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자신의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고, 죽은 뒤에도 후세에 전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 발명이다. 사진술(Photography)은 그리스어의 ‘photos(빛)’와 ‘graphien(그리다)’를 합친 단어다. ‘빛으로 대상을 그리는’ 사진의 재현성은 기계가 침범할 수 없을 것 같던 인간의 정신적 표현영역인 예술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 보먼트 뉴홀 《사진의 역사》 (열화당, 2003)

* [절판, No Image] 보먼트 뉴홀 《잠상》 (해뜸, 1995)

* 장 뤽 다발 《사진예술의 역사》 (미진사, 1991)

 

 

 

 

다게르(Daguerre)가 발명한 은판사진이 1839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으면서 사진의 역사가 시작됐다. 1839년은 사진이 공식적으로 탄생한 해로 인정받고 있다. 다게르 이전에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라는 장치를 이용해 사진을 찍듯이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 있었고, 프랑스의 조지프 니엡스(Joseph Niépce)는 1827년에 자신의 집 창밖으로 내다본 풍경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문제는 니엡스의 사진기는 노출 시간이 무려 8시간이나 소요돼 인물사진을 찍기에는 매우 부적합했다. 니엡스는 다게르와 함께 사진술을 개발하기로 협의했으나 동업 계약에 서명한 지 4년 후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홀로 남은 다게르는 연구에 매진해 국가가 공인한 사진 발명가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다게르의 이름을 딴 사진기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은 장시간 노출을 해야 했기 때문에 풍경이 아닌 인물 사진을 찍기 위해선 20분 동안 사람이 움직일 수 없었다.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다게레오타입은 ‘상품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특징지어지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적합한 발명품이다.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의 《서양미술사》가 서양미술사의 고전이라면, 보먼트 뉴홀(Beaumont Newhall)《사진의 역사》서양 사진예술사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뉴홀은 1908년 미국에서 태어났고, 곰브리치는 이듬해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1947년에 영국 국적을 취득했고 1950년에 《서양미술사》를 발표했다). 뉴홀은 하버드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했지만, 뉴욕 현대미술관(MOMA) 사서 및 사진 분야 전문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사진의 역사》 초판은 1937년 뉴욕 현대미술관이 주최한 전시회 <사진 1839~1937> 카탈로그를 통해 발표되었다. 뉴홀은 1982년에 개정, 증보한 5판을 발표했는데, 국역본은 제5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부제가 말하는 ‘현재’는 1980년대를 가리킨다. 2003년에 출간된 중판 번역본부터 부제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편집 방식, 외국어 표기법이 달라졌을 뿐 초판 번역본과 내용이 같다. 뉴홀은 1993년에 세상을 떠났다. 따라서 현재 구할 수 있는 《사진의 역사》 국역본에는 1990년대 사진예술에 대한 내용이 없다.

 

 

 

 

 

《사진의 역사》 국역본 초판(구판)은 ‘열화당 미술선서’ 60번째 책으로 선보였다. 정가는 9,500원. 구판이 나온 지 이십 년이 흘렀는데, 그 사이에 책값이 28,500원 인상되었다. 부담스러운 책값 때문에 헌책방에 전전하면서 구판을 구하지 않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구판에 오류가 있기 때문이다. 구판의 오류를 한 번에 알아보며 스스로 고칠 자신이 없으면 중판을 사는 게 낫다.

 

《잠상 : 사진술의 발견》 은 잘 알려지지 않은 뉴홀의 또 다른 저서이다. 1983년에 발표된 책의 원제는 <Latent Image>다. 잠상(潛像)이란 사진이 인화되기 전 필름 안에 있는 상을 말한다. 잠상은 눈으로 볼 수 없다. 영국의 윌리엄 헨리 폭스 탤벗(William Henry Fox Talbot)이 발명한 칼로타입(calotype)은 잠상을 이용한 사진술이다. 뉴홀은 서문에서 《잠상 : 사진술의 발견》이 ‘사진을 연구한 과학자들의 역사’를 다뤘다고 말했다. 이 책은 다게르, 니엡스, 탤벗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시작된 초기 사진술의 발전 과정을 다루고 있다. 사진 초창기 역사를 심도 있게 설명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알라딘에서 이 책을 검색하기가 쉽지 않다. ‘보먼트 뉴홀’로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잠상 : 사진술의 발견》의 저자명이 영문(BEAUMONT NEWHALL)으로 입력되어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명인 ‘해뜸’과 책 제목 ‘잠상’을 함께 검색하면(‘해뜸 잠상’으로) ‘표지 없는 책’이 나온다.

 

 

 

 

 

장 뤽 다발(Jean Luc Daval)《사진예술의 역사》도 예술매체로서 사용된 사진의 역사를 풍부한 도판과 함께 설명한 책이다. 이 책의 원서 역시 나온 지 꽤 오래됐지만(1973년에 초판 발표, 국역본 저본은 1982년에 나온 제4판이다), 사진술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유용한 책이다.

 

 

 

 

 

 

 

 

 

 

 

 

 

 

 

 

 

 

* [절판] 최인진 《한국사진사 1631~1945》 (눈빛, 1999)

* 최인진, 박주석, 한국사진연구소 《한국사진의 한 세기》 (시각, 2015)

 

 

 

故 최인진 씨는 1978년에 한국사진사연구소를 설립하여 한국 사진 역사 관련 자료를 발굴하는 데 힘써왔다. 그는 2016년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1999년에 쓴 《한국사진사 1631~1945》는 한국 근현대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희귀 사진 자료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책이다. 최 씨는 한국사진연구소 소속 회원들과 함께 《한국사진의 한 세기》를 2001년에 출간했고, 2015년에 개정증보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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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3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23 17:42   좋아요 2 | URL
유레카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저는 죽을 때까지 사진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거예요. 사진이 ‘예술’의 한 장르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사진의 역사를 다룬 책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어요. 청소년을 위한 서양미술사 책이 나오고 있는 상황과 비교하면 사진의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저조합니다.

레삭매냐 2018-01-24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직접 필카 시절에 사진을 찍고
그럴 적에 열화당에서 나온 유명 작가 시리즈를
하나씩 사서 모으던 시절 생각이 나네요.

역시 대가의 사진을 보면 사진 찍는데 도움이
되긴 하는 것 같더군요.

지금은 필카와 다른 디카 그리고 더 진화한
폰카 시절이라 그 때와 비교하기가 그러네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숨도 멈춰 가며 찍던
시절이었네요. 현상 인화까지 배웠을 땐 더더
욱 재밌었군요.

cyrus 2018-01-24 16:35   좋아요 1 | URL
혹시 래샥매냐님은 열화당 전설의 절판본 <카메라 루시다>를 가지고 계십니까? 저는 사진을 찍을 줄 모르지만, 사진을 감상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서 사진 책을 모으게 됐어요. ^^

레삭매냐 2018-01-24 16:41   좋아요 0 | URL
그 전설의 책은 저도 실물도 보지 못했네요 :>
없답니다 -

아마 사진 감상하시는 걸 알게 되시면 직접
사진을 찍게 되실 지도 모르겠네요 ㅋㅋㅋ

cyrus 2018-01-24 18:03   좋아요 0 | URL
한 달에 한번씩 yureka01님을 만납니다. 그 분 따라 다니다보면 저도 사진 찍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ㅎㅎㅎ
 
인종주의에 물든 과학
조너선 마크스 지음, 고현석 옮김 / 이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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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인간의 행동이 선천적인 것이냐 또는 후천적인 것이냐를 놓고 입씨름을 전개했다. 한쪽은 유전이 인간의 행동을 결정한다고 믿는 생물학적 결정론을, 다른 한쪽은 환경 결정론을 주장한다. 생물학적 결정론은 ‘유전적으로 부적합한 자’를 차별하게 되어 인종적 · 계급적 · 성적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악용된다. 역사적으로, 생물학적 결정론을 중시한 사람들은 극단적인 논리를 전개해 왔다. 기득권층은 범죄,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특효약으로 우생학을 주목했다. 환경보다는 유전이 인간 행동을 좌우한다고 전제하면, 하층민을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계층으로 몰아 붙여 그들에게 사회악의 모든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기득권을 수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세계를 휩쓴 우생학은 이제 사이비 과학으로 취급받는다. 반인륜적 인구 정책 입안에 기여한 과학자들의 행보는 과학계의 반성 거리가 됐다. 하지만 과학과 극우 인종주의자들의 은밀한 공생 관계가 과연 사라졌을까. DNA 이중나선구조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James Watson)처럼 인종주의적 편견에 사로잡힌 과학자들은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또, 그들의 발언은 <사이언스> 같은 공신력 있는 학술 잡지에 나오기도 한다. 왓슨은 동성애자로 판명된 태아는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거나 흑인의 지능이 백인보다 떨어진다는 발언 등으로 수차례 구설에 오른 바 있다. 과학자들은 과학에 기생하는 인종주의에 대해서 되도록 말을 아낀다. 상당수 과학자는 과학을 탄탄한 근거를 가진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에 대한 믿음이 컸던 만큼 인종주의가 가져오는 사회적 해악에 대해서 이들은 외면하거나 무관심했다.

 

《인종주의에 물든 과학》(이음, 2017)은 인종주의가 어떻게 ‘정치적 과학’을 만들고 이용했는지 자세히 읽을 수 있다. 《인종주의에 물든 과학》에 실린 내용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19세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인종주의에 대한 논쟁을 담아냈다. 사료로서도 가치가 충분할 정도다. 《인종주의에 물든 과학》을 쓴 조너선 마크스(Jonathan Marks)는 ‘인종’의 의미를 왜곡하고 오용하는 과학자들의 생각과 발언을 문제 삼는다. 과거의 과학자들은 피부색, 눈동자 색, 코의 모양 같은 신체적 특성으로 인종을 구분했다. 그들은 외모의 차이가 지니는 의미를 과장해서 ‘인종’이란 개념을 만들어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인종을 구분할 때 이용하는 기준은 전적으로 외형적인 특징에 바탕을 두고 있다. 두개골의 크기를 재고 인종적 차이를 강조하면서 처음 인종주의를 만든 것이 과학이었다.

 

저자는 검증되지 않은 생물학적 구분으로 인간 본성과 행동을 설명하는 인종주의는 위험천만한 사고라며 경계의 눈초리를 바짝 세운다. 인종주의는 과학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일 뿐이며 그것은 현재의 사회구조를 정당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저자의 비판은 인종주의의 신뢰성을 확보하려고 다윈(Dawin)을 거론하는 인종주의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인종주의에 물든 과학》은 다윈을 사회적으로 악용하는 무리들에게 보내는 고발장이다. 흑인의 후진성을 주장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지금도 과학에 기생하고 있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인종주의를 설파하는 세력들 때문에 진화론이 인종주의를 조장하는 이론으로 오해받는다. 저자는 인간이란 종이 나타내는 놀라운 다양성은 유전정보에 영구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 환경, 즉 문화적 요인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인종주의는 종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종을 분류하면서 ‘차별’을 부여하는 잣대가 된다.

 

지난 세기까지 ‘인종주의가 기생한 과학’은 인간을 차별하고, 다른 민족이나 인종을 배척하는 부정적인 측면으로 치우쳐왔다. 인종주의가 가져온 재앙은 사회와 정책이 과학을 무조건 신봉하고, 또 과학자들이 데마고그(demagogue, 선동가)에 맹목적으로 순종했을 때 그 대가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던 비극이다. 유전과 문화의 복잡하고 긴밀한 상호작용이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 과학자들은 인류의 진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함으로써 대중이 인종주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과학은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특정 민족을 차별하려는 인종주의를 해체하기 위한 방향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인류의 문화적인 측면을 이해하려는 노력까지 과학 활동에 포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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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2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23 14:24   좋아요 0 | URL
히틀러 이전에 고비노라는 사람이 아리아인의 우수성을 주장했어요. 인종주의를 완전히 사라지게 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세력은 인종주의를 이용하거든요. 그들의 악행을 막으려면 인종주의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그에 대한 문제점을 꾸준히 지적해야 합니다.

이하라 2018-01-22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생학이란 것이 하나의 학문으로 인정받던 시기가 있었던 것만으로도 끔찍한데요. 아직까지 인종차별주의와 타인종에 대한 혐오와 폭력 속에 잔재가 남아있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치네요.

cyrus 2018-01-23 14:26   좋아요 0 | URL
일상 속에 인종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는데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아요. 이렇다 보니 인종주의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AgalmA 2018-01-24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 보면 요즘의 DNA 결정론도 인간의 우생학적인 관점의 특성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신경세포 중심주의 뇌과학과 인식 중심주의 철학이 그런 부분에서는 첨예한 대립을 하는 것도 같고요. 이것은 곧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과 같이 취급될 수 있느냐는 문제로까지 연결되죠.

cyrus 2018-01-24 16:12   좋아요 2 | URL
인종주의와 우생학의 영향을 막으려면 과학도 철학, 윤리학, 사회과학 같은 다른 학문과 손잡아야 합니다. ^^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슈트라우스(Strauss)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웅장한 선율과 함께 인류 역사의 새벽을 보여준다. 인류의 조상은 주변의 사물을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문명을 만들어 간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니체(Nietzsche)의 철학을 음표로 풀어낸 곡이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책세상, 2000)

* 아서 C. 클라크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황금가지, 2014)

* 아서 C. 클라크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황금가지, 2017)

* 세스 S. 호로비츠 소리의 과학(에이도스, 2017)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작곡가 이름을 헷갈리는 사람들이 있다. 성이 슈트라우스라서 왈츠의 왕으로 알려진 요한 슈트라우스 2(Johann Strauss II)로 오해할 수 있다. 소리의 과학을 쓴 저자 혹은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번역가도 작곡가 이름을 혼동했다(소리의 과학초판 231).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작곡가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성이 같을 뿐 혈연관계가 아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교향곡으로 잘못 소개하는 글을 종종 보게 되는데 교향시가 맞다. 교향곡과 교향시 둘 다 관현악곡이지만 조금 차이가 있다. 교향곡이 다악장 형식의 기악곡이라면, 교향시는 단일 악장으로 구성된 표제음악이다.

 

 

 

 

 

소리의 과학》 초판 262빈센트 프린스(Vincent Prince)’라는 미국의 영화배우 이름이 나와 있다. 옮긴이의 설명에 따르면 빈센트 프린스는 공포영화 연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런데 빈센트 프린스라는 이름을 가진 미국 영화배우는 없다.

 

빈센트 프린스는 빈센트 프라이스(Vincent Price)’의 오식이다.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서 특유의 목소리와 광기가 느껴지는 눈빛을 가진 프라이스는 공포 영화 전문 배우로 자리 잡았다.

 

 

 

 

 

 

 

그의 독특한 목소리는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명곡 스릴러 뮤직비디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라이스는 뮤직비디오 중반부(유튜브 영상 6분 32초부터)에 나오는 나레이션을 맡았다.

 

 

 

 

 

 

 

프린스하면 마이클 잭슨과 함께 80년대 미국 팝 음악을 주름 잡은 프린스로저스 넬슨(Prince Rogers Nelson)을 빼놓을 수 없다. 프린스는 소울 음악을 대중화시킨 천재 뮤지션으로 평가받는다. 이왕 프린스얘기가 나온 김에 그의 대표곡 퍼플 레인도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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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2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22 15:32   좋아요 0 | URL
‘빈센프 프린스’를 보고나서 책 읽기를 잠시 멈추고, 프린스의 <퍼플 레인>을 들었어요. 그 날 저녁에 비가 내리고 있어서 프린스의 곡이 무척 반갑게 느꼈습니다.

stella.K 2018-01-22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를 아직도 못 본 1인이다.

몇년 전 교회 청년부 홈커밍데이에서 친구를 만난 적이 있어.
거의 20년이 넘었지. 물론 남자고.
그런데 옛날 모습이 거의 없는 거야.
목소리로는 알아 보겠더군.
그 친구 목소리가 부드러운 중저음이었거든.
거기 모인 사람도 목소리 여전하단 칭찬만 자자하더군.
그때 알았어.
사람은 시각에 민감한 것 같아도 실은 청각에 더 예민하지 않을까?
외모는 변하더거든. 목소리는 그거에 비하면 느려.
못 생겨도 목소리 좋고 예쁜 말 쓰면 사람은 끌리게 되어있는 것 같아.

근데 오늘 글은 제목 먼저 생각하고 쓴 글 같다.ㅋㅋ

cyrus 2018-01-23 14:34   좋아요 1 | URL
저는 중저음인데 경상도식 사투리와 험한 말을 써서 그런지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군대에 있을 때 선임이 제 말투와 목소리를 처음 듣자마자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선임 입장에서는 사투리 심한 말투와 중저음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분 나쁘게 느꼈던가 봐요. 그 이후로 목소리 톤을 부드럽게 하고, 사투리를 안 쓸려고 노력했어요. ^^

제목을 정하느라 나름 고민했어요... ㅎㅎㅎ

stella.K 2018-01-23 15:00   좋아요 0 | URL
ㅎㅎ 그 친구는 목포 사람이야.
거의 안 쓰긴하는데 간혹 전라도 사투리가 섞여있지.
남자가 중저음은 낼 수 있지만 부드럽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
그게 또 보면 성격이나 인품하고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
좀 성직자 같은데가 있었는데 교육자 집안이더군.
그제서야 이 친구를 이해하겠더군.
물론 그 친구는 교육자는 아니고 사업해.
독특하긴 하지?ㅋ

cyrus 2018-01-23 15:05   좋아요 0 | URL
목소리는 좋은데 사투리가 심하면 확 깨요. 저처럼요..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8-01-22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빈센트 프린스 읽고는 이거 혹시 프라이스 말하는 거 아니야.. 했는데 바로 지적하시네요...
ㅎㅎ 프린스라니...

cyrus 2018-01-23 14:35   좋아요 0 | URL
오식 덕분에 프린스의 명곡을 듣게 돼서 기분 좋았습니다. ^^

비연 2018-01-22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 책 흥미로와 보려고 머리맡에 두었는데... 오타 수정되었기를 ㅜㅜ

cyrus 2018-01-23 14:37   좋아요 0 | URL
출판사 직원이 이 글을 확인하고 오류를 수정했으면 좋겠어요. ^^

레삭매냐 2018-01-24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보다
왈츠의 제왕 요한 슈트라우스를 더 좋아합니다.

예전에 빈 필의 비엔나 신년 음악회를 즐겨
들었었죠. 요새도 하나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 엠제이보다 프린스가 더 나은 가수
라고 생각합니다.

<퍼플 레인>도 좋지만 국내 금지곡이었던
<Let‘s Go Crazy>나 처음 들었을 땐 변태같다고
싫어했던 <Kiss>야말로 프린스가 가진 똘기를
더 대변하는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키스의 가사는 정말 저질스럽다고 할 정도로
노골적이라서요 ㅋㅋㅋ

아,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프린스의 최고
곡은 <U Got the Look>입니다.

cyrus 2018-01-24 16:36   좋아요 0 | URL
프린스의 곡을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프린스의 곡을 접한 지 얼마 안 된 초보라서 선뜻 무슨 곡부터 들어야할지 몰랐어요. 다른 분들이 추천하는 곡 위주로 들어보려고 해요. ^^
 
소리의 과학 - 청각은 어떻게 마음을 만드는가?
세스 S. 호로비츠 지음, 노태복 옮김 / 에이도스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인간은 언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언어는 대체로 시각과 청각에 의존한다. 대개 사람들은 청각보다 시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시각만큼이나 청각은 훨씬 더 중요하다. 청각은 자신과 타인을 연결하는 하나의 통로다. 청력이 손상되면 단순히 못 듣는 것 이상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나이가 들기 시작하면 청력이 떨어져서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된다. 귀가 어두운 노인들은 주변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켜 마음의 상처를 받기 쉽고, 이들을 모시고 사는 가족들은 대화할 때 크게 소리를 질러야 한다.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소리는 공기를 비롯한 매질이 진동하고 그 진동이 음파로 고막에 전달돼 뇌에서 감지하는 현상이다. 귓바퀴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알고 그 소리를 모아 고막 쪽으로 보내주는 역할을 한다. 소리가 잘 안 들릴 때 손바닥으로 귀를 살짝 모으는 행동은 그런 작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고막은 귀로 들어온 소리의 파동을 효과적으로 울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귀는 어떻게 소리를 듣는 신체기관으로 발달할 수 있었을까?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세스 S. 호로비츠(Seth S. Horowitz)는 ‘청각의 생물학’과 음향 지식을 총동원하여 청각의 진화 과정 파헤친다. 물고기들은 몸통의 측선을 통해 물의 진동 자극에 반응하면서 소리를 듣는다. 인류의 청각은 물고기의 감각기관 측선과 비슷하다는 것이 진화론적 입장이다. 물속에 살았던 초기의 척추동물은 머리에 위치한 반고리관과 이석 기관을 이용하여 진동을 감지했다. 동물들은 복잡한 주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감각 기관을 진화시켰고, 듣기 능력이 향상되자 동물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저자는 소리를 내는 동물들의 첫 등장이 진화 역사를 바꾼 ‘위대한 도약’이라고 말한다.

 

동물과 인간의 청각은 주위의 배경 잡음에 놀랍도록 현명하게 대처하고 있다. 도시에 사는 새는 짝을 찾거나 천적의 위협을 동족에게 알리기 위해 소리를 낸다. 소리가 짝이나 동족에게 잘 전달되려면 새는 배경 잡음 이상의 주파수 영역에 가까운 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대화할 때 특정인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특정인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보다 작더라도 우리는 배경 잡음을 무시하고 그 사람의 소리에만 집중한다. 심리학에서는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를 ‘칵테일 파티 효과’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누구나 원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보고자 하는 것만 눈에 보이며 듣고 싶은 것만 귀에 들린다. 여기까지는 칵테일 파티 효과를 설명하는 심리학자의 입장이다. 저자는 칵테일 파티 효과를 진화생물학 관점으로 분석한다. 초기 인류의 청각 시스템은 언제나 24시간 켜져 있는 경보 시스템과 같다. 초기 인류는 주위 환경이 갑자기 변하거나 적이 출몰하면서 생기는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러므로 소리의 출처가 낯선 것인지 아니면 친숙한 것인지 신속하게 판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끄러운 환경 속에서 특정인의 목소리가 유독 잘 들리는 반응은 진화의 산물이다.

 

오감 중 청각이 감정 유발 효과가 가장 크다. 청각은 인간의 감정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감각이다. 마케팅 기법의 하나인 ‘징글(Jingle)’은 기업이나 상품의 이름을 인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소리나 광고 음악이다. 쉬운 멜로디에 무조건 브랜드명만 반복해 읊조리는 CM 송, 즉 중독성, 또는 세뇌 효과를 노린 CM 송은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소리의 효과를 이용한 것이다. 영화 <조스(Jaws)>의 배경음악은 지금까지도 최고의 영화음악으로 회자된다. 이 배경음악은 물속에서 식인상어가 서서히 등장할 때 흘러나온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서서히 조여 오는 긴장감 넘치는 연출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을 듣고 두려운 감정을 느낀다. 이처럼 소리는 감정을 일으키는 강력한 자극이 된다. 그리고 영화를 보지 않고, <조스> 배경음악만 듣게 되면 자연스럽게 상어가 인간에게 다가오는 무시무시한 상황이 떠올린다. 친숙한 소리만 들려도 정서적 연상 작용이 생긴다.

 

신생아는 엄마의 젖을 빨거나 그저 가만히 안겨 있는 동안 자궁의 끊이지 않는 박동 소리를 듣는다. 그 순간 인생은 소중하다는 것을 느껴진다. 우리는 자신의 심장이 멈출까 봐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이 침묵할까 봐 두려워한다. 청각은 살아남기 위해 진화된 뛰어난 감각이다. 그러니 청각을 가볍게 생각하지 마시라. 우리는 청각을 통해 이 세상뿐만 아니라 좋든 나쁘든 간에 소리를 듣고, 느끼고, 인식한다. 청각은 이 지구상의 모든 존재와 이어주는 ‘귀로 듣는 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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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0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20 19:29   좋아요 0 | URL
저는 음악이 좋으면 반복 듣기를 합니다. 질릴 때까지요. ^^

2018-01-20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0 2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0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21 09:08   좋아요 0 | URL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는 제 성격상 경청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어려울 것 같아요. 제가 경청하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겠어요. ^^

수이 2018-01-23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빌 에반스 오빠 듣는 맛에 사는데 청각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고 있다오. 요즘 그대는 어떤 음악 즐겨 듣는지 궁금하오~

cyrus 2018-01-23 14:39   좋아요 0 | URL
저는 기분 내키는 대로 음악을 들어요. 최신 노래보다는 8, 90년대 국내가요, 팝송 위주로 들어요. 요즘 아바 노래가 제 귀에 꽂혔어요. ^^
 

 

 

 

1863년 마네(Manet)「풀밭 위의 점심」을 살롱에 출품했을 때 이 작품은 ‘역겨운 졸작’으로 평가받았다. 살롱이 외면한 그림은 낙선전에 전시되었다. 그 작품을 본 관람객들은 일상의 광경에 뻔뻔하게 끼어든 옷 벗은 여인에게 야유와 조롱을 보냈다. 마네는 새로운 예술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을 쐈다. 나중에 인상파를 형성하는 젊은 화가들이 모여들자 그는 새로운 예술의 지도자적 존재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기존의 회화 방식에 저항하는 반란자들의 시대를 지켜본 증인들이 있었다. 보들레르(Baudelaire)에밀 졸라(Emile Zola). 그들은 인상주의 미술에서 ‘현대성의 출현’을 감지했다.

 

 

 

 

 

 

 

 

 

 

 

 

 

 

 

 

 

 

 

 

* 보들레르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 (은행나무, 2014)

* 보들레르 《화장 예찬》 (평사리, 2014)

* 보들레르 《보들레르의 현대 생활의 화가》 (인문서재, 2013)

 

 

 

보들레르의 비평문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는 1863년에 발표한 글이다. 이 글이 발표된 1863년은 마네가 「풀밭 위의 점심」을 선보인 역사적인 해이다. 언뜻 비평문 제목만 봐서는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가 누군지 짐작하기 힘들다. 보들레르의 후광을 입은 마네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는 마네가 아니다. 콩스탕탱 기스(Constantin Guys)[1]라는 신문 삽화가를 가리킨다.

 

기스는 그림을 그렸으나 전업 화가로 보기 어렵다. 그는 종군기자로 활동하여 그리스 독립전쟁, 크리미아 전쟁 현장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기스는 전쟁 삽화뿐만 아니라 제2제정기 파리 사회 풍속을 소재로 한 삽화들도 그렸다. 나폴레옹 3세 치하의 제2제정기 파리는 대대적인 도시개발 사업으로 세련된 도시로 거듭나고 있었다. 보들레르는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를 통해 기스의 그림들을 옹호하면서 ‘현대성’의 의미를 주장했다. 보들레르가 말하는 ‘현대성’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현시대의 유행과 풍속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응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들레르는 기스를 ‘관찰자’, ‘소요객(flâneur, 플라뇌르)’, ‘풍속화가’, ‘현상(現狀)의 화가’라고 부른다. 번역하기 까다로운 프랑스어 ‘플라뇌르’는 한량, 산책자를 모두 합친 말인데, 주로 ‘산책자’로 번역된다.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에서는 ‘소요객’으로 번역되었다. 말 그대로 소요객은 마음대로 도시의 거리를 거니는 익명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기스는 자신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의 익명성을 존중한 보들레르는 자신의 비평문에 기스를 ‘G.씨’라고 썼다.

 

기스를 옹호한 보들레르의 비평문은 마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문헌인가? 그렇다. 마네는 동시대의 삶을 그대로 묘사한 ‘현대 예술가’다. 그는 자신이 본 것, 즉 시대의 풍경을 캔버스에 옮겼다. 마네의 시도는 벌거벗은 여신이나 신화 속 영웅의 모습을 그리던 고전주의 화풍에 도전하는 일이다. 그래서 보들레르는 ‘현대성’이 충실히 반영된 마네의 그림을 호평했다.

 

 

 

 

 

 

 

 

 

 

 

 

 

 

 

 

 

 

* 에밀 졸라 《예술에 대한 글쓰기》 (지만지, 2012)

 

 

 

졸라는 보들레르보다 마네를 열렬하게 지지한 사람이다. 그가 쓴 『나의 살롱』이라는 비평문집에 ‘마네’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마네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조명한 전기 『마네』까지 쓸 정도로 마네의 진면목을 세상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마네가 세상을 떠났을 때 졸라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프랑스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의 추도문을 쓰기도 했다. 졸라가 폴 세잔(Paul Cézanne)을 옹호했다가 나중에 그와 사이가 멀어진 작가로 알려졌으나 마네와 졸라와의 친밀한 관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예술에 대한 글쓰기》는 『나의 살롱』, 『마네』 일부를 발췌하여 편집한 책이다. 완역본은 아니지만, 마네의 예술관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비평 선집이다.

 

졸라는 그림의 주제를 찾기 위해 애쓰고 분석하는 비평을 반대했다. 보수적인 살롱 심사위원은 고전적 아름다움을 간직하면서도 그 속에 교훈을 읽을 수 있는 그림들을 선호했다. 살롱 심사위원이 보고 싶은 교훈은 ‘그림의 주제’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화가들은 ‘옛 것’을 선호하는 심사위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신화와 전설에서 그림의 주제를 찾았다. 그런데 졸라는 옛 것을 답습하는 틀에 박힌 그림과 그것을 감상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졸라는 환상적이면서도 과장된 신화와 전설이 아닌 ‘진실한 삶의 현장’에서 그림의 주제를 찾아야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작은 기교들, 대중의 관심을 끌려는 아부성 주제들, 교훈적이거나 대중과 친밀해지려는 의도가 농후한 작품들, 어느 유명인의 위업을 강조하기 위한 역사적 과장이나 또는 지나치게 미화된 몽상 등과 같은 작품들을 가장 경멸한다. 반면 나는 개성을 보여주는 작품들, 독창적이고 힘찬 손에서 태어난 작품들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낸다. (『나의 살롱』 ‘예술의 시점’ 편, 56쪽)

 

 

졸라가 말하는 ‘개성 있는 작품들’이란 동시대 삶의 진실을 포착하여 캔버스에 담은 그림들이다. 마네와 인상파 화가들은 일상생활 범위 안에서 만나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과 풍경을 즐겨 그렸다. 인상파 화가들은 동시대인들의 평범한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렸으며 이 그림을 감상하면서 특별한 주제나 의미를 찾는다는 건 난센스이다.

 

 

 

 

 

 

 

 

 

 

 

 

 

 

 

 

 

* [절판] 줄리 마네 《인상주의, 빛나는 색채의 나날들》 (다빈치, 2002)

* 아르망 푸로 《인상주의의 숨은 꽃, 모리조》 (글항아리, 2009)

 

 

 

여성의 개인적인 일상생활을 즐겨 그린 베트르 모리조(Berthe Morisot)는 보들레르와 졸라의 예술관 모두에 부합하는 화가이다. 보들레르의 '현대성'과 졸라의 '세상의 진실'이라는 예술적 관점에서 모리조의 그림을 본다면 개성이 넘치고 정감이 가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모리조는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현대성, 즉 사적 영역으로 치부되는 동시대 여성의 생활상을 세밀하게 재현했다. 또 그녀는 그림의 소재가 되지 못했던 여성의 가사 노동에 주목했다. 마네, 모네(Monet)가 새롭게 변모하는 ‘도시의 세련미’를 발견했듯이 모리조는 남성 인상파 화가들이 주목하지 못한 ‘일상의 소박미’를 발견했다.

 

 

 

 

 

 

 

 

 

 

 

 

 

 

 

 

 

모리조는 대단한 일이 아닌 것들도 그림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진실한 삶의 현장’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아주 사소한 일상, 어머니가 잠자는 아기를 바라보는 장면 같은 것도 그림의 소재가 되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아주 사랑스러운 ‘삶의 진실’이다.

 

 

 

 

 

 

 

 

 

 

 

 

 

 

 

* 제프리 마이어스 《인상주의자 연인들》 (마음산책, 2007)

 

 

섬세하고 난해한 모리조의 작품은 페미니즘 평론가들에 의해서만 과대평가되었고, 나머지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과소평가되었다. 역사적인 맥락이나 극적 긴장, 서사적 의미 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그녀의 작품이 마네의 작품보다 더 심했다. 또한 그녀의 작품은 그림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보게끔 보는 이들을 자극하지 않는다. (제프리 마이어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인상주의 연인들》을 쓴 제프리 마이어스는 인상파 그림, 특히 모리조의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인상파가 지향하는 예술관인 ‘현대성’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보수적인 평론가들은 모리조를 과소평가했다. 보들레르와 졸라가 눈여겨본 인상파의 특징을 이해한다면 모리조가 왜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하는 화가인지 알 수 있다.

 

 

 

 

 

[1] 어떤 책에서는 ‘콩스탕탱 기’라고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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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8-01-19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밀 졸라의 <나나>를 너무 어려서 읽어서 줄거리만 따라가는 수준이었는데, 이렇게 미술사에서 세잔과 얽혀서 소개되거나 에밀 졸라를 이야기한 글들 보면 정치의식이 특별했던 작가인가보네요. 늘 좋은 글 배우며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cyrus 2018-01-19 17:34   좋아요 0 | URL
별 말씀을요. 제 글에 배울 게 1도 없습니다. 그냥 ‘이런 내용이 있구나’하고 보셨으면 합니다. 졸라가 유태인 드레퓌스의 누명을 벗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졸라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습니다. ^^

2018-01-19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19 17:37   좋아요 0 | URL
가까이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라는 삶의 교훈이 틀린 말이 아니에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만 너무나 쉽게 잊어버립니다.

깐도리 2018-01-20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나나를 읽었는데, 그 이후 에밀졸라의 생에 대해 관심 가지게 되었어요...

cyrus 2018-01-20 19:35   좋아요 0 | URL
졸라의 생애를 다룬 전기나 평전이 있을 텐데 국내에 번역되지 않아서 아쉬워요. 졸라와 작가들(모파상, 위스망스)와의 관계를 자세히 알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