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 한국사 상식 44가지의 오류, 그 원인을 파헤친다!
박은봉 지음 / 책과함께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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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는 『에고 트릭ego tric』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자아관 및 세계관에 배치되는 사실과 사건을 기억하지 않고, 무시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선택적으로 기억한다. 보통은 그렇게 하려는 의식적 노력이나 의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한다.”고 말한다. ‘기억과 자아’의 관계를 말하는 부분인데 결국 개인의 정체성은 선택적 기억으로 결정된다는 의미이다. 한 나라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심지어 기억을 비틀고 왜곡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객관적이고 정확해야 하는 역사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오류가 숨어 있다. 그것은 의도된 왜곡일 수도 있고 단순한 실수일 수도 있다. 다만 개인이 아닌 국가 차원의 역사는 선택적 기억으로 정체성을 만들어갈 수 없다.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평가되는 것이 역사라고 하지만 그것은 기본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을 정확하게 아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사에 대한 객관적 사실(fact)을 확인하고 그 뒤에 숨은 진실(truth)을 판단하는 일은 조금 다른 문제이다. 특히 역사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청소년은 한국사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역사적 사건이 벌어지게 된 원인과 결과를 꼼꼼하게 살피고 그 의미를 확인하는 과정이 역사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따라서 특정 사관이나 정치적 이념에 치우친 역사를 주의해야 한다. 어떤 사건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이미 주관적 판단이지만 역사를 하나의 연속적인 흐름으로 파악하고 인과관계를 따져가며 비판적인 관점을 갖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 우리가 역사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하게 읽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손쉬운 방법으로, 단 한 권으로 끝내는 비법은 없다. 한국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흥미 위주의 내용을 왜곡, 과장하는 교양서를 잘 선별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오천년에 이르는 장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겪었던 일들을 정리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사관에 따라 그리고 권력자의 관점에 따라 역사는 얼마든지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역사는 임금과 지배집단이 주체적으로 이끌어 온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를 기본적으로 구성하는 것은 민중들의 삶 자체이다. 말하자면 대통령이 했던 말과 추진했던 정책도 중요하겠지만 국민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그것이 우리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1~22』는 한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22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집필되어 부담스러워 보이지만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처럼 구수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 형식의 역사이다. 어렵고 딱딱한 이론을 적용하지도 않았으며 특정 계층의 사관을 반영하지도 않았다. 현실의 문제를 더불어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라서 한국사를 이해하는 데 더없이 값진 책이다.

 

구석기시대부터 이 땅에 터전을 잡고 살아온 한민족의 역사가 풍요롭고 다채롭게 펼쳐져 있는 이 책은 40년이 넘도록 한국 역사 연구에 매달려온 저자의 내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빙하기와 지구의 형성 그리고 한반도의 지형 등 자연사로 시작해서 인류의 발생과 종의 기원을 다루는 것으로 한반도의 역사를 시작한다. 고대국가의 기초를 만든 조선에서 시작하여 삼국과 고려 그리고 조선은 물론 일제 식민지 시기까지 꼼꼼하게 살피며 민족사, 생활사, 민중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료 사진이 삽입되어 있고 문장이 어렵지 않아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며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관점으로 다양한 계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편타당한 가치관으로 세계인과 더불어 새로운 인류문명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한국사를 보여주는 책이다.

 

“문익점은 정말 붓두껍 속에 목화씨를 숨겨왔을까? 행주산성에서 행주치마를 사용했을까? ‘현모양처’는 전통적인 여인상일까? 베트남 파병은 미국의 요구 때문이었을까?” 가장 익숙한 곳에 오류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상식 중에는 생각보다 많은 오류가 숨어 있다. 박은봉의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는 이러한 ‘상식’을 바로 잡아주는 책이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한국사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는 일은 단순히 오류를 수정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생각하는 방법을 점검하고 또 다른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필요에 따라 역사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올바른 역사인식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국사에 관한 다양한 책을 읽다보면 항상 보이지 않는 존재가 ‘여성’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여전히 여성은 역사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조선시대 성리학적 세계관이 지배하기 이전에도 물리적인 힘의 논리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었던 여성이 역사에서 다루어지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신명호의 『조선왕비실록』은 의미 있게 읽히는 책이다. 철저하게 왕조사 중심인 대부분의 역사서에 비해 이 책은 숨겨진 절반의 역사라는 부제에 어울리게 조선왕조 오백년간 정치, 문화적으로 특별했던 7명의 왕비를 다루고 있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리고 한 나라의 국모가 되어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왕비들의 삶을 살펴보는 것은 한국사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한국사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장 어렵다. 소설이나 TV 드라마는 물론 영화나 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잘못된 판단과 오류가 생기게 된다.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진 오류를 바로 잡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학교에서 배우고 주변에서도 늘 접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한국사에 대한 우리들의 지식과 상식은 많이 부족하다. 한국사에 대한 작은 관심과 이해가 현실을 파악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디딤돌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한국사는 바로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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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 트릭 - ‘나’라는 환상, 혹은 속임수를 꿰뚫는 12가지 철학적 질문
줄리언 바지니 지음, 강혜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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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라고 부르는 것 속으로 아주 깊이 파고들 때면,

늘 이런저런 지각, 이를테면 열기나 냉기,

빛과 그림자, 사랑과 증오, 고통과 쾌락, 색깔 혹은 소리 등과 마주친다.

나는 이런 특정 지각과 구분되는,

오롯한 나 자신을 결코 포착하지 못한다.

데이비드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열연했던 <숨바꼭질>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시작한지 5분 만에 주인공의 실체를 짐작해 버린 경험이 있다. 해리성 인격장애를 겪는 주인공이 범인을 보이지 않는 존재를 추적하는 내용의 영화로 결말을 짐작했으니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 없이 지루하게 머릿속으로 결론을 끼워 맞추고 있었다. 영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지만 이 질병을 앓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다중인격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자아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흔히 정체성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지만 철학과 심리학 그리고 뇌과학의 관점에서 자아란 무엇인지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도대체 자아란 무엇이며 나 자신은 어떤 존재인가.

 

영국의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는 전작 유쾌한 딜레마 여행으로 처음 만났다. 쉽고 재미있는 글이 인상적이었던 줄리언의 신작 자아 트릭은 그의 전공 분야에 해당한다. ‘개인적 정체성으로 학위를 받았으니 이 책은 그의 관심 분야이기도 할 터이고 그간 여러 권의 책을 쓰면서 쌓인 내공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제목 그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자아는 수많은 트릭을 사용하고 있으며 우리는 자아라는 트릭 속에 갇혀 그것을 오해하고 있다. 막연한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자아에 대해 한번쯤 깊이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떤가. 때때로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궁금하지 않은가.

 

자아란 무엇이며 자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리고 미래의 자아는 어떨까에 대한 고민을 풀어낸 이 책은 단순히 철학적 관점으로 인간의 사유 방식을 점검하고 분석하는 책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사례를 중심으로 심리학과 신경과학을 동원하고 있어 다양하고 즐거운 뷔페를 즐길 수 있다. 우리가 책을 읽는 목적은 다양하다. 목적과 방법에 따라 한 권의 책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고 그 결과 또한 천양지차다. 마치 사람을 대하는 목적과 방법에 따라 그 관계와 양상이 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실용적 목적으로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책과 달리 인문학 분야의 책들은 대부분 깊은 사유와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다. 그것은 자신만의 빛깔과 향기로 다가와 내적 성숙을 이루어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변화된 자아를 확인하고 때때로 나 자신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며 그런 의문을 갖는 자신조차 예전의 자아와 달라졌음을 확인한다.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체세포만큼이나 인간의 생각도 변화한다. 육체적 존재는 물론이고 영혼마저 과거의 와 다른 존재라면 나 자신은 무엇이며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줄리언 바지니는 육체와 자아와의 관계 그리고 뇌와 자아의 관계를 통해 자아를 규명한다. 그것은 기억과 영혼의 문제로 귀결되지만 다중 자아, 사회적 자아로 나아가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왜냐하면 자아는 끊임없이 속임수(트릭)를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세 가지 명제를 제시한다. 첫째, 자아의 통일성은 심리적 속임수가 만든 결과물이다. 둘째, 우리는 물질에 불과하지만 단순한 물질 이상이다. 셋째, 속성 자체가 변하기에 정체성은 중요하지 않다.

 

결국 자아는 뚜렷한 실체도 정체도 알 수 없는 어떤 묶음, 가상의 덩어리에 불과하며 끊임없이 변하는 속성을 지닌다. 작가는 3부 미래의 자아에서 사후의 생이나 자아의 디스토피아아를 우려한다. 우리는 생각하는 생존기계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스스로 믿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과연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가만히 생각해 보자.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자아 정체성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는 자아 인식은 또 어떤가.

 

하이데거는 삶이 결국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 묻고 있다. ‘자아라고 명명된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호기심은 나의 레종 데트르(Raison D’etre)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다. 삶의 목적과 방향이 흐릿할 때마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관계가 틀어지고 생이 힘겨울 때마다 우리는 자신을 돌아본다. 그 오래된 질문들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내내 계속 될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말을 살짝 바꿔보자.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자아를 해석만 해왔다. 이제 문제의 핵심은, 만약 한다고 하면, 과연 어떻게 자아를 변화시킬 것인가이다.(“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하려고만 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Thesen uber Feuerbach)>에 나오는 구절이다.) - 299

 

 

120429-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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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여는 역사 - 한중일이 함께 만든 동아시아 3국의 근현대사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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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송신도 할머니는 열여덟 살 때 전장에 끌려가 위안부가 되었다. 몸과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온 할머니는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된다. 1심과 2심은 물론 상고심에서도 패소한 후 결과보고회 자리에서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고 외친다. 안해룡 감독의 다큐멘터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에는 현재 진행형인 한일 양국의 고통스런 과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본 대사관 건너편 인도에는 단정한 한복을 입은 무표정한 얼굴의 단발머리 소녀가 앉아 있다. 이 소녀는 수요일마다 열리는 정신대 항의 집회 1000회를 기리며 20111214일에 세운 위안부 평화비로 여전히 끝나지 않은 역사의 상처와 고통을 말해주고 있다. 송신도 할머니와 같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인 일본인들에게도 위안부 문제는 불편한 진실로 남아 있다.

 

역사를 인식하는 방법과 태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며 국가의 입장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고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역사는 언제나 현재를 돌아보는 거울이며 미래를 살필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송신도 할머니가 일본에게 공식적인 사죄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독도 문제를 비롯해 일본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 입장만 생각하고 일시적으로 흥분하거나 화를 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웃 국가들과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생각하면 우리는 동아시아의 역사를 진지하고 깊이 있게 살펴봐야 한다.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도 2002년부터 동북공정프로젝트를 통해 고구려와 발해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등 역사 왜곡을 시도하고 있어 문제는 동아시아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다른 모습이다. 최근 한류(韓流)’ 바람을 타고 한국 드라마와 가수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졌다. 일본에서는 혐한류(嫌韓流)’로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등 주목할 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와 태도에는 그만큼 역사를 바탕으로 한 뿌리 깊은 상처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의 모습을 확인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의 역사는 우리들의 과거이며 현재이고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이다.

 

동아시아 3국의 근현대사를 담은 미래를 여는 역사는 한중일의 역사가들이 함께 만들었다. 과거 세 나라의 역사가 모두 불행했던 것만은 아니다. 서로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았고 함께 발전해온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한중일 3국은 공동 역사편찬위원회를 만들어 서로 다른 역사가 아니라 공통된 역사를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치려는 목적으로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3국의 역사뿐만 아니라 각장마다 각국의 교과서를 비교해 놓은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또한 이 책은 19세기 중엽 이후 침략과 전쟁으로 얼룩진 역사를 반성함으로써 인권과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평화로운 동아시아의 미래를 지향하기 위한 최초의 공동 역사 교재라는 의미가 있다. 이 책을 통해 서로 다른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과 왜곡을 넘어 객관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그것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인해 보자.

 

고등학교에 개설된 역사 교과 <동아시아사>는 주로 고대와 중세 역사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삼국의 관계를 살펴본다. 개항과 근대화, 일본 제국주의의 확장과 저항 그리고 침략전쟁과 민중의 피해, 2차 세계 대전 이후 근현대사까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 지난 시간을 통해 교훈을 얻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을 잘 활용하는 방법이다. 아놀드 토인비는 과거의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지적한 바 있다. 결국 역사는 과거를 교훈삼아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정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기억을 타자와 이야기하고 공유함으로써 비로소 잘못된 기억을 고치고 왜곡된 것을 바로잡아 역사를 계속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아사히신문 전 편집국장의 말은 동아시아를 만든 열 가지 사건의 내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2005년 봄 한국과 중국에서 교과서, 위안부, 야스꾸니 문제로 대규모 반일시위가 벌어졌다. 당사국인 일본의 아시히신문사는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취재했다. 일본의 2090%가 전범재판이었던 토오꾜오 재판의 내용을 모른다라고 대답한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는 이 취재의 바탕이 되었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대만을 오가며 일본인의 눈으로 살펴보는 동아시아는 어떨까. 아편전쟁과 메이지유신부터 중일전쟁,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국교정상화 등 동아시아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열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각국의 자료를 찾고 전문가를 직접 인터뷰한 내용들을 담아냈다. 이 책은 기사가 보여줄 수 있는 생동감과 현장감이 돋보여 살아 있는 현재의 관점으로 동아시아의 역사를 다양하게 조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키워드로 읽는 동아시아는 역사학 교수, 언론인 등 동아시아에 관한 30여명의 전문가가 참여한 책이다. 동아시아에 대한 다양한 주제로 짧은 글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안중근, 소현, 한류, 무라카미 하루키, 매란방, 류사오보, 유니클로, 대지진, 이주노동자, 쌀국수, 두리안 등 한중일 3국의 이야기를 넘어 동남아시아에 대한 이야기가 균형을 이루고 있어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동아시아를 살펴 볼 수 있다. 단순한 역사를 넘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문화 현상까지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에 가장 현실적인 느낌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 중국과 일본은 어쩌면 심리적으로 가장 먼 나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 나라를 외면하고 살수 없다. 더불어 함께 사는 지혜는 사람과 사람 뿐만 아니라 국가간에도 적용되는 상생의 지혜이다. 멀고도 가까운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가 곧 우리의 역사이며 내 삶의 미래를 고민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120423-035~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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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펀치 - 제5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기준영 지음 / 창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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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두 권의 소설이 머릿속에서 엉키는 이유가 무엇일까.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가족이라는 소재의 공통성을 찾는 것으로는 만족스럽지 않다. 5회 창비 장편소설상 수상작인 기준영의 와일드 펀치와 제5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김이윤의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은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어 순서대로 읽게 되었다. 읽는 순서와 시간에 따라서도 소설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서로 다른 말을 건넨다. 성인 소설인 와일드 펀치와 청소년 소설인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도 중첩되는 부분도 있다.

 

가족은 단순한 혈연 공동체가 아니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내밀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이다. 이 관계는 천륜(天倫)이라는 유교적 도덕적 실천 윤리를 의미하는 것이며 사회를 지탱하는 최소단위의 사회구성체를 지칭하는 말이다. 근대 이후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가 해체되고 가족의 양상도 다양하게 변화했지만 부모와 자녀로 구성되는 기본 단위와 그 의미는 유지되고 있다. 비혼 가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미래 사회의 가족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혼, 사별 등의 이유로 한부모 가정이 증가하고 재혼이나 다문화 가정도 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가족의 형태는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그리고 1인 가구와 다양한 형태의 가족 형태로 그 변화양상이 뚜렷하다. 하지만 본질적인 가족의 의미는 달라지지 않는다. 도대체 가족이란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 것일까.

 

레몬과 설탕 등 다섯 가지 이상의 음료를 섞은 펀치라는 음료와 권투 선수의 한방을 떠올리는 펀치가 동시에 연상되는 기준영 소설의 제목은 와일드하다. 하지만 소설의 내용과 의미는 마일드하다. 강수와 현자의 집에 강수의 후배 태경과 현자의 의자매 미라가 들어온다. 정가족의 의미를 묻기 전에 삶의 형식을 고민하는 것이 소설의 본질이라면 이 소설의 인물들은 그 문법에 충실하다. 저마다 가진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삶을 삐걱이게 하며 서로의 관계를 통해 그것을 확인하고 위로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러한 관계만으로 인간의 본질적인 솔리튜드solitude는 극복되지 않는다. 어떤 소설이든 마찬가지겠으나 그 관계의 양상을 들여다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가는 그 거리를 가늠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른다는 사실을 아프게 확인시켜 준다.

 

김이윤은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을 통해 상실의 아픔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자란 여여는 사진작가의 어머니가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날 때까지 혼자 살게 된다. 아버지를 찾고 사랑에 빠지고 어머니의 삶을 들여다보는 동안 여여는 혼자라는 사실보다 더 지독한 삶의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 어머니의 부재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보다 본질적인 고독이 무엇인지 깨닫는 과정이 성장의 아픔이 아닌가. 드라마의 대본처럼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십대 소녀의 내면을 적확하게 묘사하고 있는 작가의 솜씨가 탁월한 소설이다.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든 부모의 죽음이든 삶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확인하는 평범하지만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두 작품은 표면적으로 가족의 의미를 묻고 있는 것 같다.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가족이 될 수 있고 더 내밀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지만 타인이 걸어온 길과 삶의 흔적들을 오롯이 이해할 수는 없다. 강수와 현자, 태경과 미라 그리고 우영이 그러하고 여여와 시리우스, 엄마와 서이사가 그러하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심리적 거리가 아닐까.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방문객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정현종, 광휘의 속삭임(문학과지성사, 2008) 중에서

 

데블스 푸드 케이크를 정성스레 만들어 줄 가족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복인가. 하지만 오래 고민하고 준비해서 만든 음식을 5분 만에 먹어치운 가족들의 만족감과 달리 만든 사람의 말할 수 없는 아쉬움 같은 느낌을 떠올려 보자. 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지만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잃어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 묻지 않는다면 방문객은 잠시 머무를 뿐이다. 비극적인 세계 인식이 삶의 비의를 벗어나는 방법은 아니겠지만 어느 누구도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다는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삶은 죽음을 향해 달려갈 뿐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에 공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상실의 대상이 가족이든 아니든 타인에게 받는 상처를 극복하는 것은 또 다른 관계에서 오는 위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환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와일드하게 펀치를 날리는 인생에게 웃어주는 법과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을 알게 되는 것은 두 권의 소설을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 내 곁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 속에서이다.

 

120422-03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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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프리카인이다 - 남아프리카의 전사와 연인, 예언가가 들려주는 역사이야기
막스 두 프레즈 지음, 장시기 옮김 / 당대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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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그 세계는 나를 끊임없이 밀어냈다. 내가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합리성의 측면에서 이것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고로 나는 비합리성에 내 몸을 맡기기로 결심했다. 나보다 더 불합리한 백인 때문이었다. - 프란츠 파농, <검은피부 하얀가면>, 156

148823, 포르투갈 항해사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모슬 베이의 해변에서 중세의 격발식 화살로 코이코이족 남자 한 명을 쏘아죽였다. 최초로 아프리카 땅에 발을 내디딘 하얀 피부 유럽인과 검은 피부 아프리카인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유럽인은 코이코이족을 위협적인 야만인으로 생각했겠지만 거꾸로 그들은 유럽인을 머리가 길고 거추장스런 옷을 걸친 바다 위에 낯선 침략자로 보았을 것이다. 검은 피부와 하얀 피부만큼이나 서로 다른 관점으로 그들은 상대를 바라보지 않았을까. 피부색과 인종이 다른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배타적이고 이질적인 문화가 충돌하고 생존의 위협을 느껴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의 비극은 피할 수 없는 인류의 운명 같은 것이었다.

아프리카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세계사뿐만 아니라 어느 지역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아프리카는 없는 대륙 취급을 당한다. 세계 제2의 대륙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아프리카에 대해 관심도 애정도 없다. 미개하고 가난한 대륙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아프리카는 인류 최초의 직립 원인들이 생겨난 곳이다. 대략 300만 년에서 500만 년 사이에 두 발로 서서 멀리 바라보고 방향 감각을 익힌 우리 조상들의 손은 자유를 얻었다. 이때부터 인간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도구의 사용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차별화 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조상들의 뿌리는 바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시작되었다.

600여 년 동안 아프리카는 숱한 오해와 편견 속에서 세계사의 극히 일부분만 차지해 왔다. 그것도 서구 열강들이 점령하고 지배한 식민지 역사가 대부분이다. 중세부터 시작된 유럽의 약탈은 결국 아프리카 전체를 식민지로 만들고서야 끝이 난다. 굴욕스런 과거와 현재의 가난은 우리에게 아프리카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심어 주었다. 드넓은 초원과 인류의 원시적 삶이 보존되어 있는 시원(始原)의 공간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얼마나 오해를 받고 있으며 또 얼마나 잘못 이해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네덜란드계 독일인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백분리 정책 반대활동을 했던 루츠 판 다이크는 처음 만나는 아프리카에서 인간이 무엇이냐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 말 한 마디가 우리들이 아프리카의 역사를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 준다. 검은 대륙이 아니라 다양한 색깔로 아프리카를 인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인간을 이해할 수 있으며 우리들의 역사를 조금 더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너무 먼 대륙이지만 아프리카는 우리들의 근원을 살펴볼 수 있는 땅으로서 첫 번째 의미를 갖는다.

모든 것이 시작된 곳으로서 기원전 55천만 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은 독자들에게 낯선 경험과 신선한 충격을 던진다. 3,000가 넘는 넓이를 감안하면 아프리카를 몇 가지 특징으로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사하라 북쪽과 남쪽이 다르고 서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의 지리적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유럽과 이슬람의 문화가 유입되는 과정은 아프리카의 뼈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 책은 연대기적 서술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유럽인의 입장에서 아프리카의 역사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아프리카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진 저자는 쉽고 재밌는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그들의 역사를 말해 준다.

이에 비해 통아프리카사는 기자의 눈으로 아프리카 역사에 접근하고 있다. 역사는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서구의 시각도 승자의 논리도 아닌 객관적 관점으로 서술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은 청소년들을 위해 쉽고 편안한 문체로 객관적 사실들을 전달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와 왕래가 있었거나 빈번한 교류가 일어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더욱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대륙이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아프리카의 역사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 또한 제 삼자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나는 아프리카인이다는 막스 투 프레즈라는 아프리카인이 이야기하는 아프리카의 역사다. 앞의 두 책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아프리카의 역사지만 이 책은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아프리카의 속살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역사 서술 방법에서 벗어나 실제 아프리카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이야기 형식으로 들려주기 때문에 객관적 사실을 나열하는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중심이라는 점과 저자가 검은 피부가 아니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보기 드물게 솔직하고 매혹적인 이야기로 가득하다.

누가 역사를 이야기하느냐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관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유럽인, 한국인, 아프리카인이 말하는 아프리카의 역사는 조금씩 다르다. 제삼자와 당사자가 다르듯 역사는 서술하는 사람의 입장과 태도가 반영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이제 더 이상 낯선 세계, 미지의 땅이 아니다. 세계의 일부로 더불어함께살아가야 하는 이웃으로 아프리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의 과거와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했지만 세계는 나를 밀어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프란츠 파농의 말을 뼈아프게 새기며,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서로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것은 아프리카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120416-03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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