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독서 모임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4월의 세계 문학





오에 겐자부로

서은혜 옮김

 《개인적인 체험

현대문학 

2009







2025년 4월 25일 금요일

저녁 8시~10시 45분

장소: 인더가든



<4월의 세계 문학>을 만든 독자들

정현정(진행), 조약돌김성현

천성은최승민, 최해성(모임 후기 엮은이)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의 장편소설 개인적인 체험은 독자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흐릿한 이야기가 흐르거든요오에와 아들 히카리(大江光)의 관계를 조명한 책을 쓴 영국의 언론인 린즐리 캐머런(Lindslry Cameron)개인적인 체험》이 내용상 심각한 책이지만, 매우 재미있어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절판] 린즐리 캐머런정주연 옮김 빛의 음악장애 아들을 작곡가로 키운 오에 겐자부로의 이야기》 (이제이북스, 2007)




소설 주인공 버드(Bird)는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남편입니다. 뇌에 이상이 있는 아기를 살려야 말지 외롭게 고민하는 와중에 옛 여자 친구 히미코(火見子)를 만납니다. 두 사람이 만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버드의 성적 욕망도 솟아오릅니다대부분 독자는 작가의 지나친 성적 묘사가 상당히 거슬린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캐머런은 가차 없는 솔직함이 이 책의 눈에 띄는 매력이며 오에의 작품과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구별 짓는 요소라고 말하네요.


개인적인 체험을 추천한 <세속> 독자 정현정 님은 이 어려운 책을 어떻게 봤을까요? 속독하면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천천히 읽으면 생각 덩어리가 많이 나오는 책이라고 말했습니다여섯 명의 <세속> 독자들은 각자 머릿속에 안고 온 소설에 관한 생각 덩어리들을 하나둘씩 꺼내보았습니다.


조약돌 님은 소설 밖에 있는 이야기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버드와 아내의 관계가 상당히 부자연스럽고, 친밀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궁금한 것이죠. 결혼은 자유의 무덤이에요. 버드는 불편한 진실을 모르고 결혼한 것일까요? 아니면 알면서도 결혼한 것일까요?
















* 이상희 인류의 진화: 아프리카에서 한반도까지, 우리가 우리가 되어 온 여정(동아시아, 2023)




약돌 님은 여행하기 쉽지 않은 아프리카에 버드가 왜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지 궁금했습니다약돌 님이 던진 질문을 받은 천성은 님은 아주 흥미로운 견해를 제시해 주셨는데요, 최초의 인류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아프리카입니다지금도 여전히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진화론자와 진화인류학자들은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는 학설을 지지합니다버드가 꿈꾸는 아프리카는 단순히 미지의 여행지일 수 있고요, 성은 님의 진화론적 관점이 투영된 아프리카는 진정한 나(개인)의 정체성이 시작된 집과 고향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시간이 쏜 화살에 맞습니다. 현실에서 미래로 거침없이 나가는 시간의 화살. 우리는 오직 한 방향으로만 가는 시간의 화살에 관통당한 채 살아갑니다. 화살 방향을 절대로 바꿀 수 없듯이 과거를 그리워해도 돌아갈 수 없어요. 버드의 아프리카는 현재보다 자유로웠던 과거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최승민 님은 소설에서 반영된 당시 일본의 시대 상황을 이해하고 싶어서 ChatGPT를 이용하면서 책을 읽었다고 했습니다. ChatGPT로 소설과 작가와 관련된 정보를 빠르게 찾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미리엄 실버버그, 강진석 · 강현정 · 서미석 옮김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 근대 일본의 대중문화(현실문화, 2014)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4년 7월의 세계 문학]

에도가와 란포김소연 옮김 에도가와 란포》 (손안의 책, 2021)


* 박경리 일본산고: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 박경리 유고 산문(다산책방, 2023)




개인적인 체험에는 성적 묘사와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종종 나옵니다. 캐머런이 말한 것처럼 웃긴 장면도 있습니다. 저는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초반 근대 일본에 유행하기 시작한 문화 양식 에로 그로(테스크) 난센스의 취향이 이 소설에 묻어나 있다고 느꼈어요에로 그로 난센스는 야하고, 엽기적이고, 우스운 것을 뜻합니다에로 그로 난센스가 넘치는 192, 30년대에 활동한 작가 중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인기를 얻었고, 동시에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가가 바로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입니다.


김성현 님은 토요일 아침에 하는 독서 모임 <고라니 울고>의 모임장입니다(현정 님과 승민 님도 <고라니 울고> 소속 회원입니다). 성현 님은 <고라니 울고> 선정 도서로 읽었던 박경리의 산문 일본 산고의 내용 일부를 언급하면서 개인적 체험에 스며든 일본인의 인생관을 짚어주었습니다.


일본 산고토지를 쓴 작가가 쓴 일본 문화론입니다. 박경리반일 작가로 유명합니다. 이 책은 작가 사후에 나온 미발표 원고를 묶은 것입니다. 작가의 원고 속에 일본 문화에 대한 자신의 소회가 담겨 있는데요, 작가가 보고 느꼈던 일본인들은 내세관이 희박해서 유한을 잘 소화하는 민족입니다. 일본 민족 종교는 샤머니즘인데, 일본의 신은 내세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의 정서에 어둡고 캄캄한 허무주의가 배어 있습니다허무주의에 짓눌린 일본인들은 체념에 빠져 자살을 선택합니다. 모든 일본인이 현실적 고통에 벗어나기 위해 극단적인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극단적인 취향을 마음껏 즐기면서 현실의 고통을 애써 잊으려고 하죠. 저는 이 극단적인 취향’이 만든 일본 특유의 문화가 바로 에로 그로 난센스라고 생각해요.


개인적 체험의 버드는 절망적인 현실(장애인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과 불투명한 미래(아프리카 여행) 사이에 껴서 괴로워하는 인물입니다. 버드는 혼자만의 고통을 잊기 위해 에로스에 집착하고 있어요. 승민 님이 말씀하신 대로 성적 욕망과 에로티시즘이 가득한 히미코의 집은 버드의 유일한 도피처입니다.


개인적 체험은 히카리가 막 태어났을 때 쓴 작품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인지하면서 읽는 독자는 당혹스러울 것입니다. 버드를 작가와 동일시한 독자는 아내에 무심하고, 옛 여자 친구에 매달리는 버드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개인적 체험》을 읽고 실망한 독자는 작가를 오해하게 되고, 오에 겐자부로는 한순간에 오해 겐자부로가 됩니다.
















* 헨리 나우웬, 김명희 옮김, 아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IVP, 2022)




현정 님은 가톨릭 사제이자 신학자인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의 책 아담: 하나님이 사랑하신 자을 읽은 이후로, 장애를 둘러싼 편견을 스스로 되돌아볼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담19962월에 세상을 떠난 장애 청년 아담 아네트(Adam Arnett)를 가리킵니다. 헨리 나우웬은 아담의 삶을 회상하고, 아담을 만나면서 느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의미를 발견합니다아담이 세상을 떠난 지 7개월 후에 헨리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아담의 이야기가 사라질 뻔했어요다행히 헨리와 친분이 있는 종교인들과 아담 유가족의 보살핌을 받은 유고는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었습니다.


헨리는 장애인의 삶에 헌신하도록 당신을 자극한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물으면, 항상 아담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헨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누구인지 등등 종교적 질문을 하면 거기에 빛을 비춘 사람이 아담이었다고 말합니다. 헨리에게 아담은 자신을 새롭게 태어나게 만든 존재였습니다.







오에는(히카리)이 없었으면 자신은 소설가로 살아가지 못했다고 말합니다히카리는 오에가 소설을 쓸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존재입니다.



 나는 당황과 혼란 속에서 출생신고서와 사망신고서를 함께 준비하며 직관적으로 그 아이의 이름을 히카리()라고 지었다. 나의 직관은 옳았다. 그 아이의 존재는 내 의식의 밝은 면뿐만 아니라 어둡고 깊은 곳까지 구석구석 밝혀 주었으니 말이다.

 

(빛의 음악중에서, 12)

 


개인적인 체험은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없고, 애매한 소설인 것은 맞아요. 하지만 어둡기만 하고, 칙칙하고, 혼란스러운 소설은 아니어요. 작가와 버드를 무조건 일치시켜서 바라보는 독서는 오해 겐자부로를 만날 수 있어요. 진짜 오에 겐자부로를 제대로 만나려면 개인적인 체험만 봐서는 안 됩니다. 빛(히카리)이 성장할수록 오에의 문학은 성숙해졌습니다. 개인적인 체험》 이후에 나온 소설들을 꾸준하게, 천천히 읽으면 빛나는 오에를 만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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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4-28 07: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천천히 읽으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책, 같은 생각입니다. 오에 겐자부로의 책 중 가장 좋았습니다.

cyrus 2025-05-01 09:19   좋아요 1 | URL
소설 속 인물들은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되게 독특했어요.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데요... ㅎㅎㅎ 그날 독서 모임에 오신 분들이 어려운 책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제가 추천한 책은 아니지만... ^^;;).
 
이데올로기 브레인 - 우리 안의 극단주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레오르 즈미그로드 지음, 김아림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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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이데올로기(Ideology)는 지저분하다. 이 작은 단어에 인류의 머리에서 태어난 생각들이 무수히 들러붙어 있다. 민주주의, 자본주의, 자유주의, 보수주의, 진보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페미니즘, 파시즘, 제국주의, 종교[주1] 등등이 있다


이데올로기는 갈수록 더러워지고 있다. 여기에 마음씨 고약한 극단주의까지 엉겨 붙어 있다. 극단주의는 다른 생각에 기생한다. 극단주의는 생각의 영양분을 모조리 빨아 먹는다. 영양가 없는 민주주의가 방심하면 전체주의로 변한다. 비실비실한 겁쟁이 자유주의는 멸공의 횃불을 휘두르는 반공주의 전사가 된다. 지나치게 격렬한 페미니즘은 자신과 다른 페미니즘들을 무시한다.


민폐를 끼치는 극단주의가 싫은 사람들은 칠칠치 못한 이데올로기를 피하고 싶어 한다단어를 입에 꺼내기 싫을 정도다하지만 이데올로기와 멀찍이 떨어져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먹고 마신다.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뇌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과 물이다. 이데올로기를 먹으면서 자란 뇌에서 이데올로기가 다시 태어난다개인적인 뇌는 이데올로기적이다(The personal brain is the ideological)이데올로기에 단 한 번도 물들지 않은 순결한 뇌는 절대 없다.








이데올로기 브레인: 우리 안의 극단주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이데올로기를 먹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다양한 맛의 이데올로기를 먹는 우리 모두를 위한 책이다뇌는 한 번 맛본 이데올로기의 맛을 절대로 잊지 못한다. 이데올로기적 뇌는 고프다. 먹어도 먹어도 이데올로기를 자꾸 먹고 싶어 한다. 뇌는 고립된 상황을 싫어한다. 외로움을 잘 느끼는 사람은 관계를 갈망하고, 소속감을 느껴야 만족한다. 이데올로기는 인간관계를 이어주는 힘이면서도 이데올로기가 비슷한 사람들을 똘똘 뭉치게 만드는 힘이다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집단은 이데올로기 맛집이다.


이데올로기를 과식한 뇌는 뚱뚱하지 않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를 소화(학습)할수록 뇌는 점점 딱딱해진다. 이데올로기에 푹 젖은 생각도 딱딱하다. 이런 사람의 사고방식은 경직되어 있다. 경직된 뇌는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숙고하는 힘을 잃어버린 이데올로기적 뇌는 편견에 취약하며 음모론을 쉽게 받아들인다. 이데올로기적 뇌는 독단주의자와 극단주의자를 만든다.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한 사람의 몸과 정신도 경직되어 있다. 독단주의자는 자신과 다른 생각뿐만 아니라 불안정성, 모호함, 다양성도 거부한다. 이데올로기로 굳어진 독단주의자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데올로기 브레인우리의 뇌에 스며든 이데올로기가 신체 행위에 미치는 영향을 신경과학적 관점으로 설명한다. 뇌는 이데올로기를 절대로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먹으면서 자신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만든다. 이데올로기적 뇌를 이해하기 위한 과학은 독단주의와 극단주의에 맞서는 정치학의 든든한 동지다.


이데올로기에 맛 들인 이상, 우리 뇌에 흡수된 이데올로기를 빡빡 닦아서 지우기 힘들다. 그러나 뇌는 이데올로기에 쉽게 통제당하는, 나약한 기관이 아니다. 사람의 뇌 구조는 모두 다 같지 않다. 어떤 사람의 뇌는 이데올로기의 맛에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또 다른 사람의 뇌는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검증한다. 뇌는 외부 환경과 경험에 따라 학습하고 변화한다. 이러한 뇌의 특성을 뇌 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고 한다.


우리의 뇌와 몸속에 들어온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피가 되고살이 된다이데올로기는 유유히 걸어 다닌다. 살아있는 이데올로기를 온몸으로 거부할 수 없다.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알고 먹어야 한다. 회의주의적 태도와 비판 없이 다른 사람이 주는 이데올로기를 넙죽 받아먹어선 안 된다. 이데올로기 브레인은 우리에게 이데올로기에 벗어나는 삶을 상상해 보자고 제안한다. 뇌의 건강을 위해서 우리 각자가 이데올로기 필터(filter)를 설치해야 한다. 이데올로기를 먹고 소화했으면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방해하는 것을 걸러내고 뱉어내야 한다



다 같이 먹은, 이 더러운 이데올로기를 함께 토해야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성토(聲討)해야 한다.







<cyrus가 만든 주석>




[1] 이데올로기 목록에 종교가 포함된 것에 따지고 싶은 분은 마르크스(Karl Marx)엥겔스(Friedrich Engels)에게 직접 따지시길.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를 거짓되고 추상적인 허위의식(Falsches Bewußtsein)’이라고 했다. ‘허위의식은 엥겔스가 만든 용어다. 마르크스는 종교 또한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했으며 자신이 쓴 글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 그 유명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문장을 남겼다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은 헤겔 법철학 비판》(칼 마르크스, 강유원 옮김, 이론과실천, 2011년, 절판)에 수록되어 있다.





 

* 199





 신경과학자들에게 알려진 가장 유명한 유전자 중 하나가 카테콜-O-메틸기 전이효소 유전자이다. 줄여서 ‘COMT’라고도 한다. 1958년 노벨상 수상자인[2] 줄리어스 액설로드가 발견한 COMT 유전자는 전전두엽 피질의 도파민 수치를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준다.

 

 

[2] 1958년은 줄리어스 액설로드(Julius Axelrod)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연도가 아니라 COMT 유전자의 존재를 처음 발견한 해. 액설로드는 1970년 노벨상 수상자.





* 207




 

 과학자들은 어떤 유전적 효과에 대해 말할 때 

후성유전학epigenetic 효과[3]도 함께 주시한다.

 




[3] ‘epigenetic’후성유전적이라는 뜻의 형용사다. ‘epigenetic’ 뒤에 ‘s’를 붙이면 후성유전학을 뜻하는 단어가 된다. 원서에 있는 해당 단어를 확인하지 않았지만, 원문이 ‘epigenetic effect’라, ‘후성유전적 효과로 번역해야 한다. (참고문헌: 리처드 C. 프랜시스, 김명남 옮김, 쉽게 쓴 후성유전학: 21세기를 바꿀 새로운 유전학을 만나다시공사, 2013)





책 본문에 언급된 다른 저자들의 책은 국내 번역본 제목이 적혀 있다

그러나 책 끝에 있는 <>의 참고문헌들은 원제만 있다.

 



* 22




 

 조지 오웰에 따르면, 정치적 언어는 거짓말이 진실처럼 들리고, 살인이 그럴듯해 보이며, 가벼운 마음도 견고한 겉모습을 갖는 것처럼 보이게 설계되었다.”[주4] 우리는 사람이나 생각을 무 자르듯이 깔끔하게 각각의 범주로 나누어 명확성을 높이고 어떤 정체성을 씌우려고 한다.






[주4] 조지 오웰, 정치와 영어(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 1946). 이한중 옮김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 2010)에 수록되어 있다(이데올로기 브레인》에 인용된 문장은 276쪽에 나온다).





* 148~149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제안한 것처럼, 이데올로기 공동체에서 삶은 일련의 아름다운 삶의 실험[주5]이 아니라 엄격한 프로토콜과 같다.






[5] 존 스튜어트 밀, 서병훈 옮김, 자유론 (책세상, 2005, 구판 절판). 110.





* 257




 

 몸과 관련된 문제에 결벽증이 있는가? 정치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다! 이것은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다음과 같은 주장과 비슷하다. 인류 역사 내내, 스스로의 동물성과 도덕성을 두려워하고 증오한 지배 집단이 그것들을 체화하는 집단과 개인을 배제하고 주변화하고자 혐오를 사용했다.” [6]





[6] 마사 누스바움, 조계원 옮김, 혐오와 수치심: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민음사, 2015).





* 260





 현상학의 창시자 에드문트 후설은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주7]


[7] 에드문트 후설, 이종훈 옮김, 순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한길사, 2022).





* 295




 

 소설가 조지 엘리엇은 이렇게 말했다. 단지 은유 하나를 바꾼 것만으로도 놀랄 만큼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8]

 




[8] 조지 엘리엇, 이봉지 · 한애경 옮김,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민음사, 2007).





* 308~309




 

 마르티니크섬 출신의 철학자 프란츠 파농흑인을 대상으로 한 백인의 시선에 대해 이렇게 썼다. [9]

 


[9] 프란츠 파농, 노서경 옮김, 검은 피부, 하얀 가면 (문학동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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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베토벤인가
노먼 레브레히트 지음, 장호연 옮김 / 에포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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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4점  ★★★★  A-

 








귓속에 바이러스가 들어 있다. 여러분! 귓속에 바이러스가 살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귀에 기생하는 음악 바이러스



귀 벌레(earworm)는 음악 바이러스의 매개체다. 귀 벌레는 사람들이 즐겨 듣는 노래에 달라붙어 있다. 달팽이관으로 들어간 귀 벌레는 음악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음악 바이러스가 뇌를 침투하면 머릿속에 멜로디가 계속 맴도는 증상이 일어난다.








음악은 다양하고, 지금도 계속 확장되고 있다. 그런 만큼 음악 바이러스의 종류도 많으며 질긴 생명력을 가졌다. 가장 유명한 음악 바이러스는 베토벤 바이러스(Beethoven Virus)이다. 2000년에 처음 나온 클래식 음악 바이러스로, 베토벤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8비창’> 3악장의 변이체(변주곡)다. 베토벤 바이러스가 많이 나타나는 곳은 오락실이다펌프라는 이름이 더 유명한 댄스 리듬 게임 <Pump It Up>을 하면 베토벤 바이러스를 들을 수 있다.


멜로디가 뇌에 잘 꽂히는 사람은 음악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쉽다. 멜로디가 반복해서 들리면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다. 우리를 괴롭히는 단점 하나만 빼면 음악 바이러스에 좋은 점이 훨씬 많다.


영국의 클래식 음악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Norman Lebrecht)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바이러스보균자. 그는 말러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썼으며, 2010년에 쓴 왜 말러인가?: 한 남자와 그가 쓴 열 편의 교향곡이 세상을 바꾼 이야기(Why Mahler?, 이석호 옮김, 모요사, 2010년)가 국내에 번역되었다.


2020년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었다. 세계의 모든 음악인이 베토벤의 곡들을 연주해야 할 그해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를 집어삼켰다연주회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음악인들의 악기는 침묵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습격에 쓰러진 음악인들의 부고까지 들려오자, 레브레히트는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마음이 약해진 그를 다독여준 것은 베토벤의 음악, 베토벤 바이러스였다.


베토벤 바이러스를 받아들인 레브레히트는 말러에 이어서 베토벤의 삶과 음악을 톺아본다왜 베토벤인가(Why Beethoven)는 전 세계 음악인들의 귓속에 살고 있는 불멸의 베토벤 바이러스를 소개한 책이다이 책은 100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마다 베토벤의 곡들과 그 곡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베토벤의 대표작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범작들과 졸작이라 불리는 작품들도 나온다. 저자는 젊은 시절에 클래식 음반을 수집했다. 명반(名盤)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베토벤 연주곡 음반들뿐만 아니라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그래도 들어줄 만한 음반들을 소개한다오랫동안 귓속에 베토벤 바이러스를 달고 살아온 클래식 음악광과 베토벤의 음악을 제대로 듣고 싶은 입문자 모두에게 유용한 정보다.


위인전에 갇힌 베토벤은 음악 천재. ‘위인 베토벤은 어린 독자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지 않는다. 결국 어린 독자들은 그가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 아닌 음악인으로서 힘들게 살아온 과정을 읽는다. 위인전에 베토벤의 작품들, 그중 가장 유명한 대표작들의 제목만 언급된다. 그러나 작품들은 작곡가의 천재적인 능력만 돋보여주는 장식품으로 전락한다. 따라서 위인전은 베토벤의 생애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간혹 사실과 다른 내용을 덧붙여서 쓰는 위인전 지은이도 있다.


왜 베토벤인가는 베토벤 전기(傳記)저자가 다시 만난 베토벤은 천재 베토벤이 아니다.음악 바보 베토벤이다평생 음악만 바라보면서 살아온 베토벤. 음악과 동거한 베토벤의 방은 지저분했다. 음악을 껴안은 베토벤은 소변이 가득한 요강을 비우는 것을 잊었다베토벤은 반권위주의자. 그는 귀족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음악을 만들지 않았다. 베토벤은 반전통주의자. 그는 오랫동안 유행한 작곡 형식을 거부했다. 베토벤은 기존의 형식에 벗어난 멜로디를 만들었다전통적인 멜로디에 익숙한 당대의 음악인들은 베토벤의 곡이 귓속을 거칠게 문지르는 소음으로 느꼈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곡(<엘리제를 위하여>, <월광>, <비창>)을 제외한 베토벤의 음악은 감상자뿐만 아니라 연주자들도 대단히 어려워한다


레브레히트는 독자와 감상자들을 위해 베토벤의 음악이 어려운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한다왜 베토벤의 음악은 어려운가? 베토벤은 혼돈의 음악을 제대로 만들려고 했다. ‘조화로운 음악은 대부분 화려하고, 감상자를 편안하게 해준다. 이와 정반대인 혼돈의 음악은 거칠다연주 중간에 나와서는 안 되는 악기의 소리가 갑자기 튀어나올 때가 있다감상자는 다음에 어떤 멜로디가 나올지 예상할 수 없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음악인들이 사랑하는 음악 바이러스다연주자들의 숙원은 베토벤의 곡을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이다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는 베토벤이 만든 9개의 교향곡을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했다. 바흐(J. S. Bach)<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로 천재 피아니스트로 급부상한 글렌 굴드(Glenn Gould)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을 카라얀(Karajan)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마력은 문학과 미술에도 뻗어 있다음악 바이러스는 작가들의 펜에 침투하여 한 편의 문학으로 다시 태어난다. 톨스토이(Tolstoy)는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에 영감을 얻어 동명의 소설을 썼다. 앤서니 버지스(Anthony Burgess)는 소설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교향곡 9번 합창’> 피날레 환희의 송가를 끔찍한 폭력의 송가로 만들었다.






 18974, 구스타프 말러가 빈 국립 오페라단에 입성한 그 주에 구스타프 클림트는 반항적인 예술가들을 모아 빈 분리파 운동을 시작했다. 5년 뒤에 클림트는 황금 지붕을 얹은 분리파 건물을 지어 전시회를 열었다. 막스 클링거의 베토벤 조각상(영웅적이고 옷을 거의 다 벗은 모습)이 중앙 홀에 놓였고, 벽 위쪽에 그려진 벽화에는 황금 갑옷을 입은 기사가 보이는데 용모가 영락없는 말러다.

 

(301)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는 베토벤 사망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02년에 벽화 <베토벤 프리즈>(The Beethoven Frieze)를 그렸다.


감상자를 압도하는 베토벤의 음악은 독재자를 미화하거나 찬양하는 곡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대중은 베토벤의 음악을 오해했고, 베토벤의 반권위적인 참모습을 알지 못했다. 왜 베토벤인가는 독자와 음악광들을 향해 대단히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왜 베토벤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가? 그 답은 이 책 속에 있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절대로 해롭지 않다

음악 바이러스는 잘못이 없다

음악을 곡해하는 나쁜 귀(bad ear)가 달린 사악한 인간, 

악귀(bad ear)가 달린 악귀(惡鬼)가 음악을 오염시킨다

그들의 귓속에 음악은 없다. 귓속에 ()이 들어 있다.







<cyrus가 만든 주석>








초판 1쇄 발행 2025328[1]



[1]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날짜는 326일이다.





* 37





 마르셀 프루스트는 할머니가 연주하는 <비창>을 듣더니 이 곡을 베토벤 소나타의 스테이크와 감자라고 했다. [주2]


[주2] <비창>이 언급된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글은 존 러스킨(John Ruskin)의 책 참깨와 백합서문, <독서에 관하여>. <독서에 관하여>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유정화 · 이봉지 옮김, 민음사, 2018)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유예진 옮김, 은행나무, 2014)에 수록되어 있다.






 “박식한 요리사일지는 몰라도 감자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는 제대로 할 줄 모르는군요.” 감자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 단순하기 때문에 도리어 매우 어려운 이 요리는 요리 경연의 이상적인 주제로요리의 비창」 소나타이며[생략]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중에서, 138)


 “박식한 요리사일지는 몰라도, 그녀는 사과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는 할 줄 모르네요.” 사과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 단순하다는 자체로 어려운 이 요리는 바로 그 때문에 요리대회 경연에 이상적인 음식이고, 요리 분야의 <비창 소나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으며, [생략]

 

(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중에서13)



스테이크와 감자의 프랑스어 원문은 ‘Le bifteck aux pommes’. 두 책의 번역문이 다르다. ‘pomme’는 사과와 감자를 뜻하는 단어.






* 58




 

 체코에서 태어나 크로아티아에서 자란 알프레트 브렌델은 1951년 빈에서 프란츠 리스트의 <크리스마스트리 모음곡>으로 음반 데뷔를 했다[주3] 미국 음반사 복스-턴어바웃이 빈 필하모닉을 가짜 이름을 내세워 고용하고는 브렌델을 데리고 베토벤의 피아노곡 전곡 녹음에 나섰다.


[주3] 이 책에 언급되지 않은 한 가지 사실. 복스-턴어바웃(Vox turnabout)에 고용된 알프레트 브렌델(Alfred Brendel)이 첫 번째로 녹음한 곡은 프로코피예프(Sergei Prokofiev)<피아노 협주곡 5G장조 op. 55>이다. 이 곡은 브렌델의 첫 음반이 발매되기 일 년 전인 1950에 녹음되었다.






* 160~161

 

 베토벤이 매독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책들이 있다. 하지만 그가 매독으로 고생했다는 임상적 증거나 부검 증거는 거의 없다는 것이 최근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주4]






[주4] 이미 반증되었고, 근거가 빈약하지만 베토벤이 매독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학자의 견해를 비교해서 읽어보기를 권한다. 참고문헌: 데버러 헤이든, 이종길 옮김, 매독(길산, 2004)





* 286




 

 제러미 덴크[주5]농담이 섞인 진지한 작품이 아니라 () 곡 전체가 웃음바다이며 웃음이 곡의 핵심이라고 느꼈다.






[주5] 제러미 덴크(Jeremy Denk)는 미국의 피아니스트다. 작년에 그가 쓴 책 이 레슨이 끝나지 않기를: 피아니스트 제러미 덴크의 음악 노트(장호연 옮김, 에포크)가 출간되었다이 책의 부록은 제러미 덴크가 추천하는 플레이리스트 목록이다. 이 목록에도 베토벤의 명곡들이 포함되어 있다.

 






* 451




 

 베토벤은 아르놀트 쇤베르크처럼 숫자에 신경 쓰지 않았다. [주6]


[주6] 쇤베르크(Arnold Schonberg)는 불길한 숫자로 알려진 13을 무척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13일에 태어난 것을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13 공포증이 심한 쇤베르크는 악보에 쪽수를 적을 때 13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쇤베르크는 713일 금요일에 세상을 떠났다.





* 482





 웨일스 시인 딜런 토머스가 말한 빛의 스러짐” [주7]


[주7] 빛의 스러짐(The dying of the light)’이 나오는 딜런 토머스(Dylan Thomas)의 시는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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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예스카스 2025-04-22 1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멋진 후기를 남겨주시다니!
장바구니 고민은 끝입니다^^

cyrus 2025-04-27 22:57   좋아요 0 | URL
생김새는 벽돌 책이지만, 베토벤의 삶과 작곡 비화, 베토벤 연주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어서 어렵지 않을 거예요. ^^
 




전망 좋은 []

 

EP. 29






<인스크립트> 1막

(2025년 2월 1일 토요일)




2023624일, 연희동에서 연극 놀이(play)를 시작했던 희곡 가게 <인스크립트>222일 토요일에 막을 내렸다.


<인스크립트>의 폐막은 1월 중순에 이미 알고 있었다. 1월 중순 토요일에 방문했을 때 <인스크립트> 부부 주인장의 남편 권융스크립트역을 맡고 있는 권주영 배우님이 희곡 놀이터를 지키고 있었다. 권 배우님은 나에게 <인스크립트> 영업 종료를 미리 알려주셨다.




































연희동 <인스크립트>를 마지막에 방문한 날은 21일 토요일이었다. 이날이 지나면 연희동에 갈 일이 없고, <인스크립트>를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가게 앞모습과 가게 주변 골목길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사진에 담았다. 책방 내부 전체를 샅샅이 훑어보면서 사진 여러 장 찍었다








 

나는 권 배우님과 박 배우님이 <인스크립트>에 함께 있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었는데 그날은 <인스크립트> 부부 주인장의 아내 세인스크립트의 박세인 배우님이 혼자 있었다. 그날 권 배우님은 감기에 걸려 집에 쉬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사진 촬영을 원하는 나를 위해서 <인스트립트>에 오셨다.







대구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게 앞에 서 있는 두 배우님의 모습을 사진 찍었다. 사진을 어설프게 찍는 똥손이라서 못난 사진이 나올까 봐 내심 걱정했다. 셀카를 즐겨 찍는 선남선녀답게 두 배우님의 모습이 잘 나왔다(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사이]






전망 좋은 []

 

EP. 30



<인스크립트> 2막

(2025년 4월 5일 토요일)




연극 놀이터 <인스크립트> 1막이 끝나고, 45일 토요일에 <인스크립트> 2막이 시작되었다. <인스크립트> 2막의 새로운 무대 장소는 이화동이다이화동에서 제일 가까운 행정구역은 혜화동이다. 이화동과 혜화동을 지나는 대학로에 크고 작은 공연장과 극단들이 모여 있다한 달 동안 부부 주인장은 인스크립트 크루로 알려진 동료 배우들과 함께 이화동에서 연극 놀이터를 새로 심었다.


44일 관악구에서 탄핵의 밤을 즐겁게 보낸 나는 연희동이 아닌 이화동으로 이동했다. <주책필름><그날이 오면>을 방문한 이후로 가방이 더 무거워졌다.








이화동 <인스크립트>3층 건물에 있다. 건물 입구가 상당히 작다. 입구 주변에 책방 이름이 적힌 나무 간판이 있다. <인스크립트>로 안내하는 이 간판을 잘 찾아야 한다.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빨간색 방이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인스크립트>. 내부 공간이 더 넓어졌다. 창문 밖을 볼 수 있는 1인석 자리가 늘어났고, 빨간색 원형 탁자가 새로 생겼다
















원형 탁자는 네 개의 책상으로 분리할 수 있는데, 형태가 마치 거대한 피자처럼 생겼다. 원형 탁자를 분리해서 치우면 넉넉한 공연장을 만들 수 있다.


<인스크립트> 2막은 정오에 시작했다. 나는 희곡 놀이터 2막이 시작한 지 40분이 지난 뒤에야 이화동에 도착했다. 내가 <인스크립트>에 들어왔을 때, 책방 안에 어떤 여자 한 분이 계셨다. 처음에 나는 그분을 <인스크립트> 2막에 처음으로 방문한 손님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분은 손님이 아니었다. 책방 영업을 돕기 위해 출근한 인스크립트 크루소속 배우였다. 이화동 <인스크립트>의 첫 번째 손님은 바로 나였다. 그리하여 나는 두 번 연속으로 책방 개업 날(2023624, 202545)에 첫 번째로 방문한 손님이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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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4-21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희동보다는 대학로가 더 친근하네요.
언제 꼭 가봐야겠어요.~^^
좋은 장소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cyrus 2025-04-27 23:00   좋아요 1 | URL
대학로에 자리 잡은 인스크립트는 물 만난 물고기 같아요. 대학로에 활동하는 연극, 뮤지컬 배우들, 연출가들, 공연 관계자들이 자주 이곳에 방문할 거예요. 운 좋으면 유명한 배우들도 만날 수 있답니다. 최근에 박소담 배우가 인스크립트에 방문해서 본인 인스타 계정 스토리에 인증샷을 올렸어요. ^^
 





전망 좋은 []

 

EP. 28



그날이 오면

(2025년 4월 5일 토요일)









내 정신은 순결하므로

내 기도는 영원했으므로

전신이 토막나서 없어진다 해도

땅속 깊이깊이 묻힌다 해도

에헤라 그날이 오면 나는 되살아나겠네

불같이 타올라 아아 그 5월이 오면

한라에서 백두까지 마구 지천으로 피어나는 감자 꽃이겠네

민주의 넋이겠네

 

 

김용락

그날이 오면중에서,

 푸른 별》(창비, 1987년)에 수록





새벽 두 시에 서 씨와 헤어졌다. 되우 작은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졌다. 눈을 떠보니 아침은 세우(細雨)에 젖어 있었다.


이번에 처음 와본 신림동을 그냥 떠나기가 아쉬웠다. 아침을 맞이한 신림동의 풍경을 보고 싶었다신림동에 도림천이라는 하천이 흐른다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하천이 흐르는 방향에 따라 <그날이 오면>이 있는 동네까지 걸어서 갔을 것이다.
















<그날이 오면>1988년에 태어난 인문 사회과학 전문 서점이다. 서울대 앞 녹두거리에 있다. 카페에서 책을 보다가 10시 조금 넘었을 때 서점으로 향했다. 불이 켜진 서점을 금방 찾았다. 하지만 문이 잠겨 있었다. 서점 자동문에 외출 알림판이 달려 있었다.








 

알림판에 연락처가 적혀 있어서 처음에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처의 주인은 받지 않았다. 10분 뒤에 연락처의 주인으로부터 곧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오래 기다릴 수 없어서 서점에 언제 돌아오는지 바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답변이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빗방울은 굵어졌다.


더 기다려보고 11시가 되면 대학로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신림동과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고, 서점 근처에 있는 버스 정거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때 마침, 서점 문을 열기 시작한 직원을 만났다!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그날이 오면> 첫 방문이 이루어졌다.


서울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많았으면, <그날이 오면>에 있는 모든 책을 천천히 살펴본 후에 책을 샀을 것이다. 사야 할 책을 고르는 시간이 적어도 한 시간(!)이다. 눈동자를 재빠르게 움직이면서 책장을 주마간산으로 구경해보니, 사고 싶은 책이 5권 넘었다. 책을 너무 많이 사면 가방이 무겁다. 게다가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가방 앞쪽이 젖어서 가방 안에 있는 책도 젖는다.












10분 동안 책장 전체를 다 훑어본 후에 숨어 있는 책’ 다섯 권을 골랐다. 다섯 권 모두 절판(또는 품절)된 상태다. 이 중에 한 권은 알라딘에 등록되지 않은 책이다.


신림동에서 대학로로 가는 버스를 타면 한 번 갈아타야 한다. 도착하는 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이것은 마치‥… 연희동에 있었던 서점으로 가는 분위기와 비슷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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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4-09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쳇, 책을 좋아하면 좋아했지 꼭 똥폼을 잡는단 말야. ㅎㅎ
평생 심심하진 않겠어. 우리나라 서점 다 돌아다니려면...^^

cyrus 2025-04-14 06:42   좋아요 1 | URL
서울에 안 가본 책방이 몇 군데 더 있어서 전국 책방 투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하루 만에 서울 책방 세 군데 둘러보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네요. 이러다가 주말에 서울에 가면 1박 2일 할 수도 있어요. ^^;;

yamoo 2025-04-10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날이 오면..대학동까지 방문하셨네요! 아직도 건재하다니, 놀랍습니다. 그 옆에 길 건너 헌책방들은 다 없어졌는데...그 건물 옆에 버스 종점이 있었는데...152번인가..ㅎㅎ

cyrus 2025-04-14 06:43   좋아요 0 | URL
<그날이 오면>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는데, 신간 도서 소개를 꾸준히 하고 있어요. 실제로 가보니까 인터넷 서점에 구매할 수 없는 구간 도서도 있었어요. 아날로그 서점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

페크pek0501 2025-04-12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정겨운 나들이, 이십니다. 저도 알라딘을 알기 전까지는 동네 서점을 애용했어요. 매달 책을 사니까 주인 사장님이 저를 단골로 알고 친절하게 책을 구해 주시곤 했어요. 그 푸른 시절이 떠오릅니다.

cyrus 2025-04-14 06:46   좋아요 0 | URL
날씨 빼면 1박 2일 서울 여행이 즐거웠어요. 가방은 무거웠지만, 좋은 책들을 건졌습니다. ^^;;

Comandante 2025-04-14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날 서점 가셨군요^^ 사진을 보니 또 이사를 간 모양입니다. 고시촌 안에서 계속 이사를 하네요 ㅎㅎ

cyrus 2025-04-15 19:44   좋아요 1 | URL
맨 처음 생긴 위치에서 지금까지 쭉 오래가는 서점이 흔하지 않아요. 서점 운영하신 분들에게는 서점을 옮기는 일이 고역이겠지만, 서점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독자들과 단골은 서점이 어디든 자주 찾아오게 되어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