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난민 - 한국의 난민 여성 이야기 마이너리티 리포트 1
문경란 지음 / 서울연구원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인간 존중을 헌법의 최고 가치로 규정하고 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발전되어 온 인간 존중은 오늘날 여성, 어린이, 근로자, 장애인, 난민 등 사회의 약자에 대한 인권 보호로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난민 문제에 대한 대응이 소극적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국제난민협약에 가입했다. 난민협약은 국제협약으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있으므로 한국 정부는 난민에 대한 보호 의무가 있다. 그렇지만 정부가 1명의 난민을 정식으로 받아들인 연도는 2001년이다. 난민 지위를 받지 못한 신청자들은 ‘인도적 지위(humanitarian status)’에 속한다. 그들은 난민이 될 수 있는 법적 요건이 부족하지만, 일정 기간 국내에 체류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누적 인도적 지위자 수가 천 명을 넘어선다.

 

우리나라에서 난민이 되는 일은 쉽지 않다. ‘난민’으로 생활하려면 복잡한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난민이 되기 위해선 ‘박해’를 받는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공개해야 한다. 난민협약이 규정한 ‘박해’는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위협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성폭력, 강제 결혼, 할례 의식 등 성적 박해에 벗어나려는 여성들도 난민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런데 목숨 걸고 가까스로 한국으로 건너온 난민 신청자들의 손에 근거 자료가 있을 리 없다. 여기서부터 난민 신청자들은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한다. 난민으로 인정받아도 그들의 삶은 순탄치 않다. 정부가 다문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차별받는 난민과 인도적 지위자 들이 많다. 인도적 지위자는 진학과 직업의 자유가 없어 공장에서 단순 노동직으로 살아간다. 난민들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은 딱 한 군데뿐이고, 서울에 있다. 지방에 거주하는 난민들은 서울에 가기 위한 교통비를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사실상 혼자서 외출이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녀들 역시 활동에 제약이 따르고 외톨이로 지내기 쉽다. 그리고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오전 시간에 한정되어 있어서 일하는 난민들은 사실상 배울 기회를 받지 못한다.

 

최근에는 난민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지면서, 난민들의 삶을 가로막는 장벽이 더욱 견고하게 높아지고 있다. 갈등과 분쟁이 국지화하면서 국경을 넘지 못하는 국내 난민이 급격히 증가하고, 박해를 피해 탈출한 난민들을 사회에 해를 끼치는 불법 이민자로 바라본다. 난민 문제에 대한 더 근본적인 비판은 ‘외국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 자체에 대한 것이다. 《우리 곁의 난민 : 한국의 난민 여성 이야기》(서울연구원, 2017)는 이 문제를 지적한다. 외국인에 대한 이중 잣대. 한국인들은 평등과 관용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인종 및 국적 차별이 몸에 배어 있다. 미국, 유럽 출신의 외국인이 방송인으로 활동하거나 정계에 진출하면 ‘푸른 눈의 한국인’이라며 환영하는 목소리 일색이었다. 그런데 필리핀 출신의 이민자인 이자스민이 국회의원이 됐을 때 악의적인 인종차별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이자스민을 비난한 사람들은 그녀의 국정 활동을 정확히 확인하지 않은 채 인터넷으로 떠돌던 허위 정보를 믿고 혐오 발언을 내뱉었다. 같은 외국인이라도 잘 사는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백인에게는 호의를 보이면서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로 분류되는 동남아 출신 유색인종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국내에 거주하는 난민 여성도 성차별의 피해자가 된다. 고국의 기나긴 내전을 피하고자 한국으로 온 난민 여성들이 있다. 전쟁은 약자에 대한 억압과 폭력이 극단적으로 증폭되는 끔찍한 상황이다. 전쟁 속에서 여성은 자국 남성을 위한 성 노리개가 되거나 점령세력 남성이 가하는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된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전쟁의 폭력은 우리 역사에서도 전혀 낯설지 않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 여성들은 강제로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었다. 여성들은 한순간도 전쟁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난민 여성들은 전쟁이라는 고통을 피하고자 한국으로 왔지만, 이곳에서도 이중삼중의 고통이 그녀들을 위협한다. 난민 여성은 ‘외국인’과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으며 경제적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매매를 하기도 한다. 안정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차별과 고통을 겪는 난민 여성에게 한국은 지옥이나 다름없다. 그녀들이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욕해도 우리에게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난민 여성들은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있는 입’이 없다. 부당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사회는 그녀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지 않는다. 어려움에 처한 난민 여성은 점점 고립되고, 사회는 난민 여성의 인권 문제를 외면한다.

 

이 책에 7명의 난민 여성들은 용기 있게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의 사연을 보게 되면 타자에 대한 관용을 말로만 외치던 우리 사회의 위선적인 민낯을 확인할 수 있다. 난민 여성의 인권 문제는 ‘한국 여성이 처한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 페미니즘 열풍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에 정착되려면 난민 여성을 소외하면 안 된다. 따라서 난민 문제는 ‘인간’의 문제로 확장되어야 한다.

 

 

 

 

※ 리뷰의 제목은 할란 엘리슨(Harlan Ellison)의 단편소설 제목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를 차용해서 정했다.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7-10-13 2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첨에 이런 알찬 리뷰 쓰려고 그런거거든요? 근데 쓰고나니 무도사 배추도사. 와......

비결 좀 알려주세요.

cyrus 2017-10-14 15:44   좋아요 0 | URL
syo님의 글에는 syo님만의 개성이 있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특별한 매력이 있습니다. 제 글을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양념과 기름기를 뺀 싱거운 음식’입니다. syo님의 글을 음식으로 비유하면, ‘맛있는 음식’입니다. 지금처럼 syo님이 만들고 보여줄 수 있는 글의 맛을 계속 유지하십시오. 이 알라딘 마을에 각자의 개성을 내세워서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저에게 배워야 할 점은 1도 없습니다. ^^

서니데이 2017-10-13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직면한 어려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요.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좋은 금요일 밤 되세요.^^

cyrus 2017-10-14 15:47   좋아요 2 | URL
잘못된 편견으로 한 번 낙인찍힌 사람일수록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렵습니다. 편견에 갇힌 사람들은 발화자를 무시하고 차별합니다.

2017-10-14 0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14 15:48   좋아요 0 | URL
중요한 기사를 잘 보셨군요. 이 기사를 모르거나 못 본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 거예요. ^^


임모르텔 2017-10-14 0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닿네요
제겐 아는 베트남 여동생이 있어요. 저보다 한국어구사력이 더 좋아서 자주 수다를 떨죠.
올 가을 함께 여행가자고 그러는데~ 이 글읽고 시간내어 같이 가을여행을 가야겠단 생각이..문득!!! .^^

cyrus 2017-10-14 15:52   좋아요 1 | URL
제 외숙모가 베트남 사람입니다. 시골에 사는 외삼촌과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어요. 저도 외숙모를 가족처럼 대하다 보니 다문화 정책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올빼미님의 소원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AgalmA 2017-10-14 04: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차별적이지도 민족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 난민 수용 상황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라고 하면 가짜들 많이 드러나죠. 여차하면 애국심이 강한 것도 죄냐 등등으로 주위의 표도 모으면서....글로는 감출 수 있어서 이건 산파술이 필요한 영역ㅎ

cyrus 2017-10-14 15:57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난민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 큰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요. 난민 문제도 복잡해요. 종교, 문화적 차이 등을 고려해야 하고 무엇보다 편견을 걷어내야 합니다. 일반인으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은 난민 문제를 접근할 때 가짜 정보, 허점이 있는 정보를 걸러내는 일입니다.

2017-10-14 0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14 16:02   좋아요 4 | URL
탈북자도 난민입니다. 밀당 중인 트럼프와 김정은이 전쟁 한 판 하자고 제대로 뜨면 대한민구 인구도 난민이 됩니다. 전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전을 피해 우리나라로 건너 온 난민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웃긴 일이에요. 우리나라도 언제 전쟁 날 지 모르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난민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요.

sprenown 2017-10-14 0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민여성이 그러고 보니 우리사회의 최고 약자네요
관용의 미덕은 언제쯤?

cyrus 2017-10-14 16:04   좋아요 2 | URL
난민에 대한 편견이 줄어들지 않는 한 난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나 난민 문제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sprenown 2017-10-14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뿌리깊은 인종차별에 우리 먹고 살기도 힘들다..일자리문제까지.
못할짓 많이 하고 있네요.
사실 얼마전까지 고아수출 하고 베트남 전에서 양민 도 많이 학살했었던 나란데..최소한의 양심과 인류애 회복을 바랍니다!

transient-guest 2017-10-17 0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민이면서 여성이라는 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한국은 난민 뿐 아니라 사실 인종차별문제도 심각한데 사회적으로는 별로 인식을 못하고 있는 상황 같습니다. 미국의 경우도 트럼프 때문에 난민인정/이민권이 나빠지고 있습니다만, 현실적으로는 우호적인 난민을 대량으로 받아들여 정착시키는 제도의 활용, 그리고 민간단체의 활동으로 그나마 나은 형편입니다. 특히 난민을 대량으로 받아들여서 인구감소가 심각한 지역으로 이주시켜 지역을 활성화시킨 사례도 있어 인구감소가 이미 현실인 한국도 적극적인 검토와 제도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관용과 무조건적인 사랑이 바탕인 종교에서조차 일상적인 차별과 인권탄압이 이루어지는 나라라서, 그리고 국민의 다수가 그 종교에 적을 두고 있는 상태에서는 쉽지 않을 듯 합니다 (종교만의 문제는 아니구요).

cyrus 2017-10-17 12:56   좋아요 1 | URL
우리 사회가 다문화 사회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주기 위해서는 정부가 난민 문제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위즈덤하우스, 2015)은 춘추전국시대에 태동한 공자노자의 사상을 소개하여 노자는 공자의 어떤 점을 비판했고, 그것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한 책이다. 공자는 ‘인(仁)’이라는 보편적 기준을 내세워 세상의 혼란을 잠재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자는 보편적 기준에 맞춰 가면서 살지 말라고 강조한다. 노자는 ‘인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삶이 더욱 풍요로워진다고 보았다.

 

이 책에 《도덕경》뿐만 아니라 《논어》 문장도 나온다. 그래서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을 읽기 전에 예습하는 차원에서 《논어》를 봐 두는 것이 좋다.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에 《논어》 자로(子路) 편 23장의 원문과 그것을 풀이한 문장이 나오는데, 최진석 교수는 이 구절을 이렇게 풀이한다.[1]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군자화이부동, 소인동화불화)

 

훌륭한 사람(군자)은 각각의 차이를 인정하는 조화를 도모하지 모두 유니폼을 입혀 놓은 것처럼 하지 않는데, 좀 부족한 사람(소인)은 유니폼을 입혀 놓은 것처럼 똑같게 하려 하지 차이를 인정하는 조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군자는 자기중심과 원칙은 잃지 않으면서도 다른 이들과 잘 어울린다. 반면 소인은 상대방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특정 생각을 받아들이도록 일방적으로 강요한다. 그런 소인의 행동을 최 교수는 ‘유니폼을 입혀 놓은 것’으로 비유하여 풀이했다. 원문을 직역하지 않은 풀이는 봤어도 외래어가 들어간 풀이는 처음 본다. 살짝 튀긴 하지만, 원문을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화이부동’을 쉽게 풀이한 학자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 김학주 역 《논어》 (서울대학교출판부, 2015)

* 이을호 역 《한글 논어》 (한국학술정보, 2015)

* 김원중 역 《논어》 (휴머니스트, 2017)

 

 

 

* 김학주 : “군자는 화합이나 뇌동(雷同)하지는 않고, 소인은 뇌동하나 화합하지 않는다.”

 

* 이을호 : “참된 인물은 진정으로 화합하지 고개만 끄덕거리지 않는다. 하찮은 인간은 고개만 끄덕거리지 진정으로 화합하지 않는다.”

 

김원중 : 군자는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지만 [부화]뇌동하지는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하지만 조화를 이루지는 못한다.

 

 

 

요즘 청소년 권장도서 목록에 《논어》가 종종 포함되기도 한다. 청소년 독자들을 위한 《논어》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논어》는 읽기 쉬운 책이 아니다. 《논어》를 여러 번 읽어도 공자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논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꼭 그렇지만 않다.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은 후대의 학자들이 정리하여 다듬어진 책이 《논어》다. 《논어》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 있는 의도가 체계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주석가들은 《논어》를 끊임없이 정독하여 공자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려고 시도한다. 논어 자체가 갖는 모호성 때문에 풀이가 다른 주석서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다. 김학주 교수의 말대로라면 《논어》의 사상을 얘기한다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이다.[2] 특히 더 우스운 일은 자신이 생각한 것, 자신이 눈으로 본 《논어》 풀이가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공자가 경계한 소인의 행동이다.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에 딱 달라붙은 ‘보편적 기준’이라는 이름의 유니폼을 입고 행동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다. 본인이 입고 있는 유니폼이 상대방에게 입으라고 강요한다.

 

 

 

 

 

 

 

 

 

 

 

 

 

 

 

 

 

 

* 신영복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돌베개, 2004)

 

 

 

신영복 교수는 ‘화이부동’의 ‘동’이 자기 존재의 확장을 위해 상대방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합병의 논리라면, ‘화’는 상대방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공존의 논리로 해석했다. 최근에 《도덕경》을 읽어서 그런 것일까. ‘화’를 해석한 신 교수의 주장이 노자의 생각과 조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노자는 ‘보편적 기준’을 강요하는 사회를 반대했다.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는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유니폼의 상태가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잘 모를뿐더러 자신들이 입은 유니폼을 거부하는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다.

 

 

 

 

[1]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57~58쪽

[2] 《논어》(제2전정판, 2007년) 90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prenown 2017-10-14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영복교수님의 화이부동 해석이 가슴에 와닿네요.
부화뇌동하지 않고 주체적 삶을 살면서도 화이부동 할수 있는 군자. 이상적인 인간이네요.

cyrus 2017-10-14 16:05   좋아요 1 | URL
<강의>를 처음 읽었을 때 신 교수님의 화이부동 해석이 마음에 크게 와 닿지 않았어요. ‘아, 그렇게 해석할 수 있구나’하면서 넘어갔어요. 그런데 도덕경과 논어를 여러 번 읽게 되니까 이제 좀 하나씩 뭔가 느끼기 시작했어요. ^^;;

2017-10-15 0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15 17:35   좋아요 0 | URL
동양철학 리뷰를 쓰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열심히 쓴 글이 지적받으면 기운이 빠져요.. ㅎㅎㅎ 추천한 책도 읽어봐야겠어요. ^^
 
철학 하는 여자가 강하다 - 능력 있는 현대 여성은 왜 무기력한가
레베카 라인하르트 지음, 장혜경 옮김 / 이마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너 바보야? 왜 말을 못 해? 저 남자가 내 사람이다. 저 남자가 내 애인이다. 왜 말을 못하냐고!”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박신양이 핏대를 세우면서 말했던 이 대사는 드라마 방영 당시 최고의 유행어로 등극했다. 이 대사는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있다. 자타공인 의사소통 전문가들은 애초부터 남자와 여자의 언어 습관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남자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여자는 우회적으로 돌려 말한다. 여자는 과정을 얘기하며 감정을 공유하길 원한다. 반면 남자는 여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과정보다는 결론부터 이야기한다. 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2006, 동녘라이프)의 저자 존 그레이(John Gray)는 “태어날 때부터 남자는 화성인이고, 여자는 금성인이기 때문에 남녀 언어와 사고방식은 다르다”는 비유를 들었다. 그의 책을 감명 깊게 읽은 사람들은 남녀가 대화를 나눌 때 오해와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믿는다.

 

의사소통 전문가들은 남녀가 서로의 차이를 뛰어넘어 서로 원활하게 소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남자는 여자의 말을 경청해주고 여자는 남자의 언어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성이 이해해주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보통 남자들은 끊임없이 허풍을 떨며 자신을 과시한다. 왜냐하면, 대화를 통해 상하 관계를 설정하기 때문이다. 남녀가 함께 일하는 직장, 특히 남자가 많은 부서에 여직원들과 말이 안 통하는 남자 직원이 꼭 한 명씩 있다. 이런 직원은 툭하면 여자 후배 직원들에게 원성을 낸다. 그리고 여자 직원이 매끄럽게 일 처리를 하지 못하면 “여자들은 안 돼”라고 면박한다. 남자는 자신이 상대방(여자)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을 확인하려고 한다.

 

여자를 깔보고 무시하는 남자의 개소리에 당연히 화를 안 낼 수가 없다. 그러나 여자는 그 자리에 화를 내지 못한다. 만약 여자가 화를 내고 목소리를 높이면 불이익을 받는다. 이 상황에 의사소통 전문가들은 화를 내는 대신 참으라고 말한다. 여자가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은 경청이다. 그렇게 되면 정면충돌의 비극을 피할 수 있고, 서로 마음에 상처받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마음의 상처를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은 여자이다. 여자들은 자기 의견을 거절당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심한 편이다. 그래서 자신의 의견을 확실히 말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이 자신의 의도를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대부분 남자는 눈치가 없다. 여자들과 말이 통하지 않으면 불만스러운 시선으로 여자를 쳐다본다.

 

“여자가 정숙해야 남자에게 사랑받아”, “화가 나더라도 여자는 참아야 해”, “남자랑 말이 잘 통하려면 여자가 남자의 대화법을 이해하고 경청해야 해”

 

이 말들은 남자들이 여자의 귓가에 속삭일 때 하는 악마의 주문이다.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다양성이 담보되었다지만 동시에, 여전히 여성의 삶의 형태는 정형화된 ‘여성성’으로 모인다. 매일, 매 순간 여성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억압이다. 레베카 라인하르트(Rebekka Reinhard)《철학 하는 여자가 강하다》(이마, 2017)는 입에 재갈을 물린 채 질식하고 있는 현대 여성의 여성성에 대해 알려준다. 현대에 이르러 여성들도 남성 못지않은 경제력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레베카 라인하르트는 여전히 현대 여성들은 낡아빠진 과거의 ‘여성성’을 버리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여성도 권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권력을 사용할 줄 아는 여성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반대로 권력이 없는 여성은 무력하고 소극적이다. 이들은 ‘남자로부터 인정받는 여자’가 되는 삶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이런 상황 속에 여성은 권력 문제에 무관심하게 되고, 남성을 뛰어넘는 능력이 있음에도 사회적 활동을 하는 기회를 얻지 못한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현대 여성들은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 향상’에 집중해야 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저자가 강조하는 ‘권력’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권력’이라 하면 ‘남을 복종시키는 힘’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여자가 남자를 복종하는 상황을 죽어도 싫어하는 남자들은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페미니스트를 싫어하는 형님, 동생들아! 겁먹지 마시라. 때론 지나친 상상도 병이다. 권력을 가진 여성은 남자를 실컷 부려 먹는 이기적인 존재이고, 이들 때문에 남자가 역차별을 받아 불리해질 거라는 믿음은 망상에 불과하다. ‘권력’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다. 그러므로 ‘권력’을 무조건 나쁜 의미로만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권력’도 긍정적인 의미의 단어가 될 수 있다. 저자는 ‘권력’을 ‘어떤 일에 영향을 미치고 무언가를 일으키고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1]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을 바꾸거나 부당한 사회를 개선하려는 사람들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행동은 권력 구조를 변화시킨다. 따라서 권력은 한 사람 또는 하나의 거대한 집단이 영원토록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다.

 

가부장제는 남성 중심의 시각과 권위를 위해 형성된 사회 형태이다. 가부장적 가족 안에서 남성은 가정사의 모든 일에 좌지우지하는 절대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현실에서 어떤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지 기지적함으로써 남성성에 대한 허상을 발가벗긴다. 그들의 노력은 남성 중심의 권력에 대한 도전이다. 남성의 기득권에 저항하고 도전할 힘이 있는 여성은 남성의 권력에 눈치받지 않고 스스로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여성도 권력을 독점하게 되면 ‘여왕벌 신드롬(Queen Bee syndrome)’ 문제가 발생한다. 조직 안에서 인정받는 여성은 자신의 능력 하나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여왕벌이 벌집 안에서 유일한 권력을 갖는 것처럼 출세를 원하는 여성 직원은 조직 내에서 쌓아 올린 자신의 권위를 다른 여성과 나누려고 하지 않는 성향을 보인다. 그 결과 여성 임원은 남성 직원에 대한 지지를 하게 되고, 다른 여성 직원이 겪는 부당한 차별을 묵과한다. 결국, 일하는 현대 여성은 ‘규격화하는 (가부장) 권력’[2]에 동조하게 된다. 나는 이것을 ‘가부장 권력에 동화(同化)된 여성’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하고 싶다. ‘여왕벌’이 많아지면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금이 가도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 말끔해진다. 깨뜨려도 쉽게 깨질 수 없는 유리천장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 상승을 막는다. 가족 내에서도 가부장 권력에 동화된 여성은 자신의 가부장적인 생각이나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가부장적 위계질서에 익숙한 여성은 ‘갑’의 위치에 서서 부당한 권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가부장 권력은 상대적인 권력 서열화 방식으로 작동되고, 그 과정에서 불합리한 방식의 ‘갑질 문화’ 또는 ‘차별’을 재생산된다.

 

라인하르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권력과 도덕의 공존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녀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말을 인용하여 정당하게 사용하는 권력의 장점을 알려준다.

 

“권력은 행동하거나 무엇인가를 할 뿐 아니라 타인과 단결하고 그들과 협력하여 행동하는 인간의 능력과 부합한다.”[3]

 

도덕은 권력을 가진 자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윤리의식이다. 이것이 빠진 권력은 ‘권력을 가진 자가 독점하는 전유물’이 된다. 권력을 독점하는 자는 상대방이 자신의 권력을 노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자신에 반대하는 사람을 ‘부정 세력’으로 간주하여 비타협적인 태도를 보인다. 제멋대로 해도 권력 많은 사람이 그러는 것은 괜찮다고 암묵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권력의 불평등성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남녀 모두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철학을 공부하면 ‘권력’이 ‘배타적인 반란을 위한 나쁜 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철학 하는 여자’는 절대로 나쁘지도, 위험하지 않다.

 

 

 

[1] 《철학 하는 여자가 강하다》 10쪽

[2] 같은 책, 177쪽

[3] 같은 책, 200쪽 (저자가 인용한 한나 아렌트의 책은 《폭력의 세기》)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립간 2017-10-13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blog.aladin.co.kr/maripkahn/9622741

가부장적인 걸 싫어하는 여자들의 이중잣대
https://www.youtube.com/watch?v=BsSCdepDHcY

이 페이퍼에 링크된 동영상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신지요?

cyrus 2017-10-13 13:31   좋아요 0 | URL
‘가부장(제)‘를 막연하게 알고 있거나 확실하게 알지 못한 여자들은 자신의 이중 잣대가 가부장제의 영향에서 생겨났다는 사실을 잘 모를 것입니다. 18세기 영국 의 여권신장론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남성 중심 사회의 문화에 종속당한 여성을 비판했습니다. 이런 여성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도 교육을 받아야한다고 주장했죠. 저는 이제 여성들이 남성들의 사회에 종속당하지 않으려면 페미니즘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립간 2017-10-13 14:19   좋아요 0 | URL
cyrus 님은 위 동영상의 주장에 동의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위 동영상의 지적한 연애 기간의 이중잣대는 남성 중심 사화의 문화에 종속된 것으로 판단하는 (울스턴크래프트?) 사람의 주장에도 동의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cyrus 님의 의견에 대한 제 판단이 맞다면,
제가 알라딘 마을에서 데이트시 비용을 남녀 동등하게 분담하는 제안에 자칭 페미니스트를 포함한 많은 여성 알라디너가 반발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알고 계시겠지만, 이로 인해 다락방 님, 하이드 님과 저와의 페미니즘 논쟁이 시작되었죠.)

cyrus 2017-10-13 14:46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과 다락방님의 주장 근거를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엠마 왓슨처럼 더치페이를 찬성하는 페미니스트도 있습니다. 더치페이를 반대하는 페미니스트가 있고, 찬성하는 페미니스트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에 속합니다.

마립간 2017-10-13 14:55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동영상에 지적했던 연애하는 젊은 여성도 남성 중심 사회 문화에 종속된 가치관이 아니라 또 다른 페미니즘으로 해석할 여지는 없습니까?

그리고 cyrus 님이 가부장제 동화라고 표현했던 것도 또 다른 페미니즘으로 해석할 여지가 없습니까?

cyrus 2017-10-13 14:57   좋아요 0 | URL
글쎄요, 제가 거기까진 생각은 안 해봐서 뭐라고 말씀을 못하겠어요. ^^;;

마립간 2017-10-13 14:58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이나 하이드 님의 주장은 아니지만, 데이트 비용을 남자가 부담해야 하는 근거로 남녀 임금 격차를 이야기합니다. 임금의 양성 평등이 이루지면 그 때 부담하겠다고 합니다. 군대에서 양성 평등이 이뤄지면 군입대 하겠다는 논리와 동일하죠.

같은 논리라면 권력도 남녀 평등이 이뤄진 후에야 여성이 추구해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만.

마립간 2017-10-13 15:07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의 모순을 다양성으로 변명하려 한다면,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사랑했다고 (어쩌면 또 다른 페미니즘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stella.K 2017-10-13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너는 리뷰를 하랬더니 아예 한 편의 논문을 썼구나.
다른 글도 그렇지만 이 글은 정말 퍼팩트다.
지위를 얻으려 하지 말고 권력을 얻어라.
맞는 말 같다. 그런데 보통은 여성의 지위가 올라갔다고
얘기들을 많이하지.
하지만 권력을 잘 쓰기는 남자나 여자나 다 어려운 것 같다.
그러니까 결론은 철학을 하란 말이지.
이 책 괜찮은 책 같다.^^

cyrus 2017-10-13 14:47   좋아요 0 | URL
보통 지위와 권력을 동일한 의미의 단어로 생각하기 때문에 남녀 불문하고 지위 오남용 현상이 생겨요. 그 현상이 바로 갑질 문화에요.

페크pek0501 2017-10-14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하려면 철학하는 여자가 되어야겠군요. 그에 따른 공부는 필수고요.
제가 꼭 읽어야 할 책 같군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읽었는데 80프로쯤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읽었었어요.

cyrus 2017-10-14 16:07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을 읽고, 철학을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항상 늘 그래왔듯이 생각만 하고, 실천을 안 하게 됩니다... ㅎㅎㅎ

마립간 2017-10-16 08:00   좋아요 1 | URL
저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 대해 대체적으로 맞는 말이라고 판단하지만,

페미니즘에서는 남녀 차이가 없는 현실에 대해, 성차별-차이를 인식, 고착하게 만든다는, 대표적인 페미니즘에 반하는 도서로 비판받고 있습니다.
 

 

 

 

현재 서른에 접어든 어른이라면 어린 시절 즐겨 보았던 만화영화들을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일요일 아침 여덟 시가 되면 눈이 번쩍 떠지는 꼬마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 시간에 <디즈니 만화 동산>이 시작하면, 잠을 자고 있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이 만화를 보려면 달콤한 늦잠을 포기해야 한다.

 

창고로 사용하는 방에 오래된 책들이 누워 있다. 어두컴컴한 암흑을 이불 삼아 외로운 방 한구석에 잠을 잔다. 이 친구들을 안 깨운 지 좀 오래됐다. 잠들고 있는 책 중에 특별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바로 <계몽사 애니메이션 디즈니 명작>이다. 디즈니 만화영화 속 장면을 그림 동화 형태로 편집한 책이다. 출판사는 계몽사. 1980년에 계몽사는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과 정식으로 계약하여 디즈니 관련 도서를 출판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계몽사 디즈니 명작>은 총 16권으로 구성되었는데, 곰돌이 푸’, ‘아기 코끼리 덤보 등이 포함되었다. 이 시리즈의 아쉬운 점이라면 명작이라고 하기에 2% 부족한 작품 선정이다. 디즈니를 먹여 살린 백설 공주’, ‘신데렐라’, ‘피터 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유명한 작품이 포함되지 않았다. 도널드 덕미키 마우스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고작 두 편뿐이다.

 

 

 

 

 

 

<계몽사 디즈니 명작> 시리즈에 포함된 타란과 마술단지’(원제는 ‘The Black Caudron’, 1985년에 개봉)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만든 만화영화 중 쓰레기로 취급 받는다. 이 만화는 흥행에 실패했고, 개봉 당시 혹평을 받았다.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묻힌 망작이다.

 

 

 

 

 

 

바질 탐정(The Great Mouse Detective)’이라는 제목의 디즈니 만화를 아는 분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타란과 마술단지의 흥행 실패로 암흑기를 걷고 있던 디즈니 컴퍼니가 내놓은 다음 작품이 바로 바질 탐정이다. 그런데 이 작품도 대박을 터뜨리지 못했다. 전미 극장에 개봉한 지 8년 만에 바질 탐정이 비디오로 출시되어 우리나라에 소개됐다. 원작인 만화영화를 가위질해서 조악하게 편집한 것이 <계몽사 바질 탐정>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특별하다. ‘바질 탐정을 국내에 처음으로 알린 특별한 책이기 때문이다.

 

 

 

 

 

만화영화 <바질 탐정>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동물을 의인화한 것이다. 주인공 바질은 생쥐를 의인화한 캐릭터다. 바질의 친구는 의사인 도슨 박사. 도슨 박사는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는 꼬마 올리비아를 우연히 만난다. 박사는 올리비아를 돕기 위해 바질에게 꼬마의 사정을 알린다. 바질과 도슨 일행은 꼬마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수사를 펼치는데, 아버지를 납치한 범인이 범죄의 제왕으로 알려진 래티건 교수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 네 사람의 서명(황금가지, 2002)

* 주홍색 연구, 네 명의 기호(시간과공간사, 2002)

* 네 개의 서명(문예춘추사, 2012)

* 주석 달린 셜록 홈즈 5 : 주홍색 연구, 네 사람의 서명(현대문학, 2013)

* 네 사람의 서명(코너스톤, 2016)

* 네 사람의 서명(엘릭시르, 2016)

    

 

 

 

 

 

 

 

 

 

 

 

 

 

 

 

 

 

 

 

 

 

 

 

 

 

 

 

 

 

 

* 셜록 홈즈의 회상록(황금가지, 2002)

* 셜록 홈즈의 회상(시간과공간사, 2002)

* 셜록 홈즈의 회상록(문예춘추사, 2012)

* 주석 달린 셜록 홈즈 2 : 셜록 홈즈 회고록(현대문학, 2013)

* 셜록 홈즈의 회고록(코너스톤, 2016)

* 셜록 홈스의 회상록(엘릭시르, 2016)

 

 

 

 

만화영화의 간략한 줄거리를 보신 분은 ?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인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바질 탐정>셜록 홈즈 시리즈를 모티프로 한 만화영화다. 바질은 셜록 홈즈, 도슨 박사는 존 왓슨, 그리고 래티건 박사는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다.

 

 

 

 

 

 

바질은 레티건을 잡기 위해 냄새를 잘 맡는 사냥개 토비를 데려온다. 네 개의 서명에 홈즈는 범인의 행적을 추적하기 위해 왓슨에게 늙은 사냥개를 데려오라고 부탁한다. 소설에 나오는 개의 이름이 토비.

 

 

 

 

 

   

 

래티건의 부하 피젯은 ‘절름발이’ 박쥐다. 래티건이 시키는 대로 일을 잘 처리하며 바질 일행을 골탕 먹일 정도로 악당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모리아티 교수와의 결전 중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홈즈를 죽이려는 시배스천 모런 대령과 유사한 캐릭터다. 모런 대령은 모리아티의 오른팔이다. 홈즈의 말에 따르면 모런 대령은 ‘런던에서 가장 위험한 두 번째 인물’이다. 그런데 의족을 하고 있는 피젯의 모습을 봐서는 외모는 《네 개의 서명》에 나오는 악당 조너선 스몰을 닮았다. 악당 피젯(Piget)의 이름에 있는 철자 ‘i’를 ‘a’로 바꾸면 파젯(Paget)이 된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삽화를 그린 사람이 시드니 파젯(Sidney Paget)이다.

 

 

 

 

 

 

 

 

 

 

 

 

 

 

 

 

 

 

 

 

 

 

 

 

 

 

 

 

 

 

 

 

 

* 셜록 홈즈의 귀환(황금가지, 2002)

* 셜록 홈즈의 귀환(시간과공간사, 2002)

* 셜록 홈즈의 귀환(문예춘추사, 2012)

* 주석 달린 셜록 홈즈 3 : 돌아온 셜록 홈즈(현대문학, 2013)

* 셜록 홈즈의 귀환(코너스톤, 2016)

* 셜록 홈스의 귀환(엘릭시르, 2016)

 

 

 

 

주인공 이름인 바질이 셜록 홈즈 연기로 유명한 배우 바질 래스본(Basil Rathbone)에서 따왔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바질은 홈즈가 사용한 가명이기도 하다. 단편집 셜록 홈즈의 귀환에 수록된 블랙 피터(Black Peter)에 홈즈는 바질이라는 가명으로 전보를 보내는 장면이 있다.

 

 

 

* 원문

“Excellent, Watson! The alternative develops. Have you telegraph forms? Just write a couple of messages for me: ‘Sumner, Shipping Agent, Ratcliff Highway. Send three men on, to arrive ten to-morrow morning.Basil.’ That's my name in those parts.”

 

* 시간과 공간사 (2, 252)

아주 훌륭해, 왓슨. 진행 중인 다른 수사에 소득이 있는 걸. 전보용지 갖고 있나? 몇 줄 써주게. ‘섬너, 선박 대리인, 랫클리프 하이웨이, 뱃사람 세 명 부탁. 내일 아침까지-배질거기서는 이게 내 이름일세.”

 

 

 

 

황금가지(2), 문예춘추사 판본에서는 바질’, 시간과공간사(개정판), 현대문학(주석판), 코너스톤(개정판)에는 배질로 표기되어 있다. 홈즈는 사건 해결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신분을 숨기면서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변장한다. 바질은 홈즈가 선박 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변장했을 때 사용하는 가명이다.

 

셜록 홈즈의 귀환을 읽고 있다가 바질이라는 이름에 눈길을 줬을 때, 무척이나 반가웠다. 내 기억 속에 잊힌 만화영화 속 탐정이 되살아났다.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방 안에 잠든 친구를 깨워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하라 2017-10-12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기억이 아련하기만한데 이런 만화들이 했었군요 왜 하필 이른 이침에 했던건지 방송사가 밉상이네요^^

cyrus 2017-10-12 16:24   좋아요 1 | URL
<디즈니 만화동산>가 처음으로 방영된 해가 1992년입니다. 이때 제가 뭐했는지 1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ㅎㅎㅎ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 바로 지금 여기에서, 고유명사로 산다는 것
최진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들보다 더 살고, 잘 보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자신의 유능함을 과시하는 성향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부자와 빈자가 구분되는 세상이 되면서 부자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특별한 단어’를 만든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도 귀족이 되는 부자들은 자신만의 계급의식(class consciousness)을 드러내고 싶었다. 혈연관계 중심으로 신분이 세습되는 고대 중국 사회에서 탄생한 ‘특별한 단어’가 바로 ‘군자(君子)’다. ‘군자’의 반대말은 ‘소인(小人)’이다. 소인은 육체노동을 하는 백성이다. 그러면 군자는 정신노동, 학문을 가까이하는 사람이다. 맹자(孟子)는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를 가지고 군자와 소인을 정의했다. 계급 사회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철기 시대부터 봉건적 계급의식은 공고해진다. 중국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는 인류가 청동기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오는 최대의 격변기였다. 이 변화의 과정에서 생산력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고, 비교적 윤택하게 살 수 있게 된 소인들이 군자를 따라 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계급 갈등이 일어난다.

 

자기들만의 이익만을 위한 갈등과 분쟁이 극에 달할수록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는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이때 공자(孔子), 맹자, 한비자(韓非子)제자백가(諸子百家)로 알려진 사상가들이 등장한다. 여기에 노자(老子)가 빠지면 섭섭하다. 노자는 동시대 사상가인 공자처럼 분열과 반목이 이어지는 난세의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노자는 공자와 사뭇 다른 사상적 노선을 취했다. 공자는 바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인(仁), 즉 군자의 덕목을 사람들이 추구하지 못해 사회가 혼란스러워졌다고 생각했다. 반면 노자는 오히려 사람들이 오히려 인위적인 법과 도덕에 얽매여서 자연스러운 본성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노자는 공자의 주장에 반대했다.

 

노자는 사람들이 자신의 본성을 잃어가는 것을 일찌감치 우려했다. 그는 인위적인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가치론적 판단’을 부정하고, 거기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인 무위(無爲)의 경지를 지향한다. 무위의 경지는 모든 가치 판단이나 사회적 구속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상태의 단계이다. 억지를 부리지 않고 원래 자연 그대로의 순리에 따르는 것은 인간 본연의 회복이며, 자유를 추구하는 삶이다. 유가 사상가들은 도가사상을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자들이 좋아하는 초월적인 사상’이라고 비난한다. 요즘에도 있는지 모르겠으나 가끔 길을 걷다 보면 “도를 아십니까?”라는 말로 사람들에 접근해 귀찮게 하는 수상한 사이비 종교 전도사를 만난다. 사이비 종교 전도사를 만났던 찜찜한 기억 때문인지 도(道)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은 노자의 도를 현실성이 떨어지는 관념적 개념으로 인식한다. 사실 원문 풀이가 제대로 된 《도덕경》을 읽어도 도의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노자의 사상에는 시대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실전 감각이 깃들어 있다. 건명원 초대 원장인 최진석 교수는 노자를 ‘시대가 낳은 아들’이라고 했다. 아들은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기성세대로 상징하는 아버지에 반항한다. 노자는 개인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인위적인 기성 사회의 문제점을 극복하려고 했다. 노자가 태어나기 전까지 사람들은 ‘상제(上帝)’라고 부르는 신에게 빌면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았다. 노자는 인간이 스스로 깨달아야 할 자기 존재의 의미를 ‘개인의 자유’라고 봤다. 그리고 자기 존재의 의미를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이상적인 세상은 ‘관계’를 지향하는 사회이다. 최진석 교수는 노자 사상의 핵심을 함축한 유무상생(有無相生)을 보다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현대적인 단어인 ‘관계’와 함께 설명했다. 유무상생. 이 말은 ‘있음(有)’과 ‘없음(無)’이 새끼줄로 꼬여 있는 형태가 되어 서로 어우러져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유무상생의 세계는 ‘대림면의 꼬임’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로 대립하는 사물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공자는 자신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군자’가 될 수 있도록 수양을 권한다. ‘군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받고, 제대로 행동으로 실천한 사람만이 획득할 수 있는 일반 명사다. 그러나 노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반대하고 공자가 만들어낸 일반 명사를 거부했다. 그는 인간 존재 그 자체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세상을 원했다. 유가 사상과 도가 사상을 비교하는 순간, 진실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편견이 생긴다. 편견은 우리의 눈과 정신을 가리는 인위적인 거미줄과 같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거미줄 틈 사이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렇게 좁은 틈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사회의 다양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렇다 보니 나와 정반대인 대상을 만나면 무조건 나빠 보이고, 해롭다고 믿는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당연하다고 믿는 사람은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다. ‘생각하는 힘’이 없으니까 ‘편견’의 거미줄에 걸린 ‘자기 자신’을 구출해낼 능력도 없다. 거미줄에 빠져나오려면 남의 시선, 남의 눈치, 남의 생각 등 인위적인 요소들로 채워진 가짜 ‘나’를 비워내야 한다. 춘추전국시대보다 더 혼란스러운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각하는 힘’을 키우려면 노자를 공부해야 한다. 노자의 사상은 현실적인 학문이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prenown 2017-10-11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리뷰 감사합니다. 군자의 길은 너무도 멀고 험난 한것 같습니다. 노자의 도덕경 곁에 두고 틈나는대로 읽어야 할것 같아요.

cyrus 2017-10-11 22:04   좋아요 1 | URL
별말씀을요. 제가 책을 오독했거나 내용 전달이 잘못 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도덕경은 오독율이 높은 책입니다. 최진석씨 책 덕분에 오랜만에 도덕경을 읽었습니다. 역시 도덕경은 심오한 책입니다.

sprenown 2017-10-11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짜 ‘나‘를 비워내기 위해서는 조금은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긴 할거 같네요.

cyrus 2017-10-12 12:28   좋아요 0 | URL
저는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자는 가치 판단을 부정했지만, 집착만 하지 않으면 적당한 수준의 인위적 노력도 좋다고 봅니다. ^^

2017-10-11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12 12:29   좋아요 0 | URL
고등학교 윤리 선생님이 장자를 읽으면 마음이 시원하다고 말씀한 적이 있어요. 정말로 장자를 읽으면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요? ^^;;

2017-10-11 2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12 12:31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의 좋은 점만 부각시키는 언론의 행태 때문에 한국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관련 기사들은 조용히 묻히는 경우가 많아요.

qualia 2017-10-12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매끄럽게 잘 읽힙니다. 공자와 노자의 사상 핵심도 명료하게 전달돼 옵니다. 이렇게 탁월한 cyrus 님의 글을 읽고 직간접으로 많은 걸 내심 깨닫습니다. 한데 저는 요즘 현대 중국인들에겐 전혀 좋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솔까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중국인들한테는 인종주의자적 태도와 편견을 내보이는 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겠더군요. 궁극적으로 이런 태도와 편견은 자가당착적인 것이고 자업자득적 손실로 다가올 수도 있음이 필연적인 것인데요. 그럼에도 현실론적 혹은 실용론적 혹은 민족론적 견지에서는 현대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의 적대적이고 지배자적인 심리 구조와 심리 경향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한민족의 생존을 위해선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해서 저는 일본과 중국에 대한 그 어떤 형태의 호감, 찬양, 숭배, 이런 것들을 비판적으로 봅니다. 우리가 저들을 극복하기 위해 저들을 잘 파악하고 분석할 필요는 있지만, 경계심 결여된 호감, 찬양, 숭배 등등은 저들의 적대적이고 지배적인 심리 구조/경향을 더욱더 강화시켜주는 것밖에 안 된다고 봅니다. 고대로부터 근대, 21세기 지금 현대까지 한국과 일본/중국과의 역학적 관계는 나쁜 쪽으로 악화되었으면 되었지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저는 삼국지나 대망 따위 같은 것들이 한국인들 사이에서 폭넓게 읽히고 있는 사실에 무척 개탄스러운 마음입니다.

cyrus 2017-10-12 12:35   좋아요 0 | URL
최진석 씨가 쉬운 언어를 써가면서 공자와 노자 사상을 잘 비교했습니다. 저는 책의 주요 내용을 정리했을 뿐입니다.. ^^

transient-guest 2017-10-12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고 드는 생각은 사회적인 규범과 법체계는 유가를 개인의 삶은 도가를 바탕으로 잡아보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쓰고 나니 모씨의 극중주의가 떠오르면서 이건 현실적이지 못한 가운데놀이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만...ㅎ

cyrus 2017-10-12 12:39   좋아요 1 | URL
저도 유가와 도가의 장점만 골라서 뭔가 연결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런 작업이 가능하려면 죽을 때까지 동양철학을 공부해야합니다.. ㅎㅎㅎ

sslmo 2017-10-12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은 좋았었는데,
‘탁월한 사유의 시선‘도 앞부분을 읽으면서는 좋다고 설레발을 쳤었는데, ㅋ~.
어느 부분부터 맥이 빠지더라구요.

암튼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꾸벅~(__)

cyrus 2017-10-12 19:10   좋아요 0 | URL
사실 최진석씨의 책을 비판적으로 읽어보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배움이 부족해서 저자의 설명에 설득당했습니다.. ㅎㅎㅎ

임모르텔 2017-10-13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히 읽습니다.... 평소 상선약수 무위자연,,, 이 단어만 남발하며 살던 게름뱅이가 ,,,,
... 요즘들어 노자의 책을 제대로 한번 읽어보고자해서 방황(?)하며 도서관을 헤매었었는데
읽어보고 싶게 만드시네요~ 이 책! ...

cyrus 2017-10-14 16:11   좋아요 0 | URL
최진석 교수의 책을 먼저 읽고 나서 도덕경을 펼치면, 봐도 봐도 보이지 않던 구절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