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입니다. 세계 각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국가기념일입니다.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故 김학순 님을 기억하고, 피해자와 생존자들의 명예회복과 인권을 위해 지정됐습니다. 이 기념일을 맞아 전국에 일본군 ‘위안부’ 여성의 삶과 운동의 역사를 알리는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는 8월 14일 제6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을 맞아 대구에서도 행사가 열립니다.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공동행동대구·경북조직위원회“그녀들의 용기, 우리들의 위드 유”라는 슬로건으로 강연, 전시회, 문화제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8월 3일 오후 7시 국가인권위대구사무소 대구인권교육센터에서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 첫 번째 기획 강연이 열렸습니다. 이날 강연은 이인순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장님이 맡았습니다. 내일이죠. 10일 두 번째 강연은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님의 「페미니즘 관점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 운동」입니다.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저는 ‘위안부’에 왜 작은따옴표가 붙여져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이 궁금증은 강연이 시작된 지 20분 만에 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사실도 새로 알게 됐습니다. ‘위안부(Comfort Women)’는 ‘자발적으로 한 성매매’ 행위를 반영하는 용어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일본 극우는 지금도 ‘위안부’ 피해 여성을 자발적인 매춘부였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위안부’ 명칭의 문제점을 부각하고, ‘위안부’ 피해 여성을 정의하는 명칭이 대체할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작은따옴표를 써야 합니다. 저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요. 막연히 ‘위안부’를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용어로만 알고 있었어요.

 

 

 

 

 

 

 

 

 

 

 

 

 

 

 

 

 

* 이토 다카시 《기억하겠습니다》 (알마, 2017)

* 안세홍 《겹겹》 (서해문집, 2013)

 

 

 

우리는 ‘위안부’ 또는 ‘종군위안부(Military Comfort Women)라는 용어에 익숙합니다. ‘위안부’가 나오기 전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을 ‘정신대(挺身隊)라고 부른 시절이 있었어요. ‘정신대’와 ‘위안부’, ‘종군위안부’ 명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연구가 나오면서 명칭 변경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최근에는 일본군의 반인권적 범죄 행위를 잘 드러나는 용어인 ‘일본군 성노예제(Japanese Army Sex Slaves)[주1], 또는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Japanese Military Sexual Violence Victims)라고 쓰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몇몇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성노예’와 ‘피해자’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공인된 정식 명칭은 아니지만,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라는 용어도 쓸 수 있습니다. 이인순 관장님은 지금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들 모두 세상을 떠난 뒤에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 시기가 오면 ‘일본군 성노예제’라고 부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은 전쟁 중 일본군의 성욕 해결과 성병 예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여성을 강제로 연행(동원)한 ‘국가적 방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는 국가 권력 및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이며 반인권적 범죄 행위입니다. 강제연행의 유형은 다양합니다. 집에 무단 침입해서 억지로 끌고 간 사례도 있지만, ‘취업 알선’을 미끼로 가난한 여성을 납치하거나 인신매매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본 극우주의자들은 일본 ‘위안부’의 강제연행마저 부정하고 있습니다. 일본 군부가 국가적 차원으로 강제연행을 기획하고 실행한 증거들이 있는데도 말이죠.

 

 

 

 

 

 

 

 

 

 

 

 

 

 

 

 

* 서울대 인권센터 정진성 연구팀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푸른역사, 2018)

 

 

 

 

 

 

 

 

 

 

 

 

 

 

 

 

* 윤명숙 《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 제도》 (이학사, 2017)

* 안병직 옮김 · 해제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이숲, 2013)

* [절판] 모리카와 미치코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 (아름다운사람들, 2005)

 

 

 

이인순 관장님은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이숲, 2013) 93, 168쪽과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아름다운사람들, 2015) 66, 67쪽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비교했습니다. 두 책에 나온 문장을 비교해서 검토하면 버마(지금의 미얀마) 전선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故 문옥주 님의 증언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옥주 님은 1943년 12월과 1944년 7월에 버마로 향하는 위안단이 부산항을 출발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이 쓴 1943년 7월 10일 일기에 보면 1942년 7월에 위안단이 부산항을 출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주2].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는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버마와 싱가포르에 근무한 일본군 위안소 관리자(쵸우바, 帳場)로 일한 조선인이 쓴 일기입니다. 이 기록은 일본 군부가 일본군 ‘위안부’를 계획적으로 동원하고 위안소 운영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일기를 우리말로 옮기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해제를 쓴 안병직 교수는 ‘뉴라이트’ 계열 학자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소극적으로 바라보고, 심지어 이 문제 자체를 부정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의 행보를 생각하면, 일기 번역과 해제를 뉴라이트 진영에서 활동하는 학자에 맡긴 건 분명 ‘옥에 티’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자료의 가치마저 깎아내리면 안 됩니다. 어떤 독자는 “이 책을 통해서 무언가 의미를 도출하기 어렵다”라고 썼던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위안소 관리자의 일기는 일본군 ‘위안부’의 실체를 알릴 수 있는 증거 자료입니다. 이 일기가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일본군 위안소를 운영하거나 관리한 조선인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입니다. 일본 극우주의자들은 이 사실을 근거로 일본의 국가 책임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만 가지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할 수 없습니다. 일본군 위안소 제도를 연구한 윤명숙 교수는 조선인의 일본군 ‘위안부’ 징모(徵募, 국가가 국민을 징집하는 일) 문제는 일제 강점기가 낳은 조선 민족 내부의 모순이며 이 비극의 역사를 우리나라 스스로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주3]. 조선인이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관여한 일을 인정하는 것도 일제 잔재 청산의 길입니다.

 

 

 

* Trivia

 

故 문옥주 님은 1936년 16살에 일본 헌병대에 끌려가 만주와 버마 등지에서 고초를 겪었습니다. 故 김학순 님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본인의 피해 사실을 밝혔습니다.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는 문옥주 님의 생애를 정리한 책입니다. 지금은 절판되어 구하기 힘든 책이 되었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 · 생존자들의 증언을 모은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1권에 문옥주 님의 증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주1]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채록한 일본의 사진작가 이토 다카시(伊藤孝司)‘일본군 전용 성노예 피해자(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이토 다카시 지음, 안해룡 · 이은 옮김, 《기억하겠습니다》, 알마, 2017)

 

[주2] 안병직 옮김,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이숲, 2013, pp. 93.

 

[주3] 윤명숙 지음, 최인순 옮김, 《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제도》, 이학사, 2015, pp. 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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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일할 것인가
아툴 가완디 지음, 곽미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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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은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것을 털어놓는 행위다. 모든 것을 거짓 없이 쏟아내는 이 행위는 진실로 귀결되는 인간의 솔직한 언어이다. 이런 면에서 고백의 언어로 채워진 현직 임상 외과 의사 아툴 가완디(Atul Gawande)의 글은 독자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고, 독자들의 가슴에 새겨진다.

 

 

 한때는 의사로서 가장 힘든 싸움이 기술을 터득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비록 일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하려는 찰나 실패를 겪고 좌절하곤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업무가 주는 긴장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가끔 지칠 대로 너덜너덜해지기는 해도 말이다. 내가 깨달은 바로는, 의사라는 직업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는 능력 안의 일과 능력 밖의 일을 아는 것이다. [주1]

 

 

‘전문 의료인’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난 그의 솔직함을 보여주는 말이다. 그러나 그 솔직함이 의사의 능력에 대한 불신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인 의사도 위험과 책임이 따르는 일에 고뇌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일할 것인가》(웅진지식하우스, 2018)는 전문 의사가 쓴 자성록이다. 가완디는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는 수술실에서 화약 냄새나는 야전병원까지 넘나들면서 고군분투하는 의료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다양한 의료현장 사례를 되돌아보면서 최선의 의료 행위가 무엇인지 질문하고, 그 행위에 합당한 의료인의 역할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한다.

 

출판사가 새롭게 붙인 ‘어떻게 일할 것인가’라는 제목보다는 원제(Better: A Surgeon’s Notes on Performance)가 책의 핵심을 보여주는 명확한 표현이다. 책의 원제에 들어있는 단어 ‘Performance’는 ‘의사 일을 하면서 얻는 성과’보다는 ‘개인과 사회에 작용하여 그것들을 변혁시키는 실행’을 의미한다.

 

저자는 자신의 첫 번째 저서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동녘사이언스, 2003)에서 의학은 ‘불완전한 과학’이며,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인간의 모험’이라고 했다. 또 의학을 ‘목숨을 건 외줄 타기’에 비유하기도 했다. 목숨을 건 모험이 없으면 의학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목숨을 건 외줄 타기’를 하는 의사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변혁의 목소리는 언제나 실천이 함께 하지 않으면 속이 비어있는 말로만 남는다. 삶 안에서 구체적 실행이 이루어지는 만큼 세상은 변할 수 있다. 저자는 손 씻는 일을 하찮게 여기는 의사들의 습관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병원 감염관리팀 사례를 들려주면서 의사들의 덕목 가운데 하나로 ‘실천’을 강조한다.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인 결정만 하도록 진화한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문제 해결 과정을 단순화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성실함’의 미덕을 가볍게 여긴다. 그렇지만 저자는 최악의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성실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떻게 일할 것인가》는 의사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 아니다. 이 책 속에 인생의 진리가 있다. 사람이 하는 일에 완벽이란 없다. 사람이 하는 곳에는 반드시 실패가 생기므로 사람은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책을 찾아내어 변화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개선은 우리에게 주어진 ‘끝없는 노동’[주2]이다. 실패를 받아들여 개인 및 사회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개선하려는 노력은 성실한 태도에서 나온다. 《어떻게 일할 것인가》는 질주하듯이 살아가는 삶에서 잠시 멈춰 설 수 있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현재의 삶을 더 나은 삶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주1] 아툴 가완디 지음, 곽미경 옮김, 《어떻게 일할 것인가》, 웅진지식하우스, pp. 190.

 

[주2] 같은 책, pp.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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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 높은 구두, 단발머리, 각선미가 드러난 치마, 양산.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에 등장한 ‘신여성’, ‘모던 걸’의 이미지들이다. 그녀들은 학교에 다니고, 자신의 욕망에 따라 곳곳을 누비며 유행을 선도했고 자유연애를 주장했다. 이후 이들의 삶은 어떻게 전개되었고, 당대 남성들은 그녀들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 박차민정 《조선의 퀴어》(현실문화, 2018)

 

 

 

지난달에 《조선의 퀴어》(박차민정 지음, 현실문화, 2018)를 읽고 한동안 근대 일본과 근대 식민지 조선의 문화 및 역사를 훑어봤다. 흥미진진한 독서였다. 살아보지 않은 시대의 모습들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재미, 그것이 역사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그렇지만 식민지 조선의 시대상을 더 알면 알수록 마음이 씁쓸해진다. 모던의 향취를 뿜어대는 신여성의 뒷모습은 쓸쓸하다. 사철 서양식 치마를 갈아입고, 구두를 갈아 신는 신여성도 알고 보면 가족 부양을 위해 부잣집 첩살이로 들어가는 불행한 인텔리 여성에 불과했다. 모던 보이들이 처한 상황도 녹록지 않았다. 일류신사를 꿈꿨던 모던보이들은 전문학교를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 해 거리를 헤맸다. 그 시절에도 지금처럼 패션과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었다.

 

 

 

 

 

 

 

 

 

 

 

 

 

 

 

 

 

* 김주리 《모던 걸, 여우 목도리를 버려라》(살림, 2005)

 

 

 

구두와 치마, 단발머리가 신여성을 상징하는 이미지라면, 모던보이의 상징은 일본에서 직수입된 중절모와 양복이다. 모던보이들은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에 살면서도 양복을 입고 다녔다. 당대 언론은 현실과 동떨어진 과도한 사치를 추구하는 모던보이의 태도를 비판했다.

 

 

 

 

 

 

 

 

 

 

 

 

 

 

 

 

 

* 박윤석 《경성 모던타임스》(문학동네, 2014)

 

 

 

1920~30년대 경성은 ‘리틀 도쿄’였다. 이때부터 영화, 음악, 각종 서구식 생활양식 등 근대문화가 일본 제국주의의 흐름을 타고 경성으로 들어온다. 혼마치(本町, 지금의 명동, 충무로 일대)는 신여성과 모던 보이들이 자주 드나드는 유흥공간이 많았다. 그곳은 일본의 긴자(銀座) 거리에 온 것처럼 화려했다. 신여성과 모던 보이들에게 혼마치는 도쿄의 분위기를 경험해보는 곳인 동시에, 겉으로 화려하지만 내면이 무력한 식민지인의 자화상을 확인하게 하는 구역이었다. 현해탄 물결에 젖어서 공주처럼 지친 채[주1] 고국으로 돌아온 일본 유학생들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가늠할 수 없는 꽉 막힌 현실, 지식과 능력을 사용할 곳이 없는 현실 앞에서 절망했다. 변변한 일자리 하나 찾기 힘든 식민지 현실이 그들을 절망하게 했고, 가족을 돌보기는커녕 호구지책도 마련하지 못해 거리를 헤매는 처지가 그들을 자학하게 했다.

 

 

 

 

 

 

 

 

 

 

 

 

 

 

 

 

 

 

 

* 소래섭 《에로 그로 넌센스 : 근대적 자극의 탄생》(살림, 2005)

 

 

 

일부 남성 지식인들은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서구 문화를 ‘부패한 에로’로 규정하여 비판했지만, 현실에 좌절한 모던 보이들은 ‘에로 그로’ 문화에 탐닉했다. 전근대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근대의 향락주의자들은 ‘변태 성욕자’로 낙인 찍혀 비판받았다. 그러나 ‘에로 그로’ 문화는 현실의 불만과 권태를 달랠 수 있는 해방구였다. 식민지 조선 남성은 ‘에로 그로’ 문화에 헤어 나오지 못한 자신의 상황뿐만 아니라 무기력한 현실에 대해서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 권김현영 엮음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교양인, 2017)

* 김미지 《누가 하이카라 여성을 데리고 사누 : 여학생과 연애》(살림, 2005)

 

 

 

식민지 남성의 냉소적인 반응은 동시대에 등장한 모던 걸, 신여성들에게 향한다. 모던 걸들은 남성성이 ‘거세된’ 식민지 남성 지식인들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는 대상이 된다. 신여성의 신체적 변화는 전통과 근대, 남성과 여성의 의식면에서 첨예한 갈등을 불러왔다. 예컨대 단발에 대해 남성들은 여성들이 단발하는 것을 남성을 흉내 내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단발은 편리했으며 해방감을 가져다줬다. 남성 지식인들은 신여성들을 사치와 허영을 일삼는 존재로 바라봤다. 특히 금시계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위해 몸까지 파는 여성은 냉소적인 풍자의 대상이었다. 여학생들은 방학이 되어 고향에 내려가면 ‘저런 하아카라 여성을 누가 데리구 사누’라는 흉을 들었다. 전근대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여학생의 자유연애가 못마땅했다. 가난한 형편으로 학비를 마련하지 못한 여학생들은 밀매음에 종사했는데, 그녀들을 ‘밀가루’라는 은어로 부르기도 했다[주2]. 이 은어에는 신여성의 과도한 화장을 비난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 김재용 외 《친일문학의 내적 논리》(역락, 2003)

 

 

 

신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한 교육과 정치 차명의 기회를 쟁취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향한 냉소적인 공격에 맞서 대응했다. 신여성은 철저히 식민지 조선 남성들의 감시 대상이었다. 식민지 조선 남성이 만들어낸 지극히 주관적이고도 자극적인 이미지를 벗겨내면 신여성의 주체적인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신여성도 한계가 있었다. 소수의 여성이 신식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 땅에 본격적으로 표면화되기 시작하면서 김활란, 모윤숙, 노천명 등의 신여성 지식인들은 ‘여성의 공적인 영역 진출’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전쟁 동원을 위한 국책 사업에 뛰어들었다.

 

신여성을 둘러싼 식민지 남성들의 시비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하는 시대 앞에 주눅 든 남성들은 말하고 행동하는 여성들에게 막말과 인신 모독성 비난을 한다. 식민지 남성들은 거리에 돌아다니는 모던 걸을 흘깃 쳐다보면서 ‘스튜릿트껄’이라 부르면서 그녀들의 허영심을 비꼰다. ‘스튜릿트껄’은 식민지 조선 버전 ‘김치녀’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성들은 반성해야 한다.

 

 

 

 

 

[주1] “청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김기림, 『바다와 나비』 2연)

 

[주2] 소래섭, 《에로 그로 넌센스 : 근대적 자극의 탄생》, 살림, 2005, pp.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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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8-07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세 여자>를 조금씩 읽고 있는데
정말 1920~30년은 흥미로운 시대야.
지식 팽창의 시대였던 것 같아. 연구해 보면 재밌을 것 같아.^^

수이 2018-08-07 20:35   좋아요 1 | URL
세 여자는 정말 보기 드물게 잘 쓰인 소설 같아요, 생각보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안타까워요.

cyrus 2018-08-08 15:12   좋아요 2 | URL
To. stella.K & 수연 // 허정숙에 대해 알고 싶어서 <세 여자>를 읽으려고 했어요. 권김현영 님은 허정숙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국내 여성운동의 역사를 다시 쓰려면 조선에 활동했던 마르크스주의 여성운동가의 삶과 업적에 대한 연구가 필요해요.

knulp 2018-08-07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여러 권 올리는 글쓰기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cyrus 2018-08-08 15:14   좋아요 0 | URL
컴퓨터로 북플이 아닌 ‘알라딘 서재’에 접속하면 ‘마이페이퍼’ 기능을 쓸 수 있어요. 그러면 ‘알라딘 상품(책)’뿐만 아니라 사진과 동영상도 넣을 수 있어요. 저는 항상 아날로그 방식으로 글을 써요. ^^

knulp 2018-08-08 16:12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아날로그 감성 최고죠^^

수이 2018-08-07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대 글은 역시나 꺠우침을 여러모로 많이 줘.

cyrus 2018-08-08 15:19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ㅎㅎㅎㅎ 페미니즘 관점에서 신여성을 재평가하는 분석은 이미 오래전에 나온 거예요. 저는 그냥 분석의 결과물들을 참고해서 정리했을 뿐이에요. 제 글은 대단한 건 아니에요. ^^
 
댄 애리얼리 부의 감각
댄 애리얼리 외 지음, 이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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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과연 사람들은 언제나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행동을 할까? 경제학자들은 인간이 항상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합리적 선택을 하는 경제인(Homo economicus)이라 가정해왔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왜 공짜로 생긴 돈을 한 번에 탕진할까? 왜 현금보다 신용카드로 물건을 구입할 때 더 많은 돈을 쓰게 되는 것일까? 많은 경제학자가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에서 어떤 합리성을 찾으려 노력해왔다. 경제는 개개인의 행동 집합체지만, 종잡을 수 없고 정답도 없다. 인간은 꼭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비이성적 인간, Homo irrationalis) 인간의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경제 역시 반드시 합리적이지는 않다. 심지어 경제학자들도 실제 소비생활에서 비합리적인 결정을 한다.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한 행동경제학은 사람들이 소비하고, 지출하고, 투자하고, 저축하고, 돈을 빌릴 때 어떻게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결정을 내리는지를 설명한다.

 

MIT미디어랩의 행동경제학 전공 교수이자, 보스턴 연방준비은행 연구원인 댄 애리얼리(Dan Ariely)는 ‘경제 주체는 늘 합리적인 존재’라는 기존 경제학의 대전제에 관한 근본적 회의감을 논리적이고 참신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는 대중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다양한 책을 발간해 행동경제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높였다. 이번에 나온 책은 ‘돈 잘 쓰는 법’에 관한 것이다. 제목만 봐도 흥미롭지 않은가. 《부의 감각》(청림출판, 2018)은 풍부한 사례와 실험들을 통해 사람들 대부분이 잘못된 지출 습관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저자는 인간이 얼마나 충동적이며, 고정관념과 선입견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돈을 쓰는지 귀신같이 잡아낸다.

 

어떤 일을 선택함으로써 포기해야 할 다른 일의 경제적 이득을 경제학에선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라고 한다. 합리적인 경제인은 기회비용을 따져 행동한다고 경제학 교과서는 설명한다.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은 늘 기회비용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돈을 현명하게 쓰는 방법을 잘 모른다. 가장 큰 이유는 돈에 대한 의사결정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개 스스로 합리적인 소비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들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한마디로 말하면 ‘기분파’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돈을 쓰고, 과거에 돈을 썼던 일에 후회하면서 힘들게 살아간다. 인간의 ‘소비’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부의 감각》은 돈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 그 상황에 작동되는 10가지 힘을 설명한다. 이 10가지 힘은 일상 속에 겪게 되는 돈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이 서평에서는 간략하게 4가지만 언급하겠다.

 

인간은 어떤 상품을 구매할 때면, 편익과 가격을 비교해 자신에게 가장 많은 편익을 주는 상품을 구매한다. 만약 할인된 가격의 상품이 있으면 소비자는 그 제품의 정상가격을 비교하여 소비를 할지 말지 결정한다. 이처럼 비교하기 쉬운 대상을 서로 비교하며 선택을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심리적 편향(상대성 편향)의 한 종류다. 즉, 인간은 선택의 대상을 비교하는 것만이 아니라 비교하기 쉬운 대상만 비교한다. 가격할인은 소비자의 선택 판단 과정을 단순화시켜버린다.

 

기업들이 재무제표에서 각 계정을 통해 돈을 관리하고 운용하듯이 인간도 마음속에 회계장부를 두고 돈을 관리한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심리적 회계’라고 부른다. 돈이 어디서 나오고, 어디에 저축돼 있으며,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돈을 다르게 생각한다. 심리적 회계는 저축에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저축하려면 급여에서 일부를 미리 떼놓으면 된다. 지출을 다 마친 뒤에 남는 돈을 저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리적 회계가 항상 좋은 건 아니다. 심리적 회계는 때로는 불리하게, 때로는 유리하게 작동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돈을 똑같이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돈을 쓰는 순간부터 심리적 회계를 은연중에 가정한다. 돈의 가치는 다 같은데도 일해서 번 돈은 생활비로 쓰고, 공짜로 받은 돈은 유흥비로 아무런 생각 없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적 회계가 인간을 통제하게 되면 돈을 각각 다른 지갑에 넣고 지갑마다 다른 규칙을 적용하면서 쓸려고 한다.

 

인간의 비합리적 소비는 자기 과신에서도 온다. 자신이 믿고 있는 정보가 기준점이 돼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 닻 내림 효과)라고 한다. 자신의 판단 능력을 과대평가하면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질 뿐만 아니라 기회비용을 과소평가하게 만들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다. 소유효과(endowment effect)는 자신이 가진 물건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성향을 말한다. 이 현상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유물에 강한 애착을 느낄 때 생긴다.

 

저자는 비합리적인 소비 행동에도 다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 사람은 돈에 대한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하다. 따라서 주의를 기울이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돈을 헛되이 쓰는 실수를 줄일 수 있을까. 소비를 합리적으로 잘하는 것은 그만큼 소비 과정에서 신중한 의사결정 능력이 필요하다. 필요와 욕구에 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고 최종 구매 결정 이전에 기회비용에 대한 고려가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품을 구매하기 전에 그 상품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본인에게 얼마나 주어지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부의 감각》은 우리가 실생활에서 너무나도 쉽게 돈을 쓰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한마디로 인간의 소비 행위의 이면을 속 시원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책 제목만 보고, 행동경제학의 권위자가 ‘부자 되는 법’을 알려줬다고 믿으면 곤란하다. 제목에 대한 과신은 금물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독자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라고 말한 적이 없다. 돈을 똑똑하게 쓴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전보다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다. 돈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즐겁게 살고 싶으면 돈을 쓰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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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7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8-07 18:23   좋아요 0 | URL
책을 사고난 뒤에 후회할 때가 있어요. 중고매장에 책을 사고나면 며칠 뒤에 진짜 읽고 싶은 책이 매장에 있어요. 그래서 책 살 때마다 돈을 펑펑 쓰게 돼요.. ㅎㅎㅎ

조그만 메모수첩 2018-08-07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분.. 이비에스다큐영화제에서 거짓말에 관한 다큐에 출연하신 거 본 적이 있었어요. 그때도 인상적이었는데(거짓말의 기제에 대한 거였는데 거기서도 인간은 비합리적 존재임을 강조했던 거 같아요) 이 책도 굉장히 읽고 싶네요. 이런 비합리의 바닥에는 손해를 보기 싫다, 쾌락을 중시하겠다는 나름의 합리적(?)규칙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구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8-08-07 18:24   좋아요 1 | URL
메모수첩님이 언급하신 내용은《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이라는 책에 나올 거예요. 이 책도 흥미진진합니다. ^^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 기괴환상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현실은 꿈,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

 

 

이 말은 일본 추리문학의 대가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의 시그니처(signature)다. 그는 사인할 때 이 시그니처를 썼다고 한다. 란포의 본명은 히라이 타로(平井太郞)이다. ‘에도가와 란포’는 필명인데,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에서 따온 것이다. 포는 추리소설과 심리적 공포소설의 창시자다. 미국 문학의 약사(略史)를 쓴 적이 있는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는 포가 끼친 문학사적 영향을 단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포는 보들레르(Baudelaire)를 낳고, 보들레르는 상징주의자들을 낳고, 상징주의자들은 폴 발레리(Paul Valery)를 낳았다.” 보르헤스의 말을 빌리자면 포는 에도가와 란포를 낳았다.

 

에도가와 란포 작품의 매력은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세상이 실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보여주는 데 있다. 그의 작품에 빠져들면 어디까지가 상상의 세계이며 어디서부터 현실 세계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독자들은 상상과 현실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외줄에서 쉽사리 내려오지 않는다. 란포가 그려 보이는 작품 속 상황들은 마치 현실 속에서 마주칠지도 모를 불안, 공포, 경악 등의 혼미한 상황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권(도서출판 두드림, 2008)탐미적 에로티시즘, 그로테스크(grotesque: 기괴함), 그리고 환상성난센스 요소가 가미된 묘사가 주를 이룬 총 22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란포의 단편을 읽으면 소재의 창발성에 놀라고, 때론 광기 어린 감정 묘사에 혀를 내두르고, 때로는 기발함에 멈칫하게 된다. 물론 일본 추리 · 미스터리 문학 작품의 범람 속에서 란포의 작품도 진부한 고전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란포는 진지하게 인간의 무서운 환상과 가학적인 충동을 파고듦으로써 공포 문학의 기반을 마련했다. 『고구마 벌레』는 음울하고 어두운 인간의 극단적 욕망과 광기를 현실적으로 치밀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스나기 중위는 전쟁으로 양손과 양다리를 잃어 몸체만으로 생활하는 장애인이다. 란포는 전쟁이 인간에게 남긴 정신적 외상의 고통도 보여주는데, 자신만의 색다른 그로테스크한 묘사로 전쟁의 참상을 전달한다.

 

란포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20~30년대의 일본의 문화적 분위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시 문화계를 지배하던 키워드는 ‘에로 그로 난센스’였다. 『인간 의자』『복면 무도회』는 공통으로 ‘신여성’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신여성’은 여성에게 한정됐던 사회, 정치, 제도적 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자유와 해방을 추구한 근대에 새롭게 나타났다. ‘에로 그로 난센스’ 시대 속에서 신여성은 남성들의 에로틱한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대상이었다. 남성들은 거리를 활보하는 신여성들을 마음껏 조롱하거나 성적인 자극을 은밀히 즐겼다.

 

『인간 의자』의 요시코는 소설가로 활동하는 신여성이다. 가난한 가구공은 여성의 몸에 과도하게 애착을 보인다. 그는 ‘서양식 의자’를 만들어 그 안에 숨어서 지낸다. 가구공의 의자 위에 여성이 앉으면 가구공은 의자 안에서 여성 몸의 접촉을 통해 나오는 쾌락을 즐긴다. 호텔에 있던 가구공의 의자는 요시코의 집으로 옮기게 된다. 가구공은 요시코의 몸을 탐할수록 점점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가구공은 ‘에로틱한 일탈’을 통해 결핍된 욕망을 채운다.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변태성욕자’라고 부른다. ‘에로 그로 난센스’ 시대는 비정상적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변태’로 분류했고, ‘변태성욕자’는 그 시대 언론이 폭넓게 쓰면서 대중에게 깊이 각인됐다.

 

『복면무도회』에 묘사된 신여성은 퇴폐와 타락의 이미지다. ‘20일회’는 에로틱한 유희를 즐기는 비밀 사교 모임이다. 친구 이노우에 지로의 소개로 20일회 정식 회원이 된 화자는 ‘가면무도회’를 가장한 섹스 모임에 참석하는데, 실수로 친구의 아내 하루꼬를 선택해서 그녀와 하룻밤을 보낸다. 의도치 않게 불륜을 저지른 화자는 도리어 친구의 아내를 탓한다.

 

 

  엄연히 남편이 있는 여자가 어떻게 낯선 남자랑 어둠 속에서 춤을 추고, 이런 장소로 올 때가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하루꼬 씨가 그런 여자일 줄은 정말 미처 몰랐다. [주]

 

 

하루꼬는 남편이 있는 인텔리 여성이다. 그러나 ‘결혼’은 신여성의 발목을 잡는 족쇄이다. 그녀가 사교를 가장한 퇴폐적인 모임에 참석한 것이 기존의 가부장적 가치관(‘아내는 무조건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아내는 집에만 머물러야 한다’)에 균열을 내고 틈을 만드는 전복적인 일이었다고 해도 그리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신여성들은 여성 자신의 인격과 개성에 대한 존중, 자유연애 등을 외치며 당당하게 구습의 족쇄를 풀려고 했다. 그러나 신여성들은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이유로, 남의 가정을 파탄 냈다는 이유로 가차 없이 비난을 받았다. 화자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대한 책임을 ‘외간 남자를 만나고 다니는’ 하루꼬에게 전가한다. 그러면서 성적 일탈을 저지른 여성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란포는 극단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즉 변태성욕자, 하층민, 무능한 사람들로 넘쳐나는 그로테스크한 시대상을 포착했다. 대부분 공포 문학이 현실에서 동떨어진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로 다루었던 데 반해, 란포의 공포 문학은 일상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그 안에서 일어나는 비현실적이거나 괴이한 사건들을 결합한다. 란포는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알 수 없는 광기의 소유자, 공포와 악의 근원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음울한 존재이지만, 사회에 융합되지 못한 고립된 외로운 인간들이다. 란포는 사회에 배제된 존재들에게 일어나는 음산하고 알 수 없는 기괴함을 묘사할 때 아이러니와 유머를 결합하는데 이는 이들의 숨겨진 욕망의 실상을 더욱 추악하게 보여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란포의 공포 문학 작품은 단순하지만 독특한 서사, 그리고 이 서사를 감각적으로 구현하는 환상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주]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 『복면무도회』,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도서출판 두드림, 2008, pp.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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