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은 아메리카 대륙을 놓고 희비가 엇갈리는 해였다. 콜럼버스(Columbus)를 보내 이 대륙의 실체를 확인한 스페인에게는 강대국으로 도약하는 역사적인 해로 여겼다. 하지만 그곳에서 잘살고 있었던 원주민(Native Americans)들에게는 고난을 예고하는 불행의 해였다. 이른바 ‘신대륙 발견’ 이후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을 철저히 파괴되었다. 문명이라는 허울 속에 원주민들의 삶과 역사는 모조리 짓밟혔고, 지금은 일부 후손들만 살아남아 보호 구역에서 살아가고 있다.

 

 

 

 

 

 

 

 

 

 

 

 

 

 

 

 

 

*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 (사계절, 2000)

*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 (서해문집, 2004)

 

 

 

콜럼버스는 대서양 횡단이 세계 역사를 바꾸는 항해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그는 새로운 땅보다 황금에 더 관심이 많았다. 콜럼버스는 마르코 폴로(Marco Polo)가 언급한 ‘지팡구(Jipangu, Zipangu)를 찾고 싶어 했다.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일본을 ‘황금의 나라’로 소개했다. 그가 ‘일본은 막대한 금을 생산하고, 그곳의 궁전이나 민가는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다’라는 식으로 기록한 덕에 지팡구는 한때 유럽인들에게 미지의 세계로 인식된 바 있다. 콜럼버스는 죽기 전까지 자신이 본 아메리카를 인도의 일부(Indias, 인디아스)라고 여겼고, 바하마 제도에 속한 여러 섬과 쿠바를 지팡구나 중국 정도로 생각했다.

 

 

 

 

 

 

 

 

 

 

 

 

 

 

 

 

 

 

 

 

 

 

 

 

 

 

 

 

 

 

 

* 콜럼버스, 라스 카사스 엮음 《콜럼버스 항해록》 (범우사, 2000)

* 콜럼버스, 라스 카사스 엮음 《콜럼버스 항해록》 (서해문집, 2004)

* [절판] 라스 카사스 《인디아스 파괴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 (북스페인, 2007)

* 김선욱, 박병규 엮음 《항해와 정복》 (동명사, 2017)

 

 

 

 

콜럼버스는 지팡구로 가는 거창한 항해 계획을 실현하는 데 10년의 긴 세월을 허비하였다. 재정적 후원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태어나서 자란 15세기 이탈리아는 수많은 작은 도시국가로 쪼개져 있었기 때문에 어느 한 나라도 막대한 비용이 드는 그의 항해 사업을 도울만한 국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결국 콜럼버스는 스페인의 후원에 의존하게 됐다. 스페인은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이슬람 세력에 의해 여러 왕국으로 분열되었지만,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여왕(Isabel I)과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Fernando II)의 연합군이 주도한 영토 회복 운동(Reconquista)이 성공하면서 통일을 이룩했다. 콜럼버스는 이 스페인 공동 왕(가톨릭 양왕)에게 자신의 항해 사업을 제안했고, 공동 왕은 그에게 항해를 후원하기로 약속했다. 그리하여 1492년에 콜럼버스는 세 척의 배를 이끌고 첫 번째 항해에 나서게 되었다. 《콜럼버스 항해록》은 1492년 8월 3일부터 1493년 3월 15일까지 220여 일의 1차 항해의 경위를 기록한 책이다. 현재 이 책의 원본은 분실되었고,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Bartoleme de las Casas) 신부가 이 원본의 내용을 요약한 필사본만 남아 있다. 그래서 현재 전해지고 있는 콜럼버스의 항해 일지는 라스 카사스 신부가 편집한 것이다. 라스 카사스 신부는 ‘인디언의 보호자’란 별명을 얻을 만큼 원주민의 인권을 위해 애쓴 성직자다.

 

국내에 2종의 《콜럼버스 항해록》 번역본이 있다. 범우사 판은 라스 카사스 신부가 항해 일지에 직접 단 주석들까지도 옮겼다. 서해문집 판도 라스 카사스의 주석이 나오긴 하지만, 주석이 빠진 내용(1493년 1월 15일 자)도 있다. 신부는 3인칭 시점으로 (콜럼버스) 제독은 ~을 했다”는 식으로 항해 일지를 기록했는데, 범우사 판은 이 서술 방식을 그대로 옮겼다. 반면 서해문집 판은 콜럼버스가 화자인 1인칭 시점의 일기체 형식(“나는 ~을 했다”)으로 편집되어 있다. 서해문집 판의 장점은 고대 문명과 신대륙 항해에 관련된 풍부한 도판이다. 그래서 읽으면 지루하지 않다. 콜럼버스가 항해에 나서게 된 역사적 배경과 고대 원주민의 문화에 대해서 충실히 설명돼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문화뿐만 아니라 덤으로 아스테카 문명과 마야 문명의 문화도 소개하고 있다. 항해 일지 속에 콜럼버스가 스페인 공동 왕에게 보낸 서한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 서한 역시 콜럼버스 항해(총 네 차례)의 과정을 가늠할 수 있는 문헌이다. 《항해와 정복》(동명사)에 콜럼버스가 쓴 서한들이 수록되어 있다.

 

 

 

 

 

 

 

 

 

 

 

 

 

 

 

 

 

 

 

 

 

 

 

 

 

 

 

 

 

 

 

 

 

 

* [절판] 앤서니 그래프턴 《신대륙과 케케묵은 텍스트들》 (일빛, 2000)

* [절판] 가일스 밀턴 《수수께끼의 기사》 (생각의나무, 2003)

* 존 맨더빌 《맨더빌 여행기》 (오롯, 2014)

* 움베르토 에코 《전설의 땅 이야기》 (열린책들, 2015)

 

 

 

“책 속에 세상이 있다”라는 말이 있듯이 책은 여행과 탐험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옛사람들이 남긴 여행기와 항해 일지는 여행과 모험의 취향을 자극했다. 절판된 《신대륙과 케케묵은 텍스트들》 (일빛)은 고대의 옛 문헌들이 대항해 시대에 끼친 영향을 조명한 책이다. 이 책의 제목에 들어있는 ‘케케묵은 텍스트’란 고대에 만들어진 지도, 지리서, 여행기 등을 뜻한다. 콜럼버스는 ‘탐험가’ 이전에 《동방견문록》과 고대인들의 지리서를 탐독했던 ‘독서가’였다. 콜럼버스 같은 항해가들은 처음에 옛 문헌들을 탐독하면서 미지의 세계를 동경했지만, 그곳을 직접 관찰하고 확인하면서부터 지리에 대한 옛사람들의 생각이 허구임을 깨달았다.

 

《동방견문록》 다음으로 널리 읽힌 《맨더빌 여행기》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서술의 차원을 넘어 세계 일주가 가능하다는 확신을 심어준 책이었다. 존 맨더빌(John Mandeville)은 1322년 예루살렘 성지 순례에 나섰고 무려 34년이 지나서야 영국으로 다시 돌아온 인물(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이다. 그는 성지뿐만 아니라 인도와 중국, 자바와 수마트라까지 다녀온 여정을 기록으로 남겼고, 그가 쓴 여행기는 수백 개의 사본이 나올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수수께끼의 기사》 (생각의나무)는 ‘여행기의 저자’이자 ‘기사’로 알려진 존 맨더빌의 정체를 추적한 책이다.

 

‘케케묵은 텍스트’는 사실과 거짓, 과장이 뒤섞여 있지만, 유럽 너머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는 충분했다. 콜럼버스도 이 책을 읽고 항해를 위한 영감을 얻었다. 탐험가들은 여행을 통해 확실한 지식을 얻고 나서부터 세계를 설명하는 ‘권위 있는 문헌’이었던 과거 지리서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게 된다. 한 사람이 ‘독서가’(또는 ‘몽상가’)에서 ‘탐험가’로 변모하는 과정은 책에만 의존하지 않고, 경험과 관찰을 중시하는 근대적 지식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콜럼버스를 ‘근대적 지식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전설의 땅 이야기》 (열린책들)에 콜럼버스를 지상 낙원을 찾고 싶었던 ‘중세의 마지막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콜럼버스의 한계를 지적한 그의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니다. 콜럼버스는 스페인 공동 왕에게 3차 항해의 결과를 보고한 서한에 지상 낙원이 있다고 언급했다(《항해와 정복》, 『콜럼버스가 3차 항해에서 가톨릭 양왕에게 보낸 편지』). 하지만 그는 1차 항해 결과를 보고한 편지에서 자신이 참고한 고대 문헌에 나온 내용은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추측’이라고 밝혔다. 그는 분명히 자신에게 영감을 준 고대 문헌들의 부정확함을 비판했다. 콜럼버스는 자신의 업적을 스페인 왕에게 인정받아 아메리카 대륙을 다스리는 총독의 권한을 손에 쥐고 싶었으며 다음 항해를 위한 후원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스페인 왕에게 보낸 서한에 아메리카 대륙을 ‘지팡구’인 것처럼 과장되게 묘사했다. 그렇다면 항해 일지와 서한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콜럼버스의 모순된 모습은 이익을 챙기려는 사업가다운 면모로 볼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케케묵은 텍스트들’의 환상에 빠져나오지 않은 중세인의 구시대적 면모로 봐야 하나. 콜럼버스도 알고 보면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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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부인 이야기
제프리 초서 지음, 김재환 옮김 / 나남출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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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는 우리나라에선 다소 낯선 작가이다. 그러나 그를 언급하지 않은 영문학사는 존재할 수조차 없다. 초서가 살던 중세 영국의 공용어는 영어가 아니라 프랑스어였다. 프랑스어가 더 고상한 언어로 간주해 대부분의 영국 작가들은 프랑스어로 글을 썼다. 초서는 영어로만 작품을 쓴 선구적인 존재 중 한 사람이다. 이 점에서 그는 ‘영문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셰익스피어(Shakespeare)가 영문학의 시조로 알려져 있는데, 오랫동안 상식으로 굳어진 이 평가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는 초서의 문학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초서는 인간 행동의 천태만상을 묘사한 글을 썼으며 그의 대표작 《캔터베리 이야기》는 귀족, 성직자, 노동자 등 모든 계층을 망라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중세판 인간 희극’이다.

 

《중세부인 이야기》는 초서의 초 · 중기 작품을 모은 책이다. 이 책에 동명 제목의 장시(長詩) 『중세부인 이야기』, 『명성의 집』, 『새들의 회의』, 『열녀전』, 초서가 쓴 것으로 알려진 단시(短詩)이 수록되어 있다. 이미 언급했듯이 초서는 영어로 글을 썼지만, 영국에서 유행한 중세 프랑스 문학의 형식을 따랐다. 중세 프랑스 작가들은 ‘사랑’을 주제로 한 알레고리 형식의 글을 썼는데, 초서는 프랑스 작가들의 글쓰기 방식을 참고했다. 프랑스와 영국 작가들이 선호한 형식을 ‘사랑의 환상(love-vision)이라고 한다. ‘사랑의 환상’ 이야기는 항상 정해진 방향대로 흘러간다. 처음에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연애에 불만을 드러낸다. 그는 불면증을 해소하기 위해 책을 읽다가 잠이 든다. 그리고 꿈을 꾼다. 여기서부터 진행되는 이야기는 ‘환상’이다. 꿈속의 장소는 아름다운 정원이다. 이 정원에서 주인공은 ‘말하는 동물’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로부터 사랑과 인생에 대한 조언과 충고를 듣는다. 의인화된 동물들은 수많은 상징과 알레고리다.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주인공이 잠에서 깨어나면서(주인공이 현실로 돌아오는 상황) 이야기는 끝난다.

 

『중세부인 이야기』는 초서가 자신의 문학적 후원자였던 블랜치(Blanche) 공작부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쓴 작품이다. 초서는 이 작품에서 공작부인을 ‘살아있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묘사하면서 그녀의 성품을 칭송한다. 『명성의 집』은 미완성으로 남았지만, 인생의 무상함을 알레고리 기법으로 풍자한 작품이다. 『새들의 회의』는 ‘사랑의 환상’ 형식을 철저히 따른 작품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다양한 종류의 새들은 인간의 사랑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을 한다. 의인화된 새들은 귀족과 평민을 상징한다. 『열녀전』은 한 남자를 뜨겁게 사랑하다가 배신당해 불행해진 옛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 모음집이다. 이 작품은 사랑하는 남자를 배신하는 여성이 등장하는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와 대조적이다. 초서는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 제5권 후반부에 악녀에 대한 글을 쓴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정숙한 여인을 주인공으로 한 글을 쓰겠다고 밝혔다. 『열녀전』의 ‘프롤로그’에 작가 본인이 등장하는데, 여기에 ‘사랑의 신’에게 핀잔 듣는 초서의 모습이 나온다.

 

 

[초서-cyrus 주]는 크리세이드가 트로일루스를

저버린 이야기를 영시로 써서

여성들이 타락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지?

이제 나[사랑의 신-cyrus 주]에게 한번 대답해 봐.

어째서 너는 여자들을 놓고서 험담만 하고

좋은 소리는 도통 하지 않는 거야?

네 마음속에는 선의라는 것이 없는 거야?

네가 가지고 있는 책 속에는

착하고 정숙한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 거야?

네가 새 것 옛 것 망라해서 60여 권의 서적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은 하느님도 아시지.

거기에는 로마인들과 희랍인들이

여러 여자들의 삶을 다룬 긴 이야기들이 실려 있는데,

백이면 아흔아홉은 좋은 이야기들이야.

이것은 하느님도 아시는 일이고,

그런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아는 일이야.

 

 

(『열녀전』 프롤로그, 264~279행, 243쪽)

 

 

 

『열녀전』 프롤로그 264~272행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초서의 자책과 반성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다. 그러면서 초서는 다음 구절에 자신이 60권의 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자랑)한다. 과거에는 지금과 비교하면 책이 매우 귀했다. 중세 시대에는 보통 크기의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수십 마리의 동물 가죽이 필요했고 인쇄술이 없었기 때문에 필경사가 한 글자, 한 글자 공들여 써야 했다. 그야말로 중세 시대의 책은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초서의 문학 세계, 즉 중세 영문학을 이해하려면 《중세부인 이야기》,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 《캔터베리 이야기》 순으로 읽는 것이 좋다. 특히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와 그 다음에 나온 『열녀전』은 ‘중세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들의 관점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중세 문학에서 바라본 여성’을 주제로 책을 읽을 때 이 두 작품을 절대로 빠트려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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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1-23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문 원작인 초서의 <캔터버리 이야기>를
스페인어 전문가인 송병선 교수가 번역한
책을 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해가
되지 않더라는.

어떤 우여곡절이 숨어 있는 걸까요.

cyrus 2018-11-23 17:13   좋아요 1 | URL
몇 년 전에 서울 알라딘 종로점에서 이동일 교수가 번역한 <캔터베리 이야기> 합본판을 만난 적이 있었어요. 그 때 그 책을 사지 못한 게 아쉬워요. 결국엔 송병선 교수 번역본을 중고로 샀는데, 이동일 교수 번역본을 읽어볼 생각입니다. ^^;;

북프리쿠키 2018-11-24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켄터베리 이야기 책을 사두고 몇달을 삭히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니 급 읽고 싶어지네요.^^

cyrus 2018-11-26 16:52   좋아요 1 | URL
저도 그 책을 2, 3년 전에 샀는데 아직 읽지 않았습니다. ^^;;

oren 2018-11-24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작부인 이야기』에 나오는 블랜치 공작부인은 랭커스터 공작인 ‘존 오브 곤트‘의 부인으로도 유명한 인물이었더군요. 헨리 4세의 어머니였기도 하고요. 셰익스피어의 사극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면서, 동시에 랭커스터 공작(존 오브 곤트)와 헨리 4세가 둘 다 등장하는 작품으로 <리처드 2세>와 <헨리 4세>가 있는데, 저도 최근에 『캔터베리 이야기』를 읽으면서 초서가 ‘존 오브 곤트‘의 아내인 공작 부인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앍고 깜짝 놀랬더랬습니다.^^

또한, 랭커스터 공작에게 ‘랭커스터‘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도 자세히 알고 보니 그의 부인이었던 블랜치 공작 부인의 아버지 이름에서 따 온 것이더군요. 블랜치(프랑스어로는 ‘블랑쉬‘)의 아버지(글로스몬트의 헨리)는 당시 잉글랜드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이자 국왕의 친구였고, 시인과 예술가들의 후원자이기도 했는데, 그가 다른 후계자 없이 죽고 나자 방대한 영지인 랭커스터 령을 블랜치가 상속받게 되었고, 결국 국왕(에드워드 3세)은 자신의 셋째 아들이자 블랜치의 남편이었던 ‘존 오브 곤트‘에게 랭커스터 공작 칭호를 부여하게 되었더군요. 당시 블랜치는 the Duchess라고도 불렸는데, 당시 블랜치가 잉글랜드에서 유일한 공작부인이기 때문이었다고도 하네요.

고귀한 품성과 뛰어난 용모의 공작 부인은 랭커스터 공작과 함께 9년 동안 행복하게 살지만, 20대에 병으로 급사하고, 남편은 큰 상심에 빠져 국왕조차 ‘슬픔 때문에 아들이 죽을까봐 걱정할 정도‘였다고도 합니다. 이들 부부 사이에는 세 명의 자녀가 어른으로 성장하는데, 유일한 아들인 헨리 볼링브로크가 훗날 동갑내기 사촌이자 무능한 국왕이었던 리처드 2세를 폐위시키고 헨리 4세에 즉위하고요.(에드워드 3세의 장남은 일명 ‘검은 갑주의 왕자‘로 백년 전쟁에서 맹활약하지만 갑자기 요절하는 바람에, 결국 그의 아들 리처드 2세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고, 숙부인 존 오브 곤트가 섭정을 맡기도 하고요.)

그런데 초서의 ‘저자 연보‘를 살펴보니 아내인 필리파가 ‘곤트의 존(랭커스터 공작)의 부인 밑에서 일했다‘고 나오더군요. 그게 1372년 초서가 29세 때의 일인데, 흥미로운 건 그때는 이미 블랜치 공작부인(1347∼1368)이 사망한 뒤라는 점입니다. 랭커스터 공작은 아내가 죽은 2년 후에 ‘카스티야의 콘스탄체‘와 정식으로 결혼했는데, ‘저자 연보‘에 나타난 초서의 아내는 아마도 그녀 밑에서 일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거나 나중에 기회가 되면 『공작 부인 이야기』도 한 번 읽어보고 싶군요.^^

cyrus 2018-11-26 17:04   좋아요 1 | URL
oren님은 이미 다른 초서의 작품을 섭렵했으니 <공작부인 이야기>도 무난하게 읽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
 

 

 

영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Queen)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에 대한 국내 반응이 식을 줄 모른다. 사실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유명 가수의 삶을 재조명하는 구태의연한 영화일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의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의 전기 영화가 아니라 프레디 머큐리와 퀸의 음악 모두에 초점을 맞춘 풍성한 영화였다.

 

 

 

 

 

 

 

 

 

 

 

 

 

* 『보헤미안 랩소디 O.S.T』 (Universal)

 

 

 

퀸의 공연을 본 적이 있다면 둘 중 하나다. 외국 공연장을 직접 찾는 엄청난 행운을 누렸거나, 텔레비전 또는 유튜브 화면 속 머큐리를 보며 소박한 행복을 느꼈다거나. 나도 그렇고, 대다수가 후자에 속한다. 이런 아쉬움을 <보헤미안 랩소디>가 어느 정도 달래줄 수 있다. 눈보다는 귀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연은 열창하는 라미 말렉(Rami Malek)이 아니라 영화에 울려 퍼지는 퀸의 명곡들이다.

 

 

 

 

 

 

 

 

 

 

 

 

 

 

 

 

 

* 정유석 《Queen 보헤미안에서 천국으로》 (북피엔스, 2018)

* 미야시타 기쿠로 《몸짓으로 그림을 읽다》 (재승출판, 2018)

 

 

 

 

영화를 보기 전에 ‘퀸에 관한 모든 것’을 정리한 《Queen 보헤미안에서 천국으로》 (북피엔스)를 읽으면 좋다. 퀸 1집부터 머큐리의 유작 앨범까지 소개하고 전곡을 해설했다. 그뿐만 아니라 퀸의 이름으로 발표한 라이브 앨범, 콘서트 실황을 담은 영상 등에 대한 설명도 있다. 책 속에는 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QR 코드가 있다.

 

퀸의 전성기 시절은 공교롭게도 금지곡 시비가 많았던 군사정권 시기와 겹친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1989년까지 금지곡이었다. “Mama, just killed a man. Put a gun against his head, pulled my trigger, now he’s dead(어머니, 난 사람을 죽였어요. 그 사람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어요)” 등 직접적으로 살인을 묘사하는 노랫말 때문에 금지곡이 되었다. 1985년 퀸은 영국 웸블리 스타티움에서 펼쳐진 역사적인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Live AID)에 등장하여 20여분동안 최고의 무대를 보여줬다. 그해에 MBC에서 이 공연 영상 일부를 녹화 방영한 적이 있었는데, ‘보헤미안 랩소디’를 부르는 장면이 통째로 편집되었다. 퀸의 대표곡이 금지곡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1984년 내한 공연이 무산되기도 했다.

 

《몸짓으로 그림을 읽다》 (재승출판)라는 책에 퀸을 언급한 내용이 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일본인인데, 퀸은 일본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영국의 록밴드 퀸의 노래 중에는 후렴 부분이 일본어로 된 ‘손을 맞잡고(Let Us Cling Together)라는 노래가 있다. (108쪽)

 

 

우리나라에 금지된 퀸의 노래가 ‘보헤미안 랩소디’만 있는 게 아니다. 군사정권 시절엔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퀸의 노래를 국내에 유통하지 못하게 한 적도 있었다. ‘손을 맞잡고’는 1976년에 발매된 퀸의 정규 5집 『A Day at the Races』 마지막에 수록된 곡이다.

 

 

 

 

 

 

 

 

 

 

 

 

 

 

* 『A Day At The Races』 (2011 Remastered, Island)

 

 

 

브라이언 메이(Brian May)가 만든 곡으로, 일본 팬들의 열화 같은 성원에 감동하여 만든 곡이다. 이 곡은 5집의 첫 곡 ‘Tie Your Mother Down’의 전주와 이어지면서 끝난다. 그런데 5집 음반이 우리나라에 발매되었을 때 음반에 수록된 첫 곡과 마지막 곡은 삭제되었다. ‘손을 맞잡고’ 노랫말에 일본어가 있어서 왜색 노래로 분류되었고, 어쩔 수 없이 이 노래와 연결된 ‘Tie Your Mother Down’도 삭제되어야 했다. 사실 ‘Tie Your Mother Down’도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순간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금지곡이 될 운명이었다. ‘Tie Your Mother Down’에 자신과 함께 밤새도록 놀려면 어머니는 묶어버리고, 아버지는 집에 가둬버리라는(…) 노랫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노랫말을 건전하게(?) 풀이하자면, 부모의 간섭을 무시하고 실컷 놀자는 의미이다. 그런데 문제는 노랫말 중에 친구의 부모를 모욕하는 패륜 드립(Your mammy and your daddy gonna Plague me till I die: 네 부모는 내가 죽을 때까지 페스트에 걸릴 거야)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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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3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1-23 16:33   좋아요 1 | URL
퀸의 노래를 좋아하신다면 꼭 영화를 보셔야 합니다! ^^

레삭매냐 2018-11-23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려서 친구네 집에서 당시만 하더
라도 금지곡이었던 보헤미언 랩소디를
직직 긁히는 소위 빽판으로 처음 들었
었는데... 가히 충격이었습니다 -

아 이런 음악이 다 있구나 !!!

여적까지도 퀸의 음악을 즐깁니다.

cyrus 2018-11-23 16:36   좋아요 0 | URL
고딩이었을 때 퀸의 노래를 처음 알게 됐어요. TV나 라디오에 나오는 퀸의 노래를 무심코 들은 적 있었지만, 그게 퀸이 부른 노래인 줄 몰랐어요. 그 당시에는 퀸의 정규 앨범 전곡을 듣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유튜브가 있어서 얼마든지 퀸의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됐어요. ^^

2018-11-23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1-23 16:39   좋아요 0 | URL
퀸의 노래 중에는 수수께끼를 떠올리게 하는 노랫말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 노래들을 계속 듣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

stella.K 2018-11-23 14: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영화는 정말 큰 스크린으로 봐야하는데 말야.
퀸은 한때 나도 좋아했었는데 선듯 극장으로 발 길이
닿질 않는다. 노력해 봐야겠어.ㅎ

cyrus 2018-11-23 16:41   좋아요 0 | URL
정말 오랜만에 ‘영화관에 직접 가서 봐야 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영화가 <보헤미안 랩소디>에요. 진짜 이 영화는 영화관에 가서 봐야 합니다! ^^

카알벨루치 2018-11-23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보기 귀챦아하는 제가 이건 좀 보고 싶네요 과연...ㅎㅎ

cyrus 2018-11-23 16:44   좋아요 0 | URL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긴 하는데, 영화보다 책을 더 좋아해서 영화관에 가는 일이 거의 없어요. 대부분 주위 사람의 권유로 영화를 보는 경우가 많았어요. 퀸의 노래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영화관에 가는 일이 없었을 거예요. 저는 심야 시간에 이 영화를 봤는데, 그 때 사람들이 많이 없었어요. 지금은 좋은 시간대에 좋은 좌석 예약하기가 힘들 거예요. ^^;;

목나무 2018-11-23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딩때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통해서 퀸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참 많이 들었던 곡들이네요.
한동안 멀리하다가 최근 영화 개봉으로 요즘 다시 듣고 있는데 역시나 명곡은 언제 들어도 감동을 받게 되네요. ^^

cyrus 2018-11-26 17:10   좋아요 0 | URL
저는 운이 좋았네요. 라디오 시대가 아니라서 팝송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퀸의 대표곡을 wma, mp3 형태로 저장한 블로그를 발견하면서 퀸의 존재감을 알았어요. ^^

카알벨루치 2018-11-23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자꾸 “Bicycle”이 듣고 싶네요...

cyrus 2018-11-26 17:12   좋아요 0 | URL
Bicycle Race. 유명한 노래는 아니지만, 뮤직비디오는 유명하죠.. ^^;;

- 2018-11-23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금지곡이었다니..... 넘 놀랍..

cyrus 2018-11-26 17:15   좋아요 1 | URL
노랫말과 뮤직비디오가 파격적인 퀸의 노래가 생각보다 많아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Bicycle Race의 뮤직비디오는 청소년 관람 불가입니다. ^^;;

북프리쿠키 2018-11-24 1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구랑 영화보고 .. 아내와 또 봤네요^^

cyrus 2018-11-26 17:15   좋아요 2 | URL
생각날 때마다 다시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

oren 2018-11-24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요일 밤에 아내랑 이 영화를 ATMOS 영화관에서 보고 완전 감동먹었어요.^^
그리고, 까마득한 옛날에 Radio를 통해 그토록 자주 들었던 노래들 가운데 아주 많은 곡들이 퀸의 노래라는 사실도 새삼 알았고요.^^ 어젯밤과 오늘 아침에도 라디오에서 퀸의 노래가 계속 나오더군요. 아마도 이 영화 때문인 듯싶어요.^^

cyrus 2018-11-26 17:25   좋아요 1 | URL
영화를 보고나서 퀸의 앨범 전곡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멜로디는 익숙한데, 제목은 모르는 퀸의 노래가 많을 것 같습니다. ^^

보물선 2018-11-29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봐도 좋았어요!

2019-06-07 0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6-07 18:36   좋아요 0 | URL
저도 미디어의 힘에 굴복당해서 퀸을 좋아하게 됐어요. 가끔 생각날 때마다 유튜브로 퀸 영상을 봐요. 잠이 올 때 퀸의 노래를 들으면 잠이 깨거든요. ^^
 
몸짓으로 그림을 읽다
미야시타 기쿠로 지음, 이연식 옮김 / 재승출판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보통 언어의 교환만 대화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사소한 몸짓이나 미세한 표정 변화 하나하나 역시 언어가 될 수 있다. 누군가를 애절하게 사랑해본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으리라. 사랑하는 이의 표정 하나, 행동 하나가 얼마나 무겁고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것인가를. 의미의 교환이 일어나지 않을 때 싸움이 벌어진다. 사람들이 무심코 사용하는 몸짓은 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마음의 유리창과 같다. 우리는 말 이외에 몸짓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한다. 말보다 몸짓과 같은 비언어적 표현이 인간의 속내를 더 잘 나타낸다. 왜냐하면 말은 의식적인 통제 아래 표현되지만, 몸짓은 무의식 상태에서 표현되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몸짓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숨어 있다. 그런데 스마트폰과 1인 가구 생활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이웃이나 가족이나 연인이나 친구의 몸짓을 응시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는 연예인의 몸짓만 응시할 뿐이다.

 

서양인들은 동양인보다 몸짓으로 감정을 더 많이 표현한다. 하나의 영토에 여러 민족과 어울려 살아온 역사가 긴 탓이다. 우리나라나 일본은 ‘단일 민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몸짓 언어를 잘 쓰지 않는다. 말보다 ‘몸’이 위주가 되는 공연은 서양에서 시작되었다. 몸 중심 공연 형식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것이 마임(mime)이다. 마임은 ‘흉내’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됐다. 고대 그리스 · 로마 시대의 마임은 사람이나 사물을 몸짓으로 흉내를 내는 희극배우를 지칭했다. 이 마임이 중세에 이르러 언어를 배제한 채 몸짓으로만 이뤄지는 공연 양식을 지칭하게 된다. 교회가 연극의 현실 비판 기능을 누그러뜨리려 언어 사용을 금지한 데 대한 대응으로, 대사를 하지 않고 몸짓으로만 표현하는 마임의 양식화가 이뤄졌다. 마이머(mimer, 마임 배우)의 몸짓 자체가 언어이다. 연극의 대사만으로도 전달할 수 없는 감정의 모호함을 언어 없이 몸짓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행위예술의 기본이다. 결국 마임은 몸에서 시작하지만, 환영(幻影)으로 끝나는 예술인 셈이다. 마이머가 침묵과 몸짓으로 건네는 말을, 관객들이 마음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대사 없이 인물의 몸짓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림은 마임과 무척 닮았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몸짓 하나하나에 주목해야 하는 마임과 달리 그림으로 표현된 몸짓은 영구 보존된다. 감상자는 그림 속 등장인물의 몸짓을 천천히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그림 속 등장인물은 몸짓을 통해 의미를 전하고, 그림 밖 감상자는 인물들의 몸짓을 따라가면서 그림 속에 있는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다. ‘대사 없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 그림이 인간들의 몸짓으로 표현되는 문화와 정서 속에 녹아들 때, 그 그림은 여전히 미술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훨씬 가까이 다가서 있지 않을까 싶다.

 

《몸짓으로 그림을 읽다》는 서양미술과 일본 미술에 표현된 다양한 몸짓에 주목하여 그림 속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자에 따르면 미술에 등장하는 몸짓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감정을 표현하는 몸짓(표정도 포함된다), 둘째는 의례적이고 관습적인 몸짓(정적인 몸짓), 셋째는 어떠한 특정 행동을 하기 위한 구체적인 몸짓이 있다. 그림은 전문가가 아니면 정확하게 화가의 의도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알려준 40가지의 몸짓과 동작의 의미를 그대로 그림에 얹어 감상하기만 해도 온전히 그림 속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이 책은 미술 안내서로서 손색이 없다.

 

그러나 몸짓과 동작에도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동서양의 몸짓 언어 가운데 특히 수신호는 상반되는 것이 많다. 동양에서는 손가락을 굽히면서 수를 세지만, 서양에서는 손가락을 펴면서 셈을 한다. 우리가 승낙이나 돈의 사인으로 엄지와 중지로 동그라미를 만드는 것은 대부분 국가에선 비슷하나 브라질 등 일부 남미국가에선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뜻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승리’를 뜻하는 V자 손가락 동작을 하면서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줬다. 그러나 V자 손가락 동작을 할 때 손바닥을 바깥쪽으로 향해야 한다. 손등을 보이는 V자 손가락 동작은 욕설이다. 이 책은 같은 몸짓과 동작이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어떤 의미로 해석되는지 풍부한 도판을 소개하면서 비교한다. 일본인 출신 저자의 집필 특성상 책에 실린 도판 중에 국내 독자들이 자주 접하기 힘든 일본 전통 미술 작품과 일본 근현대 미술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다만 저자가 동양 문화의 특징을 일본 문화로 한정하여 설명했기 때문에 한국, 중국 미술에 대한 언급이 적은 편이다. 이 책에 유일하게 (아주 잠깐) 언급된 한국 미술 작품은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다.

 

저자가 쓴 후기는 책을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이 책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3년에 걸쳐서 잡지에 연재한 글을 묶은 것이다. 글이 연재되는 기간에 저자의 외동딸이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생전 딸이 병원에서 지냈을 때, 가장 흥미롭게 본 글은 이 책에 실린 『기도하다』 편이었다. 기도는 ‘침묵의 언어’이다. 고백과 참회의 기도든, 희망과 염원의 기도든 극도의 진지함을 담은 침묵으로 기도를 한다. 기도하거나, 기도하는 사람(orans, 오란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보면 마음이 안정된다. 딸은 아버지가 쓴 글과 그 속에 있는 그림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고 마음의 안정을 찾았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그림은 그 자체가 치유이다. 미술을 감상하며 보내는 시간이 치유의 시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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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목요일에 있을 독서 모임을 위해 오랜만에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의 소설을 읽었다. 독서 모임 선정도서는 파묵의 아홉 번째 장편 소설 《내 마음의 낯섦》(민음사)이다. 그런데 내가 읽은 건 파묵의 첫 번째 장편 소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민음사)이다. 엉뚱한 선택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파묵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그의 첫 번째 작품부터 봐야 한다. 파묵 본인이 자신의 모든 소설은 이전에 발표한 소설 속에서 태어난다고 언급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 오르한 파묵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민음사, 2012)

* [읽을 예정인 책] 오르한 파묵 《내 마음의 낯섦》(민음사, 2017)

 

 

 

파묵은 1979년에 발표한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이 문학상에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터키 문단에 데뷔했다. 내년은 파묵이 터키 문단에 등단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알려지게 된 그에게도 무명 시절이 있었다. 파묵이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을 발표했을 당시 터키 문단은 농촌 문제를 다룬 소설을 선호했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의 공간적 배경은 농촌이 아니라 터키의 대도시 이스탄불(Istanbul)이었고, 작가의 자전적인 색채가 짙은 일종의 ‘교양소설(Bildungsroman)이었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은 문학상을 받은 지 3년이나 지나서야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파묵은 이스탄불에서 펼쳐지는 동 · 서양 문명 간의 충돌, 이슬람과 세속화된 민족주의 간의 관계 등을 주제로 작품들을 써왔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은 세계화라는 서양 중심의 거대한 흐름과, 그 속에서 점점 주변부화해 가는 터키의 사회적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묘사된 작품이다. 파묵은 첫 소설에서 시간적 배경을 아주 넓게 설정하는 대범한 시도를 하는데, 오스만 제국이 점점 몰락해가는 시기인 1905년부터 시작해서 터키 공화국으로 들어서는 과도기의 1930년대를 거쳐, 고속 성장기에 접어든 1970년대 터키의 모습을 보여준다. 파묵은 3대째 이어지는 제브데트 가족과 그 주변 인물들의 삶과 감정 변화를 세밀하게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에 얽힌 격동기 터키 사회의 모순과 갈등까지 고스란히 그려낸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은 한 가족의 삼대에 걸친 이야기를 통해 터키의 굴곡진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대하소설’ 또는 ‘역사소설’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이 19세기 유럽의 교양 소설 형식의 틀로 쓰였기 때문에 ‘교양소설’로도 볼 수 있다.

 

 

 

 

 

 

 

 

 

 

 

 

 

 

 

 

 

 

 

 

 

 

 

 

 

 

 

 

 

 

 

 

 

 

* [아직 안 읽은 책] 괴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민음사, 1999)

* [아직 안 읽은 책] 헤르만 헤세 《데미안》(민음사, 2000)

* [아직 안 읽은 책] 토마스 만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민음사, 2001)

 

 

 

 

교양소설은 한 인간의 전인적인 ‘교양’이 어떻게 완성돼 가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말하는 ‘교양’이란 소설 속 주인공이 스스로 자아 정체성을 발견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뜻한다. 그래서 독일에서 시작된 교양소설은 ‘성장소설’이라고도 불린다. 괴테(Goethe)《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 토마스 만(Thomas Mann)《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데미안》등은 독일의 대표적인 교양소설이다.

 

교양소설 속 주인공들은 자기 자신과 세계를 분명히 인식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도전적으로 대응하는 젊은이로 묘사된다. 그래서 이 교양소설의 주인공들은 격변하는 현실 간의 대결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내 · 외적 갈등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파묵은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모델로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을 썼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2부에 제브데트의 둘째 아들 레피크와 그의 친구인 외메르무히틴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생활환경, 직업, 사회적 지위는 달라도 모두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 내면적 혼란을 겪는 인물들이다. 레피크는 자신만의 뚜렷한 삶의 목표를 찾지 못한 채 살고 있다. 무히틴은 시인이지만 제대로 된 시집 한 권조차 펴내지 못한다. 불투명한 앞날과, 자신의 재능에 대한 회의, 경제적 궁핍함 등에 둘러싸여 발버둥치면서 생활한다. 파묵은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에서 서구화와 경제 성장에 가려진 터키 청년들의 고뇌를 생생히 재현한다.

 

 

 

 

 

 

 

 

 

 

 

 

 

 

 

 

 

 

 

 

* 오노레 드 발자크 《고리오 영감》(을유문화사, 2010)

* 오노레 드 발자크 《고리오 영감》(열린책들, 2009)

* 오노레 드 발자크 《고리오 영감》(민음사, 1999)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을 읽어 보면, 파묵이 유럽 교양소설을 오마주(hommage)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부와 명예를 원하는 외메르를 발자크(Balzac)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 나오는 라스티냐크와 닮았다고 언급하는 대사가 있다. 《고리오 영감》은 시골 청년 라스티냐크가 파리에 살면서 내면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그린 점에서 교양소설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아직 《내 마음의 낯섦》 읽기를 시작하지 않았지만, 이 작품에서도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에서 보여준 파묵 문학 세계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이 이스탄불 중산층 가족의 삶을 다룬 이야기라면, 《내 마음의 낯섦》은 이스탄불 하층민 가족의 삶을 보여준다. 재미있게도 두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하나로 이어진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은 1900년대, 1930년대, 1970년대 이야기고, 《내 마음의 낯섦》은 1960년대에서 2012년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두 작품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터키 근현대사를 관통해 살아간다. 그리고 첫 소설에서 이미 보여주었듯이 《내 마음의 낯섦》에서도 ‘전통-전근대-동양’과 ‘현대-근대-서양’의 사회적 · 문화적 충돌에서 빚어진 갈등과 그에 따른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Trivia

 

 이 작품이 구체적 사실로 구성된 역사소설적인 면이 다분히 있지만 이에 허구적 요소를 가미한 점에 대해, 파묵은 “역사는 순수하고 순결한 상상력을 부여해 준다.” 라고 밝히면서 이후의 작품에서도(예를 들면 《내 이름은 빨강》, 《하얀 성》등) 실제 역자와 허구를 버무리는 작업을 계속하게 된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2권에 ‘작품 해설’이 실려 있다. 543쪽에 ‘실제 역자와 허구를 버무리는 작업’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역사’의 오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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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1-2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서도 노벨문학상 작가가 나올만한데 안타깝네요...

cyrus 2018-11-22 17:00   좋아요 1 | URL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작가가 없다는 게 아쉽죠. 그런 작가가 되려면 ‘한국적인 색채가 있으면서도 서양적인 색채도 띄고 있는 문학 작품’을 써야 할 것입니다(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쉽게 말하면, 한국 작가가 쓴 소설인데도 직접 읽어보면 서양문학 작품을 읽는 느낌이 나는 작품인 거죠. 파묵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가 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건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가 쓴 대표작들은 터키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서양문학에 영향을 받은 작품들입니다. 아마도 노벨 문학상 심사위원들은 터키 출신 작가의 소설을 읽었을 때 이질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

카알벨루치 2018-11-22 17:06   좋아요 0 | URL
그렇게도 볼수있겠군요 사이러스님 글을 읽으면서 터키출신작가도 노벨문학상을 받는데 왜 우리나라 출신작가는 못 받았을까 이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더랬어요! ...역쉬 Sㅣ루스 박사님이십니다!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8-11-21 15: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날마다 이 정도 퀄리티를 뽑아내는 정보를 제공한다면, 알라딘에서 사이러스 님 월급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boooo 2018-11-21 17:19   좋아요 1 | URL
공감합니다. ㅎㅎ

카스피 2018-11-22 11:08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공감합니다2 ^^

cyrus 2018-11-22 17:11   좋아요 0 | URL
별 말씀을요.. ㅎㅎㅎㅎ 요즘 알라딘/북플에 깊이 있는 글을 쓰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그런 분들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