 것 같다.’며 놀렸겠지만, 그는 그럴 기분이 아니었지.

 

[원문]


 Mrs. Carwell squalled on this sudden introduction of the funereal topic, and cried exemplary “piggins full,” as the Judge used pleasantly to say. But he was in no mood for trifling now, and he said sternly.

 

 

‘piggin’은 수직으로 된 손잡이가 달린 통이다.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여기에 물을 담을 수 있다. “piggins full”을 직역하면 ‘(무언가를) 가득 채운 통이 되는데, 역자는 수도꼭지 터진 것 같다로 의역했다.




* 하보틀 판사(지식의편집) 중에서, 281

 

 아이스쿨라피우스(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그리스의 의학과 치료의 신역주)의 후예였던 헤드스톤 박사는 그런 우는 소리에는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네.

 

 

아이스쿨라피우스(Aesculapius)는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의 라틴어 이름이다. 둘 다 동일한 존재이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리스 신화, ‘아이스쿨라피우스는 로마 신화에 언급되는 이름이다. 따라서 로마의 의학과 치료의 신이라고 써야 한다.


















* 모니크 위티그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 이성애 제도에 대한 전복적 시선》 (행성B, 2020)


평점: 4점   ★★★★   A-





카르밀라는 남성을 유혹하는 여성 뱀파이어라기보다는 레즈비언 뱀파이어에 더 가깝다. 나는 2019년에 카르밀라의 정체성을 레즈비언 뱀파이어로 보는 이유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 [레즈비언 뱀파이어는 여성이 아니다] (2019826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1055237




이 글을 쓰기 위해 프랑스의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모니크 위티그(Monique Wittig)의 글을 참고했다. 이듬해에 모니크 위티그의 에세이 선집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가 출간되었다.










지식의 편집출판사가 내 글을 볼지 모르겠으나, 출판사와 역자의 행태에 유감스럽다. 나름 정성 들여 쓴 독자 서평에 있는 문장을 허락 없이 도용하는 일은 지식의 편집에 어울리지 않는다. 예전에 내가 썼던 표현(‘남성 십자군남근을 상징하는 말뚝’)이 인터넷 서점에 공개된 책 소개 글역자의 말에 있는 것을 확인했을 때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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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7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시, 새롭게 보기 - 낯익은 그림에서 낯선 아름다움을 발견하다
캘리 그로비에 지음, 주은정 옮김 / 아트북스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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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미술 작품이 위대한 걸작이 되려면 거기에 반드시 새로운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미술가는 기존 형식을 그대로 되풀이하지 않는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 미술사의 한 지점을 차지하는 대가들은 생경함때문에 대중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생경한 미술 작품들은 산뜻하지도 깔끔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은 한동안 외면받은 미술 작품의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뿌리치지 못할 묘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생경한 미술 작품을 예술적으로 훌륭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는 무엇일까? 미술 작품을 보는 안목을 높여야 할까? 다시, 새롭게 보기는 미술 작품에 있는 생경함의 힘에 주목한다. 미술 작품의 세부 요소들은 다소 생경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감상할 때 그냥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감상자의 눈길을 끌어당기는 특별한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새롭게 보기의 저자 캘리 그로비에(Kelly Grovier)는 그림 속 생경한 흔적을 눈 고리(eye-hook)’라고 부른다. ‘눈 고리미술 작품을 걸작으로 만들어준 창의적인 표현 방식이다. 저자는 이 눈 고리덕분에 감상자가 미술 작품과 교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새롭게 보기의 원제는 ‘A New Way of Seeing’이다. 원제에 ‘New’를 빼면 익숙한 책 제목이 나온다. 미술평론가 존 버거(John P. Berger)가 쓴 <A Way of Seeing>다른 방식으로 보기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되었다존은 학교에서 배운 미술 작품 감상의 기준(아름다움, 진실, 천재성, 형식, 사회적 지위, 취향 등)을 전혀 새롭지 않은 문화적 가정(假定)이라고 했다. 문화적 가정은 미술 작품을 아득히 먼 시대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게 만들고, 감상자의 미술 작품 접근을 방해한다(열화당, 13~14). 따라서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기존의 미술 작품 감상 방식에 대한 적극적인 도전이며 능동적인 감상자의 미술 작품 접근법이다.


캘리가 존 버거의 책에 영향을 받아 다시, 새롭게 보기를 썼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히 분명한 점은 다시, 새롭게 보기》가 능동적 미술 작품 감상을 강조한 책이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미술 작품과 교감하려면 그것을 자신의 삶 속으로 가져오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눈 고리를 찾아야 한다. 주의 깊게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눈 고리도 있지만, 어떤 눈 고리는 아주 작게 그려져 있거나 숨어 있기도 하다. 눈 고리 감상 방식은 숨은 그림 찾기가 아니라 숨은 눈 고리 찾기. 눈 고리를 찾긴 찾았는데 그게 뭘 의미하는지 도통 알지 못할 수 있다. 실망하지 마시라. 훌륭한 미술 작품 속에 의미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눈 고리가 한두 개 정도 있기 마련이다. 저자는 비밀스러움이 생경함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훌륭한 예술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감상자는 비밀스러운 눈 고리를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림 속 눈 고리는 미술평론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우리도 눈 고리를 가질 수 있다. 우리는 눈 고리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면 오래전에 나온 낯선 미술 작품은 상당히 친숙하게 느껴지고, 친숙한 미술 작품에서 남들이 모르는 묘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Mini 미주알고주알

 


 



* 304

 

아이슈타인 아인슈타인(Ei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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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4점   ★★★★   A-





작년 여름부터 대구의 책방 서재를 탐하다’ 책방지기가 직접 책을 쓰고, 편집하고, 판매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사업 등록 당시에 출판사 이름은 도서출판 서탐이었고, 올해 1월에 사명을 ‘tampress(탐프레스)’로 변경되었다책방지기는 겸손하게도 ‘tampress’출판 스튜디오라고 부른다. ‘tampress’책방 안에서 나온 창작 활동의 산물을 출판물로 만드는 일에 전념하는 출판사다.


책방에 다재다능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들은 책방지기의 든든한 벗이다. 책방지기는 재주가 많은 두 명의 벗과 함께 여성을 위한 소셜 커뮤니티를 만들었다소셜 커뮤니티 이름은 ‘W.살롱이다(나는 처음에 ‘W.살롱우먼살롱으로 읽었다. 정확한 호칭은 더블유살롱이다). ‘W.살롱프로젝트에 참여한 책방지기의 동료들 모두 글 쓰는 일을 한다. 권지현 작가는 라디오 방송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오마이뉴스> 시민 기자이기도 하다(본인을 프리랜서 글꾼이라고 소개했다). 이도현 작가이도라는 필명으로 단편소설 보름달을 펴냈다.책샘(책이 샘솟다)’이라는 독서 모임을 남편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W.살롱여성들이 함께 모여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화를 보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문화 공동체이다‘tampress’의 첫 번째 출판물인 <W.살롱 에디션>‘W.살롱’ 정기 모임에 참여한 여성들의 글과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이 책에 책방지기, 권 작가, 이 작가가 쓴 글도 실려 있다세 사람이 함께 표지 디자인 제작, 편집, 교정 작업을 했다현재 총 네 권의 <W.살롱 에디션>이 출간되었다(책 한 권의 정가는 8,000원이다)네 권의 책 모두 이 글에 전부 소개할 수 없어서 <W.살롱 에디션> 첫 번째 책만 언급하겠다.


<W.살롱 에디션> 첫 번째 책의 주제는 이다. 주제는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대부분 사람은 밥을 한국인의 주식(主食)’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W.살롱의 작가들은 밥을 차리는 주체에 주목한다여성은 결혼하면 밥을 차리는 아내가 된다. 사실 여성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나 주변 사람들한테 아내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면서 자란다. “여자는 자고로 음식을 잘 만들어야 좋은 아내가 되고,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오랫동안 아내가 차려준 밥을 먹으면서 살아봤거나 이런 아내를 만나 살고 싶은 남자들은 밥 짓는 일의 수고로움을 모른다책방지기 겸 편집자인 김정희 작가는 나 또는 누군가의 끼니를 위해 육체를 움직여 보지 않은 사람은 일상을 대하는 태도가 관념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 이반 일리치 그림자 노동(사월의책, 2015)



 

우리는 정떨어진 사람에게 밥맛없다라고 말한다. 권지현 작가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긴 단어인 밥맛을 새롭게 정의한다. 그는 밥맛에 밥을 차리는 노동을 하찮게 여기는 인식이 반영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밥을 차리는 노동은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이도 작가는 음식을 만드는 일에 소비되는 돈과 시간을 직접 재보기 위해 요리 마일(cook miles)’이라는 계산식을 만들었다. ‘요리 마일국내총생산(GDP)과 같은 경제적 수치에 반영되지 못한 가사노동의 가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가사노동, 특히 음식을 만드는 일은 그림자 노동이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이반 일리치(Ivan Illich)는 임금 노동에 가려진 가사 노동을 그림자 노동이라고 명명했다


일리치는 남성 중심의 생산노동에 가려진 그림자 노동을 양지로 끌어올리려 했다하지만 빛이 너무 밝으면 공해가 된다. 밥 만드는 일을 지나치게 숭배하고, 여성의 모성과 희생에만 초점을 맞춘 신화밥 차리는 주체의 수고로움을 가리는 공해이다. <W.살롱 에디션> 첫 번째 책의 부제는 신화를 걷어내다이다. 그들이 걷어낸 신화밥을 차리는 주체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관념적인 식탁보다. W.살롱의 작가들은 식탁보가 된 신화를 걷어낸다. 만약 당신이 <W.살롱 에디션>을 다 읽고나서 식탁보를 걷어내면 식탁 위에 밥이 아닌 ‘밥을 차리는 주체의 이 있음을 알게 된다.


<W.살롱 에디션>을 문고본 형태의 문집이라고 얕보지 마시라.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이 있는 단행본이다. 서평지 서울 리뷰 오브 북스의 편집위원인 송지우 교수는 책을 내는 가치가 있다면 서평은 그 가치를 존중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이라고 말했다.[] 나는 송 교수의 말에 공감한다. 책방에 모인 작가들의 수고로움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작업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 서평을 썼다. 내가 책방지기의 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서평을 쓴 건 절대로 아니다(<W.살롱 에디션첫 번째 책은 책방에서 샀다). 지인이 쓴 책도 쓴소리와 악평을 피할 수 없다. 좋은 책을 알아보는 독자는 잘 만든 책 속에 부족한 점, 아쉬운 점, 문제점이 하나라도 있으면 반드시 언급한다. <W.살롱 에디션> 첫 번째 책에 몇 개의 오자가 보였다. 나는 이 사실을 책방지기에게 알렸다. 내 의견을 그분에게 직접 전달했으므로 이 글에 책의 오자를 언급하지 않았다.





 

[] 책 감별사모여 국내 최강 서평지 만든다(동아일보, 2020.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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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2-23 1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끝내 주는 리뷰입니다.

이 책도 어느 포스팅인가에서 보고는
일단 쟁여 두기는 했는데 어디에 두
었는 질 모르겠네요...

cyrus 2021-02-24 10:57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이 언급한 ‘이 책’이 <그림자 노동>을 말하는 겁니까? ㅎㅎㅎㅎ
<그림자 노동>을 ‘서재를 탐하다’ 책방에서 구입했는데, 작년에 제가 방을 도배했을 때 이 책을 종이 상자에 넣었어요. ^^;;

페넬로페 2021-02-23 11: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밥하고 밥차리는 그림자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cyrus님의 리뷰는 저를 한 번 돌아보게 하네요^^
근데 문제는 현실적으로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예요^^
그게 참 문제인것 같아요**
항상 고맙다, 잘 먹겠다는 말이 나에게 마약처럼 작용해 또 노동에 종사하게 되는거죠^^
저 위의 사진이 참 좋아요.
평화로워요**

cyrus 2021-02-24 11:05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어머니나 아내에게 말로만 감사를 표현하는 게 아니라 직접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어서 음식을 직접 만드는 일은 거의 없어요. 그래도 부엌에 자주 갈려고 하는데, 그럴 때 식기와 음식 재료들이 어디에 있는지 관찰하고 기억해두려고 해요. 그러면 나중에 제가 혼자 음식 만들 때 편해요. ^^

stella.K 2021-02-25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책방지기님 좋은 일 하시네.
잘 됐으면 좋겠다.
<W.살롱 에디션>도 잘 됐으면 좋겠다.
너도 이쯤해서 책 한 번 내보는 건 어때?
좋은 글들이 많은데.

cyrus 2021-02-26 12:39   좋아요 0 | URL
제 글이 잘 썼다고 보기 어렵고, 사람들이 제 글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제 글을 보는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서 책보다는 블로그로 내 생각을 전달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

kuki 2021-03-14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샘 <밥>을 읽어주시고 애정어린 서평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책방에 모인 작가들의 수고로움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작업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 서평을 썼다‘

W살롱의 앞길에 뜨거운 에너지 듬뿍 받습니다^^ 이 글을 서탐 블로그에 고이 모시고 갈께요.

cyrus 2021-03-14 23:34   좋아요 0 | URL
제 글을 ‘서탐’ 블로그에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생명이란 무엇인가 - 5단계로 이해하는 생물학
폴 너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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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호기심 많은 소년은 훨훨 나는 나비를 졸졸 따라다녔다. 나비의 날갯짓을 지그시 바라보던 소년의 마음속에 궁금증이 솟았다. 살아 있다는 것이 진정으로 어떤 의미일까? 생명이란 무엇일까?’ 소년은 세포를 연구하는 생물학자가 되었고, 2001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시간이 흐르면서 소년은 칠순을 넘긴 할아버지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에 나비를 보면서 생긴 궁금증을 잊지 않았고, 그 순간을 떠올리면서 한 권의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 책이 바로 생명이란 무엇인가.


책을 쓴 소년의 이름은 폴 너스(Paul M. Nurse). 책 제목은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가 쓴 저서에서 가져온 것이다. 폴은 1949년에 태어났다. 폴이 태어나기 5년 전에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가 나왔다. 이 책에서 슈뢰딩거는 생명의 핵심이 유전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폴은 생명의 핵심이 하나만 꼭 집어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고 본다그는 생물학의 다섯 가지 개념을 제시하면서 생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단계적으로 설명한다폴이 생각한 생물학의 다섯 가지 개념세포, 유전자,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 화학으로서의 생명, 정보로서의 생명이다.


저자는 세포 연구의 권위자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세포이다. 물질의 기본 단위가 원자이듯이 생물학의 원자는 세포이다. 세포는 생명의 기본 단위다. 세포는 살아 있는 모든 실체 중에서 가장 작고 단순하다세포 안에 유전자가 있고, 유전자 속에 염색체가 있고, 염색체 속에 DNA가 있다. DNA는 세포와 그 세포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생물이 성장하고 번식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진화는 강한 것만이 살아남는 단선적인 자연현상이 아니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아주 기본적인 진화의 특징은 다양성이다. 그 다양성은 종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는 다양한 생물들을 나오게 하는 창조적인 과정이다지금도 생명체 속의 세포는 쉴 새 없이 화학 반응을 수행한다. 세포의 화학 반응이 일어나지 않으면 생명체는 살지 못한다. 저자가 언급한 생물학의 기본 개념들은 하나의 생명체가 태어나고 자라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꼭 알아야 할 정보이다. 저자는 생명의 핵심을 세포나 유전자에서만 찾을 게 아니라 세포와 유전자 너머로 확장해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인류는 멸망할 때까지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안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또 다른 누군가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한 권의 책으로 써서 세상에 내놓을 것이다. 이 답변이 무수히 많아지려면 인류만이 지구의 생명체라는 편협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폴 너스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생명의 정의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크고 작든 간에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는 생태계의 상호의존성을 잘 아는 유일한 생명체이다. 우리는 자연을 쉽게 이용하고, 동식물(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포함해서)을 인간보다 한 단계 낮은 존재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생명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그야 당연히 인간이지!’라고 대답하지 말자.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나면 그런 유치한 대답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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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1-02-23 0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고 당연하게 ‘인간 종‘만을 위해 나머지 생명들을 이용해야(혹은 할 수 있다.) 한다고 생각하는 것 처럼 보여요.

환경운동단체에서 일하던 시절 제일 웃긴 말이 ‘유해조수‘였어요. 생태계에서 각 생명체는 서로 얽히고 얽혀 그물망 같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데, 인간에게 조금 해를 끼친다고 유해조수로 지정해 없애려 한다는 것 너무나도 오만한 짓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편리한 삶을 위해 지금도 매순간 수많은 생명 종들이 멸종되어가고 있어요. 그 결과가 코로나19라는 역사상 유래없는 팬데믹으로 나타나고 있구요.

사람들은 단지 언제 인류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할지, 혹은 코로나가 소멸할지만을 생각할 뿐, 인간의 삶을 바꿔 더 이상 다른 생명 종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지 말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참 바보같고 무서운 일이예요.

cyrus 2021-02-23 10:49   좋아요 0 | URL
우리 몸속에 수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어요. 대부분 사람은 몸속의 미생물을 ‘바이러스’나 ‘병균’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미생물이 살고 있어요. 사람들은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디톡스 관리를 하거나 약을 먹는데, 오히려 그런 삶이 이로운 미생물을 살지 못하게 만들어요. 정말 어리석은 일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