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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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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이 멈추면 빛과 멜로디가 사라지고 눈도 그치겠죠”

이미지image는 사진처럼 정지화면에 가까워 시詩에 어울린다면, 영화movie는 움짤이나 쇼츠처럼 어떤 순간을 포착하지 않고 앞뒤 상황까지 담아내는 소설을 닮았다. 추억이 빛바랜 흑백 사진을 닮은 레트로 감성이라면, 기억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동적 움직임에 가깝다. 어떤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는 조해진의 말대로 빛이 피사체를 감싸는 순간이 아니라 그 순간에 담긴 기억 속의 서사를 풀어놓아야 한다. 현대 소설은 일시 정지와 되감기 혹은 재생을 반복하는 비디오 테이프처럼 때때로 과거를 소환하고 잊고 있던 순간을 포착하며 기억의 파편들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고전과 달리 ‘오늘’을 사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로기완을 만났다』, 『빛의 호위』 이후 다시 『빛과 멜로디』를 읽으면서 소설가만큼 나도 변했음을 감지했다. 한 작가의 작품 세계와 경향을 분석하는 일을 업으로 삼지 않았으니 조해진과 그의 소설에 논할 일은 아니지만, 나름의 빛과 색을 드러내기 위한 작업들이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빛의 호위에서 한발 나아간 이야기는 조금 더 깊고 섬세하다. 다른 작품에서와 같이 현재는 과거와 조응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갈 힘을 얻는다.

누구나 내일을 꿈꾼다. 오늘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소설을 읽지 않을 지도 모른다. 현재와 나른 시간과 공간을 꿈꾸거나, 나와 다른 타인의 삶이 궁금해질 무렵 해가 지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조해진은 빛을 사용하고 먼지 묻은 사진을 꺼내든다. 독자는 기꺼이 희뿌윰한 희미한 기억 속으로 자신을 투영한다. 각자의 기억 혹은 추억을 들추는 일이 모두 즐거울리 없다. 타자를 향한 분노, 내면에 생채기로 남은 상처, 잊고 싶은 순간일수록 선명한 과거에게 등을 떠밀려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승준과 권은이 아니라 살마와 나스차, 리디아……. 우크라이나와 영국이 아니라 대한민국 어디든 유목민으로 살아야 할 운명을 안고 태어난 사람은 모든 독자 자신이다.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는 사람들 혹은 현실에 안주할 수 없는 삶은 특별한 경험,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낯선 감각과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면 소설보다 재밌는 콘텐츠가 넘치는 세상이다. 책장을 넘기며 기대한 게 무엇이든 함부로 추측하고, 타인을 규정해서 스스로 무너지지는 말자. 소설은 소설일 뿐! 그래도 서사는 본능이니 굳이 숨기고 살 필요는 없으나 현실과 착각하지 않으면 그 뿐!

거울 속 세상과 그녀를 위해,

영원에서 와서 영원으로 가는 그 무한한 여행의 한가운데서,

멜로디와 함께……

빛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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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지음, 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 엘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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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의 글을 읽으면 자꾸 스페인 국경을 넘지 못해 자살을 결심한 절망과 마주하게 된다. 누구나 그러하듯, 출구 없는 바닥의 서늘한 촉감으로 모골이 송연해진 경험이 떠오른다. 역사에 가정법이 없지만, 그가 미국으로 망명했더라면 어떤 글을 남겼을까. 아니 요절한 천재들의 마지막이 바로 그 순간이어서 비극적으로 찬란해졌을까.

플라뇌르flâneur. 도시의 한가한 산책자이자 날카로운 눈빛으로 파리라는 텍스트를 읽는 사내.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텍스트 안에서 유영하는 여유를 선물한다. ‘재미’의 기준과 종류가 다르니 어떤 책의 재미를 논하는 건 온당치 않다. 아니, 용어의 차이겠으나 어떤 방식으로든 이 책은 벤야민의 텍스트에 곁들여진 파울 클레를 들여다보는 재미를 더했다. 독일의 화가 이름이 갑작스레 현실을 소환하더라도 외면하자. 혹시, 그 혹은 그녀를 떠올리는 순간 모든 걸 망칠 수 있으므로.

꿈꾸는 플라뇌르, 땅과 바다를 지나 놀이와 교육으로 엮인 글들은 파편적 인상을 전한다. 형식과 내용의 자유가 몽환적 상상력과 날 선 감각을 일깨운다. 일상적 반복과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지라던 신현림처럼, 경계를 무너뜨리고 틀 밖으로 삐져나올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뭐라 부르든, 그들이 남긴 생각들과 그림, 음악, 건축…… 그것이 인류의 꿈이었고 미래렸다면, 지금-여기는?

상상하는 것과 소유하는 것의 문턱을 이미 넘어서 있는 그리움. 그런 그리움은 이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 뿐이다. 그리운 사람은 이름 속에서 생명을 얻고 몸을 바꾸고 노인이 되고 청년이 된다. 이름 속에 형상 없이 깃든 그는 모든 형상의 피난처다. - 「너무 가까운」,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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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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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채플린의 말이나 행복한 가정의 공통점과 불행한 가정의 다양성을 간파한 톨스토이만큼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글은 행간에 숨은 의미를 애써 찾으려는 헛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막힌 프랑스 국경 앞에서 절망했던 발터 벤야민과 브라질에서 자살한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음을 헤아릴 방법은 없다. 어차피 타인의 고통은 추론적 감상에 불과할 테니.

생의 마지막 2년 동안 쓴 아홉 편의 글은 아이러니하게도 온기와 희망을 담고 있다. 그러나 고통스런 현실이 배제될 수고 절망하지 않았다면 자살하지 않았을 거라는 어설픈 결론에 도달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무너진 시대를 온몸으로 겪은 이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오늘의 대한민국과 비교한다. 또 다른 방식의 반지성과 무논리와 비이성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정치적 이념과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의 문제가 아니다. 경청과 소통의 부재가 폭력을 양산했던 유럽의 그때 그 시절을 닮아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면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에밀 시오랑의 오래된 금언을 반복하며 기다리면 될까. 어두울 때에야 보이든 것들이 있다는 걸 슈테판 츠바이크가 아니면 모를까. 우리는 새벽에, 어둠 속에서 무엇을 보는가. 아니, 낮과 밝음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 걸까.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시대를 반복하면서도 우리는 사랑 혹은 신의 이름으로 현실은 견디며 살아간다. 희망이 고문이 아니었던 시대가 있었을까.

누군가는 니힐리즘으로 누군가는 실용주의로 ‘지금-여기’를 견디라고 충고한다. 1940년에 쓴 몇 편의 글이 주는 교훈 혹은 감동이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는 믿음 이외에 오늘과 내일을 견뎌야 하는 우리에게 다른 길이 있을까. 지구 반대편까지 기나긴 여정을 겪으며 슈테판 츠바이크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특별하지는 않다. 어쩌면 수없이 반복되었거나 새로울 것 없는 삶의 지혜들이다. 누구나 알고 있어도 아무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

아주 얇은 책, 적은 분량에 그림을 곁들여 부담을 덜고 읽는 호사를 느끼게 해주기 좋은 도구. 읽는 사람이 특별한 게 아니라 어두울 때에야 무언가 보이는 눈을 뜨게 해주는 텍스트의 행간에 머무는 시간이 중요하다. 하늘이 맑고 푸르고 누군가의 생이 마감되어도 또 누군가의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떠난 자가 남긴 기록은 과거를 소환하는 대신 현실을 톺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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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질수록 행복해진다 - 관계 지옥에서 해방되는 개인주의 연습
쓰루미 와타루 지음, 배조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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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행복이 관계에 있다고들 하지만, 삶의 근원적인 슬픔이나 외로움이 관계로 해소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관계망에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에요.”


나는 인간의 행복이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고통은 관계에 있다. 삶의 근원적인 슬픔과 외로움은 인간의 존재 조건이다. 연인, 친구,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의지하며 관계를 맺고 행복과 기쁨을 나누지만 모든 고통과 슬픔 또한 이 관계에서 비롯된다. 우연히 나눈 대화의 한 마디를 오래 곱씹었다. 인간관계가 각자가 원하는 욕망의 교집합을 넘어서는 순간 원망과 분노, 슬픔과 고통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겠으나, 대부분 사람들은 지나친 기대 혹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경계를 허문다.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감정과 선택으로. 그렇다면 인간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서로에 대한 신뢰 관계를 유지하면서 예의를 지킬 수 있는 거리는 어떻게 측정 가능한가. 서로의 기준과 욕망이 다를 때마다 대화와 합의를 통해 결정될 수 있는가.


일본 논픽션 작가들의 특징은 쉽고 간단하게 객관적 사실들을 요약 정리하고 간명하게 제시한다는 점에서 접근이 용이하나 깊이와 넓이가 확보되지 않는다는 단점을 함께 갖는다면 지나친 일반화일까. 대표적으로 사이토 다카시의 숱한 저작들이 그렇다. 쓰루미 와타루 역시 『멀어질수록 행복하다』는 제목으로 눈길을 끈다. 『책을 읽는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이라는 후지하라 가즈히로의 책처럼 날카로운 통찰과 선명한 주장이 담겨있으나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충분한 사유의 즐거움이나 깊은 통찰에 닿지는 못한다. 책을 읽는 목적과 방법에 따라 차고 넘칠 수도 있으나 대개 한 권의 책으로 얻으려는 기준에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에서 해방되는 개인주의 연습’이라는 부제는 선명하고 매력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는 이를 “‘개인주의’란 자신과 타인을 명확하게 분리하는 태도를 말한다. 결코 제멋대로 군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건 이기주의다. 진정한 개인주의란 모든 개인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남을 배려하고, 동시에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 굳건할 때, 건강하고 대등한 관계 맺기가 비로소 가능해진다.”(212쪽)라고 정리한다. 나밖에 모르거나, 내가 옳다고 착각하거나, 내가 원하는 걸 상대도 원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기주의는 타인의 기대와 욕망, 생각과 감정에 대한 배려가 없다. 웨인 다이어는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자고 역설했으나, 이는 확대된 개인주의에 가깝다. 타인에 대한 말과 행동을 성찰하지 않으면 스스로 ‘선’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 착각하기 쉽다. ‘나와 너는 다르다’는 전제에 동의하지 않으면 사랑 혹은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동일시하기 쉽다. 다른 건 잘못이 아니고, 비난의 이유도 아니다. 착각은 자유지만 그 고통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심리학자 아들러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라는 문장 하나가 이 책의 출발이다. 저자는 ‘아무에게나 곁을 내어주지 말 것, 가족이란 이름의 지옥에서 해방될 것, 짝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것, 어디서나 내 마음을 편안한 곳에 둘 것’을 강조한다. 이 충고를 각각의 장으로 구별하여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소제목과 문장은 명쾌하여 실용적 목적의 독서에 부합한다.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나 워크북 형태의 자기계발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대로 실천할 수만 있다면 관계 지옥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다. 독서가 시간과 장소의 문제는 아니지만 여행, 휴가, 카페에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시원한 표지 디자인은 여름과 잘 어울린다. 물성을 가진 종이책은 그 자체로 인간에게 위로가 되기도 한다.


잊지 말자. 거리를 두지 않으면 함께 멀리 갈 수 없다. -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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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알랭 드 보통 지음, 박중서 옮김 / 청미래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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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헤어질 때, 배려의 말을 건네는 쪽은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 37쪽

알랭 드 보통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Essays in Love, 1993년)로 깊은 인상을 남긴 후에도 결코 만만치 않는 책들이 계속 번역되었고 많이 읽혔다. 개인적으로는 『불안』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현대적 일상의 가치를 재해석했기 때문이다. 사랑에 관한 숱한 오해와 진실에 대해 어떤 작가든 한두 마디는 하기 마련이다. 프루스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보통씨는 특별한 문장을 남긴다.

건축, 미술, 종교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다양하고 풍부한 저작들은 평균 이상이다.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기 전 에피타이저 혹은 읽은 후에 디저트로 좋은 책이다. 1871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프루스트는 평생 변변한 직장을 가져 본 적도 없고 병약한 몸으로 거의 일생을 침대에 누어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문제적 작가다. 숱한 상찬과 논쟁으로 여전히 살아 숨 쉬는 프루스트는, 아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몇 마디로 규정하기도 어렵고 재미와 감동이라는 전통적인 문학적 잣대로 가늠하기도 어렵다.

텍스트 자체보다 프루스트에게 집중한 저자는 ‘오늘의 삶을 사랑하는 방법’, ‘성공적으로 고통받는 방법’, ‘사랑 안에서 행복을 얻는 방법’ 등 원제처럼 프루스트가 당신의 삶을 바꾸는 방법 아홉 가지를 제시한다. 책 좀 읽는 독자들은 금세 눈치챈다. 비법과 방법을 제시하는 책은 실패하기 쉽다는 것을. 그건 니 생각이고 난 달라,와 같은 주관적 태도와 생각 등 비판적 관점이 개입되기 때문이며 어디에나 통용되는 방법론은 수학의 정석에도 모두 담아내지 못한다. 정해진 길이 있다면 세상에 단 한 권의 책만 존재할 테니까. 그러니 이 책도 프루스트나 텍스트를 읽는 동안 진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헤매려는 사람은 기필코 이해하고 말겠다는 오기보다 보상 심리로 읽는 것이 좋을 듯하다.

프루스트에 삶과 당대 상황들에 대한 이해는 기본이다. 어떤 고전이든 ‘당대성’을 간과한 채 서사에 몰입하기는 어려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없던 시대고 겨우 전화가 발명된 시기다. 잘 차려 입고 오프라인 모임인 살롱에 가지 않으면 사람을 사귈 방법이 없었고, 인스타가 없어 돈 많은 사람들이 자랑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는 걸 기억하자. 그러면 오늘의 삶을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니, 프루스트가 자기 삶이나 사랑했는가. 친구도 없었을 것 같은데...질베르트, 알베르틴을 떠올려 보니 사랑이 뭔지도 모를 것 같은데...우리가 삶을 바꾸는 방법을 읽어낼 수 있다고?

그렇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독자’야말로 진정한 책을 완성시킨다. 무엇을 썼는지 중요하지 않다. 개별 독자가 어떻게 읽었는지가 핵심이다.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이 읽은 프루스트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일 뿐이다. 물론 우리는 타인의 책읽기를 통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비밀에 감탄하고 전혀 다른 해석에 놀란다. 독서 토론이 아니라도 간접적인, 또 다른 방식의 독서 모임 같은 2차 저작물들에 손이 가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프루스트 ‘보다’ 오히려 우리 입맛에 맞는 문장과 감수성을 가진 보통씨의 특별한 문장을 읽는 즐거움 때문이면 어떤가. 어차피 독서 유목민들은 짐을 챙겨 길을 떠나면 그뿐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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