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절판된 책에 대한 글을 쓴다. 미국의 착시현상 연구가인 앨 세켈(Al Seckel)의 책이다. 착시(optical illusion)는 사물의 크기 형태 빛깔 등 객관적인 성질과 눈으로 본 성질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착시를 이용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을 일루저니스트(illusionist)라고 부른다.

 

앨 세켈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착시에 관한 강연을 했는데, 2007년 강연플랫폼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에 강연한 적도 있다. 그는 강연 활동뿐만 아니라 저술 활동도 해왔다. 주로 착시 현상이 나타나는 그림을 모아 소개하는 책들을 펴냈다. 2015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절판] 앨 세켈 당신의 눈은 믿을 수 없다(김영사, 2002)

* 앨 세켈 Art Of Optical Illusions(Carlton Publishing Group, 2000)

* 앨 세켈 The Ultimate Book of Optical Illusions(Sterling Pub Co Inc, 2006)

    

 

당신의 눈은 믿을 수 없다(김영사, 2002)는 국내에 유일하게 번역된 세켈의 책이다. 이 책의 저본은 2000년에 출간된 Art Of Optical Illusions이다. 저자는 착시 예술 전시장을 둘러보는 느낌을 주기 위해 장() 대신 갤러리(Gallery, 화랑)로 표현했고, 총 네 개의 갤러리로 구성되었다. 149개의 착시 그림 도판이 수록되었다. 한 장이 끝나면, 그 뒤에 공개된 착시 그림에 대한 저자의 짤막한 설명이 나온다.

 

2002,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이 책을 동네 도서관에 빌려서 읽은 적이 있다. 십 년 넘게 이 책의 존재를 잊고 지냈다. 망각의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저자와 책의 제목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다행히 그 책이 붉은색 표지였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었다. 세켈의 책을 다시 보고 싶어서 도서관 자료실을 샅샅이 확인해봤지만 찾는 데 실패했다. 십여 년 전에 나온 책이었으니 오래된 책을 따로 보관하는 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으면 이 책을 영영 못 찾았을 것이다. 책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인터넷에 검색했고, 열심히 검색한 끝에 저자와 책 제목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도서관에 세켈의 책이 있는지 정확한 제목을 입력해서 검색해봤는데 자료실에 없는 책으로 나타났다. 분명히 나는 도서관에서 세켈의 책을 빌렸다. 그런데 그 책은 어느새 유령 책이 되었고, 놀랍게도 내 대출 내역에 세켈의 책을 빌린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다. 저자와 책 제목을 잊었을 뿐이지 그 책을 빌렸던 일은 기억하고 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서 내가 착각한 것일까? 내가 중학생 시절에 내 집처럼 자주 드나들었던 도서관은 세켈의 책을 발견했던 그곳뿐인데…‥.

 

지난주에 일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우주의 기운을 받아 절판된 세켈의 책을 구입하는 데 성공했다. ‘책 운수가 좋았는지 알라딘 서점에서 미국 원서(The Ultimate Book of Optical Illusions)를 구입했다. 원서는 국역본보다 도판이 많지만, 국역본에 있는 도판도 몇 개 있다. 2006년에 출간된 원서는 그전에 나왔던 책들을 한 권으로 합본한 책으로 추정된다.

    

 

 

 

 

 

 

 

 

 

 

 

    

 

 

* 진중권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1(휴머니스트, 2014)

* 진중권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2(휴머니스트, 2014)

* 진중권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3(휴머니스트, 2014)

 

 

 

 

 

 

 

 

 

 

 

 

 

 

 

* 진중권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휴머니스트, 2005)

    

 

 

 

 

 

 

 

 

 

 

 

 

 

 

 

 

 

 

 

 

 

 

 

 

* 셀린 들라보 착각을 부르는 미술관(시그마북스, 2012)

* [절판] 이연식 눈속임 그림(아트북스, 2010)

* [품절] 로버트 휴즈 마그리트 명작 400(마로니에북스, 2008)

* 로버트 휴즈 달리 명작 400(마로니에북스, 2008)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조반니 피라네시(Giovanni Battista Piranesi),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등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장면을 즐겨 그린 화가이다. 착시 효과를 이용한 회화 기법은 이미 17세기부터 유행했고, 실물로 착각할 정도로 정밀하고 생생하게 묘사한 그림을 트롱프뢰유(trope l’oeil, 눈속임 그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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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가 2018-09-15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님 멋있네요 한방에...

cyrus 2018-09-16 08:08   좋아요 0 | URL
운이 좋았습니다.. ^^;;

레삭매냐 2018-09-15 2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절판도서 사냥꾼 싸이러스님 !

트롱프뢰유, 어디선가 읽어본 것 같은데
당최 기억이 나지 않네요. 어디서 봤을까요?

전 어제 업어온 조너선 스펜스의 <무질서의
지배자 마오쩌둥>을 읽기 시작했답니다 ~

재밌네요.

cyrus 2018-09-16 08:12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은 중국사 읽기에 도전하시는군요. 저는 일본사.. ㅎㅎㅎ

페크pek0501 2018-09-20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의 눈은 믿을 수 없다》- 저는 제 눈도 믿지 않고 제 기억도 믿지 않습니다. ㅋ

cyrus 2018-10-19 11:3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작년에 했던 일은 금방 잊어버려요.. ㅎㅎㅎ

2018-10-18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19 11:32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제가 ‘애늙은이’ 소리 듣습니다.. ㅎㅎㅎㅎ 성격이 무미건조한 편이라 글도 무미건조해요.. ^^;;
 

 

 

현대 사회는 무수히 많은 성 담론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무수한 성 담론이 지금도 사회구성원을 끊임없이 갈등상태로 몰아넣거나, 이야기되고 있다. 성 담론은 어디에서 생겨났으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역사적인 고찰에 따르면, 성 담론이 활발하게 전개된 것은 19세기 후반부터이다. 크라프트에빙(Kraft-Ebing)으로 대표되는 성과학이 발달하면서 비로소 성은 과학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성에 관한 광범위하고 진지한 토론이 가능한 분위기를 만들었으나 성을 의학적 지식으로만 설명하고 분류하는데 그쳤다. 섹슈얼리티(sexuality, 성욕과 성 행위에 연관된 여러 제도와 규범, 생각들의 총체)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혀준 것은 정신분석학이다. 프로이트(Freud)를 통해 우리는 성을 생물학적 대상에서 벗어나 성적 욕망을 인간의 정신으로부터 설명해낼 수 있게 됐다.

 

일반적으로 성 해방은 성과 생식의 분리로 여성들이 자신의 욕망에 솔직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본다. 경구용 피임약의 보급과 시험관 아기의 탄생, 그리고 비아그라의 시판 등은 출산이나 성이 더 이상 남성의 소관이 아님을 보여줬다. 현대사회의 성은 남녀 모두의 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됐다. 그러나 섹슈얼리티의 해방은 멀고 험하다. 남성과 여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의 사람들을 고정된 이분법적 성 역할(남성과 여성)에 끼워 맞추려 한다. 인간은 여성 아니면 남성으로 태어나 이성의 짝과 혼인하고 자녀를 출산해야 한다는 오랜 통념 때문에 아직도 자신과 다른 성 정체성과 삶을 선택한 이들을 ‘일탈자’로 간주한다. 1960년대에 들어 이성애에 내재한 성 불평등성이 주목받으면서 ‘정상적 삶’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들게 됐다.

 

 

 

 

 

 

 

 

 

 

 

 

 

 

 

* 수잔 스트라이커 《트랜스젠더의 역사》 (이매진, 2016)

* 게일 루빈 《일탈 : 게일 루빈 선집》 (현실문화, 2015)

* [품절] 플로랑스 타마뉴 《동성애의 역사》 (이마고, 2007)

 

 

 

1969년 미국에서 일어난 스톤월 항쟁(Stonewall riots) 이후 레즈비언, 게이, 트랜스젠더, 양성애자들의 인권운동이 조직되었다. 또한 70~80년대에 일어난 페미니즘의 두 번째 물결을 통해 이성애 가족 중심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대대적인 비판이 이뤄지고, 공공 영역에서 성 정체성에 따른 제한을 해제하라는 집단적 압력이 조직화하는 변화들이 일어났다. 70년대에 레즈비언 사도마조히스트라고 커밍아웃한 페미니스트 게일 루빈(Gayle Rubin)은 ‘일탈’로 치부되는 섹슈얼리티 문제를 이론에 국한하지 않고, ‘실천’의 문제로 전환하는 데 노력했다. 그녀는 ‘정상적인 섹슈얼리티’로 분류되는 ‘이성애, 혼인 관계, 돈을 받지 않는 섹스’의 기준에서 벗어난 ‘동성애, 혼외 관계, 사도마조히즘, 성매매 등’의 주변화가 여성과 성소수자를 억압하게 만드는 근거로 작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빌헬름 라이히 《성 혁명》 (중원문화, 2011)

* [절판] 빌헬름 라이히 《성 정치》 (중원문화, 2012)

* [절판] 빌헬름 라이히 《오르가즘의 기능》 (그린비, 2005)

* 마이런 섀라프 《빌헬름 라이히》 (양문, 2015)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을 결합하려 했던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성 혁명》이라는 책에서 ‘성에 대한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면, 가부장제를 파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라이히는 프로이트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정신분석학자였다. 그랬던 그가 ‘오르가즘(orgasm)을 성적 절정 상태가 아닌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생체 에너지라고 주장하면서부터(그의 급진적 주장은 《오르가즘의 기능》이라는 책에 요약되어 있다) 프로이트와의 관계가 멀어졌다. 학계의 냉담한 반응 속에서도 라이히는 마르크스주의에 프로이트의 성적 욕망 개념을 넣어 성 관념이나 도덕 윤리를 억압하는 기존의 질서를 해체하려고 했다. 이것이 개인의 성욕을 억누르는 사회적 제약을 해체하고, 성 해방을 실천하는 성 정치학이다. 그러나 청소년의 성을 인정하고, 대중을 성적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주장하는 성 정치 운동을 전개하다가 공산당에서 제명된다.

 

 

 

 

 

 

 

 

 

 

 

 

 

 

 

* 미셸 푸코 《성의 역사 1 : 지식의 의지》 (나남출판, 2010)

 

 

 

라이히는 17세기에 시작된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성 억압이 인류의 성을 짓누르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19세기에 성 억압이 조금씩 느슨해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라이히의 주장을 ‘가설’로 바라보면서 비판한다. 그는 3세기 동안 성 억압으로 인해 성 담론은 위축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증가했다고 주장한다. 푸코는 《성의 역사》를 통해 성 담론이 사회 질서를 규제하고 통제하는 권력의 수단으로 동원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푸코가 언급한 성 담론은 ‘섹슈얼리티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사회는 섹슈얼리티에 대해 말하도록 강요했는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성 담론은 ‘고백’의 형태로 발전한다. 19세기는 성에 관한 상투적인 담론들이 지배하는 한편으로 혼란스러운 성의 폭주가 범람하고 있었다. 성에 관련한 고백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푸코가 보기에 고백 형태의 성 담론은 성 해방의 징후가 아니라 그 사회 안에서 섹슈얼리티를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도록 유도하는 권력이다.

 

 

 

 

 

 

 

 

 

 

 

 

 

 

*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16)

 

 

 

19~20세기에 일어난 섹슈얼리티의 변화는 과연 ‘성 해방’이라 부를 만큼 혁명적이었을까? 성 해방 운동을 가부장 · 이성애 중심의 권력에 대한 저항의 기치로 보는 것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임신과 출산 등 재생산에만 초점을 맞춘 ‘정상 가족’ 중심 담론과 성소수자를 가혹하게 배제하는 차별 및 혐오 담론은 다양한 형태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비혼 여성은 ‘결혼 안 하는 페미니스트’로, 성소수자는 ‘정신병자’로 성급하게 단정하면서 조롱하는 문제는 사회 곳곳에 있는 권력의 결과로 드러난 오래된 현상이다. 이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것은 우리의 인간관계 속에 있다. 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우리 내면의 권력. 이 권력이 작동되고 있는 사회에는 감시, 낙인, 처벌, 배제, 혐오의 담론이 있을 뿐 서로의 차이를 포용하는 담론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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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4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9-15 11:51   좋아요 0 | URL
섹스와 자본주의의 밀착 관계도 살펴봐야 하는데, 제가 거기까지 다루지 못했어요. 말씀하신 대로 섹스와 자본주의의 관계가 워낙 어마어마해서 이 관계를 살펴보려면, 참고해야 할 책이 많을 것입니다. ^^;;

2018-09-14 1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5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못생긴 여자의 역사
클로딘느 사게르 지음, 김미진 옮김 / 호밀밭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백설 공주』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이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동화이다. 공주와 이를 시기하는 계모 사이의 갈등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 백설 공주 이야기는 일곱 난쟁이, 진실을 말하는 거울, 독 사과 등 상상적 소재들이 첨가되어 이야기의 재미를 더한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교훈까지 보여주고 있어 더없이 좋은 동화로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백설 공주 이야기 같은 전래동화는 아이들에게 여성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심어주기도 한다. 동화 속 계모는 어린 딸을 미워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백설 공주는 하얀 피부와 붉은 앵두 같은 입술을 가진 아리따운 모습이다. 계모는 백설 공주의 타고난 미모를 질투한다. 동화 속에서 여성은 착하고 예쁜 여성 아니면 나쁘고 못생긴 여성으로 그려진다. 또 여성을 괴롭히는 존재는 또 다른 여성, 즉 못생기고 성질이 고약한 여성이다.

 

계모의 질투심에 불을 지른 건 자신보다 백설 공주가 더 예쁘다고 일러바친 거울이다. 사실, 동화 『백설 공주』에서 악의 근원은 계모가 아니라 거울이다. 거울이 만들어지고부터 인간은 비로소 자기를 깊이 인식하고 또한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자기 얼굴을 알게 된 인간은 외모에 대한 우월과 차별을 알게 되었고 화려함과 누추함에 대해서도 자각하게 되었다. 거울은 나르시시스트(narcissist)를 양산하기도 했지만, 인간 대부분을 자기 혐오증에 빠져들게 했다.

 

과거에 남성은 외모보다는 주로 능력이나 성격으로 평가되었다. 요즘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하다 보니 남성도 외모가 중요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성은 마치 무슨 ‘사명감’처럼 무조건 예뻐야 하는 부담감을 짊어진 채 살아왔다. 여전히 여성은 사회적 · 경제적 능력보다 외모에 많은 가치 기준이 부여되고 있다. 여성들은 끊임없이 외모에 대해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유독 여성의 외모에 더욱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시선은 현대인만의 특징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못생긴 여자의 역사》는 여성의 외모를 향한 평가와 혐오의 역사를 추적하고, 여성을 왜곡한 역사와 문화를 비판한다. 추함, 즉 ‘못생긴 여자’는 남성 중심의 공적인 역사에서 외면당하고 박해받았다. 이 책을 쓴 저자 클로딘느 사게르(Claudine Sagaert)는 못생긴 여자가 부정적인 존재로 규정되는 과정을 시대적으로 구분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추한 존재였다. ‘여성은 신체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하게 태어났다’는 엉터리 통념이 이때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여성의 신체적 특성 때문에 사회적으로 열등할 수밖에 없다는 통념은 여성의 열등한 면뿐만 아니라 여성의 추함을 주장하는 근거로 작용했다. 고대 그리스인, 그리고 더 나아가 중세 시대 사람들이 생각한 여성의 ‘추함’은 신체적으로 추하고, 도덕적으로 추한 것을 의미했다. 노파와 마녀는 여성의 근본적인 추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존재로 미술에서 묘사됐다. 근대에 이르게 되면서 교양 없고, 자기 관리에 소홀한 여성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노처녀, 똑똑한 독신녀, 페미니스트 같은 전통적 여성성에 벗어난 여성은 ‘못생긴 여자’로 취급받았다. 현대에 들어서도 ‘못생긴 여자’에 대한 남성 중심적 시각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시각은 못생긴 외모를 개인의 문제로 본다.

 

추한 것, 조화롭지 못한 것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이다. 다만 이런 것에 대한 수용 능력이 부족한 사회가 문제다. 아름다움과 추함은 개개인의 정체성을 구분하고 확정 짓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추함을 거부하고 조롱하는 반응은 아름다움을 열렬히 추구하는 사회의 또 다른 역설이다. 이러한 기나긴 역설은 ‘못생긴 여자의 역사’가 반증한다. 이는 곧 아름다움 자체가 권력이 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나이 듦이 연륜이 아닌 추함으로 여겨지고, 복원될 수 없는 아름다운 젊음을 성형을 통해 조형하도록 요구하는 이 사회에서 여성은 어떤 이유로든 추함에 대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남성은 외모를 근거로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분해온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남성의 편파적인 외모 평가는 여성을 무시하는 ‘예의 없는’ 태도이다. 나 또한 ‘예의 없는’ 남성으로 외모 차별에 연루되었음을 깊이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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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3 1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9-14 12:20   좋아요 0 | URL
서구인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하얀 피부는 백인, 까무잡잡한 피부는 흑인으로 구분합니다. 흑인들도 피부색에 대한 차별을 견디지 못해서 하얀 피부를 동경하기도 합니다.

페크pek0501 2018-09-13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 님 같은 분만 이 세상에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는 생각이...

cyrus 2018-09-14 12:21   좋아요 0 | URL
제 혼자 이 세상에 있으면... 오래 못 살고 죽어요... ㅎㅎㅎㅎ

세상틈에 2018-09-13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백설공주 읽고는 같은 생각을 했네요.^^ 흥미로운 책 보관함에 넣어봅니다.

cyrus 2018-09-14 12:22   좋아요 0 | URL
공주가 주인공으로 나온 동화에 보면 악녀는 못생긴 외모로 나옵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대부분 사기꾼은 호감형 인상을 가지고 있거든요. ^^;;

조그만 메모수첩 2018-09-13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은 존재 자체를 추하게 여겼는데(그리하여 열등한 존재), 지금 읽고 있는, 기원후에 정리된 <변신이야기>에선 여성들의 관능적 아름다움을 강조하는데(이며 이 아름다움은 남자들의 약탈 또는 착취대상이 되네요. 아름다운 소년도 마찬가지) 이 변화는 언제 어떻게 일어난 걸까 글을 읽으면서 문득 궁금해졌어요.

cyrus 2018-09-14 12:25   좋아요 1 | URL
그리스인들은 신화 속 여성, 즉 신비로운 여성의 아름다움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조각가들은 벌거벗은 여신을 묘사한 조각상을 만들었고, 남성들은 공개적으로 여성의 몸을 볼 수 있었어요.

힐리 2018-09-17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호밀밭 출판사 편집자 박정오입니다. 저희 책에 관심 가져주시고 이렇게 정성스러운 서평까지 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cyrus 2018-09-17 12:23   좋아요 0 | URL
서평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 반철학사 4
미셀 옹프레 지음, 남수인 옮김 / 인간사랑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반(反)철학사’ 시리즈 네 번째 책이다. 이 책에서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철학의 계보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제도권 지식인층에 밀려난 급진적 사상가 여섯 명의 생애와 철학을 재조명한다.

 

계몽주의 시대는 무엇인가? 계몽주의는 18세기 유럽에서 광범하게 일어난 지적 사상운동이다. 프로이센(Prussia)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Frederick II)[주]를 비롯해 당대의 많은 사람은 “새로운 시대가 문을 두드린다”는 볼테르(Voltaire)의 외침에 심취했다. 당시 유럽의 지성인들에게 볼테르를 만나는 것은 철학자 혹은 계몽주의자로 인정받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계몽주의 시대는 ‘이성의 시대’였고, ‘빛의 시대’였다. 종교가 지배하는 계몽주의 이전은 자연과 신에 대한 질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세계 속에 존재하는 개인은 자연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신의 뜻에 의해 움직인다고 보았다. 그러나 계몽주의가 등장하면서 전 세대보다 밝아진 이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계몽주의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 자유권을 강조함으로써 중세를 지배한 전제군주와 종교의 독단적 권력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런데 옹프레는 18세기를 새롭게 규정한다. 그는 18세기가 봉건적 시대, 군주 왕정 시대, 가톨릭 시대였다고 주장한다. 볼테르, 루소(Rousseau), 디드로(Diderot) 등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이 철학자들은 자유와 관용을 호소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교육을 받고 재산을 소유한 사람, 따라서 이성을 자유롭게 활용할 줄 아는 부르주아였다. 옹프레는 계몽주의자들을 ‘겁쟁이’라고 비판한다. 언행 불일치. 계몽주의자들은 말(생각)만 앞세우고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사유재산제, 군주 및 가톨릭 권위에 순순히 따르는 보수주의자였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은 유럽 계몽주의의 정점이었을까? 옹프레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는 18세기가 프랑스 혁명을 준비하는 시기로 보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 뿌리 깊은 기독교의 권위를 단호하게 공격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종교를 신뢰하는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무신론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급진적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무신론자’라는 오명을 씌우게 된다.

 

장 멜리에(Jean Meslier)는 ‘무신론자’ 사제이다. 옹프레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18세기를 폭파시킬만한 다이너마이트를 가진 사상가였다. 멜리에는 무신론자였을 뿐만 아니라 재산과 토지 공동 소유를 주장한 공산주의자이기도 했다. 라 메트리(La Mettrie)는 데카르트(Descartes)의 심신 이원론을 비판하며 인간에 대해 철저하게 유물론적인 정의를 내세운다. 그는 인간 역시 기계이며 인간의 정신은 뇌의 물질적인 작용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멜리에와 라 메트리는 급진적 유물론자이다. 모페르튀이(Maupertuis), 엘베시우스(Helvètius), 돌바크(d’Holbach)도 유물론자이지만, 이 세 사람은 공리주의적 입장을 드러낸다. 엘베시우스는 화폐의 폐지, 공산주의 유토피아에 반대했지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한 점진적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무신론자가 확실한 돌바크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이 신과 종교를 발명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계몽주의 지식인들이 모여 만든 《백과전서》의 편찬자였고, 이 책에 400개의 주석을 달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백과전서》 집필에 참여한 루소와 볼테르는 무신론자들을 공격했고, 무신론자를 비난한 내용이 있는 《백과전서》 항목이 기재되기도 했다. 옹프레는 이 책에서 ‘계몽주의 시대의 희생자’ 또는 ‘해방자’로 재평가받는 사드(Sade)를 비판한다. 그는 사드가 성범죄자이며 파시즘의 전체주의적 · 우생학적 속성을 이해한 ‘봉건주의의 화신’이라고 주장한다. 사드의 작품 속에 나타난 파시즘의 속성을 제대로 보지 못한 사드 옹호론자들에게도 가차 없이 비판을 가한다. 사드의 소설을 읽기 전에 사드의 봉건주의적 사상을 분석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반드시 읽어볼 것!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이 이룩한 문화와 문명에 고취되어 인간의 이성을 바탕으로 문화와 문명을 진보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세상을 확 바꿀만한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서 있던 자리는 자유와 평등을 외친 민중이 모인 광장이 아니라 귀족을 알현하는 안락한 실내였다. 볼테르가 자신에게 연금을 주는 귀족의 방에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가. 인간의 이성이 굳어지면 또 다른 권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성은 속박에 갇힌 모든 사람을 위한 만능의 열쇠가 아니다.

 

 

 

[주]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에서는 프랑스식 표기에 따라 ‘프레데릭 II세’라고 되어 있다.

 

 

 

 

 

※ Trivia

 

‘인간사랑’ 출판사에 나온 책에서 유독 오자 한두 개가 발견된다.

 

 

 옹프레는 18세기의 철학을 기술하기에 앞서 18세기는 이 세기의 말엽인 1879년에 일어난 프랑스의 대혁명을 준비한 시대라고 설정한다. (10쪽)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256쪽에 있는 ‘타르수수의 바오로’를 ‘타르수스(Tarsus)의 바오로’로 고쳐야 한다. 287쪽의 ‘에피큐로스’는 에피쿠로스(Epikuros)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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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9-13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소가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낸 걸 이해하게 되었어요. 잘못 생각했다고 시인한 대목이 뭉클합니다. 팟캐스트에서 들었어요. 나쁜 마음으로 그런 건 아니라 오판했다는 거죠. 저는 믿습니다.

요즘 스피노자에 빠졌어요. 아니 더 빠져 살 예정입니당~~

cyrus 2018-09-14 12:28   좋아요 0 | URL
철학을 공부하기 전에 철학자의 생애를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 그 사람이 왜 철학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고, 인간다운 결점도 알 수 있어요. 저도 스피노자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일단 먼저 데카르트의 철학부터 공부하려고 해요. ^^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가장 궁극적인 철학적 혹은 종교적 질문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나의 정체성을 묻는 것이다. 나의 정체성을 알려면 그 ‘나’라는 존재 속에 채워진 내용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 내용은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치부를 포함한다. 이렇게 시간을 중심으로 나의 정체성을 묻는 실마리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고백록》을 통해서 했던 작업이다.

 

 

 

 

 

 

 

 

 

 

 

 

 

 

 

 

 

 

*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대한기독교서회, 2003)

* 문시영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읽기》 (세창미디어, 2014)

 

 

 

《고백록》이 고전이 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젊은 시절 자신의 방탕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참회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책에 보여준 그의 신앙 고백은 신학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다. 《고백록》에서 완성된 신학은 역사에서 사라진 수많은 교부(敎父) 중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던 아우구스티누스를 기독교 역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교부로 재탄생시킨 힘이 된다. 오늘날 기독교 하면 떠오르는 ‘원죄설’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확립한 것이다. 창세기에서 아담(Adam)하와(Ḥawwāh)가 선악의 열매를 먹으면서 원죄를 짓게 되었고, 인간은 신으로부터 소외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세기를 인간의 속박에 관한 이야기로 읽고,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자신에 내재한 죄를 스스로 극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신의 도움, 즉 구원을 받을 존재이다.

 

아우구스티누스만큼 자신의 내면세계를 잘 분석한 사람도 없다. 결국 아우구스티누스가 알고 싶었던 ‘나’는 죄를 짓고 살아왔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이다. 《고백록》을 읽어보면 그가 어렸을 때 지은 범죄와 그 범죄의 원인에 대한 분석이 기록되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나무에 달린 배를 훔친 절도 행위의 동기에 대하여 분석했다(《고백록》 제2권 4장). 자기가 배를 따 먹은 것은 배가 고파서일까? 아니면 훔쳐서 팔고 싶어서였을까? 그는 배를 따서 맛만 보고는 모두 버렸다. 그러면 왜 배를 훔쳐 먹었을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인간 내면의 원죄 의식에서 찾았다. 인간 내면에는 원죄 의식이 자리 잡고 있고 이것 때문에 죄를 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 [품절] 일레인 페이절스 《아담, 이브, 뱀》 (아우라, 2009)

* G. R. 에번스 《중세의 그리스도교》 (예경, 2006)

 

 

 

종교사학자 일레인 페이걸스(Elaine Pagels)는 자신의 책 《아담, 이브, 뱀》(아우라, 2009)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설이 기독교 교리의 근간으로 자리 잡게 된 과정과 그 역사적 배경을 설명한다. 이 책과 관련해서 기독교인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준 기독교의 변천 과정을 압축해서 정리한 《중세의 그리스도교》(예경, 2006)도 참고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설은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확립되던 시기에 가장 중요한 교리로 발전하게 됐다. 초기 기독교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던 ‘소수의 종파’였고, 이로 인해 숱한 박해를 받았다. 박해를 받아 수많은 순교자를 낸 기독교는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Constantinus I)밀라노 칙령으로 공인을 받으면서 신앙의 자유를 보장받았다. 그 뒤 여러 가지 난관이 있었으나 이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로마에 기독교가 합법화되면서 기독교는 대중적인 종교로 발전한다.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교부들은 교회에 들어온 신자들을 가르치는 과거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그리하여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는가?’를 가르치기 위해 《고백록》을 쓰게 된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사악한 존재이므로 인간의 자유의지는 왜곡될 수 있다. 이게 바로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을 통해 증명한 범죄의 원인이며 ‘원죄설’을 입증하는 증거이다. 페이걸스는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발전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설은 개인을 통제하는 정치적 수단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주장은 권력과 종교의 야합, ‘권력화된 종교’를 새삼 떠올리게 한다. 기독교는 과거를 잊은 듯 권력자 또는 박해하는 자의 위치가 되어 다른 종교에 대해 비관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서구에서 타인의 종교를 인정하는 관용이 자리 잡는 것은 백여 년간 지속한 종교전쟁의 값비싼 희생을 치른 후의 일이다.

 

 

 

 

 

* Trivia

 

선한용 신부가 번역한 《고백록》은 2003년에 ‘문화관광부(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추천우수학술도서’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이 책에 고쳐야 할 오류가 있다.

 

68쪽 역주는 유노(Juno)‘주피터(Jupiter)이자 부인’으로 설명되어 있다. 유노는 로마 신화의 최고 여신이며 그리스 신화의 헤라(Hera)와 같은 인물이다. 주피터는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Zeus)의 동일 인물이다. 주노가 주피터의 부인인 건 맞다. 그러나 주피터의 딸은 아니다. 주노는 주피터보다 먼저 태어난 누나이다.

 

 

 

 

 

 

 

 

 

 

 

 

 

 

 

 

 

 

* 아풀레이우스 《황금 당나귀》 (현대지성, 2018)

* [구판 절판] 아풀레이우스 《황금 당나귀》 (매직하우스, 2007)

 

 

 

오자는 아니지만, 79쪽 역주에는 《황금 당나귀》(현대지성, 2018)의 저자 아풀레이우스(Apuleius)‘아플레이우스’라고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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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2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9-12 17:27   좋아요 1 | URL
태어난 순간부터 원죄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비관적인 생각 아닐까요? 요즘 쾌락주의자, 이신론자에 관한 책을 읽어서 그런지 종교의 교리에 맞춰가면서 사는 삶이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