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지적 편력은 다양하다. 그래서 그를 특정한 범주에 잠시나마라도 붙들어 매는 것이 불가능하다. 푸코를 영유하는 방식은 사람들에 따라 너무나 편차가 심하다. 푸코의 대머리에 무작정 오르다가는 미끄러져서 떨어질 수 있다. 다행히 요즘은 푸코의 대머리에 오르는 데 유용한 사다리 같은 책들이 많다. 다만 오래돼서 낡아빠진 사다리는 피해야 한다. 튼튼한 사다리가 여러 개 있다면 오래된 사다리까지 챙겨야 할 필요는 없다.

 

 

 

 

 

 

 

 

 

 

 

 

 

 

 

 

 

 

 

* 자네트 콜롱벨 《미셸 푸코, 죽음의 빛》 (인간사랑, 1998)

 

 

 

《미셸 푸코, 죽음의 빛》(인간사랑, 1998)유통기한이 훨씬 지난 ‘오래된 사다리’다. 푸코의 철학을 소개한 책이지만, 내가 보기엔 필독해야 할 이유가 없는 책이다. 이 책은 20년(!) 전에 나왔다. 절판되지 않은 게 용하다. 이 책의 프롤로그인 『여정과 추억』은 저자가 자신의 푸코 읽기 여정을 말년 푸코의 삶과 겹쳐 술회한 내용인데, 쓸데없이 길다. 그래도 번역자의 꼼꼼한 역주는 읽을 만하다. 번역자는 참고 문헌들에 대한 세심한 검토를 곁들여 이 힘든 작업을 성실히 수행했다.

 

그러나 번역자도 사람인지라 종종 무지(無知)로 인해 잘못된 정보를 전하기까지 하는 오류를 범한다. 교정은 원고에 있는 오류를 바로잡고, 인쇄 상태를 바로잡는 행위이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교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책은 ‘잘못된 책’이다.

 

 

 

 

 

 

 

 

 

 

 

 

 

 

 

 

 

 

* [아직 안 읽은 책] 미셸 푸코 《말과 사물》 (민음사, 2012)

 

 

 

 

 

 

 

 

 

 

 

 

 

 

 

 

* 노르베르트 볼프 《디에고 벨라스케스》 (마로니에북스, 2007)

* 자닌 바티클 《벨라스케스》 (시공사, 1999)

 

 

 

78쪽에 푸코의 《말과 사물》(민음사, 2012)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말과 사물』은 우연을 전제로 한다. 왜냐하면 거기엔 가장 걱정스런 것이 아직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발상은 보르헤스(Borges)의 한 텍스트로부터 연유한다”는 말로 『말과 사물』은 시작한다. 오히려 이 짧막한 문장은 『귀족의 딸들(Ménines)』의 화려한 묘사가 감추는 방법론적 서문에 의해 가려져 있다.

 

 

 

‘짧막한’은 ‘짤막한’의 오자(誤字)이다. 『귀족의 딸들』은 무엇인가? 스페인의 화가 벨라스케스(Velázquez)의 그림 『라스 메니나스(Las Meninas)를 말한다. 이 그림은 ‘시녀들’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벨라스케스가 어린 공주와 시녀들, 그리고 공주의 놀이 상대였던 난쟁이와 개를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귀족의 딸들’은 나오지 않는다. 번역자는 벨라스케스의 그림 제목을 엉뚱하게 적었다.

 

 

 

 

 

『라스 메니나스』는 이야깃거리가 많은 그림이다. 그림 속의 벨라스케스(그림 왼쪽에 붓을 들고 있는 남자) 자신은 어린 마르가리타(Margarita) 공주를 그리고 있다. 이 그림의 흥미로운 점은 거울 속의 펠리페 4세(Felipe Ⅳ) 부부의 모습이다. 실제로 스페인 국왕 부부는 그림 모델로 서고 있는 공주의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해 화가의 작업실을 찾았지만, 벨라스케스는 국왕 부부를 자세히 묘사하지 않았다. 벽에 걸린 거울 속에 비친 국왕 부부 모습(그림 중앙)을 그렸다.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 그림을 해석한다. 그는 이 그림이 “모든 것을 재현하려는 고전 시대의 욕망을 압축하여 표현한 작품”이라고 평가하면서, 이 그림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주체가 생략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푸코의 해석에 따르면 『라스 메니나스』는 어린 공주의 모습을 재현한 그림이라 볼 수 없고, 공주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화가 자신의 행위를 재현한 그림으로도 볼 수 없다.

 

 

 

 

 

 

 

 

 

 

 

 

 

 

 

 

 

 

 

* 미셸 푸코 《광기의 역사》 (나남출판, 2003)

* 제바스티안 브란트 《바보배》 (읻다, 2016)

 

 

 

 

 

 

 

 

 

 

 

 

 

 

 

 

* 월터 보싱 《히에로니무스 보스》 (마로니에북스, 2007)

* 월터 S. 기브슨 《히에로니무스 보스》 (시공사, 2001)

 

 

 

 

126쪽에 있는 ‘제롬 보스(Jerome Bosch)『광인들의 배(바보 배)』를 그린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를 프랑스어로 표기한 이름이다. 푸코는 보스가 그린 『광인들의 배』에 영감을 받아 《광기의 역사》(나남출판, 2013)를 쓰게 된다. 푸코는 이 책에서 『광인들의 배』가 그려진 르네상스 시대만 해도 광인은 조롱과 풍자의 대상이었을 뿐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된 존재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독일의 인문주의자 작가 제바스티안 브란트(Sebastian Brant)이 쓴 《바보배》(읻다, 2016)는 르네상스 시대 광인의 지위를 알 수 있는 문헌이다.

 

 

 

 

 

 

 

 

 

 

 

 

 

 

 

 

* 로제 마리 하겐 《피테르 브뢰헬》 (마로니에북스, 2007)

* [절판] 닐스 요켈 《브뢰겔》 (RHK, 2006)

* 월터 S. 기브슨 《브뢰겔》 (시공사, 2001)

 

 

 

보스와 마찬가지로 네덜란드 출신인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도 광인을 묘사한 그림 작품을 남겼다. 그런데 《미셸 푸코, 죽음의 빛》의 번역자는 동명이인의 브뤼헐을 언급했다. 126쪽 역주에 피터르 브뤼헐이 아니라 그의 차남 얀 브뤼헐(Jan Bruegel)을 설명한 내용이 있다. 얀 브뤼헐은 아버지와 다르게 주로 정물화를 그렸으며, ‘꽃의 브뤼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브뤼헐’이라는 성을 가진 화가가 세 명(지옥, 광인 등을 주제로 기괴한 분위기의 그림을 그린 ‘대’ 피터르 브뤼헐, 그의 장남 ‘소’ 피터르 브뤼헐, 차남 얀 브뤼헐)이나 있다 보니 번역자가 이름을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쉰P 2018-09-10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파고 들고 싶은 사람이에요 ㅎ 푸코

cyrus 2018-09-12 06:55   좋아요 0 | URL
푸코가 독자에게 좌절감을 주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참고 책을 읽어보면 그의 분석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

2018-10-15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15 17:17   좋아요 0 | URL
어떤 음악인지 궁금하네요. 혹시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인가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한 그림을 보는 건 즐거워요. ^^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 반철학사 3
미셀 옹프레 지음, 곽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동서고금의 모든 철학자는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성찰해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란 인간 개개인이 가진 덕()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수행하는 정신적 활동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법과 정치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했다. 에피쿠로스도 인간의 목적을 행복이라고 주장했지만, 그가 말하는 행복은 쾌락이었다. 그는 방종한 생활 같은 육체적 쾌락보다는 금욕을 통한 정신적 쾌락에 주안점을 두었다. 그러나 에피쿠로스는 절제된 쾌락을 강조했지 육체적 쾌락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쾌락을 많이 추구하면 더 큰 쾌락을 양산하기 때문에 결국 정신적 고통을 얻게 된다고 보았다.

 

대부분 사람은 쾌락주의(hedonism)를 향락과 개인적 안위의 삶을 살라고 선동하는 철학으로 오해한다. 쾌락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에 음란하고 불순한 사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에피쿠로스는 자연현상에 대한 이성적 이해를 통해 미신의 현혹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쾌락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자연 현상을 신들의 행위로 인식하던 당대의 관념에 비추어 보면 매우 도발적인 주장이다. 이런 관점은 바로크 시대(Baroque period)의 자유사상가(libertins)로 이어진다.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은 서양 철학사에 잘 언급되지 않은 17세기 자유사상가 5명과 당대 자유사상가의 정신을 이어받은 유명한 철학자 1명을 소개한 책이다. 유명한 철학자 1은 세계가 곧 신이며 정신이라는 범신론을 주장했던 스피노자(Spinoza). 스피노자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명, 피에르 샤롱(Pierre Charron), 프랑수아 라 모트 르 베예(François de La Mothe Le Voyer), 샤를 드 생 테브르몽(Charles de Saint-Évremond), 피에르 가상디(Pierre Gassendi),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Cyrano de Bergerac)은 일반인에게 생소한 철학자이다. 사실 시라노는 에드몽 로스탕(Edmond Rostand)의 희곡 덕분에 코가 큰 추남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가 시대를 앞서간 책을 쓴 철학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무신론자, 유물론자인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철학사라는 작업을 통해 주류 중심 철학에 밀려나 잊힌 과거 사상가들을 호명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씌워진 케케묵은 편견까지 털어내어 그들이 살아온 삶과 사상을 보여준다.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반철학사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자유사상가는 인간의 개인 의지를 강조하여 기독교의 교조적인 교리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렇다 보니 자유사상가를 무신론자로 보는 입장이 생겼고, 그들의 도발적인 생각은 위험한 사상으로 간주하여 배척받았다. 그런데 무신론자 옹프레는 자유사상가들이 신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피에르 샤롱과 라 모트 르 베예, 생 테브르몽은 신앙절대주의자 또는 이신론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의 영적인 힘, 천국과 지옥 같은 개념을 비판한 사상)였다. 가상디는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친 유신론자였다. 시라노와 스피노자는 범신론자였다. 17세기는 전쟁과 종교 분쟁으로 혼란이 거듭했던 시대였는데, 자유사상가들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군주제가 유지되면 사회적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바로크의 자유사상가 각자가 지향하는 관점마다 차이가 있지만, 그들은 당대 시대적 흐름을 타고 등장한 학자들이었다.

 

바로크는 불완전한 진주(완벽하게 둥글지 않은 진주)라는 의미의 포르투갈어이다. 바로크 문화는 파격, 불규칙, 변화를 추구한다. 그런 점에서 바로크 시대의 자유사상가는 보편적인 진리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며 정형적인 기독교 정신을 의심한다. 성경 중심의 신앙을 실천하는 신학자나 기독교인 입장에선 자유사상가의 등장이 달갑지 않다. 그래서 그들을 과장되고, 기존 체제에 순응하지 못한 인간으로 바라보면서 공격했다. 주류 학자들은 무신론과 거의 흡사한 자유사상가들의 생각을 거부했다. 자유사상가를 무신론자로 취급하면서 그들의 존재감은 서서히 잊히고, 서양 철학사에 그들의 이름조차 볼 수 없었다. 후세 사람들은 피에르 샤롱을 몽테뉴(Montaigne)수상록을 표절한 얼치기로 평가했고, 가상디가 과학적 관찰을 중요하게 생각한 천문학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은 인간을 위한 철학을 강조한다. 그들이 보는 신은 인간의 이성이나 육체에 개입하지 않는다. 신은 인간에 무관심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기독교적 원죄의식에서 벗어나 지금 자신이 선 자리에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유사상가들은 기독교적 신이 중심이 되는 사회 한가운데서 인간이라면 직접 스스로 해야 할 질문들을 화두로 던졌다. 어떻게 하면 인간은 좀 더 인간답게살 수 있을까? 현재는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 오늘 하고자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 후세 사람들은 이것을 쾌락이라고 말하지만, 자유사상가들이 지향하는 자유는 자발적 행복’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방에 가면 책방 주인이 소중히 여기는 책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책들은 살 수가 없다. 오직 책방에서만 읽을 수 있다. 책방을 찾는 손님이 보기에는 그냥 언제든지 팔 수 있는 책이지만, 책을 가진 주인 입장에서는 아무에게나 주고 싶지 않은 보물이다. 그 마음, 나도 충분히 이해한다. 읽다 익다책방 주인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글을 좋아한다. 그 분은 헤세가 쓴 작품뿐만 아니라 헤세 읽기에 도움이 되는 책도 모으고 있다. 물론 책 모으는 일에만 열중한 분은 아니다. 책방 주인이 수집한 헤세의 책은 독서모임을 하면서 읽은 것들이다. 내가 보기에 읽다 익다책방 주인은 건강한 애서가이지, 심각한 책 중독자는 아닌 것 같다.

    

 

 

 

 

 

 

 

 

 

 

 

 

 

 

 

* 톰 라비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돌베개, 2011)

* 니콜라스 A. 바스베인스 젠틀 매드니스(뜨인돌, 2006)

* 구스타브 플로베르 애서광 이야기(범우사, 2004)

    

 

 

자신을 책 중독자라고 밝힌 작가 톰 라비(Tom Raabe)는 책 중독을 깊은 수렁에 비유한다. 그가 말하는 책 중독자에는 세 가지 부류가 있다. 장서광, 애서가, 수집가이다. 장서광은 책을 사고 또 사는 사람이다. 애서가는 책을 읽고 또 읽는 사람이다. 책의 겉모습에 열광하는 사람은 장서 광이고, 책의 내용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애서가이다. 수집가는 책의 사소한 차이에 열광한다. 그들은 저자 친필 사인이 있는 초판본을 엄청나게 좋아한다. 수집가와 애서광의 경계는 모호하지만, 책을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는 애서광은 남이 갖고 있지 않는 책을 본인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갖고 있다[1]. 19세기 초 미국 정치가 프랭클린 토머스(Franklin Thomas)는 도서수집가인 할아버지를 가장 고귀한 질병, 애서광에 푹 빠진 분이라고 표현했다. 애서광은 고귀한 광기(gentle madness)이다.

 

톰 라비는 옷보다 책을 사는 것을 좋아했다. 톰 라비가 친구에게 서점에 같이 가자고 말했을 때, 친구는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옷을 샀던 날이 언제인지 기억나나?” 책 중독자는 기본적인 소비생활을 잊어버리거나 포기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일이 잘 없다. 영화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러나 언제든지 빌려 볼 수 있고, 사서 볼 수 있는 책이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책을 사거나 읽는 행위를 삶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책 중독자는 심책(審冊)주의자이다. 프랑스의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Francois Truffaut)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딘가 아픈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주2]. 책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 책 중독자들은 어딘가 모자란 사람들이다.

 

    

 

 

 

 

 

 

 

 

 

 

 

 

 

 

* 정희진 혼자서 본 영화(교양인, 2018)

    

 

 

 

 

 

 

 

 

 

 

 

 

 

 

 

 

 

 

*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문학동네, 2015)

*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민음사, 2008)

 

    

 

정희진폭식을 해도 괜찮고, ‘숙취도 없는 것이 바로 영화라고 했다[주3]. 책도 마찬가지다. 보들레르(Baudelaire)의 시구(詩句)처럼 술이든, 시든, 덕이든, 그 어느 것이든 취할 수 있다. 취하라! 그대가 원하는 책에. 책에 취해도 취한 것 같지 않다. 책을 많이 읽어도 지루하지 않다. 자고 일어나면 책 중독자를 유혹하는 새 책들이 나오는데 지루할 틈이 어디 있겠는가.

    

 

 

 

 

 

 

 

 

 

 

 

 

 

 

 

* 알베르토 망겔 서재를 떠나보내며(더난출판사, 2018)

 

 

책 중독자의 정체를 알고 싶으면, 그가 소중히 여기는 애독서를 살펴보면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알베르토 망겔(Alberto Manguel)서재를 일종의 자서전이라고 했다[4]. 서재에 있는 모든 책은 책 중독자의 살덩어리요, 피다. , 책 중독자는 예수가 아니다. 모든 책 중독자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책을 애지중지하게 여기는 심책주의자는 책을 빌려주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니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책 중독자 말고 책을 잘 빌려주는 마음씨 좋은 애서가를 만나길. 나처럼 어딘가 모자라고, 책밖에 모르고, 책을 빌려주지 않는 책 중독자, 심책주의자는 되도록 멀리하는 것이 상책이다.

 

 

 

 

 

[1] 플로베르, 이민정 옮김, 애서광 이야기, 범우사, 2004, pp. 62.

[2] 정희진, 혼자서 본 영화, 교양인, 2018, pp. 8.

[3] 같은 책, pp. 11.

[4] 알베르토 망겔, 이종인 옮김, 서재를 떠나보내며, 더난출판, 2018, pp. 8.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8-09-06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기억이 맞다면 cyrus님의 예전 서재 사진보다 많이 정돈된 느낌입니다^^:)

cyrus 2018-09-07 19:33   좋아요 1 | URL
제가 사진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네요. 제 서재는 아니구요, ‘읽다 익다‘ 책방에 있는 책장이에요. 책방지기님이 헤세의 글을 좋아해서 사서 모은 책들을 책방에 꽂아둔거예요.. ^^

2018-09-07 0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9-07 19:38   좋아요 0 | URL
애서광은 책의 노예라고 하던데, 이 말 그대로 굿즈광도 굿즈의 노예네요.. ㅎㅎㅎ

대부분 외국의 술 도수는 소주보다 높던데 술 잘 마시는 외국인들은 소주를 물처럼 마실거예요. 특히 러시아인들은요. ^^

sslmo 2018-09-07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겨울호랑이 말씀처럼 왜 이렇게 단출해졌죠?^^
님도 미니멀라이프들 격하게 실천하고 계신건 아니겠죠?

이제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도 살랑~ 불고 책읽기 좋은 계절입니다~^^

cyrus 2018-09-07 19:41   좋아요 0 | URL
‘읽다 익다‘ 책방지기님의 책이에요. 책방에 있는 책장을 제가 사진으로 찍은거예요. ㅎㅎㅎ

요즘은 지출이 많아서 책 구입 횟수가 줄어들었어요. 그래도 원하는 책을 만나면 반드시 구매합니다. ^^

2018-09-07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8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0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0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쉰P 2018-09-08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멈춤없이 흐르고 계시는군요. ㅎ 멋져요

cyrus 2018-09-09 20:45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저를 기억해주시고, 반가운 인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나쁜 사마리아인들 (10주년 특별판) - 신자유주의는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하나이다.

 

(누가복음 23:44)

 

 

 

세월이 지나면 경제를 이끌어가는 사상도 변한다. 경제학이 학문의 틀을 갖추기 시작하던 300년 전의 중심 사상은 시장 자유주의였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으로 믿었다. 시장이 제대로 기능만 한다면 필요 이상으로 생산이 늘어나는 일도 없어지고, 당연히 심각한 불황도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1929년 미국에 대공황이 일어나면서 시장 지상주의를 믿던 경제학이 치명적인 일격을 맞았다. 엄청나게 많은 물건이 쏟아져 나와 가격이 내려갔지만 기대와 달리 소비가 늘어나지 않았다. 공황의 여파로 이미 소비자의 구매력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을 입었고, 시장도 전혀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유례없는 경제 공황 앞에 모든 국가는 저마다의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사람들은 시장의 기능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때 시장을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것이 정부의 역할이었다. 정부가 경제 각 부분을 적절히 통제하면 심각한 경기 침체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정부의 힘도 한계를 드러냈다. 정부에 대한 믿음이 깨지면서 등장한 것이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는 시장 지상주의를 그 바탕으로 한다. 정부는 완전 방임 상태를 추구한다. 소득 재분배는 물론, 복지 정책도 정부의 역할에서 배제된다. 다시 시장에 대한 믿음이 부활한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주목받으면서 시장이 부활했지만, 어두운 그림자도 남겼다. 대표적인 문제가 빈곤불평등이다. 자본이 소수에게 집중되자, 이것을 가지지 못한 집단은 절대적인 가난에 시달렸다.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가장 바람직한 경제사상으로 행세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앞잡이들은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경제 강대국들이 자유무역 중심의 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해서 경제성장을 달성했다고 주장한다. 이제는 개발도상국들이 이 원리를 따라야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과연 옳은 것인가.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과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바로 이런 상식과 통념이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밝히고 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허구적 위상을 폭로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상처받은 자본주의를 치유하고자 한다. 그는 이 책에서 시장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들을 치밀하게 해부하면서 신자유주의 찬양론의 문제점을 드러내 보여준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자유무역 중심의 시장경제 원리를 채택해서 경제가 좋아진 선진국은 사실상 하나도 없다. 신자유주의의 앞잡이들이 그토록 찬양하는 경제 강대국 중 하나인 미국은 건국 초기 시절에 자국 기업을 보호했고, 외국인 투자를 규제했다.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은 산업육성을 위해서는 보호무역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치산업을 보호하고자 관세장벽을 쌓아 올리고, 각종 산업 보조금 제도를 도입했다. 장차 성장 잠재력은 있지만, 지금 당장은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않으니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보호해줄 필요가 있는 산업이 유치산업이다. 경쟁력이 갖추어진 다음에 자유무역으로 전환하자는 것이 해밀턴의 유치산업 보호론의 핵심이다. 이 이론은 18세기 당시 유럽보다 산업 분야의 국제경쟁력이 뒤처지고, 자본을 수입해야 했던 미국의 입장을 철저히 반영한 것이다.

 

보호무역주의를 통해 성공한 나라는 미국뿐이 아니다. ‘시장경제의 창시자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태어나고 자란 영국을 포함한 여타 선진국들도 지금은 후진국들에 자유무역과 외국인 투자 개방을 설교하고 있지만, 그들이 후진국이었을 때는 보호무역을 하고 외국인 투자를 규제했다. 그런데 보호무역주의를 이끌었던 미국이 20세기 중반 이후 패권을 잡자 자유무역주의의 전도사가 됐다.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산파역을 했다. 세계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잇달아 맺었다. 장 교수는 개발도상국들에 다가가서 신자유주의 체제의 장점을 설파하는 선진국을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비유한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노상강도에게 약탈당한 남자를 도와주는 착한 사마리아인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는 신자유주의라는 강력한 무기를 내세워 개발도상국의 경제 자유화를 요구한 사악한 삼총사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나온 지 벌써 십 년이나 지났지만, 우리나라는 경제위기 극복을 이유로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 없이 도입했다. 국유화와 복지정책은 무조건 나쁘고, 민영화와 무한 경쟁사회는 무조건 좋다는 인식이 언제부터인가 우리 뇌리에 박혀있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경제 강대국(미국)을 주축으로 한 자유 시장 교리가 오랫동안 지배해 온 탓이다. 장 교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10주년 특별판 서문에서 신자유주의는 아직도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신자유주의의 앞잡이이자 희생자로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한편에서는 이 책을 비판하는 자유 지상주의자들의 견해가 있었고, 놀랍게도 반미, 반자본주의를 주장하는 불온 도서로 지정된 적도 있다. 이 책에 찬사를 보내든 비난을 하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사회는 이미 신자유주의의 흐름 한가운데에 있으며,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이 거침없는 흐름에 너무 무감각한 것이 문제이다.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에 철저히 순응한 개인에게 돌아오는 대가는 빈곤의 늪에서 허덕이면서 타인으로부터 고립되는 비참한 삶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18-09-06 2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 정부에서 새롭게 다시 나왔네요. ^^
예전 정부에서 대표적 불온서로 낙인 찍힌 책....^^ 그나마 세상이 약간 좋아진 듯 합니다. ^^

cyrus 2018-09-07 19:43   좋아요 1 | URL
80년대에는 금서를 숨어서 몰래 읽었다면 요즘은 ‘금서목록=베스트셀러‘입니다. 장 교수의 책은 금서로 지정된 이후에 더 많이 팔렸죠. ^^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 우리가 몰랐던 원자과학자들의 개인적 역사
로베르트 융크 지음, 이충호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945년 7월 16일 새벽 4시, 미국 뉴멕시코 주 앨라모고도 부근 사막. ‘카운트다운 제로’와 함께 불덩어리가 치솟으면서 거대한 인공 햇빛이 떠올랐다.

 

 

천 개의 태양의 빛이 하늘에서 일시에 폭발한다면,

그것은 전능한 자의 광채와 같으리라.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현장에서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의 전 과정을 지켜보던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의 책임자 오펜하이머(Oppenheimer)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가 읽었던 고대 인도의 경전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ītā)》에 나오는 구절이었다. 이제 이것과 똑같은 폭탄이 24일 후 일본의 한 도시 상공에서 투하될 것이었다. 미국 정부는 투항하지 않는 일본을 쓰러뜨리기 위해 이 ‘세계의 파괴자’를 내던질 계획이었다. 나가사키 주민들은 ‘팻맨(fat man)’라는 이름이 붙여진 원자폭탄이 터지면서 쏟아낼 비극의 태양을 맞게 될 운명이었다. 눈부신 섬광, 무시무시한 버섯구름과 함께 이날 이후 인류는 자신을 파멸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되었다.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원자력이 이렇듯 막대한 인류의 재앙을 초래할지 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과거의 명저가 다시 태어났다.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은 원자핵의 실체를 밝히려는 과학자들의 지난한 여정과 원자폭탄이 만들어진 과정을 그린 논픽션이다. 이 책의 국역본은 1961년에 출간됐지만 절판되었다. 저자 로베르트 융크(Robert Jungk)는 과학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 물리학자들의 ‘아름다운 시절’과 ‘고통스러운 시절’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그들의 삶과 업적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러더퍼드(Rutherford), 아인슈타인(Einstein), 하이젠베르크(Heisenberg), 닐스 보어(Niels Bohr) 등 여러 과학자가 원자력 연구에 나섰지만, 누구도 원자핵의 힘이 엄청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미지의 에너지를 발견한 기쁨을 느낌과 동시에 원자폭탄이 가져올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두려워했다.

 

하이젠베르크는 우라늄을 핵무기의 수준으로 농축하는 일이 당시 독일의 상황에서는 매우 무리라는 것을 알고서는 안심했다. 그는 원자력 연구의 방향이 ‘전쟁터’가 아닌 ‘연구소’로 향해지길 바랐다. 하지만 독일에서 히틀러(Hitler)가 권력을 잡으면서 물리학자 사이에 두려움은 더 커졌다. 하이젠베르크도 원자폭탄을 이용한 독일의 승리를 바라지 않았다. 한편 미국의 물리학자들은 히틀러가 틀림없이 원자폭탄을 개발해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갈 것으로 생각했다. 심지어 보어는 자신의 절친한 제자이자 동료인 하이젠베르크가 나치(Nazis) 정부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에 개입했다고 의심했다.

 

1941년 하이젠베르크는 보어가 있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강연하게 되었고, 자신의 내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보어를 만나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책은 이렇게 설명했다.

 

 

불행하게도 코펜하겐에서 하이젠베르크와 보어 사이에 중요한 면담은 처음부터 꼬이고 말았다. 보어는 하이젠베르크가 자신을 위해 열린 리셉션에서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옹호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사실,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 사교계에서는, 특히 외국에서는, 개인적으로 말할 때와 다르게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하지만 보어는 전체주의 정권하의 강압적 환경에서 터득한 이중적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중략]

 

하이젠베르크는 독일 물리학자들이 느끼는 강압적인 압력을 이해해달라고 호소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서서히 조심스럽게 대화의 방향을 원자폭탄 문제로 돌렸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상대방이 같은 행동을 하기로 동의한다면 그런 무기의 제조를 막기 위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것이라고 솔직하게 선언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두 사람이 과도하게 신중한 태도로 이 문제에 접근하는 바람에 결국 대화는 목표했던 것에서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pp. 175)

 

 

보어는 하이젠베르크의 발언을 통해 독일이 원자폭탄 제조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독일 물리학자들에 대한 보어의 불신은 미국 정부에 원자폭탄을 설계해야 한다는 확실한 명분을 주었다. 진주만을 공격당한 미국의 입장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에 관여하지 않을 수 없었고, 종전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원자폭탄을 선택했다.

 

제2의 전운이 감돌기 전에 유럽의 물리학자들은 지적인 모험을 연구의 가장 큰 목적으로 삼았다. 그때야말로 학자들의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었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시절’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정치 세력 간에 대량파괴 무기를 만들기 위한 경쟁이 불붙으면서 이들이 쌓아 올린 연구 성과는 원자폭탄이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을 탄생시키는 데 활용됐다. 책은 역사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자신의 연구가 무기로 현실화하는 악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물리학자들의 고뇌와 시대적 아픔을 전달한다. 당시 과학자들이 지녔던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 과학기술의 새로운 도약을 향한 열정, 원자력의 힘에 대한 두려움 등은 가치의 우열을 가릴 틈 없이 하나의 용광로에 던져졌다. 원자폭탄은 어느 한 사람의 독창적 발명품이 아니라 혼돈의 시대가 만들어낸 현대과학의 총체였다. 이 책에 나오는 과학자들은 역사의 주인공이자 피해자였다. 혼돈의 시대는 과학자들을 연구실에서 불러냈고, 그들을 괴롭게 만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사는 냉정하다.

 

 

 

 

 

※ Trivia

 

하이젠베르크는 독일이 점령한 코펜하겐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그는 이 일을 기화로 자연스럽게 옛 스승이자 친구인 닐스 보어를 찾아갔다. (pp. 173)

 

→ ‘기화로’를 ‘기회로’로 고쳐야 한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비종 2018-09-05 0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의 면담이 성공했다면 역사가 바뀔 수 있었을까요? 조금씩 어긋나면서 묵직하게 흐르는 역사를 보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사건이었는가 싶다가도, 그래도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바뀔 여지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고 그렇습니다.
뭐든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선택의 변곡점에서 보다 나은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게 적절한 개입이 이루어질 절묘한 타이밍이요.
과학의 양면성은, 부작용이 두려워 멈추기에는 지적인 호기심이 못지 않게 강한 이들이 늘 안고 가야하는 딜레마인가 봅니다.

cyrus 2018-09-05 11:47   좋아요 0 | URL
서로 간의 오해를 불식시키면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다면 핵무기 개발 시기가 미루어졌을 거예요. 그렇게 된다면 냉전 시기에 핵무기가 만들어졌을 수도 있어요. 하이젠베르크와 보어와의 대화가 성공한다고 해도 분명 어느 시기부터 핵무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

나비종 2018-09-05 11:57   좋아요 0 | URL
핵무기에 대해서는 제 생각도 cyrus님과 같습니다. 조금 늦어졌더라도 만들어졌겠죠?ㅡㅡ;
또, 일본이 아니었더라도 그 무기를 사용할 명분을 누군가는 만들어서 어딘가에서 한 번은 터졌을 거라는 것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