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파괴자
그레고리 번스 지음, 김정미 옮김, 정재승 감수 / 비즈니스맵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모두가 안 된다고 했을 때, 그들은 해냈다

우리나라 최대의 철강 회사라고 하면 단연 포스코이다. 세계 2의 철강 회사이며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 등 2개의 제철소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용광로를 준공하였으며 현재는 총 5기의 용광로를 보유하고 있다.  연간 2800만t의  

철강을 생산하고 있다. 포스코는 ‘한강의 기적’으로 칭해지는 경제 성장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자동차, 조선업 등 각종 산업들은 포스코에서 공급하는  

철강 제품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1970년대 이후 40년간의 급속한 산업 발전의  

원동력으로 여겨지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공업화를 위한 제철소 건설을 추진하게  

된다.  

 

하지만 포스코 건설도 당시 엄청난 반대여론에 부딪쳤다. 참담한 경제 상황에서 제철소  

건립의 꿈은 국내외의 회의적인 여론으로 벽에 부딪쳤다. 경제학자들은 자원 낭비이며  

오히려 국가부채만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우리도 산업의  

쌀을 만들어야 한다"며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거기에 다가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제철소의 초대 회장이었던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도 제철소 건설 찬성에 가세하여 

박 전 대통령의 힘을 입어 제철소 건설을 추진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 정부에게  

식민통치에 대한 보상으로 받은 자금과 은행차관을 조달하여 1970년에 착공하였다.  

포항제철소 착공 이후 철강 산업이 발달하면서 국가 경제도 성장하게 되자  

반대론자들은 입을 꾹 다물게 되었다.

4일 전, 7월 7일에는 경부고속도로 개통 4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경부고속도로도  

공사 당시에도 반대 여론이 많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 성장의 원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 국책 사업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초창기에는 반대 여론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4대강 사업 찬성론자들은 4대강 사업을 ‘제2의 경부고속도로’라고 비유하면서  

반대 여론을 잠재우려고 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이 과연 경부고속도로와 포스코만큼  

먼 훗날에 국가 경제 성장에 큰 힘이 될지 두고봐야할 일이다.  

 

   

 

 

 왜 그들은 반대를 했을까?

그레고리 번스의 <상식파괴자>에는 세상을 바꾼 창조적인 사고의 사람들의  

성공 사례가 나오는데 모두 다 외국인들이다. 아마도 우리나라 상식파괴자를 꼽으라면  

삼성의 이건희 회장과 현대건설 초대 회장인 故 정주영 회장, 그리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일 것이다. 이들이 지금까지도 최고의 경영인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변화와 실패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경영 마인드이다. 책에 의하면 사람들이  

창조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이유는 세 가지정의한다. 인간의 뇌는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반면 낯선 것을 싫어한다는 것, 자신의 낯선
아이디어가 무시당할까봐 생기게 되는 공포증, 성공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했지만  

타인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여 이를 현실화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창조적인 사람. 즉, ‘상식파괴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문제들을 극복해야만 한다.  

 

포스코와 경부고속도로 건설 초기에 반대여론이 많은 것도 이유가 있다.  

당시 6.25 전쟁 이후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살았던 국민들은 하루 세 끼 제대로  

밥 먹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래서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들을 먹고 살릴 수 있는 식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농업 발달이 시급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거꾸로 산업이야말로 국민을 먹고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빈곤한 경제와  

사회에 익숙해진 여론과 국민들은 낯선 정책에 대해서  당연히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산업화 정책에 대한  거부감을 스스로 극복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으며 자신의 정책을 성립시키기 위하여  박태준과 같은  

미래의 안목을 갖추고 있었던 경영인들에게 정책의 취지를 전달하였다. 그리고   

정부는 경영인들을 포용하여 국책 사업에 끌어들였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나라는 가난함의 이미지를 벗어내고 산업 국가로 변신하였다.  
  

  

 

 배보다 배꼽이 컸던 책

책의 감수한 사람이 권위 있는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에다가 요즘 출판 시장이  

창조적 경영에 관한 책이 많이 나오는 만큼 이 책에 대한 매스컴에서의 홍보가 

같은 분야의 책인 <혼.창.통>과 <오리진이 되라> 다음으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홍보에 비하면 내용은 참신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들이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상식파괴자들의 사례와 창조적 사고를 막는 세 가지 요인들에 관한  

연구 사례와 이론적 설명이 주를 이루고 있다. 리처드 파인먼이나 스티븐 잡스,  

마틴 루터 킹과 같은 사례는 그 인물에 대한 평전과 관련 도서를 읽어 보면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우리에게 생소한 다양한 분야의 상식파괴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사례에 관한 내용이 끝나면 사례가 주는 교훈으로 상식파괴자가 되는 조건들에  

관한 내용이 설명된다. 그리고 인간의 사고에 대한 다양한 실험 사례들은 뇌 연구 관련  

도서에서 볼 수 있는 내용들이다. 각 장마다 이루고 있는 이 두 가지의 이야기 덩어리를  

다 읽어야지 독자가 원하는 중요 내용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독특한 점은  

마지막 장에는 창조적 사고를 방해하는 요인들을 제거하기 위한,
즉, 대놓고 말하면 창조적 사고를 위한 약들과 호르몬들이 소개하고 있다.
창조적 사고를 증진시키기 위한 조건의 하나로 굳이 약까지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소개되는 약들은 남용하게 되면 부작용을 일으킬 수가 있는 것들이다.
감수자 정재승 교수의 찬사의 글로 시작하여 창조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획기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약에 관한 마지막 장의 내용 때문에 막판에 김새는  

느낌이 든다. 화호유구(畵虎類狗)란 말이 있듯이 호랑이를 그리려다 결국에는  

개를 그리는 꼴이 된 셈이다.

이 책에 대한 내용은 읽을 만한 가치는 있지만 정작 독자가 알고 싶어 하는 중요한  

내용보다 거기에 덧붙이는 사례가 많아서 내용 구성이 아쉽기만 하다. 시간 부족으로  

인해 실용적인 독서를 원한다면 책 시작을 알리는 ‘들어가는 말’을 읽는다거나  

각 장의 끝 부분을 읽으면 되겠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대해서는 그냥 뇌의 작용을 촉 

진시켜주는 약과 호르몬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좋을 거 같다. 괜히 창조적 사고를  

가지기 위해서 의사의 상의도 없이 약을 복용했다가는 큰 코 다칠 것이다.

참고로 이 책은 작년에 <아이코노클라스트>라는 이름으로 이미 출간하였다.  

아이코노클라스트는 ‘상식파괴자’를 뜻하는 영단어이다. 작년에 나는 군 부대에서  

생활을 하고 있어서 당시 <아이코노클라스트>라는 제목으로 나왔을 때는 독자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 알 수가 없다.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디자인으로 새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독자들에게 이 책에 대해 관심을 받고  있는 지금의 현상을 비교하면  

아마도 작년에는 낯선 영어 제목으로 인해서 독자들의 반응이 미미했을 것이다.  

책 제목의 하나만으로 그 책이 판매량이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독자들은 8글자로  

이루어진 영어 단어의 제목에 대해서 읽고 싶어진다는 생각보다는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낯설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낯선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인간의 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지금 책의 감수자와 번역자는 동일하다. 신판으로 <상식파괴자>가 출간되어서  

<아이코노클라스트>는 알라딘에서는 절판된 상태이다. 이 책을 읽고 싶다면 동네  

도서관에서 <아이코노클라스트>를 찾아서 읽으면 된다. 
 

  

 

 상식의 돌덩어리를 파괴하자

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대성당에는 5m 이상의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가 있었다.
사실 이 대리석 덩어리는 옛날에 다른 조각가가 작품을 만들려고 준비해두었던   

것이었는데 대성당에 50년 동안 방치되고 있었다. 세월이 많이 지나간 것도 있었고,  

이 대리석은 결이 좋지 않아 조각가들은 이 돌덩어리를 가지고 조각품으로 제작하고  

싶지 않았었다. 그러자 26세의 한 청년이 자신이 직접 이 돌덩어리로 조각 작품을  

만들겠다고 나선다. 주위 사람들과 조각가들은 크기만 클 뿐이지 불량한 상태의 돌로  

제대로 조각을 만들 수 있겠냐면서 청년을 비웃었다. 하지만 청년은 주위 사람들의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3년 만에 5.49m의 거대한 남자의 조각상을 완성하였다.

그것은 바로 남자의 완벽한 신체를 잘 표현한 <다비드 상>이다.
그리고 그 26세의 청년은 바로 훗날 위대한 예술가인 미켈란젤로이다. 
 


  
사람들은 그 거대한 돌덩어리에서 이런 조각품이 나왔다는 것에 대하여 감탄하였으며
무엇보다도 미켈란젤로가 제작한 조각의 새로운 형태에 대해서 놀라워했다.
이전에 제작된 다비드 상들은 보통 골리앗의 머리를 발밑에 두고 손에 칼을 쥔 승리한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미켈란젤로도 처음에는 그런 모습의 다비드 상을 생각하고  

그 데생을 그려보았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이전의 다비드 상들을  

사상적으로나 형태적으로 능가하는 새로운 모습의 조각상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은 골리앗에게 막 돌을 던지려고 하는 역동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당시로서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다비드 상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시도하여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서 두려움도 없었다. 골리앗에게 돌을 던지는 다비드처럼
미켈란젤로도 자신들을 비웃었던 사람들에게 상식파괴의 돌을 던졌던 것이다.
그의 상식파괴의 도전이 결국에는 훌륭한 작품을 탄생하게 만들었다.

책의 내용이 무조건 나쁘다는 식으로 단지 이 책을 폄하하기 위해서 쓴소리를 한 것은  

아니다. 제2의 이건희 회장이나 스티븐 잡스를 꿈꾸는 미래의 CED들이나 보다 나은  

기업의 미래를 위해서 배움의 욕구가 강한 경영인들에게는 도움이 되는 책이다.  

정작 나쁜 것은 책을 읽고 나서 독자들이 실행을 안한다는 점이다.  

창조성을 가지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평소와 다르게  

사물을 통찰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보고 직접 그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약만 먹는다 해서 아이디어맨이 되는 것도 아니다.
미켈란젤로가 불량이라고 생각했던 돌덩어리를 위대한 예술 작품으로 만들었듯이
우리도 미켈란젤로처럼 상식파괴자가 되어서 우리 머릿속에서 뭉쳐있던 생각과  

상식 덩어리들을 파괴하여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보자. 언젠가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상식파괴자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굳이 유명한 사람으로 될라는 것도 아니며 안 된다고 해서 크게 낙담하지 말자.
자신의 아이디어가 스티븐 잡스가 만든 아이폰처럼 상품성과 관련 없어도 좋다.
미켈란젤로와 같이 미래에 자신 이름을 알릴 필요도 없다. 기존의 습관과 사고만으로  

일상생활을 안주하지 말고 남다른 생각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삶을
살아보는 것이야말로 상식을 파괴하는 첫걸음이다.

수많은 생각과 상식들이 뭉쳐 있는 덩어리를 돌처럼 굳게 놔둘 것인가,  

아니면 상식파괴자가 되어 그 돌덩어리를 파괴하여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재창조할 것인가. 그것은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독자가 정해야 할 몫이다.


 

 

 인용 관련기사 출처 및 링크  

 

[ [국책사업은 `반대의 역사`] "철 만들어 어디 쓰나…차라리 밥 해결" ]  

한국경제 7월 6일자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070687931 

 

[경부고속도로 개통 40주년 기념행사 열려] YTN 7월 7일 입력 

http://www.ytn.co.kr/_ln/0102_201007071406228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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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4
김시습 지음, 이지하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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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로마 신화는 있고, 금오신화는 없다?

평소에 좋아하는 음악을 찾기 위해서 모 사이트의 블로그들을 검색하고 있었다.
우연히 들어간 어느 블로그에 서울대 권장도서 목록 발견하였다.
역시 좋은 대학교는 뭔가 다른 거 같다. 서울대 소속의 권위 있는 교수들이 모여서
총 100권의 도서들을 동, 서양 문학과 과학, 사상 등으로 분류하였다. 권장도서  

목록 작성 취지는 대학생들의 다양한 분야를 읽게 하는 독서 활동을 증진시키는  것과  

더불어 동, 서양 고전을 읽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목록에 선정된 100권의  

도서들 대부분은 사람들이 많이 읽지는 않지만 제목과 저자만 들어도 아는 고전들로  

선정되어 있다. 그런데 목록을 훑어보니 실망감이 조금 느껴졌다.
정말로 서울대 교수님들이 심사숙고 끝에 논의를 하여 우리 학생들에게 읽으라고  

목록을 만든 건지 의문이 들었다. 100권의 도서들 중 서양에서 출간된 도서가 
많이 차지하였다. 그리고 분야로는 서양 문학, 그 다음에는 서양 사상이었다.
사실 동, 서양 지성사를 통틀어 비교를 하면 서양의 지성이 역사의 변화에 큰 영향을  

준 것은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고전과 더불어 균형적으로 선정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고전이라고 하면 질겁을 하는 판에 우리나라의 고전들도  

안 읽는 것도 당연지사다. 무엇보다도 권장도서 목록에 대해서  

유감스러운 것은 우리나라 문학 분야의 권장도서였다. 내 생각이지만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국어 수업 시간 중에 제일 싫어할 때가 고전시가를 배울 때일 것이다.  

요즘 잘 쓰이지 않는 암호 같은 옛 말을 해석하는 것이 고역일 것이다.  

선생님들은 직접 시들을 우리말로 해석하고 제자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열심히 그 뜻을 설명해줘도 학생들은 딴청을 피우거나 너무 졸린 나머지
두 눈은 내려앉으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고전시가가 다 어렵고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작품성이 갖추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옛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한국적인  

멋이 깃들어진 한시들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나라 한시들을 쉽게 우리말로 풀어낸  

책들이 많이 출간되어 있는데 원문인 한자와 함께 뜻을 배치하여 읽기가 쉽다.  

그런데 권장도서에는 대충 ‘고전시가전집’이라고만 되어 있다.  

도대체 어떤 고전시가전집을 말하는 것인가. 인터넷 도서에 '고전시가전집'이라고 

검색만 쳐도 관련도서만 수십 권 이상 나오는데.....

딱 제목만 봐도 읽고 싶어지는 생각이 안 들게 된다.
고전 산문에는 고작 5권(연암산문집, 춘향전, 구운몽, 한중록, 청구야담)밖에 없다.
고전 소설이 고작 2편 밖에 없다. 나머지는 수필과 이야기 모음집이다.
아쉬운 것은 그 작품의 이름이 목록에 없었다는 점이다.
목록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있었지만 김시습의 <금오신화>는 없었다.

서울대뿐만 아니라 전문가 및 신문이나 교육 단체에서 선정하는 추천 도서 목록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들 목록의 단점이라면 도서 선정 기준이 선정 단체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정작 유명 단체와 전문가의 추천도서를 읽고 싶다면 되도록 다양한 단체와 분야의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도서를 균형적으로 읽는 것이 좋다. 
 

 

 소설이야? 한시야? 
 

학창 시절의 문학 시간에 직접적으로 김시습의 작품에 대해서 공부한 적은 없다.
당시 학교에서 배우고 있던 교과서에도 없었으며 따로 보충 시간에 부교재로 사용하는
문학 문제집에서나마 <금오신화>에 수록되어 있는 ‘만복사저포기’만 접하였다.
주인공 양생이 부처님 앞에서 주사위 내기에 이겨서 소원으로 여자를 얻게 되는 내용은
나뿐만 아니라 교실에 있던 남학생들의 부러움을 사게 만든 장면이었다.  

평소에 신화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고 그 당시 그리스 로마 신화에 푹 빠져 있어서
<금오신화>라는 제목만 봐도 나머지 4편의 이야기는 어떤 내용일까 궁금하기도 했었다.
최근에 ‘민음사 문학 전집 읽기’라는 거대한 독서 목표를 실천을 하고 있는 중이라서
이번 기회에 <금오신화>를 읽게 되었다.

<금오신화>가 중국의 <전등신화>를 본뜬 것이라고 국문학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전등신화>를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김시습이 단순히 <전등신화>를 모방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 신화의 등장인물들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통한  

능력을 소유한 초인들이다. 중국 신화의 허구적인 전개 방식을 읽다보면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의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한편으로는 판타지 소설을 읽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금오신화>도 신화의 전형적인 특징인 허구성을 갖추고 있지만  

중국 신화와 비교하면 전혀 과장스럽지가 않다. 5편 모두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였으며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건들이 조합되어 있다. 제목은 신화이지만 내용면으로는 고전  

소설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금오신화> 작품들 모두 학식을 갖춘 재주 있는 남자  

주인공과 아름다운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재자가인(才子佳人)적 인물들이다.  

이런 인물 구성은 전형적인 우리나라 고전 소설 주인공들의 특징이다.
그리고 중간에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말하는 한시들은 <금오신화>만의 색다른 구성이다.
다른 고전 소설 속에서도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서 내용 중간에 
한시나 노래가사가 나온다. 모든 고전 소설들과 비교하면 <금오신화> 내용의
절반은 한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장황하게 이어지는 고전 소설의 문체를 읽다보면
지루한 감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금오신화>의 한시들은 독자들에게 보다 쉽게  

전개 상황과 인물들의 심리를 표현함으로써 지루한 감 없이 읽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김시습은 어렸을 때부터 한시에 타고난 재능을 보인 신동이라고 한다.
소설 속 한시들은 천재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훌륭한 내용 전개를 갖춘  

소설과  아름다운 한시가 절묘하게 결합된 고전 문학사상 보기 드문 걸작이다. 
 

 

 5인 5색,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  

 

<금오신화>는 서로 관계가 없는 '~생' 이름을 가진 남자 주인공들의 이야기이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먼저 <만복사저포기>는 앞에서 언급을 했듯이
양생이라는 남자가 부처님과의 주사위 내기에 이겨서 아리따운 여인을 얻게 되지만
사실 여인은 귀신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실망한 양생은 지리산으로 들어가서
약초를 캐러 간 후 소식이 끊겼다는 이야기이다. <이생규장전>은 ‘주인공 이생이 담  

넘어 엿보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 작품도 <만복사저포기>의 전개와 조금 유사하다.  

이생은 담 넘어 양반집 처녀 최랑에 보고 한 눈에 반해 사랑하게 된다. 양쪽 집안의  

부모의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에는 극복하고 혼인을 맺게 되지만, 홍건적의 난으로  

인하여 양가의 부모는 물론 부인 최랑마저 살해되고 만다. 간신히 살아남은 이생은  

최랑의 죽음에 슬퍼하지만 이생 앞에 최랑이 환생하여 나타난다. 그리고 이 둘은  

행복하게 살아가지만 최랑은 이승의 인연이 다했다고 말하며 사라지게 되어 그 뒤로  

이생은 시름시름 앓다가 병을 얻어 죽게 된다는 내용이다. <취유부벽정기>는 주인공  

홍생이 평양의 부벽루에서 자연의 흥취를 즐기고 있다가 기자의 후예라고 말하는  

선녀가 그의 앞에 나타난다. 밤새도록 그들은 시로 화답하여 놀았으나,
새벽이 되자 옥황상제의 엄명이라고 하여 선녀는 하늘로 돌아간다. 그 후로 홍생은  

그녀를 못 잊어서 병에 걸리게 되고 그도 다른 작품의 남자 주인공처럼 꿈에서  

죽음의 계시를 받고 곧 그도 세상을 떠나게 된다. <남염부주지>와 <용궁부연록>은  

설명한 세 작품과 다른 전개의 작품이다.
<남염부주지>는 염라국, <용궁부연록>은 용궁을 배경으로 하는 사회 비판 소설이다.  

이 두 주인공은 꿈 속에서 각각 염라국인 남염부와 용궁의 왕들을 만나 사회 현실에 대해 

대담을 펼친다. 꿈에서 깬 뒤 그들은 꿈 속 별세계가 자신들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맞이할 죽음을 두려움없이 받아들여 그곳에서  

왕이 된다는 내용이다.
 

다섯 편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의 공통점은 벼슬에 오를 정도의 학식을 갖추어 있으나
부당한 사회 때문에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일명 재야인사들이다. 김시습도  

작품 속 남자 주인공들처럼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불만으로 벼슬길을 사양한다. 이런 작품들은 ‘방외인(方外人) 문학’이라고 한다.  

방외인이란 세상 바깥에 있는 인간들, 즉 아웃사이더를 말한다. 벼슬에 관심이 없으며  

기존의 권위와 규범을 지키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김시습 본인에게는 자신의 실력을  

펼치지 못한 불행한 인생을 살다 갔지만 아웃사이더의 기질과
시각으로 불후의 명작을 남기게 되어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고전 문학 체제가  

구축될 수 있었다.  

  

 <금오신화>에 김시습이 있다?

<금오신화>는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방랑 생활을 하는 도중에 쓴 작품이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김시습은 승려  

신분으로 전국을 방랑하였다. 김시습을 포함한 기존 사회에 반발하여 벼슬을 버리고 

절개를 지킨 여섯 명의 선비들은 생육신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부당한 사회를 타파하기  

위해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끝내 사형을 당한 여섯 명의 신하들은 사육신이라고 한다.  

김시습은 <금오신화>를 통해 세조의 시대를 은근히 조롱하였다. 그리고 벼슬길을  

사양함으로써 끝까지 절개를 지키려고 하였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평가하면 우리는  

생육신보다 사육신을 절개를 지킨 충신들로 기억하고 있다.  

자신의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세조의 왕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육신이라고 하면,  

생육신은 살아 있으면서 귀머거리나 소경인 채, 또는 방성통곡하거나 김시습처럼 두문불출하여 단종에 대한 절개를 지키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해서 소극적인 삶을 선택하였다.
김시습은 직접적으로 사회에 대한 불만마저도 말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방랑이라는 사회 도피적인 자신의 모습에 대해 사육신들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낀 걸까?   반역자들이었기 때문에 사형당한 사육신의 시신들을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자 김시습이 직접 시신들을 수습하여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생육신으로서의 삶을 선택하면서 얻게 된 죄책감을 풀기 위해
자신이 직접 사육신의 넋을 기리려고 했을 것이다. 어쩌면 김시습은 <이생규장전>의  

이생을 통해 그 죄책감을 평생 잊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홍건적의 무리들이 침입을  

하였을 때 이생 자신만은 살아남고, 최랑과 양가 집안사람들이 죽게 된다.  

독자들에게는 이생이 사랑하는 최랑을 버리고 자신만 살아남는 장면에 대해서 수긍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생의 행동은 자신이 살아남는 것에 급급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지 못하는 대장부답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작품 속의 화자는
잔혹한 장면을 간략하면서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 이생에 대한 일체의 비난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이생이 작가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생의 행동은  

옳지 못하지만 환생한 최랑의 영혼과 만나게 되면서 최랑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서  

이생은 최랑이 살해당했던 곳으로 가서 자신이 직접 최랑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사를  

치르게 한다. 부당한 사회 권력 앞에서 작아지는 김시습은 자신의 모습을 작품 속  

이생을 통하여 사죄의 마음을 표현하고 사육신들의 넋을 기리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금오신화> 
 

국문학사적으로 소설의 발달 과정을 보게 되면 <금오신화>에 이르러 소설이라는  

문학 양식이 확립되었으며 그 이후 고전 소설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 소설을 꼽으라면 <춘향전>, <심청전>, <홍길동전> 등  

누구나 다 읽었으며 알고 있는 작품들이다. <금오신화>는 이들 작품보다 먼저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대부분 작자 미상인 고전 소설이 많은 반면에
<금오신화>는 우리나라 몇 안 되는 작가의 이름이 분명하게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내가 알고 있는 작가가 알려진 고전 소설은 <홍길동전>(허균 작)과 <구운몽>, 

<사씨남정기>(이상 김만중 작), 그리고 연암 박지원의 소설들 밖에 없다.
<금오신화>가 우리나라 고전 소설에 큰 영향을 끼쳤음에 불구하고 다른 작품들로 인하여
그 빛을 보지 못하고 있으며, 불명예스럽게도 서울대 권장도서 축에도 끼지 못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 소설 <홍길동전>, <춘향전>, <심청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금오신화>의 영향을 받은 듯한 유사한 플롯이 눈에 띈다. 
 

 

 <금오신화>의 영향을 받은 유명 고전 소설들

<남염부주지>의 결말에는 꿈속에서 염라국인 남주부에 갔다 온 박생은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의 영혼은 사회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이상향인  

남염부로 가서 염왕의 자리에 올라서게 된다.
남염부의 왕인 박생은 현실 세계에서는 벼슬에 오르지 못하고 있던 제한적인 인물이었다.
허균의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도 박생과 흡사하다. 신분 차별과 부당한 사회  

현실 속에서 자신이 비범한 능력을 펼치치 못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율도국이라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그 곳의 왕이 된다. 허 균 역시 사회 개혁을 꿈꾸지만 결국에는  

반역 음모로 인해 처형당하는 비운의 인물이다. 두 작품 다 사회 개혁에 대한 작가의  

좌절을 소설 속 이상향으로 도피함으로써 자기 위안을 삼고 있다.

<이생규장전>최랑은 이생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사랑을 표현한 끝에  
양가 집안 부모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이생과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인해 이생과 최랑 부부와 양가 집안사람들이 도망치는 도중에
이생만 살아남고 최랑은 그 자리에서 정절을 지키려다가 결국 도적들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최랑처럼 계급 차이를 벗어난 사랑을 하였으며 정절형 인물이라면 춘향이 밖에 없다.
기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춘향은 사대부 집안의 아들인 이몽룡과 자유로운 연애를 한다.
그리고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변학도의 수청을 거절하게 되어 온갖 고초를 받고 옥에  

가두게 된다. 최랑과 춘향을 통하여 봉건사회의 도덕률을 파괴한 남녀 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용궁부연록>은 주인공 한생이 꿈속에서 용궁에 갖다오는 장면을 그린 작품인데 인간이  

용궁에 갖다오는 작품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심청전>이다. 두 작품 속에  

등장하는  용궁, 옥황상제, 선녀는 선(仙) 사상에 등장하는 배경이다.  

그리고 <용궁부연록> 이외에도 나머지 네 작품 속에서도 전체적으로  

유교, 불교, 선 사상이 혼합되어  반영하고 있다. <심청전>도 내용을 살펴보면  

유, 불, 선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심청은 아버지 심 봉사의 눈을 뜰 수 있게 공양미  

삼백 석을 마련하려고 한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삼백 석을 얻으려면 인당수에  

뛰어들어야 한다. 결국 그녀는 아버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여 인당수에 뛰어들게 된다.  

심청의 희생을 통해 조선의 유교 사회에 강조하는 효의 덕목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공양미 삼백 석을 부처님 앞으로 사주를 하면 신통력으로 눈을 뜰 수 있다는  

말하는 장면에서는 불교적 사상이 드러나고 있다. 

 

 <TV 고전 문학관>이 방영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우리나라 사람들 고전은 잘 안 읽어도 고전을 패러디한 영화나 드라마는 잘 본다.
최근에 개봉했던 <방자전>은 <춘향전>의 등장인물들을 색다르면서도 파격적인 해석을 

시도하여 적지 않은 관객 수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제 슬슬 여름이 시작되면 항상  

TV에 등장하는 우리나라 전통 귀신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납량특집 드라마  

<구미호>이다. 이번 작품에는 <구미호>의 기본 포맷을 유지하고 있으나 구미호의  

딸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추가하게 되어 방송 전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을 높이고 있다.  

고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시도는 좋다.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던 고전들이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에만 해석의 시도는 해서는 안 된다.  

<금오신화>도 <춘향전>과 <구미호>처럼 귀신과 같은 비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하며  

남녀 간의 애틋한 러브 스토리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어서 우리나라 사람의 감정과 풍속을 묘사하고 있어서 드라마로 만들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요즘 심야 시간에 90년대에 방영했던 <TV 문학관>이 방영되고  

있다. <신 TV 문학관>으로 이름이 바뀌어 작년 12월 말에 이문열 원작 <사람의 아들>  

방영 이후로 올해에는 새로운 드라마는 나오지 않고 있다. 아마도 또 한 편의 현대  

소설을 각색하여 드라마화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내 생각인데 이번 기회에 

<TV 고전 문학관>으로 새롭게 방영하면 어떨까? 역사적인 첫 화는 <금오신화>로  

말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고전을 읽게 되지는 않을까하는 작은  

기대감도 가져본다.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 목록]이 있는 블로그 

http://blog.naver.com/henda?Redirect=Log&logNo=108096549 

* '서울대 권장도서' 라고 검색창에 치게 되면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있음  

 

관련도서 

<권장도서 해제집>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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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박물관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7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구판절판


"좋은 칼럼과 사랑의 공통점을 찾았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사랑도 칼럼도, 물론 우리를 지금 행복하게 해 줘야 합니다.
하지만 이 둘의 아름다움과 힘은
우리 영혼에 얼마나 깊이 인상을 남겼느냐에 따라 평가되지요."-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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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내가 그 당시 경험했던 감정에 대해 다른 언어에서도 흔히들 ‘상심(傷心)’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깨진 도자기 심장을 여기에 전시하며, 이 심장이 박물관에 온 사람들에게 내 통을 잘 설명해 줄 거라고 생각한다     (p 11)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이 케스킨 씨 가족의 오래된 물건들, 특히 고장 나고 녹슬고 오랫동 안 작동하지 않은 자명종과 손목시계를 보면서, 그것들이 얼마나 기이한지, 얼마나  ‘시간 밖’의 존재로 보이는지, 어떻게 자기들끼리 그들만의 시간을 만들었는지 봐 주었으면 다     (p 34) 

 

그녀는 달콤하고 진심 어린 미소를 두 번 지어 보였고, 잠시 후 소금 통(나의 수집품이 될)을 내게 건네줄 때 그녀의 손가락이 내 손에 닿는 것도 허락했으며,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갔다      (p 53) 

 

텔레비전을 보다가 케스킨 씨 가족의 어떤 물건(예를 들면 세월이 흐를수록 수가 늘어 갔던, 퓌순의 손의 향기가 배어 있는 수저)을 주머니에 넣었을 때.....
(p 90) 

 

그렇기 때문에 연필이나 양말, 비누 같은 작은 선물들 사이에 ‘라피 포르타칼 골동품 상점’에서 파는 이런 비싼 컵을 가져간 것도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p 90) 

  

나의 이런 믿음에 대한 또 다른 예로, 그 시절의 새해 복권을 전시한다     (p 91) 
 

"케말 아저씨, 톰발라에서 아저씨가 딴 손수건 있잖아요.....”
“응.”
“그건 퓌순 누나가 어렸을 때 쓰던 손수건이에요. 그거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알리, 어디에 넣었는지 모르겠는걸.”
“난 알아요. 이 주머니에 넣었어요. 거기 있을 거예요.”
아이는 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을 태세였다     (p 98) 

 

네시베 고모는 식사가 끝나면 냄비와 커다란 접시를 치우고, 다먹지 않은 음식을 냉장고
(언제나 마법같이 느껴졌던 케스킨 씨네 냉장고에 박물관 관람객들은 특별히 관심을 가져 주길 바란다.)에 넣은 다음, 낡고 커다란 비닐봉지 속에 든 ‘뜨개질 도구’를 집어 들거나 퓌순에게 가져다 달라고 했다     (p 138~139)

저편에는 네시베 고모의 옷감과 골무 들이 있었다. 화려한 도자기 골무와 퓌순이 조금 전에 신경질적으로 매만지던 오렌지색 파스텔 연필을 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p 168)

그녀가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면서 우아하게 만지고 있던 소금 통을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주머니에 넣고는, 천천히 라크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때 소금 통이 내 주머니에 있다는 것 

을..... (p 169)

성냥갑, 퓌순의 담배꽁초, 소금 통, 커피 잔, 머리핀, 머리 묶는 고무줄처럼 모으기 힘들지 않는 것이나 주의를 끌지 않는 물건을 다음으로 재떨이, 찻잔, 슬리퍼 같은 좀 더 주의를 끄는 것들을 가져오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그것을 대신할 물건을 새로 하나하나 사 가지고 가기 시작했다        (p 172)

한구석에 돈을 놓아둔다든지 내가 가져간 물건 대신 아주 비싼 새것을 다음 날 가져갔다.
바늘겨레와 개, 혹은 개와 재단용 줄자 같은 것들이 동시에 텔레비전 위에 놓였다가  

사라지곤 했다       (p 177)

나는 습관에 따라 조금 전 케스킨 씨네 집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 본능적으로  

강판을 가지고 나왔던 것이다     (p 178)
*** 모과 잼이나 음료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강판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케스킨 씨네 집에서 화장수 병을 가져가서, 멜하메트 아파트에  

모아 두고 있었다     (p 194)

케스킨 씨네 집 식탁에 앉아 있던 팔 년 동안, 나는 퓌순이 피운 4213개의 담배꽁초를  

가져와서 모았다     (p 199)

사기로 된 소금 통, 개 모양의 재단용 줄자, 무섭게 생긴 통조림 따개,  

퓌순네 집 부엌에 언제나 있었던 바타나이 해라바기 유 병     (p 205)

여기 전시한 사고 보고서에 의하면, 그녀의 두개골은 주저앉았고.....     (p 341)
*** 자동차 사고 현장과 사고 당시 퓌순의 상태에 관한 내용이 적힌 보고서

때로는 어떤 물건, 예를 들면 내가 샹젤리제 부티크에서 퓌순을 처음 보았을 때 그녀가
신고 있던 노란 구두를 들고는, 그것에 얽힌 이야기를 물었고, 나는 설명해 주었다
(p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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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이 글에서 말하는 독자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마우스 위에 올려 있는 검지손가락으로 이전 웹 페이지로 이동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이 페이퍼를 안 읽었으면 좋겠다.

 * 오르한 파묵의 신작 <순수박물관>을 아직 읽지 않았다
 * <순수박물관>을 읽고 있는데 아직 1권 혹은 2권을 읽고 있는 중이다
 * <순수박물관>을 읽고 있는데 내용이 너무 많아서 미칠 것만 같다.

    더 이상 끝까지 못 읽어나가겠다 
 * 그의 신작을 읽지 않았지만 작가가 실제로 ‘순수박물관’을 세운다는  

    뉴스는 들어봤다  

 * 작가가 세운 순수박물관에 관람하고 싶지만 여행 비용이 부담스럽다

<순수박물관>을 도서관에서 빌린 지 이틀 만에 다 읽어버렸다. 예전에 그의 전작인
<내 이름은 빨강> 두 권짜리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트라우마를 떨쳐버리고
신작 <순수박물관> 두 권짜리를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깐 무언가 아쉬움이 있었다. 독자가 순수박물관에  

찾아갈 수 있도록 약도를 그려 넣은 것은 좋다. 그런데 도록이 없다.  

박물관이라고 하면 도록은 빠질 수가 없다.
2권 마지막에 소설 속 등장인물의 목록이 있고 순수박물관의 전시물 도록이 없었다.
2권을 너무 빨리 읽다보니 케말이 모은 물건들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고작 생각난 것이 처음 박물관 전시 1호 물건인 퓌순의 귀고리 한 짝이 유일하다.
그래서 이 훌륭한 작품을 그냥 읽기에는 허전함이 남았다. 케말이 퓌순의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서 박물관을 세웠듯이 나도 오르한 파묵의 신간을 읽은 기념으로  

내 나름대로 도록 같지 않은 도록을 작성하였다. 
 

참고로 순수박물관의 도록을 작성해야겠다는 생각을 낳게 한 아이디어의 근원은
최근에 읽은 사이토 다케시의 <독서력>이라는 책이다.  

   

 

 

 

 

 


 

 

 저자는 읽었던 책을 더욱 기억하기 위한 방법으로 ‘매핑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기록 방식을 추천하고 있다. 쓰는 방식과 주제는 자유롭다.  

자신이 읽었던 책의 내용에 대해 자신만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법정 스님이 읽었던 책들을 소개한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을 예로 들자.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을 것이다. 읽고 난 뒤, 책 속에 소개된 법정 스님의 책들의 목록을 작성한다.
그렇게 되면 책 내용에 관한 기억이 확실히 나게 되며, 자연스럽게 법정 스님의 책들도  

읽게 된다. 매핑 커뮤니케이션의 장점은 읽은 책의 내용을 오래 기억할 수 있으며  

창의적인 독서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방식을 착안하여 좀 더  

<순수박물관>을 읽은 경험을 기억하기 위해 도록을 작성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그 두 권짜리를 또 읽었다. 사실 적지 않은 양의 두 권을 또 읽어야한다는 점이
고통스러웠지만 막상 시작해보니깐 어느 새 적응이 되어가고 있었다.
두 번째 완독 끝에 두 권에 등장하는 모든 순수박물관의 전시 물품들을 일일이 작성하였다. 

전보다 빠른 속도로 읽어서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을 빠뜨릴 수가 있겠다.
하지만 굳이 다시 찾지 않을 것이다. 또 한 번 두 권을 완독하는 것도 힘들며
나름 재미 삼아 하는 것이기에 제대로 작성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하지만 직접 터키에 있는 순수박물관에 가지는 못하더라도
케말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사랑의 증거들을 책에서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는다.

다시 한 번 말하겠지만, <순수박물관>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더 이상 밑의 글을 읽지 말고, 직접 책을 읽고 나서 도록을 확인해주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보면 이 글이 스포일러성으로 될 수도 있고, 괜히 허접한 글 때문에

독자 분들에게 기대감을 떨어뜨리게 만들게 하고 싶지도 않다.

혹시 읽어본 독자 분들 위해서 1, 2권 따로 정리했으며 내용이 명시되어 있는  

페이지 수도 기록하였다.  
 

  

 

1권 

퓌순은 내가 박물관의 첫 번째 물건으로 전시할 귀걸이 한쪽을 빼서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p 59) 
 


그날 퓌순의 가방에 끝내 나오지 않았지만 정성스럽게 접어 놓은 그녀의  

꽃무늬 손수건을 여기 전시한다. 이후 퓌순이 담배를 피우면서 책상 위에서  

만지작거렸던 어머니의 크리스털 잉크병 필기도구 세트가,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섬세하고 연약한 온정의 징표가 되었으면 한다     (p 61~62) 
 


그 당시 터키에서 가장 사랑받고, 가장 이상하고, 가장 용감했던 칼럼니스트
제랄 살리크(여기에 그의 칼럼 한 편을 전시한다)의 부드러운 손을 진심 어린 존경을  

다해 맞잡았다     (p 212) 
 


퓌순이 오늘 안 올 거라는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이던 그 십 분에서 십오 분을 내가 어떻게  

보냈는지는 여기에 전시한 시계, 성냥개비와 성냥 더미로 잘 설명될 것이다
(p 239~240) 
 


시벨과 누르지한이 읽던 프랑스 정원과 주택 관련 잡지에서 영감을 얻고 거기에 전통적인  

느낌을 접목해 꾸렸던 피크닉 바구니, 차가 가득 든 보온병, 플라스틱 상자 안에  

든 돌마 모형, 계란, 멜템 사이다 병, 자임의 외할머니가 쓰던 멋진 덮개를 전시한다 

(p 249) 

  

 

나도 비슷한 것을 어렸을 때 사용했고, 어쩌면 그래서 퓌순에게 선물했던 학생용 자
우리 박물관의 첫 번째 진짜 물건이다. 그녀를 연상시키고, 그녀의 삶에서 고통으로
얻게 된 물건 (생략)     (p 267) 
 


여기에, 그 시절 안간힘을 써서 떠올리고 파악하려고 했던 새 니샨티쉬 지도를 전시한다
(p 270)
*** 카멜의 집이자 박물관인 멜하메트 아파트가 있는 지역의 지도. 지역 주위에
카멜과 퓌순이 함께 걸었던 길이나 퓌순과 관련된 장소가 표시되어 있음 
 


아파트에 들어가서는 찻잔, 잊어버리고 간 머리핀, 자, 빗, 지우개, 볼펜 같은 그녀와 

나란히 앉아 있는 듯한 즐거움을 주는 물건을 만지거나..... 그것과 관련된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나의 수집품을 늘려 나갔다.     (p 294) 
 


여기에 전시한 편지는 나의 수집품을 처음 모으기 시작했던 그 중요한 시절에 쓴 것이다
(p 295)      *** 케말이 퓌순에게 보내기 위해 쓴 편지 
 


이제 관람객들이 내 사랑의 고통에 질려 버렸다는 걸 알기에 신문에서 오린 멋진 기사를 

전시한다. 퓌순과 미인 대화에 같이 출전했던 친구 제이다의 대회용 사진과 삶의 목표가  

‘이상적인 남성’과 행복한 결혼하는 것이라고 했던 그녀의 인터뷰 (하략)     (p 296) 
 


잠시 후 조금이나마 고통을 잊고 잠에 빠져들었다. 아버지가 그날 입었던 파자마의  

칼라 항상 나를 우울하게 했던 슬피러 한 짝을 여기에 전시한다     (p 300) 
 


관람객들이 나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가장 특별하고 중요한  

물건들의 작은 사진을 순서대로 여기에 전시한다     (p 312~313) 
 


오십 년 후에 나의 이야기와 사건에 관심을 보일 새로운 세계의 행복한 사람들을 위해
그 당시 담배 가게에서 팔았던 테두리가 꺼끌꺼끌한 전화 토큰을 여기에 전시한다
(p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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